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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일람>
*001 가 (賈) -소주 가씨 *002 간 (簡) -가평 간씨 *003 갈 (葛) -남양 갈씨 *004 감 (甘) -회산 감씨
*006 강 (康) -곡산 강씨, 순천 강씨, 신천 강씨, 영강 강씨, 용인 강씨, 재령 강씨, 진주 강씨, 충원 강씨
*007 강 (强) -충주 강씨, *008 강 (彊) -진주 강씨 *009 강전(岡田)
*010 개 (介) -여주 개씨, *011 견 (堅) -천녕 견씨 *012 견(甄) -황간 견씨 *013 경 (慶) -청주 경씨
*014 경 (景) -태인 경씨, 해주 경씨 *015 계 (桂) -수안 계씨
*016 고 (高) -개성 고씨, 고흥 고씨, 안동 고씨, 용담 고씨, 장흥 고씨, 전주 고씨, 제주 고씨, 횡성 고씨
*017 곡 (曲) -면천 곡씨, 용궁 곡씨 *018 공 (公) -김포 공씨 *019 공 (孔) -곡부 공씨
*020 곽 (郭) -선산 곽씨, 의령 곽씨, 청주 곽씨, 혜미 곽씨, 현풍 곽씨 *021 구 (丘) -평해 구씨
*022 구 (具) -능성 구씨, 창원 구씨 *023 구 (邱) -은진 구씨 *024 국 (國) *025 국 (菊)
*026 국 (鞠) -담양 국씨 *027 군 (君) *028 궁 (弓) -토산 궁씨 *029 궉 (鴌)
*030 권 (權) -안동 권씨, 예천 권씨 *031 근 (斤) -청주 근씨 *032 금 (琴) -봉화 금씨
*033 기 (奇) -행주 기씨 *034 기 (箕) *135 길 (吉) -해평 길씨 (선산 길씨)
*036 김 (金) -강릉 김씨, 강서 김씨, 강진 김씨, 강화 김씨, 개성 김씨, 경산 김씨, 경주 김씨, 고령 김씨,
고성 김씨, 공주 김씨, 광산 김씨, 광양 김씨, 광주 김씨, 교하 김씨, 금산 김씨, 금산 김씨,
금화 김씨, 김녕 김씨, 김제 김씨, 김해 김씨, 나주 김씨, 낙안 김씨, 남양 김씨, 남평 김씨,
당악 김씨, 당진 김씨, 대구 김씨, 덕수 김씨, 도강 김씨, 도주 김씨
동래 김씨, 명주 김씨, 무장 김씨, 문화 김씨, 밀양 김씨, 배천 김씨, 보령 김씨, 보은 김씨,
부안 김씨, 부평 김씨, 분성 김씨, 사천 김씨, 삼척 김씨, 상산 김씨, 상주 김씨, 서흥 김씨,
선산 김씨, 선성 김씨, 설성 김씨, 수안 김씨, 수원 김씨, 순천 김씨, 시흥 김씨, 신주 김씨,
신천 김씨, 아산 김씨, 안동 김씨, 안로 김씨, 안산 김씨, 안성 김씨, 안악 김씨, 양근 김씨,
양산 김씨, 양주 김씨, 언양 김씨, 여수 김씨, 연기 김씨, 연안 김씨, 염주 김씨, 영광 김씨,
영덕 김씨, 영동 김씨, 영암 김씨, 영양 김씨, 영월 김씨, 영천 김씨, 영혜 김씨, 예안 김씨,
예천 김씨, 오성 김씨, 오천 김씨, 옥천 김씨, 용궁 김씨, 용담 김씨, 우록 김씨, 우봉 김씨,
울산 김씨, 웅천 김씨, 원주 김씨, 월성 김씨, 은율 김씨, 의성 김씨, 장연 김씨, 전의 김씨,
전주 김씨, 정산 김씨, 정주 김씨, 진도 김씨, 진례 김씨, 진잠 김씨, 진주 김씨, 진천 김씨,
창원 김씨, 창평 김씨, 철산 김씨, 청도 김씨, 청송 김씨, 청주 김씨, 청풍 김씨, 초계 김씨,
춘양 김씨, 충주 김씨, 칠원 김씨, 태원 김씨, 토산 김씨, 통천 김씨, 파평 김씨, 평산 김씨,
풍기 김씨, 풍산 김씨, 풍천 김씨, 한남 김씨, 함창 김씨, 해남 김씨, 해양 김씨, 해주 김씨,
해평 김씨, 해풍 김씨, 홍주 김씨, 화개 김씨, 화평 김씨, 황주 김씨, 흠양 김씨, 희천 김씨
*037 나(羅/라) -군위 나씨, 금성 나씨, 나주 나씨, 능성 나씨, 수성 나씨, 안정 나씨
*038 남(南) -고성 남씨, 영양(英陽) 남씨, 의령 남씨, 영양(穎陽) 남씨
*039 남궁(南宮) -함열 남궁씨 *040 낭(浪/랑) *041 내(乃) -개성 내씨
*042 노(盧/로) -곡산 노씨, 광산 노씨, 광주 노씨, 교하 노씨, 나주 노씨, 만경 노씨, 밀양 노씨, 신창 노씨,
안강 노씨, 안동 노씨, 의주 노씨, 장연 노씨, 파주 노씨, 풍천 노씨, 해주 노씨
*043 노(魯/로) -강화 노씨, 밀양 노씨, 함평노씨*044 노(路/로) -개성 노씨 *045 뇌(雷/뢰) -교동 뇌씨
*046 단 (段) -연안 단씨 *047 당 (唐) -밀양 당씨 *048 대 (大) -밀양 대씨 *049 도 (道) -고성 도씨
*050 도 (都) -성주 도씨, 팔거 도씨 *051 도 (陶) -풍양 도씨 *052 독고 (獨孤) -남원 독고씨
*053 돈 (頓) -목천 돈씨 *054 돈 (敦) -청주돈씨 *055 동 (董) -광천 동씨
*056 동방 (東方) -진주 동방씨 *057 두 (杜) -두릉 두씨, 만경 두씨
*059 마(麻) -영평 마씨 *060 마(馬) -목천 마씨, 장흥 마씨 *061만 (萬) *062 망절(網切) -도간 망절씨
*063 매 (梅) -충주 매씨 *064 맹 (孟) -신창 맹씨 *065 명 (明) -서촉 명씨 *066 모 (毛)
*067 모 (牟) -함평 모씨 *068 목 (睦) -사천 목씨 *069 묵 (墨) -광령 묵씨, 요동 묵씨
*070 문 (門) -송림 문씨, 안동 문씨, 인천 문씨
*071 문 (文) -감천 문씨, 감문 문씨, 개령 문씨, 남평 문씨, 명주 문씨, 안동 문씨, 장영 문씨, 정선 문씨,
창원 문씨, 취성 문씨 *072 미 (米) -재령 미씨 *073 민 (閔) -여흥 민씨
*074 박 (朴) -강릉 박씨, 개성 박씨, 경주 박씨, 고령 박씨, 고성 박씨, 공주 박씨, 광주 박씨, 구산 박씨,
군위 박씨, 나주 박씨, 노성 박씨, 면천 박씨, 무안 박씨, 문의 박씨, 밀양 박씨, 반남 박씨,
봉산 박씨, 비안 박씨, 사천 박씨, 삼천 박씨, 상산 박씨, 상주 박씨, 선산 박씨, 성주 박씨,
순창 박씨, 순천 박씨, 여주 박씨, 영암 박씨, 영해 박씨, 운봉 박씨, 울산 박씨, 웅진 박씨,
원산 박씨, 월성 박씨, 은풍 박씨, 음성 박씨, 음죽 박씨, 의창 박씨, 의흥 박씨, 인제 박씨,
전주 박씨, 정선 박씨, 죽산 박씨, 진원 박씨, 창원 박씨, 춘천 박씨, 충주 박씨, 태안 박씨,
태인 박씨, 평산 박씨, 평주 박씨, 평택 박씨, 함안 박씨, 함양 박씨
*075 반 (班) -개성 반씨, 고성 반씨, 평해 반씨 *076 반 (潘) -거제 반씨, 광산 반씨
*077 방 (方) -상주 방씨, 온양 방씨 *078 방 (房) -남양 방씨, 용성 방씨 *079 방 (邦)
*081 배 (裵) -경산 배씨, 경주 배씨, 곤산 배씨, 김해 배씨, 남해 배씨, 달성 배씨, 대구 배씨, 분성 배씨,
*082 백 (白) -남포 백씨, 대흥 백씨, 수성 백씨, 수원 백씨, 양산 백씨, 임천 백씨, 직산 백씨, 태인 백씨,
해미 백씨 *083 범 (凡) *084 범 (范) -금성 범씨
*085 변 (卞) -개성 변씨, 밀양 변씨, 초계 변씨, 팔계 변씨
*086 변 (邊) -원주 변씨, 장연 변씨, 황주 변씨
*087 복 (卜) -면천 복씨 *088 봉 (奉) -하음 봉씨 *089 봉 (鳳) -경주 봉씨 *090 부 (夫) -제주 부씨
*091 빈 (賓) -달성 빈씨 *092 빙 (氷) -경주 빙씨
*093 사 (史) -청주 사씨 *094 사공 (司空) -효령 사공씨 *095 상 (尙) -목천 상씨 *096 서 (西)
*097 서 (徐) -남양 서씨, 남평 서씨, 달성 서씨, 당성 서씨, 대구 서씨, 부여 서씨, 연산 서씨, 이천 서씨,
*098 서문 (西門) -안음 서문씨*099 석 (昔) -월성 석씨*100 석 (石) -충주 석씨, 해주 석씨, 화원 석씨
*101 선 (宣) -보성 선씨 *102 선우 (鮮于) -태원 선우씨 *103 설 (薛) -경주 설씨, 순창 설씨
*104 설 (卨) -경주 설씨 *105 섭 (葉) -경주 섭씨 *106 성 (成) -창녕 성씨, 강릉성씨
*107 소 (蘇) -진주 소씨 *108 소 (邵) -평산 소씨 *109 소봉 (小峰) -공주소봉씨
*110 손 (孫) -경주 손씨, 밀양 손씨, 부평 손씨, 수주 손씨, 안동 손씨, 월성 손씨, 일직 손씨, 청주 손씨,
*111 송 (宋) -김해 송씨, 남양 송씨, 덕산 송씨, 문경 송씨, 서산 송씨, 신평 송씨, 야성 송씨, 양주 송씨,
여산 송씨, 연안 송씨, 영주 송씨, 용성 송씨, 은진 송씨, 진천 송씨, 청주 송씨, 합천 송씨,
홍산 송씨, 홍주 송씨 *112 송 (松) -화순 송씨 *113 수 (水) -김해 수씨, 운제 수씨
*114 순 (荀) -홍산 순씨 *115 순 (舜) -임천 순씨, 파주 순씨 *116 승 (昇)
*117 승 (承) -광산 승씨, 연일 승씨 *118 시 (柴) -금화 시씨, 능향 시씨, 태인 시씨
*119 시 (施) -절강 시씨 *120 신 (愼) -거창 신씨
*121 신 (申) -고령 신씨, 아주 신씨, 영월 신씨, 영천 신씨, 영해 신씨, 은풍 신씨, 죽산 신씨, 천안 신씨,
*122 신 (辛) -영산 신씨, 영월 신씨, 창녕 신씨*123 심 (沈) -부유 심씨, 삼척 심씨, 청송 심씨, 풍산 심씨
*125 안 (安) -공산 안씨, 광주 안씨, 동주 안씨, 순흥 안씨, 안산 안씨, 안성 안씨, 죽산 안씨, 지곡 안씨,
*126 야 (夜) -원평 야씨, 개성 야씨, 석천 야씨, 봉성 야씨
*127 양 (梁/량) -나주 양씨, 남원 양씨, 양주 양씨, 임천 양씨, 제주 양씨, 충주 양씨
*128 양 (楊) -남원 양씨, 밀양 양씨, 중화 양씨, 청주 양씨, 통주 양씨
*129 양 (樑/량) -남양 양씨 *130 어 (魚) -충주 어씨, 함종 어씨, 함양 어씨
*131 엄 (嚴) -경원 엄씨, 영월 엄씨 *132 여 (余) -의령 여씨
*133 여 (呂/려) -곡산 여씨, 성주 여씨, 함양 여씨 *134 연 (連/련) -전주 연씨
*135 연 (燕) -정평 연씨 *136 연 (延) -곡산 연씨 *137 염 (閻)
*138 염 (廉/렴) -봉성 염씨, 서원 염씨, 파주 염씨, 용담 염씨 *139 영 (永) -평해 영씨
*140 예 (芮) -의흥 예씨 *141 오 (伍) -부흥 오씨
*142 오 (吳) -고창 오씨, 군위 오씨, 금성 오씨, 나주 오씨, 낙안 오씨, 동복 오씨, 두원 오씨, 보성 오씨,
연일 오씨, 울산 오씨, 장흥 오씨, 전주 오씨, 평해 오씨, 함양 오씨, 함평 오씨, 해주 오씨,
*143 옥 (玉) -의령 옥씨 *144 온 (溫) -봉성 온씨 *145 옹 (邕) -순창 옹씨, 옥천 옹씨
*146 옹 (雍) -파평 옹씨 *147 왕 (王) -강릉 왕씨, 개성 왕씨, 안동 왕씨, 제남 왕씨, 청주 왕씨, 해주 왕씨
*148 요 (姚) -수원 요씨, 휘주 요씨 *149 용 (龍/룡) -홍천 용씨 *150 우 (于) -목천 우씨
*151 우 (禹) -단양 우씨 *152 운 (雲) *153 원 (元) -원주 원씨 *154 원 (袁) -비안 원씨
*155 위 (韋) -강화 위씨 *156 위 (魏) -장흥 위씨
*157 유 (柳/류) -경주 유씨, 고흥 유씨, 문화 유씨, 서산 유씨, 선산 유씨, 영광 유씨, 유주 유씨, 정주 유씨,
전주 유씨, 진주 유씨, 풍산 유씨, 하회 유씨, 흥양 유씨
*158 유 (劉/류) -강릉 유씨, 강화 유씨, 거창 유씨, 배천 유씨, 중원 유씨, 충주 유씨, 한양 유씨
*159 유 (兪) -강진 유씨, 고령 유씨, 금산 유씨, 기계 유씨, 무안 유씨, 인동 유씨, 창원 유씨, 천녕 유씨
*160 유 (庾) -무송 유씨 *161 육 (陸/륙) -옥천 육씨
*162 윤 (尹) -기계 윤씨, 나주 윤씨, 남원 윤씨, 무송 윤씨, 서흥 윤씨, 양주 윤씨, 영천 윤씨, 예천 윤씨,
옥과 윤씨, 칠원 윤씨, 파평 윤씨, 포주 윤씨, 함안 윤씨, 해남 윤씨, 해주 윤씨, 해평 윤씨
*163 은 (殷) -행주 은씨, 고부 은씨, 달성 은씨, 대구 은씨, 우일 은씨
*164 음 (陰) -죽산 음씨 *165 이 (伊) -은천 이씨, 태원 이씨
*166 이 (異) -남원 이씨, 동성 이씨, 밀양 이씨, 청양 이씨
*167 이 (李/리) -가평 이씨(加平李氏), 가평 이씨(嘉平李氏), 강릉 이씨, 강양 이씨, 강진 이씨, 강화 이씨,
강흥 이씨, 개성 이씨, 견주 이씨, 결성 이씨, 경산 이씨, 경원 이씨, 경주 이씨, 고령 이씨,
고부 이씨, 고성 이씨, 공주 이씨, 광산 이씨, 광양 이씨, 광주 이씨, 금구 이씨, 금마 이씨,
금산 이씨, 길주 이씨, 김포 이씨, 나주 이씨, 남평 이씨, 농서 이씨, 단성 이씨, 단양 이씨,
담양 이씨, 대흥 이씨, 덕산 이씨, 덕수 이씨, 덕영 이씨, 덕은 이씨, 도안 이씨, 독일 이씨,
문의 이씨, 벽진 이씨, 보령 이씨, 봉산 이씨, 부안 이씨, 부여 이씨, 부평 이씨, 사천 이씨,
상산 이씨, 서림 이씨, 서산 이씨, 서천 이씨, 설성 이씨, 성산 이씨, 성주 이씨, 수안 이씨,
수원 이씨, 수주 이씨, 순천 이씨, 신평 이씨, 아산 이씨, 안산 이씨, 안성 이씨, 안악 이씨,
양산 이씨, 양성 이씨, 양주 이씨, 여주 이씨, 여흥 이씨, 연안 이씨, 염주 이씨, 영성 이씨,
영월 이씨, 영주 이씨(永州李氏), 영주 이씨(瀛州李氏), 영천 이씨, 영해 이씨, 예안 이씨,
온양 이씨, 완산 이씨, 용구 이씨, 용궁 이씨, 용인 이씨, 우계 이씨, 우봉 이씨, 울산 이씨,
원율 이씨, 원주 이씨, 월성 이씨, 음죽 이씨, 익산 이씨, 인제 이씨, 인천 이씨, 임강 이씨,
장기 이씨, 장수 이씨, 장천 이씨, 재령 이씨, 적성 이씨, 전의 이씨, 전주 이씨, 정선 이씨,
정읍 이씨, 지평 이씨, 진보 이씨, 진성 이씨, 진안 이씨, 진위 이씨, 진주 이씨, 진천 이씨,
차성 이씨, 창녕 이씨, 천안 이씨, 철성 이씨, 청송 이씨, 청안 이씨, 청양 이씨, 청주 이씨,
청해 이씨, 초산 이씨, 충주 이씨, 태안 이씨, 태원 이씨, 통진 이씨, 평산 이씨, 평양 이씨,
평창 이씨, 하빈 이씨, 하음 이씨, 학성 이씨, 한산 이씨, 한양 이씨, 함안 이씨, 합평 이씨,
합천 이씨, 해남 이씨, 해주 이씨, 홍성 이씨, 홍주 이씨, 화산 이씨, 회덕 이씨, 흥양 이씨
*168 임 (任) -장흥 임씨, 풍천 임씨 *169 임 (林/림) -나주 임씨, 예천 임씨, 부안 임씨, 평택 임씨
*170 자 (慈) -요양 자씨 *171 장 (莊) -금천 장씨, 장연 장씨 *172 장 (章) -거창 장씨
*173 장 (張) -결성 장씨, 구례 장씨, 나주 장씨, 단양 장씨, 대원 장씨, 덕수 장씨, 목천 장씨, 무안 장씨,
부안 장씨, 순천 장씨, 안동 장씨, 예산 장씨, 옥구 장씨, 예산 장씨, 울진 장씨, 인동 장씨,
장연 장씨, 전주 장씨, 지례 장씨, 진안 장씨, 진천 장씨, 청송 장씨, 평양 장씨, 풍덕 장씨,
해주 장씨, 홍천 장씨, 흥덕 장씨, 흥양 장씨, 흥해 장씨
*175 전 (全) -감천 전씨, 경산 전씨, 경주 전씨, 기장 전씨, 나주 전씨, 부여 전씨, 성주 전씨, 옥산 전씨,
옥천 전씨, 완산 전씨, 용궁 전씨, 정선 전씨, 죽산 전씨, 천안 전씨, 팔거 전씨, 평강 전씨,
*176 전 (田) -개성 전씨, 남양 전씨, 남원 전씨, 담양 전씨, 연안 전씨, 영광 전씨, 우봉 전씨, 태산 전씨,
평택 전씨 *177 전 (錢) -문경 전씨 *178 점 (占) -한산 점씨
*179 정 (丁) -금선 정씨, 나주 정씨, 압해 정씨, 영광 정씨, 창녕 정씨, 창원 정씨
*181 정 (鄭) -경주 정씨, 고성 정씨, 광산 정씨, 금성 정씨, 김포 정씨, 나주 정씨, 동래 정씨, 봉화 정씨,
삼가 정씨, 서산 정씨, 야성 정씨, 연일 정씨, 영덕 정씨, 영일 정씨, 온양 정씨, 장기 정씨,
장흥 정씨, 전주 정씨, 진주 정씨, 창녕 정씨, 철산 정씨, 청산 정씨, 청주 정씨, 초계 정씨,
팔계 정씨, 하동 정씨, 함평 정씨, 합천 정씨, 해주 정씨
*182 제 (諸) -칠원 제씨 *183 제갈 (諸葛) -남양 제갈씨
*184 조 (曺) -가흥 조씨, 옥천 조씨, 용담 조씨, 장흥 조씨, 창녕 조씨, 탐진 조씨
*185 조 (趙) -광주 조씨, 김제 조씨, 배천 조씨, 상주 조씨, 순창 조씨, 양주 조씨, 옥과 조씨, 옥천 조씨,
임천 조씨, 직산 조씨, 진보 조씨, 태원 조씨, 평산 조씨, 평양 조씨, 평일 조씨, 풍양 조씨,
*186 종 (宗) *187 종 (鍾) *188 좌 (左) -청주 좌씨
*189 주 (周) -상산 주씨, 상주 주씨 성주 주씨, 안의 주씨, 철원 주씨, 초계 주씨, 명주 주씨
*190 주 (朱) -나주 주씨, 능성 주씨, 신안 주씨, 장수 주씨, 전주 주씨
*191 준 (俊) -청주 준씨 *192 즙 (辻) *193 지 (智) -봉산 지씨, 봉주지씨
*194 지 (池) -청주 지씨, 충주 지씨, 경주 지씨, 단양 지씨, 울진 지씨, 광주 지씨, 홍농 지씨
*195 진 (晉) -기계 진씨, 남원 진씨 *196 진 (眞)
*197 진 (陳) -광동 진씨, 양산 진씨, 여양 진씨, 청주 진씨
*198 진 (秦) -중원 진씨, 진주 진씨, 풍기 진씨
*199 차 (車) -연안 차씨 *200 창 (昌) -강릉창씨 *201창 (倉) *202 채 (采) -여산 채씨
*203 채 (菜) -영양 채씨 *204 채 (蔡) -인천 채씨, 진천 채씨, 평강 채씨
*205 척 (拓) -곡산 척씨 *206 천 (天) *207 천 (千) -금계 천씨, 영양 천씨
*208 초 (肖) -제주 초씨 *209 초 (楚) -파릉 초씨
*210 최 (崔) -간성 최씨, 강릉 최씨, 강화 최씨, 개성 최씨, 경성 최씨, 경주 최씨, 계림 최씨, 고부 최씨,
곡강 최씨, 공주 최씨, 광주 최씨, 계산 최씨, 나주 최씨, 낭주 최씨, 동주 최씨, 등주 최씨,
명주 최씨, 무주 최씨, 부안 최씨, 삭녕 최씨, 상원 최씨, 상주 최씨, 수성 최씨, 수원 최씨,
승령 최씨, 아산 최씨, 양주 최씨, 양천 최씨, 여수 최씨, 연풍 최씨, 영암 최씨, 영주 최씨,
영천 최씨, 영흥 최씨, 완산 최씨, 용강 최씨, 용궁 최씨, 용주 최씨, 우봉 최씨, 원주 최씨,
월성 최씨, 전의 최씨, 전주 최씨, 직산 최씨, 창원 최씨, 천녕 최씨, 청송 최씨, 청주 최씨,
초계 최씨, 충원 최씨, 충주 최씨, 탐진 최씨, 통천 최씨, 하동 최씨, 한남 최씨, 해주 최씨,
*213 탁 (卓) -광산 탁씨 *214 탄 (彈) -진주 탄씨, 해주 탄씨
*215 태 (太) -남원 태씨, 영순 태씨, 협계 태씨
*216 판 (判) -해주 판씨 *217 팽 (彭) -용강 팽씨, 절강 팽씨 *218 편 (片) -금천 편씨, 절강 편씨
*219 평 (平) -충주 평씨 *220 포 (包) -풍덕 포씨 *221 표 (表) -신창 표씨 *222 풍 (馮) -임구 풍씨
*223 피 (皮) -괴산 피씨, 홍천 피씨 *224 필 (弼) -대흥 필씨
*225 하 (夏) -달성 하씨 *226 하 (河) -영도 하씨, 진주 하씨 *227 한 (漢) -충주 한씨
*228 한 (韓) -곡산 한씨, 당주 한씨, 당진 한씨, 대흥 한씨, 삼화 한씨, 서원 한씨, 신평 한씨, 안변 한씨,
*229 함 (咸) -강릉 함씨, 양근 함씨, 항양 함씨 *230 해 (海) -김해 해씨
*231 허 (許) -공암 허씨, 김해 허씨, 양천 허씨, 태인 허씨, 하양 허씨
*232 현 (玄) -남원 현씨, 성주 현씨, 수원 현씨, 순천 현씨, 연주 현씨, 창원 현씨, 천녕 현씨, 팔거 현씨
*233 형 (邢) -진주 형씨 *234 호 (扈) -신평 호씨, 보안 호씨, 전주 호씨
*236 홍 (洪) -남양 홍씨, 당성 홍씨, 부계 홍씨, 염주 홍씨, 청주 홍씨, 풍산 홍씨, 회인 홍씨
*238 황 (黃) -단양 황씨, 덕산 황씨, 상주 황씨, 성주 황씨, 우주 황씨, 의창 황씨, 장수 황씨, 제안 황씨,
창원 황씨, 평해 황씨, 항주 황씨, 황주 황씨, 회덕 황씨
없어져 버린 중요 고을 이름
- 성씨의 관향을 중심으로 -
⑴ 성씨의 본관
본관을 향관(鄕貫)·본적(本籍)·관적(貫籍)·성관(姓貫)·본(本)이라고도 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의 생활은 각기 혈연과 지연으로 서로 얽혀 있게 된다.
성이 바로 부계(父系)의 혈통을 나타내면서 시간선상의 끊임없는 연속성을 보여 준다면, 본관은 어느 한 시대에 정착하였던 조상의 거주지를 나타내므로 공간상의 의미가 크다. 즉, 성은 공동의 조상을 나타내는 부계의 핏줄을 뜻하며, 본관은 지명으로 표기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성립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성이 같고 본관이 같다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부계친족의 친근성이 밀접해지는 것이지, 성과 본관의 어느 한 가지가 다른 경우는 판이한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 성과 본관의 상관관계를 열거하면 동성동본(同姓同本)·동성이본(同姓異本)·이성동본(異姓同本)·이성이본(異姓異本)의 경우가 있다.
본래 성씨와 본관제도는 계급적 우월성과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로서 대두되었기에 왕실·귀족·일반지배계급·양민·천민 순으로 수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성씨와 본관제도는 중국의 것을 수용하였으며, 본격적으로 정착된 시기는 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초기로 생각된다.
⑵ 인동장씨의 본향 인동
인동(仁同)은 인동장씨의 시조인 삼중대광공신호(三重大匡公神號) 위상장군(衛上將軍) 휘금용(諱金用) 부군(府君)이 복거-조기한 고을로 천여 동안 세거해 온 조상의 얼이 심어져 있는 유서깊은 고장으로 인동장씨 관향이다.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여헌선생문집(旅軒先生文集), 동국여지승람, 경상도지리,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의 여지고, 옥산지(玉山志), 여지도서(與地圖書), 경상도읍지, 동국여지비고, 인동읍지, 대동지지, 영남읍지, 조선각도읍지등의 인동현조(仁同縣條)의 연혁에 인동은 고을의 행정구역 명칭이고 별호를 옥산(玉山)이라 하였으니 옥산은 인동고을의 원이 사무를 본 관아가 있었던 인동의 중심지로 지금의 행정구역상으로 구미시 인의동(仁義洞)이다.
인동은 본래 신라 때 사동화현(斯同火縣)이었다. 신라 35대 경덕왕 16년(739)에 수동(壽同)으로 개칭하고 성산군(星山郡)의 속현이 되었다. ※ 일부 고서 자료에는 이동화혜(爾同火兮)로 되어 있다.
사동화현은 우리말 ‘똥’로 유추하고 있다. 여기서의 ‘사’는 그 뒷음절 ‘동’을 된소리로 만드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태조 23년(940) 주군현(州郡縣) 개편시 인동현으로 개칭하고 고려조 현종9년(1018)에 경산부(京山府)(지금의 星州-성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 2년(1390)에 경산부에서 분리되어 인동에 감무를 설치하고 약목현을 영속시켰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태종13년(1413) 전국의 감무를 혁파할 때 인동현으로 개칭하여 현감을 두었다가 선조 34년(1601) 찰리사(察理使) 망우당(忘憂堂) 곽재우사(郭再祐) 장군이 인동의 주악인 천생산(天生山)의 성곽을 수축하고 관방의 요새로 부각됨에 따라 선조 37년(1604) 7월 도원수 한준겸(韓浚謙)의 계청에 의하여 도호부로 승격된 후 조방장(助防將)을 설치하고 부사(府使)가 겸임하였다.
선조 39년(1606) 당시 선산부(善山府)의 관할인 해평현(海平縣)이 인동부에 내속되었다가 선조 41년(1608)에 선산으로 다시 환속되고 조방장(助防將)을 혁파하였다. 인조 22년(1644)에 칠곡부(漆谷府)를 신설하고 고종 32년(1895) 5월에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인동도호부를 인동군으로 개칭하면서 읍내면(邑內面)을 비롯해 9개면을 관할해 왔다.
한일 합방 후인 1914년 3월 인동군을 폐지하여 칠곡군에 편입시키고. 그해 4월 1일 읍내면과 북면을 합쳐서 인동면으로 개편하였다.
1978년 2월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합쳐 구미시로 승격시키고 1983년 2월 종전의 인동의 인의동(仁義洞)과 황상동(黃桑洞), 구평동(九坪洞)을 합쳐서 인동동(仁同洞)으로 하는 등 행정관할구역을 개편하였다. 인동면은 신라 때부터 칠곡군에 병합될 때까지 약 1천여 년 동안 관아의 소재지였으며 1978년 구미시에 편입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려 말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예문관대제학을 지내고 옥산군(玉山君)에 봉해진 장계를 시조로 하는 장계계가 있고, 고려 초에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는 장금용계가 있다.
후손들이 옥산(玉山)(仁同의 옛 이름)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옥산으로 하였으며, 그 뒤 조선 말에 옥산이 인동으로 바뀜에 따라 본관을 인동으로 고쳤다. 조선 말에 옥산이 인동으로 바뀌어 인동장씨로 하였으나 일부는 옥산을 본관으로 고집하며 사용하고 있다.
⑶ 순흥안씨의 본향 순흥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시대에 보승별장을 지냈으며 흥년(순흥)현에 살았으므로 본관을 순흥으로 하였다 안자미의 묘는 경북 영주군 순흥면에 있었다.
안창호, 안중근, 안창남, 안익태 등이 순흥안씨이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인데, 순흥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는 김(金), 박(朴) 등이 있다.
순흥은 본래 신라의 급벌산(及伐山)이었는데 경덕왕 때 급산군(岌山郡)으로 고쳤고, 940년(태조 23)에 흥주로 고쳤다. 현종 때에는 안동에 예속시켰고 뒤에 순안(順安)으로 옮겼다.
명종 때 감무를 두었고 현내에 충렬왕의 태실(胎室)을 두어 흥녕현령(興寧縣令)으로 고치고, 충숙왕의 태를 또 안치하더니 지흥주사(知興州事)로 높였고 충목왕 때 순흥부(順興府)로 승격시켰다.
흥주는 소백산맥의 산록에 있는 신성한 곳으로 알려졌다. 급벌산이나 급산은 높은 봉우리 또는 깊은 뫼의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순흥은 세조 때 군을 폐하였다가 중종 때 복구시키기도 하였다.
⑷ 연안이씨의 본향 연안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이씨의 본관은 140여 본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으로 통하고 인구 수로는 김씨 다음으로 두번째다(남한 약 7백만).
신라 경문왕 때에 당나라에서 귀화한 이원(李瑗)의 아들들이 왜구의 침략을 평정한 공으로 이씨(李氏)로 사성받아 갈려 나갔다.
연안이씨(延安李氏)는 비조(鼻祖) 고요(皐陶)와 노자(老子)의 후예인 중국 농서이씨(농西李氏) 후손 중에 한(漢) 무제(武帝) 때 명장 리광(李廣 ?-BC119)이 있으며 그의 후손에서 5호16국(五胡十六國)시대 서량(西凉:西紀400-421)을 세운 무소왕(武昭王) 리호(李暠:漢族)가 있고 무소왕(의 아들 흠(歆:西凉의 二代王) 순(恂:西凉의 三代王) 번(飜) 중 당나라 황실은 흠(歆)의 계통이고 우리나라쪽에서는 번(飜)의 계통이라 한다 그리하여 당나라 황실과 종실간이라 전한다.
연안은 황해도 남부에 있는 고을인데, 이 연안과 배천(白川)이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
⑸ 문화유씨의 본향 문화
우리나라에서 유(柳)씨가 국사나 공가 문헌에 처음 등재된 것은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이다.
고려사 열전(列傳)의 문간공 류공권(文簡公 柳公權)의 주(註)에 '공의 6세조 차달(車達)은 고려 태조의 개국을 도와 삼한공신(三韓功臣)으로 관직은 대승(大丞)이었다'고 하였다.
동국여지승랑의 황해도 문화현(黃海道 文化縣)의 인물편에 '류차달(柳車達)은 고려 태조가 남방을 정벌을 정벌할 때 수레를 많이 내어 군량을 공급함으로써 그 공으로 대승에 제수함과 아울러 삼한공신으로 사호(賜號)하였다'고 하였다.,
그 아들 좌윤(左尹) 효금(孝金)이 일찌기 구월산을 유람하다가 큰 호랑이를 만나 그 입 속에 걸려 있던 비녀를 빼 줌으로써 그 음덕으로 자손이 반드시 대대로 경상(卿相)이 되리라고 산신이 현몽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고, 좌윤공의 5세손 문간공 공권(文簡公 公權) 이하 수대의 사행(事行)이 휼륭히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유씨는 고려 개국 이후 조선을 거쳐 천여년 동안 많은 명경석학(名卿碩學)이 계속 배출되어 국가와 휴척(休戚)을 함께 한 명벌로써 옛부터 삼한갑족으로 일컬어 왔다.
문화현은 궁홀현(弓忽縣) 또는 궁올현(弓兀縣)이던 것이 통일신라시대에 와서 고구려 때 궐구현(闕口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궐구는 ‘큰고지(큰곶)의 음차로 보인다.
고려 초기 유주(儒州)로 고치고, 성종이 시령(始寧)이라는 별호를 내렸다. 1018년(현종 9) 풍주(豊州)에 예속시키고, 1259년(고종 46) 문화현으로 승격하였다.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계승하였으며, 1895년 군(郡)으로 승격, 뒤에 신천군에 편입하여 문화면이 되었다.
⑹ 동래정씨의 본향 동래
정씨(鄭氏)는 사로 취산 진지촌(觜山 珍支村) 촌장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동래정씨의 시조는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선계에 대한 문헌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의 후손으로 고려 때 보윤호장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을 1세로 하고 안일호장을 지낸 정문도(鄭文道)는 2세이다.
정문도공의 장자 정목(鄭穆)공이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올랐으며, 정목(鄭穆)공의 아들 4형제 정제(鄭濟)ㆍ정점(鄭漸)ㆍ정택(鄭澤)ㆍ정항(鄭沆)이 문과(文科)에 급제하면서 세거지(世居地)인 동래를 관향으로 삼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에 거칠산국(居漆山國)이 나오는데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내산국(萊山國)’ 혹은 ‘장산국(萇山國)’이라고도 한다.
뒤에 경덕왕(景德王)이 동래(東萊)로 개명하였다.
거칠(居漆)은 중세국어의 ‘겋―’, ‘거츨―’로서 일본어의 ‘카루(Karu: 刈)’, 몽고어의 ‘케르치(Kerci: 거칠)’ 등에 대응하는 말인데, 동래와 내산의 ‘래(萊)’, 장산의 ‘장(萇)’은 ‘려(藜)’·‘장초(萇草)’라는 식물로서 모두 황폐하고 거친 땅에서 자라는 풀이다. 한편 거칠을 ‘날이 갓샌다’는 서광(曙光)의 의미로도 이해하며 ‘갓’의 원음이 속음(俗音) ‘것’으로 음전(音轉)함으로서 ‘갓난이’ 또는 막 태어난 아이의 시명(始明)을 뜻하는 ‘갓밝이’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거칠산국과 내산국·장산국·동래현은 ‘거칠다(荒)’를 매개로 하여 연결되는 명칭이라 하겠다.
⑺ 한산이씨의 본향 한산
시조는 고려 숙종 때 호족으로서 권지호장직(權知戶長職)에 오른 이윤경(李允卿)이다. 중시조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아버지인 이곡(李穀)이다.
이곡은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당대의 대문장이며, 우탁 이동(易東),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경학(經學)의 대가였으며 고려 충숙왕 7년 문과에 급제하고 원나라 제과(制科)에도 급제하여 벼슬이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에 이르렀다.
공민왕 때 문하시중에 이르렀고, 그의 문하에서 권근(權近), 변계량(卞季良) 등의 학자와 명신을 배출하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의 아들 목은(牧隱) 색(穡)이 1362년 홍건적의 난에 왕을 호종하여 공을 세워 한산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한산으로 하였다.
본관지 한산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韓山面)이다.
원래 마산현(馬山縣)인데, 고려 초기에 한산현(韓山縣)으로 개명하고, 1413년(조선 태종 13) 한산군으로 승격하였다가, 1913년 한산군은 폐지되고, 지금은 한산면과 마산면으로서 서천군에 편입되어 있다.
마산은 원래 ‘물뫼’ 또는 ‘말뫼’로 불렀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뜻은 ‘물’과 관련도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⑻ 김녕김씨의 본향 김녕
김녕(金寧)은 경남 김해(金海)의 옛 지명으로 낙동강(洛東江)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가락국(駕洛國)의 문화 중심지로 발전해 오다가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고쳤고,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고쳐 임해(臨海)·금주(金州) 등으로 불렸으며,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금주목(金州牧)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다. 조선 태종이 다시 도호부로 고쳤다가 세조 때 진(鎭)을 두었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김해군이 되었다. 1931년 김해면이 김해읍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 김해군의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이 김해시로 통합되었다.
김녕김씨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으로 경상북도 의성(義城)에서 출생하였다. 고려 인종 때 문과에 합격하여 묘청(妙淸)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으며, 명종 때에는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식읍을 하사받고 금주군(金州君)에 봉해졌다.
이 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김녕(金寧)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고려 말에 지명이 김해(金海)로 개칭되자 김해로 칭관(稱貫)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로왕(首露王) 계통의 김해김씨와 혼돈됨에 따라 김해김씨를 선김(先金)으로, 김녕김씨는 후김(後金)으로 칭하였다.
⑼ 파평윤씨의 본향 파평
파평은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파평면의 옛 지명이다.
파주시는 고구려 때인 475년(장수왕 63)에는 파주사현(坡州史縣)이라 칭하였다. 조선시대인 1398년(태조 7)에 서원군(瑞原郡)과 파평현(坡平縣)을 병합하여 원평군(原平郡)이라 하고, 1415년(태종 15) 교하현(交河縣)을 폐지시켜 이에 병합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 뒤에 교하현을 다시 복구시켰으나 도호부는 그대로 두었다. 1459년(세조 5)에 파주목(牧)으로 승격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에 본주(州)를 유행지소(遊幸之所)로 삼고 나머지 땅은 인접 고을에 소속시켰다. 1506년(중종 1) 다시 파주목으로 복귀, 1895년 군이 되었다.
‘파주사’는 ‘뱃벌’의 음차일 것으로 보고 있다.
⑽ 교하노씨의 본향 교하
교하(交河)는 경기도에 속한 곳으로, 1914년 파주군에 통합되었다.
교하노씨의 시조는 노수(盧穗)의 아들 노오(盧塢)이다. 노씨의 시조는 노수인데, 그는 중국 범양(范陽) 출신으로 당나라 한림 학사를 지낸 사람이다. 877년(신라 헌강왕 3년)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피하여 아들 아홉 형제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로 이주하였다. 노수의 아들 대에 이르러 각각 교하(交河), 풍천(豊川), 안동(安東) 등 9본으로 관향을 정하고 분파하였다. 교하노씨는 둘째 아들 노오가 교하백(交河佰)으로 봉백됨으로써 탄생하게 되었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에 딸린 교하는 본래 백제의 천정구현(泉井口縣)이었는데, 뒤에 고구려가 취하였다가 신라의 영토가 된 뒤에 교하군(交河郡)으로 바뀌었다.
천정구현은 어을매곶이라고도 하였는데, ‘어을’은 ‘어울림(합해짐)’을 뜻하고 ‘매’는 ‘물’을 뜻하므로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곳이어서 이런 이름이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⑾ 남평문씨의 본향 남평
문씨는 문헌에 133본이 전한다.
감천(甘泉)과 정선(旌善)을 제외하곤 모두가 대종인 남평문씨에서 갈려 나가고, 오늘날에는 남평(南平) 단본. 감천문씨와 정선문씨는 본래가 타성으로 성만 같고, 조상이 다르다.
감천문씨의 시조 문원길은 본래 김알지 후손으로 경주김씨. 그의 선대에서 중국에 들어갔다가 문장으로 이름을 날려 문씨(文氏) 성을 사성받아 성을 갈았다고 한다.
정선문씨의 시조 문임간은 본래 전씨였다고 한다. 그도 앞의 경우와 같이 중국에 들어가 글로 이름을 날려 문씨 성을 얻고 귀국 후에 벼슬이 문하시랑 평장사에 이르렀다고 한다.
현재는 전남 나주시 일대로, 본래 백제의 미동부리현인데, 신라 35대 경덕왕이 현웅으로 고쳐 무주(광주)의 딸린 현이 되었다가 고려 때 남평 또는 영평으로 고쳐서 나주에 붙이고, 19대 명종 2년(1172)에 감무를 두었는데, 34대 공양왕 2년(1390)에 화순 감무가 겸하였다가 조선조 태조 3년(1394)에 복구되고, 3대 태종 13년(1413)에 예에 따라 현감이 되고, 26대 고종32년(1895)에 군이 되어 12개 면을 관할하였다.
일제 때인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나주시에 편입되었다.
남평문씨 시조비는 나주시 남평읍 서산리 주막거리 남쪽에 있다.
‘미동부리’는 ‘믿’로 낮은 지역이 땅이란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⑿ 무송유씨의 본향 무송
무장면의 전신(前身)인 무장현은 본래 무송(茂松) ·장사(長沙) 두 현(縣)의 합명(合名)이다.
무송현은 본래 백제의 송미지현(松彌知縣)인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무송현으로 바뀌었고, 장사현은 본래 백제 때의 상로현(上老縣)인데 역시 경덕왕 때 장사현으로 개명하였다.
조선시대 1417년(태종 17) 두 현을 합하여 무장현이라고 일컫다가 그 후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쳐 고창군에 편입되었다. 지금은 고창군 성송면 무송리 일대이다.
유씨(庾氏)의 본관은 평산(平山)·무송(茂松) 2본이다.
무송유씨의 시조는 유금필의 후손으로 고려 의종 때의 명신 유필(柳弼)이다.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판리부사(判吏部事)를 지냈다.
무송은 본래 백제의 송미지현(松彌知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무송으로 고쳐 무령군(武靈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 장사감무(長沙監務)를 두면서 무송을 겸임하게 하였다. 1417년(태종 17) 두 지역을 합쳐 무장으로 고치고 진(鎭)을 설치하면서 병마사(兵馬使)가 판현사(判縣事)를 겸임하게 하였다.
읍호(邑號)를 송산(松山)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무장 남쪽 영광과의 사이에 있었는데 고산성(古山城)이 있었고 청송역(靑松驛)과 함께 남창(南倉)은 법성포(法聖浦)와 연결되었다.
옛 이름 송미지는 ‘대읍(大邑)’을 뜻하는 데, 고산(高山)ㆍ구행산(九行山)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취락을 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⒀ 분성배씨의 본향 분성
배씨(裵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금산가리 촌장(金山加利村長) 배지타(裵祗陀)를 원조로 하였으나 고증할 자료가 실전되어 고려의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936]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분성 배씨, 성산 배씨, 달성 배씨, 곤양 배씨, 흥해배씨 등으로 분적되었다.
분성배씨(盆城裵氏)의 원시조 배헌(裵軒)은 고려시대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했다. 그의 아들 배사혁(裵斯革)은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졌으며, 사혁의 첫째 아들 배원룡(裵元龍)이 고려 우왕 때 계림부윤을 거쳐 병부상서(兵部尙書) 및 도원수(都元帥)를 지내고 선대의 봉직으로 나라에 공이 있어 고려 우왕 때 분성군(盆城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분성(盆城)은 경상남도 남동부 낙동강(洛東江)의 서안에 위치한 김해(金海)의 고려 때 지명으로 본래 가락국(駕洛國)이었는데 신라에 병합되어 법흥왕(法興王) 때 금관국(金官國)이 되었다가 문무왕(文武王)이 소경(小京)을 두었으며 경덕왕(景德王) 때 김해(金海)로 고쳤다. 고려 태조(太祖)가 부(府)로 강등시켜 뒤에 임해현(臨海縣)이 되었으나 성종(成宗) 때 금주(金州)로 개칭되고 원종조(元宗朝)에 와서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가 되었다가 충선왕(忠宣王) 때 다시 김해로 고쳐 부(府)로 하였다.
조선조에 와서는 태종(太宗)이 도호부(都護府)를 설치했고, 세조(世祖) 때 진(鎭)을 두기도 했으며 고종(高宗) 때 군(郡)으로 승격, 1906년 양산군의 2개면을 병합하고, 1981년 시(市)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분성은 김해 분성산에 있는 분산성을 말하는 것으로, 김해배씨라고도 한다.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분성 배씨가 우거(寓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병산리 병산 마을, 강서구 가락동 송산 마을·죽림 마을, 녹산동 산양 마을·생곡 마을·지사 마을·탑동 마을, 주례동 등지에 분성배씨가 세거하고 있다.
⒁ 목천돈씨의 본향 목천
고구려 명문가의 성인 을씨가 을지씨로 바뀐 것은 문덕왕 때이다.
을씨 집안에서는 명재상인 을파소에 대한 추앙과 자긍심이 대단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을씨 집안의 자손이라는 뜻에서 ‘을’씨가 ‘을지’씨로 고쳐졌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을’이 성이고 ‘지’는 존대의 접미사로 쓰였다는 견해도 있다.
또 다른 설로는 ‘을지’가 우태(于台)와 같은 고위 관직의 하나로 연장(年長), 가부장(家父長)의 의미라고 하는가 하면, 선비족 계통의 성인 울지(尉遲)씨의 귀화와 연계시켜 자치통감에 을지문덕을 울지문덕(尉支文德)이라 적고 있음을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
설이야 여하튼 장군의 16세 후손 을지수(乙支遂)가 동생인 을지달(乙支達), 을지원(乙支遠) 등과 함께 묘청의 난에 공을 세워 둔산군(頓山君)에 봉해졌고 이후 을지씨는 둔(頓)씨 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 뒤 연유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수(遂)의 증손 예숭(禮崇)이 오늘날 충청도 목천 땅으로 이주해 살면서 본관을 목천으로 함으로써 고구려 명문가인 을지씨는 자취를 감추었다.
목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는 돈(頓), 마(馬), 상(尙), 우(于), 우(牛), 우(禹), 장(張) 등이 있다.
목천 지역은 본래 마한의 부족국가인 목지국(目支國)의 영토였으며, 뒤에 백제의 땅이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대록군(大麓郡)으로 고쳤으며, 930년(태조 13) 대목악(大木岳-목천)ㆍ사산(蛇山: 지금의 직산)ㆍ탕정(湯井: 지금의 아산)의 세 고을을 갈라서 천안도독부를 두었다.
고려 성종 때는 목주(木州)라 하였고, 1413년(태종 13) 목천(木川)으로 고쳐져 현감을 두었다. 1894년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천안시에 병합되어 목천면이 되었다. 일대에는 당시의 전설이 지명으로 남아 있다.
목천의 옛 이름 대목악은 ‘큰나무뫼’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⒂ 반남박씨의 본향 반남
조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의 호장(戶長)을 지낸 박응주(朴應珠)이다. 그의 현손 박상충(朴尙衷)은 전교시판사(典校寺判事)를 역임하고 《사전(祀典)》을 저술했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15명, 상신 7명, 대제학 2명, 왕비 2명을 배출하여 박씨 중에서 벼슬 열력(閱歷)이 가장 화려하다.
반남은 본래 백제 때의 반내부리현(半奈夫里縣)인데, 반나부리현(半那夫里縣)이라고도 하였다. 통일신라의 경덕왕(景德王) 때 반남군(潘南郡)으로 개명하였으며, 고려시대에 반남현으로 강등되었다.
삼국시대 이름 반내부리는 ‘밧내’로 유추되는데, 이는 ‘바깥 내의 벌판’이란 뜻으로 보고 있다.
⒃ 월성김씨의 본향 월성
월성김씨의 시조는 김광우(金光佑)로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15세손이다. 그는 조선 세종 때 덕천군수로 있으면서 조정에 직간하다가 성천으로 유배되어 살았는데 후손들이 고향인 월성을 본관으로 하였다.
경순왕의 셋째 아들 김명종의 17세손 김이진을 1세 조상으로 하는 월성김씨도 있다.
경상북도에는 월성(月城)군이 있다. 경주시를 둘러싼 배후지이므로 경주의 영향을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경주는 신라 천 년의 고도(古都)로서 국제연합에서 보존가치를 인정할 만큼, 세계 10대의 역사 유적지로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오늘날 관광지로 등장하는 것도 역사 유적지에 대한 탐방으로 내일의 창조를 위한 활력소를 축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역사 유적지 가운데는 신라시대에 궁성이 있었던 반월(半月)을 빼놓을 수 없다.
월성은 바로 반월성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신라 천 년의 역사적 전통과 궁궐터가 내포된 곳이다. 반월성은 성곽의 모양이 반달과 같은 형태적 의미를 담고 있다.
풍수지리상으로 반달은 만월(滿月)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미래지향적이며 희망을 안고 있다. 당대발복(當代發福)이라는 말처럼, 대체로 풍수지리설은 다가올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있으므로, 완성된 둥근 보름달보다 미완성이면서 가능성이 있는 반달을 선호하고 있다. 백제가 패망할 무렵 왕도인 부여에 ‘백제는 만월이요, 신라는 반월이라’는 해괴한 말들이 나돌았다. 이것은 바로 백제와 신라가 맞이할 앞날의 운명을 말해 주는 암시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꽃의 아름다움은 10일을 못 채우고, 달은 차면 기운다’는 경구를 알고 있는데, 여기에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월성군은 경주시의 배후를 감싸고 있는 관계로, 감포에서 건천(乾川)에 이르는 바다와 육지를 포함한다. 따라서 바다에는 문무왕(文武王)의 능으로 알려진 대왕암(大王岩)이 있는가 하면, 내륙의 토함산에는 석굴암이 있다. 그러므로 경주시보다 분포 수에서 못하더라도, 역사 유적지의 산재 지역인 것이 확실하다. 민속자료에서는 시 · 군 단위에서 경주시를 앞지르고 있다.
1955년 9월 경주군 경주읍과 내동면 등이 경주시로 승격되고, 경주군은 월성군(月城郡)으로 개칭되었다. 1989년 1월 월성군을 경주군으로 개칭하였는데, 1995년 1월 경주시와 경주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형태의 경주시가 설치됨으로서 월성은 행정명칭에서 사라졌다.
월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는 월성김씨 외에 월성이씨, 월성박씨, 월성석씨, 월성손씨 등이 있는데, 월성이씨는 계림이씨 또는 경주이씨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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