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야... 골 빠개지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랑 동료들은
돌 바닥 위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돌 위에서 기억을 되짚어보기를 몇 분...
“맞다! 그 싸가지!!!”
그 뷔슈느인가 뭔가 하는 악마의 마법에 당해서 쓰려졌었지! 난 곧바로 일어나서 동료들을
깨웠다. 다행히 동료들도 많이 다치지는 않았는지 금방금방 잘 일어났다.
“우으윽...”
“우응...”
“아아아앙~~~”
차례차례 시이사, 디스, 트롤이다. 그리고 동료들이 모두 일어나자 난 곧바로 그 녀석들을
모아놓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논했다. 지금은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
“여기가 어딜 거라고 생각하냐?”
“감옥이겠지.. 그 뷔슈느라는 녀석이 우릴 구금하겠다고 했잖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글세... 탈옥해 볼까?”
말을 했으면 무릇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법. 나는 오라 블레이드를 사출했다.
“한방 먹어라!”
‘추앙~’
그리고 나의 오라 블레이드는 감옥 벽을 향해 강하게 휘둘러졌다. 하지만 이 감옥을 만든
썩을 녀석은 이런 상황에도 충분히 대비를 한 듯 했다. 감옥 벽에서 갑자기 빛이 난 것이다.
벽에서 빛이 좀 난 것이 뭐가 대수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위잉!’
“크억!”
단지 빛만 난 거면 나도 상관 안 했다. 문제는 이 빛이 내 오라 블레이드를 튕겨낸 것이다.
난 졸지에 내가 휘두른 칼에 내가 얻어맞고 그 충격으로 반대편 벽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재수 없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면 반대편 벽에서도 똑같은 빛이 난 것이다.
‘위잉!’
‘퉁!’
“으아아악!”
난 졸지에 다시 벽에서 튕겨나 지대공 미사일 마냥 천장에다 45도 각도로 정밀포격 대가리
박기를 실천하고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물론 그 다음 난 ‘퍽!’소리와 함께 차에 깔린 개구리
마냥 바닥에 그냥 대(大)자로 쫙! 뻗어버렸다. 음메 기죽어...
“뭐야... 쿨럭...”
“물리공격 반사용 주문 ‘테트라칸’이로군. 거기다 마법 반사용 주문인 ‘마카라칸’도 걸려있다. 함부로 공격하지마...”
“진작... 쿨럭... 말하지...쿨럭...”
난 바닥에서 힘겹게 고개만 들고 시이사를 노려보다가 다시 고개를 박았다. 고개를 들 힘도
없었거니와 얼굴을 들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쪽 팔렸기 때문이다. 정말 이대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내 이미지 이제 완전히 박살났어(박살날 이미지라도
있었던가?)! 그리고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누군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안에 있어? 히호~~”
이 목소리는.... 분명히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저 ‘히호’하는 소리는 분명히...
“가게 주인장!”
“나한테는 ‘사악 프로스트’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다. 히호~~”
재법 오래간만이다. 사실 본지 하루밖에 안 됐다고는 하지만 그 하루사이에 난 정말 폭삭
늙어버린 것 같았기 때문에(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좀 생각해봐라.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마치 10년 전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런데 저 녀석이 왜 여기에?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히호~ 말 안 했던가? 히호~ 나 미후나시로 국 소속 악마다. 히호~”
“전혀 말 안 했어!!!”
젠장! 만약 진작에 알았다면 저 악마한테 부탁해서 여기를 지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도 할
수도 있었잖아! 왜 말을 안 한 거야?!
“왜 그걸 이제야 말해요!!!???”
“미안하다. 히호~ 가르쳐 주는걸 까먹었다. 히호~”
“쳇! 알았으니까 우리들 빨랑 꺼내줘요.”
“히호~ 그건 불가능하다. 난 쫄다구 중에서도 상 쫄다구다. 히호~ 너희들 풀어줄 권한 없다. 히호~”
“우윽!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걸 가르쳐 주러 왔다. 히호~ 이제 곧 너희들 처분을 결정할 제판이 열린다. 히호~ 나와라. 히호~”
‘끼이익’
그리고 사악 프로스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나자빠져 있는 날 아스팔트 위에
붙은 껌 때내듯이 때내서 그대로 들고 나갔다. 물론 동료들은 그냥 뒤에서 얌전히 따라오며
도망가려고 수작 부려서 난 인질로 만드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면해주었다. 어차피 여기는
척 보기에도 도망가려고 한다고 도망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닌 것 같았지만...
“다 왔다. 히호~”
벌써 다 온 모양이다. 우리는 웬 엄청나게 큰 문 앞에 섰다. 그리고 거기에는 진짜 사람 기
팍팍 죽이는 지옥도의 모양이 아주 세밀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치 ‘너희는 이제 죽었어’라고
우리들에게 말하는 듯한 장식이다. 게다가 저 문 색깔이 왠지...
“저거... 혹시 납으로 만든 거 맞아요?”
“어라? 어떻게 알았나? 히호~~ 맞다. 순도 100% 납이다. 히호~~”
그럼 안 무겁나? 게다가 화염주문 한방에 녹아버리는 거 아니야? 난 여러모로 비효율적인
문의 재질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지금은 우리들 목숨 문제가 그 몇 배는
중요하니... 그렇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사이에 문은 열렸다. 그리고...
‘샤라라랑’
‘호화찬란’
‘으리으리’
만약에 지금 상황을 표현하려고 한다면 우리들은 아마 위의 문자들에 깔려죽었을 것이다.
여긴 뭐가 이래? 무슨 오페라 극장 아니야? 우리들이 들어온 문은 오페라 극장 무대 위와
같은 곳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무대 위 맞은편과 양 옆쪽 벽에는 특등석 테라스처럼 보이는
작은 자리가 마치 우리가 서 있는 무대를 포위하듯이 반원을 그리며 수십 개씩 붙어있었다.
그리고 만일 진짜 오페라 하우스였다면 일반석이 있어야 할 자리는 마치 무저갱으로 통할
것 같은 커다란 구멍이 뻥하고 뚫려있었고 벽에 붙은 테라스 사이사이에 뚫려있는 구멍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마가츠히가 마치 폭포수 쏟아지듯이 무저갱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거기다 천장을 스테인드 글래스로 만들어져 그곳으로 들어오는 오색찬란한 빛이 무저갱으로
흘러 들어가는 마가츠히들에 반사되어 가히 ‘빛의 폭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가
완전히 넋을 내놓고 턱이 빠지게 입을 벌리고 있자 사악 프로스트는 매우 자랑스러운 듯이
우리들에게 말했다.
“이곳은 우리 미후나시로 국의 마가츠히 저장소임과 동시에 모든 죄인을 다스리는 신성한 재판장이다. 히호~ 부디 무례는 삼가라. 히호~”
그는 그렇게 우리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앞으로 나아가 외쳤다.
“죄인들을 대령했습니다. 히호~!”
사악 프로스트의 말소리가 오페라 하우스 공간에 울려 퍼지자 특등석 테라스(앞으로 그냥
이렇게 부르련다)에서 고위급 간부들로 악마들이 하나 둘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상석 바로 밑(그러니까 위에서 두 번째 좌석)에서 우리를 이곳으로 끌고 온 그
뷔슈느라는 악마가 나타나 말했다.
“지금부터 제판을 시작하겠다. 피고 이사무는 우리들의 땅인 이사쿠사를 지나가겠다고 했다. 그것뿐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피고가 가겠다고 한 장소는 다름 아닌 긴자다.”
‘긴자’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테라스에 서 있던 악마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라! 니히로 기구의 악마들중 하나인 디스가 저 일행에 속해 있다. 이것은 그들이 니히로의 첩자일지도 모른다는 증거다.”
적어도 단순히 긴자로 가겠다고 한 이유만으로 잡아들인 것 같지는 않은데, 디스가 니히로
기구의 악마들이라고? 그건 정말 몰랐다. 우리 디스야 사교의 관에서 태어난 거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제판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심증. 물증을 찾았다면 그 자리에서 소멸시켰겠지만 심증만으로 그들이 니히로의 첩자라고 판단하기는 무리. 그리하여 이리 제판을 열게 된 것이다.”
“당장 죽여버립시다!”
순간 내 간을 철렁하게 하는 목소리가 오른쪽에서 울려 퍼졌다. 그럼 우린 어쩌라고?! 난
죽기 싫어! 하지만 나의 그런 마음과는 상관없이 뷔슈느는 아까 우리들을 죽이자고 말을 한
노란색 젤리처럼 생긴 악마에게 발언권을 넘겨주었다.
“알비온, 말씀하십시오.”
“네. 이 위령 알비온이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심증만으로 저들을 죽이는 것은 과격한 처사입니다(과격하면 하지마!). 하지만 우리들은 이제 곧 만드라군과 대대적인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니히로까지 견제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은 굉장히 곤란한 것입니다. 만일 저들이 진짜 첩자라 니히로에 우리들의 정보까지 전달한다고 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 될 것이 뻔합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저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알비온이라는 악마는 구구절절 우리들을 죽여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며 기염을
토했다(겉보기에는 트롤보다 더 무식하게 생긴 녀석이 말은 기가 막히게 잘했다. 혹시 웅변
학원 다닌 건가?). 이거 분위기가 잘못하다가는 영락없이 사형 당하게 생겼다. 이걸 어떻게
하지? 하지만 신이 아직 나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닌지 이번에는 왼쪽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재천대성의 생각은 틀립니다.”
“네. 제천대성. 말씀하십시오.”
다시 뷔슈느가 재천대성이라는 원숭이 악마에게 발언권을 넘겨주자 그는 다른 악마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까 알비온이 말한 사항은 저들이 첩자가 분명할 때 해당되는 사항일 뿐입니다. 문제는 저들이 첩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잡고 있는 심증의 근거는 겨우 저들의 행선지가 긴자라는 것과 그들의 동료 중 디스가 한 마리 끼여있다는 것뿐입니다. 아시다시피 한 종족이 한 조직의 편을 든다고 해도 그 중에는 분명히 변질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긴자로 간다고 한 이유도 정확하게 모릅니다. 따라서 위의 심증에 타당성은 무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녀석도 말 무지하게 잘 한다. 여기 있는 녀석들 정말로 간부급이라는 명함에 어울리는
말솜씨와 인격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어느나라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아무튼
이제 난 유죄가 되는 걸까? 무죄가 되는 걸까? 그 뒤에 계속되는 제판에서 나온 내용들도
전부 논리정연한 것들이었지만 다 들려줄 수는 없고 일부만 살펴보면...
“만일 저들이 진짜 첩자라고 생각할 때 우리 미후나시로 국의 앞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명확하지도 않은 심증만으로 사형에 처한다면 우리가 만드라군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이요!?”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대략 이런 말들이 오고갔다. 그런데 여기를 재판장을 정한 녀석은 누구인지는 몰라도 정말
머리가 비상하게 잘 돌아가는 녀석임이 틀림없다. 제판을 맡은 악마들이 나의 판결 여부를
놓고 서로 말다툼을 벌이면서 생긴 마가츠히들이 전부 바로 아래에 있는 저장소로 흡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하면 한결 더 빨리 마가츠히를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딴 생각을 하는 사이 결국 말도 못하게 소란스러워진 재판장을 보다못한 뷔슈느는 소리를
치며 말했다.
“조용! 간부들은 정숙해 주십시오! 흠흠... 정숙이라는 말이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아무튼 본 재판으로는 피고에게 내려질 판결을 결정 할 수 없을 터! 이제부터 본인은 마제(魔帝)님에게 가 피고에게 내려질 판결을 여쭙겠소. 이하 간부들은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뷔슈느는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마제?
“마제가 누군가요?”
“마제라 함은 이곳 북 이사쿠사를 지배하는 대장님을 칭하는 말이지. 우리 미후나시로 국은 중앙에 있는 미후나시로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존귀한 인수라’님을 중심으로 동, 서, 남, 북의 4개의 구역을 나뉘어져 미후나시로를 감싸고 있는 이사쿠사 4구역을 각각 지배하는 마제(魔帝), 사제(邪帝), 신제(神帝), 성제(聖帝)님의 사제황(四帝皇)님들이 다스리고 있어.”
“사제황이라...”
왠지 무지하게 이해하기 쉬운 계급구조다. 무슨 만화책도 아니고... 그거 생각해 낸 녀석이
도대체 누구야? 정말 한심해서 못 봐주겠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마제라는
자에게 의견을 물어 온다고 하던 뷔슈느가 돌아왔다. 그런데 저녀석 표정이...
“마치 똥 씹은 표정 같아...”
디스, 말을 정말 잘했는데 말이지... 우리들 말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테라스에 앉아있던
악마들이 우리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거든... 시이사가 평소에 이런 기분으로 날 그렇게나
노려봤던 걸까? 내가 그런 기분으로 시이사를 보자 시이사는 디스에게 ‘끝내 너까지...’라는
듯한 배신감이 잔뜩 담긴 눈초리로 디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디스를 향한
소리 없는 책망이 계속되는 사이 뷔슈느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고 말했다. 하지만...
첫댓글 ㅋㅋ 개판된 재판장이라.. 제천대성의 표정도 잘 표현하셨고 너무 웃겻어요;;
아..... 머리가 소닉같고 삿대질하는 악마가 있었으면......(무슨 패러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