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부터 24일까지 일병휴가를 서울에서 광주까지 자전거여행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아래 글과 사진은 제가 2년 전에 7월 31일부터 8월 7일까지의 자전거여행하면서 남긴 것입니다. 보시면 눈치채시겠지만 '여행'답습니다. 쌩쌩 달리는..
이번 자전거 여행은 '공부하면서' 하고 싶습니다.그래서 부탁드리는데 전국 각지에 부모님 집을 두신 순장님들, 순원님들의 조언이 필요합니다.;어디가 괜찮다, 여기 가보면 고등학교 때 배웠던 거 볼 수 있다.. 이런거요. 참 지역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를 거칠 생각입니다.
간단하게 밑에 꼬리말 붙여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2주간 잔차여행 떠나기 전에 - 2001.7.31(화)
낼 아니군, 오늘 새벽 5시 반에 여행을 떠난다.
병국이와 함께.
오늘 내내 자전거랑 지도랑 옷가지 등등을 챙겼다.
자전거를 갖기 전에는 신나기만 할 줄 알았던 여행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자전거시승을 해보니 엉덩이도 아프고, 차(car)들도 만만치 않아 되레 겁이 났다.
지금도 좀 그렇다.
기도제목이다.
첫째, 안전하게 다녀왔으면 좋겠다.
둘째, 찬양하는 잔차여행이 됐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한 달 전부터 하루 30분씩 기타연습하고 찬양준비했다.
셋째, 병국이에게 그리스도 임재 앞에 필요한 좋은 마음밭이 생겨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20대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이 때 할 수 있는 멋진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추진한다.
7.31-8.7 잔차여행 기행록 (첫째날)
7/31 새벽에 일어났는데 비가 왔다. 괜히 비가 싫었다. 최근 비가 와도 감사했는데 이런 적은 드물었다. 그만큼 잔차여행에 대한 기대가 컸다.
2시 집에서 출발 - 병국이랑 일기예보를 실시간 check하다 한시라도 빨리 출발하고 싶어 떠나기로 했다.
저녁밥은 구봉정 숫불구이에서 된장국을 먹고 현재는 영암읍교회에 샤워, 빨래 다하고 쉬고 있다.
아직까지 잔차여행하고 있는지 실감이 안난다. 계속 자전거 타고 와서 다리 아픈 것 빼곤 뭐 특별히 없다. 생각나는 건 2고개를 넘고나니 위에서 한 눈에 바라본 영암의 경치가 평안했다는 것이다.
1차 작전을 한 결과 경주까지 13일간 여행을 하자고 했다.
하나님을 계속 찬양했으면 좋겠다.
취침시간 12시, 기상시간 5시
둘째날
8/1 수
*5시 기상, 6시 출발
*8시 반-강진 영랑 김윤식(1909-1950, [모란이 피기까지는, 오매 단풍들겄네-영랑 누나가 단풍잎이 마당편상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을 보고 쓴 것이란다.]) 생가
*11시-강진 정다산(1762-1836, 남인학통[이황] 유적지)
@저서-흠흠(걱정이 되어 잊지 못하는 모양)신서;형법
경세유표;국가행정
마과히통;치료법(홍역)
목민심서;지방행정
@만든 것-거중기
*강진군에 대한 소개
-고려청자로 유명
-강진(도강과 탐진을 합한 말)
*1시 반 점심-들녘가든(현미밥, 김치, 고추) ; 아주머니께서는 이 더운 날씨에 자전거끌고 다니냐며 우리보고 미쳤다는 애기를 하셨지만 공기밥을 2그릇이나 먹도록 허락하셨따.
*6시 완도 도착
*6시 반 장조림, 설렁탕(국물만 있는 거) 저녁 먹음 ;
아주머니가 정말 흔쾌히 받아 주셔 우리도 반갑게 식사할 수 있었다. 요 '흔쾌히'라는 단어 때문에 병국이랑 말다툼했다. 나는 아주머니께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지만 애가 그건 over라고 해서 그 표현은 나중에 사용하기로 했다.
참고로 이곳은 장보고(청해진)와 관련있는 곳이다.
*그리고 명사십리행(신지도)배를 7시 반에 탔다. 배삯은 자전거비 안 받고(1t이상 되야 돈 받는다.) 400원이였다. 저렴했다. 저녁에 밤바다를 얼추 구경하고 내일새벽에 뜨자는 생각이랑 오늘은 완도에서 자고 내일 명사십리에서 반나절 해수욕을 하자는 생각이랑 있었는데 전자를 택했다. 근데 신지도 도착하니까 어둑어둑해졌다. 자전거 타고 한 3-40분 가야했다. 도착해 보니 진짜루 듣던대로 명사십리는 모래가 정말 soft했고, 해변가가 길~었다. 그래서 당초 얼추 구경하고 오자는 계획을 수정하고 비닐까고 자려고 했다. 먹을 물이 부족해서 화장실 옆에 있는 가게로 들어가서 아주머니께 도움을 요청했다.
뜻밖에!!
정말 뜻빡에 아주머니는 잘 곳과 쉴 곳과 저녁 먹은 것을 물어보셨다. 왠 땡이냐 이게?!! 당근 우리는 놀라 아주머니께서 도와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제법 짠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억지로 지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다 텐트에서 잔디 우리만 비닐까고 모기한테 살띠끼면서 잘 생각하게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지어졌다.)
아주머니는 원래 1000원하는 샤워를 공짜로 하도록 해 주시고 잔차를 가게 안으로 들이게 해 주시고, 휴식할 편상도 제공해 주셨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밤에 추위랑 모기 때문에 자주 깨야 했다.
내가 한 게 아니라 우리가 한 게 아니라 현재 주님이 인도하고 계신다. 앞으로 그러실 것이다.
내일이 기대된다. 자칫 무뎌지는 마음이 진실로 감사하고 용기있는 마음으로 화하면 좋겠다.
<영랑 김윤식 생가 앞에서>
<다산 정약용 생가 앞에서>
<완도 앞바다에서 배를 타다>
셋째날
8/2 목
*밤에, 새벽에 추위와 모기와 사투를 벌였다. 170cm가량의 체구를 조그만한 비옷으로 커버하려 하니 힘이 많이 들었다. 다음 번엔 꼭 집을 구해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바다가 멋있다. 하늘 색 하늘.. 밀려드는 파도..
아침 먹고(아주머니께 감사하다. 우리보고 나쁜 짓 하지 말라시며 얼음물까지 싸주신다.)
*8시 명사십리 출발, 날씨:이제껏 날씨 중 가장 맑은 아침 주심.
완도가 꽤 깊은 곳이었고 한 번 들른 곳이었으므로 우리는 HITCH하기로 했다. 한데 마땅히 HITCH할 차가 안 보이고 요령도 몰라 장흥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타려고 했다. 한데 표까지 사놓았는데 앞바퀴가 짐칸에 들어가지 않아 아저씨게 핀잔 묵으며 포기해야 했다.
한 1시간 정도 잔차 타고 나왔다. 한데 완도 입구와 우리가 출발한 데는 한 16km정도 됐다. 강진까지는 어마어마.. 힘이 쫘악 빠지고 햇볕은 더구나 쨍쨍해 우리는 힘들어했다. 오르막길에 hitch를 마음먹고 hitch를 시도했다. 엄지손가락을 빼고 나머지 손가락은 쥔 채 했다. 한 10번 시도했을까, 성공하고 5시간은 족히 더 걸릴 강진에 40분만에 도착했다. 나중에 생각한 건데 아저씨께 점심값이라고 5000원이라도 드릴 것 그랬다.
*2시 장흥군 장항에서 점심먹다. 소가 한 5마리 정도 있고, 8남매둔 할머니댁에서 마늘도 까고 뜩도 얻어 먹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베풂보다 당신의 그것은 더 진실하고 진하다.
병국이와 이야기 중에 미안함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되었다.
*5시 20분 보성차밭-사진찍음
수녀님과 비구승편 sk텔레콤 cf를 찍었댄다. 그런대로 괜찮다. 가는 데는 힘들었지만..(길이 보이기에는 분명 내리막길인데 바퀴가 잘 돌아가지 않아 길한테 속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은 내리막길처럼 보이는 오르막길, 오는 길은 사이클 선수처럼 달려봤다.
*신광식당(857-9103)
벌초까지 가려는데 10km남았고 시간은 7시다. 이름없는 곳에서 하루 묶는 것도 좋다는 생각에서 조성읍에 거처를 정하기로 했다. 일단 교회는 그림같은 교회를 가진 목사님이 과거에 저 통일전망대에서 자전거여행하다가 길을 물었는데 그 당시 북한군의 땅굴사건이 있던 때라 오해를 사고 경찰서까지 갔던일, 일본자전거여행을 한 경험이 있는 분이라 쉽게 우리를 받아주셨다.
그 다음은 저녁밥.
계속 얻어먹던 우리는 이제 스스로 먼저 미안한 마음을 먹고 식당에 들어섰다. 말은 덧나오고 우물쭈물하다 4번 거절당했다.
자그만한 동네라 이제 2군데 밖에 식당이 남지 않았다. 한 곳을 선택했고 허름했다. 아주머니는 허락하시고 밥, 반찬주셨다. 글드만 버너, 쌀, 냄비 챙기시며 우리 준다고 하신다. 우리가 무전여행이다고 만류하자 그만두시고, 다니면서 먹고 싶은게 많을테니 과자 사먹으라고 5천원주신다. 28살 먹은 아들이 소갈머리가 아직 안 들었다고 아들생각하시며 주신다고 하신다. 감사하다.
계속(자전거기간동안만) 거지이고 싶다. 확실히 거지이고 싶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이 얼마나 사랑있으며 신뢰할만한 사람들인지 알고 싶다.
병국이랑 목욕하다가 은혜부분에 대해서 50분간 다퉜다. 계기는 물장난하고 분위기가 좋아졌다. 더 겸손해지고 사랑실천하자-풍성한 삶!
<명사십리에서 출발>
<보성차밭 앞에서>
넷째날
8.3 금
7시 출발
9시 순천 낙안(조선시대읍성, 사적 302호) 민속 마을 도착-별로 볼 건 없었다. 아침밥이 인상깊었네, 꽤 들어와던터라 배고파서 편의점에서 라면먹고 난 고드름, 병국이는 더위사냥을 사먹었다.
30분 걸려 산 넘어가니 곧 순천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일대 최대의 고비였지만 샛길인 것을 안 다음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예상보다 일찍 11시 45분에 광양에 도착했다.
'어디서 점심을 해결할까 하다가 다시 병국이와 다투게 되었다. '미안한데 이제 그만 무전두자, 이제 그만하면 됐다.VS '은혜의 여러 모양 더 경험하고 싶다. 계속하자' 기독교애기까지-예수의 유일성을 이해않겠다는 병국이. 그리고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막막해 이것저것 애기하던 나.
힘지어 병국이가 혼자사는 합리주의자라고 여겨져 답답하다는 말까지 썼다. 역시 병국이도 내가 무전을 시도할 때마다 내가 사람을 판단하고 시험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결국 무전여행계획을 수정하고 식사는 돈을 주고 해결하기로 했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8시. 하동교회에 청했으나 NO. 돌아서 다른 교회를 찾으려 했는데 목사님 사모님이 붙잡으셔몇명이나, 여학생은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조건에 합한 우리는 결국 허락을 맡았고 지금은 4층 유아반에 있다.
안되는 상황에서 되게하시는 주님. 늦게나마 나를 인도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느낀다. 밤에 자고 있는데 12시에 걸어다니기도 하고 hitch도 하는 전국여행중인 대전카이스트대학생2이 들어왔다.
*아쉬운 생각-무전여행아닌데 이제 뭐 가지고 추억거리를 만드나..
*아참 오늘은 섬진강을 간단히 보았고(good) 주유소가 주수소인 것을 알았다.
다섯째날
8.4 토
오늘이 토요일인지 알지 못한채 보냈다. 일자 중심대로 보내고 있었다.
하동을 지나 진주로 가려고 했당. 한참 가는데 지루했다. 집에서 뒹구는 모습이 어제보다 더욱 강하게 떠올랐다.
그 때 마침 청학동으로 가는 표시판이 보였다. 나의 강추로 그 길로 접어 들었다. 한 30분 들어갔을까. 청학동까지 24km라는 표시판을 보았다. 내가 우리가 왜 그랬을까?. 병국이가 '갈까?'하고 반신반의하는 질문에 나는 '가자!'라고 외치고 갔다. 어제 별 보는 것이 없이 하루종일 자전거만 탔었기에 그 대답은 어제의 수고에 대한 보답이었다.
근데 계속...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내리막길은 없었다. 겨우 타고 올라갈 정도의 오르막길이 그나마 좋았다.
가다가 지쳐서 우리는 한 계곡을 선택하고 쉬었다. 정말 정말 시원했다. 왜 사람들이 바다를 안 가고 계곡도 가는지 이해가 갔다. 온천만한(2사람 들어갈 만한)곳에 들어가 온 몸 적혔고, 물장구장난했다.
배고파서 가다가 우연히 보게 된, 하지만 필사적이다시피 외운 통닭집에 통닭 1마리를 시켰다. 조금이나마 간에 기별을 가게 하였다.(가격은 10000원) 다시 올라갔다. 전보다 더 가파른, 그리고 내리막길 없는 산길이었다. 정상(청학동)에 올라가 들어보니 해발 900m란다. 시간은 아침 9시에 출발해 오후 2시 40분에 도착, 5시간 40분 걸렸다.
글고 우린 콩국수, 비빔밥, 된장국, 공기2을 시켰다. 아주머니는 우리의 식성에 놀라셨는지 백죽도 조금 주시고 수고했다면서 12000원할거 10000만 받으셨다. 감사했다.
실제로 청학동은 기대만틈 볼거리는 없었다. 댕기땐 사람, 갓쓰고 수염기른 할아버지 몇 분 본 게 전부였다. 청학동기념수건 하나 사려했는데 흥정에 실패했다. (원가2700원, 소비자가3000원짜리를 2000원에 사려고 했으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내려오는 길은 이제 30만년만에 지리산 고향에 살게 되신 아저씨 오움으로 용달차에 타고 50분만에 내려 오게 되었다. 예전에 지리산에 사실 때 차가 없고, 또 태워주는 사람이 없어서 힘들었던 게 한이 되신 아저씨여서 우리말고도 다른 친구들도 태워다 주셨다.
*진주로 가는 길-7시에 제법 괜찮은 교회에서 자자는 병국이 의견을 물르고 그 대 씽씽 자전거를 타는 재미에 있었던 나는 더 가자고 했다. 결국 후래쉬로 도로를 비추며 8시까지 교회를 못 정하게 되었다. 그 때는 정말 위기였다. 어두웠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게도 내일이 유수교회(김정화목사님)를 보아 내일이 주일인데도 여기에서 쉬게 되었다. 난이도가 점점 높아져 간다는 생각이 든다. 오락게임처럼.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만난 성광이의 순진한 베풂이 자꾸 생각났으면 좋겠다.
<청학골에서>
여섯째날
8/5 일
주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어제 새벽 5시가 출발시각이다고 목사님께 말씀드렸던 터라 무건 몸을 일으키고 감사하고 헌금하는 마음으로 10000원과 메모지를 두고 나왔다.
진주에 가서는 국립진주박물관에 갔다. 논개와 관련된 남강, 촉각루가 있었고 김시민장군비도 있었다.
그리고 국립박물관 안에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전시물이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조선시대 도공들이 무심코 만들었던 도자기를 일본사람들이 무언가를(멋스러움같은 거) catch했다는 것이다. 근데 그 도자기는 다른 그릇과는 달리 단순했다. 하지만 단아했으며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2번째는 엽서와 아버지 드릴 넥타이핀과 누나에게 줄 핸드폰줄을 산 것이다. 내 평생 제대로 된(내 생각하기에)선물 생각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려 3시간(2시간 관광, 1시간 벤치에서 새벽잠 못 잔거 잔 것)이나 그 곳에 있어 체력이 무척 딸렸다. 진양호가 좋다해서 가봤지만 호수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 볼 거리는 없었다.
그리고 마산 길로 향했다. 다시 무전하기로 한 우리는 어제 점심부터 돈을 다소 무자비하게 쓴 까닭으로(아이스크림..)무전식을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왕 하기로 한 거 하자고 마음먹고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할머니 한 분과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말씀 드리자 아주머니는 조금 당황한 기색을 지으시고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셨다. 할머니. 할머니는 오늘 한 그릇도 못 팔았는데 그냥 주라고 하시며 반문하셨다. 어쩔 줄 몰라 우리는 그냥 의자에 앉았다. 다 먹과 나서 병국이가 5000원이라도 드리자고 했지만 내가 극구 반대해 그냥 그 곳을 떠났다.
또 신경전이 있겠구나 싶은 예상과 함께 나는 나도 모르게 반성하게 되었다. '이번 같은 경우 예전과 상황이 달랐다. 드렸어야 했다. 아니면 다른 곳에 갔어야 했다.'라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병국이에게 내가 잘못했다고 하자 그도 자기가 좀 대담해져서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생각의 차이가 좁혀진 것이다.
져녁쯤에 경남대학교를 둘러보고(우리학교랑 구조가 흡사하고, 호수가 멋있다.)맛난 저녁을 먹었다. 여기는 제일신마산교회다. 피곤하다.
<촉석루에서>
<진주 박물관 앞에서>
일곱째날
8.6 월
a.m5제일신마산교회-진해-헤매다가-부산역-송정해수욕장
내일이 여행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피곤했던 마음은 싹 사라지고 오늘 하루를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힘차게 교회를 떠났다.
난 마산-창원-김해-부산course를 주장했지만 병국이는 마산-진해-부산course를 주장했다. 계속 내 생각대로 이리 저리 돌아다닌 것 같아 이번에는 병국이 생각대로 가기로 했다.
진해는 쉽게 갈 수 있었다. 꽤 큰 해군기지가 있는 것 같데. 가면서도 병국이가 '와 이 길 가파르다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놀렸고 난 얼버부리며 응수했다.^^; 사건은 부산에서 시작됐다.
부산으로 가는 도로표시판이 잘 돼 있지 않아 일단 큰 길로 따라가다가 고속도로로 빠지게 되었다. 중간에 한국도로공사경비아저씨들에게 걸리고 다시 back하게 되었다. 오던 길을 한 1시간 반동안 다시 가려하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더구나 아침, 점심도 빵, 우유로 때운 상태였다.
다시 온 길로 돌아가 여러 분들께 해운대로 가는 길을 여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들으시는 족족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시며 '이걸로 거기까지 갈려고?하셨다. 5시간은 걸린단다. 우리는 작전을 바꿨다. 자전거를 광주역에 3700원에 부치고 몸만 버스를 타고 해수욕장에 데려가기로 했다.
송정해수욕장은 이제껏 본 곳중 사람이 가장 많았고 여자들 옷도 외출이 심했다. 바다에 간 지 4년만에 가는 거라 그런지, 수영을 못해서 그런건지 물에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그래서 한 2번 들어가고 모래사장에 앉아 사람들 수영하는 거, 애들 물장구치는 거 보았다. 괜찮았다.
저녁은 밥을 먹고 bc카드에서 제공하는 영화'스타워즈'를 보다가 자고 잠은 종이때기를 몇 장 깔고 잤다. 자면서 얼핏 지나가는 학생한테 '옹색스럽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 때 우리 신세게 딱 그 짝이었다.
<송정 해수욕장에서>
<모래성 쌓기>
여덟째날
8/7 화
자면서 추워서 그랬는지 사람들 노느라 시끄러워 그랬는지 자주 깼던 것 같다.
송정이 남동쪽에 있어 아침에 일출은 못 보고 사진 몇 장찍고 6시경에 나왔다. 부산역 거쳐 지금은 터미널 역에 있다. 내가 가자고 우겨 지금은 터미널 역에 있다. 내가 가자고 우겨 결국 9:30에 광주로 가기로 됐다. 병국이한테 미안하다. 7박 8일의 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현재는 8월 7일 화요일 밤 11시, 집이다.
짐정리를 하고 샤워를 하고 홈페이지에 일기를 쓰고 있다.
돌아오면서 걱정됐던 것은 과연 내가 여행에서 얻은 은혜만큼 부모님께 효도하고 누나, 동생에게 잘할 수 있는 가였다. 그래서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련다.
잔차여행을 떠나기 전에 3가지 기도제목이 있었지.
안전사고 없이 무사히 갔다오는 것, 하나님을 찬양하는 여행이 됐으면 하는 것, 예수님을 영접하기에 병국이가 좋은 마음밭이 준비되는 것.
첫번째 기도제목은 비가 왔던 여섯째날 천둥, 번개가 쳐 잠시나마 두려웠지만 감사하게 순조롭게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었다. 정말 정말 감사하다.
두번재 기도제목은 찬양15곡 정도를 적은 메모지를 지갑에 넣은 것을 이틀동안 모르다가 어쩔 수 없다며 그냥 지내자고 단념했지만 3번째날 메모지를 발견해서 찬양하고 싶을 때 했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찬송가곡을 배워가고 싶다.
세번째 기도제목은 지금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수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교회에 대해 다투기도 했고, 우리에게 잘 곳을 주신 교회분들에게 감사도 했다. 그 날이 하루 빨리 와서 비슷한 생각으로 병국이와 힘을 모아 이 세상에서 동역하고 싶다. '병국아 알았지?^^'
말씀없이 기도없이 일주일을 보냈다. 솔직하게 버겨웠다. 날마다 성령충만하여 살아가고 싶었다. 이제 곧 훈련시간이 도래할텐데 암송과 찬양과 경건의시간사수로 준비해야겠다.
여행을 준비하게 하시고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여행을 실질적으로 준비해 주신 부모님의 정성에 어쩔 줄 모르겠고,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주신 분들께 날마다 주님의 평강이 있기를 바라고,
이 여행을 위해 중보해준 동역자들에게 나도 이제 중보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여행하며 내 약함을 많이 봐주며 참아주고 장단맞춰준 병국이게게 고맙다는 애기를 하고 싶다.
'내가 꼭 그늘지고 내리막진 길을 가지 않더라도 햇빛이 쨍쨍 비추고 오르막진 길을 가더라도 그 길은 올바로 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는 것을 가르쳐 준 여행
다음의 그 날을 기대하고 사모한다.
첫댓글 으-이렇게 호응이 없다니..
신호야 방갑구나...경기도에는 강화도에 유적지가 조금 있단다...삼별초랑, 셔먼호 사건의 유적지..가봤는데 참고로 별볼일은 없더라..-..-;;
성일이형, 순장님밖에 없어요. 흑흑.. 참고할께요, 감사해요. 출발이닷!
신호야, 남쪽으로 가지말고 북쪽으로 가렴. 동두천에 가서 부대 주변을 맴돌도록 하여라. 밥은 부대에 들어가서 먹으면 되고 얼마나 좋느냐???
어?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늦었네... 어차피 도움될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 어쨌든 괜히 그냥 지나가기 뭐해서 이렇게 한 마디... 잘 지내라. 나오면 시간 좀 함께 보내자. 축구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