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친애’(politikē philia)와 관련된 두 가지 아포리아(aporia)를 해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첫 번째 아포리아는 ‘친애(philia)와 정의(dikaiosynē)에서 친애의 우선성 문제’이다. 두 번째 아포리아는 정치적 친애를 친애의 유형 중 ‘덕’(aretē)에 기반한, 즉 ‘덕 친애’로 볼 수 있는지와 관련된다. 첫 번째 아포리아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정의 역시 정치적 공동체의 최고의 덕이자 규제적 원리로 강조되는데, '왜 친애가 정의보다 더 중요하고' 또한 ‘어떤 근거에서 폴리스의 구성원들의 결속을 위해서는 정의만으론 충분하지 않고 별도로 친애를 필요로 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두 번째 아포리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친애’는 소수의 덕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말해지는데, 폴리스의 다수의 시민들과 관련되는 정치적 친애를 과연 ‘이익’이 아닌 ‘덕을 목적으로 한 친애’의 유형으로 볼 수 있는가와 관련된다. 지금까지 정치적 친애와 관련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친애를 정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보다 적확(的確)하면서도 심도 있는 연구는 이루어진 것 같지 않다. “친애가 스타시스(stasis), 즉 파쟁을 막는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는 정도에서 끝나고 양자의 관계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친애가 어떻게 스타시스를 막는다는 것인지, 또 공동체의 존립의 근본적 원리가 되는 것으로 말해지는 정의가 스타시스와 관련해서는 왜 그 순기능이 인정될 수 없는지 불명확하다. 본 연구자가 생각하기에 정의와 친애가 스타시스(stasis), 즉 파쟁과 갖는 함수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정치학』을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스타시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의와 친애의 우선성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한 국내외의 연구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이러한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주요 논점을 정립하고 그것을 고찰한다. 첫째, 정의와 친애가 스타시스(stasis), 즉 '파쟁'과 갖는 함수관계이다. 이와 관련해서 정의와 스타시스는 길항관계에 있고, 따라서 정의의 요구가 파쟁의 발생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반면에 친애는 구성원들의 호모노이아(homonoia), 즉 '마음의 일치'의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폴리스의 안정과 발전에 순기능의 원리가 된다. 둘째, 호모노이아의 이익 관련 언급에서 ‘이익’의 의미가 개인 친애의 ‘이익(chresimon)과 시민(단)의 이익(sympheron)이 구분되어 호모노이아의 의미가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중 후자의 시민이 추구하는 sympheron은 개인간의 상거래와 같은 경제적인 부의 이익, 즉 chresimon의 의미와는 다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쉼페론의 의미로서의 호모노이아는 ‘자신의 좋음’이 아니라 ‘타인(동료시민)의 좋음’을 우선시하는 친애적 선의(eunoia)와 에토스에 근거한 자발적인 선택결정(prohairesis)의 친애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술한 작업을 통해 본 연구는 정치적 친애의 기준을 개인친애의 관점이 아닌 ‘시민'을 그 단위로 잡는 '폴리스적 친애’ 또는 '시민친애'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한다. 결론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친애가 개인친애와는 다른 층위에서 ’시민 덕‘(aretē politōn)에 근거한 ’덕친애’로 간주될 수 있음이 고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