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38장 1절
그 무렵에 유다는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히라라고 하는 아둘람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서, 그와 함께 살았다. <창세기 38장 1절, 새번역>
창세기 37장을 읽은 분들은 어서 빨리 요셉의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으실 것입니다. 바로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간 요셉에게 어떤 일이 생기게 될 지 너무도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8장을 통해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게 됩니다. '아니, 유다가 왜 여기서 나와?' 갑자기 요셉이 아닌 야곱의 네번째 아들 유다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실로 쌩뚱 맞은 전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유다의 멋진 신앙 이야기가 아니라, 도대체 이게 왜 성경에 기록되었을까 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하니 더욱 분위기가 싸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8장에서 갑자기 유다가 등장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시대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요셉의 시대, 그리고 우리의 시대를 열기 위해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이 있기에 이 38장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산책을 통하여 그 이유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유다는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긴 장본인이었습니다. 유다의 계획대로 야곱의 아들들이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까지 하게 됩니다. 동생을 팔아버리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요셉이 죽고 난 후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유다는 더욱 더 화가 났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요셉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확인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아버지의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집을 떠나게 됩니다. 독립이 아닙니다. 가출입니다.
그 무렵에 유다는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히라라고 하는 아둘람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서, 그와 함께 살았다. <창세기 38장 1절, 새번역>
그리고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들을 낳게 됩니다. 첫째 아들은 에르(엘), 둘째 아들은 오난, 그리고 셋째 아들은 셀라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첫째 아들 에르를 결혼시켰는데, '다말'이라는 며느리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제 알콩달콩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 줄 알았던 장자 에르가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유다의 맏아들 에르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므로, 주님께서 그를 죽게 하셨다. <창세기 38장 7절, 새번역>
잘 아시다시피 '에르(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입니다. 그래도 유다는 하나님을 잊지는 않기 위하여 장자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에르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나쁜 일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죽이셔야 할만큼 큰 악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장자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째 아들 오난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기록합니다.
유다가 오난에게 말하였다. "너는 형수와 결혼해서, 시동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해라. 너는 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 <창세기 38장 8절, 새번역>
그렇습니다. 유다의 목적은 오로지 대를 이어가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녀를 많이 낳아서 부족을 이루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자가 죽은 상황에서도 형이 죽었으니, 동생이 대를 이어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오난에게 말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오난은 어차피 아들이 태어나도 자신의 아들이 안 되는 것을 알고는 아버지의 말에 거역합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처럼, 아버지 야곱의 말을 듣지 않았던 유다처럼, 유다의 아들 역시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난은 아들을 낳아도 그가 자기 아들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형수와 동침할 때마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지 않으려고, 정액을 땅바닥에 쏟아 버리곤 하였다. <창세기 38장 9절, 새번역>
이렇게 행동할거면 차라리 오난은 형수와 동침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동침은 했지만 아이는 낳으려고 하지 않았던 오난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난도 죽게 하셨습니다. 졸지에 유다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아들들의 죽음이 아들들의 악 때문일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며느리 다말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셋째 아들 셀라를 주는 것을 망설이게 됩니다.
유다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 셀라가 다 클 때까지, 너는 네 친정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과부로 살고 있거라." 유다는 셀라를 다말에게 주었다가는, 셀라도 제 형들처럼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창세기 38장 11절, 새번역>
시아버지의 이 말을 믿고 다말은 자신의 친정으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처음부터 셋째 아들을 다말에게 줄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 유다의 아내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곡을 끝내자마자 친구 히라와 함께 자기 양들의 털을 깎으러 딤나로 가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 곡을 끝내자마자, 아직 제대로 정리도 안 된 상황이었을텐데 딤나로 가게 된 것일까요?
이 소식을 친정 집에서 과부로 살면서 시아버지의 부름만을 기다리고 있던 다말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너울을 써서 얼굴을 가리고, 딤나로 가는 길에 있는 에나임 어귀에서 시아버지를 기다리게 됩니다. 유다의 셋째 아들 셀라가 다 컸음에도 불구하고, 유다가 자기와 셀라를 짝지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말은 이런 행동을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롯과 두 딸의 이야기만큼이나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또 등장하게 됩니다. 때마침 에나임 어귀를 지나가던 시아버지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말이 창녀인줄 알고 동침하게 됩니다. 아내를 위한 곡을 마치자마자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가 있는지 정말 유다에게 크게 실망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다말은 셀라를 통해서 씨를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시아버지를 통해 가문을 이어갈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참 생각해보면 다말은 대단한 여인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이 성경에도 등장하는가 봅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마태복음 1장 3절, 새번역>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태어난 베레스를 통하여, 다윗이 태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오늘의 이야기로 끝내지 않으신 것입니다.
다음은 베레스의 계보이다.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룻기 4장 18~22절, 새번역>
시아버지를 감쪽같이 속이고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 다말은 곧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아버지의 도장과 허리끈과 가지고 다니시는 지팡이를 바라보면서 유다를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에나임 어귀에는 창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유다는 찜찜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찜찜한 마음에 더해 유다를 화나게 하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며느리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석 달쯤 지난 다음에, 유다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이 창녀짓을 하여 임신까지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유다가 명하였다. "그를 끌어내서 화형에 처하여라!" 그는 끌려 나오면서, 시아버지에게 전갈을 보냈다. "저는 이 물건 임자의 아이를 배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다말은 또 말을 계속하였다. "잘 살펴보십시오. 이 도장과 이 허리끈과 이 지팡이가 누구의 것입니까!" <창세기 38장 24~25절, 새번역>
다말을 임신시킨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유다는 밀려드는 후회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차라리 하나 뿐이었던 셀라를 다말과 결혼을 시켰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말이 자신의 가문을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노력한 며느리였는데, 오히려 모든 책임이 다말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며느리 다말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한 유다는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자신, 즉 유다였고, 유다의 아들들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기에 야곱은 이런 상황에서 다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유다는 그 물건들을 알아보았다.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나의 아들 셀라를 그 아이와 결혼시켰어야 했는데" 하고 말하였다. 유다는 그 뒤로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창세기 38장 26절, 새번역>
유다는 다말의 임신과 출산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다말과 동침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번 일을 통하여 유다도 많은 것을 깨닫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유다는 이 일을 계기로 떠나왔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창세기 산책>28. 쌩뚱맞죠? 유다가 왜 여기서 나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죄에 대한 인식!(창세기 38장 두번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