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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The Glory of Persia)
· 전시기간 - 2008년 4월 22일~2008년 8월 31일
· 관람시간 - 09시~18시(화, 목, 금) · 21시(수, 토) · 19시(일, 공휴일)
· 관람료 - 일반 : 10,000원, 일반 단체 9,000원 / 청소년(만13~18) : 9,000원, 청소년 단체 8,000원 / 어린이(유치원, 초등학생) : 8,000원, 어린이 단체 7,000원 / 국가유공자, 장애우(동반자1인 포함), 65세이상 노인 등 : 3,000원
· 위치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5(용산동 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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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 http://www.persia2008.com
· 소장유물 - 총 230여점 내외(복제품 포함) / 이란국립박물관 등 이란 내 5개 박물관 소장품 204점 : 신석기시대(BC 5,000~)에서 사산왕조 페르시아(AD 651)까지 / 국립중앙박물관, 경주박물관 소장 관련문화재 18점 : 계림로 출토 황금보검, 적석목곽분 출토 유리기 등 / 페르세폴리스 부조모형 등 복제품 10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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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최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SBS, 동아일보, 매일신문사, TBC 등
· 주관 - 컬쳐인아이리더스
·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주한이란대사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교육청, 경상북도교육청 등
· 협찬 - 유진투자증권, GS 칼텍스, 교보생명, 삼성생명, 삼성화재
· 批評
이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첫 번째 문명전이다.
관람기간을 보면 알겠지만 2008년도에 약 4개월간 전시가 진행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난다. 아! 그 전에 왜 갑자기 2년 전에 봤던 관람후기를 이제 쓰는지 약간의 辨을 좀 할까 한다. 얼마 전 잉카 문명전을 보고 와서 관람후기를 쓰려고 했더니만 2년 전에 봤던 이 전시와 작년에 봤던 이집트 문명전이 갑자기 퍼뜩 떠올라서 그냥 이전꺼부터 죽 써버리자~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 관람 직후 쓴 후기가 아니므로 생동감은 많이 떨어지겠지만 최대한 그 당시 생각을 하면서 써볼테니 이 글과 이 글 이후에 이어질 이집트 문명전에 대한 후기는 어느 정도 이해해달라는 말을 먼저 하는 바이다.
이 날은 원래 문명전을 보러 가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아버지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주선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박물관 전시 소개하는 역할 정도?) 중박을 찾았다가 시간도 남고 해서 들렸던 것이다. 이때가 5월 24일(토)이었으니 전시가 시작하고 약 1달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뭐 한번 보러 가야지, 보러 가야지~했다가 보게 됐으니 잘 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후에는 바빠서 전시를 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시실 바깥쪽에는 페르시아의 유명한 황금 사자잔과 부조가 그려진 포스터들이 있었는데, 웅장하고 화려하다는 느낌을 대번에 받았다. 분명 우리의 고대 문화와는 많이 다르고, 또한 시기적으로 크게 앞서는 문명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시실 밖에 전시된 페르시아를 느끼게 해 주는 포스터들>
전시 입구에 보면 프롤르그에 해당하는 전시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담긴 패널을 볼 수 있다. 설명을 보면 ‘B.C 6세기~A.D 7세기까지 이란 고원으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에 세력을 떨쳤던 이란과 그 문화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페르시아를 지칭’하고 전시 역시 그 시공간적 범위 안에서 기획했음을 분명히 하였다. 사실 필자는 처음에 전시를 보기 전에 화려한 황금문화하면 페르시아 제국 성립 이후 아닌가? 그런데 왜 이런 제목을 떡하니 달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하지만 전시를 살펴보니 그 이전부터 화려한 황금제품들이 다수 확인되고 있어 의문이 해소되기도 하였다(필자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가 하면 신라의 경우,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화려한 금관으로 인해 신라사의 대부분이 그런 문화를 향유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의문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해주는 패널>
암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전시실로 들어섰다. 사실 필자의 페르시아에 대한 지식은 알렉산더 혹은 그 이전 그리스 시대와 대립했던 페르시아(아케메네스조)에 국한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이마저도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었으며, 사산조에 대한 지식은 그보다도 못 했다) 사실 적지 않은 기대가 되기는 했었다. 필자에게도 적지 않은 페르시아 문명을 설명한 도록과 각종 책들이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전시실은 크게 1실과 2실로 나뉘어 있었는데, 1실에서는 귀금속, 장신구, 화폐와 같은 황금제품들 위주로 전시를 하고(대부분 페르세폴리스 궁전에서 출토된 것들이었다), 2실에서는 선사시대~사산조 페르시아까지 시대별로 각종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물론 대부분의 유물들은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것이었다).
1실을 딱 들어가면 먼저 페르시아의 각종 동물형태(사자, 가젤, 숫소, 숫양 등이 작싱된)의 황금잔과 팔찌 등 각종 공예품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리고 몇몇의 토기들과 토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동물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는 점이 이채로웠다. 토기(및 토제품)은 채색된 것도 있었고, 특이한 모양의 것도 있었고, 그림이 그려진 것도 있었는데 신라의 토기 혹은 토제품과 비슷하면서도 더 정교한 맛이 있었다. 특히 물고기 모양의 토기(B.C 3,000~1,000)가 있었는데 이는 동물모양의 토기가 많은 이란 지역에서도 흔치 않은 것이라고 한다. 이는 단순히 물고기 모양의 토기일 뿐만 아니라 겉에 문양이 그려져 있어 마치 실제 모델을 보고 그대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선사시대부터 동물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많다는 점은 이 지역의 사람들이 수렵활동과 목축활동을 주로 했다는 것을 추정 가능케 한다. 그런 그들이 이처럼 뛰어난 수공예품 제작기술을 보유했다는 것은 또한 이들이 뛰어난 수공업자 겸 상인이었다는 추정 역시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거대 제국 페르시아가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1실에서 2실로 넘어가는 중간 공간과 그 곳을 지나면 페르세폴리스 모양으로 꾸며놓은 포토존이 있었고, 그에 대한 설명과 영상, 모형으로 만든 부조 등을 볼 수 있다. 모두 페르시아의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2실은 본격적으로 편년에 의거한 전시가 진행되었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거쳐 엘람(B.C 4,000~539?)과 메디아(B.C 900~550) 시기를 거치면 드디어 아케메네스조(B.C 559~330)가 시작된다. 엘람은 케르만 남쪽 테페 야히야 유적에서 원시 엘람 문자가 새겨진 명판이 발견될 정도로 고왕국 시절부터 문자를 사용하여 전문적인 행정관료, 상비군, 정교한 제의활동 등을 갖추었던 문명이었다. 그리고 엘람 신왕국이 유지되던 시기에 등장한 메디아는 B.C 900년경 쐐기문자로 기록된 것에서 확인이 되었으며, 이후 케르만샤 일부와 아제르바이잔, 코르데스탄 지방(이란 북서부)을 차지하고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메디아는 이후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에 의해 멸망당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필자가 읽었던 역사소설이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와닿았다. 본 까페 ‘[뿌리아름]독서비평 게시판’의 30번 글을 보면 ‘페르시아의 태양 키루스 2세(Le Soleil de la Perse)’를 읽고 쓴 서평이 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란 지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크게 관심도 없었고, 지식도 일천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화권과 이집트 문화권, 이스라엘과 관련된 히타이트, 바빌로니아 정도가 필자가 아는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메디아라는 강력한 왕국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었고 이윽고 페르시아(아케메네스조)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암튼 글로만 읽고, 머리로만 생각하던 그런 부분들을 이번 전시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아케메네스조 하면 이집트를 정복한 캄비세스 2세, 중앙아시아를 제패하였지만 마라톤 전투에서는 패배한 다리우스 1세, 그의 뒤를 이어 300의 전사들을 까부신 크세르크세스 1세(여담이지만 페르시아 대왕들에 대해서는 본 까페 [뿌리아름]독서비평에 게시된 159번 글 ‘살라미스 해전 :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을 쓰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등이 떠올랐고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당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한 아케메네스조의 화려한 문화는 그 이상이었다. 먼저 필자의 눈에 확 들어온 것은 페르시아에서 사용되었던 여러 인장들이었다. 아케메네스조 이전부터 죽 사용되었던 인장의 문양 변화는 필자에게 또 다른 세상을 알려주고 있었다. 동 · 서양 어디에서나 쓰였을 인장 실물과 그것으로 찍어난 점토판이 나란히 전시된 것을 보면서 '와아~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기록과 행정, 관료체제, 중앙과 지방, 중앙집권적 지방통치체제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유물이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나라에도 이런 것이 있을텐데 낙랑 지역에서 발견되는 봉니만 확인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페르세폴리스에서 출토된(출톤지, 약탈인지 여부를 일단 떠나서) 각종 부조와 조각상들은 페르시아인들의 기상과 힘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었다. 솔직히 필자는 페르시아 하면 경장을 갖춘 날랜 기마병이 초원을 뛰어다니면서 사냥하고 전투하는 유목민족적인 장면이 많이 연상되며, 강력한 힘을 지닌 숫소와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사자 등이 떠올려진다. 그리고 그러한 인상은 이번 전시에서도 어김없이 확인되었다. 특히 용맹함을 나타내는 맹견(마스티프)상이나 사자상들은 그 정교함과 강인함, 섬세한 표현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실제 전시의 모토는 황금문화를 강조하는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필자는 인장이나 금석문, 각종 부조나 조각상이 더 눈에 들어왔다.
이처럼 화려한 문화는 이후 알렉산더 대왕이 그의 제국을 만들면서 더욱 국제화되었고, 그 문화는 우리가 흔히 헬레니즘 문화라고 불리며 동 · 서 각지로 뻗어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제국은 와해되고 이란 지역은 셀레우코스 왕조(B.C 312~281)가 들어서지만 아르사케서 왕이 들고 일어서 현재 호라산 일대에 파르티아, 또는 아르사케스조(B.C 247~A.D 224)를 세우니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페르시아, 혹은 중국 전한-후한과 관련된 페르시아는 모두 이 아르사케스조를 일컫는 것이다. 아마 학교에서는 파르티아와 박트리아 등이 당시 이 지역을 차지했다고 배울 것이다. 이 파르티아인들이 바로 아케메네스조의 정통 후예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었고, 셀레우코스 왕조를 정복하고 지중해를 제패한 로마와 끊임없이 대립했던 강력한 세력을 이루던 사람들이었다. 파르티아를 주무대(혹은 주인공)로 하는 영화나 영상매체는 거의 없지만 로마를 주무대(혹은 주인공)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파르티아는 항상 강력한 적국, 두려워해야 할 적국, 싸워 이겨서 승리를 쟁취하고 입신양명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대상으로 그려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파르티아는 로마의 라이벌로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름 국제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유물을 보고 나면 페르시아의 르네상스라고 불릴만한 파르티아의 유물들이 나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 문화가 가미된 페르시아 문화, 즉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힘이 넘치면서도 간결한 선으로 세련미를 자아낸 공예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파르티아를 멸망시키고 등장한 최후의 페르시아 제국이었던 사산조(A.D 224~651) 차례였다. 사산조는 이전 시기보다 더 국제적인 느낌이 더 강했다. 뭐 정통 페르시아 문화에 그리스 문화가 혼합된 알렉산더 제국과 셀레우코스 왕조를 거쳐, 거기에 더 국제적인 느낌이 가미된 파르티아 문화를 거쳤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다양함과 국제성을 사산조만의 독창적인 문화로 융화시켰으니 특히 이전 시기보다 더 정교해지고 더 사실적으로 묘사된 공예품들이 바로 그러했다.
동양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인물상, 특히 관료나 왕의 흉상 혹은 부조 등이 압권이었는데, 특히 말로만 듣던 샤푸르 2세(그는 로마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군주이며, 그 이전에 즉위했던 샤푸르 1세 역시 로마와 지속적으로 대립하여 로마 황제 발레리우스를 생포하기까지 했다. 파르티아를 이은 사산조 역시 로마에게 있어서는 역시 공포의 대상이었다)의 흉상은 정말 그가 이렇게 생겼구나~하고 느낄 정도로 섬세했다. 사산조의 유물 중에는 궁전이나 주요 건물의 외관을 장식했던 타일 모양의 스투코 장식판이 많았는데, 벽돌이나 타일과는 또 다른 것이어서 독특했다. 그밖에 금은제품이나 유리제품 등이 보였는데 유리제품은 여타 로만 글라스보다 못한 느낌이었지만 금은제품은 중세시대 유물에 비교해서도 결코 뒤떨어짐이 없는 수준이었다. 이 유물들을 보는 순간, 왜 중세 유럽을 암흑시대라고 했는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그 밖에 페르시아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여러 금화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으며, 마지막으로 페르시아와 관련된 고대 한국의 유물들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 역시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유물은 앞서 잠깐 언급했던 적이 있었던 신라 중기의 것들(적석목곽분에서 도굴되지 못 하고 출토된 것들)이었으며, 이는 그만큼 당시 신라인들이 페르시아 지역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실크로드와 관련해서 페르시아와 당시 신라인들과의 관련성에 대해 더 자세히 언급해줬으면 어땠을까? 했지만 이 역시 학계의 이견이 많은 고로 차라리 이 정도가 적당하다 싶기도 했다.
이상이 페르시아 문명전의 전부(필자가 생각한)이다. 전체적인 평을 다시 한다면, 황금의 제국이라고 테마를 잡았으면서도 정작 눈에 띄는 황금문화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물론 먼 외국에서의 전시였기에 유물의 한계도 있었겠지만, 차라리 테마를 다른 것으로 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페르시아에 대한 인식이 많지 않고, 그리스나 알렉산더에게 항상 패한 것만 강조된 것에 비해 페르시아라는 문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려줄만한 제목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예를 들면 ‘이란 고원의 패자’라든가 ‘동-서 문명의 추이대를 지배한 제국’이라든가...(아닌가? ^^;) 어쨌든 중박에서 야심차레 준비한 특별전인만큼 전체적으로 크게 부족하지 않은 것 같았다. 뭐 필자에게는 평소 글로만 접했던 페르시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끔 해 줬다는 점에서 이미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고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위 사진들은 필자가 전시실 입구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급하게 찍느라 좀 흔들렸는데, 왜 이 사진을 올리는고 하면...특별전인만큼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것은 이해한다 이거다. 그런데 웃기는게 동영상 촬영은 된다는 거였다. 순간 ‘앗! 캠코더 갖고올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갔다. ‘어째서 사진 찍는 건 안 되고 동영상 촬영은 돼지?’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연스럽게 빛에 의한 유물 훼손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캠코더를 통해서도 일정 수준 빛에 의한 유물 훼손이 일어날 수 있으며, 카메라의 경우 노플래쉬로 얼마든지 사진 촬영이 가능한데 왜 그러느냐, 또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친구들도 많던데 그건 어떻게 제재하는가? 등을 연신 물어봤더니 역시나 그에 대해서는 노코멘트였다. 늘 특별전 가면 느끼는 거지만 이런 어줍짢은 촬영 제재는 뭔가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 암튼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에서 당시 동영상을 구해봤더니 역시 구할 수 있었다.
http://brand.pandora.tv/my.spottv/31183098 스팟 1
http://brand.pandora.tv/my.spottv/31183219 스팟 2
http://brand.pandora.tv/my.spottv/31183423 스팟 3
http://brand.pandora.tv/my.spottv/31183645 스팟 4
위의 주소를 첨부할테니 전시 내용이 간략하게나마 궁금하다~싶은 분들은 한번 접속해서 보시기 바란다. 판도라 TV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는데 보고 나서 바로 지워도 돼니깐 상관없을 것 같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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