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의 비유와 장사꾼의 비유
박태식 신부 / 신약학
무엇이 중요한가?
승승장구 인생이 술술 풀려나가는 남자가 있었다. 부모를 잘 만난 덕분에 어려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우수한 머리로 최고 명문대학을 졸업했으며 체력도 뒷받침해 세월이 지나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재물운과 관운과 자식운도 따라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 재경부 장관으로 입각하게 되었다. 청문회까지 잘 통과해 드디어 임명장을 받으러 가는 날 아침, 경복궁 옆으로 차를 몰아 들어가는데 연락이 왔다. 부친이 위독해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런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차 방향을 바꿔 부친에게 득달같이 달려가야 할까, 나라 일이니 임명장을 받고 취임식에 가야 할까, 아니면 재빠르게 임명장만 받고 병원으로 서둘러 가야할까? 수차례 언급했듯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설명할 때 비유라는 '문학양식'을 주로 사용했다. '문학양식'은 말 자체로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표현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편지 양식 한 가지만 보아도, 이삼십 년 전에는 부모님께 서신을 띄울 때 "부모님 전 상서/기체 후 일양 만강하시고…"라 했지만 요즘은 그저 "아버님께/날씨도 추워지는데 건강은 어떠하신지요?"라고 쓰지 않는가? 그처럼 시대에 따라 적당한 표현양식이 있는 것이다. 비유라는 문학양식도 오늘의 눈으로 볼 때는 치밀하게 연구할 대상이지만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통용되던 표현법이었다.
예수님의 비유는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한 가지 뜻만 가진다. 복음서에는 비유가 약 40편 정도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남의 밭에 귀한 보물이 숨겨져 있음을 알고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사들였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다. 밭에다 보물을 파 묻어둔 이유는 무엇이며, 또한 그 밭에 보물이 숨겨진 것은 어떻게 알았으며, 수만금의 돈을 들고 간들 주인이 순순히 밭을 팔겠는가 말이다.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불통일게 빤한 노릇이다. 고대로부터 이스라엘 주변에는 강대국들이 즐비했다. 아프리카의 패자인 이집트, 막강한 전차부대를 앞세운 동방의 바빌론, 아시리아, 페르시아 제국, 게다가 지중해 건너편의 그리스, 마케도니아, 로마 세력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대의 강대국들이란 체질적으로 '정복'이라는 속성에 길들여져 있었다. 이스라엘 주변의 강대국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세력 확장을 끊임없이 시도했고 그러려면 반드시 거쳐 지나가야 하는 땅이 이스라엘이었다.
그같이 열악한 지정학적 환경 때문에 유대인의 역사 수천 년 간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조건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서민들은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군대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가 일종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매번 도망칠 적마다 번거롭게 귀중품을 갖고 다닐 게 아니라 아무도 몰래 자기 밭에 슬쩍 묻어놓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보물을 파묻고 급히 도망갔던 밭주인이 전쟁 통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것이다. 전쟁 후에 밭은 딴 사람에게 넘어갔고, 그 참에 이웃의 누구인가에게 보물의 위치에 대해 귀띔을 받았다. 아니면, 밤에 몰래 확인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밭의 새 주인은 보물의 은닉 사실을 모르는 상태였고. 방법은 간단했다. 자신이 모아둔 온 재산을 팔아 그 밭을 구입해야 한다. 진주도 마찬가지다.
요즘이야 진주 양식 덕분에 양질의 진주를 구경하기 어렵지 않지만 당시에는 울퉁불퉁하고 칙칙한 빛을 내는 천연 진주뿐이었다. 따라서 모양 예쁘고 재질이 단단하고 반짝이는 진주를 만나기란 대단히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런데 낯선 해변 어느 노점상에서, 정말로 우연히 최고 품질의 진주를 만났다. 진주 장사꾼은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그 진주를 손에 넣고 싶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설파한 두 가지 비유는 당시 정서에 비추어볼 때 자연스러웠다. 앞의 어느 장관 후보자는 경우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설혹 장관이 못되더라도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야 마땅하다. 자고로 집안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서 어찌 나랏일을 맡기겠는가. 하지만 좀 다른 경우로, 이번에는 며칠 뒤에 종말이 닥친다고 해보자. 그러면 장관후보자는 장관 자리를 탐해야 할까, 아버지를 찾아야 할까, 아니면 하느님 나라에 승부를 걸어야 할까?
두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최고의 위기 상황이 닥쳤다. 지금 결단해야 한다. 나의 전 재산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밭과 진주를 사야 한다. 하느님 나라도 그와 같다. 나의 전 존재를 바쳐서라도 반드시 승부를 걸어야 할 대상이다. 장관직과 병든 아버지는 그 다음 문제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여러분 아직도 망설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서리 발 같은 경고에 정신이 번쩍 든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실 문학양식이란 단어에
살짝 거부감과의문이 생기던중
신부님 말씀으로 충분히 이해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