* 기존 위치확보용 게시물에 2010년 2월 16일에 배치함.
다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국어와 한글, 그리고 우리들 (4)
한국어의 새로운 과제 : 세계화의 도전
앞에서 우리는 "한글"이란 문자체계와 "한국어"라는 언어에 대해, 세계화의 관점에서 살펴보았을 때 어떠한 문제들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동시에 한글이 가진 우수성과 기능적으로 극복해야만 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은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여러 문제들이, 실상은 10여년 전만 해도 그다지 우리의 주목을 받을 필요가 없던 부분들입니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이르러 인터넷의 성장과 더불어 세계는 급속하게 세계화되었기 때문에, 이제 한글이나 한국어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문자나 언어들이 더 이상 고립된 영역에서 사색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세계화 체제의 환경 하에서 한글 및 한국어와 관련된 약간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표준어의 가장자리
우리가 이 시리즈의 맨 처음에서 "한글전용론"과 "국한문혼용론"에 대해 잠시 사색을 해보았습니다만..... 이제 시야를 좀 더 넗히면 국문학자들뿐만 아니라, 언어학자들까지 포함해서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특정 언어가 특정한 바람직한 형태 혹은 순수한 형태로 보존되야만 한다"는 주장과, "언어란 본질적으로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보존하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하거나, 혹은 그러한 노력으로 인해 오히려 자연스런 언어생활을 방해받게 될 것"이란 주장으로 양분됩니다.
이 문제가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지점에 바로 "표준어"에 관한 광범위한 논의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조금 부차적으로는 "외래어 한글표기법"이나 "한국어 알파벳표기법"에 관한 논의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긴 논의를 피하기 위해 먼저 저의 입장을 말씀드려 본다면, 저는 언어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후자의 서 입장에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는 다소 소모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어서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학자들끼리 어떤 결론을 내리든 말든 상관없이 "모든 언어는 변해갈 것"이기 때문이고, 이 변화의 동력은 너무도 강력한 것이어서 굳이 그런 논쟁에서 설득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지식의 증가속도와 맞물려 세대별, 지역별, 국가별, 직업별, 산업별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언어 상호간"(Inter-Lingual) 교섭에 의해서도 나타납니다. 이러한 현상은 심지어 특정한 국가나 민족의 언어뿐만 아니라, 수학이나 논리학의 언어들조차 고적전 관점과 비고전적 관점으로 나눠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특정 언어의 순수성"을 주장하려면, 이러한 세계 문명사적 변화를 한 나라의 국문학과 교수들이 통제하거나 정리할 수 있다는 가정과 그에 필요한 실제적 능력이 필요합니다만..... 어느 나라의 국문학과 교수들이 과연 그러한 능력들을 갖고 있을까요?
따라서 이러한 논의가 단지 국어학자나 언어학자들의 월급주는 장치나 학문권력의 이념적 투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좀더 "유연하게" 논의의 차원을 옮겨야만 합니다. 아마도 그러기 위해선 2가지 전제는 먼저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1. 모든 언어는 유연하게 변화한다.
2. 우리의 언어가 향후 한 세대 동안 겪게 될 변화는 과거의 수십 세대가 겪었던 변화와
맞먹을 것이다. |
이러한 전제 위에서 소위 "표준어"에 대한 의미있는 논의나 사색은 가능할 것입니다. 사실 "표준어"라는 말보다 "공용언어"라는 말이 더 적당할 것입니다만...... 인도와 같은 나라는 방언이 총 1,000종이 넘고, 그 중 영어를 포함하여 국가공용어만 해도 16종에 이르고 있습니다. 만일 순수한 표준어만 고집하는 이가 이를 본다면, 인도는 뿌리가 없거나 향후 국가의 존립마저도 불가능한 나라로 보일 것입니다만...... 그러나 인도는 고대 아시아와 유럽에 영향을 준 선진문화권이었고, 현재도 막강한 잠재력을 갖고 성장중인 나라입니다.
하여간 소위 말하는 "표준적 언어"의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들은, 앞에서 살펴본대로 새로운 지식과 정보들이 확장되어나가는 그 언어공동체의 다양한 최전선들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한 변화지점들이 위치한 곳을 "표준어의 가장자리", 즉 "표준어의 변방"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가장자리들을 인정할 수 있다면, 마치 태양의 코로나보다 더 중심에서 당장에는 큰 변화가 없어보이는 그런 줄기 같은 곳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언어를 공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그러한 부분에 대한 대체적 윤곽을 만드는 작업에 치중한다면, 오히려 더 얻을 것이 많을 것입니다.
한 사회의 언어는 그 사회의 품위를 반영하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만, 그 사회가 가진 품격은 그 구성원들이 공유한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문법이나 언어 자체를 통제해서 그 품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가치관들이 먼저이고 이후 그것이 반영되어 나오는 것이 언어입니다. 따라서 문법이나 언어를 통제해서 한 사회를 정화하거나 품격을 향상시키려는 것은 어쩌면 의미가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언어, 사회, 정치, 경제, 철학 등 그 사회의 교육과정 전반에 걸쳐 고도의 개선을 취함으로써 상당한 미래에 그 사회의 언어생활의 품격이 향상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언어 하나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국어와 한국어
이전의 글에서 저는 "국어"라는 낱말을 사용하지 않고 "한국어"란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어 원어민들만 국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제2외국어로서 혹은 제3외국어로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어에 대한 이해나 그 문법에 대한 설명 역시 많은 점을 고려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저는 기존의 국문법을 고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몇 가지 교육기술적으로 고려할 점들은 존재한다고 봅니다. 상세한 논의를 하려면 또 다시 긴 논문이 필요하겠지만, 간단히 한두가지만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한국의 국문법에도 다른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음운론 분야가 존재하고 그 안에는 여러 규칙들이 분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발음에 관해 중요한 부분이 연음규칙과 같은 부분들일 것입니다. 가령 말음법칙(소리나는대로 썼을 때 종성[받침]에 남는 자음에 관한 내용)이나 자음동화(앞 음절의 받침자음과 뒤 음절의 초성 자음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변화) 같은 것은 상당히 기초적인 규칙으로 보입니다만, 의외로 외국인들에게는 학습초기에 상당히 곤란을 안겨주며, 또한 이후의 장기적 학습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가령 현재 한국어의 연음법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음 동화(子音同化) : 서로 다른 두 자음이 만날 때 서로 같아지거나 닮아가는 현상.
(1) ㅂ,ㄷ,ㄱ 이 ㅁ,ㄴ을 만나면 ㅁ,ㄴ,ㅇ으로 바뀜. (비음화)
- 밥물 → 밤물, 집는 → 짐는, 앞날 → 압날 → 암날, 믿는 → 민는
(2) 비음 ㅁ,ㅇ의 뒤에서 ㄹ은 ㄴ으로 바뀐다. (비음화)
- 남루 → 남누, 종로 →종노, 강릉 → 강능
(3) ㅂ,ㄷ,ㄱ이 ㄹ을 만나면 ㅁ,ㄴ,ㅇ으로 바뀌고 ㄹ도 ㄴ으로 바뀐다. (비음화)
- 섭리 → 섬니, 백로 → 뱅노, 몇리 →면니
(4) ㄴ이 ㄹ을 만나거나 ㄹ이 ㄴ을 만나면 둘 다 ㄹ+ㄹ로 바뀐다. (유음화)
- 신라 → 실라, 칼날 → 칼랄
(5) ㄷ,ㄴ이 ㅂ,ㅁ,ㄱ을 만나 ㅂ,ㅁ,ㄱ으로 바뀐다. 혹은 ㅂ, ㅁ이 ㄱ을 만나 ㄱ+ㄱ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들은 거의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 신문[심문], 밥그릇[박그륻], 엿보다[엳뽀다→*엽보다], 산불[산뿔→*삼뿔],
- 반갑다[방갑다→*방갑따], 앞가지[압가지→*악가지], 옷매무새[옫매무새→*옴매무새] |
이러한 규정에 따라, 한국어 회화에서 의외로 많이 사용하게 될 "입니다"나 "습니다"와 같은 어미들을 소리나는대로 표기하면 위의 규칙(1)에 따라 "임니다"와 "슴니다"가 됩니다. 따라서 외국인용 교재에는 "Im-Ni-Da"와 "Seum-Ni-Da"라고 발음표기를 해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임-니-다"라고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심지어 한국인들 중에도 방송국 아나운서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아마도 "임미다"(Im-Mi-Da)로 표기해주면 외국인들이 훨씬 더 부드럽고 한국어 원어민에 가깝게 발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입니다"가 "임니다"를 거쳐 "임미다"로 가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일가요? 바로 그러한 규칙이 인도의 문법가 빠니니의 연성규칙에 존재합니다. 연성규칙 혹은 연음규칙이란 것은 "이렇게 발음하자" 하는 권유나 명령이 아니라, "원래 자동으로 이렇게 발음하게 돼"라는 관찰의 결과인 것입니다.
또한 한국어 "강아지"의 경우, 통상은 "Gang-A-Ji"로 표기할 것입니다만, 이 역시 빠니니 문법규정에 따른다면 "Gang-Nga-Ji"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비음 "아"(Nga)는 한국어에서는 이응 받침에만 나는 소리로, 아기 울음소리 "응아"의 2번째 음절의 "아"와 같은 소리입니다. 이렇게 아직도 한국어 문법이 당면한 문제들은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본 "크메르의 세계"가 공개하게 될 외국인(우선은 크메르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에서는 바로 "입니다"의 발음 부분에서 "Im-Mi-Da"로 표시하고, "강아지"의 발음 부분에서는 "Gang-Nga-Ji"라고 표기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체계는 기존의 한국어 음운론에 대한 상당히 큰 도전이 될 것입니다. 동시에 국문법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은 우리 카페로서는 정통 국문법 연구자들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직면하는 문제만 고려한 것으로, 한국어 원어민들의 문제 자체를 건드린 것은 아니란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만 이제 한국어라는 언어가 처한 환경에 대해서는 좀 심각하게 고려해보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국어 교육의 문제
이미 우리는 세계화된 환경에서 우리의 언어가 직면하게 될 수도 있는 여러 문제들을 대강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러한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어교육이나 한국어교육에서 일대 패러다임 변화는 물론이고, 교육체계와 교육에 참여하는 인적 자원의 구성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즉 전통적으로 대학의 "국문학과"라고 하면, 그 안에는 크게 "국어학자"(한국어 전공 언어학자)와 "국문학자"(한국 문학에 대한 전문가)라는 두 범주의 연구자들이 교수진으로 배치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나마도 이들 대부분은 기존의 국문학과 출신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방식의 교육, 연구과정에는 아마도 많은 무리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나마 최근에 들어오면서, 국문학자(문학 전공)의 경우 평론가들보다는 작가들을 배치하는 실용적 접근 노력들도 보이곤 있습니다만, 본원적인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국제화에 대처하기 위한 국어교육이나 토론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좀더 폭넓은 차원에서 한국어를 바라볼 수 있는 "한국어 전공 언어학자"(국어학자)가 등장해야만 할 것입니다. 현재까지는 중국어나 일본어, 그리고 간혹 영어강의 능력을 시험한 경우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새로운 국어학자들이 배치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저는 본 카페에 게시된 크메르어 초급 강의에서 제시한 내용 중 일부분을 다시금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크메르어 학습을 위한 예비지식 (하편)>의 일부분임.
세계 대부분 언어는 문장 기본구조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크게 4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주어(S)와 동사(혹은 술어: V), 그리고 목적어(O)의 순서에 따라 2종류로 갈라진다.
(형식1) 주어(S) --- 동사(V) --- 목적어(O) 예: 영 어
I go to the school
나는 간다 학교(에)
(형식2) 주어(S) --- 목적어(O) --- 동사(V) 예: 한국어
나는 학교(에) 간다 |
한편, 주어구 혹은 목적어구 내에서 그 서술구조가 또한 2종류가 있다.
(A형식) 서술어(혹은 형용사) --- 서술받는 명사 예: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
아름다운 꽃
beautiful flower
이 형식에 맞춘 다소 긴 서술구조의 예 : 크고 빨갛고 아름다운 꽃
[주1] 간혹 영어의 경우 서술어가 뒤쪽에 위치한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는데, 영어는 기본적으로 앞에서 뒤로 나가면서 서술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어에서 서술어가 뒤로 가려면 전치사를 필요로 한다(예: The temple of the king, 왕의 사원). 물론 예외적으로 직접 사용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은 고도의 문어체적 수사학에 속한다. 굳이 말하면 한국어의 도치법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B형식) 서술받는 명사 --- 서술어(혹은 형용사) 예: 크메르어, 태국어, 티벳어 등
꽃 아름답다
이 형식에 맞춘 다소 긴 서술구조의 예 : 꽃 아름다운 빨강 큼 |
아마도 위의 두번째 언어에 대해 한국인들은 대단히 생소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의외로 이러한 어순을 가진 언어들이 제법 존재한다.
이제 이 (1형식), (2형식)과 (A형식), (B형식)을 조합하면 다음과 같은 4가지 형태의 언어들이 존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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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형식
(주어-동사-목적어) |
2형식
(주어-목적어-동사) |
A형식
(수식어-수식받는 명사) |
나는 받았다 아름다운 꽃을
예: 영어 |
나는 아름다운 꽃을 받았다
예: 한국어, 일본어 |
B형식
(수식받는 명사-수식어) |
나는 받았다 꽃 아름답다
예: 태국어, 크메르어 |
나는 꽃 아름답다 받았다
예: 티벳어 |
이제 여러분은 4종류의 언어들에 대한 완전한 도표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저 도표 안에서 한국어와 크메르어의 관계는 마치 수학의 대우관계처럼 가장 다른 언어군에 속해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런 문장구조를 이해하고 있는 한, 이제 그 한 가지 어려움은 덜었고, 비교적 쉽게 문법적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주2] 세계의 언어 가운데는 저 4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없는 언어도 존재한다. 가령 고전한문이나 산스끄리뜨어(=범어)는 하나의 단어가 하나의 문장 구실을 하기에 문법적으로 유연하다. 또한 범어는 만일 여러 단어의 문장일 경우, 마치 수학의 연산식처럼 단어 순서를 바꾸어도 문법적 의미는 바뀌지 않는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가 유연하다는 것으로 보면, 예술적 언어들 역시 한문이나 범어처럼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이기에 그들과 공통점이 있다. 하나의 단어가 다양한 뜻을 갖는다는 "의미론적 유연성"과 단어들을 섞어놓아도 수학기호처럼 엄밀히 문법적 분석이 된다는 점에서, 산스끄리뜨어는 가장 절묘한 언어 중 하나일 것이다. |
이 관점은 세계의 모든 언어를 4대 유형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이 분류에서 보면 어떤 학자가 한국어 및 일본어 연구를 했다는 것은 4대 범주 중 하나의 범주만 건드린 셈이 됩니다. 또한 한국어 및 한문을 연구했다는 것은 4대 범주 중 하나의 범주 및 한문이라는 예외적 범주를 공부한 셈이 됩니다.
만일 누군가가 저에게 행여라도 국어학자(어학 전공)를 새롭게 교수로 초빙할 때의 조건에 대해 조언해달라고 한다면, 제가 제시하는 기준은 매우 간단합니다. 즉 저 위의 4대 언어범주 중 최소 3개 언어범주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 즉 논문발표, 어학연수, 번역, 강의 등 --- 경험해본 연구자를 초빙하라고 권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연구자는 4대 언어범주에 속하는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겪게 될 난점들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외국인의 관점에서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거나, 상호 문화나 가치관을 더 친밀하게 이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러한 연구자는 전혀 새로운 언어가 등장했을 때도, 매우 빠른 시간 안에 분석과 이해가 가능하여, 차세대의 우리 국문학도들을 전혀 새로운 유형의 인재들로 육성시켜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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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000 개의 단어 암기보다 노란 박스 안의 글이 의미가 더 클듯합니다. 쉽고, 명료하게 글을 써 주셔서 읽어 내려가는 데도 무리없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무래도 음운론 부분의 발음법에 관해서는.. 좀더 사색이 필요할듯 합니다... 외국인 초보자를 전제로... 그리고 한국인 중에서도 민감하게 자각한다는 전제하에서... 향후 더 검토를 해야할듯 합니다...
5번을"ㄱ"~"ㅎ" 먼저 읽고 1~4번을 읽었습니다.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논문에 경탄에 마지 않습니다.
크세를 만난 것도 운영자님의 값진 글을 접한 것도 "넘치는 복"이라 감사드립니다.
아-설-순-치- 후의 배열은 은 단지 설명의 편의상의 배열이 아닌
"발음구조의 기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자음 배열이 "ㄱ"~"ㅎ"가 싼쓰끄리트어(힌디어)의 배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갑니다
한국어나 태국어에서 "ㄱ"~"ㅎ" 배열이듯이 크메르어, 네팔어 나아가 몽골어나 미얀마어 등등의 언어에도
"ㄱ"계통으로 시작해서 "ㅎ"계통으로 배열 되는 것은 아닌지요?
빠니니 문법(=산스끄리뜨어를 대상)을 연구한 후 만든 문자들은
모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ㄱ,ㄴ,ㄷ,ㄹ ...... ㅎ>이라는 배열은
세종대왕께서 처음에 분류했던 방식과는 다소 다른 것이죠..
세종대왕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아-설-순-치-후 의 배열로 분류하셨습니다.
당연히 빠니니 문법학을 연구하셨었죠..
빠니니의 <팔장론>이 고려대장경에 들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많은 언어들의 음운론에서
'ㅎ'은 'r'이나 'y'와 더불어 반모음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어에는 반모음이 없어서
'ㅎ'도 자음으로 분류되죠..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