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오늘은 토마스 사도 축일입니다.) 이 토마스 축일은 저에게 있어서도 조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저의 사랑하는 동기 원선희 신부님의 축일이기도 하고, 또 사랑하는 동기 방상훈 신부님의 서품성구가 토마스 사도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불어서 저의 아버지 축일이시기도 합니다.
( 오늘 사도 축일을 맞이하여 매일미사 책에 나와 있는 토마스 사도에 대한 간략한 전기를 보면서 사도의 일생을 다시한번 리마인드하게 되었습니다. 유독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이 묵시록에 나오는 이 구절이었습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버리겠다.’
이 말씀처럼 토마스 사도는 때로는 열정적인 뜨거운 모습으로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라고 외쳤고, 때로는 강한 불신의 차가운 모습으로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복음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가운데에 나타나셨을 때에 토마스 사도는 그 자리에 없었기에 사도는 이러한 말을 하게 됩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 받으시기 전까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분과 함께 그 분을 모시고 있던 이가 그 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에 토마스 사도는 바로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 모습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 바라보고, 바로 잘못을 인정하며 고백할 수 있는 토마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내 인간적인 실수로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우리는 때론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에 그 잘못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덮기에 급급한 경우가 있습니다. 핑계거리를 찾으며, 어떻게든 내 잘못이 아니고 그것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때론 되려 화를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토마스 사도는 달랐습니다. 핑계거리를 찾으려고/ 잘못을 덮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 바로 자신의 잘못을 바라보고 인정하며 바로 용서를 구하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오늘 고백 장면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두 번째는 바로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나의 모습을 험담하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는 어떻게든 나에게 들어오게 됩니다. 그 때의 우리는 모습은 어떠한 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속상한 마음에 그 대상자를 똑같이 험담하거나 다시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토마스의 의심을 알고 계셨으나, 그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나타나시어 오히려 깨달음을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 모습을 기억하며 심적으로는 물론 힘들겠지만, 삶의 모범을 보여주신 그리스도를 닮아나가고자 조금씩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복음 속 토마스 사도의 고백 장면을 기억하며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성찰해 보는 시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나의 온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이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고백으로 강론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첫댓글 토마스의 그 고백을 저도 매 미사때마다 고백하며 매일아침 이 토마스 사도의 성상을 보고 기억합니다 신부님 오늘 강론말씀 완전 마음에 와닿아요 저역시 잘못했을때 즉각 용서를 청하는 사도를 닮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