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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호소하지만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청소년 치료
- 신체화 장애 -
영화‘My Girl’을 보면 장의사인 아빠, 삼촌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사는 사춘기 소녀 베이다가 동네 의사에게 달려가 “3년 전 목에 걸린 닭 뼈가 아직도 있다” 등으로 신체 증상을 자주 호소하는 모습이 나온다. 베이다의 엄마는 그녀를 낳던 중 숨졌고, 시체를 만지는 아빠는 늘 무표정이었으며 할머니는 전혀 반응이 없는 분이었다. 그래서 외로움을 느끼는 베이다는 아빠의 관심을 끌려고 “아빠 내 왼쪽 가슴이 오른쪽보다 빨리 자라요. 암인 것 같아요. 난 죽을 거예요”등의 말로 ‘아프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1. 신체화장애란
위의 내용은 영화‘My Girl’의 일부로 신체화장애의 현상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한 예이다. 실제로 수차례 여러 가지 검사를 했지만 의학적으로 뚜렷한 질병이 나타나지 않는데도“배가 아프다”“머리가 아프다” “가슴이 답답해 숨쉬기가 힘들다” “손발이 저리고 마비가 된다” “목에 뭐가 걸린 것 같다”심한 경우“성대가 마비되어 목소리가 안 나온다”등의 이유로 병원을 찾는 청소년들이 종종 있다.
신체적인 원인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몸이 아프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등의 신체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를 신체형장애(somatoform disorders)라고 한다. DSM-Ⅴ에서는 신체형장애의 하위유형으로 신체화장애, 전환장애, 통증장애, 건강염려증, 신체변형장애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신체형장애 가운데 신체화장애(somatization disorders)는 심리적 원인에 의해서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리고 사소한 신체질병이 있을 때 그 질병에서 보일 수 있는 증상 이상으로 과장되게 여러 가지 신체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도 신체화에 포함된다. 이런 증상을 기능적, 정신 신체적, 심인성 신체증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체화장애는 크게 초기 신체화, 임의적 신체화, 진짜 신체화로 나눈다. 초기 신체화는 처음에 신체 증상만을 호소하지만 자신의 신체증상의 원인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쉽게 심리적인 문제나 대인관계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불편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임의적 신체화는 자신의 신체 증상에서 심리적인 원인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의사나 치료자로부터“신경 쓰거나 걱정이 많아서 몸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심리적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인정한다. 진짜 신체화는 어떤 심리적 설명도 거부하는 경우로 의사가 몸에 이상이 없고 신경성일 뿐이라고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믿지 않고 몸에 틀림없이 이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2. 신체화장애의 증상
신체화장애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은 종종 꾀병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무의식적 갈등이 신체적으로 표출된 것이기 때문에 꾀병과는 달리 신체적 고통을 느낀다. 신체화장애 청소년의 통증이나 마비 증상이 실제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청소년과의 다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고통과 소실
신체화장애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은 심한 고통을 호소하다가도 상황에 따라 극적으로 증상이 소실된다는 것이다.
(2) 무관심
신체화장애를 가진 청소년 자신은 신체적 통증이나 마비되는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보다 실제로 큰 걱정을 안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의 태도는 면담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를 정신과적 전문용어로 증상에 대한 무관심(indifference)이라고 한다.
(3) 2차적 이득
신체화장애 청소년들은 성인보다 더 명확하게 신체증상으로 어떤 이득이 눈에 보인다. 이를 정신과적 전문용어로는 아픔으로 인한 2차적 이득(secondary gain)이라 한다. 이들의 무의식적 내면의 심리동기에는 관심 받고자 하는 욕구, 심리적 불안해소, 해야 할 일에 대한 회피심리가 있음을 본다. 청소년들의 흔한 무의식적 내면 심리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도피 심리
학교 가기가 싫다든지 하는 내면심리가 아침에 머리가 아픈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어떤 것을 하기 싫은 심리가 특정 신체부위에 마비가 되는 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즉, 이러한 현상은 마음속에 해야 할 부담스러운 일로부터 벗어나려는 내면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 관심 끌기
아동들 가운데 동생이 아플 때 엄마가 간호하는 것을 샘을 내어 자기도 아픈 것을 통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가져오려는 무의식적 동기이다. 이는 아이가 엄마의 즉각적인 관심을 끄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다름 아닌 아픈 것이기 때문이다.
● 마음속 갈등의 신체적 표현
표현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말로 조리 있게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서 삭이다가“가슴이 답답하다”“머리가 아프다”는 신체증상으로 자신의 불편함을 표출하는 경우이다.
● 부모로부터의 학습
신체화장애 청소년들의 부모는 자신이 자주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자녀가 조금만 이상해도“혹시 머리가 아픈 것 아니냐”란 반복 질문에 자녀도 뭔가 기분 나쁘고 마음대로 안 될 때 머리가 아프다는 호소를 습관적으로 닮게 되는 경우가 있다.
3. 신체화장애의 유병률
신체화장애는 30세 이전에 발병(10대에 가장 많이 발병)하며 평생 유병률은 0.1-0.2%(일반인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이며 실제로는 더 많을 가능성이 있음)이다. 여자의 평생유병률은 1-2%이고 남자의 경우는 0.2%정도로써 여자가 남자보다 5-20배 높게 나타나며, 일반적으로 교육수준이 낮고 가난하며 직업 수준도 낮은 사람들의 경우에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다른 정신과적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2/3는 정신과적 증상, 1/3은 다른 정신질환이다.
4. 신체화장애의 원인
1) 생리적인 원인
신체화장애는 자율신경계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대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강한 부정적인 감정, 특히 우울, 불안, 분노, 적개심 등이 생긴다. 이러한 감정은 생리적 활동을 변화시키고 신체증상을 일으키거나 사소한 신체증상을 악화시킨다.
2) 심리적인 원인
우울증, 불안증, 공포증 등 부정적인 감정을 지나치게 통제하여 오랫동안 지속시키면 신체화장애를 유발하기 쉽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감정을 너무 표현하지 않는 것은 장기적으로 생리적인 각성 상태를 지속시키고 신체에 불편감을 가져온다. 즉,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준다. 불안하거나 화가 나면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신체상에 변화가 나타난다. 이때 자기감정을 잘 알고 이를 적절하게 표현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면 신체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그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교감신경이 계속해서 활성화되어 필요 이상으로 심리적인 위기 상황이 오래 지속되게 된다. 이로 인해 계속 신체적으로 긴장하게 되고 잠도 잘 못자며 소화기능도 약해지는 등 신체적인 불편이 커지게 된다.
3) 인지적 원인
신체화장애는 사소한 신체적 변화를 증폭해서 지각하고 그 증상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며 증상 원인에 대해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다. 신체화장애를 가진 사람은 신체적 또는 감각적 변화에 예민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건강에 대한 경직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신체적 감각이나 증상의 원인을 심각한 신체적 질병에 잘못 귀인하는 경향이 있다.
4) 개인적인 이득 원인
몸이 아프면 평소에 무관심하던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안 해도 용납된다. 그리하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심리적인 목적이나 개인적인 이득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신체화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5) 가정 분위기
가족들의 감정표현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억압된 가정에서는 심리적인 문제나 갈등, 감정적인 고통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가족의 역기능이 많을 때 신체화증상은 더 악화된다. 즉, 부모의 불화나 알코올 중독 혹은 어린 시절 학대받은 경험이 성인기의 신체화장애와 관련된다. 가족 내의 심리적인 갈등과 습관적인 감정표현 방식 등이 신체화증상을 경험하는데 영향을 준다.
5. 신체화장애의 치료
1) 심리적인 문제해결
우울감, 죄책감, 불안, 분노, 적개심, 갈등 등의 심리 문제들이 신체화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심리문제를 스스로 자각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면 신체화장애를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 사람들은 우울해지면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도 비관적이고 만사가 귀찮아 몸을 별로 움직이지 않아 운동부족으로 몸의 기능이 떨어지며 컨디션도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따라서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울증을 일으키는 사고방식을 새롭게 바꾸고 부지런히 활동하며 기분전환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불안과 긴장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계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근육통, 두통, 소화불량이나 불면증 등이 생길 수 있다.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태를 미리 안 좋을 것이라고 예측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실제로 일의 결과가 나쁘더라도 그것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생활을 하면서 생긴 갈등 또한 적극적으로 해결해서 심리적인 고통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즉, 중요한 문제나 자신에게 심리적으로 앙금을 남길 수 있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적극적인 갈등해결은 현실에서 해결되지 못할 문제나 갈등과 한을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 심리적 갈등이나 고통을 유발한 당사자와 직접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받는 것으로도 경감되어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완화되기 때문에 정신건강에 좋다.
2) 사고방식의 전환
건강에 대해 완벽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사소한 신체증상에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별것도 아닌 신체증상을 확대해서 보고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질병과 관련짓기 때문에 건강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신체화장애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한 인지행동 기법으로 몸에서 주의를 분산시키기와 신체증상을 새롭게 해석하기 등을 활용해 보는 것이 좋다. 건강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사람들은 자기 신체에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인다. 따라서 자기 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신체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신체 증상을 새롭게 해석하기로는 생각 1을 생각 2로 바꾸는 방
법이다.
생각 1:‘ 심장마비가 오나 보다’➞두려움➞교감신경계 활성화➞심장이 더 빨리 뜀.
생각 2:‘ 내가 흥분했나 보다’➞심호흡을 함➞심장박동이 정상으로 회복됨➞심리적 안정.
위와 같이 신체증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바꾸면 똑같은 증상이라도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체증상이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일단 깨닫고 나면 그런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3) 의사소통 방법 개선
부정적인 감정을 잘 처리하지 않으면 그것이 억제되고 누적이 되어서 신체화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잘 알고 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표현과 자기주장을 적절하게 할 수 있어야만 몸이 아픈 환자 역할을 통하지 않고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 즉,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는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기, 말하는 기술 익히기, 나 전달법 사용하기, 서로 격려하는 말을 많이 해주기 등이다.
4) 스트레스 대처
오랫동안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두통, 목이나 어깨의 통증, 소화불량, 불면, 만성피로 등 여러 가지 긴장성 신체증상을 유발시키며 건강을 해치게 한다. 스트레스가 장기화 되면 신체화장애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스트레스에서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하면 무력감, 우울, 불안 등의 정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전문적인 도움
사람에 따라서는 자가 치료방법들을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반드시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 임상심리 전문가, 상담심리 전문가 혹은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서 근본적인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신체화 장애를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심리치료 방법으로는 정신분석치료와 인지행동치료법이 있다. 정신분석치료는 뿌리 깊은 부정적인 정서와 심리적 갈등을 찾아내고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알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면한 어려움을 신체화장애로 나타내지 않으면서 스스로 버텨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인지행동치료는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 줌으로써 신체화장애를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 기법은 신체에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사소한 신체 증상을 잘못 귀인 하는 것, 건강에 대한 완벽주의적 기준 등을 수정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인지행동치료자는 내담자의 신체와 관련된 생각에서 비합리적이고 경직된 측면을 찾아내고 이를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게 수정하는 것을 배워 반복해서 연습하게 한다.
신체화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직접적인 치료약은 없지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장애를 동반할 경우에는 그에 적절한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수선공
상담심리학박사/ 교육학박사/상담심리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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