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개의 글
본 번역문은 온라인 뉴스 블로그 <뉴스 페퍼민트>(NewsPeppermint)가 제공하는 외신의 번역문입니다. <뉴스 페퍼민트>는 "최근 화제가 된 외신 중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는 기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글 5편을 골라 번역/요약하여 월~금 오전 7시에 제공"하는 사이트입니다. 이 매체의 운영 철학에 관해서는 여기에 소개돼 있습니다.
이하에 공개한 글의 원문은 미국의 계간지 <스켑틱>(Skeptic: 회의론자)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가 <폴리티코>(Politico) 매거진에 기고한 글 <Religion Is Disappearing. That’s Great for Politics.>(2015-7-10)이고, 번역자는 <뉴스 페퍼민트>의 veritaholic 님입니다.
많은 이들이 공유할만한 글이라 생각되어, '크메르의 세계'에도 복사본을 보존코자 합니다. [크세] |
(번역문 공개일) 뉴스 페퍼민트 2015-7-21 (번역자) veritaholic
[마이클 셔머] 종교의 소멸과 그 정치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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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종교적 권리라는 개념이 떠오르기 전까지 대부분의 정치인은 자신의 종교를 숨겼습니다. 예를 들어 1945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자신의 신앙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사람이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953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그가 최근 등록한 교회의 목사가 그 사실을 자랑한다는 말을 듣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자에게 당장 가서 한 번만 더 내 종교에 대해 떠들고 다닌다면 다시는 거기 나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게!” 존 F. 케네디 역시 1960년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자신의 천주교 신앙을 꼭 필요할 때에만 밝혔습니다.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보통의 침례교인(Baptist Standard)”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헌법 제 1 조에 표현된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미국의 전통을 믿는다.” 리처드 닉슨은 잘 알려진 퀘이커 교도였지만 실제 그의 생활에서 종교는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정도의 의미밖에 있지 않았습니다. 제랄드 포드는 자신의 종교에 대해 “매우 개인적”이라고 말했고 “나는 내가 가진 종교에 대해 남들에게 말하고 쓰는 일이 매우 꺼려진다”고 썼습니다. 자신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밝혔던 지미 카터조차도 대부분의 정치적 문제에서 자신의 신앙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 이런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주의 설교자 제리 폴웰과 그의 조직인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 (그러나 “실체가 없는(neither)”으로 더 유명한)는 기독교 정치인은 정치적 활동 역시 복음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90년대와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랠프 리드의 “전미 기독교인 연합(Christian Coalition of America)”과 제임스 돕슨의 “가족을 주목하라(Focus on the Family)” 등의 기독교 분파 및 단체들은 기독교 정치인과 후보자에게 그들이 기독교 유권자들의 뜻을 따르지 않을 경우 당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정치인들은 예수를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로 꼽거나, 공적 연설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권위에 호소하거나, “미국에 축복을(bles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과 같은 말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추태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볼 날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퓨 리서치 센터는 최근 미국 성인 35,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신의 종교적 성향에 “무교(none)”를 선택한 이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밝혔습니다. 90년대 열 명 중에 한 명 꼴도 되지 않던 이들은 2007년 16%를 기록했으며, 이번 조사에서는 23%를 기록했습니다. 젊은 유권자가 더 중요한 정치인들에게는 1981년 이후 태어난 이들 중 34%가 무교라는 사실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1/3 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
어떤 정치인이나 후보도 이 정도의 유권자를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 유권자의 수는 2억 4천 5백만 명이며 무교는 이 가운데 약 5천 6백만 명으로 기존 개신교(mainline protestants)와 천주교보다 더 큰 집단이 되었습니다. 오직 복음주의 개신교만이 이들보다 더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2007년 이후로 무교가 된 이의 수는 1천 9백만 명으로 미국이 가진 종교적 분위기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숫자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종교적인 특성은 점점 약해져 왔습니다. 침묵의 세대(1928-1945년생)에서 베이비 부머 세대(1946-1964년생), X 세대(1965-1980년생), 구 새천년 세대(1981-1989년생), 신 새천년 세대(1990-1996년생)에 이르기까지 신앙인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종교를 바꾸고 있습니다. 퓨 리서치 센터의 연구는 어릴 때의 종교와 지금의 종교가 달라진 사람들의 수가 42%에 달한다는 사실을 보였으며 이는 하나의 진짜 종교가 있다는 생각이 이제는 낡은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미국인 중 4.3%는 종교를 가지지 않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종교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이 숫자의 네 배에 달합니다.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봅시다. 이건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닙니다. 이미 그런 세상이 다가오고 있으며, 아마 다음 세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될 것입니다.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계몽의 시대 이후 종교적 도그마와 교회의 권위는 계속해서 감소해 왔습니다. 또한 내 책 “모럴 아크(The Moral Arc)”에서 나는 이러한 변화가 인간에게 일어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여러 종교들이 수천 년 동안 만들어온 삶의 원칙들이 더 이상 오늘날의 세계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산에서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온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이지 모압 족속, 에돔 족속, 미디안 족속 같은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내 이웃을 사랑하라’에서 이웃은 자신의 가까운 친척과 부족민만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만약 미디안 족을 자신처럼 사랑했다면 그것은 미디안 족과 동맹 관계인 모압 족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 했다는 사실을 볼 때 마치 자살과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민족과 분리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다른 민족에 대한 경계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의 도덕만을 말하며, 다른 공동체에 대해서는 그들을 위협하거나 개종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신앙이란 곧 ‘우리편’인지를 확인하는 정체성에 다름 아니며, 이교도나 무신론자는 바로 ’다른 편’을 구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물론 오늘날의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은 구약 시대처럼 자신의 민족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새로운 신의 뜻이 드러났거나 새로운 성서의 해석이 등장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온 것이 아닙니다. 그저 계몽의 시대(The Enlightment)를 거치면서 유대교와 기독교가 덜 폭력적이고 더 관대하도록 바뀌었을 뿐입니다. 계몽의 시대 이후 도덕은 신이 내려준 원칙, 성직자들이 받은 영감, 성서에 써 있는 내용, 위정자의 가르침과 같이 위에서 아래로 주어지는 법칙이 아니라 개인이 중심이 된, 이성에 기반한, 합리적으로 성립된, 과학을 밑바탕으로 한 원칙들처럼 아래에서부터 만들어지도록 바뀌었습니다. 특히 특정한 도덕적 행동에 대해 이 행동이 다른 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가 깊이 고려되도록 바뀌었습니다.
신의 이름을 잘못 입에 올렸다는 이유로, 마녀 사냥과 같은 허구의 죄악으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안식일(Sabbath)에 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죽음을 맞지 않게 된 것은 계몽의 시대 덕입니다. 이 규칙들은 모두 성경에 있는 것이며, 아직도 2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은 이 책을 가장 훌륭한 삶의 신조로 믿고 있습니다.
정치적 결정에 있어 종교가 적절한 판단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서구가 받아들인지는 오래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 역시, 더 극단적인 종교 분파들이 지배하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앞선 것일 뿐입니다. 아직 미국에도 많은 수의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이 있으며, 우리는 이들이 제퍼슨이 세운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무시하고 실제 정치에 관여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도 나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성 결혼의 경우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후기성도 교회(몰몬 교)는 동성애자에게 이성애자와 같은 권리를 주는 법안을 반대하는 켐페인에 돈을 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사상의 시장에서 세속적 가치가 종교적 가치를 몰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뉴스에서 종교가 한 나라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너무나 잘 보고 있습니다. 이제 서구의 유대교인과 기독교인들은 계몽의 시대 이후 가지게 된 세속적 가치인 법 앞의 평등, 동등한 기회, 발언의 자유, 언론의 자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민권과 시민자유, 여성과 소수자들의 평등권, 그리고 특히 종교와 정치의 분리 및 어떤 종교든지 가질 수 있는 자유 등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들, 특히 7세기의 신정 국가로 복귀하기를 원하는 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변화가 요원합니다.
여기에는 종교적 신앙의 근본을 변화시키는 심오한 뜻이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호전적인 이슬람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을 매일 보고 있으며, 서구가 힘들게 이룩한 세속적 가치를 받아들이기 거부하고 신앙만을 내세우는 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역시 보고 있습니다. IS가 종교의 이름으로 수천년동안 쌓인 문명의 유산들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종교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믿을 만한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헌법보다 종교를 앞세우거나, 전쟁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결정에 앞서 기도를 드린다는 정치인을 뽑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것들 중 가장 인간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도구인 과학과 이성에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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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종교는 민족과 분리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다른 민족에 대한 경계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보다 종교를 앞세우거나, 전쟁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결정에 앞서 기도를 드린다는 정치인을 뽑지 말아야 합니다"
이 메세지가 아주 좋네요..
동감 가는 부분이 많네요.
요즘 시대 이야기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