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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송한 부분입니다. 바로잡아주심이 필요합니다.
아까 46page 중간에 묻는 게 나오죠?「問이라 若依此義인댄 豈不違於平等意趣아 平等意趣에 云 定即我者는 依於平等意趣而說이언정 非即我身이라하니 如何皆說為本師耶아」거까지가 묻는 걸로 보는 게 좋겠네요. 그리곤「答中에 平等之言은」답중에는 인자 답하는 걸로「乃是一義니라」거기서부터, 答中에 거기부터서는 답하는 걸로.
그 다음에 47page로 넘어갑니다. 둘째줄
任性卷舒하고 隨緣出沒하야
성품에 따라서 卷舒하고, 卷은 거두는 거고 舒는 펴는 거고, 거두기도 하고 펴기도 하고 인연따라 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해서, 出沒은 나가고 들어가는 거죠. 물 속에서 예를 들면 헤엄칠때, 위로 나오는 것은 出이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沒입니다.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출이고 죽어서 사망하는 것은 몰도 되고,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출이고 또 얼굴을 감추는 것은 몰이죠. 그러니까 권서나 출몰이나 다 이렇게 저렇게, 즉 말하면 들어갔다 나왔다 出入과 같은거죠. 주먹도 이렇게 오므렸다가 피었다가 오므렸다가 피었다가, 오므리면 주먹이고 피면은 손바닥이고 그와같이 마음에따라서 因緣에 따라서 권서하기도 하고 출몰하기도 해서
挺一真之元始하고
一眞의 元始를 드러내고, 일진성은 바로 일진법계, 마음자리죠? 본래의 마음자리, 원시는 가장 으뜸, 제일 시초 그러니까 근본이 원시입니다. 근본을 드러내고
總萬有之綱骨이라
萬有의 기강과 그물에 즉 말하면은 벼리와 같은, 또 사람몸에 골격과 같은, 뼈와 같은, 골수와 같은, 綱과 기강과 골수를 총괄함이라. 우주만유의 기강과 골수를 마음이 전부 다 총괄해있다 그말이죠.
原始該終이나
처음부터 종말까지, 原始는 처음에부터 시작해서, 原은 처음 시작하는 것을 원이라고 합니다. 終은 종말까지를 전부 다 통틀어서 그말요. 原始該終은 시종을 통틀어서 하는 그 말을, 한자로는 원시 에.. 해종이라고 합니다. 원시불교하는 그 처음 그런 그런말로도 쓰지만은, 여기는 처음에부터 시작해서 시종을 다 꿰뚫어 관통하는 것을 원시해종이라고 그래요. 갖출 該자. 종말까지 갖춘다 그말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가
唯一心道니
모두 一心의 道뿐이라 그말요.
大教至理에 皆同所詮이라
大敎, [화엄경] 같은 것을 대교라고 하지요. 가장 위대한 대교의, 대교와 지극한 이치에서 모두 다 함께 말하는 바라. 일심도를 대교에서도 말하고 至理에서도 말하고, 대교나 지리나 같은거죠. 부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화엄경]에「長大敎網하야」대교의 그물, 부처님의 일승요법, 대교의 그물을 펼쳐가지고 어부들처럼 대교망을 펼쳐서「漉人天魚라」인간, 천상. 인간, 천상을 물고기에다 비유한거죠. 인천의 고기를 전부 다 건져낸다. 고기 잡아낸다.
부처님이 49년 설법하신 게「장대교망」이요. 그래서 인간, 천상 할것없이 모든 중생을 총망라하신 거죠. 건질 漉자요「녹인천어」라. 그래가지고 인천어를 어디다 두느냐? 저 열반의 언덕에다가 다 갖다 두어요. 열반을 얻도록, 성불하도록
如華嚴經에 云
[화엄경]에서 말씀하시기를
佛子야 諸菩薩이 初住地時에
佛子여 모든 菩薩이 처음 地에 머무를 때 초지보살, 이지보살 모두 처음 초지에 오를적부터서
應善觀察호대
응당 잘 觀察을 하고
隨其所有一切法門하며
그 있는 바 온갖 法門을 所有라고 합니다. 온갖 一切法門을 따르며, 그러니까 보살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문을 하나도 잊어먹지않고 하나도 버리지않고 모두를 다 따라서 수행한다 그말이죠.
隨其所有甚深智慧하며
그 있는 바 매우 깊은 智慧를 따르며
隨所修因하며
닦을 바 因을 따르며, 그야말로 참 병아리가 어미 닭 따라다니면서 큰 닭이 되는 것처럼 보살들은, 부처님은 어미 닭이라면 보살들은 새끼 병아리 닭과 같죠. 졸졸 따라다녀요. 따라다니다보면은 커지지.
隨所得果하며
그 얻는 바 果를 따르며, 여기는 따른 다는 말이 여러 가지로 나오죠?
隨其境界하며
그 境界를 따르며, 부처님의 경계를 따르며
隨其力用하며
부처님의 힘과 작용을 따르며
隨其示現하며
부처님이 그 示現함을 따르며, 부처님이 온갖 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시현을, 나타내 보여주신 것을 따라서 한다 그말이요. 따르며
隨其分別하며
그 分別을 따르며, 부처님이 분별하시는 것을 따른다. 중생이 분별하는 것은 알음알이고 망상, 번뇌지만 부처님이 분별하는 것은 제9白淨識에서 모든 번뇌와 망상, 잡념을 초월한 차원에서 분별하는 것은 그건 지혜로써 우리에게 알려주는데 분별이죠. 그래서 경전에 보면은 그런 말이 나오죠? 어「제청 諦聽하라」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라. 내가 너를 위하여 부처님께서 보살이나 중생들한테「吾今爲汝하여」내가 너를 위하여「分別解說하리라」그런 말씀이 많이 나오죠? 경전에, 묻는 보살에게 답을 하실 때 처음「내가 너를 위하여 분별해설하리라」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부처님도 분별하고 중생도 분별하지만, 중생의 분별은 그릇된 망상, 잡념 때문에 잘못된 허물이 많고 부처님은 그걸 다 초월해서 대각을 이루셨기 때문에, 여기서 분별하는 것은 바로 백정식에서, 제9백정식에서 설법하는 그러헌, 백정식은 범부한테는 없는 거 아뇨? 제9 아홉 번째, 제8식보다 더 높은 제9백정식에서 중생을 위해서 때가 없는, 無垢識이죠? 무구식이 阿摩羅識 여래장이죠 바로, 백정식에서 분별을 하신다.
그러니까 여기 분별은 중생들이 분별하는 것하고는 달라요. 고상한 분별이죠. 어른들이 칼 쓰는 것은 몸을 보호하기도 하고 사람을 제거할 수도 있고 즉 말하면 활인검, 살인검. 사람 살리는 칼도 있고 사람 죽이는 칼도 있지만은, 어린애들이 함부로 칼쓰다가는 다치고 사고나죠? 그러니까 부처님과 중생의 그런 분별이 달라요. 어른들이 칼 쓰는 것과 같은게 부처님의 분별하시는 거지.
隨其所得하야
그 얻는 바를 따라서, 자기가 부처님 법에 들어가서 공부를 해서 터득한 바, 부처님이 터득한 바를 보살들이 다 따라서 그말이요.
悉善觀察하야 知一切法이 皆是自心이요 而無所著이라
다 모두 觀察을 해서 一切法이 오직 마음 뿐이고 집착할 바가 없는 것을 안다. 마음 뿐이니까 하나 집착할 게 없죠. 마음의 도리를 사무쳐 안다 그말이요. 보살들이
如是知已에
그와같이 보살들이 알고 난 다음에, 이미 已자는 그렇게 끝내고 난 다음에 그 뜻이요.
入菩薩地하야 能善安住라하시니라
菩薩의 地.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또는 부동지, 법운지까지 그러한 보살의 경지에 들어가서 能히 잘 안주한다라고 [화엄경]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 [화엄경] 말씀이죠.
十二因緣之大樹가 產自玄根이요
十二因緣의 큰 나무가 玄根으로부터서 출생한다 그말이요. 産이란 말은 출생하는 거, 출산하는 거, 현근으로부터 큰 나무가 나온다. 그 대구는 저 밑에 49pgae 중간에 나오죠.「五千敎典之圓詮이 終歸理窟이로다」이굴과 현근이 대구고 십이인연하고 오천교전하고 대구죠. 상대구, 병려체로 말씀하신거요. 아까는 일진하고 만유하고 대구고, 一眞의 元始하고 萬有의 綱骨하고, 任性卷舒하고 또 隨緣出沒이 대구죠? 언제든지 대구식으로 만든거요.
此十二因緣法이 皆從眾生心中建立이라
이 十二因緣法이, 무명에서부터 행, 식으로 내지는 생, 노사까지. 열 두가지 인연법이 다 衆生의 마음 가운데로부터 建立함이라.
云何稱樹오
어째서 나무라고 稱했느냐? 몸은 보리수와 같고 마음은 명경대와 같다는 신수대사도 나무라고 했죠?「圓覺山中生一樹」그것도 나무라고 했죠? 원각산에서 한 나무가 났어. 그 산은 원각산이요. 산 이름이,「원각산중에 생일수」그 전에 변호사 정일수 변호사님이 계셨는데, 정일수 변호사님은 세상을 일찍 떠나가지고 지금은 저 종적이 묘현하죠. 일수라고 이렇게 「원각산중에 생일수하니」한 나무가 있는데「開花天地未分前이라」꽃이 언제 피냐면 봄에 피는게 아니라 하늘과 땅이「개화천지미분전이라」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 천지개벽하기 전부터 피었더라 말이요. 앞 前자가 의자요. 음 맞춰서 진거죠. 여기까지 다 봐가지고「개화천미분전이라」
그런데 그 꽃은「非靑非白」푸른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녀.「비청비백」또 검은 것도 아니다 말이요. 색깔이 없는 꽃이요.「非靑非白亦非黑이다」또한 검은 것도 아녀.「不在春風不在天이라」봄에 피는 것도, 계절에 따라서 피는 것도 아니요.「부재춘풍부재천이라」하늘에도 있지 않다. 하늘이라고 하는 한자가 風자죠? 봄 바람에, 봄에 피는 꽃도 아니고 요건 하늘은 시간을 따지기도 합니다. 하늘 天, 따 地 그 하늘도 하늘이라고 하지만은 여기서는 시간이요.
중국사람들은 그 오늘을 今天이라고 하지요 그러죠? 오늘을 이 天자를 쓰지요. 날 日자처럼, 시간따지는 거죠? 그래 시간에도 있지않다. 어떤 시간이나 계절에도 없다 그말이요. 그것도 상관없이 원각산에 한 나무에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은 천지개벽하기 전에 피었고 푸르지도 누르지도 검지도 희지도 않는 五色하고 상관없는 꽃이고 계절하고 봄, 가을도 상관없이 그렇게 꽃이 핀거라.
연꽃은 가을에 피고 다른 꽃은 봄에 피죠? 국화꽃도 가을에 피고, 겨울에 피는 꽃도 있죠. 동백꽃. 월계화도 겨울에도 피잖아요? 그런 것 상관없이 저는 원각의 큰 나무처럼 십이인연의 큰 나무가 현근에서부터 나왔다. 현근이, 마음자리를 현근이라 그래요. [주역]에서는 소강절선생은 陽의 뿌리를 현근이라고도 말하기도 했지만은, 양의 뿌리나 마음의 근본이 현근이라. 여기서는
십이인연법이 모두 중생의 마음을부터 건립되었음이라. 어째서 나무라고 칭했느냐? 어째서 십이인연의 나무라고 했느냐? 그말이요. 큰 나무.
若眾生界中엔 即以無明으로 為根하야 愛水가 溉注하고
衆生界가운데는 곧 無明으로써 뿌리가 되어서 愛水로 사랑의 물로 물을 부어주고, 물 부어주면 나무가 잘 자라죠.
抽名色芽하고 開有漏華하고 結生死果어던
名色의 싹이 트고 有漏의 꽃을 피고 生死의 열매를 맺거든
生住異滅은 四相이 常遷하야 無有斷絕이어니와
마음이 생기고 잠깐 유지하고 변해서 달라지고 그 생각이 사라지는, 生住異滅하는, 생주이멸을 四相이라 그래요. 四相이 항상 옮겨서 천변하여 斷絶함이 없거니와, 중생계는 생주이멸 늘 쉴새없이 하지요. 그칠새없이 그렇지만은 성인들 세상에는 그런게 없죠 잉.
若諸聖界中엔 發正覺芽하야 開萬行華하고
만일에 이 성인의 세계가운데서는, 반대요. 正覺의 싹을 피워서 육도만행의 꽃이 열고, 꽃이 피고 아까 저 有漏꽃이나 생사의 열매가 맺힌 게 아니라, 반대로 여기는
成菩提果하야 盡未來際히 供佛利生하야
菩提의 열매가 맺혀서 未來際가 다하도록 부처님께 공양하고, 그 꽃 가지고 공양을 해요. 上求菩提가 供佛이여 下化衆生은 利生이고, 아래로는 중생 生자는 중생이라는 생자요. 중생을 이익되게 하여
無有休息하나니
쉴새없이 계속 허공계가 다하고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이 다 없어질때 까지 쉬지않고 계속 하나니, 나는 그래서 [화엄경 법성게] 察若에「上求菩提 上求下化無暫息 普賢行願佛華嚴이라」고렇게 써 논거 (..?) [법성게]를 나는 굉장히 간단히 축소한 글 가운데, 마지막 글 가운데 요말이 나와요.「상구하화무잠식」위로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해서 잠시도 쉴새가 없어. 그것이 뭐냐 바로 [화엄경]에서 말하는「보현행원불화엄이라」보현행원의 불화엄이라. [화엄경]을 불화엄경이라 그러죠? [대방광불화엄경] 요말 인자「상구하화무잠식하니 보현행원불화엄이라」쩌기에는 보현행원이 빠졌죠? 안나왔죠 잉.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무명무상절일체 증지소지비여경 진성심심극미묘 불수자성수연성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뭐 고렇게만 되있지, 요게 빠졌어. 나는 그걸 간단히 [법성게]를 집약해가지고 몇구로 이렇게 했어.「一乘圓敎華嚴經」간단하니까 적어보지 뭐.
「一乘圓敎華嚴經 毘盧遮那常說法」이 [화엄경]이 비로자나니까 비로자나께서 항상 설법하신다.「亦復如是常說法」그 말 나오죠? [화엄경 약찬게]에. [화엄경]에 항상 설법한다고 [법화경]에도 그 말 나오죠. 부처님이 항상 설법하시고, 일승원교화엄경을 비로자나부처님이 항상 설법한다.「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그런 것은 전부 다 간단히, 나는 시간, 공간으로 무애한 걸로 時處無礙 시간과 공간이 걸림이 없는「時處無礙가 圓融門이라」아까 원융행포문 고대로 갖다 썼어요. 시간과 공간이요. 시간과 공간이「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구세십세호상즉 잉불잡란격별성」까지 내나 시처무애의 도리아뇨? 시처무애가 어.. 원융문이고
「잉불잡난격별성」이 그 경아뇨? 境智가 歷然이요. 경지란 말은 대상, 대상과 지혜. 경은 원융 거시 행포라면 뭐여 지는 원융이지.「境智歷然은 行布門이라」원융, 행포. 원융과 행포가 無理致니, 원융과 행포가 두이치가 없어. 똑같은 거라 말이요. 따지고 보면은 똑 같에요. 그게 평등하다. 무이치니「入此門者超生死라」이 문에 들어간다. 원융문, 행포문 이 문에 들어간 사람은 超生死라. 나고 죽는 생사를 초월한다.
그 다음에 인자 마지막 귀절이「상구하화무잠식 보현행원불화엄이라」간단하게 몇 구절 아니죠? 네 구절, 사구로 이렇게 되았죠? 요렇게 한구, 이렇게 한구 아니 일승원융 시처무애 (결국에는) 원융행포무이치 (해갖고) 하나, 둘, 셋, 네 개 四韻으로 간단히 조져버렸어.
법성게는 삼십 뭐여 거시기같이 저저 [반야심경]처럼, [반야심경]은 260자고 [법성게]는 얼마든가? 더 많든가? 적든가? 좌우간 상당히 글자가 많아요. 저건 글자를 더 축소한거요. 찰약한거
원각의 나무가 대단한거요. 원각의 나무를 여기는 그거 십이인연의 나무라고 했죠? 그런데 [열반경]에 보면은 보통 십이인연이 현생을, 금생을 처음부터 금생의 일생을 십이인연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전생이나 금생이나 내생까지 이렇게 이생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삼생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三世兩重因果 二世兩重因果 고렇게도 설명하는데 [열반경]에서는 십이인연을 여러 가지로 말했어요. 십이인연이 바로 불성이라고 했어요. [열반경]에
그리고 찰나속에도 십이인연이 있다. 一念三千같이, 일념삼천은 천태종에서 말한 거. 십법계마다 각각 십법계가 있으니까 십법계 곱하기 십법계는 백법계죠? 백법계에서 [법화경] 십여시를 또 곱하면, 백법계가 낱낱이 십여시가 있으면 천, 천이죠? 응? 천에다가 과거, 현재, 미래 삼세를 또 곱치면은 과거에도 그게 천이 있고 현재에나 미래에도 다 천이 있으면은 삼천이죠? 그와같이 십이인연이 일 찰나에도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열반경]은 굉장히 아조 정밀하게, 세밀하게 다각적으로 부처님의 세계, 중생의 세계, 연각의 세계, 보살의 세계가 모두 다 십이인연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無明實性이 則佛性이라」고 하는 그 말도 영가 [증도가]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라 [열반경]에 다 있는 말이요. 영가대사께서 [열반경] 보시고 [증도가] 제일 첫 머리에「무명실성이 곧 불성이라」고, 무명은 바로 십이인연의 제일 첫 번 아뇨? 내나 십이인연이 바로 불성이라고 [열반경]에 나와요. 여기도 나오네
並從一心十二因緣의 大樹生起일새
아울러 一心十二因緣의 큰 나무로부터서 生起했기 때문에
故云十二因緣이 即是佛性이라
그러므로 十二因緣이 곧 佛性이라고 말함이라.
又一心十二因緣者는 如眼見色時에 心不了를 名無明이요
또 一心가운데 열 두가지 因緣은 눈으로 빛깔을 볼 때 마음에 사무치지 못하는 것을, 료달하지 못하는 것을 無明이라 하고, 인자 십이인연 낱낱이 설명합니다. 열 두가지가 다 나오죠?
心於色에 生愛惡을 名行이요
마음에서 저런 물체, 물질에 대해서 愛惡를 내는 거,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싫어한다면은惡그래요. 그걸 行이라 하고 이름하고, 無明 다음에 두 번째 行
是中에 心意를 名識이요
그 가운데 마음과 뜻을 識이라고 이름하고, 세 번째. 無明, 行, 識
色共識行이 即名色이요
그 다음에 色과 識이 함께 行하는 것을 名色이라고 이름하고,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때 정신, 중음신은 명이 되고 어머니 피와 아버지 정수로 육체가 처음 될 그 처음 그 계란 같이 계란 그 뭐 액체처럼 그것은 색이라고 하지요.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을, 그런데 여기서는 色과 識이 같이 행하는 것을 명색이라고 이름하고
眼與色等으로 六處生貪을 名六入이요
눈이 빛깔따위, 물질따위로 더불어 六處에서 탐심을 내는 것을 六入이라 하고, 육입은 육근이거든요. 전번에 지옥설명할 때 음욕이 많은 것만 설명했죠? 음욕을 하나의 예를 들어서 한 거요. 탐진치 삼독중에 貪이 음욕에 해당되거든 탐의, 탐욕 그러니까 탐도 그렇고 진도 그렇고 치도 그렇고 여러 가지 번뇌가 다 되는데 보통은 음노치라고도 하지요. 淫怒癡가 내나 貪瞋癡나 같은 말로 써요. 음노치. 그래서 전번에 지옥설명할 때 음을, 음 한가지만 주로 말해가지고 이렇게 설명을 했잖아요. 음노치.
전라도에 전우치란 사람은 담양 추돌간(?)에 태어났죠. 전라도 사람들은 소설이 많아요. 거시 홍길동도 전라도 장성사람이고, 전우치는 전라남도 담양사람이고, 성춘향이는 전라북도 남원사람이고, 또 전봉준이는 전라북도 고부사람이고, 강증산은 전라북도 뭐여 김제 주로 살았죠 김제사람이고, 또 차천자 차경석이는 전라북도 또 정읍사람이고 거그 사람들이 괴물들이 많이 나왔어요. 강증산따라서 저 차천자따라 전봉준이 따라 뭐 유명한 분들이 소설에 막 오르고 내리고 하는 사람들 많이 나왔죠? 뭔 얘기하다 또 빗나가버렸네, 잊어버렸네. 뭔 얘기했죠? 아! 음노치.
음노치가 전우치처럼 발음이 비슷해서, 음노치가 바로 탐진치라. 탐진치가 인자 번뇌중에 가장 두드러진 존재라서 그래서 그걸 하나 대표적으로 말한 것이지 다른것은 餘皆倣此로, 다른 것도 다 그와같은 식으로 설명을 할 건데 생략했죠.
六處는 여섯 곳은「색성향미촉법」같은 거, 그런 것을 탐을 내는 것을 육입, 육근이라고 이름하고
色與眼作對를 名觸이요
色이 눈과 더불어 상대가 되는 것을 촉각, 촉감, 觸이라 이름하고, 십이인연 낱낱이 설명합니다. 지금, 名 명밑에는 다 십이인연의 명사요. 명색, 무슨 명촉 아까 명무명, 무슨 명자 밑에 명식이요 뭐 명자 밑에 여러 가지 명사가 나오죠.
心見色時에 領納을 名受요
마음으로 빛깔을 볼때 받아들이는 것을, 領納은 받아들이는 것이죠, 受라고 이름하고
心於色에 纏綿不斷을 名愛요
마음이 色에 대해서 얽히고 얽혀서 끊어지지 않는 것을 애착, 愛가 인자 십이인연에 나오죠. 愛取有할 때, 얽히고 설켜서 그게 어.. 못 벗어나고 못 끊는 것이 애다 말이요. 남색이나 여색이나 다 色아뇨?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心想像色相을 名取요
또 마음의 想像을, 色相을 상상하는 것을 取하는 것이라고 하고
念色心起를 名有요
또 色을 생각해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有라고 하고, 애취유. 자기가 취하고 자기 소유로 만드는 그 십이인연중에 열 번짼가 되는 거.
一念心生을 名生이요
한 생각에서 마음이 生하는 것을 生이라 이름하고
一念心滅을 名滅이라
한 생각에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滅이라고 말한다. 멸이라고만 했지, 老死가 빠졌죠? 내나 노사를 멸이라고 해요. 써 놓고 보면 쉽죠. 행, 식 필요도 없는데 혹시 처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행, 식, 명색, 육입, 촉, 촉자를 요렇게 요렇게도 써요. 촉감이라는 촉, 수, 애, 취, 유 그렇게 해서 한 세상 살아가는 거요. 그 다음에 마지막은 끝자 늙어죽어. 늙어죽으면 여그는 멸자로 표현했죠. 멸, 멸망, 죽는 거.
시간이 별로 없어서 뭐 대충 이렇게 하고 넘어가도 되겠죠? 십이인연 다 설명할라면 많아요.
첫댓글 _()()()_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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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悉善觀察하야 知一切法이 皆是自心이요 而無所著이라.. 다 모두 관찰을 해서 一切法이 오직 마음뿐이고 집착할 바가 없는 것을 아느니라.> <十二因緣이 即是佛性이라..>..화풍정 님! 수고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 ()()()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_()()()_
圓覺山中生一樹 開花天地未分前 非靑非白亦非黑 不在春風不在天 ... 일체법이 오직 마음 뿐이라.. 화픙정님,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故云十二因緣이 即是佛性이라/그러므로 十二因緣이 곧 佛性이라고 말함이라. ...화풍정 님, 고맙습니다_()()()_
長大敎網,,, 대교의 큰 그물망을 가지고 인천의 고기를 전부다 건져낸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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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실성이 곧 불성.
무명이 십이인연의 첫번째.
일심 가운데 눈으로 빛깔(물질)을 볼때 마음이 사무치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 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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