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간음의 의미와 범위
<살후3: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수많은 사람이 영생을 얻고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하니 심히 놀라운 말이다.
주변에 머리가 아주 좋은 동년배의 친구가 있다. 지능지수가 천재적 수준이고(IQ 140이상) 엄청난 책을 읽어서 아는 것도 많다. 그런데 소시적부터 친구들 따라서 예배당을 다녔지만 믿음이 생기지 않는단다. 그 친구의 소원중 하나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믿어지는 것이란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교회생활하는 모습이 제일 부럽단다, 이제는 그나마 지쳐서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이런 경우는 오히려 솔직한 자기분석이다. 어쩌면 믿는다고 확신하면서 교회생활을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참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교리로 포장된 기독교(캐톨릭 혹은 개신교)를 믿거나, 본능적인 종교성에서 나온 범신론적 신관일 수 있는데도 이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 문제이다.
바른 믿음의 출발은 하나님의 생명여부에 달려있다. 그래서 성경은 순수 영적혈통을 생명 삼는다. 다시 말한다면 잡종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하나님의 씨의 보존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씨를 어느 밭에 뿌려야 본래의 하나님의 생명성(DNA)을 제대로 생산하는지를 하나님은 아시기에 반드시 좋은 밭에만 뿌려야 한다는 조건을 엄수하신다.
이 순수한 하나님의 씨가 좋은 밭을 만나서 맺힌 열매가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하나님의 현현(나타남)이시다. 마1장의 예수님의 족보는 이 씨에 대한 계통을 말한다. 거룩한 하나님의 씨가 이 땅에 오시기까지의 생명계대를 42대로 설명했다.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쳐 요셉까지의 육신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씨의 통로가 어떠한 자들이었나를 보여준다. 모두 아브라함처럼 요단을 건너 할례 받고 새이름을 가진 자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을 일컬어 아예 천국의 씨(아들)라고 표현(마13:38) 했으니 어떤 사람이 곧 씨이다.
또한 눅3장에서의 예수님의 족보는 좋은 밭에 해당하는 마리아 족보를 설명한다. 처녀 마리아는 깊은 영적인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성경에서의 처녀란 세상에서의 개념과는 정반대의 말이다. 마리아는 히브리어 ‘미리암’에서 온 말로서 ‘모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인 세상을 전적으로 거부하여 대항한 자이다. 이런 여자를 경수가 끊긴 자라 한다. 이름하여 충성된 증인 ‘안디바(안티 파테르~아비를 부정함)’와 의미상 같다(계2:13).
이렇게 할례 받은 자를 통해 이어온 순수한 씨와 정결한 태(좋은 밭)에서 난 자가 아닌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된다. 불륜의 자식을 성경은 무녀의 자식이요, 간음자와 음녀의 씨라고 한다(사57:3). 그렇다, 이사야의 증거대로 남조 유다의 방백과 백성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판박이였다. 왜 그리되었나? 오로지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오던 유다가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씨와 밭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근원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 유여(아주 많음) 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만 생산(지으신 것)한 것은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라 했다(말2:15). 그러나 유다(자칭 믿는자)는 언제나 궤사를 행해(간음) 다른 씨를 생산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미리 교회의 여러 형태를 보여주셨다. 아브라함은 세 아내를 두었다. 사라와 하갈 그리고 그두라다. 각각의 연합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자. 남자는 씨를, 여자는 태를 상징한다. 남자가 할례를 받았는지 여부와 여자가 경수가 끊어진 상태인가가 진위의 잣대다.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의미한다(엡5:32).
A형: 아브람(무할례)*사래(경수중)= 무자(ZERO)
- 아브람(무할례 상태)-> 율법 종교의식적 사상 소유(아직 영적인 사람 못됨)
- 경수: 혈육의 정욕이 남아있음( 옛사람 성분/ 세상사랑, 자기사랑)
* 하갈의 성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갈과 동질)
B형: 아브람(무할례)*하갈(애굽여인)=이스마엘(종)
- 아브람(무할례 상태)-> 율법 종교의식적 사상 소유(아직 영적인 사람 못됨)
- 애굽여인: 세상성을 상징( 세상 사랑하는 맘 여전함/ 회개와 대속이 없음)
* 사래의 성분을 우회적으로 표현( 사래와 동질)
- 이스마엘: 종의 사역자 상징(율법사역자, 몽학선생)
C형: 아브라함* 사라 = 이삭 (아들, 자유자)
- 할례 받은 씨(알곡)와 경수가 끊어진 태(좋은 밭)
- 이삭은 예수그리스도 예표(하나님의 아들, 부활생명, 영, 진리)
* 사라: 해입은 여자의 상징(계12)
D형: 아브라함* 그두라(함의 자손)= 앗수르, 미디안족의 조상
- (타락한) 아브라함: 하늘의 은사와 성령에 참예한바 되었으나 타락함(히6:4~
- 그두라: 검은 피부색 종족, 거듭남이 없는 죄인
<정리>
* C형을 제외한 나머지 유형은 모두 행음(간음)죄
- A형과 B형은 같은 내용( 사라의 옛 성분을 사래 혹은 하갈로 표현)
- D형은 주님의 교회가 다시 율법으로 회귀한 타락한 교회
<레19:20> 무릇 아직 속량도 되지 못하고 해방도 되지 못하고 정혼한 씨종(하갈)과 사람이 행음하면 두 사람이 형벌은 받으려니와 그들이 죽임을 당치 아니할 것은 그 여인은 아직 해방되지 못하였음이라 => A, B, D형
<레20:16> 여자(사라)가 짐승(아브람, 이스마엘)에게 가까이 하여 교합하거든 너는 여자와 짐승을 죽이되 이들을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A, B형
<레20:15> 남자(타락한 아브라함)가 짐승(죄인/그두라)과 교합하면 반드시 죽이고 너희는 그 짐승도 죽일 것이며 =>D형
* cf : <시49:2>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남자든 여자든)
새 이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육적 생명이 끝난 부활 생명을 상징한다. 즉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의 말씀’을 가진 복음의 제사장을 말한다. 사라는 그랄왕 아비멜렉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시온에 돌아온 자를 상징하는바, 그랄왕은 불레셋을 통치하던 자였으니(창21:32), 할례 없는 율법종교를 끝냈다는 말이다. 즉 아브라함처럼 할례 받았다는 의미로서 여자이기 때문에 경수가 끊어진 것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이 믿음에 있는지, 예수그리스도가 내안에 계신지 여부를 시험하고 확증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버리운 자이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부연하거니와, 신약시대라고해서 혹은 입술로 예수그리스도를 말한다고 해서 믿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들 입술로는 부지런히 떠들기 때문에 자타가 착각에 빠지기 아주 쉽다. 그렇다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부활이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가 해 입은 여자요 사라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열매를 보면 안다. 열매란 실제의 교회 생활이다. 필라델피아 교회생활이 성경적 정답이다.
필라델피아 교회생활은 발람의 교훈이 무엇인지, 니골라당의 행위가 무엇인지, 이세벨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무리인 큰 성 바벨론에서 빠져나와서 성령과 신부가 오라는 곳에서 생명의 누림을 갖는 자들을 의미한다.
모두가 예루살렘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에게 몰려가서 대회로 모이며 교리와 율법의식에 따른 엄숙한 제사에 열중할 때, 주님과 소수의 제자들은 감람산 기슭 베다니 마을에 모여 오직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것이 신령과 진정의 영적예배이다. 이때의 주님의 말씀은 구약성경이지 별도의 새로운 말씀이 아니었다. 그러나 실은 전혀 새로운 말씀이었다.
<요일2:7~8a> 내가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로운 계명이 아니고 여러분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옛 계명입니다. 그 옛 계명은 여러분이 줄곧 들어온 그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사실은 새 계명입니다
수건으로 가려져서 아리송했던 말씀들을 자세히 깨닫게 하여 풀어주니, 듣는 모든 심령에 생명의 빛이 조요히 비쳐진다. 깊게 드리웠던 혼돈과 어두움은 물러가고 대신에 하나님의 창조의 경륜과, 만물과 만상의 운행이치와, 신령세계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가는 기쁨에 젖어 들다보니 어느새 새벽이라...
술람미가 솔로몬으로 인해 기쁨에 취해 부른 아가가 여기에 있고, 성령(주의 영)과 신부가 하나가 된 기쁨의 가나 혼인잔치가 여기임을 그대들은 아는가? 이것이 구원이고 주님과 하나됨의 실제이다. 이렇게 신랑 되신 주님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 영생이다.
그렇다면 간음이 왜 돌로 쳐죽일 만큼 큰 죄인가? 실제는 영생의 열매가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헛배를 부르게 하여 속이기 때문이요, 소중한 영적 생명을 망하게 하기 때문이다. 비록 어릴적의 순수한 몽학 선생이라 할지라도, 자라게 하여 단단한 식물을 먹임으로 선악을 분별케 해야 하는데, 결과가 그것이 아니라면 사망의 열매만 맺기에 엄중히 다스리는 것이다. 믿은 날이 오래건만 여전히 혼돈 속에 있다.
이러한 영적간음을 바리새인들은 알지 못하면서 육신적 간음한 여자를 주님 앞에 끌고와 모세의 율법으로 정죄 하기에 바쁘니 얼마나 가당치 않은 일인가? 실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바리새인 자신들이야말로 갖가지 영적간음을 자행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십계명의 본뜻은 ‘간음해서는 안된다’이다. 이는 명령법인 ‘간음하지 마라’(앞으로 하지 마라)와 반대되는 의미로서, 이제 그만 간음하라는 말이다. 즉 지금 너희는 모두 간음하는 삶인데 올바로 깨달고 돌이켜서, 온전한 삶으로 승화시켜 열매 맺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촉구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성장하지 않는 삶 자체도 간음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한다.
나는 아브라함인가? 혹은 아브람인가? 나는 사라인가? 혹은 사래(하갈)인가? 다시한번 나의 믿음을 돌아보는 진지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첫댓글 C형의 아브라함의 성령과 진리의 예배드리는 신앙생활로 첫 열매되게 하옵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