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잡념을 떨쳐버리고 섬에 대해서 좀더 깊이 느껴보고자 혼자서 겨울 여행을 하기로 결심 하였다. 특히 욕지도는 오랫동안 가 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더욱더 마음가짐이 달랐다. 남해안의 섬 중에 비진도,매물도,한산도,사량도,거제도,외도 등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욕지도는 섬이 면으로 이루어져 있을 만큼 규모도 크지만 의외로 외지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름다움이 덜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뭍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지혜로운 섬 사람들 때문 이었을 것이며 또한 자기를 알릴 줄 몰랐던 순박한 습성때문 이었을 것이다. 배 시간이 충분 할 줄 알고 아침을 서호시장에서 시락국이라도 먹고 갈 계획이었으나 차를 빌리느라 가까스로 미륵도에서 출발하는 삼덕항의 배 시간에 맞추어 도착을 하였다. 오래 전에 욕지에 갔을 때 비포장 도로때문에 고생을 하였던 기억이 있어서 승용차를 놓고 동생의 짚차를 빌렸기 때문이었다. 10분을 남겨놓고 표를 끊고는 근처 컨테이너 박스 매점에서 컵 라면을 사 먹었다. 갈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는데 혼자만 바쁜 것 같았다. 뱃삯은 차가 편도 18,000원 이었고 승객은 1명당 5천원을 따로 받았다. 여러 명이 갈 경우에는 비용이 꽤 들 것 같았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그 큰 차량운송선(제3 금룡호)은 내 차를 포함하여 두 대 밖에 없었고 승객도 승무원과 비슷한 숫자였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소매물도와 외도를 생각하니 욕지도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이 무척 쓸쓸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배는 출발시간인 9시40분에 정확히 출발을 하였다. 바닷바람이 매서웠지만 나는 줄 곳 선실 밖에서만 서 있었다. 삼덕항에서 제일 가까운 곤리도 주변에는 어부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가두리 먹이를 주는 사람, 자망을 하는 사람, 또 다른 곳으로 고기잡이를 떠나는 배들… 파도가 높지 않고 잔잔하여 마치 유람선을 탄 느낌이었다. 모처럼 느껴보는 여유였다. 가마섬,쑥섬,만지도 등, 지나가는 작은 섬들처럼 지나온 1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욕지도 가는 뱃길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었다. 우리집 앞에서도 보이던 사량도와 추도가 그림처럼 떠 있고 멀리 삼천포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육지도 보였다. 뱃길에 지나는 주변의 작은 섬들의 매력에 빠져있는 동안 1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이윽고 욕지도에 다 온 모양이었다. 욕지도는 그 입구부터도 범상해 보였다. 다도해에서 제일 아름다운 섬 스무개 정도를 모아다가 욕지도 입구를 감싸 놓은 듯 하였다. 서로 닮지않은 작은 섬들, 비상도, 납도, 막도, 사이도, 모도, 모자섬, 봉도, 소봉도, 적도, 우도 등이 욕지도에 서로 잘 보이려는 듯한 자태를 하면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좌로는 두미도 우로는 연화도의 커다란 섬 두개가 마치 우백호 좌청룡처럼 관문을 떡 버티고 있었다. 배에서 내리니 마을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엔진에 쓰이는 무거운 쇠 덩이를 들고 아는 체를 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모습으로. "저 앞 마을까지만 좀 태워 주소."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바쁜 일도 없을 뿐더러 섬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서 얼른 태워 드렸다."
"욕지는 살기가 어떻습니까 ? " "말도 마소. 보시다시피, 요서 뭐가 나오겠습니꺼 ?" 옛날에는 농사를 주로 지었는데 지금은 젊은 사람들은 다 뭍으로 떠났고요, 또 어업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가두리를 하고 있는데 중국산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아저씨. 욕지 고구마 좀 사고 싶은데 어디서 살 수 있습니까 ? "아, 고매요 ? 벌써 다 팔렸지예. 집집마다 조금씩 하는데 주문이 많아서 캐자 마자 다 팔리고 지금은 집집마다 종자밖에 없을 깁니다." 욕지 고구마를 사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다. 그리고 욕지도의 관광사업에 대해서 물어 보았더니, 현지인들은 영세하여 겨우 살고있는 방을 대여하다 보니 불편하고 지저분하여 성수기 외는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대부분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별장이며 콘도형 민박이며 지어서 임대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면 단위 마다 하나밖에 허가가 나오지 않는 관광농원도 외지에서 온 사람이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더구나 친절과 서비스에 있어서 외지에서 온 사람들과 차이가 나기 때문에 오랫동안 아름다운 욕지도를 지켜온 주민들은 또다시 자리가 밀려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욕지도가 가야 할 길은 관광사업 밖에는 없는데 통영시와 욕지면에서는 주민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 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일주 드라이브는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가면 유심히 보아야 보이는 "유동,도동,덕동" 이라고 적힌 작은 푯말을 따라 우회전을 하면 시작이 되었다. 마을을 벗어나니 메밀잣밤나무숲이 있는 천황산의 허리를 끼고 잘 닦여진 길이 바다를 좌측으로 두고 이어져 있었다. 낭떠러지 위에 만들어진 아슬아슬한 도로와 절벽으로 밑으로 보이는 비경에는 넋을 잃기에 충분 하였다. 마치 이태리의 카프리섬에 와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더구나 백미터가 멀다 않고 만들어져 있는 "View Point"는 여행객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특히 삼녀바위 전망대에 놓여있는 바위는 그것이 삼녀바위인줄로 착각을 할 정도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삼녀바위와 그 주위로 고즈넉이 떠 있는 낚시배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욕지도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도 환상적이었다. 겨울인데도 근처에는 들국화가 활짝 피어 도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야생염소 가족이 자유롭게 뛰어 놀고 있었다.
삼녀를 지나자 소매물도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섬(실제는 섬이 아님)이 나타났다. 그곳이 유동마을 이라 했다. 그래서 일주도로를 따라 가다가 좌회전하여 잠시 좁은 마을 길로 접어 들었다. 약 10여 채의 낡은 가옥들이 있었는데 해풍 때문에 대부분 돌담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오른쪽으로 가니 좁은 길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짚차의 성능도 과시하고 싶었고 또 낯선 곳으로 가 보고싶은 마음에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언덕 밑으로 가건물처럼 지어진 하얀 집에서 막 물일을 하고 올라 온 듯 한 모습으로 할머니인지 아주머니인지 한 분이 차 소리를 듣고 나왔다. 그래서 나는 별 건넬 말이 없길래 여기서 식사를 하고 싶은데 밥을 좀 해 줄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다행히도 밥을 지어 팔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리 주문을 해 놓고 계속 차를 몰고 섬 뒷편으로 가 보았다. 오솔길을 따라서 한참 가다 보니 길이 끊어진 것인지 아니면 길을 잃은 것인지 분간을 하기가 힘들었는데 그곳에는 제법 펑퍼짐한 분지가 있었고 마을 흔적이 보였다. 그기에는 폐가가 두 채가 있었고 안에는 살림살이 도구가 그대로 놓여 있었는데 집 주인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는지… 멀리 갈도 만이 외로운 바다에 떠 있었고 바다는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시 차를 몰고 점심을 부탁 해 두었던 집으로 갔다. 할머니(그냥 할머니라 부르겠다)는 갓 잡은 볼락지아리(젓볼락을 통영에서는 그렇게 부름)으로 볼락젓을 담그고 있었다. 집 아래의 갯바위에는 낚싯대를 담그기만 하면 학 꽁치와 볼락이 엄청 잡힌다고 하였다. 급랭 시켜 놓은 학 꽁치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얇게 썰어주었는데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아 내렸다. 바다를 바라보고 점심을 먹었더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경치도 좋고 주인도 친절하고 하여 다음에 여행객들을 추천 해 주어야 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주변에는 좌우로 해수욕장이 있었고 갯바위 낚시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도 즐비하였다. 근처에도 "민박"이라고 적힌 집들이 있었는데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욕지도도 식후경이라고 배를 채우고 나니 힘이 났다. 돌아가는 배는 4시에 예약을 해 두었으므로 시간은 충분 하였지만 낯선 곳이었으므로 일주를 재촉하였다. 그 할머니가 꼭대기에 차를 몰고 올라가면 미사일 기지 근처에 무인등대와 고인돌도 있다며 꼭 한번 가 보라고 하였는데 다음을 위하여 남겨 두기로 하였다.
조금 더 가니 왼편으로 동메(땅이 반도처럼 바다로 길쭉하게 뻗어있는 곳을 동메라고 함)가 보였고 그 위로 잘 지어진 숙박시설이 보였다. 입구에 "고래머리 관광농원"이라고 적힌 것으로 보아 그곳 지명이 고래머리 인 듯 하였는데 그 생김새도 그랬다. 멀리 구미서 어제 왔다는 아줌마들은 바다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남편들이 다 갯바위로 낚시를 하러 갔는데 그냥 그곳에서 바다를 보는 것이 좋아서 따라 가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곳 바로 아래가 욕지에서 제일 큰 해수욕장인 덕동해수욕장이 있었다. 주인이 주변에서 직접 농사로 지었다는 귤 맛을 보고는 다시 길을 재촉 하였다. 그곳에는 한창 도로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일부 비포장 길도 있었다. 그러나 굽이굽이 돌 때마다 돌담으로 지어진 집들이 바다를 향해 있었고 바다는 병풍처럼 이어져 있었다. 반대편으로 돌아서 선착장에 도착을 하니 1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그래서 아까 가 보지 못한 마을로 가서 집 앞에 놓여있는 어구들이며 어촌의 민가들을 사진에 담았다. 언젠가는 인터넷상에서 어구에 관한 사이버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곳의 어구들이 미륵도와 다른 점은, 선박이나 통발을 묶는 로프의 굵기가 굵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파도와 바람이 센 지역이기 때문 일 것이다. 물론 쇠로 만든 닻도 굵직한 것이 특징이었다. 미륵도 삼덕항으로 돌아갈 때는, 올 때와는 달리 나는 피곤하여 선실에서 꼬꾸라져 잠이 들었다. 욕지도는 참으로 아름다운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리의 카프리 섬 보다도 더 아름다운 푸른 바다와 기암 괴석들… 다음에 고구마를 캘 때 꼭 다시 한번 더 오리라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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