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한국의 친구들이 보내오는 이메일을 보면 주말에는 무엇을 하면서 지내느냐고 질문 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한번은 평소 잘 아는 어느 교수님이 벨기에에 오신다기에 브뤼셀 공항에 픽업을 나간 적이 있는데, 이 분이 우연히 제 차 안에 있던 벨기에 지도를 펼쳐 보시고는, “자네는 골프 천국에서 골프는 안 배우고, 기껏 낚시나 다니는가?” 물으셨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벨기에 지도에는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의 위치가 여기저기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벨기에는 골프 천국이 아니라 낚시 천국입니다.”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낚시 고수는 아니지만,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호수에서 물만 쳐다보고 하루 종일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 지는 소위 “꾼”입니다. 제 차 트렁크에는 한국에서 이삿짐 속에 넣어서 가지고 온 낚시 도구들이 항상 들어 있으며, 심지어 제가 사용하는 손수건의 그림도 우리나라의 낚시터 지도입니다. 남의 나라에 살다가 보면 이것 저것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은데, 주말에 가족들과 집 근처 공원에 나가서 4~5시간 대형 고기와 실컷 싸우고 나면 모든 스트레스가 풀립니다.
벨기에는 낚시 천국입니다. 그 소리는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은 많은데,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가격도 거의 무료라서 부담 없이 낚시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큰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민물고기는 먹지 않기 때문에 잡으면 곧장 다시 풀어 줍니다.
벨기에에서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낚시 면허증이 필요합니다. 말이 면허증이지 그냥 몇 푼만 지불하면 쉽게 살 수 있는 면허증입니다. 벨기에 공원 안에는 대부분 큰 호수가 서너 개씩 있는데, 이 곳에서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공원 관리소에서 면허증을 사면 됩니다.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면허증의 가격이 겨우 2 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공짜나 다름없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유료 낚시터에 입장 하려면 입장할 때마다 매번 1~3 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합니다. 한편, 일반 강이나 호수에서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면허증이 필요한데, 1년간 낚시를 할 수 있는 면허증을 우체국에서 15,000 원 정도에 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 내내 밤낮으로 낚시를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안전을 위해 저녁 9시까지만 낚시를 할 수 있고, 11월 초부터 2월 말까지는 낚시 금지 기간입니다.
(위) 집 근처 공원 호수에서 한가롭게 낚시하는 아이들
(위) 공원 호수에서 낚시하는 우리 큰 아이 (당시 초등 3학년). 낚시 실력이 좋아서 아빠보다 더 잘 걸어냅니다.
낚시 천국답게 잡히는 고기의 크기도 장난이 아닙니다. 낚시 하는 사람이 적으니까 고기들의 입맛도 까다롭지 않아서 그냥 식빵만 달아도 잉어와 향어 등 팔뚝만한 고기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한번은 릴 낚시로 오후 3시쯤에 대형 잉어를 걸었는데, 옆에서 낚시 하는 아저씨와 30분씩 번갈아 가면서 4시간 동안이나 싸웠는데도 결국 그 튼튼한 릴낚시 바늘이 부러지는 바람에 녀석의 얼굴도 못 보고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던 적이 있습니다. [젊은이와 호수] 소설에서 젊은이가 결국 패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벨기에에서 잡히는 고기는 주로 잉어, 향어이지만 가끔 우리나라의 붕어도 나옵니다. 우리나라 대 낚시꾼들의 소원은 붕어 월척(30 cm 이상의 붕어)과 더 나아가서 평생에 4짜(40 cm 이상의 붕어)를 낚아보는 것입니다. 저도 아직 4짜 경험은 없는데, 저희 10살짜리 첫째 녀석은 벨기에 강가에서 대낚시로 붕어 43 cm 를 기록 했습니다. 붕어에게 끌려가는 녀석을 구해준 은혜는 까먹고, 그 이후 낚시 이야기만 나오면 꼭 4짜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아빠 체면을 끌어 내립니다.
(위) 옛날에 바다에서 육지로 물건을 날랐던 운하 (Canal). 낚시하기에 딱입니다.
(위) 운하에서 아이가 잡은 붕어 4짜입니다. 우리나라 토종 붕어와 똑같습니다. (저는 아직 4짜 기록이 없습니다).
벨기에 낚시 장비를 보면, 릴 낚시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대 낚시의 경우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우리나라의 낚싯대는 고기가 잡혔을 때 휘청거리면서 “손 맛”을 전해 주는 데 비해, 벨기에 낚싯대는 굉장히 길고 딱딱합니다. 아마도 잡히는 고기가 대부분 크기 때문에 고기를 제압하기에 용이하도록 낚싯대가 발전 했는가 봅니다.
(위) 집에서 썩어버린 식빵만 달아도 팔뚝만한 잉어들이 올라옵니다.
(위) 식빵 달아서 닐을 던져 놓고...
(아래) 오리들이랑 놀다가 보면...
(위) 향어, 잉어 ... 팔뚝만한 고기들이 식빵 먹이에 올라옵니다. 뜰채가 부러질 정도입니다.
저와 첫째 녀석이 낚시를 하고 있으면 벨기에 사람들은 옆으로 와서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나라 낚싯대를 살펴 봅니다. 특히 고기가 걸려서 낚싯대가 활 모양으로 휘어지면 뷰티풀 하다고 찬사를 보냅니다. 그런 낚싯대를 어디서 샀느냐고 묻기도 하고 자기들도 구할 수 없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벨기에 사람들이 제일 호기심을 가지는 부분은 우리나라의 길다란 “찌”입니다. 낚시를 다니시는 분은 너무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봉돌의 중력과 찌의 부력이 균형을 이루도록 교묘하게 “찌 맞춤”을 해서 찌 끝만 수면에 살짝 내어 놓고 고기가 미끼를 물면 찌가 “하늘로” 붕~ 솟도록 합니다. 벨기에의 찌는 짤막하고 고기가 미끼를 물었을 때 찌가 “물 속으로” 쏙 들어가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벨기에 사람들이 우리나라 찌가 왜 그렇게 긴 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지만, 고기가 물었을 때 찌가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긴 찌가 하늘로 붕 솟는 것을 제가 실제로 보여 주면 찬사를 보냅니다. 한 마디로 벨기에 대 낚시꾼들은 찌 맞춤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찌 맛”을 모릅니다.
이상 벨기에서의 낚시 이야기입니다. 아직 낚시를 모르시는 분은 가능하면 입문하지 마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낚시는 분명 좋은 여가 활동 중의 하나지만 낚시에 입문해서 일단 “찌맛”까지 알고 나면, 이렇게 남의 나라에 와서도 산천을 헤매게 됩니다.
2002. 09.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