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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걸쳐 살고 있는 나는 디지털 시대, 스마트 시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면 편해질 줄 알았다.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것처럼. 하지만 갈수록 태산이다.
어린 시절 네 다리에 옷 궤짝만 한 골드스타 텔레비전 문을 양손으로 열어젖히고 오른쪽 하단의 On/Off 꼭지를 On에 맞추고 상단의 로터리로 채널을 돌려가며 TV를 보던 기억이 아련하다.
바람이 불어 지붕에 세워 놓은 잠자리 모양의 안테나 방향이라도 틀어지는 날은 동생은 지붕에 올라가고 형은 방에서,
"형아, 잘 나오나?"
"조금만 더 돌려봐라."
"어어, 됐다. 됐다." 하며,
형제간에 호흡을 맞추며 화면을 잡아내고 나란히 앉아 TV를 보곤 했다.
이랬던 TV가 얼마 되지 않아 궤짝의 우드 거푸집과 다리가 사라지고 크기가 작아지더니 켜고 꺼는 것도 채널 선택 방식도 버튼식으로 바뀌었다. 브라운관의 배는 여전히 불렀지만.
이때까지 만해도 고장이 나면 동네 전파상 아저씨의 뻰치와 드라이버 하나면 웬만한 건 다 고쳐졌다. 부품 교환 없이도.
곧 LCD 모니터로 크기가 얇아지더니 이젠 LED 모니터로 바뀌어 거실의 벽에 붙어 있다.
끄고 켜기는 리모컨으로 하고.
그 옛날 울 할머니 궤짝 TV 뒤쪽에 사람이 있는지 열어 보라 하실 때 나도 궁금해서 열어 보니 브라운관 뒤통수 아래 가지런히 조립되어 한 방 가득했던 부품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방송의 전달 방식도 공중파의 일방식 전달에서 IPTV 쌍방소통 방식으로 바뀌며 한층 채널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내용도 알뜰해졌다. 하지만, IPTV로 영화 한 편 보려다 리모컨을 잘못 누르기라도 하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온갖 명령 따라야 하고, 그 명령을 못 알아듣고 다른 버튼이라도 누르면 더 엉뚱한 미궁 속을 헤맨다.
이럴 땐 가던 길 멈추고 되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은 방법임을 경험칙으로 터득한 바 TV를 끄고 다시 켜 리셋으로 해결하고 갈 길을 재 탐방 해 간다.
시골 마을 이장댁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OO댁 전화받으라"는
이장님의 목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지면 몸뻬바지 부여잡고 뛰어가는 동안에 도회 나간
"철수일까? "
"영희일까?"
어머니는 설렌다.
어쩌다 급한 일이 있어 마을에 한 대 있는 이장님 댁 자석식 전화기로 손잡이를 돌려서 교환원에게 도회 사는 아들 집 전화번호 알려 주고 연결되면,
"그래. 철이가. 잘 있제?"
"아버지가 농사일하다가 조금 다쳤다."
"일요일에 시간 내어 한번 다녀 가거라."
하고는
"엄마. 엄마. 뭐라.....?"
저편에서 아들이 좀 더 상세히 말해 보라고 하는 말을 듣기도 전에 전화비 많이 나온다며 끊고는 했었다.
이랬던 전화기가 다이얼식으로 바뀌어 숫자에 검지 손가락을 걸어 돌릴 때 '짜그락', 돌아갈 때 '짜~아그락' 그 소리도 좋았다. 얼마지 않아 버튼식 전화기가 나오고, 크기가 벽돌 만한 아날로그 휴대폰이 나왔다. 또 얼마지 않아 삐삐가 나와 '천사 빨리(100482)', '오빠 빨리 오십사(588254)'처럼 난수표 같은 낭만적 메시지로 설레며 전화를 걸게 하더니 곧이어 한정된 지역에만 통화가 가능한 반풍수 디지털 휴대폰인 시티폰이 나왔고. 곧이어 나온 디지털 휴대폰은 전국 통화가 가능 해지며 손 안의 전화기는 작아져만 갔다.
선구안을 가졌던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개발하면서 전화기와 컴퓨터, 사진기가 한꺼번에 손안에 들어와 무지하게 편해졌다.
전화는 물론이요 인터넷, 음악, 영화까지 볼 수 있고 녹음기에 만보계에 집안에 설치한 CCTV로 우리 아이 잘 노는지 멀리서 모니터하고 IoT 기술로 인터넷으로 연결된 냉장고, TV, 세탁기까지 손 안 대고 돌리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사진사가 되었고.
하지만 이 손 안의 손오공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는 날은 만사가 공으로 돌아간다.
예전에는 이삼십 개 전화번호는 머릿속에 기억했지만, 저장된 이름이나 단축번호로 전화를 걸게 되면서 머릿속 메모리로부터는 지워진 지 오래다.
스마트폰 편한 것만 믿었는데 잃고 나면 속수무책. 이럴 때는 손수첩이 그립다. 사라져 간 전화번호를 새로 장만한 스마트폰에 복구하려면 지인으로부터 전화 오기만을 기다려야만 하는데 대략 난감이다. 사진은 컴퓨터에 따로 저장해 두지 않았거나 구름 속(Cloud DB)에 올려두지(Upload) 않았다면 복구가 영원 난망이고.
손 안 대고 코 한번 풀어 보려고 문 앞까지 배송해 주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 하나 사려고 가게 문을 두드리면 열쇠(ID)를 꽂아라 암구호(Password)를 대라며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지난 연말 보험회사에서 보내온 귀한 탁상 달력 어딘가에 적어 두었던 아이디, 패스워드를 겨우 찾아 넣고 나면 네 전화번호로 인증번호를 보낼 테니 이 번호도 넣어라며 지시를 하고, 손가락 잘못으로 한두 번 실수하고 세 번째쯤 들어가면(이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네가 로봇인지 사람인지 증명하라 하고, 그림 맞추기 퀴즈를 한두 번 더 푼 후에야 가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국민학교 때 일제고사로부터 살아온 일생이 시험이었는데 가게에 한번 들어가려고 몇 번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곳저곳 뒤져서 물건을 고르고 나면 현금으로 살래? 휴대폰 간편 결제할래? 아니면, 앱 카드로 할래, 일반 카드로 결제할래? 결제 방법을 물어 오고.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하며 그래도 좀 편한 듯한 일반 카드로 결정하여 들어가면 ISP를 설치하라, 공인인증서를 넣어라. 곳곳이 더 어려운 난관이다. 어째 어째 겨우 겨우 ISP도 깔고 나면 일시불로 할지, 할부로 할지 또 한 번 물어 오고 확인 버튼을 누르면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마지막 관문에 선다.
어쩌다 한번 사보는 인터넷 쇼핑인데 공인인증서 비밀번호가 머릿속에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이 번호 저 번호 가끔씩 쓰는 번호 다 동원해도 네 번째까지 불발이고. 온몸에 열이 오르고 누군가 옆에서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다. 화면에는 네 번째 실수까지 했다는 사실이 떠 있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최후의 한 수까지 넣어서 확인을 눌렀는데! 아니나 다를까 은행 창구에 가서 해결하란다. 허탈하기 짝이 없다. 이쯤 되면 아날로그 아저씨는 허탈한 발걸음으로 동네 가게로 향하고 사려던 물건과 막걸리 한 병을 손에 들고 돌아온다.
디지털 시대!
스마트 시대!
인공지능 시대!
살아 갈수록 편할 줄만 알았는데 아날로그 아저씨가 가야 할 길은 고개고개 첩첩산중이요, 배워서 간다지만 갈수록 태산이다. (끝)
(여기부터는 재미 삼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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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날로그 아저씨 기억 속에는;
어깨동무, 소년중앙, 고전 읽기 책 피노키오가 기억나고,
하얀 뚜껑을 따면 똑하고 병 소리도 상쾌했던 급식 우유가 기억에 있고,
뽀빠이 과자와 삼각 모양 베트콩 과자가 생각나고,
뽀빠이는 어깨가 우람한데다 북괴가 남침하는 듯한 모습이라해서 더 이상 그림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뒤에 라면땅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뽑기 하던 똥과자도 생각나고,
배변봉투 제출하고 회충약 받은 생각나고,
파란 해골 13호를 물리치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가 기억나고,
박스컵에서 차범근이 말레지아에 1-4로 뒤진 상황에서 종료 전 7분 사이에 세 꼴을 넣어 해트트릭을 기록하던 라디오 중계를 들었던 기억나고,
키가 유달리 커서 상대방 골 문 앞만 지키던 김재한 축구 선수도 기억나고,
김정남, 이회택 감독 기억나고,
허정무 선수 기억나고, 그의 부인 최미나도 기억나고,
멕시코 청소년 축구 4강 박종환 감독 기억나고,
그때 브라질 전에서 김종부가 선제골을 넣어 강산이 떠들썩했던 것 기억하고, 졌지만,
박치기왕 김일, 당수 왕 천규덕, 타이거 마스크가 기억나고,
바닥에 누워 침대 레슬링 하던 이노끼 생각나고,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무하마드 알리가 조치 포먼을 때려눕히던 프로 복싱 경기가 눈에 선하고,
인파이터 조 프레이져, 돌 주먹 듀란, 자모라, 자라테, 유제두 선수가 기억나고,
남아공 더반에서 카라스키야를 4전 5기로 눕힌 홍수환과 전화하며 "대한 국민 만세"라고 전화하던 홍수환 엄마도 기억나고,
장정구도 생각나고,
사라예보 탁구 여제 이에리사 기억나고,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 양정모 생각나고,
드라마 아씨와 여로가 생각나고,
여로의 바보 영구 역을 하던 장욱제가 기억나고,
아역스타 이승현과 김정훈이 기억나고,
고교얄개, 청춘시대가 기억나고,
타잔, 소머즈, ET 영화 기억나고,
수사본부 전운, 수사반장 형사 김상순 기억나고,
장학퀴즈 차인태, 명랑운동회 변웅전 기억나고,
코미디언 비실비실 배삼룡, 땅딸이 이기동, 서영춘, 구봉서 기억나고,
석양의 무법자, 나바론 요새, 닥터 지바고, 벤허 영화가 생각나고,
지옥의 묵시록도 기억나고,
"니는 마이 뭇다 아이가" 장동건, 유오성의 영화 '친구'가 기억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찰슨 브론슨이 생각나고,
미남 배우 알랭 들롱, 한진희, 노주현, 이정길이 생각나고,
미녀 배우 삼인방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 생각나고,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솟구치는 치맛자락 붙잡으며 찍은 마릴린 먼로의 사진도 생각나고,
브룩 실즈 기억나고,
이소룡의 당산대형, 용쟁호투, 정무문, 맹룡과강, 사망유희가 생각나고,
이소룡의 무술을 절권도라 했고,
성룡의 취권, 주윤발의 영웅본색도 기억나고,
윤항기의 장밋빛 스카프, 이장희의 그건 너, 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 김만수의 푸른 시절, 김정호의 작은 새, 나훈아의 고향역, 조용필의 단발머리 등등, 이 외에도 많은 노래가 기억 속에 있고,
나훈아가 무대에서 칼 맞고 수백 바늘 꿰맸다는 연예계 뉴스도 알고, 그래서 아직도 흉터가 얼굴에 남아 있다는 것도 알고,
고고장과 디스코텍이 기억 속에 남아 있고,
국제 가요제에서 윤복희가 '여러분'으로 대상 받은 것도 기억나고,
필리핀 가수 프레디 아귈라가 어느 핸가 국제 가요제 참가한 것도 알고, 필리핀 지방 토속어로 '아낙'이란 노래를 부른 것도 기억나고,
'그때 그 사람'을 피아노 치며 대학가요제에서 부르던 심민경이 지금의 심수봉인 걸 알고,
배철수가 무대에서 전기 기타에 감전되어 쓰러졌다는 연예기사도 기억나고,
이중간첩 이수근 뉴스가 기억나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을 반공 도덕책에서 배웠고,
월남전 참전했던 청룡, 맹호, 백마부대 알고,
여름방학인데도 8.15 행사식 하러 학교 갔던 것 기억나고,
삼일절 노래, 제헌절 노래, 광복절 노래 아직도 부를 줄 알고,
8.15 광복절날 육영수 여사를 쏘았던 문세광이 생각나고,
그걸 막지 못했던 최고의 총잡이라던 박종규 경호실장 기억나고,
10.26 촉발시킨 부마 사태 기억나고,
그때 그 현장의 박정희, 김재규, 김계원, 차지철 기억나고,
정승화 육참총장이 전두환 세력에게 최포된 12.12 기억나고,
그 후 이등병으로 강등된 것도 알고,
캠퍼스 등굣길을 장갑차로 막았던 5.18 기억나고,
이웅평 대위가 미그기 몰고 귀순하던 날 사이렌 울린 것 기억하고,
첫 국산 자동차 현대 포니 기억하고,
스틱 자동차로 운전 배워 비탈길에서 멈췄다 올라갈 때 반컬러치 못해서 뒤로 밀릴 때 진땀 뺀 것 기억하고,
오토 자동차를 운전하는 지금도 멈췄다 출발할 땐 왼쪽 발은 헛발질을 하고,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기사 기억하고,
지금의 KT 전신이 전화국, SKT 전신이 한국이동통신인 것도 알고,
김동조 외무장관, 서종철 국방장관 기억나고,
임방현 청와대 대변인 기억나고,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미국 대통령 기억하고,
브레즈네프, 흐루시쵸프, 고르바초프 소련 수상도 알고,
슈미트, 콜 서독 수상도 알고,
대처 영국 수상도 알고,
모택동, 장개석, 주은래, 강청도 기억나고,
등소평의 남순강화, 흑묘론.백묘론 기억나고,
수상이라 했던 김일성 기억나고, 최현도 알고,
신문에 나는 김일성 얼굴은 늘 뒷 목에 혹이 있는 캐리커쳐였고,
빨갱이라해서 북한 사람들은 얼굴이 붉은 줄 알았고,
북한을 늘 북괴라 한 것 알고, 중국은 중공이라 했고,
나카소네, 후쿠다 일본 총리 기억나고,
독재와 부정부패로 축출된 필리핀 마르코스 기억나고,
신발이 3,000켤레도 넘었다는 마르코스 부인 이멜다 뉴스도 기억에 있고,
아리랑, 솔, 거북선, 은하수, 청자 담배가 기억나고,
말보로, 켄트, 모어, 윈스턴, 셀렘, 던힐 양담배가 기억나고,
양주는 조니 워커가 최고인 줄 알았고,
선데이서울, 주간경향 잡지가 기억나고,
펜트하우스, 플레이보이 포르노 잡지도 기억나고,
무찌르자 공산당, 자나 깨나 불조심 표어 기억나고,
임질, 매독이 쓰인 전봇대에 붙여진 전단지 기억나고,
태엽 감아 밥 주던 손목시계, 벽장 시계 기억나고,
카세트테이프 말리면 젓가락 끼워 돌리던 기억나고,
카세트테이프 돌리던 마이 마이 기억나고,
팝송을 들리는 대로 한글로 받아 적어 따라 하던 생각나고,
코닥 필름, 후지 필름 기억나고,
신용카드 초기 시절 가입비 많고 연회비 높은 아멕스 카드, 다이너스티 카드 발급받았다고 으스대던 직장 상사 기억나고,
국민연금 도입 연도가 1988년인 것 알고,
그때 첫 국민연금이 월급에서 떨어져 나갔고,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은 온 국민이 알고 나도 알고,
2002 월드컵, 히딩크, 박지성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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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다 보니 무질서하게 많이 적어지네요. 모두가 추억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얼리어답터라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다 자신만만하더라도 위에 적은 것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와 닿는 분들이라면 아날로그 아저씨일 것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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