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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시 대협곡
수려한 자연 경관과 거대한 협곡을 만날 수 있는 중국 은시대협곡.
총면적만 300km²의 거대한 협곡을 자랑한다.
이것은 동양 최대 규모로 실제 그 모습이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특히 협곡의 운해는 질서 없이 떠오르는 대다수의 운해와 다르게 마치 거대한 용과 같다.
40km까지 뻗어나가 그 아름다움은 상상조차 못 할 정도다.
현재 은시대협곡의 개발된 지역에는 소용문, 중용문, 대용문 등의 경관이 있고,
협곡의 산세 변화가 다채로워 보는 위치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준다. 또한 협곡에서 만나는
해돋이는 여행 필수 코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려한 장관을 보여준다.
500m가 넘는 잔도
160여m 높이의 한 자루 향불. 一燭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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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두눈으로 볼수있다면, 두 가지의 소원이 있다.
한가지는 밤에서 아침이 오고, 낮이되는 웅장한 자연의 경이를.
또 한가지는 밤하늘의 보석같은 별들을 보는것이다." - 헬렌 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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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루
악양루는 여러번 고쳐지었는데, 현재의 악양루는 1880년 청나라 광서제(光緖帝) 때
다시 중건한 것으로 누각의 높이는 20미터, 삼층 목조건물이다.
동오(東吳)의 명장 노숙(魯肅)이 수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볼 목적으로 세운,
열군루(閱軍樓)를 716년 당나라 때 악주 태수 장열(張說)이 수리하여,
다시 세우면서 악양루(岳陽樓)라고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다섯 번 고쳐지은 악양루의 모습을 작은 미니어처로 만들어 정원의 작은 호수 둘레에
세워놓았는데 송나라 때 있었던 악양루가 가장 멋져 보인다.
주유(周瑜)와 함께 동오의 명장이었던 노숙이 유비(劉備)와 동맹을 맺고 제갈공명과 더불어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를 대패시킨 이야기는 삼국지의 하이라이트가 아니던가?
정원 한 쪽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악양루와 동정호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글들을
모아 비석에 새겨 세워놓았다.
登岳陽樓 -두보-
昔聞洞庭水 옛날 동정호에 대한 말을 들었더니,
今上岳陽樓 오늘 악양루에 오르는구나.
吳楚東南拍 오나라와 초나라가 동남쪽으로 갈라졌고,
乾坤日夜浮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호수에) 떠 있도다.
親朋無一字 친한 벗이 한 글자도 편지가 없으니,
老去有孤舟 늙어 가며 외로운 배만 있도다.
戎馬關山北 군마(軍馬)는 고향 관산의 북쪽에 있으니,
憑軒涕泗流 루 난간에 기대어 눈물 콧물 흘리노라.
두보가 유랑 중에 있던 57세 때, 악양루에 올라 말로만 듣던 동정호수를 바라보고,
그 감회를 읊은 시이며, 두보가 57세(768년) 때 지은 오언 율시이다.
동정호를 소문으로만 들어왔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악양루에 올라 보니,
그 광대, 장려한 모습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이를 마주한 자신은 외로이 떠도는 방랑객이고, 더욱이 나라에는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어,
근심으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자연과 인간, 기쁨과 슬픔의 대비가 선명히 이루어져 있다.
특히 3~4행(함련)은 천고의 절창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고독과 절망에 빠져 있던 당시
두보의 심정을 진솔하게 표현한 이 시는 자연과 인간, 기쁨과 슬픔을 선명하게 대비시켜
선경후정의 효과를 잘 살린 작품이며, 향수의 정과 우국지심을 잘 표현하고 있다.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나그네의 처지가
가슴 아프게 전달되는 이 작품은, 자연과 인간, 기쁨과 슬픔의 대비를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특히, 끝 부분은 두보의 우국지정이 잘 나타난 부분으로, 오랜 전란 중에 갖은 고초를 다 겪은
두보가 관산의 북쪽에는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마침내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이다.
이때, 두보가 흘린 눈물은 단순한 신세 한탄이라기보다, 도탄에 빠진 백성과 비운을 맞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오쩌뚱의 '등 악양루' 초서글씨
동정호와 군산
동정호는 중국에서 2번째로 큰 담수호. 최대는 강서(江西, Jiangxi) 구강(九江, Jiujiang)시에
있는 파양호(鄱陽湖). 호수의 면적은 계절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정도로 수량의 변화가 많다.
춘추 전국시대 이래 역대의 개간과 수리공사로 해서 오늘과 같은 호수가 되었는데,
호남성내의 농수(濃水), 상강(湘江), 원수(沅水), 자수(資水)의 4대 하천이 흘러들었다가
양자강으로 흘러 나간다. 장강의 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장강이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으며
단지 그 형태가 호수처럼 보일 뿐이다.
동정호 안에는 군산(君山)이라 부르는 조그만 섬이 떠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군산에는 옛부터 내려오는 갖가지 전설이 묻혀있으며, 호반의 악양루에서 보면
『은쟁반 위에 놓인 푸른 조개』처럼 보인다.
군산 은침차와 '만침서천 萬針書天'
* 군산은침(君山銀針) - 군산은침은 선발효차인 황차계열로 황아차(黃芽茶)에 속하는
대표적인 차 중 하나다. 찻잎이 뜨거운 물을 부어도 뾰족한 침 같이
서서 떠있다가, 침이 찔리듯 서서히 갈아앉아, 그냥 서 있기 때문에
침이 하늘에 글을 쓰는듯 하다하여 萬針書天이라 한다.
황차는 찻잎의 크기에 따라 ‘황아차(黃芽茶)’, ‘황샤오차(黄小茶)’, ‘황다차(黄大茶)’로 나뉜다. 황아차는 초봄에 수확한 새순으로 가공한 황차이며, 대표적인 황아차로는 ‘몽정황아(蒙頂黃芽)’, ‘군산은침(君山銀針)’, ‘곽산황아(藿山黃芽)’가 유명하다. ‘황샤오차(黄小茶)’는 봄에 수확한 어린 찻잎으로 가공한 황차를 말하며, ‘황다차’는 여름철에 수확한 찻잎을 사용하는 황차를 의미한다. 황다차는 잎이 크고 두툼해서 황차 중에서도 그만큼 향이 가장 진하고 짙은 색을 띤다.
황차 종류는 40%가량 발효한 것인데, 대표적인 차로는 군산은침, 군산모첨, 몽정황아, 곽산황아 등이다.
“군산은침(君山銀針)은 중국 후난성(湖南省) 악양현의 둥팅호(洞庭湖) 가운데 있는 섬인 군산(君山)에서 생산되는 차이다. 이 차는 중국의 당나라 때에서 비롯하였고 청나라 때에는 황실에 바쳐지던 귀한 차다. 군산에서는 원래 녹차를 생산하다가 후대로 가면서 황차로 바뀌어 황차의 대표적인 차가 되었다. 모양은 백차의 대표적인 차인 푸젠성 백호은침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군산은침은 마오쩌둥이 가장 즐겼던 차라고도 전해진다.
옛날 동정호 군산(君山)에 장순(張順)이라 불리는 젊은이가 살았는데, 근데 이 젊은이는 맘이 너무 착해서 다른 사람 돕기를 좋아했다. 그의 착한 맘에 감복한 용왕이 이 젊은이에게 밝은 빛이 나는 구슬을 주며 잘 살라고 했다.
이 젊은이는 마을 사람 전체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구슬을 군산의 청라봉(靑螺峰)에 묻었는데 어느 날 구슬을 묻은 자리에서 은침모양의 차나무가 자랐다. 그래서 그 차나무를 '군산은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청나라 때는 그 모양 때문에 첨차(尖茶) 또는 용차(茸茶)라고도 불리었다.
이 차는 청명(淸明)전후 3-4일에 걸쳐 어린잎을 따서 먼저 솥에서 열처리를 한 뒤, 1차 건조를 시키고 다시 수분 함량이 50-60% 정도에서 종이로 싼 뒤 목 상자나 철제상자에 넣고 40-48시간 저장시켜 만든다.
이 차에 더운 물을 부으면 차 싹이 곧게 뜨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데 이런 모양을 보고 당나라 사람들은 세 번 떴다가 세 번 가라앉는다 하여 삼기삼락(三起三落)이라 했다고 한다.
瀟湘斑竹(소상반죽)
눈물자국 모양의 무늬가 박혀있는 대나무의 이름
순(舜)임금은 요(堯)임금의 두 딸, 아황과 여영과 결혼하고 왕위를
물려받았는데, 재위 28년에 큰 물난리가 있자,곤으로 하여금
치수(治水)토록 하였다. 그러나 9년이 지나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곤을 우산에 가두어 평생토록 나오지 못하게 한 후, 곤의 아들
우(禹)에게 그 일을 대신하게 했고, 결국 8년 만에 완공을 본다.
이에 순(舜)임금은 우(禹)를 치하하고자, 소상(瀟湘)강변으로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부친에 대한 일로 앙심을 품고 있는
우(禹)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황과 여영이 달려와 애통해하며 3일 밤낮을
피눈물을 흘리다 죽었고, 그 자리에‘눈물자국이 선명한 대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황학루(黃鶴樓)
강남 3대 누각 중 하나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원래 이곳 장강 가에 신씨(辛氏)가 운영하는 주막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는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와서 술을 외상으로 달라고 했다고 한다.
마음씨 좋은 주인은 술을 주었는데, 그 노인은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이렇게 와서
외상술을 마시고 갔다.
그러던 중 하루는 그 노인이 와서, 오늘은 그동안의 외상값을 갚겠다고 하며 먹던 귤의 껍질로
주막의 벽에다 학을 그렸다.
다 그리고 난 후 노인이 손뼉을 치자 그림의 학이 밖으로 나와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러자 노인이 앞으로 이렇게 나처럼 학을 춤추게 하면 손님들이 그 소문을 듣고 몰려들 것이니,
그것으로 외상값을 갚는 셈 치자고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이 떠난 후 주인이 손뼉을 치니, 역시 황학이 벽에서 나와 춤을 추었다.
이에 소문이 퍼져 손님이 끊이질 않았고, 신씨는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그 노인이 다시 찾아와 외상값을 갚았으니 학을 데려 가겠다고 하면서,
학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이에 신씨는 노인이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알고, 주막을 그만 두고 그 자리에
노인을 기리는 누각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황학루라고 한다.
황학루는 지어진 이래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고황학루(古黃鶴樓)"는 3층에 31.4m 였는데, 이에 비해 새로 지어진 누각은 20m 가
높아진 51.4m 높이의 5층 건물이다.
옛 건물의 특색을 잘 지키고 있으면서도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바램을 잘 융합하여 지어졌다.
일설에는 적벽대전을 승리하고, 오나라 손권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송나라 시대의 황학루도
黃鶴樓 - 최호(崔顥) -
昔人已乘黃鶴去 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날아가고
此地空餘黃鶴樓 이곳에는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구나
白雲千載空悠悠 흰 구름만 천년이나 부질없이 떠도네
晴川歷歷漢陽樹 맑은 날 강 건너 한양의 나무 뚜렷하고
芳草萋萋鸚鵡洲 향긋한 풀 무성한 저곳은 앵무주로다
日暮鄕關何處是 해는 저물고 내 고향은 어디인가
煙波江上使人愁 강 위에 비낀 안개 시름만 더하는구나
이 시를 보고 뒤에온 이백이 황학루와 앵무주에 더 이상 쓸 글이 없다며,
붓을 던졌다는 말도 있고,
전하는 말에는,
李白도 황학루에 올라 시를 지으려 하다가 최호의 이 시를 보고,
"눈앞에 경치 있어도 말할 수 없으니, 최호 읊은 노래가 위에 있기 때문이라.
(眼前有景道不得, 崔顥題詩在上頭)"고 탄식했다 한다.
송나라 嚴羽(엄우)는 『창랑시화』에서, "당인 7언 율시 가운데 최호의 <황학루>가
첫째다."라 하였다.
그러나 이백의 시도 있지요.
그리고 이 황학루를 읊은 시는 당나라 시대에만 300수가 넘는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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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3대화로도시 : 우한, 난징, 충칭, 상하이, 지난 등 4위 자리 다툼
중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를 일컫는 '화로' 도시에 푸저우(福州), 광저우(广州), 항저우(杭州)가
새롭게 선정되면서 중국 대표 '화로 도시' 순위에 변동이 예상된다.
최근 홍콩 봉황위성TV 날씨 프로그램 '봉황 기상대'가 푸저우, 광저우, 항저우를 중국의
새로운 '화로 도시'로 선정, 발표했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 3대 '화로 도시'로 불렸던 우한(武汉), 난징(南京), 충칭(重庆)은 자연히
뒤로 물러나 연일 40도에 가까운 고온이 이어지고 있는 상하이, 지난(济南)과 함께 4대
'화로 도시'후보자에 올라 있다.
지금까지 중국의 '3대 화로'는 중국 초. 중학교 지리교과서에 우한, 충칭, 난징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들 지역은 '화로 도시'로 불리는 것을 상당히 꺼리며, 언론 등 대외에 사용 금지를
요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 선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4대 화로 도시'에는 서로 선정되길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 중국인은 階段을 좋아한다. 步步高. 걸어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
적벽대전 현장
자아----! 그럼. 무한과 동정호에 왔으니,
삼국지의 클라이막스 적벽대전 현장을 가 볼까요?
적벽대전을 이긴 후. 오나라 총사령관 주유가 붉게 물든 절벽에 써놓았다는 적벽.
소동파 적벽부의 적벽과는 다른곳입니다.
적벽대전을 화공으로 성공시킨 동남풍, 그 동남풍을 빌었다는 제갈공명의 제단 배풍대.
그 배풍대에 있는 동풍각.
이 정도면 되었나요?
이제 한시기행 5편도 끝나야지요.
읽어주신 우리님들 감사 드리고,
이런 자료들을 모아 편집하느라 소생도 공부 많이 되었읍니다.
모르는 사이 자신의 자료를 이용된 원본 주인 분들께 감사와 사과를 드리고,
이 곳은 뭔가 배우고져 하는 동호인들의 비 영리. 알려고 하는
단순한 모임이니 널리 해량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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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권의 소설을 읽는것 같습니다.보는 나도 이른대 정말 대단합니다. 중국의 크랜드 케년도 멋있고 난 黃鶴樓 의 뜻깊고멋진것이 정말좋내요.대단하다는것은 이미 알지만 갈수록 우리 서회장님의 만물 박사의 노력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