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최상해
햇볕은 여전히 따갑습니다
아직 밭에는 추수 할 곡식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무더위가 지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일에 지쳐 헉헉거리면서
유독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애써 위로를 해 봅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꼭 약속해 주리라 믿습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침부터 들녘을 한 바퀴 휑하니 돌아와
아침 밥상 앞에 앉아 기도합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소리에 귀가 열린다셨죠
닭 울기 전에 사립문을 빠져나가
깨어나지 않은 새벽이슬을 털어내며
동쪽 하늘을 깨우시던 아버지
앞 섬 들녘을 양 어깨에 지고
마당이 좁다고 헛기침을 하시며 들어 오셨지요
아버지 발자국이 깨알처럼 녹아있는
그 들녘에 푸르게 자라던 농작물도
그 농작물을 바라보며 허허 웃으시던 아버지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적적한 저녁바람 같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내고
혼자남아 저 들녘의 소식을 묻습니다
따가운 햇볕만 잔뜩 부려놓고는
그림자도 없이 서 있는 여름 한낮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지만
이맘때는 내가 들녘이라고
내가 좀 더 깊어진다고 하시던 아버지
그 숙연함을 텅 빈 들녘에서 봅니다
물이 많아 너무 웃자랄까 햇볕에 상처 받을까
노심초사 하시던 아버지의 손길처럼 들녘은
온통 황혼에 붉어지고 있습니다
카페 게시글
최상해 글 루바토
활천사 권두시 /약속 ( 10월호)
최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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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0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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