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상해, 소주, 항주) 여행 후기
그동안 몇 차례 중국 여행에서의 느낌은 대체적으로 음습하고 칙칙하다는 것이다. 날씨가 그렇고 사람들이 그렇다. 이 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5년, 아니 50년 만에 내린 폭설로 가는 날부터 3박4일 동안 눈보라 속에서 추위에 떨며 힘든 관광을 해야 했다. 가이드 말대로 상해여행은 그야말로 엉덩이 빠지는 관광이다.
상해-소주-항주 그리고 다시 상해까지 420km의 거리를 13시간 동안 차를 타고 이동해야했다. 시내에서도 거의 차로 움직이는 관광이 대부분이다. 비좁고 낡은 18인승 차량에 몸과 짐을 싣고 처음엔 불평도 있었지만 춘절 때라 버스가 동이나 어쩔 수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어차피 패키지 중국여행은 신발에다 발을 맞출 수밖에.
그리고 중국의 고속도로는 이렇게 기상이 악화되면 폐쇄되기 때문에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국도를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넘치는 차량으로 교통체증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태국에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까지 비포장도로를 9시간 동안 짐짝처럼 실려가보았고 폭풍우 속에서 18km구간의 백두산 종주(서파-북파)끝에 현지 여행사측과의 경비문제로 밤새도록 버스 안에서 인질로 잡혀있어야 했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다. 다만 2주 전 필리핀 해변가 리조트에서의 안락하고 호사스런 여행과는 비교될 수도 있겠지만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여행은 어느 정도의 불편함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것 아닌가.
상해는 중국 경제의 중심도시답게 각양각색의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서울보다 번잡한 자동차와 사람물결로 붐비고 있었다. 상해 최대의 번화가이며 쇼핑거리의 중심지인 남경로 백화점에는 낯익은 명품 물건들이 손님을 유혹한다. 우리는 눈을 맞으며 얼마동안 자유롭게 서울의 명동 같은 남경로를 걸어보았다.
아쉬운 것은 낮보다 아름답다는 상해의 밤 분위기를 제대로 못 느끼고 외탄에서도 황포강 건너편 동방명주 등 휘황찬란한 야간경관을 그저 버스투어로 지나쳐야 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한국사람 이라면 빼놓지 말고 보아야할 임시정부청사를 가장먼저 둘러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숙박과 식사가 대체적으로 열악하고 빈약했다. 장급 수준 호텔에 첫날의 경우 난방불비로 떨면서 잠을 이루어야 했고 음식의 천국이라는 중국에서 먹을 게 부족해 추가요금을 내고 주문해야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물가가 오르고 인심이 야박해진 탓인지 화폐가치(위안화)도 많이 올라 옛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식사 때 마다 52~56도의 이과도주로 뱃속에 군불을 지피며 여행기분을 돋우었다.
상해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서커스 공연으로 엿가락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몸동작과 원형 통속에서 오토바이 5대가 교차하며 달리는 아찔한 묘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박수를 치면서도 그들이 왠지 측은하게만 느껴졌다. 상해는 한 마디로 ‘상전벽해’요 ‘천지개벽’의 땅이었다. 그도그럴것이 불과 12년 전만해도 논 밭의 늪지대였다는데 이제는 세계적인 첨단 도시로 변한 것이다. 상해에서는 급변하는 거대 중국의 힘을 두렵게 느낄 수 있었다.
중국 현지인들도 평생 한번 가보기 힘들다는 소주와 항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옛 정원도시 소주(蘇州: 쑤저우)는 운하가 도시의 종횡으로 뻗어 ‘동양의 베니스’로 불린다. 우리도 일정을 바꿔 40여 분간 유람선을 타고 600년 된 다리 밑을 지나며 2500년 역사도시 속 300년 된 전통가옥을 보며 그네들의 삶을 그려보았다.
중국 4대 명원 가운데 하나인 유원(留園)을 둘러보면서 과연 소주 관광의 핵심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 특히나 설경에 반해버렸다. 앞서 본 한산사(寒山寺)도 좋았는데 당대의 고승이자 시인인 한산이 주지로 있던 절로 해마다 섣달 그믐날 밤이면 우리나라 보신각에서처럼 이곳에서 제야 타종 행사가 거행된다고. 관광객들은 108차례의 종소리와 함께 상서롭고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새해를 맞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기와지붕의 환상적인 모습이다. 때마침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와 함께 선경에 취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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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杭州: 항저우)에서는 무엇보다 산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우리가 늘 곁에 두고 보던 산이 외국에 나가보면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상해가 그렇고 소주에서도 그랬다.
항주는 호수의 도시이자 중국 6대 고도 가운데 하나다. “하늘에 극락이 있듯이 땅에 항주가 있다”고 표현한 소동파, 백낙천 등 유명한 문인들을 배출한 곳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돈자랑, 인물자랑을 말라고 하는데 중국의 4대미인인 양귀비, 초선, 왕소군에 이어 서시가 항주 태생이다.
항주에 도착하니 밤중인데 여기는 눈 대신 비가 내린다. 민속촌에 입장하여 옵션(3만원)으로 ‘宋城가무쇼’를 관람했는데 항주미인들이 여기에 다 모인 듯. 화려함과 웅장함의 수준 높은 공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관광대국의 저력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이튿날 비가 오는 가운데 서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흐린 날씨에 아스라이 펼쳐지는 전경을 감상하기도. 이어서 중국 선종의 10대 사찰중 하나인 ‘영은사’에 가서 우선 거대한 규모에 놀라고(대웅보전 높이가 33.6m에 19.6m의 석가모니불, 500나한상 등) 우리나라 사찰과 다른 가람배치에 주목했다.
다시 상해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불량마이크를 잡고 즉석 청문회와 생음악으로 지루한 시간을 메우기도. 그리고 상해에 도착,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북경에서와 같은 분위기속의 노래방(서울룸사롱)에서 음주가무로 마무리.
여행 마지막 날 오전 상해시내 관광으로 아시아 최고높이의 방송수신탑 동방명주 468m중 267m 전망대에 올랐다. 그러나 오늘도 눈 내리는 흐린 날씨 탓에 상해 시가지를 제대로 조망하지 못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초고속에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야 했다.
이 후로는 진주, 실크, 명품짝퉁, 농산물 쇼핑이 이어지기도.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도 떠나려하니 어김없이 날씨가 갠다. 나흘 만에 처음으로 햇빛을 보았다. 도착할 때의 푸동공항과 달리 홍차오공항에서 인천공항 아닌 김포공항으로 귀국했다. 사상유례없는 폭설로 인해 항공기 연착사태가 이어졌는데 우리는 그나마 운이 좋아 50분만 지연되었다.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의 여행이었고 눈보라 속 추운날씨로 고생도 많았지만 동행인 12명 서로 간에 마음만은 따뜻한 여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여행은 짧고 인생은 길다. 그렇지만 가장 오래도록 남는 게 여행이고 떠나는 것보다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첫댓글 중국 여행기 덕분에 즐감합니다, ㄳㄳ
하하하하하하 좋은곳 다녀 오셨군요 가무체질이아닌 음주체질이라 고량주로 불테우는 밤이 많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