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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중퇴 선수들의 엇갈린 행보 | |||
전날 벌어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지역 2차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3차전에서 2골을 넣으며 한국의 2-0 승리를 이끈 한동원(22,성남)에 대한 찬사였다.
한동원은 전반 34분 정확한 위치 선정에 이은 헤딩 선제골과 후반 39분 그림 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추가골을 뽑았다. 2주 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치른 원정 2차전에서 2골을 터뜨린 데 이은 2경기 연속 멀티 골이었다. 한동원은 박주영(22,서울)이 징계로 빠진 사이 베어벡호의 핵심 선수이자 새로운 해결사로 떠올랐다.
한동원의 이름 앞에는 ‘K리그 2군리그가 낳은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한동원이 2군리그 최우수선수상(2003, 2004년)을 받고 득점왕(2005년)에 오르는 등 2군리그를 통해 실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면 한동원은 중학교 중퇴 선수로 성공한 케이스다.
그동안 K리그에는 김은중(28,서울) 같은 고등학교 중퇴 스타 선수는 있었지만 한동원 같은 중학교 중퇴 스타 선수는 없었다. 한동원 외에도 K리그에는 중학교 중퇴 선수들이 많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같이 축구선수로서 성공하는 것이다.
성공의 지름길을 걷다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인 김동석(20)과 송진형(20,이상 서울)은 중학교 중퇴 선수다.
이들은 중학교를 마치기도 전인 2003년 서울에 입단했다. 장기적인 전력 강화 계획 아래 유망 선수들을 적극 적으로 스카우트하고 있던 서울의 눈에 쏙 들어온 것. 둘 모두 어차피 프로선수가 될 것이라면 일찍 시작해서 손해볼 게 없다는 생각에 프로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냉혹한 프로의 세계를 일찍 겪어야 했지만 선수 개개인에 맞는 체계적인 지도를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운동 시설과 잔디구장 등 축구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자기 관리의 소중함을 배워 매일 개별훈련을 갖거나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력을 다졌다.
또래들과 함께 2군리그에서 뛰며 경기 결과보다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해마다 1군 무대에 잠시나마 올라가 값진 경험을 쌓았다. 당연히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됐다.
각급 청소년대표팀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맹활약하며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송진형은 날카롭고 정확한 프리킥 능력을 보였고 김동석은 '조커'로 출전해 활력 넘치는 플레이로 팀에 이바지했다.
김동석은 꾸준한 성장세 속에 올시즌 1군 주축 선수로 올라섰다. 세뇰 귀네슈 감독 부임 이후 기성용(18), 이민성(34)과 주전 경쟁을 벌이며 꾸준히 출전 횟수를 늘리고 있다.
3월 14일 광주 상무전에서는 후반 6분 김은중의 골을 도우며 시즌 첫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송진형은 올시즌 아직 1군 무대에 나서지 못했으나 수원컵 국제청소년축구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귀네슈 감독을 흡족하게 했다.
유성한 서울 주무는 “나이는 어려도 다른 선수들과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낸다. 또 프로 의식을 빨리 깨우쳐 자율훈련을 하는 등 성숙한 자세마저 보인다”고 칭찬했다.
20세 이하 청소년대표 주전 공격수 신영록(20,수원)도 2003년 세일중학교를 중퇴한 뒤 프로로 직행했다. 기본기를 잘 갖추고 있어 2003년 16살의 어린 나이지만 2군리그에서 7경기 3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을 보였다. 그해 1군 3경기를 뛰는 등 잠재력을 인정받았고 청소년대표로 꾸준히 뽑히면서 풍부한 국제 경험을 쌓았다.
2005년 10월 30일 부천(현 제주)전에서 프로 데뷔골을 성공했다. 성장 곡선이 가팔랐으나 올시즌 수원이 안정환(31), 에두(26), 나드손(25) 등 공격수를 대거 영입해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2군리그 2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강진(21,부산)은 2군리그가 아닌 J리그에서 성장한 다소 특별한 경우다. 2003년 중동중학교를 중퇴하고 수원에 입단했으나 곧바로 일본 J리그 도쿄 베르디로 임대됐다. 출전 경험을 쌓은 이강진은 실력을 인정받아 정식 계약을 맺고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2005년 팀이 J2리그로 강등되면서 이듬해 부산으로 옮겼다.
지난 시즌 수준급 실력을 과시하며 부산의 상승세를 이끌었지만 발목 골절 부상으로 중도 하차했다. 그러나 핌 베어벡 감독의 레이더망 안에 있어 재활 치료만 제대로 마친다면 언제든지 호출받을 것으로 보인다. 6월 복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
일찍이 프로의 길을 걸었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일이 꼬일 대로 꼬인 경우도 있다. 조원광(22)과 이산(22,제주)이 그렇다. 2001년 한양중학교를 중퇴하고 안양(현 서울)에 입단한 조원광은 굴곡이 심했다. 12살 때부터 각급 청소년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조원광은 최태욱(26,포항), 김동진(25,제니트) 등과 함께 서울의 미래를 이끌어 갈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어린 조원광에게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고 2군리그에서도 2년간 2도움(17경기)에 그쳤다. 결국 해외로 눈을 돌렸고 2004년 1월 FC소쇼(프랑스)와 3년 6개월의 장기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프랑스 생활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선진 축구를 경험하고 약점으로 지적됐던 몸싸움도 많이 나아졌지만 주로 2군에 머물렀다. 이후 J리그 진출을 꾀했으나 외국인선수 규정과 이적료 문제로 실패했다.
갈 곳을 잃은 조원광은 3년 만의 K리그 복귀를 추진했고 3월 초 인천 유나이티드가 관심을 보였다. 안종복 인천 사장은 “소쇼와 조원광의 이적을 협의하고 있다. 이적료만 해결하면 인천에서 뛰는 데 지장이 없다”며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현재 조원광은 인천 소속이 아니다.
2군리그에서 인천 유니폼을 입고 3경기를 뛰었지만 정확한 신분은 연습생이다. 소쇼와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해 발생한 이적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천의 한 관계자는 “소쇼와 이적 협상이 특별히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제주에 입단한 이산은 그나마 조원광 보다는 낫다. 2년간 정식 계약을 맺었다. 1998년 중동중학교를 중퇴하고 8년간 ‘축구 종가’ 잉글랜드에서 크리스탈 팰리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셰필드 유나이티드 등을 전전하며 쌓은 선진 축구 경험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정해성 제주 감독은 이산의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공격적인 재능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이산의 처지가 조원광보다 낫다고 보기도 어렵다. 출전 경기 수가 0이다. 조원광이 누비는 2군리그 성적조차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몸이 덜 만들어졌고 한국축구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팀의 브라질 전지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국내에 남아 개별훈련을 했을 정도다.
정해성 감독은 전반기까지 제 기량을 찾으라며 기회를 줬지만 이산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거품이라는 의문 속에 이산이 언제 경기에 뛰게 될지는 본인만이 알 뿐이다.
중퇴 선수들 공부는 할까?
김동석 등 중학교 중퇴 선수들은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일찍이 프로 계약을 했지만 입단 초기에는 일반 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 기초 교육을 마치지 않았기에 훈련 외에 따로 학습이 필요하다.
이들은 클럽하우스에서 해외 진출에 대비해 매주 두 차례씩 영어 공부를 한다. 또 강사를 초빙해 한자, 역사, 윤리 등도 배운다. 구단 차원에서 인성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SPORTS2.0 제 46호(발행일 04월 09일) 기사
이상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