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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배 조건
나. 대상 지배 조건
(5) Yaṃ yaṃ dhammaṃ garuṃ katvā
ye ye dhammā uppajjanti cittacetasikā dhammā,
te te dhammā tesaṃ tesaṃ dhammānaṃ
adhipatipaccayena paccayo.
어떠어떠한 법을1* 중요시하여
마음과 마음부수인 어떠어떠한 법들이2* 생길 때,
그러그러한 조건이 되는 법들은3* 그 조건에 따라 생긴 법들에게4*
지배 조건으로 조건이 된다.
1* “어떠어떠한 법을”: 6가지 대상 중의 하나를.
2* “어떠어떠한 법들이”: 조건 따라 생기는 법들이.
3* “그러그러한 조건이 되는 법들은”: 6가지 대상들은.
4* “그 조건에 따라 생긴 법들에게”: 마음과 마음부수들에게.
해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지배 조건에는 "함께 생긴 지배 조건"과 "대상 지배 조건" 두 가지가 있다.
"함께 생긴 지배 조건"인 경우에는, 조건 법은 조건 따라 생긴 법들과 동시에 생기지만, "대상 지배 조건"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마음이 경험하는 모든 대상이 "대상 지배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및 함께 생기는 마음부수들이 지배 조건인 대상에 우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마음에 의해서 아주 중시되어야 한다. 지배하는 대상은 조건이 되는 요소이고, 그 대상을 경험하는 마음과 마음부수들은 조건 따라 생긴 법들이다.
"대상 지배 조건"은 "대상 조건"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옷의 색깔을 좋아하지만 별로 그것을 갖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면, 그 대상은 "대상 조건"으로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에게 조건이 된다. 그 옷을 아주 좋아해서 갖고 싶어 한다면 우위를 부여한 것이고, 그러면 그것은 "대상 지배 조건"으로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에게 조건이 된다.
어떤 대상들은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없다. 예를 들면 괴로운 몸의 느낌과 함께 생기는 불선한 과보인 몸 의식5*이다. 자극 없는 것과 자극 있는 두 가지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은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없다. 그것들은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과 함께 생기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5* 몸 의식[身識]은 즐겁거나 괴로운 감촉대상들을 경험하는 과보심이다. 그것이 선한 과보일 때에는 즐거운 몸의 느낌과 함께 생기고, 불선한 과보일 때에는 괴로운 몸의 느낌과 함께 생긴다.
하나는 의심과 결합하고 다른 하나는 들뜸과 결합하는 두 가지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은,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없다.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이나 ‘어리석음에 뿌리박은 마음’과 함께 생기는 불선 마음부수들은, 모두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없다. ‘성냄에 뿌리박은 마음’과 함께 생기는 후회, 질투나 인색은 존경받을 수 없다.
빳타나에 이렇게 나와 있다.
“보시한 다음에, 계를 지킨 다음에, 포살을 행한 다음에,
그는 그것을 생각하고 회상한다.
그는 전에 잘한 것들을 생각하고 회상한다.”
과거에 행한 선행을 생각하고 회상하는 선심에 대하여, 선법은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있다. 이 경우에 수행자는 그 대상에게 우위를 부여한다. 보시하고 싶어지면 우리는 자신이 행한 보시를 회상하게 되고, 그러면 다시 선심들이 생긴다.
빳타나에 보시, 지계와 선정은 불선심에 대해서도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선심으로 선행했을 때, 우리는 그 마음이 아주 바람직한 것임을 알게 되고, 자신이 보시한 것에 대해서 즐거워할 수 있다. 선행 덕분에 탐욕과 사견이 생길 수 있다. 선심의 조건들과 불선심의 조건들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면, 실제로는 불선법인 것을 선법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리하여 선법이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집착에 대해서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열반과 그것을 경험하는 여덟 가지 출세간 마음들을 제외한 모든 것이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출세간법들은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의 대상이 될 수 없고,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의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도 없다.
열반은, 열반을 경험하는 여덟 가지 출세간 마음들에 대해서 "대상 지배 조건"이다. 열반은, 깨달음이 성취되는 인식과정에서 수다원도 마음 직전에 생기는 ‘종성의 마음’ 및 사다함도와 아나함도와 아라한도 마음 직전에 생기는 ‘청백의 경지’에게, "대상 지배 조건"이다.
열반과 출세간 마음들은, 깨달은 다음에 생겨서, 방금 생긴 열반과 출세간 마음들을 지혜로 되돌아보고 숙고하는, 욕계 선심들과 아라한의 욕계 작용 마음들에 대해서, “대상 지배 조건”이다.
불선법은 "대상 지배 조건"으로 불선심에게 조건이 된다. 빳타나에 이렇게 나와 있다.
“그는 욕망 때문에
불선법을 존중하고, 즐기고, 기뻐한다.
그것을 존중할 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해서,
욕망을 일으키고, 사견들을 일으킨다.
그는 사견들 때문에
불선법을 존중하고, 욕망을 일으키고, 기뻐한다.
그것을 존중할 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해서,
욕망을 일으키고, 사견들을 일으킨다.”
어떤 사람이 탐욕의 위험을 알지 못하면, 가능한 한 많은 쾌락을 누리는 것을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연을 즐기고, 아름다운 옷을 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기를 좋아한다. 인생의 온갖 즐거운 것들을 즐기기를 좋아한다. 즐거운 것들을 즐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마음들에 대한 바른 견해를 계발할 수도 있다.
즐거운 감각대상들은 바람직하며, "대상 지배 조건"으로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의 조건이 된다. 할 일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피아노를 치거나 음악회에 갈 수 있다. 그러면 소리에 우위를 부여한 것이고 이 소리가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에 대해서 "대상 지배 조건"이다. 이런 일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되풀이해서 생긴다.
우리는 탐욕이 없는 척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성향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한다. 탐욕이 그 자체의 조건들 때문에 이미 생겼을 때에는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바른 견해를 계발할 수 있다. 탐욕이 생길 때 탐욕에 대한 사띠가 있으면, 그것이 자아가 아니라 조건 지어진 정신이라고 알 수 있다.
빳타나에 이렇게 나와 있다.
“그는 눈 때문에… 귀 때문에… 코 때문에… 혀… 몸…
형색대상… 소리… 냄새… 맛… 감촉대상 때문에… 심장토대 때문에
무기법을 존중할 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것을 존중할 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해서,
욕망을 일으키고, 사견들을 일으킨다.”
직접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 특성이 있는 물질들은6*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있다. 바람직한 대상인 물질은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에 대해서만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있다. 물질은 선심에 대해서는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없고, 대상 조건만 될 수 있다.
6* 이것들은 본성 물질(사바와 루빠, sabhāva rūpa)들이다. ‘바와(bhāva)’란 ‘본성(nature), 특성’이며 ‘sa’는 ‘자신(own)’이라는 뜻이 있다. ‘사바와 루빠’란 ‘자신의 분명한 특성이 있는 물질’이다. ‘비본성 물질(아사와바 루빠)’도 있는데, 이것은 다른 물질들과 관련하여 특정한 특징을 갖고 있지만, 자신의 분명한 특성은 갖고 있지 않은 물질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사대, 감각 대상들, 감각기관들은 본성 물질이다. 자신의 특성이 있지 않은 비본성 물질에는, 물질의 특성인 가벼움, 부드러움, 적합함 그리고 물질의 네 가지 특징인 생성, 상속, 쇠퇴, 무상함이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아름다운 꽃을 주고 싶어 한다고 할 때, 색깔이나 향기 등의 물질은 선심에게 "대상 조건"으로 조건이 될 수 있다. 그 물질은 선심에게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없다. 그것에 우위를 부여하고 되풀이해서 갖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선심이 아니라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에게 "대상 지배 조건"이다. 선심은 탐욕없음과 함께 생기고, 대상들을 놓아버리는데 마음을 기울인다.
보시 등의 과거에 행한 선법은 선심에게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있고, 선심들이 다시 생길 조건이 될 수 있다. 선법의 계발은 과거에 축적된 선업에 의해서 조건 지어지며, 그리고 "함께 생긴 지배 조건"인 열의, 정진, 마음과 검증이라는 요소들에 의해서도 조건 지어진다.
자기 자신이 어떤 대상들에 우위를 부여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것들이 선심에게 조건이 되는지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에게 조건이 되는지 알아야 한다. 대상들이 어떤 방법으로 여러 가지 마음들의 조건이 될 수 있는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이 생길 때 그것이 경험하는 대상은, 그 마음에게 대상 조건만으로 조건이 될 수도 있고, "대상 지배 조건"으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에서 다른 순간들에는 다른 조건들이 각각의 역할을 한다. 선법은 "대상 지배 조건"으로 사견이나 자만에게 조건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사견을 가지고 ‘나의 선행’이라는 관념을 대단히 중시하면서 집착할 수 있다. 혹은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 자만으로 자신의 선행들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아름다운 그림을 가지고 싶어 할 때, 탐욕은 탐욕에 뿌리박은 마음들에게 "대상 지배 조건"이 될 수 있으며,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바른 견해를 계발해야 함을 망각할 수 있다. 다른 순간들에는 바른 견해를 계발하기 위하여 법을 공부하고 숙고하는데 몰두할 수 있다. 우리가 듣는 법은 ‘지혜가 있는 욕계 선심’에게 "대상 지배 조건"으로 조건이 될 수 있다.
‘갈애 멸진의 짧은 경’(M 37)에 천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수행하려는 성향은 있었지만, 감각적 쾌락을 즐길 조건들이 있을 때에는 그것들에 열중한다고 나와 있다. 부처님께서 사왓티 시의 동문 밖에 있는 녹자모(鹿子母) 강당에 계실 때, 비구가 어떻게 하면 갈애를 부숨으로써 완전히 해탈하는지, 제석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제석천이여, 비구는 ‘집착할 만한 정신적 물질적 조건들은7*
아무것도 없다.’라고 듣습니다. 제석천이여, 비구가
‘집착할 만한 조건들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들었다면,
그는 모든 조건을 완전히 아는 것이며,
모든 조건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모든 조건을 정확히 알고 나서,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들을 경험합니다.
그는 이러한 느낌들에 대하여,
무상함을 관찰하며 살아가고,
사라짐을 관찰하며 살아가고,
소멸을 관찰하며 살아가고,
출리(出離)를 관찰하며 살아갑니다.”
7* ‘맛지마 니까야’의 주석서인 ‘빠빤짜수다니’는 “집착할 만한 정신적 물질적 조건들”을 오온, 12처, 18계라고 말하고 있다.
경전은 계속해서 비구는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에서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아라한의 지위를 성취한다고 말한다. 제석천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기뻐하고 감사드린 다음에 사라졌다. 근처에 있었지만 부처님의 대답은 듣지 못하고 제석천이 기뻐하는 것만 들은 목갈라나(Moggallana) 존자는, 제석천에게 부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알고 싶어서 삼십삼천으로 갔다. 제석천은 500개 천상의 악기들이 연주되는 것을 들으면서 즐기고 있었다.
그는 목갈라나 존자가 오고 있는 것을 보고 연주를 멈추게 하고 목갈라나를 영접했다. 그러자 목갈라나는 제석천에게, 갈애를 부숨에 의한 해탈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달라고 말했다. 제석천이 대답했다.
“목갈라나 존자여, 나는 할 일이 많아서 몹시 바쁩니다. 나 자신의 일뿐 아니라 삼십삼천의 천신들이 해야 할 일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갈라나 존자여, 잘 듣고, 잘 배우고, 잘 숙고하고, 잘 회상한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석천은 목갈라나 존자를 천상의 궁전으로 안내하여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었다. 목갈라나 존자는 제석천이 너무 방일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를 놀라게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존자는 신통력으로 궁전을 흔들고 진동시키고 요동시켰다. 목갈라나 존자가 제석천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달라고 다시 요구하자 제석천은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알려주었다.
제석천이 법을 숙고하지 않고 있음에 대해 변명하려는 것을 보고 우리 자신도 그러함을 인정할 것이다. 우리도 때때로 실재들에 대한 바른 견해를 계발하기에는, 정신과 물질을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바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목갈라나 존자가 제석천을 놀라게 했을 때, 제석천에게 바른 견해의 계발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조건들이 생겼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법문을 듣거나 경전을 읽을 때, 법을 숙고하고 바른 견해를 계발하는데 우위를 부여할 수 있는 조건들이 생길 수 있다. 정신과 물질이 한 번에 하나씩 나타날 때마다 사띠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즉 무아인 요소들이라고 알게 될 것이다.
첫댓글 사두사두사두
사두사두사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