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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원기 100년 3월 22일 일요정례법회
주제 : 윤회와 육도(불조요경 수심결 1장)
타이핑 : 일반 7단 박은전
원기100년 3월 22일 일요정례법회_윤회와육도_전자균교무님설법.hwp
반갑습니다.
저는 남양주 축령산 휴양림 앞 오덕 훈련원에 근무하는 전자균 교무라고 합니다.
갑자기 설교 부탁을 받아서, 사실 제가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응했습니다.
제가 오덕훈련원에 작년 1월에 와서 만 1년 됐습니다. 여기에 와서 제 삶의 의식이 패턴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일 중심이었는데, 관계 중심. 미리 준비하는 것으로 패턴이 바뀌었습니다.
오덕훈련원이 펜션도 같이 운영하다보니 교도님들이 쉬고 가시는 휴향지도 되고,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분들이 펜션에 와서 지내는 분도 계셔서, 저도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사회가 많이 바뀌고 있구나.
명절 때도 가족들과 함께 훈련원에 와서 보내는 분들도 있고, 그러니 제가 의식이 안 바뀔 수가 없습니다. 눈으로 보다보니.
보통 시간이 나면 휴양을 간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것도 바쁠 때 쉬어야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너무나 바쁘신 분이 밤낮없이 일하시는 분들이 오덕훈련원에 일을 던지고 쉬러 오시는 겁니다.
그렇게 오실 땐 얼굴이 새카맣게 오셔서 가실 때는 하얗게 가십니다.
이 바쁜 와중에 과연 내가 챙겨야 할 것이 뭔가. 이렇게 기관을 이용해 사는 분들 보면, 돈도 아니고 일도 아니고 나에 대한 소중함을 위해 다 던지고 나와서 쉬는 분들. 참, 대단하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훈련원인 것 같습니다.
요즘 숲속 마을 학교를 사업자 등록을 내려 합니다. 종교 교육을 떠나서 일반 사회분들과 함께 하기 위해. 휴양, 요양, 가족 부부간의 소통 이런 부분까지, 많은 사람들이 와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음 주에 남양주 세무서 가서 사업자 등록증을 내려하고 있습니다.
설교와 연관 지어 말씀 드리고 싶은데, 원예 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작년 6월에 오셨습니다. 뜬금없이 훈련원에 한번 오고 싶다고 하셔서 오셨는데, 올 해 연세가 80이십니다.
보통 80되면 할아버지라고 치부하잖아요. 그런데 이 분은 할아버지가 아니십니다.
이 분은 직접 본인에게 맞는 비닐하우스를 나무로 만드세요. 바람의 영향, 태양의 조도, 온도 등을 조절해서 비닐하우스를 손수 만드시는데, 전쟁 참여용사 군인이십니다. 이런 분들은 정부에서 혜택을 받잖아요. 이 분은 혜택을 거부하세요.
더 나아가 지하철을 타면 자리가 나오잖아요. 한 자리가 나오면 앉지를 않으십니다. 두 자리 이상이 나와야 앉습니다. 왜 그러세요? 라고 하시면 말씀 안하시고 웃기만 하십니다.
그리고 스마트폰 관련해서 기능을 잘 모르잖아요. 이 분은 스마트폰 박사입니다. S전자에서 관리를 하는 분이다 보니 무료로 그 분에게 스마트폰을 줍니다. 그래서 써보고 피드백을 받아서 보완하시는. 과연 이 분을 나이를 80으로 볼 수 있는지 ^^
또 토마토를 기르느라 바쁘십니다. 거기에 오는 분들, 특히 어린아이들 주려고 기릅니다. 그 돈을 누가 대느냐. 본인이 직접 대서 하우스도 만드십니다.
“왜 돈을 쓰십니까?”,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돈 가지고 있어 뭐하겠어.”
그래서 가족들과 트러블도 있는가 봅니다. 과연 이 분의 삶이 어떤 삶일까 고민하게 합니다.
저의 요즘 큰 화두는 평안입니다. 개인의 안녕과 가족의 평안. 그 부분인데요.
우리나라 현재 자살률이 세계 1위입니다. 그리고 폭행, 이혼, 성폭력...
전 세계적으로 전쟁, 특히 종교간 이념전쟁.
이 부분을 과연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그래서 저는 늘 안녕과 평화가 화두입니다.
대종사님이 왜 원불교를 여셨을까. 거기에 관심을 갖고 맞춰서 준비를 해가고 또 나름 꿈이 큽니다.
그래서 핵심 키워드를 육도 윤회로 두고, 작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논문을 쓰려고 주제를 잡았습니다.
정산종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미래시대에는 너와 내가 대화하는데 과거 누구 였구만. 너와 나의 촌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어제 일을 이야기 하는 것 같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나의 삶에 있어서 어제 일은 우리가 잘 기억하잖아요? 나의 일상의 연장선상이니까요.
그런데 정산종사님께서는 과거 전생 이야기를 어제 일처럼 김씨, 이씨, 박씨.
대종사님께서는 일원상 서원문에 보면 육도 윤회라는 말이 있잖아요.
일제시대 그 어려운 상황에서 원불교가 없어져도, 이 교전이 없어져도 그 중에 이 일원상 서원문 하나만 있어도 다시 법을 새로 짤 수 있다고 말씀 하셨잖아요.
그 일원상 서원문 내용 중에 육도 윤회가 있어요. 저는 육도 윤회가 왜 그리 크게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원불교 초창기에 대종사님의 둘째 아드님 차자 광령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있었던 상황, 제가 선진님께 들었던 이야긴데요.
“야 누구! 대각전 종 뗴어 와!, 종 빨리 쳐!” 하고 해주신 법문이 천도법문입니다.
나의 자식이 죽었을 때 마지막 최고의 선물이 천도법문입니다. 한 생 살았다고 하지만 다음 생의 연장선상에서 혹은 아빠로서, 종교 지도자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천도법문입니다. 여기에도 육도 윤회가 들어가 있습니다.
대종사님은 육도 윤회에 상당히 비중을 크게 가지고 계셨구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육도 윤회를 가지고, 1탄.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1시간 정도 가지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오덕 훈련원에서도 매주 법회를 봅니다. 교도님 10분 정도 되십니다. 제가 윤회를 가지고, 4번에 거쳐 설교를 했습니다. 저희들은 법회를 하고 나서 윤회를 가지고 토론을 합니다. 교도님들이 의외로 여기에 계속 연마를 해오셔서 정보도 제공해 주시고 아이디어도 제공해 주십니다. 교도님들도 육회에 관련 하여 좋은 영화, 수필, 소설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제가 윤회 연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겠습니다. 같이 공부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 윤회의 세계 -
대종사님께서 우리 서품 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대각을 이루신 후 모든 종교의 경전을 두루 열람하시다가 금강경(金剛經)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서가모니 불(釋迦牟尼佛)은 진실로 성인들 중의 성인이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발심한 동기로부터 도 얻은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 많으므로…」
그러니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 교리에 관련 부분이 나와 똑같다. 그렇다고 보면 육도 윤회 부분도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 나의 연원(淵源)을 부처님에게 정하노라] 하시고, [장차 회상(會上)을 열 때에도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 완전 무결한 큰 회상을 이 세상에 건설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면서 서품 3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불법은 천하의 큰 도라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 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 바 있나니라.]」
여기에 인과의 이치 부분이 나옵니다. 육도 윤회의 핵심도 부분은 인과라는 겁니다. 인과는 결국 업에 연관되는 부분인데요.
제가 요 부분을 수없이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연구된 게 없습니다.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연구된 게 별로 없어요.
제가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죽음에 대한 부분을 학습했습니다. 마지막 임종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많은 연구가 되어 있는데, 사후의 세계, 생전과 관련된 부분은 조금씩 관심을 가져가는 부분인데 별로 없습니다. 앞으로 평화를 기하는데 이것이 핵심 키워드가 되겠다.
윤회라는 부분에 있어 용어를 찾아보면.
이 세상에 온갖 것은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수레바퀴처럼 끝없이 돌도 도는 것이 윤회다.
이 윤회설은 고대 인도에 우빠니샤드(Upaniṣhad) 시대부터 전해 내려와 불교의 핵심 사상으로 수용되었다.
불교 이전에 인도에 우빠니샤드에서 육도 윤회가 언급되었고, 같이 일반화 되었던 부분입니다. 부처님이 그 사상을 불교에서 수용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천도품 11장에 보면,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영식이 이 육신을 떠날 때에 처음에는 그 착심을 좇아 가게 되고, 후에는 그 업을 따라 받게 되어 한 없는 세상에 길이 윤회하나니, 윤회를 자유하는 방법은 오직 착심을 여의고 업을 초월하는 데에 있나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몇 줄 되지 않지만 대단히 중요한 핵심입니다. 앞서 법어봉독 시간에 봉독했던 부분인데요. 수심결 1장인데요, 같이 읽어보도록 합시다.
불조요경 수심결修心訣) 1장
「삼계의 뜨거운 번뇌가 마치 화택과 같거늘 거기에 참아 오래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으랴. 윤회함을 면하고자 할진대 부처를 구함만 같지 못하고 만일 부처를 구하고자 할진대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을 어찌 멀리 찾으리오 각자의 몸 가운데를 여의지 아니하였도다. 색신은 이 거짓이라 생함도 있고 멸함도 있거니와 참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없어지지도 아니하고 변하지도 아니하나니라. 그런고로 "일백 뼈는 무너지고 흩어져서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되 한 물건은 길이 영령하여 하늘도 덮고 땅도 덮었다"하였나니라. 」
여기에도 과거 불교, 공부 교재인데 여기에도 ‘윤회를 면하고자 할진대’
여기를 보면요, 우리가 윤회에서 한 세계 더 들어가 보면 육도 윤회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천도, 인도, 수라, 축생, 아귀, 지옥.
두 번째 인도, 사람의 몸을 받은 상태에서 수행자가 마음을 닦는 첫 번째 부분입니다.
윤회 중에서도 수도인이 해야 될 첫 번째가 윤회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 첫 번째 목표입니다.
여기에 관련된 부분이 수심결 1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윤회 관련된 부분에서 제가 여기에 나름대로 초점을 가지고 생활하다 보니 감각감상, 심신작용 처리건이 다 이와 연관이 됩니다. 우리 의두요목에도 ‘중생의 윤회되는 것과 모든 부처님이 해탈하는 것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있죠? 윤회와 해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가 지난 번에 일기를 한 번 써봤습니다. 열흘 전에 썼던 일기입니다.
[어제 어깨 결림이 있어 한의원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위치는 마석역에 있는 대로변 10층짜리 건물인데 한의원은 2층에 있었다.
한의원에 다녀왔던 교무님께 차를 가지고 가니 주차장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건물 바로 뒤에 있다고 했습니다.
건물 뒤를 돌아 좁은 골목에 들어서니 공용 주차장이 있어 차를 신속히 주차하고,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원이 안보인다. 주차요원도 모른다고 한다. 아뿔싸! 주차를 이미 했고, 주차 발급을 받았는데 모르겠다. 그냥 찾자. 10m를 돌아보니 대로변 앞에서 봤던 한의원이 나온다. 그 건물 밑을 보니 한의원에 딸린 지하주차장이 보였다. 그러면 나는 이 곳에 주차를 할 것인가. 기존의 주차장에 할 것인가. 아무튼 한의원에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공용 주차장 가격을 일부 부담한다고 한다. 경비면에서는 다행이나, 치료를 받으면서 뭔가 마음 속으로 억울했다. 주차장 찾기가 이렇게 어려울 수가. 건물 뒤를 돌아서면 바로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주차를 했다는 것이 나를 화나게 했다.
여기서 한 감상이 생겼다. 사후세계 후에 내가 새 몸으로 입태를 할 때에는 내가 알고도 가려고 노력하지만, 순간 다른 주차자장이 내가 갈 주차장으로 착각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다. 여기서 나의 실수는, 주차장이 바로 보인다고 주차 할 것이 아니라 한번 중간 확인을 하면 어땠을까. 신속하게 한다는 것이 나의 실수를 키웠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라! 라는 속담이 있다. 새 몸을 받는 입태하는 것이 멀리 있지 않고, 생활 속에 꾸준한 나의 반복 훈련이리라!]
어떠십니까?
저는 이 주차장이 주차장으로 보인 게 아니라 새 몸으로 보였습니다. 차는 영혼으로 보이고요. 내 영혼이 내가 원하는 몸으로 가느냐, 아니면 내 몸처럼 보이는 쪽으로 가느냐. 저는 그렇게 보였던 겁니다. 이해하셨죠?
이 육도 윤회에 대해서 일전에 정념. 과연 내가 이것을 자유로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느냐. 이게 관건입니다.
두 번째 테마로 윤회에 대한 찬반 이론이 있습니다. 윤회에 대해 옳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이 계시고, 윤회. 그것은 실체가 없는거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도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덕 훈련원에서 토론을 해봤습니다. 반절은 믿고, 반절은 안믿고 50:50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은 윤회를 믿으십니까? 아니면, 믿음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지 사실은 아닐 거야 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답이 있다고 말씀 드릴 수는 없는데. 먼저, 반대하는 사람의 논리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은 무량 방편 법문이기 때문에, 이것은 방편설이다.
그래서 선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권선징악적인 법문이다. 공감하십니까? 그럴 듯 하죠?
이런 부분이 있고, 그래서 내가 지은 업은 내가 다시 받으니깐. 쉽게 말해 살아 생전에 좋은 복을 많이 지어라, 수행정진해라 하는 차원이다.
두 번째 있어서는 지금 이게 진리라고 한다면, 불교 뿐 아니라 여타 종교도 이 육도 윤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느냐.
이런 주장을 합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불교만 윤회를 이야기하는데 내가 이걸 왜 믿어야 하느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방편이라는 말을 보면, 그때그때의 경우(境遇)에 따라 일을 쉽고 편하게 치를 수 있는 수단(手段)과 방법(方法).
그리고 불보살(佛菩薩)이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기 위(爲)해 쓰는 묘한 수단(手段). 사전적 정의는 이러합니다.
방편이라는 부분이 좋은 방편이 있을 수도 있고, 또 권모술수의 부분에서도 방편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습니다.
이런 반대 부분이 있고, 또 한 가지 반대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윤회 부분에 반대하는 부분은, 윤회를 한다고 하면 어떤 실체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실체가 없는데 뭐가 윤회를 하느냐. 윤회의 실체가 있다고 하면 믿겠다. 이 주장입니다.
또 그럴싸하죠? 안보이니까.
그러면, 찬성하는 입장 부분에서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방편설이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방편이라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방편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원불교 초창기에 정산종사님이 종법마사님으로 계시면서 양산 김중묵 종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인과의 세계를 연구하고 가셨죠.
제가 마령교당 출신인데, 살아생전에 그 분이 그 부근에 자주 오셨어요.
당시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그때 관심이 많아서 엉뚱한 질문들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영생과 인과가 있다고 하면 저 출가하겠습니다. 그런데 영생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인과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질문을 드리니 웃기만 하시고 말씀을 안하셨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정산종사님께 양산 종사님이 혼나셨더라고요. 양산 종사님께서 20대에 사회철학, 일반철학.
그때 당시 나름 접할 수 있는 모든 신학문을 접하고 나서 보니 인과 없는거구나! 쉽게 말해 권설징악적인 부분을 생각한거죠.
그러니 정산종사님께서 조실로 조용히 오너라 하시고 불호령을 내리셨다 합니다.
“네가 부정을 하려면, 네 선 하루에 일심으로 할 때가 몇 분 정도 되느냐.”
“5분 정도 됩니다.”
“그래, 그러면 그 5분을 1시간 동안 유지되도록 해봐라. 그 1시간이 그야말로 100일동안 여여하게 계속 됐을 때 그때 가서 네가 인과를 부정하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는다.”
그 때부터 선에 관심을 갖고, 젊은 혈기가 있으시니 선을 정진하셔서 나중에 인과의 세계에 대해서 입지를 찾으시는데요.
그만큼 이것은 ‘있다’라고 정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체험의 세계이기 때문에...
또 한 가지는 불교에만 왜 윤회가 있느냐.
우빠니샤드 시대에도 있었다. 그 좋은 사상이 길이 유전되지 않느냐.
또 한 가지, 서양 쪽에 그리스 철학자 중에 저도 원문을 보지 못해 뭐라 이름을 지칭하기 어려우나,
한 그리스 철학자가 이 윤회사상을 가지고, 한 수행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철학사 중에서 그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동양에만 윤회 사상이 있는 게 아니라 서양에도 수행 공동체에서 윤회 부분이 언급이 되었다.
그래서 거기에 있어, 어떤 내용이 있었냐면 이 혼은 불멸이라서 육체가 죽으면 동물 속으로 들어간다 하고, 인체에 머무는 혼의 순환은 300년이 걸린다고 하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동서양이 고대에는 이런 부분들이 일반화 되었는데, 왜 이런 것이 사장이 되었을까. 의구심이 들고요.
그 다음, 오해의 소지가 있고 논란의 여지가 좀 있는데, 옛날 성경 부분에 중세 이전에 이 윤회라는 부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게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사상적인 부분들이 전쟁통에 편집될 수 있었겠다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찬성하는 입장에서 반대 하는 부분은,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윤회하는데 윤회하는 실체가 있어야 윤회하지 않느냐. 그런데 이것을 유와 윤회. 있는 실체가 윤회를 하는 것과, 실체는 없다는 무와 윤회다. 나가 없이 윤회한다.
윤회는 인정은 하는데 실체가 있다 없다 유와 무가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 몇 백년 째입니다. 뭐라 규명을 할 수 없어요.
논쟁 상태에 있는 부분인데요.
그럼 원불교적인 입장은 어떠한가.
대종사님께서 교리 전체가 진리적이고 사실적인 것에 바탕이 돼서 교리가 형성이 됐다.
대종경 서품에도 보면,「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인과보응과 불생불멸이 하나의 사이클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우리 개교의 동기를 보면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라고 천명이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봤을 때 대종사님의 입장에서는 이 윤회 부분은 사실이고, 또 그런 단어를 썼고, 천도법문이나 일원상 서원문에 가장 중요하다는 교리에 모든 것을 다 썼기 때문에.
대종사님은 쉽게 말해 자상하시고 친절하십니다. 방편이라는 용어도 쓰십니다.
우리 법위등급 중에서도 전서 91쪽 한번 보겠습니다.
대각여래위 부분 읽어보겠습니다.
「대각여래위는 출가위 승급 조항을 일일이 실행하고 예비 대각여래위에 승급하여, 대자 대비로 일체 생령을 제도하되 만능(萬能)이 겸비하며, 천만 방편으로 수기 응변(隨機應變)하여 교화하되 대의에 어긋남이 없고 교화 받는 사람으로서 그 방편을 알지 못하게 하며,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의 위니라.」
쉽게 말해,
천만 방편으로 수기 응변하여 그 방면을 알지 못하게 한다.
이 성인들의 처사는 방편이라는 것은 있다. 그러나 제도 받는 사람으로서 감히 알지 못하게 한다. 이것을 유추해 보면, 모든 종교에서 방편설을 이야기하는 것도 사실일 수 있고, 안쓰는 것도 사실일 수 있다. 교화 방편상 시절, 인연에 따라 쓸 수도 안 쓸 수도 있다.
모든 성인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 주시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종경 보면, 인과품과 천도품이 윤회와 연관된 부분입니다.
우리가 윤회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원불교 근간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대종사님께서는 실체를 인정하는 윤회일까. 실체가 없는 윤회일까.
일원상 진리자리에 보면 ‘진공묘유’ 라는 것이 나옵니다.
진공, 없잖아요. 그런데 묘유, 있어져요.
윤회를 인정하는데 실체가 없는 진공에 바탕한 윤회일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딱히 표현할 수 없으나 신령스럽게 인과로 윤회한다. 이것이 진공묘유 조화다. 조화로 끊임없이 주고 받는다.
그 다음에 영식만이 존재한다. 욕심이 많으면 그 기운이 그 기운이 탁하여 밑으로 가라앉고, 욕심이 없으면 그 기운이 맑아 솟아오른다. 기운 이야기를 합니다. 서로 존재할 때는 기운으로서 있지 않으냐.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 이렇게 스스로 나름대로 말씀 드려 볼 수 있습니다.
- 육도의 세계 -
윤회부분에서 하나 더 들어가서 육도가 궁금하잖아요.
천도, 인도, 수라, 아귀, 축생, 지옥.
지금 원불교는 한편으로는 오만년 대운, 이런 말씀을 하시고. 과학 만능주의, 과학이 발전한 시대에 원불교가 탄생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과학을 부정할 수 없어요.
원불교 자체가 과학적 검증을 같이 겸해서 나가야 한다 생각합니다.
육도를 이야기 하기 전에 자연 현상을 보면 생존경쟁, 적자생존의 자연 현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동물 다큐의 세계를 보면, 그야말로 강한 자, 적응력이 뛰어난 자가 살아남고, 진화를 거듭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과연 윤회라는 부분의 범주를 어떻게 정했을까.
저는 육도라는 부분은 하나의 범주화. 철학 부분에서 범주 부분이 따로 있는데. 동물군 식물군이 있듯이 그야말로 모든 생명체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분류해 보면 6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이 천상, 인도의 세계, 수라 아귀 축생 지옥의 세계로 구분할 수 있다. 육도는 범주론의 관점에서 구분된 것이다 저는 그렇게 접근하고 싶습니다.
교도님들과 토론해 보니 범주론 부분이 타당할 것 같다.
구분에는 시대적인 반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육도라는 것이 지금 현재 기준으로 해서 과거 어떤 동물이 살았느냐, 인간이 진화하기 전에는 하나의 동물군에 들어갔겠죠. 그 시대적인 반영이 범주론 부분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나중에 7도가 될 수 있다. 시대적인 반영이다.
그러면 먼저 천도의 세계. 육도 중에 하나인, 천상세계인데요.
미켈란젤로가 그린 그림을 보면 최후의 심판에서 천상세계와 인간의 지옥세계를 명확하게 구분해놨습니다. 동양에도 보면 민화가 전해내려 오는데, 어떤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 내려오는데, 어떤 두 노인이 바둑을 둡니다. 너무나 재밌어서 그걸 보고 있다가 시간 가는 줄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다 끝나고 내려가려고 하니 그 노인이 “여보게, 내려가려들랑, 뭔가 아니면 다시 오소.” 그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게 과연 무슨 세계일까. 물론 선을 많이 하신 분은 선의 세계로 풀어갑니다.
저는 천상의 세계로 해석하고 싶더라고요. 천상의 세계는 시간의 개념이 없어요.
그야말로 이 1시간이, 아니 영생의 시간이 일생의 시간이, 천상에서는 1시간 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고요.
먼저 불지품 16장, 276페이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대종사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옛 성인의 말씀에 "사흘의 마음 공부는 천년의 보배요, 백년의 탐낸 물건은 하루 아침 티끌이라" 하였건마는 범부는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므로 자기의 몸만 귀히 알고 마음은 한 번도 찾지 아니하며, 도를 닦는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알므로 마음을 찾기 위하여 몸을 잊나니라. 그런즉, 그대들은 너무나 무상한 모든 유(有)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천상락을 구하기에 힘을 쓰라. 만일 천상락을 오래 오래 계속한다면, 결국은 심신의 자유를 얻어서 삼계의 대권을 잡고 만상의 유무와 육도의 윤회를 초월하여 육신을 받지 아니하고 영단(靈丹)만으로 시방 세계에 주유할 수도 있고, 금수 곤충의 세계에도 임의로 출입하여 도무지 생사 거래에 걸림이 없으며, 어느 세계에 들어가 색신을 받는다 할지라도 거기에 조금도 물들지 아니하고 길이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곧 극락이니라. 그러나, 천상락을 길게 받지 못하는 원인은 형상 있는 낙에 욕심이 발하여 물질에 돌아감이니 비록 천상락을 받는 사람이라도 천상락 받을 일은 하지 않고 낙만 받을 욕심이 한 번 발하면 문득 타락하여 심신의 자유를 잃고 순환하는 대자연의 수레바퀴에 끌려서 또 다시 육도의 윤회를 면하지 못하나니라.」
너무나 자상하게 표현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거 하나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봅니다.
천도품 26장에 보면,
「대종사 야회에 출석하사 등불 아래로 대중을 일일이 내려다 보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기운 뜨는 것이 각각 다르나니 이 가운데에는 수양을 많이 쌓아서 탁한 기운이 다 가라앉고 순전히 맑은 기운만 오르는 사람과, 맑은 기운이 많고 탁한 기운이 적은 사람과,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이 상반되는 사람과, 탁한 기운이 많고 맑은 기운이 적은 사람과, 순전히 탁한 기운만 있는 사람이 있도다. …」
이렇게 기운의 관점으로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천도의 세계는, 누리는 세계다. 내가 벌어 놓은 자산을 가지고, 그냥 쓰고 마는, 누리는 세계. 때에 따라서는 쉬는 세계. 그냥 쉬는 세계. 그런데 이것이 쉬고 누리다 보면, 문득 한 마음 욕실을 발해서 타락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인도세계에 내려올 수 박에 없다. 저는 그렇게 보고 싶습니다.
그 다음, 인도의 세계. 인도의 세계에 있어서는, 고와 낙이 상반된 고락 상반의 세계.
저는 인도 축생 수라를 같은 묶음으로 봤어요. 왜 그러느냐.
인도는 고와 낙인 상반된 세계이고, 축생은 쉽게 말해 축생의 몸을 받은 것이다.
이 축생과 인간의 차이점은 본능으로 사느냐, 아니면 의지가 강하냐. 그걸로 구분하는 겁니다.
사람도 축생의 몸도 못 받은 세계는 수라의 세계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인도의 세계와 축생의 세계의 큰 차이점은 실수로 사느냐, 착각으로 사느냐.
저는 그 차이라 봅니다.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부분이 동했다면, 동물의 세계가 우선으로.
제가 착각해서 주차를 했듯이.
인간 부분에 있어서는 인연의 소치에 따라 몸을 받지만, 그래서 인연 복을 잘 지으라고 하죠.
오덕 훈련원에 강아지 2마리를 키우는데, 그것도 마지못해 키우는 겁니다.
정이 드니 어찌할 수 가 없어요. 어렸을 때는 그냥 강아지인가 했는데, 클수록 꼭 사람과 비슷합니다.
단지, 동물의 몸만 가졌을 뿐이지...
예를 들면, 두 마리가 똑같은 날짜에 왔는데, 작은 녀석이 시샘이 많습니다. 다른 쪽에 예쁘다 하면 난리입니다.
왜 여기만 그러냐. 그래서 짐승의 세계라고 하기에는 얘들도 인연 소치에 의해 진화하게 되면 천도를 받으면 사람 몸을 받을 수 있겠구나.
큰 녀석은 작은 녀석이 먹어야 자기가 먹습니다. 기다릴 줄을 압니다. 희안합니다.
그래서 과연 짐승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를 어떻게 구별할까.
제가 동물의 다큐 세계를 자주 보는데, 예전에 코끼리가 사막에서 이동하는데, 물을 못 먹어 새끼가 쓰러지자 어미와 같은 무리들이 같이 못가요. 그런데 자기도 죽으니 어쩔 수 없이 가는데 눈물을 흘리며 갑니다. 과연 저것을 동물의 세계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인간과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코끼리 몸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갔다가 다시 계절이 바뀌어 오는데, 그 뼈가 있잖아요.
그곳을 떠나지 못합니다. 인간이 묘를 써놓고, 거기에 추모를 하잖아요. 다큐의 세계에서도 그게 의문사항입니다.
그래서 육도세계에서 인간과 축생과 수라세계 부분에서 어떤 큰 차이는 없다고 봐집니다.
그런데 지옥세계는, 쉽게 말해 죄 값을 받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육도 세계 부분도 저는 두 가지로 구분 되더라구요.
하나는 현실 세계 육도. 현실 세계에 있어 천상, 인도, 축생, 수라, 지옥 등 구분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현상의 세계에 있어 하나 더 들어가면 심상육도. 내 마음에 있어 육도.
예를 들면 제가 어떤 상황에서도 내 마음을 긍정적으로 다른 사람을 기원해 주는 마음으로 같이 나갔을 때 천사의 세계. 여유를 가지고 누리는 세계다.
그 다음, 내 고락이 상반되더라도 유념공부를 하는 인도의 세계.
내가 멘붕 된 상태에서 붕 떠있는 수라의 세계. 욕심 있는 악귀의 세계. 고통 받는 지옥의 세계.
천도의 세계에서도 다시 심상육도로 다시 6가지로 나눌 수가 있겠다.
인간의 세계에 있어서도 다시 6가지로 나눌 수가 있겠다.
그래서 쭉 펼쳐보면 36가지로도 할 수 있겠다. 제 나름의 가설입니다.
예를 들면, 심상육도와 현실 육도로 해서 서로가 연관되지 않았을까. 제 나름대로 도표로 그려봤습니다.
여기에서 진급과 강급이 서로 맛물린다. 이 지옥의 세계에서 천상의 세계로 가는 부분. 내 마음을 천상의 세계에서 살았는가 지옥에서 살았는가는 내가 판단하는 몫이예요.
그 다음, 현실 세계에 있어 내가 인간의 몸을 가졌잖아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다음생이 서서히 만들어 지는 거죠.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래서 진급 강급의 주체는 누구다? 나다. 대단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내가 깨어있고, 긍정적으로 미화적으로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릴 수 있다면 나는 가히 이미 천상락을 누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인도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는 자율의지가 강합니다.
내가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나머지는 자율의지가 없어요.
누가 옆에서 해줬을 때 진급이 될 수 있는. 그러니 대종사님께서도 법문에 ‘한번 인간의 몸을 떠나면 어느 생에 제도 받을 것인가.’
저는 ‘어느 생’ 이게 너무나 중요한 단어라 생각합니다. 한번 어긋나 버리면 자율의지가 없기에 스스로 천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인연 중생을 따라서 우리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축원해 주지만, 인연 중생을 기회에 따라 제도해 줄 수 있는 게 교화이겠다.
그래서 오죽하면 ‘일자 출가에 구족이 생천한다(一子出家 九族生天)’ 라는 말이 있을까.
제가 출가해서 보니 아쉬우면 동생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암암리에 듣는 것이 부처님 법문입니다.
그러면서 한 마음이 생하게 되고, 진급을 하겠다.
그래서 인도와 천도 부분은 아까 이야기 했듯이 수심결. 자율의지로 닦을 수 있으나, 지옥 축생 아귀 수라. 이 부분에서는 기도와 천도를 떠나서는 진급되기는 대단히 어렵다.
사람이 한번 착심을 이 터에 탁 주하면, 3천년을 떠나지 않는다. 그 집에 수호신이 되기도 하고, 거기에 바다가 되면 물고기 귀신이 돼서 지킬 것이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한번 욕심이 발하면 거기를 떠나지 못한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가.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그래서 자율의지가 있을 때, 법회를 보는 것도 사실 내 마음을 챙기는 동기 부여가 됩니다.
진급의 길로 나아가려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면, 이 육도 윤회의 세계에 있어서 벗어나는 그게 해탈이라고 봅니다.
해탈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인식의 전환입니다.
그 부분은 나중에 어느 계기가 되면 하겠습니다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오덕 훈련원에 80되신 어르신이 와서 작업을 하십니다.
그 분을 보면 정신적으로 얼굴도 해맑으시고, 기도하시고, 무한한 감사생활.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그 분이 지하철에서 서서가는 것을 보면 그 배려심. 참 좋습니다.
그리고 정신적, 육신적으로 그렇게 고단하셔도 새벽 12시, 1시 2시에도 내가 일어나고자 하면 알람이 아니라 그냥 일어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이 마음먹은 것도 다 이루고 있으시더라고요. 그 분이 깨달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상황 속에서 정신, 물질 부분에 있어서... 법정 투쟁도 본인 스스로 다 싸워서 이길 정도로 지혜도 출중하신 분인데. 그런 거 보면 해탈의 심정으로, 이 사회에 가장 진리가 뭔가를 알고 사실에 바탕 해 살아가는 분입니다. 오죽하면 이 분은 왜 사람들이 세금을 안낼까. 정당하게 내면 될텐데. 이 세상에 진리에 입각한 삶을 살아야 내가 떳떳하고 당당하지 않느냐.
마지막에 우리가 육도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은 궁극에는 무아봉공. 이것이 해탈의 심경이다.
오늘 육도 윤회를 가지고 더 많은 부분이 있지만, 간단히 앞부분만 이야기 드렸습니다.
혹시 궁금한 사항 있으신가요? 많으시죠?
제가 좀 더 연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프로그램 계발되면 함께 육도 윤회에 관해 공부해 봅시다.
다시 새기고 연마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마 원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윤회에 대한 화두로 씨름해보지 않았던 사람 없었을겁니다.
곧바로 진리의 근원을 건드리는, 신심과 공부심의 단초를 깊이 파들어가는 문제가 아닐까해서
언제 한번 맘먹어보자 했더니...잘 찾아주셨습니다~!
이번에 천숙이도 그 연구를 시작해볼까요? ㅎ
사실 교전에서 언급해주신 말씀은 다 깨치신 말씀이니~
애써 부정해봤자 깨지기밖에 더 하겠나하고 일단 믿고 들어가자 했지만,
옆구리 어디선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반항심은...ㅋㅋㅋ
그렇게만 치부해서는 안된다하는걸 눈치채고는 있는 것이지요.
하여간 법문에서 언급하신 책들과 교전 귀절은 잊지않고 찾아보려고 합니다.
박은전 교우님 타이핑 더욱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