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부여에 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이 장로님은 성경도 많이 읽고 믿음이 좋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존경받는, 신앙이 좋은 장로님이었습니다. 그는 땅을 팔아서 예배당을 짓고, 회갑 기념 잔치처럼 큰 잔치를 벌려서 동네 사람들을 다 초대해 식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여름, 장마철에 비가 쫙쫙 쏟아지자 이 장로님은 교회에 이상이 없나 살펴보기 위해서 부지런히 가다가 시골 면장을 만났습니다.
"장로님, 어디 가십니까?"
"교회 갑니다."
"장로님, 그렇게 교회 가고 열심히 일하면 월급도 줍니까? 월급 얼마 받습니까?"
"주시다마다요.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월급을 주십니다."
"무슨 월급인데요?"
"하나님이 나에게 건강 월급을 주십니다. 기쁨의 월급을 주십니다. 형통과 성공의 월급을 주시고, 천국의 월급을
주시고, 자손이 번창하는 월급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월급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월급보다 더
큰 월급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랬더니 그 면장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눈만 껌벅껌벅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상하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면 반드
시 하나님께서 보상하시고,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영국에 에드워드 모트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부모는 다 있었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습니다. 어
린 나이였지만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교 갔다 와서는 저녁에 가구 공장에 가서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
던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그날은 가구 공장이 문을 닫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저녁 가구 공장에서만 일하
던 이 소년이 공장이 문을 닫으니까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런던 거리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한 건물
에서 찬송 소리가 났습니다. 열린 문으로 예배 드리는 모습이 보여서 구경하러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아주 신기했습니다. 찬송도 부르고, 목사님 설교도 들었는데, 그 설교를 들으면
서 그만 이 소년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 받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그래. 나는 지금까지 의지할 데가 없었어. 부모님도 날 도와주지 못했지.'
'이제껏 가난과 고통, 절망 속에 힘들게 살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시고, 예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면 나는
이제 예수 믿고 살겠습니다. 하나님 의지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소망이십니다.'
그때부터 그는 예수님으로 자기의 소망을 삼고, 소망의 줄을 예수님께 단단히 매고 열심히 교회에 나갔습니다. 학
교 가서 공부하는 것보다도, 직장 가서 일하는 것보다도 더 열심히 교회에 나갔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생각
하면서, 어려움도 절망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가구 공장의 공장 직공으로 시작해서 사원이 되
고, 나중에는 큰 가구 공장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 지역의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덕망 있는 사장이 되었습
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아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나간 과거, 어린 시절의 모습을 회상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추우나 더우나 항상 가구 공장에서 닦고 쓸고 했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 보니 엄청나게 달
라져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는 '감사'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종이를 꺼내서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적었습
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가 539장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내 부모보다도, 내 선생님보다도, 내 친구보다도, 그 어느 무엇, 누구보다도 예수님은 내 소망이요, 나의 반석이요,
나의 축복이었다고 그가 글을 써서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이 그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도 인생의 소망을 예수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소망을 두셔서, 위로 받고 축복 받고 은혜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때, 그 사명이 끝날 때까지는 결코
죽음이나 가난이나 질병이나 죄악이 우리를 엄습하지 못합니다. 그 사명 완성할 때까지 승리하고 담대한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몇 년 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돋우워주던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의 한 장면을
소개하면, 하루는 이 태조와 무학대사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 중에 이런 것이 나옵니다. 먼저 이 태조가 무
학대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면서 "대사는 그 얼굴이 돼지 같소."라고 합니다. 이 말을 받은 무학대사는 상왕에게
말하기를 "제가 볼 때는 이 얼굴 용안이 참 부처님 같이 선하고, 인자합니다." 이렇게 말을 받습니다. 이 태상왕 앞
에서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입장에서 이렇게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 보면, 이렇게도 묻습니다.
"대사는 어째서 대사의 얼굴을 보고, 돼지 같다고 그랬는데 당신은 나에게 좋게 얘기를 하느냐?" 반문합니다.
그러자 그 무학대사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면, 모든 만상이 부처로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의 마음속에 돼
지 한 마리를 두었으면, 모든 사람이 돼지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내가 타인을 객관적으로 그를 정확하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아마 그렇게 생각을 하고 계시다면,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 생각을 바꾸
어야 할 것입니다.
유명한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는 그는 옥스포드 대학에 입학했을 때, 옥스포드 대학이 너무나 방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겨서 그는 성경을 중심으로 한 경건 운동을 벌였던 사람입니다. 그가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선교사를 파견을 갔었는데, 어느 거리에서 모라비안의 평신도를 만나서 그로부터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보혈로 죄사함 받고, 그가 부활하심같이 당신도 부활하냐?'고 물을 때, 그는 사실 확신하는 맘
으로 답할 수 없었던 믿음이었습니다. 그가 모라비안 교인이 이끄는 대로 성경공부 클럽에 들어가서 루터가 쓴, 로
마서 주석을 읽다가 1738년 5월 24일 9시 54분에 opening mind 그의 마음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문이 활
짝 열리기 시작하자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이 확신되었고, 그리고 부활의 주처럼
나도 부활한다는 소망을 갖게 되어 기뻐 뛰어 복음 운동을 벌였는데, 바로 이 일로 영국이 새로워지고, 그리고 아
울러서 감리교가 시작이 되었던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목사님 가운데 아이언 사이드란 목사님이 계셨는데 한 번은 회의를 주장하는데 어떤 젊은이가 번
쩍 손을 들더니 목사님 법대로 합시다 라고 아주 인상을 쓰면서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법
대로 합시다. 이때 아이언 사이드 목사님은 젊은이에게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형제여 하나님이 그대를 법대로 다루셨다면 자네는 지금쯤 지옥에 가 있어야 마땅할 걸세."
하나님은 율법의 원리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폐기된 것은 아니고 율법의 원리는 아직도 유효하지만
또 하나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원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은혜의 원리입니다. 은혜의 원리. 하나님이 은혜
로 우리를 다루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세계적인 기독교 작가인 필립 얀시는 최근에 그의 베스트셀러를 내놓았습니다. 그 책의 제목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우리 교회에서도 추천되었기 때문에 아마 읽으신 분들이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이 책의 4장에서 그는 한때 영국에서 열렸던 비교종교학 회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 종교를 비교하는 학회가
열렸는데 그때 이러한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가진 독특성이 도대체 무엇이냐?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이 어디에 있느냐?"
이때 누군가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은 성육신 사건에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
육신이야말로 기독교 교리요 신앙의 독특성이다."
그런데 어떤 분이 대답하기를 그런데 다른 종교의 문헌에 보면 신이 인간의 몸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다른 종교
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또 누군가가 제시하기를 "아무래도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은 부활사상에 있지 않느냐"라는
제기를 했습니다. 확실히 부활은 기독교 신앙과 교리에 독특한 사상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부활신앙 위에서 우리의
교회는, 우리의 믿음은 세워져 갑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말하기를 그런데 다른 종교에도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왔다
는 사자의 환생 같은 그런 이야기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바로 그때 저 유명한 C.S.루이스 교수가 들어와서 이런
대답을 했다고 그래요.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이야 은혜에 있죠."
은혜. Grace 은혜에 있죠. 모두가 다 동의했다고 그래요. 은혜.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베
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 그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가운데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자신의 신앙 생활이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내가 좌절하고 있다고 내가 무력함 속에 넘어져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분, 걱정하지 마세
요.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도와주실 것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
고 너에게 기대가 있다고 너는 승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내게 다가와 그리고 자신의 손을 내밀어 주시며 우리
를 돕기를 원하는 사랑하는 주님 앞에 여러분의 좌절과 여러분의 고통을 다 털어 놓으세요. 은혜를 구하세요.
주님, 은혜 주시면 저는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