補充註解: 천지공사라 하면 누구나 다 처음 듣는 말이므로 그 뜻을 깨닫 기가 어려울지라. 예를 들면 어느 모임에서 회장이 회원을 소집하 여 회의를 열어 모든 의견을 듣고 최선의 방침을 결정하는 것과 같 이 선생께서 천지인 삼계를 주재하사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천지의 모든 신명을 소집하사 예로부터 전해오는 선천의 모든 잘못된 법을 바로 고치며 혹은 폐하시고 가장 합리적으로 하늘의 도와 땅의 의 로움과 사람의 일을 수렴하여 영원토록 바뀌지 않는 진법을 확정 하신 후에 천지신명으로 하여금 명을 받들게 하여 그 정하신 바 천 지의 섭리대로 일를 행하게 하신 것이니 곧 대우주를 선생의 큰 이 상속에 펼치심이라. 따라서 선생의 깊고 원대한 포부와 위대하심를 오직 여기서 찾게 될 뿐이요, 그외 말씀하신 바 그리고 성스러운 행적은 오직 단편적인 현상의 나타남 일뿐이니 그러므로 천지공사 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또한 선생의 커다란 구상과 원대한 펼치심을 엿 볼수 없을지라. 그런데 9년간을 쉼없이 갖은 고난을 겪으시면서 여러 가지로 행하신 공사를 종도들이 많이 참관하였으 나 모든 것이 초인간적인 신비에 속한 일이므로 보는 자들이 그 의 미를 깨닫지 못하고 선생께서도 대개 그 행하시는 것을 남에게 알 리려 하지 아니하시고 항상 은밀한 가운데 비밀에 붙이심으로 모두 예사로이 지나쳤으며 그 행하시는 바가 일일이 천지에 응하여 체험 되어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한갓 호기심 섞인 구경거리로 보았을 따름이요. 그 하시는 바를 의미있게 본 사람은 없었나니 그 러므로 약간 사실을 전하여 온 것도 그 상세한 바는 알수없으며 공 사를 행하실 때에 항상 도수를 정하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 의미는 어떤 상태를 어느 시기에 이르러 예정대로 현실로 나타 나게 하시는 것 즉 이 시대를 어느 때에 어떠한 상태로 변동시켜 그렇게 되도록 하신다는 것이라. 그러나 그 공사내용은 막연하여 알지 못하고 다만 참관하여 기이한 체험만을 전한 것도 많으며 또 종도들 중에서 한자에 밝아서 흔히 공사에 행하시는 글을 받아쓴 자는 김 광찬인데 그도 그때 그때 잠시 쓰시고 그 쓴 글을 불사르 시고 별도로 사본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이제 전하여온 단 편적인 말씀과 행적들은 두서없이 기억 된 것이 많은지라. 지금으 로부터 십여년전에 광찬이 사망하였으므로 그나마 상세히 들을 곳 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을 따르고 모신 종도는 김 형렬인데 공사를 행하실 때에는 흔히 객지에 순회하사 공사를 행하실 때 선 생을 따르는 다른 종도들로 교체하여 행하셨음으로 한 사람으로서 공사건수의 시작과 끝을 모두 참관치 못하였나니 그러므로 대략 듣 는 대로 기록 한 것이 실제로는 아주 미흡하니 이 글을 읽는 사람 은 깊이 참고하여 생각 할지라.
補註 第六章: 天地公事라 하면 누구나 다 처음 듯는 말임으로 그 意義를 曉得키 어려울지라. 例컨데 어느 公會에서 會長이 會員을 召集하야 會議를 열어 모든 意見을 徵取하야 最善의 方針을 決定함과 갓치 先生?서 三界를 主宰하사 天地 大神門을 열고 萬古神明을 召集하 사 先天 旣往의 모든 非法을 改廢하고 가장 合理的으로 天道와 地 義와 人事에 徵取하야 萬世 不替의 眞法을 規定하신 後 天地神明으 로 하여금 如律令 攝成케 하신 것이니 곳 大宇宙를 先生의 大理想 속에 料理하심이라. ?랴서 先生의 深遠한 抱負와 偉大한 價値를 오직 여긔서 찻게 될 ?이오. 其外 法言 聖行은 오직 그 斷片的 現露일?이니 그럼으로 天地公事의 妙義를 理解치 못하면 ?한 先 生의 宏謨遠猷를 엿볼 수 업슬지니라. 그런대 九年間을 쉬임업시 가진 苦難을 격그면서 여러가지로 行하신 公事를 從徒들이 만히 參觀하엿스나 모든 것이 超人間的인 神秘에 屬한 것임으로 보는 者 가 그 條理를 曉得치 못하며 先生?서도 大蓋 그 行하시는 것을 남 에게 알니려 하지 아니하시고 매양 隱秘에 붓치심으로 모다 泛然히 看過하엿스며 ? 그 行하시는 바가 一一이 天地에 應驗하야 奇現象 이 낫허나는 것을 한갓 好奇心으로 구경에 貪하야 보앗슬 ?름이 오. 意味잇게 본 사람은 업섯나니 그럼으로 若干事實을 傳하여 온 것도 그 詳細를 일헛스며 公事를 行하실 ?에 매양 度數를 定한다 는 말삼을 慣用하셧는대 그 意味는 엇더한 狀態를 어느 時期에 이 르러 豫定대로 現實케 하는 것 卽 이 時代를 어느 ?에 엇더한 狀 態로 變動하야 推移케 한다는 것이라. 그러나 그 內容은 漠然히 不 知하고 다만 所觀의 奇驗만 傳한 것도 만흐며 ? 從徒중에 漢字에 能하야 흔히 文明을 바더 쓴 者는 金 光贊인대 그도 隨時로 쓰여서 燒火하실 ?름이오. 別로히 抄記치 못하게 하섯슴으로 이졔 傳하여 온 片言隻行은 頭緖업시 記憶된 者라. 距今 十餘年前에 光贊이 身 死하엿슴으로 그나마 詳細히 들을 곳이 업고 처음부터 ??지 追從 한 者는 金 亨烈인대 公事를 行하실 ?에는 흔이 客地에 巡回하사 그 隨從을 만히 替番하섯슴으로 한 사람으로서 公事件數의 終始를 參觀치 못하엿나니 그럼으로 大略 듯는 대로 記錄한 것이 실상 恒 河一沙에 不過하노니 讀者는 깊히 參商할지어다.
임인(1902)년 4월에 김 형렬의 집에 머무르시며 명부공사를 행하시고 일 러 말씀하시기를 "명부공사의 심리에 따라서 인간세상의 모든 일이 결정 되나니 명부가 혼란해짐으로 말미암아 세계도 또한 혼란케 되었느니라." 하시고 최 수운,전 명숙, 김 일부로 하여금 명부의 정리공사를 주관하게 한다 하시면서 날마다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原文: 壬寅 四月에 金 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冥府公事를 行하시며 일너 가라사대 冥府公事의 審理를 ?라서 人世의 모든 일이 決定되나니 冥府의 混亂으로 말미얌어 世界도 ?한 混亂케 되나니라 하시고 崔 水雲, 全 明淑, 金 一夫로 冥府의 正理公事를 主케 한다 하시면서 날마다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라.
김 형렬의 집이 매우 가난하여 보리밥으로 선생께 공양하더니 팔월 추석 이 되어 할 수 없이 밥짓는 솥을 팔아서 음식을 준비하려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솥이 들썩임은 미륵불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로다." 하시고 형렬로 하여금 쇠꼬리 한 개를 구하여 오게 하시어 불을 피우고 두어 번 둘러 내신 후에 형렬에게 명하시기를 "태양을 보라." 하시니 형렬이 우러 러 보니 햇무리가 둘러 있더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대 세(大勢)가 모두 병들어 큰 종기(腫氣)를 앓는 것과 같으니 내가 그 종기 를 없애었노라." 하시니라.
原文: 金 亨烈의 집이 貧乏하야 麥飯으로써 先生? 供養하더니 八月 秋夕 節을 當하야 할 일 업시 食鼎을 팔아서 節饌을 準備하려하니 先生 이 가라사대 솟이 들석이니 彌勒佛이 出世하리로다 하시고 亨烈로 하여금 牛尾한개를 求하야 불을 피우고 두어 번 둘너 낸 後에 亨烈 을 命하사 太陽을 보라 하시니 亨烈이 우러러 봄에 日暈이 둘너 잇 더라. 先生이 가라사대 이졔 天下大勢가 方病大腫이라. 내가 腫을 破하엿노라 하시니라.
계묘(1903)년 봄에 선생께서 김 형렬과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 를 "옛날에는 동서양이 서로 교통이 없었으므로 신명(神明)들도 또한 넘 나들지 못하더니 이제는 기차와 배로 들어오고 나가는 화물표를 따라서 통행함으로 조선신명을 서양으로 들여보내어 일을 시키려하니 재주(財主) 를 얻어서 길을 틔워야 할 터이니 재주를 천거하라." 하시므로 김 병욱이 전주부호 백 남신을 천거하거늘 선생께서 남신을 불러 물어시기를 "그대 가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하시니 남신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삼십 만냥은 되나이다." 하니 또 물어 말씀하시기를 "이십 만냥으로 그대의 생 활은 넉넉히 하겠느냐." 하시므로 남신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러하리이 다." 하니 또 말씀하시기를 "이제 쓸 곳이 있으니 돈 십만 냥을 주겠느 냐." 하시니 남신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드디어 허락하거늘 이에 열흘로 한정하시어 증서를 받아서 병욱에게 맡기시더니 기한이 되어 남신이 돈을 준비하여 그것을 어음 이십매로 만들어 올리니 선생께서 글을 써서 불사 르시고 또 병욱에게 맡기신 증서를 불사르신 후에 어음 이십매는 돌려주 시며 말씀하시기를 "돈은 이미 요긴하게 써서 일을 잘 보았으니 다행이 라." 하시니 남신은 선생께서 현금으로 쓰시지 아니하신 것을 미안하게 여겨 다시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그 돈으로 현물의 시세를 보아서 무역을 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 어떠하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것은 (이익을 도모하려는 것이므로)아니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 를 "남신의 일이 용두사미와 같다." 하시니라.
原文: 癸卯 春에 先生이 亨烈과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古代에는 東西洋의 交通이 업섯슴으로 神明도 ?한 넘나들지 못하엿더니 이 졔는 汽車輪船으로 輸出入되는 貨物表를 ?라서 通行함으로 朝鮮神 明을 西洋으로 드려보내여 役事를 식히려 하노니 財主를 어더서 길 을 ?워야 할지라. 財主를 薦擧하라. 金 秉旭이 全州 富豪 白 南信 을 薦擧하거늘 先生이 南信다려 무러 가라사대 所持한 財産이 얼마 나 되나뇨. 南信이 對하야 가로대 三十萬兩은 되나이다. ? 무러 가라사대 二十萬兩으로써 그대의 生活은 넉넉히 하겟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러하리이다. ? 가라사대 이졔 쓸 곳이 잇스니 돈 十萬兩 을 드리겟나냐. 南信이 默然히 생각하다가 드대어 許諾하거늘 이에 十日로 限定하야 證書를 바더서 秉旭의게 맛기섯더니 期限이 이름 에 南信이 돈을 準備하야 刻紙로 二十枚를 올닌대 先生이 글을 써 서 불살으시고 ? 秉旭에게 맛기신 證書를 불살으신 後에 刻紙 二 十枚는 돌녀주시며 가라사대 돈은 임의 要緊히 써서 일을 잘 보앗 스니 多幸이라 하시니 南信은 現金으로 쓰지 아니하신 것을 未安히 녁이고 다시 엿주어 가로대 現物의 時勢를 보아서 貿易하야 利를 增殖함이 엇더하니잇가. 선생이 가라사대 그것은 不可하니라 하시 고 ? 가라사대 南信의 일이 龍頭蛇尾와 갓다 하시니라.
이 때에 선생께서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지방을 지키는 모든 신명(神明)들을 서양으로 보내어 큰 난리를 일으키게 하리니 이 뒤 로는 외국인들이 주인없는 빈 집 드나들듯 하리라. 그러나 그 신명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자기 집 일은 자기가 맡아서 하리라." 하시니라.
原文: 그 뒤에 先生이 여러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 地方을 守護하는 모든 神明을 西洋에 보내여 大亂을 지으리니 이 뒤로는 外人들이 主人업는 뷘 집 들듯 하리라. 만일 모든 神明이 일을 맛치고 도라 오면 졔 집일은 제가 맛허 하리라.
계묘(1903)년 여름에 김 병욱이 관찰부의 위촉으로 남원에 가서 오랬동안 머무르면서 세금징수를 독려하니라. 이때 조정은 러시아와 결탁하여 일본 의 세력을 억제하고자 할 때라, 일본에 망명한 박 영효일파를 친일파로 지목하여 그 당파를 모두 없애 버리려고 하니 병욱이 또한 그 일에 연루 가 되었더라. 10월에 서울로부터 많은 순검들이 갑자기 전주부에 이르러 병욱을 찾다가 남원에 머무르는것을 알고 밤길을 달려 남원으로 떠나느니 라. 이 때에 선생께서 남원에 오시어 병욱을 찾아서 그 거둔 세금을 숙소 주인에게 맡기게 하시고 병욱을 데리고 곧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니 병욱 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더라. 십리 쯤 가시더니 병욱의 선산에 딸린 재실 (齋室)에 들어가 계시면서 산지기에게 명하시어 남원에 가서 형세를 살펴 보고오라 하시니 산지기가 명을 받들어 곧 남원에 갔다가 돌아와서 많은 순검들이 병욱을 찾고있는 상황을 고하니 병욱이 비로소 크게 두려워 하 니라. 다음날에 교자(轎子)를 준비하여 병욱을 태우고 전주로 돌아가시어 서 원규의 약방으로 가시니 원규가 병욱을 보고 크게 놀라며 말하기를 "그대가 어떻게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죽을 곳을 벗어났으며 또 어찌 이렇게 위험한 곳으로 들어 왔느냐. 너무 급하게 당한 일이라 알릴 겨를 도 없었고, 그대의 집 사람들은 놀래서 다만 울음으로 지샐 따름이라." 하거늘 병욱이 그 자세한 경과를 듣고보니 경성에서 온 순검들이 전주를 떠나서 남원에 도착한 때와 자기가 선생을 따라 남원을 탈출 할 때가 겨 우 한 두시간밖에 차이가 없는지라. 병욱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선생께서 는 진실로 하늘이 내리신 신(天神)이시라, 만일 선생께서 구원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찌 그런 죽을 곳을 벗어났으리요." 하니라. 그 때에 순검들 이 남원에 가서 병욱을 찾지 못하고 전주로 돌아와서 사방으로 찾으니 원 규의 약국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에 있으므로 병욱이 자기가 숨어 있는 곳이 은밀하지 못함을 무척 근심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모 든 것을 나를 믿고 근심을 풀어버리라, 내가 장차 너의 일이 풀리게 하리 라." 하시니라. 병욱이 원규의 약국에 오랬동안 머물렀으나 한 사람도 아 는 사람의 출입이 없고 또 밤에는 선생께서 거리낌 없이 병욱을 데리고 거리를 다니셔도 한번도 아는 사람의 눈에는 띄이지 아니하니라.
原文: 이 해 여름에 金 秉旭이 觀察府의 委囑으로 南原에 가서 오랫동안 滯留하야 稅金을 督收하니라. 이?에 朝廷은 露西亞를 結託하야 日 本을 抑制코저 할 새 日本에 亡命한 朴 永孝 一派를 親日派로 指目 하야 그 黨派를 大擧 剿滅하니 秉旭이 ?한 連累가 된지라. 十月에 京城으로부터 多數의 巡檢隊가 突然히 全州府에 이르러 秉旭을 搜 索하다가 南原에 滯在한 줄 알고 星夜로 南原에 發向하니라. 이? 에 先生이 南原에 이르사 秉旭을 차저서 그 收入한 稅金을 ?主에 게 保管케하고 곳 伴行하사 들밧게 나가시니 秉旭은 그 緣由를 모 르더라. 十餘里를 行하사 秉旭의 先墓齋舍에 들어 계시사 墓直을 命하야 南原에 가서 形勢를 삷혀 오라 하시니 墓直이 奉命하고 곧 南原에 갓다가 도라와 多數한 京巡檢隊가 이르러 秉旭을 搜索하는 狀況을 告하니 秉旭이 비로소 크게 두려워 하니라. 翌日에 轎子를 準備하야 秉旭을 태우고 全州로 回程하사 徐 元圭의 葯局으로 들어 가시니 元圭가 秉旭을 보고 大驚하야 가로대 君이 엇지 死地를 벗 어낫스며 ? 엇지 이러한 危地로 들어 왓나뇨. 너무 急禍임으로 通 知할 겨를이 업서 君의 家族은 다만 驚惶罔措하야 號哭으로 지낼 ?름이니라 하거늘 秉旭이 그 仔細한 經過를 드르니 京巡檢이 全州 를 ?나서 南原 到着 할 ?와 自己가 先生을 ?라 南原을 脫出할 ?가 겨우 一二 時間의 差異가 잇는지라. 秉旭이 歎息하야 가로대 先生은 실로 天神이시라. 만일 先生의 救援이 아니엿더면 엇지 死 地를 벗어낫스리오 하니라. 그 ?에 巡檢들이 南原에 가서 秉旭을 찻지 못하고 全州로 도라와서 四下로 크게 차즈니라. 元圭의 藥局 이 通路大街에 잇슴으로 秉旭이 그 幽僻치 못함을 근심하거늘 先生 이 가라사대 모든 것을 내게 信賴하야 근심을 풀어 버리라. 내가 將次 네 일을 ?으리라 하시니라. 秉旭이 元圭의 葯局에 오래동안 머므르되 知面한 사람의 出入이 업고 ? 昏夜에는 先生이 忌憚업시 秉旭을 다리고 거리를 다니며 소풍하되 한 번도 아는 사람의 눈에 ?우지 아니하니라.
선생께서 김 병욱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닥친 화액을 풀기 위하여 러일전쟁을 일으켜 일본을 도와서 러시아세력을 물리치리라." 하 시니 종도들이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서로 말하기를 "한 사람의 화액을 풀 기 위하여 두나라간에 전쟁을 일으킨다 함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지만 힘 이 약한 일본을 도와 천하에 막강한 러시아세력을 물리치신다함은 더욱 허망한 말이라." 하더니 12월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여 일본군이 상승세를 타서 국경을 통과하니 이에 나라의 금법(禁法)이 해이해져서 박 영효의 혐의가 드디어 풀리니라.
原文: 先生이 秉旭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네 禍厄을 풀기 爲하야 日露 戰爭을 促成하야 日本을 도와서 露勢를 驅逐하리라 하시니 從徒들 이 그 말삼을 不信하야 서로 이르되 一人의 禍厄을 ?으기 爲하야 兩國의 戰亂을 促發케한다 함도 妄誕한 바어니와 弱少한 日本을 도 와 天下莫强의 露勢를 驅逐한다 함은 더욱 虛荒한 말이라 하더니 十二月에 日露戰爭이 勃發하야 日兵이 勝勢를 타서 國境을 通過하 니 이에 國禁이 解弛하여저 朴泳孝의 嫌이 드대여 ?니니라.
이때에 선생께서 김 병욱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일본과 러시아가 우리 나라의 허약함을 틈타서 서로 세력을 확장하려 다투니 조정은 당파가 둘 로 갈라져서 혹은 일본과 친선을 도모하려하고 혹은 러시아와 결탁하려하 니 그대는 어떤 세력이 옳다고 여기느냐." 병욱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인종의 차별과 동서양의 문화 차이로 볼 때 일본과 친선을 도모하고 러 시아를 멀리 함이 옳다고 생각하나이다."라고 답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 기를 "그대의 말이 이치에 맞느니라. 이제 만일 서양의 세력을 물리치지 아니하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사람들에게 유린당하게 되리니 그러므로 서 양의 세력을 물리쳐서 동양을 보전함이 옳으니 일본사람을 천지에 큰 일 꾼으로 내세우리라." 하시고 이에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날마다 공사를 행 하시어 사십구일을 한 도수로 하여 동남풍을 불게 하시더니 미처 사십구 일 기한이 되기 몇 일전에 한 사람이 와서 병을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애 걸하는지라. 선생께서 공사에 전념하시어 그 사람이 간절히 애걸하는 것 을 듣지 못하고 아무 대답이 없으시더니 그 아픈 사람이 드디어 원한을 품고 돌아가니라. 그 후로 문득 동남풍이 그치거늘 선생께서 그제서야 깨 달으시고 사람을 그 병자에게 보내시어 공사에 전념함으로 인하여 듣지 못하신 사실을 알려 마음을 달래고 곧 병을 낫게 하여 주시니 바람이 다 시 계속 부는지라. 이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원한을 품으 면 능히 천지의 기운을 막느니라." 하시니라. 그 후로 러시아 군대가 바다 와 육지에서 싸울때마다 모두 패하니라.
原文: 그?에 先生이 秉旭에게 무러 가라사대 日露가 國家의 虛弱을 乘하 야 서로 勢力을 角逐하니 朝廷은 黨派가 分立하야 或은 日本을 親 善하려 하며 或은 露國을 結托하려하니 君은 엇든主義를 올히 녁이 나뇨. 秉旭이 對하야 가로대 人種의 別과 東西의 殊로 하야 日本을 親善하고 露國을 멀니함이 올타 하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그대의 말이 유리하니라. 이졔 만일 西勢를 물니치지 아니하면 東洋은 永 久히 西人의 蹂躪한 바 되리라. 그럼으로 西勢를 물니치고 東洋을 安保함이 올흐니 日本人이 天地에 큰 일?이 되나니라 하시고 이에 天地大神門을 열고 날마다 公事를 行하사 四十九日을 한 度數로 하 야 東南風을 불니시더니 밋처 期限에 數日이 차지 못하야 한사람이 와서 治病하여 주시기를 懇乞하는지라. 先生이 公事에 專心하사 그 사람의 懇乞하는 말을 듯지 못하고 아모 對答이 업스시니 그 病人 이 드대여 恨을 품고 도라가더니 그 後로 문듯 東南風이 그치거늘 先生이 그졔야 ?다르시고 사람을 그 病人의게 보내사 公事의 專心 으로 因하야 듯지 못하신 事實을 告하야 安心케 하시고 곳 病을 낫 게 하여주시니 바람이 다시 繼續하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한 사 람이 寃恨을 품음에 能히 天地긔운을 막는다 하시니라. 그 後로 露 軍이 海陸으로 連敗하니라.
동학신도들이 갑오(1894)년 동학농민전쟁에서 참패를 당한 후에 감히 나 타나지 못하고 숨어서 세력을 유지하여 오다가 러일전쟁이 일어난 기회를 틈타서 일본에 결탁하여 일진회를 조직하니 사방에서 호응하여 세력이 커 짐에 사람들이 갑오년 난리때 난폭하던 일을 생각하여 불안한 마음을 품 는지라. 선생께서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저들이 활동할 때에는 각자 자신들의 돈으로 움직이게 할 것이요. 갑오년 때와 같이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리니 이렇게 하려면 내가 솔선수범하여 모범을 보 임이 옳으리라." 하시고 갑진(1904)년 칠월에 본댁의 살림과 약간의 전답 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신 후에 전주부에 이르러 모든 거지들에게 나누어 주시더니 과연 일진회원들이 각자 자신들의 재산을 탕진하게 되거늘 선생 께서 말씀하시기를 "저들이 나를 본받으니 살려줌이 옳으리라." 하시고 관을 벗으시고 삿갓을 쓰시며 옷은 안이 검고 바깥을 희게 하시어 말씀하 시기를 "저들이 검은 옷을 입으니 나도 검은 옷을 입노라." 하시고 또 하 늘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저 구름이 속은 검고 겉은 흰 것이 곧 나를 본받음이니라." 하시니라.
原文: 東學信徒가 甲午의 慘敗를 當한 後에 敢히 擡頭치 못하고 潛勢를 保守하여 오다가 日露戰役의 機會를 타서 日本에 結託하야 一進會 를 組織하니 四方이 響應하야 ?原의 勢를 呈함에 人民은 甲午의 亂暴에 鑑하야 危▩之心을 품은 지라. 先生이 從徒다려 일너 가라 사대 저들의 擧動에는 各히 自力을 資케 할 것이오. 甲午와 갓치 民害를 짓지 못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率先하야 模範을 지음이 可 하니라 하시고 略干의 田地와 家屋을 放賣하사 全州府에 이르러 모 든 乞人의게 散盡하시더니 果然 一進會員이 마참내 各自의 財産을 蕩盡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저들이 나를 본바드니 살녀줌이 올흐 니라 하시고 冠을 벗고 삿갓을 쓰시며 衣服은 안이 검고 밧기 희게 하사 가라사대 저들이 黑衣를 닙으니 나도 黑衣를 닙노라. ? 하눌 을 가라처 가라사대 저 구름이 속은 검근고 밧흼이 나를 模型함이 라 하시니라.
병오(1906)년 2월에 선생께서 여러 종도들을 데리고 익산 주산 부근 만중 리 정 춘심의 집에 이르시어 승복 한 벌을 지어서 벽에 걸고 사명당을 외 우시며 산하 대운을 돌리실 때 (또 남조선 배 도수를 돌린다 하시며) 칠 일간을 방에 불을 넣지 아니하시고 춘심에게 명하시어 소머리 한 개를 삶 아서 문 앞에 놓은 뒤에 "배를 저어 운행하여 보리라." 하시고 정 성백을 명하시어 승복을 부엌에 불사르시니 문득 뇌성이 기적소리와 같이 일 어나고 석탄연기 냄새가 코를 찌르며 온 집안 기둥이 폭풍에 흔들리는 배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정신이 혼미해져 서 혹은 구토하기도 하고 혹은 정신을 잃으니 이 때에 참석한 사람은 소 진섭, 김 덕유, 김 광찬, 김 형렬, 김 갑칠, 정 춘심과 그 아들 정 성백 및 그 가족들이라. 김 덕유는 문 밖에서 꺼꾸러지고 춘심의 가족들은 각 자 자기 방에서 정신을 잃고 김 갑칠은 인사불성이 되어 숨을 쉬지 못하 니 선생께서 청수를 갑칠의 입에 흘려 넣으며 그의 이름을 부르시니 곧 다시 깨어나는 지라. 차례로 청수를 얼굴에 뿌리기도 하시고 혹은 먹이기 도 하시니 모두 정신을 회복하니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을 하느라 고 애를 썼으니 밥이나 제때에 먹어야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갑칠을 주어 부엌에 불사르라 하시거늘 갑칠이 부엌에 이르니 성백의 아내가 부 엌에서 정신을 잃고 있거늘 갑칠이 급히 글을 불사르니 곧 회생하여 밥을 지어 올리니라. 선생께서 한 그릇에 밥을 많이 비벼 여러사람에게 함께 먹게하시며 말씀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불사약이니라." 하시더 니 모든 사람이 그 밥을 먹은 뒤에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회복되더라.) 그 당시에 김 덕유는 그 당시 폐병이 들어 매우 심한 상태에 이르렀었는 데 이로부터 완전히 낫게 되니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허약한 무리들이 일을 재촉하느냐 하시고) "육정육갑을 쓰려 들 때에는 살아 날 사람이 적으리라." 하시니라.
原文: 丙午 二月에 先生이 여러 從徒를 다리고 益山 萬中里 鄭 春心의 집 에 이르사 僧衣 한 벌을 지어 壁에 걸고 四明堂을 외우시며 山河 大運을 돌니실 새 七日間을 房에 불을 넛치 아니하시고 春心을 命하사 牛頭一個를 煮熟하야 門 압헤 노은 後에 배를 運漕하리라 하시고 鄭 伯成을 命하사 僧衣를 부억에 불살으시니 문듯 雷聲이 汽笛소리와 갓치 發하며 石炭煙氣가 觸鼻하며 온 집안 동량이 暴風 에 動搖되는 배 속과 갓하야 一室中에 잇는 사람이 다 暈倒하야 或 嘔吐도 하며 或 精神을 일흐니 이?에 參座한 者는 蘇 鎭燮, 金 德 裕, 金 光贊, 金 亨烈, 金 甲七, 鄭 春心, 鄭 成伯과 밋그 家族이라. 金 德裕는 門밧게서 ?구러지고 春心의 家眷은 各히 그 寢室에 昏 倒하고 金 甲七은 人事不省하며 呼吸을 不通하거늘 先生이 淸水를 甲七의 입에 흘녀 너으며 불으시니 곳 蘇甦된지라. 차레로 淸水를 얼골에도 ?리며 或 먹이기도 하시니 모다 精神을 回復하니라. 金 德裕는 肺病으로 重期에 이르럿든바 일로부터 完快되니라. 先生이 가라사대 六丁六甲을 쓰러 들일 ?에는 살어날 사람이 적으리라 하 시니라.
그 후에 구릿골로 돌아오시어 몇 일간을 지내신 후에 다시 대공사를 행하 시려고 서울로 떠나실 때 말씀하시기를 "전함을 순창으로 돌려 대리니 형 렬은 지방을 잘 지키라." 하시고 또 모든 사람에게 명하시어 "각자의 소 원을 기록하여 오라." 하시어 그 종이로 안경을 싸서 넣으신 후에 정 남 기, 정 성백, 김 갑칠, 김 광찬을 데리시고 군산으로 가서 배를 타기로 하 시고 신 원일과 그외 네 사람은 "대전으로 가서 기차를 타라." 하시며 말 씀 하시기를 "이것은 물과 육지로 동시에 진격함이라." 하시니라. 또 신 원일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너는 먼저 서울로 들어가서 "천자가 바다 에 떠 계신다.(天子浮海上)" 라고 써서 남대문에 붙이라 하시니 원일이 명을 받들어 일행을 거느리고 대전으로 떠나니라.
原文: 그 後에 銅谷으로 도라오사 數日을 지내신 後에 다시 大公事를 行 하시려고 京城으로 ?나실 새 가라사대 戰艦은 淳昌으로 돌녀대리 니 亨烈은 地方을 잘 직히라 하시고 ? 모든 사람을 命하사 各自의 所願을 記錄하여 오라하사 그 조희로 眼鏡을 싸 너으신 後에 鄭 南 基, 鄭 成伯, 金 甲七, 金 光贊을 다리시고 群山으로 가서 汽船을 타기로 하시고 辛 元一과 그外 四人은 大田으로 가서 汽車를 타라 하시며 가라사대 이는 水陸?進이라 하시니라. ? 辛 元一에게 命 하야 가라사대 너는 몬저 入京하야 "天子浮海上"이라 써서 南大門 에 부치라. 元一이 領命하고 一行을 거느리고 大田으로 ?나니라.
선생께서 군산에 이르시어 여러 종도들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바람을 걷고 감이 옳으냐, 놓고 감이 옳으냐."하시니 김 광찬이 대답하여 말하기 를 "놓고 감이 옳으니이다." 하거늘 이에 모든 사람들에게 "검은매화(烏 梅) 다섯매 씩을 준비하라." 하시고 기선을 타시니 바람이 크게 일어나서 배가 매우 흔들려서 모든 사람들이 현기증을 일으키고 구토를 하거늘 각 자 검은매화를 입에 물어 안정케 하시고 이날 밤에 갑칠을 명하시어 "각 자 소원을 기록한 종이로 싼 안경을 북쪽으로 향하여 바닷물에 던지라." 하시니 갑칠이 배 위로 올라가서 방향을 판단하지 못하여 머뭇거리거늘 선생께서 다시 불러 들여 말씀 하시기를 "어찌 빨리 던지지 아니하느냐." 하시므로 갑칠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방향을 판단하지 못한 까닭입니 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번갯불이 일어나는 곳을 향하여 던지라." 하시므 로 갑칠이 명을 받들어 다시 배 위로 올라 살피니 문득 번갯불이 일어나 거늘 이에 그 방향으로 던지니라. 다음날에 인천에 내리시어 곧 기차로 바꾸어 타시고 서울에 이르러 모두에게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신 후에 김 광찬의 안내로 황교에 있는 그의 이종동생 김 영선의 집에 가시니 신 원일 일행이 먼저 도착하여 있더라.
原文: 先生이 群山에 이르사 여러 從徒에게 무러 가라사대 바람을 것고 감이 올흐냐 놋코 감이 올흐냐 하시니 光贊이 對하야 가로대 놋코 감이 올흐니이다 하거늘 이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烏梅五枚式 準 備하라 하시고 汽船을 타시니 바람이 크게 이러나서 배가 甚히 搖 動하야 모든 사람이 眩暈嘔吐하거늘 各히 烏梅를 입에 물어 安定케 하시고 이날 밤에 甲七을 命하사 各人의 所願을 記錄한 조희로 싼 眼鏡을 北方으로 向하야 바다물에 던지라 하시니 甲七이 船上에 올나서 方向을 辦別치 못하야 躊躇하거늘 先生이 다시 불너 들여 물어 가라사대 엇지 ?니 던지지 아니 하나냐. 甲七이 對하야 가로 대 方向을 辦別치 못한 緣故니이다. 가라사대 電光이 發하는 곳으 로 던지라. 甲七이 應命하고 다시 船上에 올나 삷히니 문듯 電光이 發하거늘 이에 그 方向으로 던지니라. 翌日에 仁川에 나리사 곳 汽 車를 밧구어 타시고 京城에 이르러 各히 禁煙하라 하시고 光贊의 引導로 黃橋에 잇는 그의 從弟 永善의 집에 드시니 辛 元一 一行은 몬저 當到하엿더라.
원일이 서울에 도착하자말자 "천자께서 바다에 떠서 계신다" 이라는 글을 써서 남대문에 붙이니 온 서울이 크게 소란스러워짐으로 조정에서는 엄중 히 경계를 하고 있더라. 서울에서 여러 가지 법을 행하시고 (벽력표를 묻 으신 뒤에) 열흘쯤 후에 모든 종도들은 돌려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모 두 흩어져 돌아가라 십년 후에 다시 만나리라, 십년도 십년이요, 이십년 도 십년이요, 삼십년도 십년이니라." 어떤 사람이 여쭈어 말하기를 "사십 년은 십년이 아니나이까." 말씀하시기를 사십년도 십년이야 되겠지만 넘 지는 아니하리라 하시고) 오직 광찬만 머무르게 하시다가 몇일 후에 광찬 을 다시 만경으로 보내시며 "통지가 있을 때 까지 기다리라." 하시니라.
原文: 元一은 當到 卽時에 "天子浮海上"이라는 文字를 써서 南大門에 부 치니 온 京城이 크게 騷動하야 人心이 洶洶함으로 朝廷은 嚴重히 警戒하더라. 京城서 여러가지 法을 行하시고 十餘日後에 모든 從徒 는 다 돌녀 보내시고 오직 光贊만 머무르게 하시다가 數日後에 다 시 萬頃으로 보내시며 通知 잇기?지 기다리라 하시니라.
병오(1906)년 4월 그믐날에 선생께서 (구릿골로 돌아오시어 하룻밤을지 내시고) 만경 김 광찬이 머무르는 곳에 이르시니 이 때에 최 익현이 충남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키니 마침 날이 가물어 농부들이 농사일에 전념하지 못하고 인심이 흉흉해져서 의병에 들어가는 자들이 날로 증가하여 의병들 의 세력이 크게 불어 나거늘 (이에 말씀하시기를 최익현이 고종부자의 천 륜을 끊어 그 대죄가 그의 몸에 붙어 있노라 하시고) 이에 선생께서 가뭄 을 걱정하시어 몇 일동안 만경에 머무르시면서 비를 많이 내리시니 민심 이 비로소 가라 앉아서 모두들 농사일로 돌아감으로 의병의 형세가 갑자 기 세력이 약해지더니 최 익현이 마침내 순창에서 체포 되느니라.
原文: 四月 晦에 先生이 萬頃 金 光贊의 住所에 이르시니 이?에 崔 益鉉 이 忠南 洪州에서 擧義함에 마참 날이 가물어 人心이 洶洶하야 서 로 安業치 못하고 義兵에 投入하는 者가 날로 增加하야 軍勢가 大 振하거늘 이에 數日동안 萬頃에 머루르시면서 비를 만히 내리시니 人心이 비로소 安定하야 各히 農畝로 도라감으로 義兵의 形勢가 드 대여 萎縮하야 崔 益鉉은 마참내 淳昌에서 被擒하니라.
선생께서 최 익현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만경을 떠나 익산 만 중리로 가시며 말씀하시기를 (이번에 최 익현의 거사에 천지신명이 크게 움직였으니 이것은 그의 피 끓는 정성에(血誠)에 감동된 까닭이니라. 그 러나 그 재질이 큰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고 旱災까지 겹쳤으니) 이번 에 최 익현의 거사를 일찍 진압하지 아니하면 조선의 국토가 참화를 입어 무고한 백성들만 죽을 지경에 몰아 넣을 따름이라. 최 익현의 거사가 한 갓 백성들만 죽을 지경에 들게 할 뿐이니 (백성들을 구하는 일에는 전혀 이익이 없는 일이고 더구나 가뭄의 재앙까지 겹치면 백성들이 살아나갈 방법이 전혀 없으리니) 내가 어찌 참고 보고만 있으리요. 그러므로 이제 공사를 행하여 진압하였노라 하시며 최 익현의 만장(輓章)을 지어 종도에 게 주시더니 이러하니라. "글을 공부한 최 익현이 의로운 기상으로 의병 을 일으켰으나 창과 칼은 묶으리니 시월이면 대마도 산천으로 끌려가 고 국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그 후에 과연 그러하니라.
原文: 先生이 崔 益鉉 彼擒의 報를 드러시고 萬頃을 ?나 益山 萬中里로 가시며 가라사대 今番 崔 益鉉의 動을 일즉 鎭壓하지 아니하면 朝 鮮 全土가 慘禍中에 들어 無辜한 生民이 全滅을 當할지라. 崔 益鉉 의 擧事가 한갓 蒼生만 死滅에 驅入할 ?이니 내가 엇지 忍見할 바 리오. 그럼으로 이졔 公事로써 鎭壓하엿노라 하시고 崔 益鉉의 挽 章을 지어 從徒에게 주시니 "讀書崔益鉉, 義氣束劍戟, 十月對馬島, 曳曳山河?" 이라. 그 후에 果然 그러하니라.
이 공사를 마치시기 전에 서울에서 김 갑칠을 돌려 보내실 때에 명하시어 말씀하시기를 구릿골에 가서 형렬, 성백으로 더불어 사십구일동안을 매일 종이등 한 개씩을 힘을 합쳐 만들게 하시고 또 각자 짚신 한 켤레씩 지어 두라 하시니 (말씀하시기를 그 신으로 천하 사람들을 신게 할 것이요, 그 등으로 천하사람들의 어두운 곳을 밝히리라) 갑칠이 돌아와서 일일이 명 하신대로 행하였더니 그 후에 선생이 만경으로부터 구릿골에 이르시어 (짚신은 원평장에 나가서 팔게 하시고) 종이등에는 각각 "음양" 두 글자 를 쓰신 후에 다 불사르시고 갑칠에게 "은행 두 개를 구하여 오라." 하시 니 갑칠이 사방으로 구하여도 얻지 못하다가 그의 이종동생에게 두 개가 있음을 발견하여 가져다 드리니 종이등 불사르신 재 속에 넣은 후에 다시 갑칠을 명하시어 "그 재를 모아 가지고 앞내에 가서 한줌씩 물에 띄워 내 리며 하늘을 우러러 보라." 하시거늘 갑칠이 명하신대로 하늘을 우러러 보니 구름이 재를 집어 물에 띄우는대로 떨어져서 펴져서 흐르는 모양과 같이 무늬무늬 피어나더라.(그 공사에 썼던 은행은 갑칠이 간직하여 두니 라.)
原文: 이 公事를 맛치시기 前에 京城에서 金 甲七을 돌녀 보내실 ?에 命 하야 가라사대 銅谷에 가서 亨烈, 成伯으로 더부러 四十九日동안을 每日 紙燈 一個式 合力하야 製造하고 ? 각히 草鞋 一部式 지어두 라 하심으로 甲七이 도라와서 일일히 命하신 대로 行하엿더니 그 後에 先生이 萬頃으로부터 銅谷에 이르사 紙燈에 각각 "陰陽"二字 를 쓰신 後에 다 불살으시고 甲七다려 銀杏二個를 求하여 오라 하 시니 甲七이 四方으로 求하여도 엇지 못하다가 그의 從弟에게 二個 가 잇슴을 發見하야 가저다 드리니 紙燈 살은 재 속에 너은 後에 다시 甲七을 命하사 그 재를 모도와 가지고 압내에 가서 한 줌식 물에 ?워내리며 하눌을 우러러 보라 하시거늘 甲七이 命하신 대로 하야 하눌을 우러러 보니 구름이 쟤가 집어 ?우는 대로 물에 ?러 저서 펴여 흐르는 模樣과 갓치 무듸 무듸 피어나더라.
그 후에 "전주 동곡 해원신, 경주 용담 보은신" 이라 써서 형렬의 집 벽 위에 붙이시니라.
그 후에 군산에 가시어 또 공사를 보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 라. "이 땅은 수 많은 창고가 있는 땅이니 이 천하로 하여금 비우면 하면 안될지니 일본과 청나라는 만리 길이요, 서양은 구만리 길이라 멀지만 저 천지를 비우더라도 이 천지는 채우도록 하라."
原文: 그 後에 群山에 가사 ? 公事를 보시고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 이러 하니라. "地有群倉地, 使不天下虛, 倭萬里淸萬里洋九萬里, 彼天地虛 此天地盈"
정미(1907)년 가을에 순창 농바우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행하실 때 종도들 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허 미수가 중수한 성천 강선루 일만이천 고물은 녹(祿)줄이 붙어있고 금강산 일만이천봉은 겁기(劫氣)가 끼어 있으니 이 제 그 겁기(劫氣)를 제거하리라." 하시고 김 형렬에게 명하시어 "김 광찬, 이 도삼과 더불어 구릿골에 가서 백지를 한 조각씩 오려서 모실 시(侍)자 를 써서 사방벽에 붙이되 한사람이 하루에 사백자씩 써서 열흘에 마치라. 그리고 그 동안에 아침 저녁으로 청수 스물네그릇 씩을 길어 놓고 밤이면 칠성경을 스물한번씩 생각하며 읽으라." 하시므로 형렬이 명하신대로 행 한 후에 갑칠을 농바우로 보내어 일을 다 마쳤음을 알리니 선생께서 양 한 마리를 사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돌아 가기를 기다리라." 하시니 라. 그 후에 선생께서 구릿골에 이르시어 양을 잡아 그 피를 일만이천 시 (侍) 글자의 머리에 바르시고 말씀하시기를 "그 글자 모양이 러시아 병정 (兵丁)과 같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사기(沙器)는 김제로 보내리 라." 하시더니 마침 김제 수각에 사는 임 상옥이 오거늘 청수를 담았던 사기그릇을 개장국에 씻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인부를 많이 부릴 때에 써라." 하시니라.
原文: 丁未 秋에 淳昌 籠巖에 머무르시며 公事를 行 하실 새 從徒다려 일 너 가라사대 許 眉?가 重修한 成川 降仙樓 一萬二千 고물은 祿줄 이 붓터잇고 金剛山 一萬二千峯은 怯氣가 ?어 잇스니 이졔 그 怯 氣를 除?하리라 하시고 金 亨烈을 命하사 金 光贊, 李 道三으로 더부러 銅谷에 가서 白紙를 一方寸式 오려서 侍字를 써서 四壁에 부치되 한 사람이 하로에 四百字式 써서 十日에 맛치라. 그리고 그 동안에 朝夕으로 淸水 二十四器식 길어 놋코 밤이면 七星經 三七遍 식 念誦하라 하시거늘 亨烈이 命하신 대로 行한 後에 甲七을 籠巖 으로 보내여 일을 다 마첫슴을 告하니 先生이 羊一頭를 사주시며 가라사대 나의 도라가기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그 後에 先生이 銅 谷에 이르사 羊을 잡어 그 피를 一萬二千侍字의 머리에 발으시고 가라사대 그 글자 모양이 아라사 兵丁과 갓다 하시고 ? 가라사대 沙器는 金堤로 보내리라 하시더니 마참 金堤 水閣 林相玉이 이르거 늘 淸水 깃든 沙器를 狗湯에 씨처 주시며 가라사대 人夫를 만히 부릴 ?에 쓰라 하시니라.
순창 피노리에 계실 때 (농바우 박 장근의 집에 이르시어 종도들에게 말 씀하시기를 "이곳에 큰 기운이 묻혀 있으니 이제 풀어 쓰리라." 하시고 "전 명숙과 최 익현은 그 사람이 아니므로 도리어 이곳에서 해를 입었노 라." 하시고 공사를 행하실 때에) 황 응종이 오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 를 "고부사람이 오니 능히 바둑판을 운전하리라." 하시고 "영웅들이 이 땅 에서 날을 보내며 때를 기다리니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될 때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바둑판에 죽은 돌과 같구나." 라는 글을 외우시 고 그 후에 최 수운과 전 명숙의 원을 풀어 주신다 하시며 사명기를 각 한 폭씩 지어서 높은 소나무 가지에 매달았다가 다시 떼어서 불사르시니 라.
原文: 淳昌 避老里에 계실 새 黃 應鍾이 이르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古阜 사람이 오니 바돌판을 可히 운전하리라 하시고 "英雄消日大中華, 四海蒼生如落子" 라는 글을 외우시고 그 後에 崔 水雲과 全 明淑의 寃을 ?으신다 하사 司命旗를 各一幅식 지어서 놉흔 솔가지에 다 럿다가 다시 ?여서 불살으시니라.
정미(1907)년 12월에 고부 와룡리에 이르시어 신 경수의 집에 머무르시면 서 종도 이십여명을 같은 동네 문 공신의 집에 모으시고 정의도(情誼圖) 를 써서 붙이시니 그 모양은 이러하니라. 백지에 "천지지주장(天地之主 張),만물지수창(萬物之首倡), 음양지발각(陰陽之發覺)" 이라고 쓰시며 바 둑판 중앙에 다섯점을 찍어 배열하는것과 같이 정의(情誼) 두 글자를지 면 중앙과 네 군데에 배치하여 쓰시고 (왼쪽 아래에 인사각지(人事刻之) 라 쓰시고 중앙 하단에 정의 위에 홀생홀유(忽生忽有)라 쓰시고 오른쪽 아래에 무신사월십일일(戊申四月十一日)을 꺼꾸로 쓰시고) 문 공신의 집 벽에 붙이시고 요(堯)임금의 "역상일월성진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 時)"를 해설하여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해와 달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해와 달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빈 그림자라." 하시고 "요임금이 비로 소 해와 달의 운행법칙을 알아서 때를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나니 이로부 터 사람들이 하늘의 혜택을 입고 땅의 이로움을 아낌없이 누리게 되었느 니라." 하시니라. 그리고 "해와 달은 사심없이 만물을 다스리고 강과 산은 자기 주어진 길을 따라 만물을 포용하여 감싸고 흐르느니라.(日月無私治 萬物 江山有道受百行)"을 외우시며 선기옥형도수(璿璣玉衡度數)를 보실 때 경수의 집에 '저울 갈고리도수'를 정하시고 응종의 집에 '저울추도수'와 공신의 집에 '저울 끈도수'를 정하시고 또 경수의 집에 '日月大御命 度數' 와 공신의 집에 '天地大八門度數'를 정하신 후에 晝夜로 번갈아 세 집을 왕래하시며 공사를 행하시고 박 공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후천 오만 년 첫 공사를 행할 터인데 공우가 아니면 못할지니 공사를 말하라" 하시 므로 공우가 아는 것이 부족하여 무엇을 말씀드야 할지 모르겠다고 겸손 하게 사양하다가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기를 "선천에는 젊은 과부가 수절 한다하여 빈방을 지켜 적막하게 늙어 가는 것이 잘못된 일이오니 후천에 는 이런 폐해를 없애시어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각 맞이하게 하여 아는 사람을 모두 청한 후 기존의 예법을 버리고 간단하게 예를 차려서 다시 가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좋을 줄 아 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칭찬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네가 아니면 이 공사 를 못하겠음으로 너에게 맡겼더니 대단히 잘하였도다. 이제 결정한 공사 가 후천 오만년을 내려가느니라." 하시니라
原文: 十二月에 古阜 臥龍里에 이르사 申 京守의 집에 머므르시며 從徒 二十餘人을 同里 文 公信의 집에 모으시고 "天地之主張, 萬物之首 唱, 陰陽之發覺"이라 쓰시며 棋局 中央에 다섯 將點을 列置함과 갓 치 "情誼" 二字를 紙面四隅와 中央에 列書하사 文 公信의 집 壁上 에 붓치시고 堯의 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를 解說하야 가라사대 天地 가 日月이 아니면 空殼이오. 日月은 知人이 아니면 虛影이라. 唐堯 가 비로소 日月의 法을 알어서 ?를 百姓에게 알럿스니 天惠와 地 利가 일로부터 人類에게 遺漏업시 享有케 되엿나니라 하시고 朴 公 又에게 일너 가라사대 後天 五萬年 첫公事를 行할 터인대 公又가 아니면 못할지니 公事를 말하라. 公又- 知識이 업서 告達 할 바를 모른다 하야 謙讓하다가 良久에 엿주어 가로대 先天에는 靑春少婦 가 守節한 다하야 空閨를 직혀 寂寞히 늙어버리는 것이 不可하오니 後天에는 이 弊害를 除하사 젊은 寡婦는 젊은 鰥夫를 늙은 寡婦는 늙은 鰥夫를 各各 가려서 知舊를 一一히 請하야 公衆禮席을 버리고 禮를 갓추어 改嫁케 하시는 것이 조흘 줄 아나이다. 先生이 賞贊하 사 가라사대 네가 아니면 이 公事를 못하겟슴으로 네게 맡겻더니 대단히 잘하엿도다. 이졔 決定한 公事가 五萬年을 나려 가나니라.
또 공신의 집 창문에 구멍을 뚫어 놓고 공우와 모든 종도들을 줄지어 서 게 하시고 담뱃대를 들고 말씀하시기를 "서로 번갈아 가며 담뱃대를 빈구 멍에 대고 입으로 북소리를 내면서 돌아라." 하시니 종도들이 명하신대로 몇 번을 하니 사방하늘에서 천둥소리가 크게 일어나는지라. 이에 천지대 신문을 열고 공사를 행하실 때 김 형렬, 김 자현, 문 공신, 박 장근, 이 화 춘등 이십여인의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문 공신의 집에 있으면서 비록 관청에서 사람이 잡으러 올지라도 두려워 하지말고 나의 있는 곳을 묻거든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라. 만일 관청에 잡혀가서 화를 당하는 것이 두려운 마음이 있다면 제각기 흩어져서 마음대로 돌아 가라." 하시니 모든 사람은 다만 이상하게 여길 따름이더니 마침 이 동네 관할 면장 양모와 같은 동네 이장이 문 공신의 집에 들어오거늘 선생께서 문득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지공사를 행하여 천하를 바로 잡으려 고 하는데 너희들이 어찌 이런 음모에 참여하느냐." 하시니 면장과 그 동 네 이장이 선생의 그 말씀을 듣고 의병으로 잘못 판단하여 관청에 고발하 니라.
原文: ? 公信의 집 門에 孔門을 ?러 놋코 公又를 爲首하야 모든 從徒를 列立케 하시고 煙竹을 들며 가라사대 서로 替番하야 물초리를 門孔 에 대고 입으로 북소리를 하며 돌라. 從徒들이 命하신 대로 몃번함 에 四方에서 天鼓聲이 大發하는지라. 이에 天地大神門을 열고 公事 를 行하실 새 金 亨烈, 金 自賢, 文 公信, 朴 壯根, 李 化春等 二十 餘人의 從徒에게 일너 가라사대 너희는 文 公信의 집에 잇서 비록 官吏가 올지라도 畏怯치말고 나의 住所를 뭇거든 隱暐치 말고 實告 하라. 만일 官吏에게 붓들녀서 禍厄을 當하기에 畏怯心이 잇거든 各히 解散하라. 모든 사람은 다만 異常히 알 ?름이러니 마참 所管 面長 梁某와 同里 里長이 文 公信의 집에 들어오거늘 先生이 문듯 ?지저 가라사대 너희들이 엇지 이런 天地公事場에 들어오나뇨 하 시거늘 面,里長이 그 말삼을 듯고 義兵으로 誤解하야 官府에 告發 하니라.
정미(1907)년 12월 25일에 무장한 순검 수십인이 갑자기 문 공신의 집을 포위하고 모든 사람을 체포하여 묶은 후에 선생께서 계시는 곳을 묻거늘 모든 사람이 비로소 선생께서 하신 말씀을 깨닫고 신 경수의 집에 선생께 서 계심을 바른대로 말하니 순검들이 다시 달려가서 선생을 붙들어 모두 스물한명을 고부 경무청으로 잡아가니라. 이 일이 있기 전에 김 광찬과 박 공우는 정읍 차 경석의 집으로 보내시고 신 원일은 태인 신 경원의 집 으로 보내시니 대개 박 공우는 여러번 관재에 곤욕을 당하였음을 아시고 그 화를 면하게 하심이오. 광찬과 원일은 성질이 과격함을 아시고 그것을 기피하여 참석하지 못하게 하심이더라. 26일에 경관이 선생과 그 아래 종 도들을 심문 한 후에 모두 감옥에 가두니라.
原文: 十二月 二十五日에 武裝巡檢 數十人이 突然히 文 公信家를 包圍하 고 모든 사람을 捕縛 한 後에 先生의 去處를 뭇거늘 모든 사람이 비로소 先生의 말삼을 ?닷고 申 京守의 집에 계심을 直告하니 巡 檢들이 다시 달녀가서 先生을 붓드러 合二十一人을 古阜 警務廳으 로 拏去하니라. 이 일이 나기 前에 金 光贊과 朴 公又는 井邑 車 京石의 집으로 보내시고 申 元一은 泰仁 辛 京元의 집으로 보내시 니 대개 朴 公又는 여러 번 官災에 困辱을 當하엿슴을 알으시고 그 禍를 免케 하심이오, 光贊과 元一은 性質이 過剛함을 忌하야 不參 케 하심이러라. 二十六日에 警官이 先生과 밋 從徒를 訊問한 後에 모다 獄中에 拘置하니라.
이 일이 있기전에 선생께서 미리 이 일에 쓰기 위하여 약간의 돈을 준비 하여 갑칠에게 맡기시면서 경석에게 전하라 하시더니 갑칠이 이 일이 있 고 난 후에 정읍에 가서 그 돈을 경석에게 전달하니 경석이 고부로 와서 이불과 식사를 차입하더라. 간수중에 형렬과 자현을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의 편의를 돕기 위하여 다른 조용한 감방으로 옮기거늘 형렬이 간수에 게 청하여 선생까지 옮기시게 되니라. 선생께서 다른방으로 옮기신 후에 형렬과 자현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세사람이 모이면 관장을 일을 처결 한다 하니 우리 세사람이면 무슨 일을 해결하지 못하리오." 하시고 또 자 현에게 가만히 일러 말씀하시기를 "비록 십만명이 이러한 위험에 빠졌을 지라도 조금도 상해가 없이 다 풀리게 하여 데리고 나가리니 안심하라." 하시니라. 밤에 뇌전이 크게 일어 나거늘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서양에서 천자신이 넘어옴이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천자신은 넘어 왔 으나 너희들이 굳은 마음을 가지지 못함으로 인하여 장상신이 응하지 아 니하느니라." 하시니라.
原文: 이 몬저 先生이 이 일에 쓰기 爲하야 若干의 金錢을 準備하야 甲七 에게 맛기사 京石에게 傳하라 하섯더니 甲七은 이 일이 난 後에 井 邑에 가서 그 金錢을 京石에게 傳하니 京石이 古阜로 와서 衾具와 食事를 差入하니라. 看守中에 亨烈과 自賢을 아는 사람이 잇서서 그의 便宜를 돕기 爲하야 다른 從容한 獄房으로 옴기거늘 亨烈이 看守에게 請하야 先生?지 옴기시게 되니라. 先生이 다른 房으로 옴기신 後에 亨烈과 自賢다려 일너 가라사대 三人會席에 官長의 公 事를 處決한다하니 우리 三人이면 무슨 일을 解決치 못하리오. ? 自賢다려 가만히 일너 가라사대 비록 十萬大衆이 이러한 禍厄에 ? 젓슬지라도 秋毫의 傷害가 업시 다 ?니게 하야 다리고 나가리니 安心하라 하시니라. 除夕에 雷電이 大發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 는 西洋에서 天子神이 넘어옴이라 하시고 ? 가라사대 天子神은 넘 어 왓스나 너희들이 血心을 가지지 못함을 因하야 將相神이 應하지 아니한다 하시니라.
무신(1908)년 새해 첫날에 눈이 크게 내리고 날씨가 매우 추워지거늘 선 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대공사를 마치신 까닭이라." 하시니라. 순검 이 여러 사람을 취조하여도 아무런 의병의 증거를 얻지 못하고 선생의 말 씀은 미친 사람의 이야기로 알아 듣느니라. 정월 10일에 옥문을 열고 여 러 사람을 석방한 후 오직 선생만 남겨 두었다가 정월 30일 경칩절에 석 방하니라.
原文: 戊申 元日에 눈이 크게 나리고 日氣가 酷冷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大公事를 處決함이라 하시니라. 警官이 여러 사람을 取調하여 도 아모 義兵의 證據를 엇지 못하고 先生의 말삼은 狂言으로 돌니 더라. 正月十日에 獄門을 열고 여러 사람을 釋放한 後 오직 先生만 남겨 두엇다가 三十日 驚蟄節에 ? 釋放하니라.
이 때에 차 경석, 안 내성이 돈 백이십냥을 가지고 와서 새 옷을 지어 드 리려 하니 선생께서 그만두게 하시고 그 돈을 모든 순검과 가난한 사람에 게 나누어주시고 삼일을 고부 손바래기 본댁에서 머무르신 후에 와룡리 황 응종의 집으로 가시니 차 경석이 선생을 따르니라.
原文: 이?에 車 京石, 安 乃成이 金錢 一百 二十兩을 가지고 와서 新依 를 지어 드리려 하거늘 先生이 禁止하시고 그 金錢을 모든 巡檢과 貧窮한 사람에게 난호아 주시고 三日을 留하신 後에 臥龍里 黃 應 鍾의 집으로 가시니 車 京石이 ?르니라.
감옥에 계셨을 때 모든 종도들은 선생께서 천지를 개벽하사 선경을 열어 모두에게 복록을 마련하여 주실 줄 믿고 있었는데 뜻밖에 이런 곤경에 빠 지게 되니 이것은 허망한 말로 우리를 기만함이라 하여 모두 선생을 원망 하고 그 중에 문 공신, 이 화춘, 박 장근 세 사람은 더욱 분노하여 자주 심한 욕을 하고 순검에게 선생을 모함하고 다니더니 삼월에 이르러 이 화 춘은 의병에게 총을 맞아 죽고 박 장근은 의병에게 구타를 당하여 뼈가 부러지게 된지라. 선생께서 들으시고 문 공신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 도 마음을 고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의 노여움이 있으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화춘은 귀신으로나 좋은 곳에 가게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原文: 在囚하섯슬 ?에 모든 從徒들은 先生?서 天地를 開闢하사 仙境을 열어 各히 福祿을 마련하여 주실 줄 미덧니 ?밧게 이런 禍地에 ? 지게 되니 이는 虛無한 말로 우리를 欺?함이라 하야 모다 先生을 怨望하고 文 公信, 李 化春, 朴 壯根 三人은 더욱 憤怒하야 자조 悖說을 發하며 警官에게 先生을 ?毁하더니 三月에 이르러 李 化春 은 義兵에게 砲殺되고 朴 壯根은 義兵의게 毆打를 當하야 折骨이 된지라. 先生이 드러시고 文 公信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도 마음을 곳치라. 그러치 아니하면 天怒가 잇스리라. ? 가라사대 "李 化春은 鬼神으로나 조흔 곳에 가게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 라.
補充註解: 고부화란에 구속되어 갇혔던 이십 명의 종도들중에 김 형렬, 김 자현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흩어져 다시는 선생을 따르지 아니하니라.
補註原文 第六章二十六節: 古阜禍亂에 拘囚되엿든 二十人中에 金 亨烈, 金 自賢 二人外에는 모다 흣허저 다시는 先生을 ?르지 아니하니 라.
무신(1908)년 2월2일에 본댁으로부터 태인 신 경원의 집으로 가시어 그 곳에서 한 달동안 머무르실 때 최 창조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계란을 입혀 전을 만들어 대그릇에 담아서 정결한 곳에 두고 또 나의 옷 한 벌을 지어두라. 장차 쓸 데가 있도다." 하시니 창조가 대답하고 돌아가서 돼지고기 명하신 대로 전을 부치고 의복을 만들어 두 니라.
原文: 二月二日에 本宅으로붓허 泰仁 辛 京元의 집에 이르사 그곳에서 一 朔동안 머무르실 새 崔 昌祚에게 命하야 가라사대 猪一首를 宰하야 鷄卵으로 전야를 부처 竹器에 담어서 淨潔한 곳에 두고 ? 내 衣服 한 벌을 지어두라. 將次 쓸대가 잇노라. 昌祚가 應命하고 猪肉전야 와 衣服을 만드러 두니라.
무신(1908)년 3월에 구릿골에 이르사 형렬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네 가 태인에 가서 신 경원, 최 내경을 데리고 백암리 최 창조의 집에 가서 일전에 준비하여 둔 옷 한 벌을 세 사람에게 한가지씩 나누어 입히고 돼 지 한 마리를 잡아 삶아서 익힌 뒤에 오늘 저녁 인적이 그칠 때를 기다려 그 집 정문밖에 땅을 파고 그 앞에 청수 한 그릇과 화로를 놓고 깨끗한 그릇에 청주와 문어와 돼지고기전을 넣고 그 위에 두부로 덮어 그 구덩 이 속에 넣고 다시 한사람은 돼지고기 전을 들어 청수와 화로를 넘기고 한 사람은 그것을 받고 한사람은 다시 받아 그 구덩이 속에 넣은 뒤에 흙 으로 덮으라." 하여 자세히 일러주시고 빨리 돌아오라 하시니 형렬이 명 을 받들어 태인에 가서 일일이 지휘한 후에 빨리 돌아와 집에 들어서니 밤이 깊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서 폭우가 쏟아지며 천둥과 번 개가 크게 일어 나는지라. 선생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이때쯤 일을 행 하겠느냐." 하시므로 형렬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행할 때가 꼭 되었 겠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변산과 같은 큰 불덩이가 나타 나 구르면 온 세계가 재가 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 불을 묻었노 라." 하시니라.
原文: 三月에 銅谷에 이르사 亨烈에게 命하야 가라사대 네가 泰仁에 가서 辛 京元, 崔 乃敬을 다리고 白巖里 崔 昌祚의 집에 가서 일즉 準備 하여 둔 衣服한 벌을 三人이 한가지식 난호아 입고 猪一首를 잡어 서 煮熬한 後 오늘 저녁 人跡이 그칠 ?를 기다려 그 집 正門밧게 ?을 파고 그 압헤 淸水一器와 火爐를 놋코 淨器에 胡酒와 文魚와 전야를 넛고 그우에 豆腐로 덥허 그 구덩이 속에 넛코 다시 한 사 람은 猪肉전야를 들어 淸水와 火爐를 넘기고 한 사람은 그것을 밧 고 한 사람은 다시 바더 그 구덩이 속에 너은 後에 흙으로 덥흐라 하야 詳細히 일너주고 ?니 도라오라. 亨烈이 奉命하고 泰仁에 가 서 일일히 指揮한 後에 ?니 도라와 집에 드러서니 밤이 깁고 검은 구름이 하눌을 덥허서 暴雨가 쏘다지며 雷電이 大作하는지라. 先生 이 무러 가라사대 이 ?? 일을 行하겟나냐. 亨烈이 對하야 가로대 行할 ?가 ? 되엿겟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邊山과 갓흔 불덩이 가 낫허나 굴면 온 世界가 焦土될지라. 그럼으로 이졔 그 불을 무 덧노라 하시니라.
무신(1908)년 사월에 (공신의 집에 정의도(情誼圖)를 그려 붙이시고 구릿 골로 돌아오신 뒤에) 백 남신으로부터 돈 천냥을 가져오시어 구릿골 김 준상의 집에 방 한 칸을 수리하시어 약국을 차리실 때 (공우로 하여금 고 부에 가서 장판을 사오라 하시어 깔으시며 말씀 하시기를 이것은 선인포 전(仙人布氈)의 기운을 쓰는 것이로다 하시고) 목수 이 경문을 불러 약장 (藥藏)과 궤를 만들라 명하시고 그 크기의 치수와 만드는 방법을 일일이 가르치시며 기한을 정하여 주시며 그 기한을 넘기지 말고 마치라고 하시 더니 목수가 기한내에 마치지 못하거늘 선생께서 그 목수로 하여금 목재 를 한 곳에 모아 놓고 하고 그 앞에 꿇어 앉게 하신 후에 그 정한 날짜를 어긴 것을 꾸짖으시며 한 봉서(封書)를 목수에게 주어 불사르게 하시니 문득 마른 하늘에 번개가 번쩍이는지라. 목수가 두려워 몸을 떨며 땀을 흘리는 것을 보고 다시 명하시어 "속히 마치라." 고 말씀하시더니 목수가 손이 떨리는 수전증(手戰症)이 생겨서 한 달이 넘은 후에야 비로소 끝마 치니 선생께서 목수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약장(藥藏)에 번개가 들어야 할테니 네가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정결히 한 후 정화수 한 그릇을 약장 앞에 놓은 후에 정성스런 마음으로 절하라." 하시니라. 목수가 명하신 대 로 행하니 문득 맑은 하늘에 번개가 크게 일어나더라. 약장과 궤를 약방 에 안치(安置)하신 후 갑칠을 명하시어 매일 아침 일찍 약방을 깨끗이 청 소하게 하시고 모든 문을 닫고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시고 21일을 지낸 뒤 에 비로소 방을 쓰실 때 통감(通鑑), 서전(書傳),(주역(周易)) 각 한 질 씩과 철연자(鐵硏子), 약칼등 모든 약방에 쓰는 기구를 비치하시니라.
原文: 四月에 白 南信으로부터 돈 千兩을 가저오사 銅谷 金 俊相의 집에 房一間을 修理하고 葯局을 벌이실 새 木工 李 京文을 불너 葯藏과 机를 製造하라 命하시고 그 長廣尺寸과 製造方法을 一一히 가라치 시며 期限을 定하야 完工하라 하섯더니 木工이 期限內에 完工치 못 하거늘 先生이 木工으로 하여금 그 材木을 한곳에 모하놋코 그 압 헤 ?坐케 하신 後에 그 違期함을 ?지즈시며 한 封書를 木工에게 주어 불살니시니 문 듯 白日에 번개가 번적이는지라. 木工이 戰慄 하야 ?을 흘니더라. 다시 命하사 速히 完工하라 하시니 木工은 手 戰症이 나서 한 달이 넘은 後에 비로소 完工하거늘 先生이 木工다 려 일너 가라사대 葯藏에 번개가 들어야 할지니 네가 몸을 정히 싯고 衣冠을 整齊하고 淨水一器를 葯藏압헤 노은 後에 誠心으로써 절하라. 木工이 命하신 대로 行하니 문듯 晴天에 번개가 크게 發하 더라. 葯藏과 机를 藥房에 安置한 後에 甲七을 命하사 每日 早朝에 藥房을 淨掃하시며 窓戶를 緊閉하야 사람의 出入을 禁하시고 二十 一日을 지낸 뒤에 비로소 房을 쓰실 새 統監, 書傳各 一秩과 鐵硏 子, 藥刀등 모든 藥局 器를 備置하시니라.
그 후에 전주 용머리고개에 이르사 박 공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천지 에 약기운이 평양으로 내렸으니 네가 오늘 평양에 가서 약재를 구하여 오 라." 하시거늘 공우가 명을 받들어 행장을 수습하여 다시 명령이 있기를 기다리더니 이날 밤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말씀하시기를 "평양에서 약 기운이 전주로 왔도다." 하시고 김 병욱을 불러 "약 삼백냥 어치를 사오 라." 하신 후) 몇 일 후에 구릿골로 돌아오시어 밤나무로 약패(藥牌)를 만드시어 약패 한 면에 "만국의원(광제국)" 이라 새기시고 그 글자에 경 면주사(鏡面朱沙)를 넣으신 후에 공우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약패 를 원평 길거리에 붙이라." 하시므로 공우가 명을 받들고 원평으로 가려 하거늘 선생께서 물으시기를 "이 약패를 원평에 붙일 때 경관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려 하느뇨." 하시니 공우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만국의 원을 설립하여 죽은 자를 다시 살리며 눈먼 자를 보게 하며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그리고 모든 크고 작은 병을 다 낫게 하려한다 하겠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으니 꼭 그대로 하라." 하시고 약패를 불사르시니라.
原文: 그 後에 全州 龍頭峙에 이르사 朴 公又에게 일너 가라사대 天地에 서 藥긔운이 平壤으로 나렷스니 네가 明日 平壤에 가서 藥材를 求 하여 오라 하시거늘 公又가 應命하고 行裝을 收拾하야 다시 命令이 잇기를 기다리더니 이날 밤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고 數日後에 銅谷 으로 도라오사 栗木으로 藥牌를 製造하사 牌面에 "萬國醫院"이라 刻하야 字?에 鏡面朱沙를 박으신 後에 公又에게 命하야 가라사대 이 藥牌를 院坪 길거리에 부치라. 公又가 應命하고 院坪으로 가려 하거늘 先生이 무러 가라사대 이 藥牌를 院坪에 붙일 ?에 警官이 무르면 엇더게 對答하려 하나뇨. 公又가 對하야 가로대 萬國醫院을 設立하야 죽은 者를 다시 살니며 눈먼 者를 보게 하며 안즌방이를 것게 하며 其外 모든 大小疾病을 다 낫게 한다 하겟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네 말이 올흐니 ? 그대로 하라 하시고 藥牌를 불살으시 니라.
약장은 아래에 큰 칸을 통으로 두고 (그 위로 다시 큰 칸을 두어 셋으로 나누어 서랍을 두었고) 다시 그 위에 약 넣는 칸을 아래로 세 칸 옆으로 다섯 칸 합하여 열다섯 칸인데 한 가운데 칸에 "단주수명(丹朱受命)" 이 라 쓰시고 그 속에 목단피(牧丹皮)를 넣고 "천둥과 심한 비바람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는다.(烈風雷雨不迷)" 라고 쓰시고 또 칠성경(七星經)을 종이에 세로로 쓰신 후에 그 끝에 "느린 걸음으로 묵묵히 행하고 서로 재 촉하며 이끌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禹步相催 登陽明)" 이라 가로로 쓰 셔서 약장 위에서 부터 뒤로 내려 붙였으며 궤 안에는 "팔문둔갑(八門遁 甲)" 이라 쓰시고 그 글자를 눌러서 "설문(舌門)" 두 글자를 불로 새겨 쓰신 후에 그 주위에 붉은 색 스물 네점을 찍으시니라.
原文: 藥藏은 아래에 큰 간을 두고 우으로 藥 넛는 間이 縱三橫五 合十五 間인대 한가운대 간에 "丹朱受命"이라 쓰시고 그 속에 牧丹皮를 넛 코 "烈風雷雨不迷"라 쓰시고 ? 七星經을 洋紙에 縱書하신 後 그 末端에 "禹步相催登陽明"이라 橫書하야 藥藏 우으로부터 뒤로 내려 부첫스며 机안에는 "八門遁甲"이라 쓰시고 그 글자를 눌너서 "舌 門" 二字를 烙印하신 後 그 周圍에 二十四點을 紅色으로 ?으시니 라.
그 후에 전주로부터 약재를 매입하셨는데 마침 비가 오거늘 선생이 말씀 하시기를 "이 비는 약탕기에 넣을 약탕 물이라." 하시니라.
原文: 그 後에 全州로부터 藥材를 買入하섯는대 마참 비가 오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藥湯水라 하시니라.
약재는 (목단피, 천화분, 금은화 세가지외에) 스물네종류인데 인삼이 들지 아니하였거늘 황 응종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속말에 "약국에는 인삼이 빠지지 않는다 하는데 어찌 이 스물네종류의 약재중에 약재의 영장인 인 삼이 들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삼의 정기는 가는 곳이 있느니라." 하시므로 응종이 다시 여쭈어 묻기를 "어디로 가나 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형렬에게로 가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스물네 가지 약종만 잘 쓰면 만국의원이 되리라." 하 시니라.)
原文: 藥材는 二十四種인대 人蔘이 들지 아니하엿거늘 黃應鍾이 엿주어 가로대 俗言에 "藥局에 人蔘이 ?지지 안는다" 하는대 엇지 이 二 十四種中에 藥中 靈長이 되는 人蔘이 들지 아니하엿나잇가. 先生이 가라사대 蔘精은 가는 곳이 잇나니라. 應鐘이 가로대 어대로 가니 잇가. 가라사대 亨烈에게로 갓나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약방 벽위에 "사농공상, 음양(士農工商, 陰陽)" 과 또 다른 여러 글자를 많이 써서 붙이시고 백지로 도배한 후에 자현을 명하시어 그 뜻 가는 대로 밥 사발을 대고 도배한 곳을 오려 떼게하시니 음(陰)자가 나타 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정히 옳도다." 하시고 "음과 양을 말할 때 에는 음을 먼저 읽나니 이는 지천태 괘니라." 하시며 또 말씀하시기를 "약장은 곧 안방의 장농이며 또 신주를 넣어두는 궤라." 하시고 또 말씀 하시기를 "이 종이를 뜯을 날이 빨리 이르러야 하리라." 하시니라.(이 뒤 에 大興里에 가시어 高夫人에게 일러 가라사대 藥欌은 곧 네 농(籠)바리 가 되리라 하시니라.)
原文: 藥房壁上에 "士農工商, 陰陽"과 ? 其外 여러 글자를 만히 써 부치 시고 白紙로 褙附한 後에 自賢을 命하사 그 ? 가는 대로 食?을 대고 褙附한 곳을 올여 ?이니 陰字가 낫허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正히 合하도다. 陰과 陽을 말할 ?에 陰을 몬저 닑나니 이는 地天 泰니라 하시며 ? 가라사대 藥藏은 곳 安葬?이며 ? 神?이니라 하시고 ? 가라사대 이 조희를 ?들 날이 速히 이르러야 하리라 하 시니라.
그 후에 약방에 비치한 모든 물건의 목록을 기록하시어 박 공우와 김 광 찬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물건의 목록을 기록한 것을 금산사에 가지 고 가서 그 곳에 봉안된 석가불상을 향하여 마음속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 서 모신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사르라." 하시니 두사람이 금산사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原文: 그 後에 藥房에 비치한 모든 物目을 記錄하사 朴 公又와 金 光贊을 주시며 가라사대 이 物目記를 金山寺에 가지고 가서 그곳에 奉安된 釋迦佛像을 向하야 마음으로 다른 곳으로 移安한다는 생각을 하면 서 불살으라 하시니 兩人이 金山寺에 가서 命하신 대로 行하니라.
補充註解: 선생께서 화천(化天)하신 후 3년이 지난 신해(1911)년 9월 21 일에 차 경석이 약장과 궤와 모든 비품을 옮겨가고 약국 벽위에 바 른 종이까지 떼어간 후에 비로소 포교운이 열리기 시작하니라. 그 약장을 옮길 때에 김 형렬의 딸이 죽으니 경석이 돈 이십원을 주어 장례를 치르게 하고 모든 기구는 지성실에 봉안 하니라. 또 그후로 금산사 대장전과 석가불상이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으니 선생께 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이라.
補註 第六章三十四節,三十五節: 先生이 化天하신 後 三年 辛亥 九月二十 一日에 車 京石이 藥藏과 机와 모든 備品 을 옴겨가고 藥局 壁上에 발은 조회?지 ?여간 後에 비로소 布敎運이 열니기 始作하니라. 그 藥藏을 옴길 ?에 金 亨烈의 ?이 身死함으로 京石이 金二十圓 을 支拂하야 安葬케하고 모든 器具는 致誠室에 奉安하니라. ? 그 後로 金山寺 大藏殿과 釋迦佛像이 다른 곳으로 옴기게 되엿스니 先 生의 말삼이 一一히 應驗되니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천신은 후사를 두지 못한 신명이요, 황천신은 후사를 둔 신명이라. 중천신은 의지할 곳이 없어서 황천신에게 붙어서 물 과 밥을 얻어 먹어 왔나니 그러므로 원한을 품었다가 이제 내게 하소연을 하므로 이로부터는 중천신에게 복을 맡기어 사사로운 치우침이 없이 고루 나누어 주게 하려 하노라."
原文: 先生이 가라사대 中天神은 後嗣를 두지 못한 神明이오. 黃泉神은 後嗣를 둔 神明이라. 中天神은 依托이 업서서 黃泉神에게 부처 물 과 밥을 어더 먹어왓나니 그럼으로 寃恨을 품엇다가 이졔 내게 하 소연을 함으로 일로부터는 中天神에게 福을 맛기여 偏私가 업시 均 分케 하려 하노라.
하루는 여러날 동안 글을 쓰신 양지로 크게 두루마리를 만드신 후에 광 찬, 형렬, 갑칠, 윤근, 경학, 원일등에게 명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창문과 문을 꼭 닫고 방안에서 이 두루마리를 화로에 불사르되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차게하여 다 타고 난 뒤에 문을 열어라. 일을 하려면 화지진 (火地晉)도 하여야 하느니라." 하시니 모든사람이 명하신 대로 거행할 때 연기가 방안에 충만하여 호흡을 통하기 어려우므로 윤근, 원일은 밖으로 뛰쳐 나가고 남은 사람은 다 타기를 기다려서 문을 여니라.
原文: 하로는 여러날 동안 글을 쓰신 洋紙로 크게 卷軸을 만드신 後에 光 贊, 亨烈, 甲七, 允根, 京學, 元一 等에게 命하사 가라사대 너희는 窓戶를 緊封하고 房中에서 이 글軸을 火爐에 불살으되 煙氣가 房안 에 充滿케하야 다 燒火한 뒤에 門을 열라. 일을 하려면 火地晋도 하여야 하나니라. 모든 사람이 命하신 대로 擧行할 새 煙氣가 房中 에 充滿하야 呼吸을 通하기 어려음으로 允根, 元一은 밧그로 나가 고 남은 사람은 다 타기를 기다려서 門을 여니라.
하루는 황 응종이 오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황천신(黃泉神)이 이르 니 황건역사(黃巾力士)의 숫(數)대를 불사르리라." 하시고 갑칠을 명하시 어 짚 한 묶음을 물에 축여 잘라서 숫대를 만들어 화로에 불사르시니라.
原文: 하로는 黃 應鍾이 이르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黃泉神이 이르니 黃巾 力士의 숫대를 불살으리라 하시고 甲七을 命하사 집 한 뭇을 물 축 여 잘나서 숫대를 만드러 火爐에 불살으시니라.
하루는 백암리 최 창조의 집에 계시면서 창조에게 명하시기를 포대를 만 들어서 벼 서말과 짚 재를 섞어 넣게 하신 후에 황 응종에게 일러 말씀하 시기를 "이 포대를 가지고 너의 집으로 가서 항아리에 물을 붓고 그 속에 담아두고 날마다 한 번씩 물을 휘둘러 저으며 또 식혜 일곱 사발을 빚어 넣으라. 내가 사흘 후에 너의 집으로 가리라." 하시니 응종이 명을 받들고 돌아가서 그 포대를 물에 담가두고 매일 한 번씩 휘둘러 저으니 물빛이 잿빛이 되고 하늘도 또한 사흘 동안 잿빛이 되어 햇빛이 나지 아니하니 라.
原文: 하로는 白巖里 崔 昌祚의 집에 계시사 昌祚를 命하사 布袋를 지어 서 租三斗와 집재를 混和하야 너은 後에 黃 應鍾다려 일너 가라사 대 이 布袋를 가지고 너의 집에 가서 항아리에 물을 붓고 그 속에 담어두고 每日 한 번식 물을 둘너 저으며 또 食? 일곱 사발을 비 저 너으라. 내가 三日後에 너의 집에 가리라. 應鍾이 領命하고 도 라가서 그 布袋를 물에 담어두고 매일 한 번식 둘너 저으니 물빗이 灰色이 되고 하눌빗도 ?한 三日間을 灰色이 되야 햇빗이 나지 아 니하니라.
사흘후에 선생께서 응종의 집에 이르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산하대운(山 下大運)을 거두어 들이리라." 하시고 이날 밤에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서 응종의 머리에 씌우시며 포대에 넣었던 벼를 꺼내어 그 집 사방에 뿌리시 고 백지 일백이십장과 종이 넉장에 글을 써서 식혜에 버무려 섞은 후에 밤이 깊어 인적이 없을 때를 틈타서 시궁 흙 가운데 파묻고 고깔을 쓴 그 대로 얼굴을 씻으라." 하시더니 응종이 명하신대로 하니 양미간에 콩알과 같은 큰 사마귀가 생겨서 손에 만져지더라. 다음날 아침에 벼 뿌렸던 곳 을 두루 살피니 한 낱알도 남아있는 것이 없더라.
原文: 三日後에 先生이 應鍾의 집에 이르러 가라사대 이졔 山河의 大運을 거두어들이리라 하시고 이날 밤에 白紙로 僧帽를 만드러서 應鍾의 머리에 씨우시고 布袋에 너엇든 벼를 ?내여 그 집 사방에 ?리며 白紙 一百二十枚와 洋紙 四枚에 글을 써서 食?에 調合하야 深更 人跡이 업슬 ?를 타서 시금 흙가운대 뭇고 僧帽 쓴 대로 洗面하라 하시니 應鍾이 命하신 대로함에 兩眉間에 콩알과 갓흔 큰 사마귀가 생겨서 손에 거치더라. 翌早에 벼 ?리든 곳을 두루 삷히니 한 낫 도 남어 잇는 것이 업더라.
그 후에 박 공우에게 "마음속으로 육임(六任)을 정하라." 하시거늘 공우가 마음속으로 육임을 생각하여 정할 때 한 사람을 생각하니 선생께서 문득 "불가하다." 하시거늘 다시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정하였더니 이날 저녁 에 공우가 마음속으로 정한 여섯 사람을 부르시어 그들로 하여금 밤중에 등불을 끄고 방 한가운데를 돌아 다니게 하면서 시천주를 읽게 하시니 문 득 한사람이 꺼꾸러 지거늘 모든 사람이 놀래어 주문소리를 그치니 선생 께서 말씀하시기를 "놀래지 말고 돌면서 주문을 계속하라." 하심으로 다 시 계속하여 한 식경을 지낸 후에 주문소리를 그치고 불을 밝혀보니 손 병욱이 넘어져서 죽었는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허물을지 어) 몸이 부정을 타서 그러한 연고라." 하시고 물을 머금어서 얼굴에 뿜 으시니 병욱이 정신을 겨우 돌이키거늘 선생께서 병욱을 불러 말씀하시기 를 "나를 부르라." 하시니 병욱이 목안에 기어가는 소리로 겨우 선생을 부르니 기운이 곧 회복되는지라. 이에 일러 말씀하시기를 "시천주에 큰 기운이 박혀 있도다." 하시고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를 그대로 두었더 라면 밭두렁 사이에 엎어져서 소나 말에게 밟히는 바가 되었으리라." 하 시고 또 일러 말씀 하시기를 "이 후에 괴질이 온 세상을 휩쓸어 (자던 사 람은 누운 자리에서 앉은 자는 그 자리에서 길을 가던 자는 길 위에서 각 기 일어나지도 못하고 옮기지도 못하고 혹은 엎어져서) 몸 돌이킬 틈이 없이 이와같이 사람을 죽일 때가 있으리니 그 위급한 때에 나를 부르라." 하시니라. (공우가 마음속으로 육임을 정 할때 선생께서 불가하다 말씀하 신 그 사람은 수일후에 죽으니라.)
原文: 그 後에 朴 公又다려 마음으로 六任을 定하라 하시거늘 公又가 마 음으로 六任을 생각하여 定할 새 한 사람을 생각하니 先生이 문듯 不可하다 하시거늘 다시 다른 사람으로 밧구어 定하엿더니 이날 저 녁에 公又의 心定한 六人을 불으사 하여금 深夜에 燈불을 ?고 房 가운대서 돌아다니면서 侍天呪를 닑게 하시니 문듯 한 사람이 ?구 러지거늘 모든 사람이 놀내여 呪聲을 그치니 先生이 가라사대 놀내 지 말고 如前히 돌며 呪聲을 繼續하라 하심으로 다시 繼續하야 한 食頃을 지낸 後에 呪聲을 그치고 불을 밝혀보니 孫 秉旭이 ?구러 져 죽엇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몸이 不淨한 연고라 하시고 물을 먹음어서 얼골에 픔으시니 秉旭이 精神을 겨우 도리키거늘 불 너 가라사대 나를 불으라 하시니 秉旭이 목안소리로 겨우 先生을 불으니 긔운이 곳 恢復되는지라. 이에 일너 가라사대 侍天呪에 큰 긔운이 박혀 잇도다 하시고 ? 일너 가라사대 너를 그대로 두엇더 면 田畝사이에 업드러저서 牛馬에게 밟힌바가 되엿스리라. ? 일너 가라사대 이 後에 怪病이 全世를 猛襲하야 몸 도리킬 틈이 업이 이 와갓치 人命을 죽일 ?가 잇스리니 그 危急한 ?에 나를 불으라 하 시니라.
무신(1908)년 6월에 대흥리에 계실 때 공우를 명하시어 각처를 순회하여 여러 종도들로 하여금 "스무하루동안 잠자지 말고 새벽에 한 시간씩만 자 라." 하시니라. 경석이 여러 날을 잠자지 못하여 매우 피곤하더니 밖에 나 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문앞 모시밭가에 쓰러져 잠이 들었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니라.
原文: 六月에 大興里에 계실 새 公又를 命하사 各處에 巡廻하야 여러 從 徒로 하여금 二十一日間을 잠자지 말고 每曉에 한 時間식만 자라 하시니라. 京石이 여러날 자지 못함으로 甚히 疲困하야 밧가에 昏 倒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天子를 圖謀하는 者는 다 죽으리라 하시 니라.
하루는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에 물기운(水氣)이 말랐으니 물기운을 돌려야 하리라." 하시고 그 뒷산 피난동 안씨 재실(齋 室)에 가시어 그 집 앞 우물을 댓가지로 한 번 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음양이 고르지 못하니 재실에 들어가서 어떠한 연고인지 물어보라." 하 시므로 안 내성이 명을 받들어 재실에 들어가 물으니 재실을 지키던 남자 가 삼일전에 죽고 그 아내만 있거늘 돌아와서 그 일을 아뢰자 또 말씀하 시기를 "다시 행랑채에 가보라. 딴 기운이 버티고 있도다." 하시므로 안 내성이 행랑채에 들어가 보니 봇짐행상 남녀 두사람이 들어 있거늘 돌아 와서 그 사실을 말씀드리니 이에 재실 마루에 오르사 모든 사람들로 하여 금 서쪽하늘을 바라보고 만수(萬修)를 소리쳐 부르게 하시며 말씀하시기 를 "이 가운데 동학가사(東學歌詞)를 가진 자가 있으니 가져오라." 하시 니 과연 한 사람이 동학가사를 내어 올리고 물러 가거늘 선생께서 책 중 간을 펴시고 한 줄을 읽으시니 다음 구절이라. "시운벌가벌가(詩云伐柯伐 柯)하니 기측불원(其則不遠)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을 어길 바 없지마는 이는 도시(都是) 사람이요, 부재어근(不在於近)이라. 눈앞에 있는 일(目 前之事)을 가볍게 여기고 깊이 생각하고 헤아림이 없이(深量없이) 하다가 서 앞으로 닥쳐 올 일이(未來之事) 순조롭지 않으면 그 아니 내 한인가." 선생께서 처음에 작은 소리로 한 번 읽으시니 맑은 하늘에 문득 천둥소리 가 일어나거늘 다시 크게 읽으시니 천둥이 대포소리와 같이 일어나서 천 지를 진동시키며 화약냄새가 코를 찌르고 또 지진이 강렬히 일어나서 모 든 사람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늘 선생께서 안 내성에게 명하여 각각 일 으키게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여러 從徒에게 일너 가라사대 이졔 天下에 水氣가 沽竭하엿 스니 水氣를 돌녀야 하리라 하시고 그 뒷山 避亂洞 安氏 齋舍에 가 사 그 압 우물을 댓가지로 한번 저으시고 가라사대 陰陽이 골으지 못하니 齋舍에 가서 엇더한 緣故인지 물으라. 安 乃成이 應命하고 齋舍에 들어가 물으니 齊直은 三日前에 死去하엿고 그 妻만 잇거늘 도라와서 事由를 알왼대 ? 가라사대 다시 行廊에 가서 보라 ? 긔 운이 支持하여 잇도다. 乃成이 그 行廊에 드러가서 보니 行商하는 男女 二人이 들어 잇거늘 도라와서 事實을 告한대 先生이 이에 齋 舍廳上에 올으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西天을 바라고 萬修를 高唱 케 하시며 가라사대 이 가운대 東學歌詞를 가진 者가 잇스니 가저 오라 하시니 果然 한사람이 歌詞를 내여 올니고 물너나거늘 先生이 그 冊中間을 펴고 한 절을 닑으시니 하엿스되 "詩云伐柯伐柯여 其 則不遠이라. 내압헤 보는 것을 어길 바 업지마는 이는 都是사람이 오 不在於近이라. 目前之事 쉽게 알고 深量업시 하다가서 未來之事 갓잔하면 그 아니 내 恨인가."라 하니라. 처음에 微聲으로 한 번 닑 으시니 白日에 문듯 雷聲이 發하거늘 다시 크게 닑으시니 雷聲이 大砲소리와 갓치 이러나서 天地를 轟動하며 火藥내음이 觸鼻하고 ? 地震이 强烈히 이러나서 모든 사람이 精神을 일코 업드러지거늘 先生이 乃成을 命하사 各히 이르키시니라.
하루는 선생께서 태인 새올에서 백암리로 가실 때 공우가 모시고 따르더 니 문득 관운장의 모습으로 변하여 돌아보시며 물어 말씀하시기를 "내 얼 굴이 관운장의 모습과 같으냐." 하시니 공우는 놀래어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서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더니 그와 같이 세 번을 물으 시므로 이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를 "관운장과 흡사하나이다." 하니 그 후 로는 원래 모습으로 회복하시고 경학의 집에 이르러 공사를 행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先生이 泰仁 새올서 白巖里로 가실 새 公又가 侍從하더니 문 듯 關雲長의 形貌로 變하사 도라보시며 무러 가라사대 내 얼골 이 關雲長의 形貌와 갓흐냐 하시니 公又는 놀내여 엇더케 對答하는 것이 조흘지 몰나서 알지 못한다고 對答하엿더니 그와 갓치 셰 번 을 물으심으로 이에 對하야 가로대 關雲長과 恰似하니이다 하니 그 後로는 本貌를 回復하시고 京學의 집에 이르러 公事를 行하시니라.
(원본에 누락)
다음날에 한 공숙이 오거늘 선생께서 친히 술을 부어 공숙에게 주시며 말 씀 하시기를 "나의 일을 많이 하였으니 술을 마시라." 하시므로 공숙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선생의 일을 한 바가 없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 하시기를 "한 일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공숙이 등을 돌려 술을 받아 마 시고 한참을 앉았다가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지난 밤 꿈 속에서는 한 일 이 있나이다." 아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꿈에 한 일도 또한 일이니 라." 하시니라. 박 공우가 공숙에게 그 꿈을 물으니 공숙이 말하기를 "꿈 에 선생께서 내 집으로 오셔서 천하의 모든 가구수(天下戶口)를 책으로 만들어 오라 하시기에 응답하고 오방신장(五方神將)을 불러서 책으로 만 들어 올리니 선생께서 받아 들이시는 것을 보았노라." 하니라
原文: 翌日에 韓 公淑이 이르거늘 先生이 親히 술을 부으사 公淑을 주며 가라사대 내 일을 만히 하엿스니 술을 마시라. 公淑이 對하여 가로 대 先生의 일을 한 바가 업나이다. 가라사대 한 일이 잇나니라. 公 淑이 덩둘하야 술을 바더 마시고 이윽히 안젓다가 엿주어 가로대 지난 밤 ?에는 한 일이 잇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에 한 일도 ?한 일이니라. 左右가 公淑에게 그 ?을 물으니 公淑이 가로대 꿈 에 先生?서 내 집에 이르사 天下의 戶口를 成籍하여 오라 하시기 로 應答하고 五方神將을 불너서 成籍하여 올님에 先生?서 바더드 리신 것을 보앗노라.
하루는 공우에게 "천지의 여덟 큰 문을 움직여 선천(先天)을 닫고 후천 (後天)을 열어 후천창생(後天蒼生)의 수명을 늘여 해와 달과 더불어 함께 하게 하리라. 비록 말세(末世)에 무도(無道)하여 인륜(人倫)이 사라지고 금수(禽獸)와 같을지라도 신도(神道)로서 가르치고 선술(仙術)을 배우게 하여 선천(先天)에 죄(罪)로써 먹고 살던 인간(人間)들을 다가오는 후천 (後天)에는 선(善)을 쌓아 먹고 살게 할 도수(度數)를 짜리니 다가오는 이 후천(後天)의 때는 조화무궁한 귀신 세계라." 써주시며 "신 경수의 집 벽위에 붙이라."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경수의 집에 수명소를 정하나니 너희들은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좋은 점만 바라보아 호감을 가질 것 이요, 혹 나쁜 점이 보이더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 라." 하시니라. 이 때에 공우는 신 경수의 집에 함께 거주하고 있었기 때 문에 공우를 시키심 이더라. 또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법이란 것 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만방에 퍼져 내리는 것이므로 서울 "경"자 이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야 할지라, 그러므로 경수의 집에 수명소를 정하노 라." 하시고 계속하여 김 경학의 집에 대학교를 정하시고 (다유곡기횡이 입(多有曲岐橫易入) 비무탄로정난심(非無坦路正難尋)이라 써주시며 벽에 붙이라 하시고) 신 경원의 집에 복록소를 정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公又에게 "天地大八門, 日月大御命, 禽獸大道術, 人間大積 善, 時乎時乎鬼神世界"라 써주시며 申 京守의 집 壁上에 붓치라하 사 가라사대 京守의 집에 壽命所를 定하나니 네가 모든 사람을 對 할 ?에 그 善處만 取하야 好意를 가질 것이오. 或 惡處가 뵈일지 라도 잘 容恕하야 憎惡心을 두지 말라 하시니라. 이때에 公又는 申 京守의 집에 함? 居住하는 故로 公又를 식히심이러라. ? 亨烈다 려 일너 가라사대 法이란 것은 서울로부터 비릇하야 萬方에 펴여 나리는 것임으로 "京"字 이름 가진 사람의 긔운을 써야 할지라. 그 럼으로 京守의 집에 壽命所를 定하노라 하시고 因하야 金 京學의 집에 大學校를 定하시고 辛 京元의 집에 福祿所를 定하시니라.
하루는 구릿골에 계실 때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숨어있 는 불(火遁)을 묻었으니 너의 집에 불을 조심하라. 만일 너의 집에서 불 이 나면 불의 신(火神)이 세력을 확장하여 전 세계에 큰 화를 끼치리라." 하시므로 형렬이 놀래어 집안사람을 단속(團束)하여 종일토록 불을 조심 하게 하니라.
原文: 하로는 銅谷에 계실 새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이졔 火遁을 무덧스니 너의 집에 불을 注意하라. 만일 너의 집에서 火災가 나면 火神의 勢力이 擴大하야 全世에 大禍를 ?치리라. 亨烈이 놀내여 家人을 董督하야 終日토록 불을 조심 하니라.
하루는 구릿골에서 밤중에 글을 쓰시며 김 보경에게 명하시어 말씀하시기 를 "동쪽 하늘에 별이 나타났는가 보라." 하시므로 보경이 밖에 나가서 우러러보고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검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워서 별이 보이지 아니하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문을 여시고 동쪽 하늘을 향하여 입으로 한 번 부시니 구름이 흩어지고 별이 나타나니라.
原文: 하로는 銅谷에서 밤중에 글을 쓰시며 金 甫京에게 命하사 가라사대 東天에 별이 낫허 낫는가 보라. 甫京이 밧게 나가서 우러러보고 對 하야 가로대 黑雲이 하눌을 가리워서 별이 보이지 아니하나이다. 先生이 門을 열으시고 東天을 향하야 입으로 한 번 부시니 구름이 헛처지고 별이 낫하나니라.
무신(1908)년 9월에 선생께서 종이 일곱장에 각각 "병(病)은 자기(自己) 몸 안에서 스스로 생겨 나오느니라."는 글과 묻을 장(葬)자를 맨 앞에 둔 십이포태(十二胞胎)를 꺼꾸로 쓰신 글을 써서 형렬을 주시며 말씀하시기 를 "전주부에 가서 내가 정한 일곱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돌아오라." 하 시므로 여러 종도들이 그 뜻를 물으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말해주어 도 모를 것이요, 책이 다 된후에는 저절로 알게 되리라." 하시니라. 형렬 이 명을 받들고 전주부에 이르러 김 낙범, 김 병욱, 김 광찬, 김 준찬, 김 윤근등 다섯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그외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하여 전하지 못하고 돌아왔더니 선생께서 기다리다가 전해주지 않고 왔음을 꾸짖으시 니라.
原文: 九月에 先生이 洋紙七片에 各히 "病自己而發" "葬死病衰旺冠 帶浴 生養胎胞"를 써서 對하야 亨烈을 주시며 가라사대 全州府에 가서 某某등 七人에게 分給하고 도라오라. 여러 從徒가 그 意義를 무른 대 先生이 가라사대 말하여도 모를 것이오. 成編後에는 스사로 알 게 되리라. 亨烈이 領命하고 全州府에 이르러 金 洛範, 金 秉旭, 金 光贊, 金 俊贊, (金 允根) 五人의게 分給하고 其外二人은 맛나지 못하야 傳하지 못하고 도라왓더니 先生이 기다려서 傳하지 아니함 을 ?지즈시니라.
무신(1908)년 10월에 김 낙범을 명하사 백미 스무 말을 약방에 들여 두었 더니 형렬이 마침 양식이 떨어져서 갑칠로 하여금 그 백미에서 반 말을 갈라 내었더니 선생께서 아시고 형렬과 갑칠을 크게 꾸짖으시니라.
原文: 十月에 金 洛範을 命하사 白米二十斗를 藥房에 들여 두엇더니 亨烈 이 마침 絶粮되여 甲七로 하여금 그 白米에서 半斗를 갈라 내엿더 니 先生이 알으시고 ?지즈시니라.
이 달에 고부 와룡리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이제 세상의 무질서와 혼 란을 바로 잡으려면 황극신을 옮겨와야 하리니 황극신은 청나라 광서제에 게 기운이 응(應氣)하여 있느니라." 하시며 또 말씀하시기를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 오게 될 연고는 송 우암이 만동묘를 세움으로부터 시작되 었느니라." 하시고 여러 종도들을 명하시어 매일 밤에 시천주를 친히 곡 조를 붙이시어 소리내어 읽게 하시고 몇 일을 지낸 후에 말씀하시기를 "이 소리가 상여를 운상(運喪)하는 소리와 같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 를 "상여를 운반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임금의 길이 라, 이제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 하시니 (문득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외 치시더니) 그 때에 광서제가 갑자기 죽느니라. (인하여 세계일가 통일 정 권의 공사를 행하실 때 제자들을 앞에 엎드리게 하시고 일러 말씀하시기 를 이제 만국제왕(萬國帝王)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 하시더니 문득 구름 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莊嚴)한 거동의 모양을 이루어 허공 (虛空)에 벌려 있다가 이윽고 사라지니라.)
原文: 이 달에 古阜 臥龍里에 이르사 가라사대 이졔 無秩序와 混亂을 발 우려면 皇極神을 옴겨와야 하리니 皇極神은 淸國 光緖帝에게 應氣 하여 잇다 하시며 ? 가라사대 皇極神이 이 ?으로 옴겨 오게 될 機緣은 宋尤菴의 萬東廟 ?設로부터 發源되엿나니라 하시고 여러 從徒를 命하사 每夜에 侍天呪를 誦讀케 하시고 親히 調子를 먹이 사 몃날을 지낸 後에 가라사대 이 소리가 運喪하는 소리와 갓다 하 시고 ? 가라사대 運喪하는 소리를 御路라 하나니 御路는 곳 人君 의 길이라. 이졔 皇極神의 길을 틔웟노라 하시더니 그?에 光緖帝 가 崩하니라.
(원본에 누락
무신(1908)년 동짓달(11月) 28일에 선생께서 정읍 대흥리 차 경석의 집에 이르시어 경석의 집을 포정소로 정하시고 공사를 행하시니 대략 다음과 같으니라.
原文: 十一月 二十八日에 先生이 井邑 大興里 車 京石의 집에 이르사 布 政所를 定하시고 公事를 行하시니 大略 如何하니라.
하루는 종이에 이십사방위자를 돌려 쓰시고 중앙에 "혈식천추도덕군자"라 쓰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하나 그 것은 그릇된 말이요. 이십사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 졌노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 일은 남조선 뱃길이라. 혈식 천추 도덕군자의 신명들이 이 배를 몰고 전 명숙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이제 그 신명들에게 어떻 게 해야 모든 사람에게 추앙(推仰)을 받으며 천추에 혈식을 끓임없이 받 아 오게되느냐 이유를 물으니 모두다 한마음(一心)에 있다." 고 대답하니 라. "그러므로 한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 고 모든 법을 행하신 후에 불사르시니라.
原文: 하로는 洋紙에 二十四方位字를 돌녀쓰시고 中央에 "血食千秋道德君 子"라 쓰신 後에 가라사대 天地가 艮方으로부터 始作되엿다하나 그 것은 그릇된 말이오. 二十四方에서 한거번에 일운 것이라 하시고 ? 가라사대 이 일은 南朝鮮 배질이라. 血食千秋道德君子의 神明이 이 배를 運漕하고 全 明淑이 都?工이 되엿나니라. 이졔 그 神明들 에게 엇더케 하야 萬人에게 仰慕를 바드며 千秋에 血食을 그침 업 시 바더 오게된 理由를 물은즉 다 一心에 잇다고 對答하니 그럼으 로 一心을 가진 者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 하시고 모든 法을 行하신 後에 불살으시니라.
이 때에 황극수를 돌리시며 여러 종도들에게 소원을 물으시고 다시 차 경 석에게 소원을 물으시니 경석이 땅을 나누어 주시기를 원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병부(兵部)가 마땅하다." 하시니 경석이 불쾌히 여기 는지라. 선생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직계 신하가 아니면 병권을 맡기기 어려우므로 이제 특히 네게 맡기노라." 하시니라.
原文: 이?에 皇極數를 돌니시며 여러 從徒들에게 所願을 무르시고 다시 京石에게 所願을 무르시니 京石은 裂地를 願하거늘 先生이 가라사 대 너는 兵部가 맛당하다 하시니 京石이 不快히 녁이는지라. 先生 이 가라사대 直臣이 아니면 兵權을 맛기기 어려움으로 이졔 特히 네게 맛기노라 하시니라.
어느 하루 밤에는 여러 종도들을 차 경석의 집 앞 버드나무 밑에 벌려 세 우시고 북쪽으로 향하여 휫바람을 한 번 부시니 문득 방장산으로부터 실 구름 한 줄기가 안개같이 일어나서 사방을 퍼져 문턱과 같은 모양을 이루 니라
原文: 하로 밤에는 여러 從徒를 京石家前 柳樹下에 버려 세우시고 北으로 向하야 휫바람을 한 번 부시니 문듯 方丈山으로부터 一條의 雲霞가 이러나서 四方을 둘너 문턱을 일우니라.
하루는 여러종도들에게 명하시어 "옛날부터 지금까지 역대의 모든 이름난 장군(名將)들을 기록하여 가져오라." 하시니 경석이 물어 여쭈기를 "나라 를 개국한 창업군주도 명장의 대열에 포함하나이까." 하니 "그러하니라." 하시니라. 경석이 태고로부터 창업한 모든 군주(君主)와 이름난 장군들을 일일이 기록하고 제일 마지막에 전 명숙을 써서 올리자 선생께서 말씀하 시기를 "왜 전 명숙을 끝에 썼느냐." 물으시므로 경석이 대답하여 말씀드 리기를 "왼쪽으로부터 보시면 전 명숙이 제일 처음이 되나이다." 하니 선 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전 명숙은 천하고금의 명장(名將)이라, 벼슬없는 가난한 선비(白衣寒士)로 일어나서 능히 천하의 난(亂)을 동(動)하게 하 였노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여러 從徒들에게 命하사 前古以來의 모든 名將을 써 들이라 하시니 京石이 무러 가로대 創業君主도 名將의 列에 들겟나잇가. 가라사대 그러하니라. 京石이 上古로부터 創業한 모든 君主와 名將 을 일일히 記錄하고 最終에 全 明淑을 써서 올닌대 先生이 가라사 대 웨 全 明淑은 ?헤 썻나뇨. 京石이 對하야 가로대 左로부터 보 시면 全 明淑이 首位가 되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네 말이 올타하 시고 여러 從徒에게 일너 가라사대 全明淑은 萬古名將이라 白衣寒 士로 이러나서 能히 天下를 움직엿다 하시니라.
하루는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까지는 네가 나의 말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행하였으나 이제는 내가 너의말을 듣고 그대로 공사를 행할 터이니 모든 일을 묻는대로 잘 생각하여 대답하라." 하시고 물어 말씀하 시기를 "서양인이 발명한 모든 문명의 이로운 기기(利器)들을 그대로 두 어야 옳으냐, 없애 버림이 옳으냐." 하시므로 경석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 를 "그대로 두어 쓰시게 함이 사람들에게 이로울 것 입니다."하니 선생께 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저들의 기계문명은 천상으로부터 내려 온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러 가지를 물으신 후에 공사로서 결정하시니 라.
原文: 이?에 京石에게 일너 가라사대 前日에는 네가 나의 말을 조찻거니 와 이졔는 내가 네 말을 조치리니 모든 일을 뭇는 대로 잘 생각하 야 對答하라 하시고 무러 가라사대 西洋人의 發明한 모든 利器를 그대로 두어야 올흐냐 거더 버려야 올흐냐. 京石이 對하야 가로대 그대로 두는 것이 利於用이 될 듯 하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네 말이 올흐니 저들의 器機가 天上으로부터 나려온 것이니라 하시고 ? 여러 가지를 무르신 後에 公事로써 決定하시니라.
또 안 내성으로 하여금 곤봉으로 마루장을 치라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제 깊게 병들어 있는 인류를 구해서 살리려면 일등박문이라야 감당할 것 이요. 이등박문은 불가하리라." 하시며 또 박 공우에게 곤봉을 들리시어 경석을 치게 하시며 "네가 마음을 변치 않겠느냐." 하여 다짐을 받으시고 고부인에게 무당도수를 붙이시니라.
原文: ? 安 乃成으로 하여금 棍棒으로 마루 장을 치라 하시며 가라사대 이졔 病痼에 沈纏한 人類를 救活하려면 一等方文이라야 堪當 할 것 이오. 二等方文은 不可하리라 하시며 ? 朴 公又에게 棍棒을 들니 사 京石을 亂打하며 마음을 變치 아니 하겟나냐 하야 다짐을 바드 시고 高夫人에게 巫度를 붓치시니라.
하루는 서른장 되는 종이책에 앞쪽 열 다섯장에는 각 면마다 "은혜를 배 반하고 베푼 덕을 망각한 그 사람은 만번 죽어 마땅 할 것이니 일분명 일 양시생(一分明一陽始生)" 이라 쓰시고 뒤쪽 열 다섯장에는 각 면마다 "성 스러운 의사는 쉬지않고 죽은 자도 살리는 약을 지으니 일음시생(一陰始 生)" 이라 쓰신 후에 경면주사와 그릇 한 개를 놓고 광찬에게 일러 말씀 하시기를 "이 일은 살 길과 죽을 길을 결정하는 것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 라." 하시므로 광찬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조상 선령신을 부인하거나 박해하는 자들은 살 기운을 받기 어려울 것이로소이다." 하니 선생께서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다." 하시고 그릇을 종이 에 싸서 주사 분말을 묻혀 가지고 책 한 면 한 면마다 찍어 돌리시며 말 씀 하시기를 "이것은 마패니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紙數 三十枚인 洋紙冊에 前十五枚에는 頁面마다 "背恩忘德 萬死身, 一分明, 一陽始生"이라 쓰시고 後 十五枚에는 頁面마다 "作 之不止聖醫雄樂, 一陰始生"이라 쓰신 後에 鏡面朱砂末과 보의(器) 一介를 놋코 光贊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 일은 살 길과 죽을 길을 決定하는 것이니 잘 생각하야 말하라. 光贊이 엿주어 가로대 先靈 神을 否認 或 薄待하는 者는 살 긔운을 밧기 어려울 것이로소이다. 先生이 默然 良久에 가라사대 네 말이 可하다 하시고 보의를 조희 로 싸서 朱砂末을 뭇처 가지고 冊頁面마다 ?어 돌니시며 가라사대 이것이 馬牌라 하시니라.
기유(1909)년 정월 초하룻날에 현무경이 탈고되거늘 안 내성의 집에서 백 자 병에 물을 담은 후에 종이에 글을 써서 권축을 지어 병의 입구를 막아 놓고 그 앞에 백지를 깔고 백지위에 현무경 상 하편을 놓아 두었더니 선 생께서 화천하신 후에 경석이 안 내성에게 와서 현무경을 빌려가면서 병 입구 막은 종이를 빼어서 살펴보니 "좋은 꽃에 좋은 열매 맺고 나쁜 꽃에 나쁜 열매 맺느니라." 라는 글이 쓰여 있더라.
原文: 己酉 正月 一日에 玄武經이 脫稿되거늘 安 乃成의 집에서 白甁에 물을 담은 후에 洋紙에 글을 써서 卷軸을 지어 甁口를 막어 놋코 그 압헤 白紙를 ?고 白紙우에 玄武經 上下篇을 노아두엇더니 先生 이 化天하신 後에 京石이 乃成에게 와서 玄武經을 빌어 가면서 甁 口막은 軸紙를 ?여서 펴여보니 "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이라는 글이 씨여 잇더라.
기유(1909)년 정월 초이튿날에 모든 일을 마치시고 초사흗날에 고사를지 내려고 하실 때 차 문경이 술에 취하여 (고샅에 돌아다니며 경석의 집에 서 강모(姜某)가) "역적모의(逆謀)를 한다."는 소리를 소리쳐 외치니 이 말이 천원군 병참에 소문이 나서 군인들이 출동하려고 하는지라. 선생께 서 아시고 (고 부인과)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는 집을 지키면서 날을 가름하여 내일 자정에 문틈을 봉하고 모든 제사음식을 화로에 구우 며 술병은 마개만 열고 지극한 정성으로 심고하라. 이것이 곧 고사이니 라." 하시고 (비룡촌 차 윤경의 집으로) 떠나시니라. 초사흗날 새벽에 경 석이 명하신대로 행한 후에 날이 밝으니 총을 든 수십명이 쇄도하여 선생 을 수색하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가니라.
原文: 二日에 모든 일을 맛치시고 三日에 告祀를 行하려 하실 새 車 文京 이 술을 醉하야 逆謀한다는 소리를 高唱하니 이 말이 川原 兵站에 들니어 軍兵이 出動하려 하는지라. 先生이 알으시고 京石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는 집을 직히고 나를 가름하야 明日 子正에 門隙을 緊 封하고 모든 祀饌은 火爐에 구으며 술병은 막애만 열고 至誠으로 心告하라. 이것이 곳 告祀니라 하시고 ?나시니라. 三日 曉에 京石 이 命하신 대로 行한 後에 날이 밝으니 擔銃兵 數十人이 殺到하여 先生을 搜索하다가 엇지 못하고 도라가니라.
이 날에 선생께서 백암리 김 경학의 집으로 가시니 경석이 공우와 윤경을 보내어 그간 일어난 일의 전말과 무사히 넘어가게 된 사유를 고하니 선생 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공사를 행한 후에 경석을 시험해 보았더니 무사 히 겪어내니 다행이라." 하시니라.
原文: 이 날에 先生이 白巖里 金 京學의 집으로 가시니 京石이 公又와 輪 京을 보내여 經過의 顚末과 無事히 된 事由를 告하니 先生이 가라 사대 내가 公事를 行한 後에 京石을 試驗함러니 無事히 격거내니 多幸이라 하시니라.
하루는 선생께서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일년 중에 가장 빠 른 속도로 성장하는 물건이 무엇이냐." 하시니 모두 대나무라 대답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대나무의 기운이 만물 중에서 특히 크니 그 기운 을 덜어 쓰리라." 하시더니 그 해에는 대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느니라.
原文: 하로는(年度未詳) 先生이 모든 從徒다려 무러 가라사대 一年中에 가장 速度로 長成하는 物件이 무엇이뇨. 모다 竹으로써 對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竹의 긔운이 萬物에 特長하니 그 긔운을 덜어 쓰 리라 하시더니 그 해에 대가 大荒하니라.
백암리로부터 구릿골 약방에 이르러 계실 때 모든 종도들을 둘러 앉히시 고 "삼국시절이 사마소에 이르러 끝날 줄이야 누가 알았으리오.(三國時節 誰知止於司馬昭)" 하시고 큰 소리로 소리내어 읽게 하시니라.
原文: 白巖으로부터 銅谷藥房에 이르러 계실 새 모든 從徒들을 버려 안치 시고 "三國時節 誰知止於司馬昭"를 大聲으로 誦讀케 하시니라.
하루는 차 경석의 동생 윤경이 오거늘 선생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천지 에서 현무가 쌀을 부르니 네 형의 기운을 써야 할지라. 돌아가서 네 형에 게 혀와 입술을 움직이지 말고 시천주를 외어 읽게 하되 앉고 서고 움직 이는 모든 기거동작에라도 잠시라도 쉬지 않고 그렇게 하도록 하라." 하 시니라.
原文: 하로는 京石의 弟 輪京이 이르거늘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天地에서 玄武가 쌀을 불으니 네 兄 긔운을 써야 할지라. 도라가서 네 兄다 려 脣舌咽喉를 動치 말고 侍天呪를 暗誦하되 起居動作에 暫時라도 쉬지 말라고 指揮하라 하시니라.
하루는 약방에 종도 여덟명을 벌려 앉게 하시고 사물탕 한 첩을 지어 그 봉지에 사람모양을 그리시어 두손을 모아서 위로 드시고 시천주 세 번을 읽으신 후에 여덟사람에게도 차례로 돌아가며 그렇게 하도록 하신 후에 "남조선 배가 범피중류로다." 라고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육지에 닿 았으니 풍파는 없으리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藥房에 從徒八人을 버려 안치시고 四物湯 한 貼을 지어 그 貼紙에 人形을 그리사 두 손으로 合하야 우 드시고 侍天呪 三遍을 닑으신 後에 八人에게 順次로 돌려서 그와 갓치 식히시고 "南朝鮮 배가 泛彼中流로다." 라고 唱하시며 가라사대 下陸하엿스니 風波는 업스리라 하시니라.
하루 밤에는 구릿골 약방에서 삼십육만신을 쓰시고 또 관운장주문을 쓰시 며 모든 사람에게 각자 칠백 번씩 마음으로 읽으라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국가와 각 개인의 집에 화둔을 묻었는데 날마다 바람이 불다가 그 치고 학담으로 넘어가니 사람이 많이 죽을까하여 그리하노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 밤에는 藥房에 계시사 三十 六萬神을 쓰시고 ? 關雲長呪를 쓰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各히 七百遍씩 心誦하라 하시며 가라사 대 "이졔 國家에나 私家에나 火遁을 무덧는대 날마다 바람이 불다 가 그치고 학담으로 넘어가니 사람이 만히 죽을가하야 그리하노 라." 하시니라.
하루는 전주 용머리고개에 계실 때 광찬으로 하여금 한방(韓方)의학서적 인 방약합편을 사오게 하시어 (네가 병욱의 집으로 가서) "주묵(朱墨)으 로 이 책 속에 있는 약명에 비점(批點)을 찍으라." 하시고 불사르시니라.
原文: 하로는 龍頭峙에 계실 새 光贊으로 하여금 方藥合編에 잇는 藥名에 朱墨으로 批點하야 불살으시니라.
하루는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청나라에 대한 공사를 볼 것인데 너무 멀어서 직접가서 행하기 어려우므로 청주 만동묘에 가서 천지대신문을 열고자 하나 또한 가기가 불편하니 다만 음이 같은 것을 취 하여 청도원에 그 기운을 붙여서 그 공사를 보려고 하노라." 하시고 김 형렬, 박 공우를 데리시고 청도원으로 가실 때 청도원 고개마루에 이르시 어 성황당 마루에 누워서 쉬시며 좀 지체하였다가 가자 하시고 잠깐 졸고 계시다가 다시 일어나시며 "아라사 군대가 내 군대니라." 하시고 김 송환 의 집에 이르시어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그날 밤에 류 찬명의 집에 머물 러 계시면서 천지대신문을 열고 공사를 행하실 때 무수히 많은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原文: 하로는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졔 淸國일을 볼 터인대 너 무 途遠하야 跋涉키 難함으로 淸州 萬東廟에 가서 天地神門을 열 고저 하나 ?한 가기가 不便하니 다만 音同을 取하야 淸道院에 그 긔운을 붓처서 일을 보려 하노라 하시고 亨烈, 公又를 다리고 淸道 院으로 가실 새 淸道院 嶺?에 이르사 城隍廟 마루에 쉬여 누으시 며 좀 遲滯하여 가자 하시고 잠간 졸니시다가 다시 이러나시며 가 라사대 아라사군사가 내 군사라 하시고 金 松煥의 집에 이르사 글 을 써서 불살으시고 그날 밤에 柳 贊明의 집에서 留宿하시면서 天 地大神門을 열고 公事를 行하실 새 無數한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 라.
하루는 선생께서 약방마루에 앉으시고 유 찬명을 마루아래에 앉히시어 순 창(淳昌) 오선위기(五仙圍碁)와 장성(長城)옥녀직금(玉女織錦)과 무안(務 安)호승예불(胡僧禮佛)과 태인(泰仁)군신봉조(君臣奉詔)를 쓰게 하시고 또 청주(淸州)만동묘(萬東廟)를 쓰게 하신 후에 불사르시니라. 이 때에 찬명이 좀 방심하였더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신명(神明)이 먹줄을 잡 고 있는데 네가 어찌 방심하느냐."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先生이 藥房廳上에 안즈시고 柳 贊明을 廳下에 안치사 淳昌 五仙圍碁와 長城玉女織錦과 務安胡僧禮佛과 泰仁君臣奉詔를 쓰이시 고 ? 淸州 萬東廟를 쓰이사 불살으시니라. 이?에 贊明이 좀 放心하엿더니 先生이 가라사대 神明이 먹줄을 잡고 잇는대 네가 엇 지 放心하나냐 하시니라.
하루는 유 찬명으로 하여금 종이에 28별자리 이름을 왼쪽으로부터 옆으로 쓰게 하신 후에 끓어서 자로 재게 하시니 한 자가 차거늘 이에 불사르시 니라.
原文: 하로는 贊明으로 하여금 卷紙에 二十八宿字를 左로부터 橫書한 後 에 ?어서 자로 재이니 一尺이 차거늘 이에 불살으시니라.
하루는 책에 무수한 글을 써서 한 매씩 오려 떼시고 종도들을 명하시어 마음대로 무수히 찢게 하신 후에 한 쪽씩 헤아려서 불사르시니 합이 삼백 팔십삼매라. "한 쪽이 부족하다." 하시어 두루 찾으니 사람모양을 그린 한 쪽이 요밑에 들어있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황극수라. 요임금때 나타났던 그 수(數)가 이제 다시 나타나리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洋紙冊에 無數히 글을 써서 一枚식 올여 ?이사 다시 從徒 들을 命하사 任意대로 無數히 ?즌 後에 一片식 헤여서 불살으시니 合三百八十三枚라. 一片이 不足하다 하사 두루 차즈니 人形 그린 一片이 褥 밋헤 잇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것이 곳 皇極數라. 唐堯 ?에 낫허낫든 數가 이제 다시 낫하난다 하시니라.
하루는 용머리고개에 계시면서 주막 객사 마당에 촛불을 밝히시고 "하늘 에는 해와 달의 밝음이 있고 땅은 초목을 자라게 하나니 하늘의 도는 해 와 달의 밝음에 있으므로 사람은 해와 달의 운행에 따라서 살고 땅의 도 는 만물을 낳아 기르는데 있으므로 사람이 초목과 더불어 삶을 살아가느 니라." 써서 불사르시니 구름이 하늘에 가득차고 바람이 급하게 불며 비 가 내리되 촛불은 꺼지지 아니하는지라. 선생께서 유 찬명을 명하시어 "서북쪽하늘에 별이 나타났는가 보라." 하시니 찬명이 우러러 살펴보니 구름사이에 별 하나만 보이거늘 그대로 말씀드리니 다시 "동남쪽 하늘을 살펴보라." 하시므로 우러러보니 구름이 많이 흩어지고 별이 많이 보이는 지라. 그대로 본 것을 아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서북쪽에서는 살아 날 사람이 아주 적고 동남쪽에는 살아날 사람이 많으리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龍頭峙에 계시사 宿舍마당에 燭을 밝히시고 "天有日月之明, 地有草木之爲, 天道在明故人行於日月, 地道在爲故人生於草木" 이라 써서 불살으시니 구름이 하눌에 가득 차고 바람이 急히 불며 비가 나리되 燭불은 ?지지 아니한지라. 先生이 柳 贊明을 命하사 西北 天에 별이 낫허낫는가 보라 하시니 贊明이 우러러 삷힘에 다만 구 름사이에 별 한개가 보이거늘 그대로 告達하니 다시 東南天을 보라 하시거늘 ? 우러러보니 구름이 만히 흣터지고 별이 만히 보이는지 라. 그대로 復命한대 先生이 가라사대 西北은 살어날 사람이 稀少 하고 東南은 살 사람이 만흐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청나라 만리 창신명이 올 것이니 대접하여야 하리라." 하시고 술을 사서 더불어 마시시니라.
原文: 하로는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날은 淸國萬里 廠神明이 이르러 오니 接待하여야 하리라 하시고 술을 사서 마스시니라.
하루는 "청나라의 기우제를 지내리라" 하시고 집에 기르는 돼지 한마리를 찜하여 소주를 마시시고 여러 종도들에게도 나누어 먹이시니라.
原文: 하로는 淸國 祈雨祭를 지내리라 하시고 家猪 一 首를 잡어서 ?하 야 燒酒를 마스시고 여러 從徒들에게도 난호아 먹이시니라.
(원본에 누락)
하루는 이 도삼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낱낱이 세 어보라." 하시니 도삼이 호랑이 표범 승냥이 이리로부터 지네 이 벼룩 전 갈까지 자세히 세어 아뢰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후천에는 사람을 해 치는 물건은 모두 다 없게 하리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李 道三에게 일너 가라사대 사람을 害하는 물건을 낫낫치 세이라 하시니 道三이 虎豹豺狼으로부터 蚊蝨蚤蝎?지 자세히 세여 告한대 先生이 가라사대 後天에는 사람을 害하는 물건은 다 업세이 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 보고나서 부터는 일년의 일들을 모두 도맡아서 모든 굶어죽은 송장 귀신들을 천상 으로 올려 보냈으니 이후로는 굶어 죽는 괴로움은 없으리라." 하시니라.
原文: 하로는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天地公事를 맛허 봄으로부터 는 年事를 맛더서 一切의 餓莩神을 天上으로 올녀 보냇스니 此後로 는 굴머 죽는 弊가 업스리라.
선생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신 후 "포교 오십년 공부 종필(布敎五十年工夫 終筆)"이라 써서 불사르시고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옛날 에 이윤이 오십살에 사십구년동안의 그름을 깨달아 드디어 탕임금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다하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썼노라. 이제 내가 천지의 운수 길을 굳게 고쳐 바로잡아서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 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니 너희들은 다만 마음을 한결같이 가져 타락하지 말고 나아가라. 이제 구년동안 행하여 온 개벽공사의 확증 을 천지에 물어 결정하리니 너희들도 참관하여 믿음을 굳게 하라. 오직 천지는 말이 없으니 뇌성과 지진으로 나타내 보이리라." 하시고 글을 써 서 불사르시니 문득 천둥과 지진이 아울러 크게 일어나더라.
原文: 先生이 天地公事를 마치신 後 "布敎五十年工夫終筆"이라 써서 불살 으시고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伊尹이 五十에 四十九年의 非 를 알고 드대여 成湯을 도와 大業을 일우엇나니 그 度數를 썻노라. 이졔 내가 天地의 運路를 更正하야 물샐틈 업시 度數를 굿게 ? 노 앗스니 그 度數에 도라 닷는대로 새긔틀이 열니리니 너희들은 다만 마음을 한글갓치 가저 隋落치 말고 나어가라. 이졔는 九年동안 行 하여 온 開闢公事의 確證을 天地에 質正할 터이니 너희들도 參觀하 야 미듬을 굿게 하라. 오직 天地는 말이 업스니 雷聲과 地震으로 表徵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 문듯 天動과 地震이 아울 너 大發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