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관리하는 아파트 단지에는 지금 살구가 제철을 맞았다. 먹음직스럽게 달린 살구가 장난기 발동한 입주민의 손을 탄 탓에 키 닿는 가지엔 열맬랑 간데없지만, 여전히 머리 위로는 잔뜩 달린 살구만큼이나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어 침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다섯 장이 모여앉은 분홍빛 머금은 하얀 꽃잎은 잎이 나기 전 사월에 피는데 매화와 무척이나 닮아 헛갈리기에 십상이다. 매화와 구별하는 방법은 꽃을 감싸고 있는 꽃받침이다.
살구나무 꽃
살구나무 꽃
살구나무꽃은 꽃받침이 뒤로 발랑 젖혀지지만 매화는 꽃잎에 착 달라붙어 있어 다르다.
살구나무(Apricot, 杏)는 장미과의 낙엽활엽교목이다. 키는 5미터까지 자라며 중국이 고향이지만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재배한다. 잎은 어긋나고 둥그스름하며 끝은 뾰족하다. 어린 가지가 붉어서 푸르스름한 가지에 길쭉한 잎이 나는 매화나무와 구분된다. 덧붙이자면 매화가 양반들의 멋을 내는 귀족 나무라면 살구나무는 질박하게 살아온 서민의 나무랄까. 여기서 그런 느낌 물씬 풍기는 눈에 익은 시 한 수 읊어 보자
살구꽃 핀 마을
-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살구나무
살구나무는 쓰임새가 두루 많다. 이른 봄 흐드러지게 핀 꽃이 선물일뿐더러, 붉은빛 덧칠된 주황색 살구는 맛이 좋아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데 한몫한다. 육질에는 비타민과 신진대사를 도와주는 구연산, 사과산이 풍부하다. 과육은 살구잼으로도 인기가 높고, 살구씨는 약재로도 훌륭하며, 결이 아름답고 다루기 쉬운 목재는 최고의 목탁을 만드는 데 손색없다.
살구 열매
살구 열매
그런 까닭에서였을까?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매화, 복사꽃, 자두나무와 더불어 정원에 살구나무를 즐겨 심었다. 꽃과 열매를 즐긴 전통적인 정원수라는 얘기다. 우리 땅에도 살구나무가 사는데 열매는 살구보다 좀 작고 떫은맛이 강해 먹기가 거북스럽다. 그래서 ‘개살구’로 밀렸는데 여기서 나온 속담이 바로 ‘빛 좋은 개살구’다. 예쁘장한 열매와는 달리 맛이 형편없으니 겉보기와 달리 실속이 없다는 뜻이다.
살구나무 잎
일찌감치 자식 농사를 마친 살구나무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둘 있는데, 하나는 살구나무 숲이란 뜻의 행림(杏林)이다. 진정한 의술을 펴는 의사를 이르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행화촌(杏花村)이라는 것인데 술집을 점잖게 부르는 단어다. 맘에 쏙 든다. 행화촌!
살구나무 수피
※ 관리 포인트
- 공해에 강하며 건조한 기후뿐 아니라, 추위와 서리에도 잘 견디는 편이다.
- 번식은 씨앗을 심거나 눈접(芽接)을 하는데 복사나무나 자두나무 실생대목(實生臺木)에 접붙이기한다.
- 내습성이 약하므로 배수가 잘되는 사질양토가 좋으며, 지하수위가 높은 곳이나 배수가 불량한 곳은 피한다.
- 세균성구멍병, 검은별무늬병, 잿빛무늬병이 있으며 주위에 찔레나무가 많으면 흰가루병이 심할 수 있고 잎오갈병에는 발아 직전에 보르도액을 살포한다.
- 뿌리가 얕게 뻗는 천근성 과수이므로 강한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주대를 세운다.
출처 : 조길익 소장의 조경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