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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은 시각장애인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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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올해부터 다시 공휴일로 지정됐다고 합니다. 알아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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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 대 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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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정말 앞을 볼 수 없었을까? |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세종대왕이고,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일은 한글창제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종대왕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세종(世宗 : 1397~1450)은 1418년 8월 10일 왕위에 올라 32년 동안 조선을 다스린 조선조 제4대 임금이다. |
그러나 이토록 찬란한 세종의 업적 뒤에는 여러 질병을 앓았고 특히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세종실록 92권(세종 23년)에 세종이 이렇게 말한 내용이 나온다. |
- 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아파서 봄부터 어두은 곳에서는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걷기가 어려웠다. - |
세종실록 92권에 세종의 건강에 대한 신하들의 애기도 나온다. |
- 임금이 모든 일에 부지런하였고 책을 밤낮으로 놓지 않고 보기를 즐겨하여 눈병을 얻게 된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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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 실 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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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96권(세종 24년)에 보면 |
- 눈병이 더욱 심해지니 이로 인해 여러가지 병이 번갈아 괴롭히므로 정사에 부지런 할 수가 없다. 부지런 하고자 한들 되겠는냐 - |
세종실록 96권에 |
- 내가 근래 소갈증과 풍습병으로 정사가 예전과 같지 못하다. - |
소갈증은 오늘날의 당뇨병이고 풍습병은 뼈마디가 아픈 관절염으로 세종의 시각장애 원인은 당뇨병 때문이며 다리도 불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세종실록 92권(세종 23년)에 |
- 내가 눈병을 얻은지 이제 10년이나 되었으므로..... - |
이것으로 세종은 세종 23년(1441년)보다 10년 전인 세종 13년(1431년)인 35살에 시각장애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거의 앞을 보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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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민 정 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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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복지정책에 애정을 쏟다. |
세종 시대가 태평성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세종의 서민복지정책 때문이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남편을 잃은 여자 등 약자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담당 관사에서 쌀을 지급해 주도록 했고, 장애인과 노인에게는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주었을 뿐 아니라 장정을 한명씩 내주어서 봉양을 하도록 하여 오늘날의 요양보호사나 활동보조인 제도와 유사한 복지정책을 폈다. |
세종은 시각장애인 복지정책에 남다를 애정을 갖고 있었다. |
조선시대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점을 치는 점복가나 경을 읽어 복을 기원하는 독경사로 활동을 했다. 주었다. |
세종은 "지화가 국가의 미래를 점치는 일과 왕실의 혼인에 자주 참여하여 점복을 잘 하니 벼슬을 내리는 것이 어떠냐" 라고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에게 물었다. 주었다. |
그러자 사간원에서 반대를 하고 나섰다.(세종실록 75권, 세종 18년) |
- 당나라 태종은 잡류들은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관직을 주어 조정의 군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사대부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원컨대 관직을 파면하고 월료(月料)만 주게 하소서 - |
세종은 사옹원의 관직은 공인, 상인, 천인들도 모두 받게 되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 점복가에게 관직을 제수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였다. |
세종은 지화와 이신에게 벼슬을 주는 것은 공에 대한 정당한 대우라고 신하들을 설득시켰다. 또한 시각장애인 독사경들은 명통시에서 활동을 했는데 명통시는 시각장애인 단체로 가난한 시각장애인들에게 쌀과 황두를 지원했다. |
시각장애 음악인을 직업인으로 |
조선왕조의 건국 초부터 궁중잔치 중에서 왕비나 공주 등 내명부를 위한 내연(內宴) 때 관현반주를 하는 관현맹인이 있었는데 관현맹인은 시각장애 음악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현맹인은 세종시대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다 음악가 박연은 세종에게 관현맹인에게 관직을 제수할 것을 건의하였다. |
- 관습도감에 소속된 18명의 맹인 중 연회를 모신지 오래된 사람은 5품 이상의 검직을 제수하고 나머지도 모두 벼슬에 참여하도록 하소서. 처음 입속하는 사람에게는 7품 검직을 재수하였다가 차차 음악을 익힘을 기다려 예에 따라 참직을 주어서 자손들의 후일을 열어준다면 권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쌀을 내리는 것도 봄, 가을 두 철에 국한하지 말고 사철 나누어 주소서 - |
세종은 박연의 청대로 시행하라고 지시하여 관현맹인 처우 개선에 힘썼다. 세종대왕은 시각장애인이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사에는 시각장애인 임금이 있었고, 그 시각장애인 임금이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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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공단이 발행하는 월간 '장애인과 일터' 10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kead.or.kr/webzine/ibook/201310/index.html[ 웝진주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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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장애인 고용공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