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하씨, 그렇게 쉬운 문제를 못 풀면 어떡해요.”
“못 푼게 아니라 딴 생각하느라고 안 풀었어요. 어젯밤 마당에서 감딴 생각, 그거 먹고 체해서 손딴 생각, 하고 있었어요.”
“정준하씨, 이제 딴 생각 하지 말고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주세요. 스피드퀴즈 나갑니다.”
“크리스마스 때 굴뚝을 타고 와서 선물을 주는 남자는?”
“통아저씨.”
“백의의 천사라고 불리는 간호사 이름은?”
“앙드레 김.”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에서 나쁜 형님은?”
“둘 중 하나.”
“에~이, 무슨 소리예요, 놀부죠, 그것도 모르면 어떡해요.”
“아니, 모르긴 뭘 모른다는 거야! 놀부도 맞지만, 둘 중 하나도 맞잖아! 흥부·놀부 달랑 둘 나왔는데, 둘 중 하나지, 그럼 셋 중 하나, 넷 중 하나냐고…. 내가 항상 틀린다고 이번에도 못 맞힐 줄 알았지? 그런 편견을 버려! 그건 나를 두번 죽이는 거야!”
개그맨 정준하(33)가 ‘영구’와 ‘맹구’의 뒤를 잇는 바보 연기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출연하고 있는 MBC TV ‘코미디 하우스’의 ‘노브레인 서바이버’ 코너는 ‘코미디 하우스’의 전체 시청률을 한 단계 끌어올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준하’라는 이름과 ‘편견을 버려!’ ‘두번 죽이는 거야’ 등 그가 만들어낸 유행어는 인터넷 검색어에서 수위를 오르내리는 등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코미디 프로에서 ‘바보’는 언제나 웃음의 첫번째 소재로 채택되지만 제대로 성공한 적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 대중을 웃기기 위해 연기자들은 기꺼이 바보가 되거나 백치가 되지만 그들은 ‘저질’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생존’이 당면 과제였던 1960~70년대, 암울했던 80년대에는 그래도 ‘바보’ 캐릭터가 먹히던 시절이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은 TV에 비친 어수룩하고 서투른 행동으로 늘 당하기만 하는 ‘바보’들의 모습에서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고도성장의 과실을 먹고 영상세례를 받으며 자란 10대들이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9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더이상 엎어지고 넘어지는 식의 ‘바보 연기’는 외면당했다. 더군다나 우스꽝스러운 외모와 바보스러움은 철저히 외면했다. 이들은 우스꽝스러운 외모보다는 ‘얼짱’ 스타일을 원했고, 바보지만 바보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이런 시청자 기호에 딱 들어맞는 ‘바보’가 바로 정준하다. ‘노브레인 서바이버’에서 그는 단 한문제도 못 맞히는 ‘노브레인’이지만 자신이 결코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문제를 못 푼게 아니라 안 풀었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답이 왜 틀렸느냐며 오히려 진행자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또 바보지만 무식한 티를 내지 않는다. ‘노브레인 서바이버’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진지함 그 자체이다. 때문에 그가 쏟아내는 엉뚱한 대답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허물면서 곧바로 웃음으로 이어진다.
‘코미디 하우스’의 안우정 CP는 “바보 연기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을 끄집어 내면서도 정교하게 포장해야 하는, 정말 똑똑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준하의 바보 연기가 각광받는 데에는 바보지만 전혀 바보스럽지 않고, 유치하고 황당한 엽기유머들을 세련되게 포장해 내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 정준하는 ‘천연덕스런 바보 연기’로 떴지만 사실 그는 방송가에 발을 들여 놓은지 9년째, 코미디 프로에 얼굴을 내민지 7년이나 되는 묵은 연기자이다. 방송가에서 그는 이름 대신 ‘코미디계의 개업떡’ ‘독한 맛에 6주’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그가 가진 잠재적 ‘끼’는 제작진과 동료들 사이에 익히 알려져 있었다. ‘…개업떡’이라는 별명은 새 코미디 프로가 생길 때마다 그가 빠지지 않고 캐스팅 되는 데에서 비롯됐다. ‘독한 맛에 6주’는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초기 6주 정도는 우스꽝스럽거나 엽기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때 그 ‘독’한 역을 해 줄 사람이 정준하밖에 없다는 데에서 비롯됐다.
“코미디언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그는 개그맨 이휘재와 쿨, 탁재훈 등 당대 스타들의 매니저로 방송가에 얼굴을 내밀었을 뿐 코미디 훈련을 받아온 사람은 아니다. 단지 그는 “사람들이 좋고 그들을 즐겁게 해주다 보니 어느날 코미디언이 되어 있었다”면서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인기 코미디언의 대접을 받으니 황당할 따름”이라며 겸손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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