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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강좌.
무비스님 - 불교는 쉽다. 7강 - 2 (2009. 07. 01)
형상 없는 것이 참 형상이다. 임제 스님의 그 근본정신은 이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참 그런 내용을 임제 스님 법맥을 이었다고 하는 이 조계종에서 찾아보기로 하면 사실 쉽게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 어디에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 참 큰 유감이지요.
14-10 형상 없는 것이 참 형상이다.
有一般禿比丘(유일반독비구)하야 向學人道(향학인도)호대
佛是究竟(불시구경)이니 於三大阿僧祇劫(어삼대아승지겁)에
修行果滿(수행과만)하야 方始成道(방시성도)라하니,
道流(도류)야 儞若道佛是究竟(이약도불시구경)인댄
緣什麽(연십마)하야 八十年後(팔십년후)에
向拘尸羅城雙林樹間(향구시라성쌍림수간)하야,
側臥而死去(측와이사거)며 佛今何在(불금하재)오?
明知 與我生死不別(명지 여아생사불별)이니라.
儞言(이언),
三十二相八十種好是佛(삼십이상팔십종호시불)이라하니
轉輪聖王(전륜성왕)도 應是如來(응시여래)라
明知是幻化(명지시환화)로다.
古人云(고인운),
如來擧身相(여래거신상)은 爲順世間情(위순세간정)이라
恐人生斷見(공인생단견)하야 權且立虛名(권차입허명)이로다.
假言三十二(가언삼십이)하고 八十也空聲(팔십야공성)이니
有身非覺體(유신비각체)요 無相乃眞形(무상내진형)이로다.
有一般禿比丘(유일반독비구)하야, 일반 머리 깎은 비구가 있어서,
向學人道(향학인도)호대, 學人道 = 도 공부하는 학인들을 향해서 말하되, 공부하는 사람을 향해서 말하기를, 佛是究竟(불시구경)이다. “부처님은 최고다.” 이렇게 말한다 이겁니다. 머리 깎은 비구가 있어서, 공부하는 사람에게 또는 신도에게 누구에게든지 그래요. 佛是究竟이야. “부처가 최고야.” “이 세상에 부처이상 가는 것이 없어.” 그리고 그 부처라고 하는 존재는
於三大阿僧祇劫(어삼대아승지겁)에 修行果滿(수행과만). 3대 아승지겁이라고 하는 무수한 세월을 지나면서 수행해서 그 결과가 원만 해져서
方始成道(방시성도)라. 바야흐로 비로소 도를 이룬다. 그러니 부처가 얼마나 훌륭하냐? 이겁니다. 얼마나 훌륭하냐? 이 究竟이라고 하는 것은 마지막 최고ㆍ최상. 부처가 최고다 이 것이지요. 3아승지겁 동안 수행해서 그 결과가 만족해서 바야흐로 도를 이룬 것이다 이 말입니다.
道流들이여. 儞若道(이약도) 그대들이 만약에 말하기를,
佛是究竟(불시구경)인댄, 부처가 최고라고 말할진댄,
緣什麽(연십마)하야, 무엇을 인연해서, 무엇을 인연해서
八十年後(팔십년후)에 태어나서 向拘尸羅城雙林樹間(향구시라성쌍림수간)하야, 구시가라 성 쌍림수 간에서 側臥而死去(측와이사거). 옆으로 누워 죽어 자빠졌느냐 이겁니다. 사라쌍수 아래서, 아이 부처가 그렇게 최고라면서 왜 거기서 한 80년 살다가 죽어 자빠졌느냐 이겁니다.
3아승지겁 동안 그렇게 닦은 부처 같으면 최소한도 보통 우리 사람들하고는 달라야 될 것 아니냐? 임제 스님 법문입니다. 나는 책임 없어요.
佛今何在(불금하재)오? 부처가 지금 어디 있느냐? 부처는 지금 어디 있느냐? 이겁니다.
明知(명지), 분명한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與我生死不別(여아생사불별)이니라. 우리로 더불어, 보통 여기 있는 우리로 더불어서 생사가 다르지 아니해. 그도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고, 우리도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어. 그도 80에 죽었고 우리도 100년 미만에 죽어. 의학이 발달해서 한 120은 보통 살게 되겠지만, 그래봤자 120이고 200입니다.
야~ 설사 그렇더라도 어떻게 이런 소리 할 수 있어요?
이것이 사실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겁이 나서 어떻게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냐고요? 임제 스님만이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그래 참 더운 여름에 아주 시원한 청량제와 같은 것이지요. 얼마나 그런 명칭과 부질없는 그 이름.
그 이름에 우리가 목을 매고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고, 얼마나 참 갑갑한 세월을 보냈습니까? 확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자유인으로,
天上下唯我獨尊(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살라 이것이지요.
儞言(이언), 그대들이 말하기를,
三十二相(삼십이상)과 八十種好(팔십종호)가 是佛(시불). 부처다 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금강경의 말을 빌리자면 역시 轉輪聖王(전륜성왕)도 32상과 80종호를 가졌으니까 應是如來(응시여래)라, 그도 應是 여래라. 여래가 될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그래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물었지요.
三十二相(32상)으로서 見如來不(견여래부)아? 32상으로서 見如來不아? 볼 見자. 여래를 보느냐 하니까 그 때는 아니다라고 했어요.
三十二相으로서 觀如來不(관여래부)아? 볼 觀자.
32상을 통해서 그 너머에 있는 부처의 실상을 보느냐? 라고 하니까 그 때는 수보리가 觀如來. 예 여래를 봅니다 그랬어요. 32상을 통해서 그 너머에 있는 부처님을 봅니다. 見如來不아? 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32상이 여래라고 보는가? 라고, 차라리 거기에서 여래를 본다고 했으면 이것이 100점짜리 답인데, 그것은 아니라고 했거든요. 아니라고 觀如來不아? 라고 할 때는,
예 三十二相으로서 觀如來합니다. 하니까 그래? 그렇다면 전륜성왕도 32상과 80종호를 갖췄는데 그럼 그도 應是如來로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수보리가 꽉 막혀버렸지요. 아, 알고 보니까 그것이 아니군요.
32상을 그대로 여래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32상을 통해서 그 너머에 있는 실체를 여래라고 본다 하더라도 그것도 틀린 말이다. 이러한 사실을 금강경에서 알게 됐습니다. 그것을 이제 뜻만 요약해 왔지요.
明知是幻化(명지시환화)로다. 어차피 부처라고 하는 것도 태어나서 80년 살다가, 물론 위대한 삶을 살았지요. 그러다가 살다가 그냥 저 나무 사이에서, 雙林樹間(쌍림수간)에서 側臥而死去(측와이사거)라. 옆으로 누워서 죽었다 말이야. 明知是幻化야. 幻化 = 환영, 허망한 육신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알겠도다.
古人云(고인운), 고인이 말하기를, (이것은 5자로 만들어진 시인데요.)
如來擧身相(여래거신상)은, 여래의 모든 신상은
爲順世間情(위순세간정)이라. 세상의 情을 順해서, 세상의 정에 맞추기 위해서 어떤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恐人生斷見(공인생단견)하야, 사람들이 斷見. 아주 없다고 하는 견해를 낼까봐 두려워서, 염려가 돼서 그 말입니다. 斷見이라고 하는 것이 常見(상견)ㆍ斷見(단견)이 있는데 영원하다고 보는 것을 常見. 아예 없다고, 무상하다고만 이렇게 보는 것을 斷見. 그것이 다 치우친 소견이지요.
그런 소견을 낼까 염려가 돼서 權且立虛名(권차입허명)이다. 방편으로 또한 헛된 이름을 세워 보았다. 그러니까 뭐 부처다ㆍ조사다ㆍ보살이다ㆍ아라한이다ㆍ등각이다ㆍ묘각이다. 별별 이름을 세워 보는 겁니다.
아미타불이다ㆍ무슨 부처다ㆍ무슨 부처다. 부처 이름이 3만 불ㆍ만 불 명호 경도 있고, 천 불 명호 경도 있고 그래요. 그렇게 헛된 이름을 만들어서 지어보는 것이지요.
假言三十二(가언삼십이)하고 八十也空聲(팔십야공성)이다.
거짓으로 말해서 32상. 위대한 인격을 그리려면 무엇인들 못 그리겠어요? 얼마든지 그릴 수가 있지요. 소설가가 소설 쓰는데 무슨 이야긴들 못 만들어 내겠어요? 八十也空聲이로다. 80종호 라고 하는 것도 헛된 소리다.
설사 32상과 80종호를 가지고 부처님이 일생, 80년 생애를 살았다손 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뭐가 있느냐 이겁니다 지금 이 순간. 실지로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렇게 당당하게 큰 소리 치고, 큰 소리 치는 것을 듣고 같이 공감하고 하는 것. 이것만 있는 겁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아주 대단한 물건입니다. 그래서 옛날 도인들이 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하니,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上柱天下柱地(상주천하주지)라. 위로는 하늘에 까지 뻗쳐 있고 밑으로는 땅을 버티고 있다.
無名無相(무명무상)이라. 이름을 뭐라고 지을 수도 없고, 형상을 어떻게 그릴 수도 없다. 야~ 이것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空한 것인가? 존재하는 것인가? 吾未知其所以(오미지기소이)로다. 나 그 까닭을 알 수가 다. “알 수가 없다.” 라고 이렇게 아주 살아있는 글 형식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有身(유신)이면, 身이 있다면, 몸이 있다면, 非覺體(비각체)요.
실체가 아니다 이겁니다. 覺體가 아니요. 無相乃眞形(무상내진형)이로다.
형상 없는, 형상을 초월해야 비로소 참다운 모양을 볼 수 있다 그런 뜻 입니다. 무상이라야 이에 참다운 형상이라 하니라. 그 다음에 신통의 문제에 대해서 임제 스님께서 법문을 하고 계십니다.
14-11 地行神通(지행신통).
여러분도 地行神通.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을 통해서 여기까지 오셨어요.
저도 절룩거리면서도 역시 地行神通을 근사한 신통이지요. 사실은 이 보다 더 훌륭한 신통 없지요. 땅으로 걸어 다니는 그 신통. 그래서 제목을 地行神通이라고 붙였습니다.
儞道(이도)호대 佛有六通(불유육통)하야
是不可思議(시불가사의)라하니, 一切諸天(일체제천)과
神仙阿修羅(신선아수라)와 大力鬼(대력귀)도
亦有神通(역유신통)하니 應是佛否(응시불부)아?
道流莫錯(도류막착)하라 祇如阿修羅(지여아수라)가
與天帝釋戰戰敗(여천제석전전패)에
領八萬四千眷屬(영팔만사천권속)하고,
入藕絲孔中藏(입우사공중장)하니 莫是聖否(막시성부)아?
如山僧所擧(여산승소거)는 皆是業通依通(개시업통의통)이니라.
夫如佛六通者(부여불육통자)는 不然(불연)하야
入色界不被色惑(입색계불피색혹)하며
入聲界不被聲惑(입성계불피성혹)하며
入香界不被香惑(입향계불피향혹)하며
入味界不被味惑(입미계불피미혹)하며
入觸界不被觸惑(입촉계불피촉혹)하며
入法界不被法惑(입법계불피법혹)하니라. 所以(소이)로
達六種色聲香味觸法(달육종색성향미촉법)이
皆是空相(개시공상)이라.
不能繫縛此無依道人(불능계박차무의도인)하야
雖是五蘊漏質(수시오온누질)이나
便是地行神通(변시지행신통)이니라
儞道(이도)호대 그대들이 말하기를, 보통 불교도들이 말하기를,
佛有六通(불유육통)이라. 부처님에게는 여섯 가지 신통이 있다.
是不可思議(시불가사의)라. 야~ 근사하다. 불가사의한 존재다 이겁니다.
부처님이 6신통이 있어. 그래가지고 뭐 별별 천안통이니ㆍ천이통이니ㆍ신족통이니ㆍ별별 날아다니기고 하고 그런 능력이 있다. 야~ 대단하다. 불가사의가 대단하다 라고 하나니
一切諸天(일체제천)과 神仙ㆍ阿修羅(신선아수라)와 大力鬼(대력귀)도 亦有神通(역유신통)이다. 또한 신통도 있다. 옛날에 유리겔라도 또한 신통이 있다. 應是佛否(응시불부)아? 그럼 그 사람들도, 유리겔라ㆍ신선ㆍ아수라ㆍ大力鬼들도 부처겠네. 應是佛否아? 부처라야 옳겠네.
道流야 莫錯(도류막착)하라. 도 닦는 여러 벗들이여. 착각하지 말라.
祇如阿修羅(지여아수라)가, 예컨대 저 아수라가 與天帝釋戰戰敗(여천제석전전패)에, 천제석으로 더불어 싸울 때, 싸우면서 패해. 패하면
領八萬四千眷屬(영팔만사천권속)하고 8만 4천 권속들을 거느리고,
入藕絲孔中藏(입우사공중장). 뭡니까? 연뿌리. 구멍이 퐁퐁 뚫였지요? 연근이 구멍이 나있지 않습니까? 그 구멍 속으로 8만 4천 권속들을 거느리고 그 속에 들어가서 숨는다는 겁니다. 그런 능력이 있다 하니,
莫是聖否(막시성부)아? 그 사람도 성인이 아니겠는가? 그 사람도 부처겠네.
아수라도 그럼 부처겠네. 참~~ 하여튼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숨이 막히도록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아주 비정한 표현입니다.
如山僧所擧(여산승소거)는 내가 거론하는 바는
皆是業通依通(개시업통의통)이라 그거 전부 業通. 업으로 통한 것이고, 무엇인가 의지해서 통한 것이고, 사기로 통한 것이고, 눈속임으로 통한 것이다.
사기신통이고ㆍ눈속임신통이고ㆍ업의신통이고ㆍ의지한 신통이다 이 말입니다. 그것 모두다 엉터리다 그 말입니다.
夫如佛六通者(부여불육통자)는, 내가 육신통에 대해서 설명해 볼까?
不然(불연)하야, 부처의 육신통이란 그렇지 아니해.
入色界(입색계)라도 不被色惑(불피색혹)이여, 색의 세계. 물질세계에 들어가더라도 부처님은 물질의 미혹을 입지 아니해. 그 어떤 물질을 앞에 갖다 놓아도, 황금으로 수 백층짜리의 궁전을 지어서 거기에 모셔도 눈도 하나 까딱 아니해. 거기에 미혹되지 않는다 이겁니다.
入聲界(입성계)라도 不被聲惑(불피성혹)이여, 아주 아름다운 소리, 칭찬하는 소리에서부터 아주 좋은 음악소리. 거기에 설사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런 것을 만난다 하더라도 소리의 미혹을 입지 아니해. 요지부동이다 이겁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 아무리 훌륭한 물질ㆍ돈 그것은 그것이고, 나는 나다 이 것이지요.入香界不被香惑(입향계불피향혹)이여, 향기의 세계에 들어가더라도 향기의 미혹을 입지 아니해.
入味界不被味惑(입미계불피미혹)이여, 아름다운 음식의 세계에 들어가더라도 아름다운 음식의 미혹을 입지 아니해.
入觸界不被觸惑(입촉계불피촉혹)하고, 入法界不被法惑(입법계불피법혹)하니라. 所以(소이)로 達六種色ㆍ聲ㆍ香ㆍ味ㆍ觸ㆍ法(달육종색성향미촉법)이 皆是空相(개시공상)이라.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 여섯 가지 이것의 모두가 헛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을 통달한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육신통이다.
굳이 육신통에 대해서 부처님을 떠받들려면 그렇게 이해해야지, 부처님은 요지부동한 인물이야. 그래서 도인을 시험하는데, 8풍으로서 不動(부동)하는 것. 8풍에 동하는가? 동하지 않는가? 하는 여덟 가지 바람을 불어보면 거기에 동한 사람은 도인이 아니고, 동하지 않으면 도인이다. 도인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일단은 도인의 안목을 제대로 갖춰야 되니까 보통 사람은 도인의 안목 없다 말입니다. 그럼 도인의 안목도 없이 도인을 알아보는 방법이 八風(팔풍)입니다. 여덟 가지 바람.
利ㆍ衰ㆍ毁ㆍ譽ㆍ稱ㆍ譏ㆍ苦ㆍ樂(이쇠훼예칭기고락).
利는 이로운 것. 요즘 새 돈 나왔으니까 새 돈을 아주 빳빳한 5만 원 권을 한 보따리 싸 가지고 갖다 줘 본다 말입니다.
衰는 당신이 그런 것 가지고 있으면 한 번 뺏어보는 겁니다. 무슨 깡패를 동원 하든지 어떻게 해 가지고 뺏어보는 겁니다. 이런 두 가지 상황에 흔들리는가? 흔들리지 않는가?
毁ㆍ譽, 막 욕을 하는 겁니다. 있는 욕 없는 욕, 옛날에 어릴 때 출가하기 전에 잘못한 것 까지도 다 그냥 꾸며 가지고 욕을 한다든지, 또 있는 칭찬 없는 칭찬 막 해 보는 겁니다. 이런 헐뜯고 비방하고 칭찬하고 추겨주는 이런데에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도인을 시험하는 방법입니다.
稱ㆍ譏라고 하는 것은, 稱은 칭찬하는 것이고, 譏는 놀리는 것입니다.
기롱한다는 것. 苦ㆍ樂, 고생을 아주 된통 시켜 보는 것입니다.
한 1년쯤 아주 어려운 상황 속에다가 집어 넣어가지고, 고생을 한 번 시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즐겁게, 육신이 아주 편안하고 즐겁고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도록 그렇게 해봤을 때, 그런 여덟 가지 바람에 움직이는가?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을 가지고 알아 볼 수있다하는 그런 선불교에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6신통이 있어서 아주 훌륭한 존재다. 불가사의한 존재다. 라고 하는데 뭐 그 정도 신통이야 신선ㆍ아수라ㆍ대력 귀신도 다 가지고 있고,
제석천도 다 가지고 있는데, 그런 것은 다 業通이고 依通이고, 사기고ㆍ눈속임이다 이 것이지요. 진짜 6신통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 6근이 어떤 상황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미혹 되지 않는 그것이라야 비로소 신통이지,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방거사라고 하는 유명한 거사 분은 神通妙用(신통묘용)이여 運水及搬柴(운수급반시)라.
아주 유명한 말을 했어요. 신통, 신통하는데 신통묘용. 묘용은 따라다니는 표현이지요. 묘한 작용하니까 神通妙用이 뭔가? 運水及搬柴라. 땔나무 해오고 물 길어오는 것. 그것이 신통이다. 그것이 神通妙用이다 이 말입니다.
지금 같으면 가스 불 켤 줄 알고, 수도꼭지 열 줄 아는 그것이 神通이다 이 것이지요. 이 거사님은 아~~ 주 명쾌한 이 신통에 대한 설명에 온갖 불교도가, 모든 불교도ㆍ모든 선사ㆍ모든 도인들이 전부 지금까지도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짜 불변 없는 신통입니다. 본래 가지고 있는 그런 신통. 그래서 여기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皆是空相(개시공상)이라, 不能繫縛此無依道人(불능계박차무의도인)이라. 능히 그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 無依道人. 무의도인. 그것을 능히 속박할 수가 없어서 雖是五蘊漏質(수시오온누질)이나, 비록 五蘊漏質이야.
色ㆍ受ㆍ想ㆍ行ㆍ識(색수상행식). 이 오온으로 되어 있는, 감기만 걸려도 콜록콜록하고 뭐 가시에 조금만 찔려도 아~, 그냥 아프다고 하고, 온갖 쑤시고 아프고 늙고 병들고 엉망진창이지요. 그것이 漏質입니다. 五蘊漏質입니다.
우리 몸뚱이 참 기가 막힌 존재 아닙니까? 어찌 이렇게 아침 먹으면 곧 점심 먹여줘야 되고, 점심 먹고 나면 또 저녁 먹여줘야 되고, 또 재워줘야 되고, 또 어제 입었던 옷은 더럽다고 새 옷 입혀줘야 되고, 늘 입던 옷은 보기 싫다고 딴 옷 내 놓으라 하고, 같은 반찬 주면 또 어제 먹던 반찬 왜 내놨나 하고 새 반찬 내 놓으라 하고, 이것이 몹쓸 존재입니다.
이것이 五蘊漏質입니다. 五蘊漏質이지만, 그렇지만 아주 훌륭한 신통이 있어요.
便是地行神通(변시지행신통)이니라.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묘용이 있다 이겁니다. 地行神通. 그래서 그 신통으로 우리 모두가 이렇게 여기까지 오셨고, 또 시간이 끝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줄 아는 그런 신통이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 눈을 떠야 되고, 그것을 이 세상에 가장 가치 있는 보배로 여길 줄 알아야 돼요. 그것이 우리의 생명일뿐더러 불교의 생명입니다.
우리 모두의 참 생명이고 불교의 생명이기도 하고 그래요.
14-12 三界唯心(삼계유심).
道流(도류)야
眞佛無形(진불무형)이요 眞法無相(진법무상)이라.
儞祇麽幻化上頭(이지마환화상두)에 作模作樣(작모작양)하야
設求得者(설구득자)나 皆是野狐精魅(개시야호정매)요
幷不是眞佛(병불시진불)이니 是外道見解(시외도견해)니라.
夫如眞學道人(부여진학도)은 幷不取佛(병불취불)하며
不取菩薩羅漢(불취보살나한)하며
不取三界殊勝(불취삼계수승)하고 逈然獨脫(형연독탈)하야
不與物拘(불여물구)니라.
乾坤倒覆(건곤도복)하야도 我更不疑(아갱불의)하며
十方諸佛現前(시방제불현전)하야도
無一念心喜(무일념심희)하고,
三塗地獄頓現(삼도지옥돈현)하야도
無一念心怖(무일념심포)하나니 緣何如此(연하여차)오?
我見諸法空相(아견제법공상)일새 變卽有(변즉유)하고,
不變卽無(불변즉무)니라 三界唯心(삼계유심)이요,
萬法唯識(만법유식)이니 所以(소이)로 夢幻空花(몽환공화)를
何勞把捉(하로파착)가하니라.
道流야 眞佛은 無形(진불무형)이요, 참 부처는 형상이 없고,
眞法은 無相(진법무상)이다. 참다운 법은 형상이 없는 것이다.
儞祇麽幻化上頭(이지마환화상두)에, 이러한 허망한 환영과 같은 이런 것 위에, 幻化上頭에, 作模作樣(작모작양). 모양을 만든다 이겁니다.
그래서 설사 모양을 만들어 가지고 뭐라고 말로 그리고, 이론으로 그리고, 경전에서 그리고, 형상으로 만들고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모양을 그린다 하더라도 거기서 設求得者(설구득자)나,
비록 거기에서 뭔가 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있다 하나 皆是野狐精魅(개시야호정매)요, 거기에서 얻어지는 것은 전부 여우귀신이다 이겁니다.
사람귀신도 못된 여우귀신 = 野狐精魅이다.
幷不是眞佛(병불시진불)이라, 그것은 아울러 참다운 부처가 아니다.
경전 상에서 뭐 이러고저러고 해놓은 그 부처ㆍ보살ㆍ나한ㆍ그것은 전부 문자 상 그저 헛된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是外道見解(시외도견해)니라. 이것은 전부 외도의 견해니라.
夫如眞學道人(부여진학도인)은, 참다운 도를 공부하는 사람이면,
幷不取佛(병불취불)하며, 부처도 취하지 아니해.
그래서 彼旣丈夫我亦爾(피기장부아역이)라. 그대도 또한 장부고 나도 또한 장부다. 나도 또한 그렇다. 不向如來行處行(불향여래행처행)이라. 부처가 간 곳을 나는 안 간다 이겁니다. 여래는 여래 갈길 갔고, 나는 내가 갈길 가는데 뭐 여래 간길 내가 갈 것이 있겠는가? 이런 아주 당당한 표현도 있습니다.
그래서 幷不取佛. 부처도 취하지 아니하며, 不取菩薩羅漢(불취보살나한)이여, 보살도 취하지 아니하고 나한도 취하지 아니해. 不取三界殊勝(불취삼계수승)이며, 삼계에서 아주 수승한 자리도 취하지 아니해. 그러면서 자기혼자 逈然獨脫(형연독탈)해서 不與物拘(불여물구)라. 逈然히. 툭~~ 뛰어난 것입니다. 멀~~ 리 뛰어나가지고 홀로 벗어나가지고서 어떤 사물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어떤 사물로 더불어 서도 구애받지 않는다.
그 사람 어떻게 유혹할 길이 없어요. 무얼 로도 유혹이 안돼요.
명예도 부귀도 물질로도 그 무엇으로도 어떻게 유혹할 수 없는 그러한 존재.
그것이 바로 眞佛無形(진불무형)하고 眞法은 無相(진법무상)한 도리다.
眞佛無形하고 眞法無相한데 맛을 들여 놓으면, 그런 것에 전혀 취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乾坤이 倒覆(건곤도복)하고, 하늘과 땅이 그냥 뒤엎어져도,
我更不疑(아갱불의)하며, 나는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어.
세상이 확 뒤바뀐다 하더라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늘이 땅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 어떤 변괴가 일어나더라도 나는 거기에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十方諸佛이 現前(시방제불현전)하야도,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내 앞에 다 나타난다 하더라도 無一念心喜(무일념심희)하고, 한 생각도 내가 기뻐하거나 눈 떠서 쳐다보지도 않해 까짓것. 그런데 우리 불자들 간혹 보면, 자다가 그것도 꿈에 부처님을 봤다ㆍ혹 또 스님을 봤다. 해가지고 전화로 막 하는 사람이 있어요. 十方諸佛이 現前하더라도 無一念心喜여. 한 생각의 기쁨도 없다 이겁니다. 전혀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는 다 이겁니다.
꿈 가지고 자꾸 이야기하면 꿈 사람이 돼버려요. 꿈만 쫓는 사람이 돼버려요. 아 우리 실제의 인생도 꿈이라고 불교에서 가르치는데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 그것이 오죽한 꿈이겠습니까? 누가 옆에서 그런 것 가지고 문제 삼고 묻고 궁금해 하거든 시원스럽게 확 그냥 의혹을 털어주세요. 그래도 그 꿈인데도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저 사람 설명 잘 못한다고, 잘 모른다고 그리고는 딴 데 가서 또 물어봐요. 허망한 꿈에 미련이 있어가지고... 그런데 벗으려고 하면 오뉴월의 핫바지도 미련이 있다는데요.
세상의 그 알량한 명예. 왜 미련이 없겠어요? 한 번 잡으면 안 내놓으려는 겁니다. 그래 참 성인들의 이런 공부를 이렇게 귀로 스쳐서 지나가 버리는 이런 가벼운 인연으로라도 우리가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쑥쑥 성장을 하고 발전을 해서 저 만치 높은 자리에 가서 이렇게 내려다보는, 세상사를 아이들 장난처럼 내려다보는 그런 안목이 생기는 것이지요.
三塗地獄이 頓現(삼도지옥돈현)하야도 無一念心怖(무일념심포)여,
삼악도 지옥이 한꺼번에 다 나타나가지고, 온갖 고통이 그냥 엄습해 오더라도 한 생각도 두려하는 마음이 없다. 無一念心怖. 아~ 참, 누가 이런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참 대단하지요? 정말 근사 합니다.
緣何如此(연하여차)오? 무엇을 인연해서 이와 같이 될 수 있느냐?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我見諸法空相(아견제법공상)일새.
나는 모든 법이 공하다고 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공하다고 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이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것 다 허망한 것이지요.
전부 공한 것입니다. 變卽有(변즉유)하고, 변하면 마음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면, 그런 것이 있고, 不變卽無(불변즉무)여. 마음이 하나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변화가 없을 것 같으면 아무것도 그런 허망한 것이 없어.
空하니까요. 그야말로 환상입니다. 환영이고요. 그 환상과 환영은 마음이 변화가 있을 때 생기는 겁니다.
눈에 병이 있으면 공연한 하늘에서 말하자면 허공에서 꽃이 떨어지는 헛것이 그렇게 보입니다. 그렇지만 멀쩡한 눈병 없는 사람은 그런 것 안 보입니다. 마찬 가지로 마음에 어떤 변화가 있으면 그런 것이 있지만, 변화가 없으면 없다. 三界唯心(삼계유심)이요 萬法唯識(만법유식)이니, 所以(소이)로 夢幻空花(몽환공화)를 何勞把捉(하로파착)가? 이것이 신심명에 있는 소리지요? 꿈이요 환영이요 헛꽃인 것을 어찌 하여 수고로이 그것을 잡으려고 하는가?
得失是非(득실시비)를 一時放却(일시방각)하라 그렇지요?
이득과 손실과 옳고 그름을 모두다 일시에 놓아 버려라.
신심명, 참 좋은 글입니다. 영가 증도가하고 3조 승찬 대사 신심명,
그것은 선불교공부에 관심 있는 분들은 신심명하고 증도가는 외워야 돼요.
한두 번 봤다하는 정도에 그치지 말고 외워야 정도로, 옛날 선사들이 다 애송한 아주 선시 중에서도 선시입니다.
14-13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
唯有道流(유유도류)의
目前現今聽法底人(목전현금청법저인)하야
入火不燒(입화불소)하며 入水不溺(입수불익)하며
入三塗地獄(입삼도지옥)호대 如遊園觀(여유원관)하며
入餓鬼畜生而不受報(입아귀축생이불수보)하나니
緣何如此(연하여차)오? 無嫌底法(무혐저법)일새니라.
儞若愛聖憎凡(이약애성증범)하면
生死海裏沈浮(생사해리침부)하리니
煩惱由心故有(번뇌유심고유)라
無心煩惱何拘(무심번뇌하구)리오?
不勞分別取相(불노분별취상)하면
自然得道須臾(자연득도수유)니라.
儞擬傍家波波地學得(이의방가파파지학득)하면
於三祇劫中(어삼지겁중)에 終歸生死(종귀생사)하리니
不如無事(불여무사)하야 向叢林中(향총림중)하야
牀角頭交脚坐(상각두교각좌)니라.
唯有道流(유유도류)의 目前現今聽法底人(목전현금청법저인)하야
오직, 오직, 오직 여러분의 눈앞에, 바로 지금. 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 그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그 사람은
入火不燒(입화불소)하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아니하고,
入水不溺(입수불익)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를 아니하고,
入三塗地獄(입삼도지옥)호대, 삼도 지옥에 들어가더라도 如遊園觀(여유원관)하며, 저기 동산에서,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것과 같고,
入餓鬼畜生(입아귀축생), 아귀나 축생에 들어가더라도 而不受報(이불수보), 그 아귀나 축생의 과보를 받지 아니하나니,
緣何如此(연하여차)오? 무엇을 인연해서 이와 같이 되는가?
無嫌底法(무혐저법)일새니라. 그 무엇도 싫어하는 법이 없다. 싫어하는 것이 없는 도리입니다. 왜냐? 무엇도 공한 것인데, 전부 공한 것인데 싫어하고 말고 할 것이 뭐 있습니까? 또 아무리 좋은 것이 나타나더라도 그 역시 공한 것이라 좋아할 까닭이 없다 이겁니다. 안 좋은 것도 공한 것이요, 좋은 것도 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좋고 안 좋은 것이 없는 것이지요.
儞若(이약), 그대들이 만약에 愛ㆍ聖ㆍ憎ㆍ凡(애성증범). 성인을 사랑하고 범부를 미워한다면 生死海裏沈浮(생사해리침부)이라. 생사의 바다 속에서 沈浮할 것이다. 잠겼다 떴다, 잠겼다 떴다 하리니,
煩惱는 由心故有(번뇌유심고유)라. 번뇌는 마음을 말미암은 것에 있는 것이다. 無心할 것 같으면 煩惱何拘(번뇌하구)리오? 번뇌가 어찌 구속하겠는가?
무심한데, 마음에서 번뇌가 생겨요. 그런데 그 마음마저 없어요.
무심입니다. 그러면 번뇌가 일어날 까닭도 없고, 그러니 번뇌가 어찌 구속하리요?
不勞分別取相(불노분별취상)하면, 수고로이 분별해서 相을 취하지 아니하면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분별해 가지고서 相을 취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自然得道須臾(자연득도수유)니라, 자연히 도를 얻는 것이 須臾간일 것이다. 한 순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그냥 득도하고 말 것이 다 이 말입니다. 득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目前現今聽法底人(목전현금청법저인). 그것 다 있잖아요. 그것으로 지금 이렇게 말하고 듣고, 춥다 덥다 분별하는데, 그것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것 있으면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저절로 한 순간에 득도 할 수 있는 그 사람이지요.
그래서 儞擬(이의), 그대들은 傍家(방가), 괜히 자기 자신을 놔두고 옆집으로, 남의 집으로, 波波地學得(파파지학득). 아주 부지런, 부지런히 배워서 얻으려고 할 것 같으면, 그러면 뭐라고요?
於三祇劫中(어삼지겁중)에. 3아승지겁 이라고 하는 세월 속에서 終歸生死(종귀생사)하리라. 아무리 3아승지겁이 아니라 300아승지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은 허망한데로 돌아가고 말아. 마침내 허망한데로 돌아가고 만다.
생사로 돌아가고 만다. 허망ㆍ허사 그 말입니다. 이런데서 生死라는 말은요. 생사로 돌아가고 말리라. 不如無事(불여무사)하야, 일이 없어가지고서
向叢林中(향총림중)하야, 叢林中을 향해가지고서
牀角頭交脚坐(상각두교각좌)니라, 선상머리에 다리를 꼬고, 선상위에서 다리를 꼬고, 가부좌하고 앉아 있는 것만 같지 못하리라. 아무 일없이 그냥 그렇게 뭐 목석이 됐든지, 뭐가 됐든지 멍청이가 됐든지 그저 무심히 앉아 있는 것이, 그것이 차라리 낫지 않느냐 이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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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得失是非를 一時放却하라...이득과 손실과 옳고 그름을 모두다 일시에 놓아 버려라...고맙습니다. _()()()_
緣何如此 我見諸法空相... _()()()_ 장마중에도 청량한 날입니다
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하니,上柱天下柱地(상주천하주지)라. ㅡ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에 까지 뻗쳐 있고 밑으로는 땅을 버티고 있다. 無名無相(무명무상)~ 대원성보살님의 꼼꼼하면서도 자상하게 올려 주신 녹취 덕분에 언제나 임제 문중의 공부는 즐겁습니다._()()()_
眞佛無形(진불무형)이요 眞法無相(진법무상)이라..참부처는 형상이 없고,참다운 법은 형상이 없다...대원성님, 고맙습니다._()()()_
不勞分別取相 (불노분별취상)수고로이 분별해서 相을 취하지 아니하면 自然得道須臾(자연득도수유)자연이 그냥 득도하고 말것것이다 ....고맙습니다 _()()()_
十方諸佛이 現前하더라도 無一念心喜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내 앞에 다 나타난다 하더라도 한 생각의 기쁨도 없음이여..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_()()()_
十方諸佛이 現前 하더라도 無一念喜여,....고맙습닏,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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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佛은 無形(진불무형)이요, 참 부처는 형상이 없고, 眞法은 無相(진법무상)이다. 참다운 법은 형상이 없는 것이다. 대원성님 오늘고 공부 잘하고 갑니다 .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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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前現今聽法底人......고맙습니다._()()()_
삼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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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병들고 늙고 엉망진창인 몸뚱아리 그렇지만 땅위로 걸어다니는 신통이 있으니 이 것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보배인줄 알아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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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幻空花 何勞把捉 ... _()_
有身非覺體(유신비각체)요 無相乃眞形(무상내진형)이로다...형상이 있는 몸은 깨달음의 자체가 못되며 형상없는 몸이야말로 진짜 형상이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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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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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