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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를 위한 법화경강의 제8강 2
(無比 큰스님, 문수선원, 2008년 9월 5일)
2. 방편품 2-7
그래 사리불에게 고했어요. 부처님이 이 첫말씀입니다.
諸佛智慧는 甚深無量이시고
제불지혜(諸佛智慧)는 심심무량(甚深無量)이시니
其 智慧門은 難解難入이라
기 지혜문(其 智慧門)도 난해난입(難解難入)이라
一切聲聞辟支佛의 所不能知니라
일체성문벽지불(一切聲聞辟支佛)의 소불능지(所不能知)니라
그랬어요.
제불지혜(諸佛智慧) 모든 깨달은 사람들의 지혜, 모든 깨달은 사람들의 지혜는 심심무량(甚深無量)이라. 매우 깊고 깊고 또 한량없다.
그리고 그 지혜의 문에 들어가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그래서 일체 성문과 벽지불들은 능히 알지 못한다. 쉽게 알지 못한다 이랬어요.
그러니까 불교에서 성인의 지위를 성문 벽지불 그걸 연각이라 그러거든요. 그 다음 그 위에 보살 그 위에 부처야.
그래 사성육범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네 종류의 성인(聖人)의 단계를 성문(聲聞) 벽지불(辟支佛) 보살(菩薩) 부처[佛]
요렇게 네 단계의 사람들을 성인 이렇게 말하고
그 다음에 범부(凡夫)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인도(人道) 천도(天道) 아수라(阿修羅) 이렇게 하면 고게 여섯 종류죠. 그래서 사성육범(四聖六凡)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공부를 어지간히 했다 하는 사람들이 이제 성문도 되고 벽지불도 되고 그렇게 표현이 되겠지요. 성문이라 하고 또 좀 더 높은 단계를 벽지불.
우리는 평생 성문(聲聞)이예요.
맨날 경전 보고 경전 법문 듣고 그저 강의 듣고 소리를 듣는다 그래 돼 있잖아요. 소리 듣고 조금씩 조금씩 눈을 떠가는 사람들 그게 성문이예요. 우리 모두가 지금 성문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그 다음에 벽지불(辟支佛) 이건 이제 아까 인연 이야기를 했는데 세상의 이치는 전부가 인연(因緣)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인연관(因緣觀)을 해. 세상 존재의 원리를 관찰을 하는데 그래서 스스로 관찰을 가만히 사유하고 관찰해 가지고 스스로 이치를 깨달아.
우리는 성문이니까 설명을 듣고 깨달아 가고
벽지불은 그 어떤 스스로 인연을 관찰해서 깨닫고
그래 좀 낫죠. 스스로 깨닫는 거하고 남의 설명 듣고 깨닫는 거하고.
그래서 벽지불, 또는 연각(緣覺) 그래요. 인연 연(緣)자 깨달을 각(覺)자 벽지불을 다른 말로 연각이라 그러는데 인연 연(緣)자 깨달을 각(覺)자니까 인연의 도리를 스스로 관찰을 해서 깨달아서 성인이 된 사람 이 말이야.
그 다음 그 위에 단계가 보살(菩薩)이라고 하잖아요?
보살은 그런 단계를 다 넘어서서 그건 이제 세상을 이해하는 입장이고 보살은 실천하는 입장이라.
자기 스스로 어떤 중생들을 교화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라. 그래 육바라밀을 주로 행하죠. 육바라밀을 행하는데 자리(自利)면도 있고, 이타(利他)면도 있는 거야.
자기 수행 중심의 입장이 있고, 또 남을 교화하는 입장이 있어.
그래서 이제 성문이나 벽지불은 그런 면이 없어요. 순전히 자리(自利) 자기 이익만에 치우친 그런 공부라.
그러니까 여러분들, 전부 보살님들 아닙니까?
보살님들은 한편으로 자기 이익도 추구하고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에게도 불법을 전해야 그게 진짜 보살이라.
그걸 어려운 말로 하면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그런 말을 하죠.
그래 한 번은 돈을 벌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그래야지. 계속 쓰기만 해도 안 되고, 부처님인가? 쓰기만 하게.
부처님은 쓰기만 해. 그래도 부처님도 계속 정진해요.
누구보다도 정진 열심히 하고 복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지어. 부처님이.
그래 행은 보살행이라고 부처님도.
석가모니 부처님도 행은 보살행이야.
그러니까 늘 자기 지혜를 위해서 정진하고 복 짓고, 또 남을 위해서 끊임없이 가르치고. 이게 보살 단계예요.
그래 부처가 돼도 행은 최고의 지혜의 경지는 부처라 하고 그것이 세상에 그게 구현되고 실현되는 입장으로는 보살이라 하고 그래요.
그래서 보살은 이타행을 그렇게 많이 합니다. 우리도 보살행을 많이 해야 돼요. 불교는 궁극적으로 이치가 어떠냐 하는 것, 그걸 아느냐 중요한 게 아니고 그걸 알고 보살행을 하는 거 이게 중요한 겁니다. 그게 목적이예요.
보살행(菩薩行) 하는 게 목적이지 아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아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보살행이 어려운 거예요. 보살행이.
그러니까 힘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만치 보살행을 해도 참 진리, 이치를 참 이치를 가지고 보살행을 하는 것이 제일 가치 있습니다.
그래 성문이나 벽지불 같은 이들은 부처님의 경지를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3.所以者何오 佛曾親近 百千萬億 無數諸佛하사 盡行諸佛無
소이자하 불증친근 백천만억 무수제불 진행제불무
量道法하야 勇猛精進하야 名稱이 普聞하며 成就甚深 未曾有
량도법 용맹정진 명칭 보문 성취심심 미증유
法하야 隨宜所說이 意趣難解니라
법 수의소설 의취난해
무슨 까닭인가 하면, 부처님은 일찍이 백 천 만 억의 무수한 부처님을 친근(親近)하여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도법(道法)을 모두 수행하고 용맹 정진하였으므로 그 명성이 널리 퍼졌으며, 깊고 깊은 미증유(未曾有)한 법을 성취하여 알맞게 말씀하신 것이므로 그 뜻을 알기 어려우니라.
所以者何오
소이자하(所以者何)오 소이자하오 이래 놨어요.
소이자(所以者) 까닭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한자를 해석하면 까닭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까닭이 무엇이냐? 이 말이예요.
佛曾親近
불증친근(佛曾親近) 부처님은 일찍이 친근했다. 친히 가까이 했다. 누구를?
百千萬億 無數諸佛하사
백이나 되고 천이나 되고 만억이나 되는 무수한 모든 깨달은 사람들을 친근했다. 친히 가까이 했다 그래요.
그러니까 사람 사람을 부처님으로 친히 하고 가까이 하고 받들고 섬겼다 이런 말입니다. 그리고
盡行諸佛無量道法하야
진행제불무량도법(盡行諸佛無量道法) 모두 다 행했다. 진행(盡行) 다 행했다 무엇을? 모든 부처님, 모든 깨달은 사람들의 한량없는 도법을 한량없는 참다운 삶에 대한 길에 대한 이치 도법(道法) 참다운 삶의 길에 대한 이치.
이치를 바로 알고 살아가는 게 그게 도법이니까.
그런 것들을 다 행했어요. 그런 이치만을 다 행했어 그리고 또
勇猛精進하야
용맹정진(勇猛精進)해. 우리가 용맹정진 용맹정진 익히 들어서 잘 알죠? 용맹정진 했어. 그래서
名稱이 普聞하며
명칭보문(名稱普聞)이야. 워낙 공부를 많이 하고 열심히 하고 또 바른 이치만을 했기 때문에 명칭(名稱)이 널리 소문이 나있어. 그 사람 이름이, 아 그 사람 누구누구라고.
부처님은 석가모니는 어떤 분이다 다 알잖아요. 석가모니가 어떤 분이다 하는 것 다 알고 관세음보살은 어떤 분이다 하는 것 다 아는 것 그게 명칭 보문(名稱普聞)입니다. 그래서
成就甚深 未曾有法하야
성취(成就)했다 무엇을? 심심미증유법(甚深 未曾有法) 매우 깊은 미증유의 법을 성취하신, 하셨다 이 말이야.
미증유법(未曾有法) 그러니까 일찍이 이러한 것이 있지 않던 처음 있는
처음 있는 그런 도리를 성취했다. 그래서
隨宜所說이 意趣難解니라
수의소설(隨宜所說)을 의취난해(意趣難解)니라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분인데 그걸 가지고 한꺼번에 다 주는 게 아니고, 근기 따라서 주는 거야. 수준 따라서 주는 거라.
그러니까 어린아이에게는 어린아이 수준에 맞게 유치원생은 유치원생에게 맞게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에게 맞게
사람들이 전부 근기가 다 다르거든요?
나이 따라서 다르고 성별 따라서 다르고 성격 따라서 다르고 사는 지방 따라서 다르고 각 나라의 관습이 있으니까 그 관습에 따라서 다르고 온갖 그런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 거기에 부처님은 다 맞추어서 할 줄 알아. 그런데 우리는 그거 참 맞추기가 어렵거든요?
상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하기사 뭐 내 실력도 바쁜데 상대방에게 맞춰서 그렇게 하기가 쉽나요?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부처님은 다 아셨어. 수의(隨宜)라고 하는 말이 편의를 따라서 설한 바 그런
말이야. 편의를 따라서. 그러니까 A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A의 수준, 그 사람이 또
지금 무엇이 지금 제일 번뇌고 제일 고민이다 싶으면은 거기에 아주 적절한 것을 탁
선택해서 이야기 해 줄 줄 아는, 설법해 줄 줄 아는 그런 능력을 가졌다 이말이야.
그래서 의취난해(意趣難解)니라 그 속을 이해하기 어렵다.
의취(意趣)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속입니다. 속마음이예요.
저 사람이 저것 뿐인가? 우리는 잘 모르지요.
예를 들어서 어디 가서 누구하고 만나 가지고 어디 가서 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는데 천 원짜리 라면을 사먹자고 하게 됐다 이 말이야.
그러면 저 사람이 라면 사먹을 정도 수준 밖에 안 되는가? 알 수 없는 거야. 사람이 돈 있다고 다 쓰나요? 다 써도 되지도 않고.
부처님도 법이 무량무변 하지만은 그 먹혀들 사람에게 알맞게 법을 쓰는 것이지. 먹혀들 것도 헤아리지 아니하고 막 그냥 퍼 부울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거 중요한 거예요. 그게 참 중요한 거라.
아이들에게 우리가 교육을 시킬 때도 수의소설(隨宜所說)
이거 참 우리가 배워야 돼요.
대개 그냥 아아들한테 퍼붓는게 자기들 화풀이, 부모 화풀이 삼아 퍼붓는 거지 아아들 생각하고 퍼붓는게 아니라고요.
그래 갖고 더 마이나스야. 아아들 교육에 더 마이나스만 가져오는 거예요. 그래 참 어리석어.
그거 참고 내가 이 말을 해가지고 아아한테 덕이 될까 손해가 될까 이걸 좀 계산해 가지고 해야 되는데 전혀 그거 없이 그냥 막 화풀이 삼아 퍼부어 노니까 잘 되라고
그래 놓고는 “전부 니 잘되라고 한다.” 말인즉슨 그렇지.
말인즉슨 그렇지만은 그렇게 어리석게 해 가지고는 그게 덕이 될 수가 없어.
내가 이제 가끔 우리 모친 비난을 좀 하는데 실컷 놀다가 마음 좀 발심해 가지고 공부 좀 해야 되겠다고 손 씻고 딱 공부하러 들어가면은 (웃음) “어디 돌아다니다가 이제 와서 공부 안 하고 그러냐”그러면은 그나마 하기 싫은 거야.
모친은 공부할려고 들어오는데 뭐라고 뭐라고 꾸중을 해싸니니까 아이구 마 기분이 팍 상해가지고 공부가 예를 들어서 공부할 게 100이 될 거 같으면 50도 채 안 되는 거야. 30이 겨우 되는 거야. 참고 앉아서 하면은
그 소리를 안 했으면은, 아 보고는 “아 공부하려고 들어오는 구나. 더 놀다 오지 왜 벌써 오느냐”고 농담 비슷하게 그렇게 하면은 얼마나 근사해요? 좋잖아.
“아직 해도 안 넘어갔는데 좀 더 놀지.” (웃음)
아 이렇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부모는 속이 상해서 그렇게 못해. 그럴 여유가 없어.
공부 좀 빨리 와서 공부라도 좀 열심히 하면 좀 이뻐 보이나? 그런데 없으니까 속이 부글부글 끓지. 모친은 들어오니까 막 그냥 속 풀이 삼아서 막 쥐어박는 거야.
그러면 결국은 그 아아한테는 손해 가는 거야. 서로 손해가 가는 거지 그게. 그런 예들이 우리가 얼마나 많이 범합니까?
그런 사례를.
그렇습니다. 지혜롭게 우리가 살기가 쉬운 게 아니야.
수의소설(隨宜所說)을 의취난해(意趣難解)니라
그래 이제 아 더 놀다 오지 왜 벌써 오느냐? 라고 하면은 그 속을 어떻게 알겠어? 아이들이 모르는 거야.
아 정말 더 놀다 오라는 뜻인가? 아무도 모르는 거야.
무슨 속으로 저렇게 하는지.
아이에게 이롭게 하도록 아이에게 어떻게 하더라도 마음 편안하게 해주고 공부 잘하도록 하기 위해서 좀 마음의 여유가 있는 부모들은 그렇게 해 주는 거야.
그게 의취난해야. 그 속을 이해하기 어려운 거야.
부처님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거예요. 부처님이 이 사생자부(四生慈父) 삼계도사(三界導師) 사생의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어 가지고서 중생들을 대하는 그런 그 넉넉하고 속 깊은 그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 뜻을 담고 있어요.
4.舍利弗아 吾從成佛已來로 種種因緣과 種種譬喩로 廣演言
사리불 오종성불이래 종종인연 종종비유 광연언
敎 無數方便하야 引導衆生하야 令離諸著하노니 所以者何오
교 무수방편 인도중생 영리제착 소이자하
如來는 方便知見波羅密을 皆已具足이니라
여래 방편지견바라밀 개이구족
사리불이여, 내가 성불한 뒤로 갖가지 인연과 갖가지 비유로써 여러 가지 교법(敎法)을 널리 말하며 수없는 방편으로 중생들을 인도하여 온갖 집착을 떠나게 하였으니, 왜냐하면 여래는 방편 바라밀과 지견(知見) 바라밀을 모두 구족(具足)하였기 때문이니라.
舍利弗아 吾從成佛已來로
사리불(舍利弗) 오종성불이래(吾從成佛已來)로 내가 성불 할 때로부터 이미 옴으로. 성불로부터 이미 옴으로
그러니까 성불하고나서 지금까지 이런 말이죠.
種種因緣과
종종인연(種種因緣) 가지가지 인연과
뭐 부처님만 종종 인연이 있나요?
여기 앉은 우리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고 많은 인연들이 있습니까? 종종 가지가지 인연으로 이건 이제 그런 뜻이 아니고 중생을 교화하는데 있어서
인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거예요.
인연이 그렇게 어떤 연기의 관계, 세상이 눈앞에 이렇게 펼쳐지기까지의 그런 사연들.
그걸 인연이라고 그렇게 하는 거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또한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런 모든 수많은 인연에 의해서 한 송이 국화꽃이 피듯이 사실은 부처님이 부처님이 되기까지의 그런 인연은 이루 말할 수가 없고. 부처님만 그런 게 아니야.
우리가 누구든지 이 순간 이 자리에 와서 이런 시간을 갖기 까지 부처님과 전부 연결되어 있어.
석가모니 부처님 하고 우리는 너무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는 거예요. 그런 많은 인연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거지.
그런 것들을 부처님은 환하게 꿰뚫어 보니까 눈에 보이는 것 다 이야기 해주죠. 그래 종종인연과
種種譬喩로
종종비유(種種譬喩) 또 비유, 법화경에 비유가 많이 나와요.
가지가지 비유로 하는 겁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비유를 들어야 또 조금 눈치 채거든요.
지혜로운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퍼뜩 알아듣는 거지.
비유를 해야. 그래 비유가 중요한 거예요. 그래 이제 어려운, 불교는 이치가 좀 어려우면은 예를 잘 들어야 돼 예를.
그래 불교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 불교는 인연의 도리를 많이 이야기 해.
그 인연이라는 게 뭐냐?
인연이라는 게 뭐냐?
예를 들어서 곡식이 하나 땅에 이렇게 심어졌다면은 그게 그냥 심어지느냐? 땅이 있어야 되고, 또 갖다 심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씨앗이 있어야 되고.
그러면 그걸로 끝나냐? 심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땅이 있어야 되고 씨앗이 있어야 되고 세 가지 조건으로 끝나냐? 천만의 말씀.
땅이 그게 제대로 싹을 틔울라면 흙이 좋아야 되고, 또 거기에 습기가 알맞아야 돼. 물이 너무 많으면은 썩어버려. 너무 건조하면 싹이 안 터.
얼마나 필요한 그런 조건을 갖춰 줘야만,
또 공기와 소통이 돼야 돼. 공기 소통 안 되면 또 썩어 버리죠. 안 되는 거예요. 수많은 인연이 결합이 돼서 하나의 곡식이 씨앗을 싹을 틔우는 거와 같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도 가게를 하나 열어가지고 장사를 하는 일도 그와 똑같은 것이다. 그와 똑같은 것이다.
불교는 이런 이치를 가르치는 것이다.
얼마나 좋아요? 쉽잖아요? 그 정도는.
그래서 이제 부처님도 그런 예를 잘 드는 거야. 또 없는 것도 비유를 만들어서 비유를 하기도 하고. 가지가지 비유로써
廣演言敎
광연언교(廣演言敎)하야 널리 언교를 펴서, 연설해서
언교(言敎) 말과 말의 가름침을 펴가지고서
無數方便하야 引導衆生하야
무수방편(無數方便)으로 무수한 방편으로써
인도중생(引導衆生)이다. 중생들을 인도한다.
방편을 많이 쓰는 거예요 부처님도.
그 사람, 사람의 어떤 사람 사람의 근기에 맞춰서 깨우쳐 주려면은 방편을 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똑같은 석가모니나 우리나 똑같은 사람인데 인간은 단련하기에 따라서 얼마나 깊고 높은 인간이 될 수도 있고, 너무너무 깊고 높은 그런 그 넓고,
태평양 바다보다도 넓은 그런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아주 옹졸하고 편협하고 좁디좁은 그런 아주 못나디 못난 그런 인간이 될 수도 있고 그래요. 그거 다 인연의 도리야. 그렇게 되는 건.
한 마음은 똑 같애 부처님 마음이나 우리 마음이나.
마음은 똑 같은데 그걸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달라지는 거야.
그래서 불교의 인연도리는 자꾸 갈고 닦고 성인의 가르침을 접하고 한 번 생각해 보고, 사경도 하고 이렇게 함으로 해서 내 마음 속에 그게 양식이 되어 가지고 나도 부처님 같은 그런 넓은 마음, 높은 마음, 깊은 마음 이런 것이 내 살림살이로 되어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곡식을 하나 심어놓고, 물도 주고 가물다 싶으면 물도 주고, 너무 습하다 싶으면 옆에 도량을 쳐 줘 가지고 습기도 빼주고 그 다음에 너무 햇빛이 쨍쨍 비춘다 싶으면은 그늘도 만들어 주고 비료도 주고 거름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이렇게 하면 잘 자라지 않습니까?
아주 성장을 잘 하죠.
그런데 뭐 똑같이 씨앗을 가지고 밭에 심어놨다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면은 영 형편 없잖아요.
쭉대기만 거두잖아요.
우리 인간도 평생을 70, 80 살면서 쭉대기 인간이 된다고 잘못하면. 그게 이제 밭토에서 제대로 관리를 못해서 그런 거야. 제대로 인간으로 태어난 것까지는 참 천만다행인데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해가지고 쭉대기 인간이 돼 버려.
60,70, 80되어서 쭉대기 인간 되면 그거 어떻게 되겠어요?
가을에 추수하려고 거둬보니까 속 알맹이가 하나도 없어.
속알맹이 하나도 없으면 이게 어떻게 돼? 자식들에게 뭘 교훈적인 말을 한 마디 어떻게 제대로 할 수가 있으며.
이게 짐이 보통 무거운 짐이 아니예요. 세상 산다는 짐이.
그런 어떤 비유를 부처님은 적절하게 잘 든다는 거지.
그래 무수방편으로 중생들을 인도한다. 인도해서
令離諸著하노니
영리제착(令離諸著)하나니 그래가지고 그렇게 가르쳐 가지고 인도해서 뭘 하려고 하는게 목적이냐?
일단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이고득락(離苦得樂)이니까 불교가, 첫째 목적은 이고득락이거든요. 고통을 떠나서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자고 하는 게 이게 일차적인 불교 목적이야.
그렇게 할라면은 고통을 떠날려고 할라면은
고통이 무엇에서부터 온다. 결국은 집착에서부터 온다.
그래 집착을 떠나면 고통이 없다 이거지.
불교가 좀 핍박을 받는데 내가 불교를 사랑하는 마음 애불심(愛佛心) 불교를 사랑하는 마음, 그게 있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은 그게 또 다른 표현으로 하면 집착하는 마음이거든.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이 있는 거야. 괴롭다고
기분이 영 안 좋아. 그게 집착이야 결국은.
결국은 집착이라고.
그런 집착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괴로워 안 해. 우리 스님들도 애불심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뭐 문제로 생각을 안 해.
참 속터지더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 (웃음)
하하하 저게 인간인가 싶기도 하고.
우리 불자들은 애불심이 있어야 돼. 불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돼. 그게 이제 그냥 생기는 게 아니예요.
사랑의 감정이란 게 어디 뭐 사랑해라 해라 하면은 더 떠나지. 저절로 생겨.
하다보면 저절로 생겨.
아, 불교가 정말 진리의 가르침이구나
참되고 바른 이치를 가르치는 종교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거기에 마음을 쏟다 보면은 절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라.
어떤 스님이 그 전에 사석에서 내가 존경하는 스님인데 내보다 한 열 살쯤 많아. 자기는 세속에 있을 때 사진보고 뭐 사랑을 했다나 어쨌다나? 사진만 보고.
사진만 보고 사랑을 했고 사람도 한 번도 만나지도 못하고 그랬노라고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자주 보면은 그런 마음이
사진을 봐도 자주 보면은 그런 마음이 생기는가 봐. 자주 보면은. 그게 이제 결국은 집착심이죠.
그래서 집착으로부터 고통이 온다. 고통을 해결하려면 집착으로부터 떠나게 한다. 영리제착(令離諸著).
집착도 여러 가지죠. 뭐 한 가지 집착입니까? 온갖 집착.
열 명 사람을 안다, 하면 열 명에게 다 그 나름대로 집착이 있고, 세상에 내가 가진 물건이 백 가지다, 집에 가서 한 번 세 봐요. 백 가지 넘을 거예요.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물건이 백 가지가 넘어. 숟가락이니 젓가락이니 온갖 거 다 계산하면은 무슨 티비니 무슨 뭐 온갖 머리핀이니 일체 다 계산하면 백 가지가 넘을 거예요. 그거 다 내 소유야. 그러면 집착이야 그것도 또 결국은.
그래 결국은 거기에 애착이 생기게 되고 그게 집착이라.
그거 하나 뭐 시시한 거라도 하나 없어지면은 무심하지 안 해. 아 어디갔는고 하고 내 찾는 거지.
그리고 혼자 욕 비슷하게 궁시렁 궁시렁 해 쌌고. (웃음)
그게 전부 집착에서부터 오는 거지요.
그래 중생은 집착으로 살고 집착으로 또 사는 것 까지는 좋은데 괴로움도 또 집착 때문에 오는 거야.
집착 때문에 오는 거지. 거기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고통이 안 될 정도로 집착을 하지 않을 정도만 되면 이거 참
좋은 거야. 그럼 많이 가져도 좋아. 뭐든지 많이
돈도 많이 가져도 좋고 명예도 많이 가져도 좋고.
그것이 나를 떠나갔을 때 집착이 안 될 정도로 고통이 안 될 정도로만 가지면은 그건 상당히 좋은 거예요.
세상을 살면서 이 몸 가지고 세상을 살면서 뭘 갖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까. 당장에 옷이 있어야지, 먹을 게 있어야지. 집이 있어야지, 갖지 않고 어떻게 삽니까? 가져야 돼요.
당연히 가져야 되지만은 그것이 고통이 안 될 만치만 우리가 자유로워진다면은 참 좋은 겁니다.
所以者何오
소이자하(所以者何)오, 까닭이 무엇이냐 소이자하 두 번 나왔네요. 한 페이지에. 까닭이 무엇인고.
如來는 方便知見波羅密을 皆已具足이니라
여래(如來)는 방편지견바라밀(方便知見波羅密)을 개이구족(皆已具足)하였느니라 그랬어요.
방편바라밀,(方便波羅密) 지견바라밀(知見波羅密) 두 가지입니다. 방편 바라밀과 지견바라밀을 다 이미 구족하였느니라.
방편으로 저 언덕에 이르러 가고, 저 언덕에 이르러 간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 이 뜻입니다.
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지견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지견은 지혜예요. 지혜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바라밀이라는 말은 문제 해결 이 뜻이예요.
저 언덕에 이르러 간다 이렇게 직역하면 그런 뜻이지만은 문제를 해결해 간다 그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문제해결 할 때요, 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지혜로 문제를 해결해 두 가지 입니다.
참 중요한 말이예요.
나에게 세속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겼다.
뭐 일상사 속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러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다? 방편으로 해결하고 지혜로 해결해요.
방편과 지혜로써.
방편을 써서 해결하는 방법이 있고, 그러니까 어린아이가 운다 그것도 문제 아닙니까? 어린아이가 막 우는 거예요. 그게 문제야. 그러면은 밖에 호랑이가 왔다. 이거 좋은 방편 바라밀이라. 방편으로 문제 해결한다.
거기 또 지혜로써 문제 해결하는 방법도 있어. 가만히 우는 소리를 들어보니까 좀 울게 놔둬야 되겠다. 그러면 응 좀 더 울어라 놔 두는 거야. 그대로.
그 호랑이가 온다 해도 안 될 수가 있어요.
호랑이가 온다는 소리 가지고 안 되는, 유치원생만 해도 그게 이제 안 통해. 유치원생만 해도 안 통한다고.
그때는 다른 어떤 지혜를 써야 돼.
그러니까 방편 바라밀과 지견바라밀이 중요한 거예요. 세상사는 열쇠라. 그런 것들을 부처님은 다 이미 구족하였느니라.
그랬습니다.
5. 舍利弗아 如來知見은 廣大深遠하사 無量無礙와 力無所畏
사리불 여래지견 광대심원 무량무애 력무소외
와 禪定解脫三昧에 深入無際하사 成就一切 未曾有法하시나
선정해탈삼매 심입무제 성취일체 미증유법
니라
사리불이여, 여래의 지견은 넓고 크고 심원하여 한량없는 마음과 걸림 없는 변재와 힘과 두려움 없음과 선정과 해탈과 삼매에 끝없는 데까지 깊이 들어가 일체 미증유한 법을 성취하였느니라.
舍利弗아 如來知見은 廣大深遠하사
사리불(舍利弗)아 여래(如來)의 지견(知見)은 광대심원(廣大深遠)이니 우리 지혜는 아무리 짜내봐야 별 볼일 없는데, 여래의 지견은
여래의 지혜는 광대심원(廣大深遠)이라. 넓고 크고 깊다 말야.
깊고 멀다 멀다는 멀 원(遠)자는 아득하다. 그 끝 모를 데다 이 말입니다. 넓고 크고 깊어서 끝 모를 만하다
끝을 모른다. 그렇게 해석하면 좋죠. 그리고
無量無礙와 力無所畏와
무량(無量)과 무애(無礙)와 이게 이제 무량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갖고 있는 어떤 마음인데 사무량심(四無量心) 그래요.
네가지 무량심 해서 이제 자비희사(慈悲喜捨) 부처님한테 사랑하는 마음 비의 마음 그다음에 희사의 마음 이런 것을 무량이라 그러고, 또
사무애(四無碍)라고 사무애변((四無碍辯)이라고 해서 법에 대해서 이치에 대해서 걸림이 없고 어떤 도리에 대해서, 도리에 대해서 걸림이 없고 또 그 다음에 말하는 데 대해서 걸림이 없고 그다음에 말을 하기를 좋아해.
그래 요설무애(樂說無碍)라 해서 말을 잘해도 크게 하고 싶어 안 하면 그건 사람들에게 베풀 수가 없죠.
그런데 하고 싶어 해야 돼.
그래 옛날에 어떤 큰스님은 참 말씀하시기 좋아하거든요. 또 많이 알고, 또 그것이 우리에게 교훈이 돼야 돼.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게 교훈이 되도록 하는 것 소득이 있는 그런 마음. 그런 것이 사무애입니다.
그리고 힘. 열가지 힘, 이렇게 하는데
그거 일일이 다 알 필요는 없어요.
부처님이 인간이 이르러 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인격자. 그래 최고의 인격자를 석가모니 부처님 여래 이렇게 표현을 하는데 그 쯤 되면은 여러 가지 별별 힘이 다 있다는 거죠.
그리고 무소외(無所畏) 두려워 할 바가 없다. 두려워 하는 바가 없어, 그 무엇에도 두려움이 없어.
그래 사무소외(四無所畏)라고 하는데 첫째 명예가 떨어져도 두려워함이 없고 또 먹을 거 없고 입을 것이 없어도 두려워하는 바가 없고 또 그 다음에 설사 이 몸이 끝난다 하더라도 죽음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궁극에 가서 두려움이 없다.
이쯤 이제 돼 있는 거죠.
우리는 조금 문제만 생겨도 두렵고 석유값만 좀 올라도 두렵고 뭐 두려운 것 천지백가지야.
禪定解脫三昧에
그 다음에 선정(禪定)도 있고, 부처님의 선정은 말할 것도 없죠. 해탈(解脫) 해탈은 모든 문제로부터 해탈,
첫째 우리는 큰해탈, 생사해탈은 우리가 너무 욕심내지 말고.
그런 데 욕심내면 좋지. 그런 데 욕심 내는 사람은 정말 훌륭한 불자인데
그것보다는 차이를 비교하는 것으로부터 해탈.
이게 참 필요할 거 같아요.
옆 사람하고 친구하고 옆집하고 나는 내 분대로 내 어떤 그릇대로 내 인생 대로 산다.
그러면 되는 거예요. 거기 내 인생에 소신이 있으면 돼.
다른 사람하고 비교를 해가지고 무슨 경제적으로나 사회 지위나 이런 걸 가지고 비교해 가지고 괴로워한다면 그건 참 고통스러운 것 중에서도 아주 고통스러운 겁니다. 그런 것.
그거 아주 자기 발전을 위해서 뭐 노력하는 그런 약으로 삼는 건 좋지만은 그런 걸 비교해 가지고 자꾸 비교하다 보면 자기의 어떤 마음이 젖어 들고 그늘이 생겨요.
그러면은 그게 좋지 않은 성격으로 변해 갈 수가 있어.
이게 도저히 따라갈 수는 없고, 금생에 따라갈 수는 없고 그런데 영 뭐 옆에서 보니까 기분은 나쁘고 그게 오래가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가 결국은 비교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좋지 아니한 성격으로 돼요.
그래가지고 뭐 세상에서 왜 무차별 차에다 펑크를 낸다든지 불을 지른다든지 하는 그런 행동이 그런 데서 오는 거예요.
이 세상 보니까 도저히 자기로서는 따라갈 수가 없고
자기 분을 스스로 분에 만족하고 아 나는 이것으로써도 감사하다 라고 생각하고.
또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인연이 있고 그 사람대로의 무슨 복이 있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 라고 이렇게 소화하고 받아들여야 되는데 그런 지혜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어디 가서 공부도 안 하고 성인의 말씀도 안 듣고 해노면 이제 자꾸 그런 불만만 쌓이거든요.
전부가 인연의 이치라고 하는 것만 알아도 불만이 안 쌓일텐데. “아, 이 모든 게 인연의 도리인데” 이렇게만 알아도 불만이 안 쌓이는데
불만이 자꾸 누적되면 그렇게 그 불만을 무차별적으로 그렇게 자기하고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에게 그냥 가서 그래 피해를 주고 세상에 그냥 뉴스를 터뜨리는 그런 어떤 일을 저지르는 거예요. 참 큰 문제예요. 그런 게.
그래서 성인의 가르침이 세상에 많이 전해져야 되고 그중에서도 특히 인연의 도리
모든 것이 인연소치다 라고 하는 것
또 인연을 잘 지으면은 얼마든지 잘 살 수 있고 성인도 될 수 있는 그런 지혜와 지식이 생긴다
라고 하는 그런 이치만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도 돼요.
그것만 해도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든 게 인연이다.
인연이라고 하는 이치만 제대로 우리가 알고 살면은 그렇게 불만 없을 거 아닙니까? 불만 없으면 불필요하게 남에게 해코지를 안 한다고요.
불만이 가득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코지 하는 거예요.
그래 인연을 깨우쳐 줘야 돼요.
세상에서는 인연 깨우쳐주는 게 제일이야.
인연의 도리 깨우쳐 주는 게 그게 제일이라고요.
공부 못하는 사람도, 다른 어떤 소질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딱 자꾸 공부 쪽으로 만약에 관심이 있다면 그것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인연을 지어야 돼.
인연을 지어야만 된다고 하는 것을 그걸 이제 이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일깨워 줘야죠.
이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차별로부터 해탈하려면은 차별하고 차이를 비교하는 것으로부터 차이를 비교하는 것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나려고 한다면은 인연의 도리를 우리가 잘 숙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일깨워 주는 것 이게 참 중요하다 그런 말이고.
그 다음에 삼매(三昧) 부처님이 선정에, 우리는 잠깐 선정에 든다든지 기도를 한다든지 참선을 한다든지 하면 왠 망상이 없다가 그렇게 많이 일어나는지.
망상하고 그냥 싸우다가 한 시간쯤 부글부글 끓고 그래 싸우다가 그냥 방선죽비치고 일어나고 하거든요.
부처님은 딱 앉으면 일념이야. 탁 일념이 되어가지고 들어가거든요. 그게 부처님의 삼매야. 그런 삼매에
深入無際하사
심입무제(深入無際)라 끝없이 깊이깊이 들어가서, 끝없이 깊이깊이 들어가서
成就一切 未曾有法하시나니라
성취(成就) 일체미증유법(一切 未曾有法)을 성취했다. 일체 처음 있는 법, 일찍이 있지 않았던 그런 법을 다 성취했느니라.
6. 舍利弗아 如來-能種種分別하사 巧說諸法하시니 言辭柔軟
사리불 여래 능종종분별 교설제법 언사유연
하야 悅可衆心이니라.
열가중심
사리불이여, 여래는 가지가지로 분별하여 모든 법을 능숙하게 설하므로 말씨가 부드러워 대중의 마음을 기쁘게 하느니라.
舍利弗아 如來-能種種分別하사
사리불(舍利弗)아 여래(如來)는 능히 가지가지로 분별(分別)하사 가지가지로 분별해서. 여러 가지 사람 근기 사람 성격 그 사람이 뭘 좋아하고 무슨 욕심이 있고, 또 어떤 편협한 마음이 있고, 이런 것들을 환하게 분별해서
巧說諸法하시니
교설제법(巧說諸法)하시니 여러 가지 도리, 제법은 도리입니다. 여러 가지 도리를, 교설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능숙하게 설명하시니, 능숙하게 예요. 교설(巧說)
여러 가지 도리를 그 사람에게 맞춰서 잘 종종으로 분별 해가지고서 여러 가지 도리를 능숙하게 설명한다.
부처님같이 참 설법 잘 하는 이가 없죠.
정말 외도가 오면 외도에 맞게 화난 사람이 오면 화난 사람에게 맞게 뭐 세상 불만 있는 사람에게는 불만 있는 사람에게 맞게. 또 아이를 자식을 잃고 그냥 정신이 이상해 가지고 부처님에게 오면은 그런 사람도 정신을 바로 잡아주고 그런 어떤 슬픔에서부터 깨어나게 하는 그런 이치까지.
무수히 많죠 여러분들. 그리고 또
言辭柔軟하야
말도 유연해. 언사(言辭)가 유연(柔軟)해 부드럽고 아주 편안하게
음식이 좋아야 되지만 음식을 담는 그릇도 좋아야 되듯이.
나는 스님들 강의하고 법문한 테이프 듣기를 좋아하는데 아주 유식하고 깊이 아는데 그 사람 테이프를 내가 사가지고는 한 개를 못 들었어 한 개를.
한 셑트가 한 스무개씩 이렇게 됐는데 아무리 들을래야 테이프 한 개를 다 못듣겠더라구. 말하는데 그 사람의 어떤 사람 됨됨이가 그냥 묻어나는 거야. 그러니까 내 인내력이 물론 부족해서이지만은 그걸 참고 들을 수가 없더라고요.
기계로 통해서 나오면 더 못들어. 사람 얼굴 보고 들으면은 그런대로 체면 때문에 듣지만은 기계야 내가 꺼버리면 되니까. 그 한 시간을 못 참고 끄게 돼더라고요.
언사가 유연하다고 하는 것 이것 참 중요하고 그다음에
悅可衆心이니라.
열가중심(悅可衆心)이라 대중들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음성만 좋아도. 내용 아무것도 없어도 음성만 좋으면은 사람들이 아주 듣기 좋아하고 기쁘게 하고.
나도 좀 그랬으면 좋겠어요.
부처님은 그런 분이라. 아무 내용없이 그냥 말소리도 그냥 좋아. 무슨 소린지 뜻도 몰라도 말소리만 들어도 좋은 그런 분이었어요. 뭐 그 뜻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주 귀에 쏙쏙 들어오고 그 사람 근기에 딱 맞게 아주.
말도 부드럽게 아주 그렇게.
격하게 한다든지 자기 감정 실어서 한다든지 그렇게 안하고 그래 아주 참 정말 근사하게 부처님은 설법하셨다.
7. 舍利弗아 取要言之컨댄 無量無邊 未曾有法을 佛悉成就니
사리불 취요언지 무량무변 미증유법 불실성취
라
사리불이여, 요점만 들어 말하자면 한량없고 그지없는 미증유한 법을 부처님이 모두 성취하였느니라.
舍利弗아 取要言之컨댄
사리불(舍利弗)아 취요언지(取要言之)컨댄 요점을 취해가지고 말해 본다면은
無量無邊 未曾有法을 佛悉成就니
무량무변(無量無邊) 미증유법(未曾有法)을 불실성취(佛悉成就) 니라 그랬어요. 한량없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치에 대한 것, 우리가 처음 들어본 그런 이치, 그런 것이 한량 없고 가이 없어.
그런 많고 많은 처음 듣는 법, 미증유법을 부처님은 다 다 성취했다.
스스로 깨달은 사람에 대한 그런 자랑이라고 할까요? 또는 설명이라고 할까, 그것을 이렇게 까지 스스로 표현을 합니다.
얼마나 표현을 근사하게 했습니까?
우리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나는 이 세상에 천상천하에 제일 높은 사람이다
이것도 사실은 부처님이 스스로 자신을 표현한 대목이지만은 여기에 법화경에서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표현은 그것보다 뭐 몇 배 더 많죠.
훨씬 더 많은 데도 정말 그 자신의 설명을 통해서 우리는 이치를 알게 되고, 불교의 이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이제 뭐 대강 설명이죠.
제목만 설명한 것에 불과하지만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항목만 들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구석구석이 세밀하게 설명한 것은 아니고.
그래서 이런 것을 내가 가지고 있는데 또 너희들도 깨달으면 다 이런 어떤 내용을 다 성취할 수 있는데 글쎄, 내가 이걸 가지고 참 앞에 놓고 너희들을 내가 얼굴을 쳐다보니 이야기 할 맛이 안 난다. 그만두자.
밑에 그런 말이 나와요. 지(止)하라. 그만두자.
아이 참 내가 깨달은 이치, 내가 깨달은 경계는 어마어마한데 너희들이 알아들을 이 근기들을 생각하니 참 숨이 막힌다.
에이 그만두자. 우리도 그만두죠 뭐 (웃음) 하하하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 10월 달에 다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10월 달에 그만 두는 게 아니예요. 합니다.
10월 달은 뭐? 둘째 주부터 한다고?
10월 첫째주는 10월 3일이라서, 공휴일이라서 안 하고 둘째 금요일 쌍십절 10월 10일 날이 금요일입디다. ((*))
첫댓글 혜명화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_()()()_
고맙 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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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공부 잘하고 갑니다._()()()_
如來는 方便知見波羅密을 皆已具足이니라 ...여래는 방편 바라밀과 지견바라밀을 다 이미 구족하였느니라...慧明華 님! 수고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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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_()()()_
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행... 참 이치를 잊지 않고 늘 자기 지혜를 위해서 정진하고 복 짓고, 또 남을 위해서 끊임없이 가르치고... _()()()_
菩薩--自利利他--上求菩提 下化衆生/ 참다운 삶의 길에 대한 이치 道法 --인간은 단련하기에 따라서 깊고 높은 인간이 될 수도 있는 인연의 도리!
고통은 결국 집착에서부터(令離諸著)--그것이 나를 떠나갔을 때 고통이 안 될 만치만 우리가 자유로워진다면은--方便波羅密 知見波羅密--세상사는 열쇠!
四無量心 四無所畏 --차이를 비교하는 것으로부터 해탈--인연의 도리를 잘 숙지!
저 뒷산처럼 아주 든든하게 우리 뒤를 받쳐주고 계셨다는 것을(道業恒新 常懷慶幸之心!) <拈花室 法華會上 一文一字是眞佛(69,384文字) 妙法蓮華經 無上甚深微妙法 安心法門>오늘도 공부 잘하고 갑니다. 항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나무묘법연화경 나무일승묘법연화경 나무실상묘법연화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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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종류성인,사성-聲聞 壁支佛 菩薩 佛 .壁支佛-예를들어오백성독수성. (壁支佛,緣覺)같은말. 육범,범부地獄 餓鬼 畜生人道 天道. 道法-참다운 삶의 길에대한 이치. 如來부처님께서는方便,知見바羅밀을 皆已具足 모두 구족 하였기 때문입니다 方便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지혜로 문제를 해결 .(세상의열쇠)
舍利佛아 取要言之요점만 취해 말하자면 無量無邊한량없고 가이없어 未曾有法일찍이 처음있는도리를 佛悉成就부처님이 다 모두 성취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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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以者何왜냐하면, 까닭이 무엇이냐. 근기_능력 관습 수준 편의 따라서 隨宜所說알맞은 도리로 말씀하신 것이므로 意趣難解그뜻을 알기 어려 우니라( 부처님의속 마음을....)
慧明華 님! 정말 감사히 잘 봤습니다...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감사합니다.관세음보살...........松關
혜명화님,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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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如來)는 방편지견바라밀(方便知見波羅密)을 개이구족(皆已具足)이니라,)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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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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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_()_
큰해탈, 생사해탈은 우리가 너무 욕심내지 말고. 그런 데 욕심내면 좋지. 그런 데 욕심 내는 사람은 정말 훌륭한 불자인데
그것보다는 차이를 비교하는 것으로부터 해탈. 이게 참 필요할 거 같아요. 옆 사람하고 친구하고 옆집하고 나는 내 분대로 내 어떤 그릇대로 내 인생 대로 산다. 그러면 되는 거예요. 거기 내 인생에 소신이 있으면 돼. ... _()_
고통을 떠나서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자고 하는 게 이게 일차적인 불교 목적.......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읍니다
부처님이 성취한 무량 무변의 미증유의 법을 우리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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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 _()()()_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번째 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_()()()_
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