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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다 요코 저/남상욱
역
물구나무 선 세상 |
물구나무 선 세상
작가 다와다 요코는 1960년 일본에서 태어났고, 1982년부터 지금까지 독일에서 살면서 독일어와 일본어로 작품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로 명성이 높다. 그녀는 '언어의 여행자'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별명에 걸맞게 다와다 요코는 언어의 경계를 횡단하며 언어를 낯설게 하거나, 여러 언어를 융합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요코는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원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등 사회적인 문제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녀는 일본어를 바탕으로 한자를 풀어내며 문장을 만들어내고,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복선을 깔며, 한자의 형태를 이미지로 사용하는 등 기발한 기법을 쓰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우려도 있다.
물론 재기발랄한 표현 시도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재난을 쓴다는 것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라는 글쓰기의 윤리성 앞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면서 고민하고 있는 동시대 일본의 작가들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거나 무책임한 것으로 비추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압도적인 재난 앞에서 침묵을 강제하는 사회적 압력과 금기를 넘어서, 어떤 식으로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타자'를 만들고, 그들의 말들을 모으고, 대화의 활로를 뚫는 것이야말로 소설가의 길이자 사명임을 환기시켜 준다. - '옮긴이의 말'에서
소설가는 사회 문제에서 자유로울수는 없다. 소설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를 소설 속에 담으려고 하며, 비록 소설가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소설에는 당대 사회상이 담긴다. 다와다 요코의 『헌등사』는 초고령화된 일본 사회를 비틀어 표현하는 동시에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해 발생한 환경오염문제 들을 제시한다.
요시로(80세 때만 해도 코털이 자라면 거울을 보며 코털을 자르고, 피부가 건조해지면 크림을 발랐다)는 용기에 담은 오렌지즙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앟게 조심스럽게 컵으로 옮긴 후 거의 빈 승방(僧房)이 늘어선 오렌지 파편을 오른손으로 쥐고 악력이 허용하는 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짰다. "어째서 증조할아버지는 마시지 않아요?" 라고 무메이가 질문하자 "하나밖에 살 수 없었거든. 아이는 이제부터 계속 살아야 하니까 무엇이든 아이 우선이야"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이가 죽어도 어른은 살아가지만, 어른이 죽으면 아이는 살 수 없어요." 라고 마치 노래하듯이 무메이가 말하자 요시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52~53)
살아 있다는 건 고맙지만, 노인은 살아 있는 게 당연하니까 축하할 필요 따위는 없다. 오히려 사망률이 높은 아이들이 오늘도 죽지 않은 걸 축하해야 하겠다. 무메이의 생일이라면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계절마다 축하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동상에 걸리지 않고 겨울을 하나 넘기게 된 걸 축하해 주고 싶다.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가을을 맞이하게 된 걸 축하해 주고 싶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이 낡은 것을 버리고 활성화된다. 요시로는 봄이 오면 다시 젊음이 되살아난 듯 느껴지지만 무메이에게 새로운 계절은 늘 새롭게 도전해오는 강인한 상대다. (125~126)
115세가 된 요시로의 몸은 여전히 건강해서 아침에는 개를 빌려 달렸고, 무메이를 위해 오렌지를 짜고 채소를 썰고, 배낭을 등에 메고 직판시장을 돌아다녔으며, 장롱 위나 창틈에 먼지가 천천히 쌓여갈 여유도 주지 않고 꽉 쫜 걸레로 훔쳤고, 딸에게 그림엽서를 썼으며, 속옷은 대야에 담가두었다가 양손으로 비벼 빨았고, 밤에는 재봉 상자를 꺼내 증손자의 세련된 옷을 만들었다. 왜 쉬지 않고 일하는가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눈물이 멈추지 않기 때문이었다. (171)
원자력사고로 인해서 환경이 변화된 일본에서는 노인들은 죽지 않고 사는데,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건강한 삶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목숨을 유지하며 힘들게 산다. 증조할아버지 요시로는 증손자 무메이를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 작가는 초고령 사회와 저출산, 지구환경 문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도 초고령 사회가 되었다. 새로운 세대는 노인 세대에 대한 부담으로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다. 거기다가 환경오염은 더 심해지고 있으니, 그 다음 새 세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작가는 무서운 숙제에 대한 이야기 한 덩어리를 '재기발랄하게' 펼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