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을 버리지 말자
경북대학교에서 2012년 대학입학시험 전형의 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중심에 논술고사가 존재할 것이다. 최근 논술고사를 폐지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요구에 대해 국립대학교로서는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게다. 지방 국립대학으로는 유일하게 논술고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현재 무척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경북대학교는 논술고사를 완전히 폐지해서는 안 된다. 경북대학교 논술고사는 한강 이남 최고의 대학이었던 지난 경북대학교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긍정적인 제도이다. 재주도 없는 사람이 헛된 이름만 알려져서 자주 다른 지역으로 강의를 나간다. 그러다 보니 대구라는 도시에 대한 타 지역의 평가를 자의든 타의든 자주 듣는 편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대구가 아주 잘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교육 풍토에 대해서는 사교육이 가장 폭발적인 호황을 누리는 곳이라고 말하면서 교사의 자질을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대구의 정신이나 문화, 그리고 교육에 대해 그리 호평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방대학으로는 유일하게 오랜 시간 경북대학교에서 논술고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단순히 단편적인 지식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평가하는 논술고사 전형은 경북대학교의 자존심이자 대구의 긍지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논술고사가 아이들을 평가하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방법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지금 경북대학교에서 논술고사를 바로 폐지한다면 대구 교육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이다. 미리 전제하지만 경북대학교 논술고사가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표현은 지나친 표현이다. 고등학교 교사로서 경북대학교에 대해 지금까지 고마움을 느낀 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논술고사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주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경북대학교 논술고사는 다른 지역, 특히 서울 소재 대학에서 실시하는 논술고사에 비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마친 아이들에게는 경북대학교 논술고사가 결코 넘을 수 없는 산이 아니다.
2012년 대학입학시험에서 경북대학교에서 논술고사를 폐지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현재 고등학교 3학년들의 혼란이다. 각급 고등학교에서는 경북대학교 논술고사를 대비한 논술반이 1학년 때부터 실시되었고,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도 500명 가까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토요논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어렵게 경북대학교 논술전형을 준비한 아이들의 배신감은 의외로 클 것이다. 만약 교과부의 요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폐지해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2012년 대학입학시험에서 바로 폐지하는 것은 더욱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논술고사보다 더 좋은 전형이 마련된다면 현재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혼란을 그나마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문제이다. 고등학교에서 온전한 교육과정이 사라졌다는 말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교과서는 완전히 사라지고 문제집만 반복해서 푼다. 학원과 학교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풍경이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의 모습이다. 교육정책을 담당한 사람들조차 알고도 눈을 감는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항의 문제풀이 방식만 배우는 학생들에게 논술수업은 비판력과 사고력 신장의 유일한 공간이었던 셈이다. 만약 경북대학교 논술고사가 사라진다면 고등학교 교육은 수능을 위한 문제풀이식, 주입식 수업으로 완전히 채워질 것이다. 그 후유증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아이들의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논술고사까지 사라지면 수능만 남는다. 내신도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변별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는 고등학교 1학년부터 2009개정교육과정으로 바뀐다. 2009개정교육과정은 창의와 인성을 갖춘, 나아가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미래형 인재를 양성하자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주입식 교육으로 돌아갈 것인가? 마음이 무척이나 무겁고 미래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