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드시죠?
어떤 말로도 지금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위안이 되기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저 또한 많이 힘듭니다.
세상사 겪을만큼 겪은 50대중반의 나이임에도
아직은 입맛이 돌아오지 않아 하루 한 끼 하기가 벅찹니다.
제가 한 일이라곤 트윗으로 문재인후보님을 지지한 것,
국내의 지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투표를 독려한 것,
제가 사는 동네의 유학생들, 주재원들 모아서 재외국민투표를 위해 카풀로 투표장에 몇 차례 왕복한 것...
그것 뿐인데..체중이 10kg 정도 빠졌습니다.
불규칙한 식사, 수면부족, 예민한 신경으로 멀리서 지켜 보아야만 했던 탓이겠지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 외면을 하든 수용을 하든
일단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해서, 이번 대선을 겪으면서 느낀 개인적 소회를 정리하려고 합니다.
1. 호남 특히 광주분들에게 너무 죄송합니다.
저는 부산 출신입니다.
비록 87년 YS가 아닌 김대중대통령님께 제 한 표를 보태었고,
지역주의와 온 몸으로 맞섰던 노무현의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하였던 사람이지만
이번 선거 결과로 님들이 겪게 될 크나큰 절망과 상실감을 생각하면 그저 가슴이 먹먹할 뿐입니다.
80년 봄 두어달 학교 동아리방에서 숙식하며 군부퇴진 시위에 참가하고,
5월 15일 서울역 봉기와 회군에 함께 했던 저로서는
5.18 광주항쟁에 대한 죄책감이 아직도 가슴 한 켠에 풀리지 않는 응어리로 남아 있습니다.
과연 그 때 서울에서 우리의 시위가 전두환 일당에게 빌미를 제공했는가?
서울역에서 회군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물러나지 않고 저들의 탱크에 깔렸더라면 저들의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잇었을까?
최소한 언로를 차단하고 광주를 고립시켜 무자비하게 양민을 학살한 만행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낙향하여 그 해 가을 입대할 때까지 술에 쩔어 살았습니다.
눈을 뜨면 시내 모처의 포장마차에서 소금 친 참기름 한 종지를 안주로 소주를 마셨습니다.
밤이 되어 직장다니며 퇴근한 선배들이 찾아와 술값을 계산해 줄 때까지....
맨 정신으로 그 해를 보내는 것은 이제 막 세상에 눈 뜬 청춘에게는 너무 큰 절망이었습니다.
사회생활하면서 PK출신이라는 혜택을 암암리에 본
그래서 서울의 강남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민 온
외양으로만 보면 전형적인 기득권에 편입될 수도 있는 제가
이번 대선에 각별했던 것은 어쩌면
그 켜켜이 쌓아 둔 부채의식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호남만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고질적인 지역구도
해서 노무현에 이어 이번에도 문재인을 선택하고 지지했던 그 마음
왜 모르겠습니까?
여러분께서 영남에 대해 어떤 비판을 하든
앞으로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든
저는 여러분의 뜻을 존중하고 동행할 것입니다.
영남에서 최소한 5:5의 지지가 나올 때까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남의 정서와 정치적 선택은
누가 뭐라 하든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양심세력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대구경북의 20%, 부산의 40% 지지자들의 상심 또한 크고
그 소중한 불씨를 기죽이지 말라는 의견들도 있습니다만
그 속에 포함될 수 있는 한 사람으로 감히 말씀드리자면
그 비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난 속에서 더욱 강하게 그 20%, 40%가
50% 이상이 되도록 힘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20,30 세대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50대 중후반 세대는 유신통치와 군부독재에 맞서기도 하였지만
고도성장기에 따르는 부산물로 여러분보다는 쉽게 취직하고 자리잡았던 세대입니다.
그런 무임승차 세대가
시장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만 공존과 상생할 수 있는 엄중한 현실을 외면하고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려는 기득권 세력에게
무책임하고 무기력하게 여러분 세대를 내던져 버렸습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여러분의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중차대한 선거에
똥물을 끼얹었습니다.
어떻게 갚을 수 있을 지, 어떻게 도울 수 있을 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여러분들이 행여 용기를 잃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돌아보게 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그 소중한 가치를 포기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지켜달라 요청드리기도 미안합니다.
이 시련이 여러분이 더 강한 양심세력이 되는 계기가 되기만을 소망할 뿐입니다.
혹독한 시련과 경쟁에도 이겨 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추세력으로 성장하기만을 바라고
그 때 지금의 소중한 가치를 잊지 않고
선한 마음을 가진 오피니언 리더가 되어주시기만을 간절히 소망할 뿐입니다.
3.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하여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이 과학적이고 세밀한 분석을 하겠지만
50대 일반 유권자의 입장에서 가지는 소회라면
1)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문재인후보님은 민주개혁진보 진영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카드였습니다.
안철수교수를 지지하셨던 분들이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겠지만
유력주자들 중 비토세력이 가장 적은 문후보님이기에
민주 진보 범야권과 합리적보수까지 하나로 모을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다만, 기울어진 언론과 미디어 환경에만 접하고 SNS에는 익숙하지 않은 국민들에게
문후보님의 진면목을 알리기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였습니다.
수구언론의 왜곡과 새누리당의 조직적인 음해에 그 계층과 세대가 현혹된 것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고 선거 당일까지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차기에는 야권후보가 최소 1년전에는 결정되어
이에 대처할 시간과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2) 야권의 지역 조직력이 아쉽습니다.
공중전에서는 승리하였으나 각개전투에서는 패한 선거였습니다.
도시, 화이트칼라, 고학력, 중산층, 젊은세대의 열망을 고스란히 묶어 유래없는 높은 투표율을 이끌었음에도
음해와 마타도어의 구전이 더 쎈 위력을 발휘하는 계층과 지역의 조직에 당했습니다.
선거당일에도 조직을 가동해서 노인들을 동원하라는 문자를 보내는 새눌당의 뻔뻔한 부정행위에 대하여
그보다 더한 반칙과 부정을 일삼는 세력임을 모르지 않는 한에는
아무리 비분강개하고 억울해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의원수 축소, 세비 삭감에 반대합니다.
과거처럼 검은 돈을 받지 않고 세비만으로 지역구를 관리하려면
여전히 검은 돈을 지원받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새눌당 의원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야권 지역구 의원들의 현실입니다.
정치학자들이나 야권 지식인들의 이상적인 주장에 휘둘리지 않는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지역구에서 제대로 할동하지 않은 의원들은 국민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켜 본 국민들이 이에 대한 응징을 해야만 차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3) 과유불급
부정과 비리에 대한 폭로는 지금과 같은 언론 환경과 막연한 안보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늘 역풍을 초래하였습니다.
정서와 감정은 이성과 논리에 우선하는 것이 선거입니다.
92년 초원복집 사건때 오히려 영남이 결집한 그 비이성적인 '우리가 남이가' 정서.
IMF 조차 DJ의 각종 법안 반대가 원인이라고 후안무치하게 덮어 씌운 한나라당과 이에 합세한 조중동의 억지
왜 김대중대통령께서 자신을 죽이려 한 세력과 손을 잡고 선거를 치루어야만 했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저 간악한 세력을 공격하려면
이해찬대표나 박지원대표처럼 한번 칼을 휘두르면 치명타를 입히는 고도의 내공을 키워야 합니다.
인혁당과 역사인식에 대해 박근혜의 급소를 정확히 찔러
조중동 마저 방어하지 못하게 하고 지지율 35%까지 떨어지게 한 과정을 복기하여
민주당의 후배 의원들과 야권 오피니언 리더들이 성찰하고 배워야 합니다.
국정원의 공작이나 기타 마타도어에 대해서 과연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처하였는지
캠프의 역할, 민주당 의원들의 역할, 지지자들의 역할,
구전으로 전파하는 지역조직의 역할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4) 기타 할 말은 무구합니다만 인상비평 수준의 넋두리 이쯤에서 마치고자 합니다.
일반적인 50대 유권자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범주의 내용들 아닌가 싶습니다.
4. 일개 소시민의 소심한 저항
일상으로 복귀하는 저로서는
1) 온라인 보다는 오프에서 소소한 모임을 더 자주 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가 정의와 올바른 가치를 포기하지 않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2) 뭐 이것은 그야말로 아주 소심한 소시민의 감정적인 복수(?)일 수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호남지방에서 수입한 식품이나 제품만을 소비할 것입니다.
가격과 품질에 상관없이 원산지나 수출업체가 호남인지만 따질 것입니다.
뜻을 같이하는 이웃들에게도 권할 것입니다.
3) 한국방문시마다 호남으로 여행하는 일정을 잡겠습니다.
지난 겨울 전주 한옥마을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아주 귀한 추억이었습니다.
4) 여유가 되는대로 이번 선거과정에서 알게 된 야권의 유망주들을 후원하겠습니다.
5. 달님 지지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바램
달님에게 지금은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30년 친구를 황망하게 보내고 세상과 멀리 하려던 분이 불려나와 일년 넘게 강행군 하셨습니다.
휴식과 건강을 회복할 시간을 드리는 것이 도리이지 싶습니다.
향후 어떤 행보를 하시든 어떤 선택을 하시든
달님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적극 지지하고 동행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두서없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지금 이새벽에 이곳느림보학교카페에들어와서 어정쩡하게앉아있습니다
얼마나 울어야 얼마나 목놓아야 이 눈물이 마늘런지 ....
공감하며 위안받고들어갑니다 광주골에사는중년의아낙이
한국 나가면 광주부터 들리겠습니다.
기운 내십시오.
울지마세요..같은 맘입니다.ㅠㅠ 정말 단체로 힐링이 필요한 때입니다.저는 문재인이 대통령 안되서 슬픈거 보다 저런 걸 대통령으로 뽑아준 동료국민들이 참을 수 없습니다.ㅠ 내가 잘못 산건가?내가 비정상인가? 싶어서요
선배님 카페 쪽지 확인바랍니다
저도 새로 알게된 국민 수준에 개탄했지만..
나무자전거님을 비롯 카페분들, 조교수님처럼 이해관계없이 마음과 성을 다해 같은 방향으로 애쓰시는 모습 자체가 너무나 감동적이고 소망적이라.. 슬프지만 참 기쁩니다. 앞날에 대해 힘도 나구 머리도 굴려보게 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