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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입장에서 애를 잃어버리면 그것같이 속타는 일이 없을텐데 우리집에선 큰 아들을 수도 없이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의 생각일 뿐, 정작 당사자는 단 한번도 자신이 길을 잃거나 또는 집을 못 찾을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 한번도...
어찌된 일들인지 그 스토리를 좍~더듬어보자!
① 1999년 11월 초순
해찬이가 11월 1일날 태어났으니까 그 즈음인데 당시 삼천동 남양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던 시절이었다.
아파트 입주한지 일년이 되니까 건설회사이며 집주인인 남양에서 집값(임대료)을 올려달라는 통에 우여곡절을 거쳐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었다.
지금이야 법적으로 보장을 받게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임대아파트는 임차인의 권리가 거의 없는 상태였기에 입주자대표회의 또한 그저 임의단체일 뿐이었고 거의 매일 저녁마다 주민공동시설에서 부녀회와 함께 회의가 벌어졌지만 한탄만 나눌뿐 별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답답한 회의가 이어지던 어느날 저녁, 회의실에서 여느때처럼 모여있는데 산이녀석한테서 전화가 온다.
"아빠, 나 지금 거기로 가도 되요?"
"...글쎄! 엄마가 가라고 하던? ...그럼 조심해서 와!"
그런 녀석이 30여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아파트 단지내에서 거리로 100미터도 안되는데 어째 일이...
집으로 전화해보니 아까 통화하고선 곧바로 나갔다고 한다.
헉! 이런 큰일이...
회의실에서 나와 쌀쌀한 11월 밤거리를 여기저기 헤메며 아들을 찾아 다니는데 당시 주변엔 주공아파트며 흥건사아파트며 온천지가 다 공사장이고 길 또한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는 상태에다 당연히 가로등이나 조명이 있을 턱이 없는 열악한 상태니 걱정이 아니될 수 없는 상황.
혹시나 구덩이나 맨홀에 빠지지나 않았는지...삼천천 쪽으로 잘 못 가지는 않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고 답답하기 그지없다.
집에 들어가서 집사람한테만 호통을 치며 밖에서 훤히 볼 수 있게 집안의 모든 불은 다 켜 놓으라고 했지 달리 뾰죽한 수가 없다.
그러기를 거의 두 시간여~
밤 열시가 넘어서야 애가 들어왔다고 연락이 온다.
사연인 즉, 우리집에서 1Km가량 떨어진 평화동 동신아파트로 찾아가려다가 긿을 잃고 헤맸다는 얘긴데....
아까 전화를 할 당시에 4살짜리 아들이 하도 아빠를 찾고 귀찮게 하길래 언뜻 아빠는 삼촌네 집에 갔다고 했다나? 근디 그걸 까맣게 잊고 있다가 애가 아빠한테 전화해서 간다고 나가니까 당연히 아파트 내 관리실로 가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애는 그 추운 밤중에 동신아파트로 직행을 했던 것이고...
중간에 어찌된 일인지 (아마 집히는게 있어서 장모님이 찾으러 나갔었나보다) 장모님과 녀석이 만났는데 이때부턴 정작 길을 못 찾는게 장모님이 되어서 애가 이리저리 헤매다 간신히 집을 찾아 돌아온 것이란다.
누가 누구를 잃어버렸는지...원!
그 뒤로 이 녀석 하는 짓이 놀랍다.
매일 종이에다 지도를 그려대는데...
동네 약도 수준에서부터 해찬이 태어난 병원의 병실 배치까지 닥치는대로 그려댄다.
아마도 다시는 길을 잃고 헤매지 않으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② 2000년 1월 초
이날은 아까의 삼천동 남양아파트에서 지금의 서신동 동아한일아파트로 이사오던 바로 그 날이다.
이삿짐을 푸는 동안 조잘조잘 상관할게 많고 궁금한게 많은 녀석의 질문에 슬슬 귀찮아질 무렵,
"아빠, 나 나가서 놀다와도 되요?"
"그려, 요 아래 놀이터에가서 조용히 놀고 있어!"
그랬는데 짐을 다 정리하고 밥을 먹으려는데도 녀석이 돌아오지 않는다.
놀이터에도 없고 주변을 돌아다녀봐도 어디 흔적이 없다.
여기는 전에 와본적도 없고 오늘이 처음인데 제 아무리 머리가 좋은 놈이라 해도 처음 온 동네에서 길을 잃었다면...!
여기저기 놀란 가슴을 안고 찾아다니다가 혹시나 하고 경비아저씨한테 요만요만한 녀석을 혹시 봤느냐고 물었더니....
"아항~ 고 녀석이 집의 애 였군요!"
"지금 117동 504호에 가서 자기네 집이라고 들러붙어 있다고 인터폰이 왔습디다."
우리집은 118동 504호인데 놀이터에서 놀다가 504호만 알던 녀석이 남의집에 눌러앉아 또래가 비슷한 그집 아들이랑 책 보고 라면 끓여먹으며 눌러앉아 있는게 아닌가! 허~참!
③ 2000년 가을, 어느 토요일 오후
서신동으로 이사와서 그 해 2학기부터 우아동에 있는 동양유치원에 들어갔는데 가을 어느날 토요일에 종합경기장에서부터 전주역까지 전주시내 유치원 어린이들과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거북이마라톤대회'가 열린단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눕히고 잠시 잠이 들었는데 집사람한테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여기 경기장인데...혹시 산이 집에 오지 않았어?"
"아니! 뭔일인데??"
경기장에 수천명이 바글바글한 틈에서 잠시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단다.
대열은 줄줄이 전주역으로 향해 떠나고...
아무리 찾아도 녀석의 행방은 오리무중~
차를 몰고 나와서 전주역에 이르는 길을 수도 없이 오가며 녀석을 찾다가 결국 맨 마지막 대열이 최종 목적지에 이르도록 녀석을 찾지 못했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사색이 된 건 물론이고...
그 틈에 선생님 한분은 카메라까지 잃어버렸다고 하고 원장 내외는 난리가 났다.
오후내 그렇게 난리를 치다가 혹시나 하고 집에 돌아와보니 ...헉!
분명 철문은 굳게 닫혀있는데 우유투입구에 강아지풀이 한다발 넣어져있다.
"이건 분명 이 녀석이 집에 왔었다는 것인데..."
일단 크게 안심이 되면서 ...
같은 라인 14층 처당숙네 집으로 올라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거기서 컴퓨터게임을 하고 있다.
하도 태연하게 놀러온 행색에 당숙모도 그런일이 있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기장에서 그렇게 일행을 놓치고 혼자서 매점에 가 빵을 하나 얻어먹고 백제로쪽으로 해서 백제교 아래로 천변을 따라 강아지풀을 꺾으며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자신이 왔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꺾어온 강아지풀은 남겨두고 14층으로 올라왔단다.
'난 아무일도 없었시요!'
④ 2000년 늦은 가을쯤
세림이라는 회사에 다닐때였고 본사에서 업무를 보던 시절이라 퇴근 시간 이후에도 혼자 남아 일을 하곤 했었다.
그날도 일이 좀 남아서 퇴근 시간을 넘겼는데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지금 어디예요?"
"지금 회산데..."
"알았어요!"
그게 전부였는데...
한참 뒤, 일이 끝나고 직장 동료들이랑 삼천동 쪽에서 계모임을 한다고 막 전자랜드 사거리를 지날때 쯤이었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온다.
"저는 그냥 지나가던 사람인데요...저기...그 집 어린애가 전화를 해달라고...."
요즘날 들으면 유괴범이 틀림없겠지만^^
젊은 아가씨가 난감한 목소리로 전하더니 전화를 바꿔준다.
녀석인데 뜬금없이 성모병원 앞이란다.
부랴부랴 직장동료 차에서 내려 달려가 내막을 물으니 그냥 아빠 회사에 가보고 싶어서 집을 나왔단다.
그런데 백제교를 건널수가 없어 일단 성모병원쪽으로 건넜는데 당체 건물만 빤히 보이지 어디로 건너서 어디로 가야되는지 알 수가 없어 지나가던 예쁜 이모(?)한테 전화를 좀 빌렸단다.
역시 아무일도 없었지@
⑤ 2001년 추석인가?? 가물가물~
아무튼 명절때로 기억을 하는데 이번에는 집에서가 아니고 금암동 어머니네 집에서 사건이 발생.
큰집 형들이랑 신나게 놀다가 썰물 빠지듯 애들이 하나도 없어졌는데 큰집 애들은 다 진북동 자기네 집에 도착했다는데 요 녀석만 오리무중이 된 것이다.
금암동 어머니네 집은 당시 소방서 아래쪽 구 성모병원 근처였으니까 진북동 큰 집까지는 1.5Km정도 되고 골목이 복잡하고 또 신호등과 사거리를 여러개 거쳐야 되니까 어린애가 찾아갈 만만한게 아니었다.
성질급한 어머니 당장 난리가 났고 온 집안이 벌컥 뒤집혔다.
여기저기 찾아 헤매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끝에 이번에도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왔다.
KBS사거리 아래 까치책방이라는데 요 녀석이 거기서 더이상 길을 찾아가기 자신이 없으니까 그냥 내키는 집에 들어가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바로 달려가서 주인양반한테 고맙다고 코가 땅에 닿게 인사를 하고 상황이 끝~!
이 때도 녀석의 입장에선 길을 잃은게 아니고 그냥 형아네 집에 찾아가다가 여러가지로 힘들것 같아서 도움을 요청한 것일 뿐이란다.
⑥ 2002년 5월 어버이날
요날이 제일 심했다.
처음으로 경찰에 실종신고까지 냈으니...
어버이날 아침을 먹기 전에 카네이션을 사러 간다고 나간 녀석이 저녁 먹을 때가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최종적으로 목격했다는 곳은 동네 문구점이고 거기서 게임 하는 것을 본 사람이 몇 있는데 ...그것 뿐...
아침도 안 먹고 나간 녀석이 12시간이 넘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이 사라졌으니 답답하기 그지 없을 수 밖에~
경찰에 실종신고를 일단 접수하고 ...백방으로 찾아나섰는데...역시 오리무중~
어찌할 도리가 없어 손을 놓고 있던 차에 슬그머니 기어들어온다.
믿거나 말거나 친구네 집에서 게임을 하느라 배고픈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
⑦ 2002년 6월 18일 (대 이탈리아전)
월드컵 8강 진출 경기가 벌어지던 날이었다.
경기장이 생긴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스텐드와 바닥을 가득 메우고 함성이 온 천지에 떠들썩하던 그 순간, 옆에서 경기를 보고 있던 녀석이 또 사라진 것.
이곳 종합경기장이야말로 자기집 안방처럼 훤~하게 알고 있는 녀석인지라 당연히 집에 잘 찾아갈 것으로 믿고 경기에만 몰두 했는데 안정환의 페널티킥 실축에 이어 선제골을 먹고 말자 촉이 떨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엥? 집에 없네??
지가 경기 다 보고 알아서 돌아오겠지!
이번에는 아무런 걱정없이 그냥 경기만 보고 있는데 또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온다.
세상에~!
수당문 앞에 있는 경비실(당직실)이라는데 애가 길을 잃고 거기에 와 있으니 데려가라는 것이다.
'애는 지금 무슨 ...이 와중에...부글부글...'
그러던 차에 설기현의 동점골이 터지고...분위기 쥑인다!
기연코 연장전까지 보고 난 다음에 안정환의 역전골을 환호하며 경기장으로 달려갔더니 시간이 많이 지났던지라 당직실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아~이 녀석이 지금 때가 어느땐데 잠만자고 있냐고 두드려 깨워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 유쾌한 실종사건^^
녀석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도 많아 키가 작은 어린이는 그 숲에 묻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방향감각이며 뭐가 뭔지 하나도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사람들에 이리저리 떠밀려 사람들 허리나 가슴만 바라보다가 당직실까지 가게 되었다는....쩝!
⑧ 2003년 어느날?? 2004년 인가??
학교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산이 담임선생님~
녀석이 책가방을 잃어버려 친구와 함께 찾으러 보냈더니 한나절이 다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고...해서 반 친구들을 죄다 풀어 주변을 수색(?)했는데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단다.
내가 간다고 별 뾰죽한 수가 있나?
이리저리 찾으러 다니다가 시간만 죽였는데 ...
나중에 알고 보니 함께 찾으러 나간 녀석과 이리저리 놀러다녔다고...윽!
가방은 뒷날 항아리삼겹살집 계단에서 발견되어 주인을 통해 전해받았던가??
학교와 집을 한꺼번에 뒤집어논 일대 사건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별일이 아니었단다.
⑨ 2006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 선물이 화근이었다.
완주 코아루아파트 직원숙소에서 친구들 모아놓고 영화감상에 술한잔씩들 하고 우리식구만 남아 콘도 대용으로 숙박을 했는데 그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 아닌가?
아~이런! 못된 산타할아버지가 문 밖에 해찬이것 장난감만 두고 간게 아녀?
그것 땜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찌그락거리다가 만경강 뚝방 삼례로 가는 하리교 부근에서 기여이 일이 터진다.
말이 자꾸만 격해지다가 결국은 나중에 아빠가 늙고 아파도 거들떠보네 안 그러네 소리까지 나오게 되고 ...격분한 아빠의 성질에 녀석을 하차 시킨다음 알아서 오던지 말던지...씽씽~
중간에 되돌아가려고 했다가 결국엔 집에까지 가게 되었고 집사람하고 해찬을 내려준 다음에 부랴부랴 차를 몰아 아까 그 장소로 갔는데 ...휑~!
그때부터 하리교에서 집으로 이르는 길을 이쪽저쪽으로 셀수 없이 오가며 녀석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는데 찾기는 커녕 집 앞에는 되려 해찬까지 쫒겨나서 배회하고 있다.
지네 엄마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데...이 와중에 일을 하나 더 저질러?
불쌍한 해찬맨까지 덤으로 안고 이리저리 헤메다가 녀석이 지날것으로 유력시 되는 경기장에 진을 치고 눌러앉아 사회인 야구경기를 보고 있다보니 연락이 온다.
최단거리로 10km쯤 되는데 미산교, 용산교 쪽으로 돌아서 3시간여에 걸쳐 무사귀환했단다.
미산교를 건너 전주천 반대편으로 가는 바람에 아빠하고는 만날 수가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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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 말고도 자잘한게 더 있을텐데...
그나저나 앞으로는 이런일이 없어야 할텐데....
한편으론 용감하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하고, 위기에 침착한 것은 분명하지만 ...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