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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물음표' 속의 해탈
<잊혀져가는 민속마을을 찾아서 14> 하동 지리산 도인마을
02.11.07 18:00l최종 업데이트 02.11.07 19:54l이종찬(l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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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피어서 곧 지고 사람은 나면 이윽고 죽는다
▲ 삼성궁 전경
ⓒ 경남도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어디쯤 있는가? 죽음 이후의 세계는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왜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인가? 삼라만상은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늘 움직이며 변화해야만 하는 것인가? 왜? 왜? 왜? 나는 대체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무심코 내디딘 발자국 아래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낙엽이 부서진 자리, 이내 바람이 부서진 낙엽을 흔적도 없이 공중에 날려버린다. 빈, 텅 빈 마음 속으로 끝없이 밀려드는 상실감,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섭게 달려드는 고독... 그리고 그 고독을 슬며시 비집으며 가부좌를 틀고 앉는???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말하는 것, 마시고 먹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온통 의문부호뿐이다. 그래, 어쩌면 사람은 이러한 여러 가지 의문부호를 풀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보고 듣고 말하고 마시고 먹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인생이란 그러한 행위의 끝없는 반복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 반복은 자신이 죽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러 가지 의문부호를 풀기 위해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일군 마을이 신선마을, 곧 삼성궁이다. 하지만 그 젊은 무리들이 그 의문부호를 모두 풀었는지, 아니면 지금도 풀려고 살과 뼈를 깎는 도를 닦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또 이들이 말하는 신선도, 즉 유불선합일갱정유도(儒佛仙合一更正儒道, 유불선이 하나로 합쳐져 다시 유도로 바르게 돌아옴)가 진정한 하늘의 진리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상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세인들에게 이들이 신선도를 믿고 실천하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 독특하고도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민족혼을 샘솟게 하는 우물을 파라"
▲ 삼성궁
ⓒ 경상남도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지리산 자락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삼성궁. 삼성궁이란 우리 민족의 시조 환인, 환웅, 환검(단군왕검)을 모신 궁이라는 뜻. 다시 말하면 환인(하늘), 환웅(땅), 환검(사람)이 우주삼라만상의 시조이자 삼신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삼성궁은 지리산 삼신봉(三神峰) 남쪽 묵계골의 가장 높은 골짜기(해발 850m)에 산토끼처럼 맑은 눈을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다.
해발 850m. 이 세상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기에는 숨이 찰 정도로 가파른 높이다. 하긴 나무꾼이 바둑 한 수 두고 나니, 낫자루가 썩어 있었다는 이야기처럼 도인들이 사는 마을이니 세인들의 눈을 피해 무릉도원 같은 그런 골짜기에 숨어 있을 수밖에.
그래, 도인촌이라 불리는 청학동도 이 삼성궁과는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청학동이 위치한 골짜기 서쪽 능선 너머, 그러니까 정동쪽으로 열린 골짜기가 바로 삼성궁이다. 약10만 평.
간판에 씌어진 이름은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 삼성궁은 이곳 지리산 묵계리에서 태어난 강민주(한풀선사)씨가 1983년에 마치 환검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설치하듯이, 이곳에 단군시대의 소도(솟대)를 복원하면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골소년 강민주가 여러 젊은이들이 받들어 모시는 오늘의 한풀선사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강민주는 여섯 살 때 증산도의 열렬한 신도였던 부모에 의해 낙천선사(樂天仙師)라는 도인에게 맡겨진다. 낙천선사는 "만덕진인(萬德眞人:1743-1840), 공공진인(空空眞人:1807-1910), 한빛선사(1860-1945)에 뒤이어 우리 고유의 선도(仙道) 명맥을 전수 받았다"는 도인이다.
이후 강민주는 낙천선사와 함께 지리산 세석고원 근처에서 살면서 선가무예인 선무(仙武)를 비롯한 선도를 배웠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스승인 낙천선사로부터 "민족혼을 샘솟게 하는 우물을 파라"는 명을 받았다. 이때 강민주의 나이는 21세(1984년). 이후 한풀선사는 화전민마저 버리고 떠난 텅 빈 묵계골 위쪽에서부터 삼성궁 터를 닦기 시작했다. 먹을 게 없어 풀뿌리를 뽑어 먹고 나무껍질을 벗겨먹으면서도 그렇게.
들어갈 땐 징을 치고 도복으로 갈아입어야
ⓒ 경상남도삼성궁 입구에는 장승 둘이 떡하니 길을 가로막고 있다. 어디에서나 흔히 보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다가는 이내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진다. 장승에 새겨진 글씨가 우리가 흔히 보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이 아니라 '민족통일대장군', '만주회복여장군'이라고 씌어져 있기 때문이다.
장승에 새겨진 글씨를 바라보며 잠시 우리 민족의 긴 역사를 떠올리다 보면 산길 우측에 징이 하나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그래,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 오랜 풍습 그대로 손님이 왔으면 미리 큰 기침을 몇 번 해서 주인에게 알리라는 그런 이야기다. 또 석문 입구에는 무단 침입자는 3300배를 시키겠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당연히 궁내에서는 음주와 흡연을 해서는 안 된다.
징을 세 번 치고 나면 이내 삿갓 쓴 도포 차림의 수자(修者)가 나와 안내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이곳 삼성궁에서도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법이 있다. 이곳에는 고구려 옛 복식이 제법 많이 걸려 있다. 이곳 삼성궁을 둘러보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고려복식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하지만 한복을 입고 온 사람은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된단다.
삼성궁 안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자신이 무릉도원 속으로 빨려든 듯하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어찌 이 깊은 산 속에 이렇게 드넓은 평지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꿈인가? 슬며시 허벅지를 꼬집어본다. 아프다.
이윽고 눈 앞에는 단전호흡을 하는 움막집, 태극무늬가 찰랑대는 연못. 그리고 맷돌, 절구통, 다듬이돌 등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도구들이 가지런한 길. 그리고 삼성궁 안의 비경이 눈에 들어온다.
생명의 신비 담긴 맷돌솟대와 마이산(?) 돌탑
▲ 맷돌솟대
ⓒ 경상남도근데 또 저건 무언가. 마치 절구통 두 개를 마주 얹고 그 위에 맷돌을 탑처럼 차근차근 쌓아올린 저건? 솟대다. 그래, 아까 삼성암 입구에서 장승에 새겨진 글씨를 읽을 때 조금 짐작은 했다.
이곳 삼성암에서는 우리가 속세에서 가지고 있었던 여러 가지 관념들이 여지없이 무너져내릴 것 같다는 그런 느낌. 그렇다. 이곳의 솟대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긴 나무에 새 모양을 매단 그런 형태의 솟대가 아니다.
이른바 맷돌솟대. 이 맷돌솟대에도 작은 사연이 있다. 말 그대로 맷돌은 우리나라 가정에서 가족들의 맛있는 먹거리를 만들어주는 요리도구다. 또한 이 맷돌에는 음식을 장만하는 어머니의 정성이 깃들여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먹거리를 장만해주는 그 맷돌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 솟대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각별하다. 또한 한풀선사가 삼성궁 터를 닦을 때 풀과 나무껍질로 연명했다는 것에서도 이 맷돌솟대의 의미는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상징하는 듯도 하다.
금방이라도 빙빙 돌아가며 먹거리를 흘러내릴 것만 같은 맷돌솟대. 삼성궁 안에 세워져 있는 이 맷돌솟대는 현재 1000여 개가 있다. 대부분이 한풀선사가 어렸을 때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 솟대다. 솟대의 형태도 여러 가지다. 어떤 것은 제법 우쭐대며 제 옆에 선 나무와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아이를 엎은 시골 아낙네처럼 아담하다.
상식으로는 그 많은 솟대 가운데 한두 개쯤 무너진 것이 있을 법도 하련마는 어느 것 하나 무너진 것이 없다. 이 맷돌솟대는 모두 3333개를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왜 3333개인가? 하지만 그것까지 다 가르쳐줄 수는 없다. 직접 가서 여쭈어보시기 바란다. 맷돌솟대는 환웅이 널리 사람을 다스릴 때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그 소도를 의미하며, 모두 음양의 이치로 만들었다고 한다.
앗! 저것은? 언제 전북 진안에 있는 마이산 돌탑들이 여기까지 날아왔는가. 눈길이 가는 곳마다 마악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목을 쭈욱 빼고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는 원추형의 돌탑, 돌탑들.
근데 저어기 저것은 또 무언가? 단지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저것? 저건 단지탑이란다.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입만 딱 벌어진다. 골짜기 여기저기 쌓인 돌탑, 돌탑들. 돌탑은 사람 키만한 높이에서부터 10m를 웃도는 것들도 제법 눈에 띈다.
"저 돌탑은 대체 몇 개나 됩니까?"
"대략 1300개 정도? 하지만 우리도 정확한 숫자는 잘 모르지요."
"???"
"날이 갈수록 저런 탑이 자꾸 생기니까 그렇지요."
"그럼 저 탑은 대체 몇 개나 쌓을 건가요."
"3만개."
"......"
삼법수행과 청학신공으로 열리는 하루
삼성궁의 하루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아침 6시까지 2시간 동안 마음을 닦는 '삼법수행'이란 의식을 마친 후 해맞이 경배를 한다. 해맞이 경배는 다름 아닌 해를 바라보며 신비한 춤을 추는 것이다.
춤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보면 학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우리 민족의 전통무예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바로 이 춤사위가 이곳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청학신공(靑鶴神功)이란다. 이처럼 이들은 아침 해의 찬란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그리고 선식을 먹는다. 이곳에서는 우리들처럼 아침이라 하지 않고 선식이라고 부른단다. 그래, 이곳 사람들은 '선'이란 글자를 몹시 좋아하는가보다. 식사는 선식, 무예는 선무, 도는 선도, 도사는 선사 등.
선식이 끝나면 이내 우리 민족의 전통무예인 활쏘기와 검술 등을 배우고 익힌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일부는 밭을 일구고, 일부는 또 맷돌솟대나 돌탑을 세우는 일을 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신선도의 도 공부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호랑이처럼 강인했던 우리 민족은 그간 너무 나약해져 있어요. 그러므로 가깝게는 우리의 전통 도맥인 신선도를 이루어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일이고, 멀게는 이화세계(理化世界), 즉 세계를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한풀선사)
대롱밥 먹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동동주 먹고 사람 한번 쳐다보고
▲ 대롱밥
ⓒ 경상남도누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그래, 무릉도원을 다녀오는 길에 어찌 입맛 한번 다시지 않고 돌아올 수 있겠는가. 삼성궁으로 가는 오름길목에는 희한한 이름의 간판이 하나 붙어 있다. "동이(東夷)주막"이다.
'동이'는 우리 민족을 얕잡아 보고 풀이하자면 '동쪽의 오랑캐'가 되고, 제대로 풀이하자면 '동쪽의 활 쏘는 민족'이란 뜻이다. 이 동이주막은 한풀선사의 친형이자 증산도 신자인 강대주(45)씨가 운영하는 음식점 겸 민박집이다.
동이주막의 진미는 뭐니뭐니 해도 그 유명한 대롱밥이다. 여러 잡곡을 대나무에 넣고 쪄내는 대롱밥은 지리산의 굵고 곧은 대나무를 밥통으로 사용한다. 지름이 약 10cm쯤 되는 대나무를 길이 20cm 정도로 토막 내 그 속에 쌀, 현미, 찹쌀, 검은 콩, 수수, 차조, 밤, 대추 등을 넣은 뒤 가마솥에 푹 쪄내면 그만이다.
대롱밥을 자주 먹어본 사람들 말로는 가마솥에서 찔 때 무슨 무슨 좋은 성분이 나온다며 입에 침이 마른다. 하지만 그 성분이 무엇인지 구태여 알 필요까지는 없다. 일단 향이 좋고 밥이 독특하면서도 맛이 있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 이 집 대롱밥은 지난 1995년 7월에 특허까지 받았다고 귀띔한다.
대롱밥에 딸려 나오는 밑반찬도 별미다. 언뜻 눈에 띄는 죽순 외에도 표고버섯, 취나물, 고사리, 고들빼기, 깻잎 등을 한 점씩 먹어보면 자칫하면 잃어버릴 뻔했던 우리 어머니의 손맛을 다시 느낄 수 있다. 또 이렇게 맛이 좋은 잡곡밥과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 어찌 막걸리 한 잔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대롱밥 1만원, 동동주, 파전 각각 4000원.(문의/055-883-3934)
▲ 가는 길
ⓒ 경상남도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가자!
11월의 첫 주말에는 시인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이란 시를 읊으며 지리산 삼성궁으로 떠나보자.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 그 사람, 아니 세월이 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사람. 그 사람의 눈동자를 떠올리면서...
그해 11월 노을이 질 무렵, 수박등이 희미하게 비치는 그 도심의 시멘트벽에서 첫 입맞춤을 나누던 그날, 그토록 달콤하고 따스할 줄로만 알았던 그 사람의 입술, 지금은 내 서늘한 가슴 속에 있는 그 차디찬 입술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낙엽처럼 뒹굴며 가자!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서울-하동-하동시외버스정류장-청학동행 버스(08:20 11:00 13:00 15:20 19:00 출발)-삼성궁 입구. 약 2시간 소요.
잠잘 곳
상불산장(전화 (055)882-8757), 불지산장(882-7072) 등. (*삼성궁에서는 숙박을 할 수 없다)
삼성궁/055-882-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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