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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속리에도 용아 있다!."[속리산서북릉 종주기]
◆ 산행일자 : 2001년 08월 15일(광복절공휴일), 날씨 : 약간 흐림, 인원 : 8명(남5, 여3)
◆ 산행코스 : 활목고개(07:40)~미남봉(08:23)~매봉(09:23)~두레박크랙(10:20)~809봉(10:40)~상학봉(11:15)~묘봉(12:10)~식사끝(13:05)~암봉전망대(14:15)~속사치(14:50)~관음봉(15:25)~문장대(16:42)~헬기장(17:03)~첫계류(17:30)~하산완료(19:03)
◆ 총 산행거리 : 약 18Km(실제거리추정), ◆ 총 소요시간 : 약 11시간 20분(식사,휴식포함)
《산행기》
나는 개인적으로 속리산을 참 좋아한다.
지리나 설악모양 그 규모가 크고 장엄하지는 않지만 결코 만만찮은 산세와 기상천외한 암봉들이 지천에 도사리고있는가 하면, 언제나 우리마음속에 존재하는 한폭의 그윽한 동양화를 연상하는 그런 산이기도 하다.
-광복절휴일을 맞아 일행 8명이 속리산 산행에 나서기로 한다.
우리부부와 문상용씨부부, 그리고 모처럼 만에 김규수씨부부가 나왔고, 싱글의 김호연씨, 또한 팀의 새내기로서 최재공씨가 역시 싱글로 처음합류를 했다.
차량서비스는 처음 나온 최재공씨, 그리고 역시 처음 마나님을 모시고온 김규수씨가 맡는다.
04시20분, 남대구I/C를 출발, 상주에서 충북보은으로 넘어가는 '화령재'직전, 삼거리길목에서 잠시 차를 멈춘다.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서 휴게소 마당에다 일단 자리를 깔고는 모두들 둘러앉는다.
휴게소는 아직 영업개시를 채 하지 않은 것 같았으나 그래도 사발면 몇 개를 달래서 각자 준비해온 식사에다 국물을 대신하여 곁들이니, 마당에 앉아먹는 아침식사 치곤 괜찮았다.
급하게 물을 끓여주신 휴게소아주머니께 고맙다는 인사 드리고 이곳을 총총히 떠난다.
곧장 가면 화령재넘어 바로 보은 땅이고, 우측, 화북 쪽으로 들어서면 괴산가는 길목이다.
-차는 '갈령'을 넘어 문장대 입구를 지나 오늘의 하산지점인 밤티(재)에 도달한다.
빈차 한 대를 여기에 두고, 나머지 한 차에 8명을 구겨 싣고는 다시 '활목고개'로 이동한다.
"활목고개", 충북(보은군 산외면)과 경북(상주군 화북면)의 도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고개라야 그저 밋밋한 포장도로이고 고갯마루 오른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으며, 그나마 도(道)경계임을 알리는 간판이 없다면 휙 지나쳐도 잘 모를 볼폼 없는 찻길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곳이 소위 말하는 '충북알프스'구간의 시발점이자 종료지점이 되는 곳으로 그 입지는 사뭇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오늘산행구간 역시 이곳이 들머리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07시40분, 모든 산행채비를 끝내고 도로 옆 철책이 쳐있는 빈곳을 찾아 산으로 오른다.
(활목고개 들머리가 되는 초입로)
나무도 없는 풀숲을 잠깐 뚫고 들어가면 이내 낙엽이 다져진 비탈진 산길을 만난다.
시작부터 가파르게 올려치는 비탈길은 그 기세를 늦출 기색도 없이 곧장 고도를 올려간다.
웬놈의 날씨는 아침부터 이렇게 더운지...? 바람 한 점 없는 후덥지근한 날씨에 모두들 육수 꽤나 빼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오늘날씨상 한 템포 늦추는 페이스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낙엽 다져진 비탈길을 25분 가량 오르면 첫 움막터(송이막사)흔적을 만난다.
편안한 능선을 잠시 지나 다시 한차례 더 가파른 길을 쳐 올리면 미남봉 정상이다.(08:23)
이곳에서 첫 쉼을 가지면서 편안하게 물 한잔하고 여지껏 흘린 땀을 식힌다.
미남봉(658M), 아무런 표지도 없는 민둥봉이고, 숲이 가려 전망도 시원찮다.
뭐가 미남인지? 이곳에 송이가 많이 난다더니..., 혹, 미남송이(?)가 많이 나서인가...?(에구..! 이건 정설이 아니고 순전히 본인 생각임. -다른 쪽으로 연관시키지 말 것.^-^)
여러 송이움막이 있는 이곳은 송이철, 함부로 들어섰다간 괜히 의심받기 십상일 것 같다.
봉우리를 내려서서 급하게 한번 떨어졌다가 중간에 아기자기한 바위들과 함께 소나무숲길이 한동안 이어간다. 어느 빈터 한곳에 두 번째 막사터를 만나고, 길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은근히 힘을 빼게 한다.
-다시 세 번째 막사터를 뒤로하고 헥헥 거리며 올라선 봉우리가 매봉 이다.(10:23)
고도계로 보아 미남봉보다 낮은 640M(오차 ±20M이상)정도 되는 봉으로 역시 아무런 상징 같은 것은 없었으나 정상과 함께 일대의 바위들이 멋지고 주변전망이 잘 보여 근사했다.
쉬기 좋은 그늘진 바위에 앉아 막걸리 한잔씩을 나누어 마시며 느긋한 휴식시간을 가진다.
오늘은 김규수씨가 마나님을 수행하느라 일체의 돌출을 자제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암! 그래야 지...)
문상용씨와 김호연씨가 평소 같지 않게 땀을 많이 흘리는 걸로 보아, 날씨가 덥긴 더운 모양이다.
허지만 금새,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서로 막걸리한잔 나누는 이 소중한 휴식시간이야말로 산을 올라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20분 가량, 휴식시간을 즐긴 뒤 바위지대를 조심스럽게 내려오자 운치가 있는 숲길이다.
좌우로 산길이 열리는 작은 안부를 지나자 또다시 서서히 고도는 높여가고, 짙푸른 숲길이 산속 걷는 기분을 점차 고조시키는 동안, 중간에 좌우 하산길이 흐릿한 안부지대 두 세 곳을 더 지난다.
우측으로 모두 '신정리'쪽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화평동'쪽으로 가는 길들로써,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능선 자체가 도계를 이루고있는 까닭에 우측은 충북 땅으로, 좌측은 경북 땅으로 떨어지게 된다.
왼쪽 저편에 매끈한 바위뿌리를 하얗게 드러내고있는 거대한 토끼봉능선이 바라보이고..., 이제는 웬만큼 고도를 올렸다 싶을 때, 갑자기 우람한 암벽이 앞을 가로막는다.(10:20)
이 암벽을 오르는 길은 난감하게도 왼쪽의 바위틈새밖에 없는 크랙지대 이다.
'V'자로 벌어진 바위틈은 폭이 좁아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어깨가 양쪽 바위벽에 끼고 어깨가 빠지면 배낭이 걸리고, 배낭이 빠지면 엉덩이가 끼는 아주 지랄같은 곳이다.
할 수없이 배낭을 내려놓고 맨몸으로 올라가서는 배낭을 로프에 묶어 차례로 끌어올리자 마치 두레박질을 하듯이 여덟 번이나 이 짓거리를 하고 나니, 어깨쪽지 힘이 다 빠져버린다.
(두레박침니, 배낭 올리는장면) (상학봉전, 전망좋은 바위와 고고한 소나무)
-배낭을 두레박질을 해야하는 이곳을 '두레박크랙'이라 이름지어주고 떠난다.
어깨가 녹초가 된 채 돌아서자 헉! 여기도 10m 로프길이 또 기다리고 있다.
로프를 붙들고 꼭대기로 올라서면 길가에 까만 비석이 서있는 묘지 한기가 보이고, 바로 바위벽 오르기 전, 우측 편엔 화평동에서 토끼봉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산길이 잘 나있다.
잠시 후 멋진 809봉(상학봉 전 봉우리)에 오르자 다시 휴식을 취하게된다.(10:40)
김규수 마나님께서 아무래도 험난한 바윗길이 부담되시는지? 몹시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
약 15분의 휴식을 끝내자 다시 공포의 20m 슬랩구간이 우리를 또 기다린다.
길게 로프가 걸려있긴 하나 오른쪽으로 기우려지면서 상하각도가 급한 슬랩이라 쉽지 않고, 차라리 정면 홀드를 잡고 오르는 편이 낫다. 하지만 초심자에겐 어느 것도 공포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이 슬랩을 우회하는 길은 있으나 이렇게 우회해서는 이 구간의 재미를 반감시킴으로 오늘은 의도적으로 트래버스를 피하고 '묘봉'까지는 거의 날등을 고수하는 방법으로 진행하려한다.
(20M 슬랩바위, 홀드를 잡고 오른다)
-슬랩을 통과하면 바위구간 한곳을 더 낑낑대고 오르다 보면 곧 '상학봉'이다.(11:15)
'상학봉(834M)'정상은 거대한 바윗덩어리로 되어있고 나무사다리를 딛고 꼭대기에 오르면 작은 공간이 있다. 그러나 정상표지석은 없고, 단지 나무에 작은 글씨판이 걸려있는 정도다.
이곳에 올라서자 비로써 도저히 발길을 들어놓을 곳이 없어 보이는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보이고, 가야할 묘봉과 관음봉, 그리고 문장대와 천왕봉,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남쪽 대간줄기와 청화산, 대야산, 멀리 꿈틀거리는 악휘봉, 희양산, 넘어 이화령으로 이어가는 북쪽 대간줄기가 눈앞에 가물거린다.
(상학봉서 바라본 백두대간의 선릉들)
우리가 쉬었던 건너편 봉우리엔 어디서 올라왔는지? 산객들 모습이 여럿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묘봉을 향해 내려서면 방향은 엉뚱하게 우측방향을 틀어간다.
마치 하산길 같은 바윗길을 내려서면 절벽아래를 돌아 능선으로 들어서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시 후 집채만한 바위를 양쪽에 떠 받치고있는 절묘한 바위터널 구간을 지나고, 좌우로 올려다보기조차 목이 아픈 바위들과 얌전한 날등, 그리고 소나무 숲을 차례로 지나면, 이번엔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기어야하는 영락없는 개구멍 바위가 나온다.
-위에서 아래로 관통하는 수직 개구멍바위다.
들어가기가 껄끄러워 좌우로 살펴보지만 "꼼짝 말아!"다.
체면상, 어떻게 해보려다가 괜시리 힘만 빼고는 결국, 맨 나중에 개구멍을 들어가고 만다.
개구멍을 빠져 나와 한차례 오르막을 씩씩거리고 오르면 아주 얌전한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능선길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는 곳으로 보은군에서 동판안내표지를 묻어놓았다.
"주차장 2Km, 묘봉0.3Km" 안내판을 지나서 마지막 바윗길을 오르면 곧 묘봉 이다.(12:10)
묘봉(874M)정상은 마치 마당바위같이 그 공간이 꽤 넓고, 사발팔방 터지는 전망을 즐기면서 쉬어가기에 그만인 곳이다 .정상석은 몇 년째 터만 잡아놓은 채 세워놓지는 않고 있었다.
묘봉까지의 오는 시간이 4시간 30분이나 걸린 셈이다. 실제거리 상으로는 얼마 안 되는 능선길이지만 설악의 용아처럼 인원이 많을수록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다.
통상적으로 이곳까지의 소요시간은 3시간 40분 정도면 올 수가 있다.
(묘봉에서의 점심식사 후, 자동촬영)
-마침 시간도 적당하여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아내가 준비해온 무침회를 즉석에서 버물러 찬과 안주를 삼는가하면 최재공씨가 준비해온'조껍대기술'은 묘봉에서 그 빛을 발한다. "흐흐.. 그래도 신참으로서 도리는 알아 가지고...,"
식사와 함께하는 걸출한 한잔 술이야말로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좋은 양념이 된다.
산상의 즐거운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어김없이 호연씨 카메라가 또 역할 수행을 한다.
오늘도 산행 내내 그 무거운 카메라와 삼각대를 매고 다니면서 적기적소 촬영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김호연씨, 난 그에게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13시 05분, 식사를 끝내고 묘봉을 떠난 시간이다.
약간 까다로운 바윗길을 내려서자마자 길은 바로 좌회전으로 급히 휘어진다.
능선을 향해 간다는 게 자칫 '여적암' 빠지는 정면 길을 따르기 쉬운 곳으로 조심할 곳이다.
김규씨가 다가와 마나님의 체력을 고려하여 '복가치'에서의 탈출의사를 귀띔 해준다.
약간 아쉬웠지만, 리치길에서 체력소모로 인해 그리하시겠거니..., 일단 그 뜻을 받아들인다.
-지금까지 격렬하게 몰아치던 산길이 이곳을 지나면서 한결 부드러워진다.
짙은 숲길, 풋풋한 풀내음이 물씬 풍기는 여유로운 산길을 이어가다 이내 '복가치'안부에 내려선다.
복가치안부는 좌우로 뚜렷한 산길이 나있는 사거리로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운흥리 버스종점으로 갈 수 있고, 우측은 여적암을 거쳐 법주사 쪽으로 하산할 수가 있다.
막상 이곳에 오자 좀 싱거운 기분이 드셨는지? 이곳 탈출을 보류하고 '속사치'에서 탈출하겠단다.
하기야 그래도 될성싶은 건, 식사하면서 취한 휴식이 웬만큼 재충전의 시간이 되었을 거다.
짧은 비탈을 한번 오르면 날등과 숲길을 번갈아 가며 한동안 걷기 좋은 산길이 이어진다.
묘봉을 떠나 4~50분 가량 부지런히 걸어오자 속사치 전, 우뚝 버티고 서있는 거친 봉우리 앞에서 삼거리하나를 맞닥뜨린다. 좌측바윗길을 오르면 봉우리로 직등하는 길이고, 곧장 가면 돌아가는 길이다.
-봉우리를 돌아 흙 길로 올라서면 거대한 바위군정상부 아래에 도달한다.(14:15)
여기서 산길은 약간 애매하다. 바위에서 암릉을 따라갈 수도 있으나 극히 위험하며, 바위를 오르지 말고 아래 숲 속을 보고 무조건 내려서면 속사치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주의지점)
고갯마루 전망대바위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에라..! 벗님네야! 그저 오늘하루 경치 즐기는 것이 남는 게 아니겠더냐...? 하며, 또 한바탕 퍼질러앉아 버린다.(경관 일품임)
관음봉, 문장대가 손에 잡힐 듯 보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일망무제라..., -모두들 경치구경에 열중할 때 고갯마루그늘에 누었으니 바람이 솔솔불어 대장부팔자가 그저 그만이다.
(관음전봉 전망대, 멀리 대야산이 보인다)
마루턱에서 내려서자 산죽길이 나오고, 비탈길을 한동안 내려가면 곧 '속사치'에 선다.(14:50)
산죽밭 공터에는 역시 좌우 산길이 나있고, 좌측 나무에는 '대흥동'이란 빨간 글이 써있다.
좌측, 4~50분 정도 하산하면 대흥동에 도달할 수 있고, 우측, 외톨바위, 석문을 거쳐 법주사로 내려가는 길은 문장대에서 하산하는 길과 만나게되며 다소 희미하지만 자연미를 간직한 호젓한 산길이다.
속사치는 예전에 도로가 뚫려있었다 한다. 미국에서 원조해준 밀가루를 일당으로 나누어주면서 생긴 도로라 하여 일명 '밀가루도로'라 했다한다. 하지만 그 후, 법주사 승려들이 일반인이 넘나드는 것을 꺼려 그 기능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도로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곳까지 같이 왔던 김규수씨부부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해야하는 시간이 왔다.
모두들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을 아쉬워하며 그들을 먼저 내려보낸다.
관음봉 오름 길은 언 듯 보아 상당히 가팔라 보이나 의외로 완만한 오름 길이다.
언덕을 한번 오르면 작은 안부 사거리가 한번 더 나오고 계속 오르면 정상부 아래 소나무가 멋있는 마당바위 한곳을 만난다. 이곳에서 마지막 험난한 바위지대를 올라서면 관음봉정상이다.(15:25)
어떻게 오르다보니 정상적인 루터를 놓쳐버리고 길도 아닌 반대편 측면에서 오른 꼴이다.
관음봉(982M)정상은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형성된 봉우리다.
문상용씨가 위험한 꼭대기로 올라가자 그의 아내가 아래에서 잔뜩 마음을 조리며 하는 말, "거기에 올라갔다고 아버님께 다 일러바칠 끼다!" 하며 씩씩거린다.(킥킥..누군 이제 죽었다.)
봉우리 자체도 멋이 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너무나 통쾌하여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속리산자락에 있는 법주사와 그 부속암자들의 법당은 모두 이 관음봉을 마주보고 있어 속리산을 통털어 관음봉은 특히 법주사에 있어 상징적인 봉우리로 그 의미를 두고 있다한다.
(관음봉서 바라본 문장대 전경) (관음봉정상에 환호하는 문상용씨)
-때마침 문장대 쪽에서 올라오셨다는 두 부부등산객과 인사 나누고는 이곳을 내려간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문장대지만 이곳에서의 문장대 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다.
과거에 길도 제대로 없을 때 송이꾼이 올라와 이리저리 다녔던 길이 지금의 산길로 되었던 만큼, 중간에 만나는 암릉지대에는 도저히 길이 있을 것 같지도 않는 그런 곳도 만난다.
하지만 과거 '상주시청산악회'(총무, 전병순씨팀일원)에서 주요지점에다 빨간 페인트 표시 해놓은걸 잘 살피면서 진행을 한다면 큰 어려움은 없다.
관음봉을 내려서서 중간에 짙은 산죽지대를 만나면 좌측, 정낭골로 빠지는 길을 조심해야하며 이곳을 통과하면 길은 대체로 뚜렷하게 이어가다가 문장대와 가까워지면서 암릉들을 만난다.
암릉지대를 거의 통과하면 순탄한 내림길이 이어지고 얼마안가 막바지 오름길을 만난다.
거대한 문장대 돌뿌리 우측을 오르는 길로서 문장대정상에서 등산객들이 버렸는지? 장사치들이 버렸는지? 수도 없이 버려진 오물(특히 유리병조각)들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막바지의 오름길, 오르는 것도 힘드는데 온갖 오물들을 보자 두 번 오르고 싶잖은 길이다.
-오름짓을 끝내면 출입금지철책 옆 바위에 서게된다.
왼쪽으로 문장대꼭대기 오르는 철 계단을 따라 오르자 곧 정상이다.(16:42)
관음봉에서 문장대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무려 1시간 17분이나 걸림)
문장대(1082M)정상에서 전망은 속리산최고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너무 많아 봐왔던 전망이라 남들이 감탄하는 전망을 별로 실감도 못 느끼는지? 모두들 딴청을 부린다.
(문장대 정상에서)
먼저 내려간 규수씨와 통화를 하자 "에게..., 인제 문장대 왔는교?"한다. 에그! 너무 늦었나?
그럼 서둘어야지..., 철계단을 내려서고..., 좌측 출입금지 팻말 앞에 선다.
로프줄을 넘어서면 헬기착륙장이 나오고, 다시 백두대간 능선으로 들어서서 10여 미터 진행하다보면 왼쪽, 산죽밭 사이로 희미한 오솔길이 하나 보인다. (하산 들머리, 17시 03분)
여기가 바로 오늘의 하산들머리가 되는 곳이다.
대간 능선을 버리고 오솔길을 들어서자마자 산죽과 거미줄이 성가신 음침한 숲길이 이어지면서 길은 문장대 돌뿌리 동쪽 아래로 빠지는 '정낭골'지류를 타고 내려가게 된다.
-발길이 뜸한 곳이라 희미한 길이 이어지는 곳으로 흔적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따라야한다.
하늘을 뒤덮은 원시림아래 미끄러운 돌길과 나동그라진 통나무들을 밟고 부지런히 내려서면 어느새 계류의 물줄기를 만나면서 첫 계류를 건너는 지점에 선다. (17시 30분)
날이 더워 이미 물을 죄다 소비한 터라 이곳에서 물을 실컨 마시고 통에 담기도 한다.
잘 흐르던 물줄기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마른 계곡인가 싶더니 다시 물길이 흐르고, 얼마안가 또 없어졌다가 다시 흐르고..., 두 세 번을 반복하더니 얼마 후 본격적인 계곡의 면모를 서서히 드러낸다.
좌우로 건너는 계곡길이 다소 애매하게 이어갈 때, 이끼 낀 반석들이 무척 미끄럽다.
어이쿠...!! 기어이 호연씨가 쫄딱, 하며 한탕하자, 모두들 네발로 벌벌 기면서온다. 푸우훗....
어느 듯 하류가 가까워지면서 수량이 늘어난 시원한 물줄기가 땀에 찌든 산객을 유혹한다.
콰르르 콸콸...!! 쏴아~~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지는 어느 작은 폭포 앞에 선다.
-웬만하면 참으려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두 아낙네들을 먼저 보내자마자 폭포를 향해 제일먼저 돌진한 천둥벌거숭이는 호연씨다.
군대생활 군기가 아직 남아서인지...? 선착순 하면 단연 호연씨고, 난 이제 노병 다 되어버렸다.
숨이 막힐 듯한 폭포샤워로 몸을 냉각시키고는 산뜻한 기분으로 마무리 하산을 서두른다.
30여 미터 내려가자 두 아낙이 기다리고있는 곳에 우와! 넓은 소와 멋진 폭포..., 이곳이 훨씬 좋다. 조그만 더 내려올걸..., 후회막급의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고 아내는 피식~, 하고는 돌아선다.
에이고, 여기는 또 와이리 좋노, 여기도...!, 이 일대를 내려가면서 멋진 곳들이 연이어 나타나자 아예 못 본체하고 그냥 가기로 한다. 하류를 내려가면서 길은 점점 뚜렷해지고 넓어지기 시작한다.
잠시 식혔던 몸이 다시 더워 질 때쯤, 저만치 숲이 훤히 뚫리면서 도로 옆 넓은 본류를 만난다.
계곡을 건너 도로 위를 막 올라서려니까 김규수씨가 빙그레 웃으면서 우리를 맞이한다.
-"수고 많았습니다!.", "많이 기다렸지요?"
속사치에서 헤어진 두 분을 서로 반갑게 맞이하면서 오늘 산행이 모두 끝이 난다.(19:03)
활목고개에 세워둔 차는 이미 김규수씨가 이곳으로 이동시켜 놓았고, 이제 밤티재에 세워둔 그의 차만 회수하면 된다. 잠시 휴식과 함께 담소를 나눈 뒤 다시 8명이 비집고 차에 탄다.
'밤티', 바꿔 말해 '밤고개', 또는 '밤재', 문장대에서 뻗은 줄기와 백악산에서 뻗은 줄기사이를 넘어가는 고갯길로서 '눌재' 와 함께 청화산을 연결짓는 백두대간의 한 고갯마루이다.
밤티에서 다시 차를 나눠 타고 막 출발하기 전, 문장대 대간길 근처에서 만났던 대간꾼을 다시 만난다. 혹, 차를 태워드릴까 싶어 횡선지를 물어보자 이곳에서 야영할 계획이라 한다.
수원에서 오셨다는 이분은 이곳에 물이 있는 줄 알고 왔다가 물이 없어 난감해 하고 있던 차, 마침 호연씨가 첫 계류에서 담아온 물 2통을 건네주자 무척이나 좋아한다.
역시 호연씨의 선경지명이 있어서일까? 필요한곳에 필요한 것을 주고 나니 떠나는 우리도 기분이 좋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