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엇국 끓인 보람/김성자
30년 넘게 북엇국을 끓였는데 점점 싫증이 난다. 남들이 들으면 무슨 소리일까 하겠지만 나는 북엇국에 염증을 느낀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남편의 해장국을 끓이다보니 냉동실엔 북어포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중 대관령에서 사가지고 온 통북어는 구이용으로 적당한 사이즈이다. 북어는 콩나물 넣어 끓이면 시원한 맛이 난다. 때론 북어 채에 초고추장을 넣고 조물조물 하면 밑반찬으로 손색이 없다. 북어 머리로 육수를 만들어 놓으면 음식을 만들 때 요긴하게 조미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30년을 줄기차게 북어 국을 끓이며 가끔 술꾼 남편이 미워서 화난 마음을 억제하기 어려운 탓에 눈물 바람을 날린 적이 한 두 번 이 아니다.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다. 냉동고에 쌓인 북어들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텅 빈 냉동실은 숨을 쉴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는 듯 나에게 윙크를 한다.
지겨웠던 북엇국 끓이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약속을 했건만 며칠 못 가서 건어물 전 앞에서 서성이고 있지 않은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이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이미 내 뇌에 새겨진 북어해장국.
건어물 가게에서 북어 채 하나를 샀다. “다시는 북엇국을 끓이지 않으리.” 나 자신과 약속이 물거품이 되지 않으려고 고심 끝에 이번에는 북어 채를 물에 약간 불린 후 튀김가루에 묻혀 튀겼다. 노릇하고 맛있는 북어 채 튀김 요리로 변신했다. 뭔가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았다는 설레임, 도전 정신이 강한 내 성격이 오랜만에 힐링이 되었다.
노릇노릇한 옷을 입은 북어 튀김의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혼자 먹고 보기가 아까운 생각에 북어 튀김 동영상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친구가 맛있겠다며 북어 튀김 레시피 하나 배웠다며 고마워했다. 북어 튀김을 통해 그동안 눈물바람으로 끓였던 북어 국에 대한 생각은 북어튀김으로 인해 발상을 바꾸면 인생이 즐겁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알코올 중독자처럼 매일 술 마시는 남편의 일상을 나름대로 챙겨 보기로 했다. 그동안 남편을 편안한 존재로 생각하고 집안일과 아이들 키운다는 내 일상을 남편에게 강하게 어필했는지 모른다.
남편의 직업에 관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알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성인이 된 사람들을 지도하는 직업을 가진 남편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한마디도 말도 못 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혼자 술로 보낸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 아이가 그렇게 분주한 편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벅차고 힘들다고 남편에게 투정하면 세상 사람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에 화가 많이 났다.
남편은 무뚝뚝한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살가운 편도 아니다. 어린이날에 아이들과 함께 놀이동산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샛별 보고 출근하는 사람 어둠이 내리면 퇴근하는 남편에게 투정할 수 없었던 시간들.
남편 마음도 편하지 않았으리라. 출근하는 남편의 뒤 모습은 언제나 쓸쓸하고 외롭게 보였다. 흔히 사람들은 결혼이란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나에게 결혼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남편이 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량이 늘어났다. 술독에 빠진 사람과 대화는 불가능이다. 벽을 보고 한숨짓는 날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삼 남매를 두고 떠날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예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 아이들 보면서 살자.’ 긴 한숨 소리는 꼬리 없는 마법이 되었다.
정년을 앞둔 남편은 날이 갈수록 술독에 빠진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남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큰 소리로 싸울 생각을 했지만, 여자가 큰 소리 낸다는 말 듣기 싫어 조곤조곤 가슴으로 삭이면서 살아온 세월이다.
남편은 매사에 일방적인 사람이라 내가 숙이면 집안이 조용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매일 혼술 하는 남편 옆에서 아주 가끔 먹지도 못하는 소주잔을 채워놓고 있으면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웃는 남편 볼우물이 참 예뻤다. 남편과 함께 살면서 닮은 점 하나 있다. 무슨 사건이 발생하면 둘 다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드린다. 그래서 부부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30년을 살면서 남편과 아직도 대화 방법이 서툴다. 남편은 일방적인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나는 아직도 남편에게 불가능한 꿈을 꾼다. 내 남자는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말에 귀 기울여주는 그런 사람 “응 그래 그렇구나.”라고 대답해주는 사람. 언제쯤 그런 시간이 올까. 철부지 소녀가 염원을 담은 주문을 외우듯 주저리 주저리 한다.
콩나물과 북어는 환상의 궁합이다. 북어 채에 참기름을 넣고 달달 볶으면 고소한 맛에 취한다. 그렇게 한소끔 끓인 뽀얀 북엇국은 훌륭한 보양식이 되는데 왜 우리 부부는 물과 기름으로 겉돌고 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술에 장사 없다는 말이 현실로 나타났다. 남편이 쓰러졌다 119 싸이렌 소리는 적막했던 밤 창공에 메시지를 보내며 달렸다. 예상했던 일들이 이렇게 일찍 일어날 줄은 몰랐다. 남편의 온몸이 링거 줄로 칭칭 동여매진 참담한 현실이 내 눈앞에 보였다. 애써 냉정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생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의식도 없는 남편은 무의식 속에서 어떤 꿈을 꿀까. 다시 볼 수 있을까. 번뇌에 쌓일 때 마다 아무 일 없기를 눈감고 기도했다.
천지신명들이 기도 응답을 들어주었는지 남편 의식이 돌아왔다. 힘없이 바라보는 남편은 자신이 환자란 걸 모르는 것 같았다. 급성 폐렴이라고 하더니 이내 폐결핵과 간경화라는 의사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이 멎는 것 같았다. 매우 심각하다는 의사 말은 간 손상이 심각하긴 한데 암이 아니라서 천만 다행이라고 했다. 치료를 잘 받으면 빨리 회복될 거라고 믿고 남편 옆에서 정성껏 보살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남편 몸에서는 이상한 증세가 나타났다. 약물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배가 점점 불러왔다. 여러 장기에 빨강 불이 켜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배에 복수가 찼다. 의사가 긴 주사기 바늘로 남편 배에 꽂으면 아이보리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누런 부유물들이 흘러내렸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병실을 뛰쳐나왔다. 가슴으로 울어버린 몸부림은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왜, 신은 잘살고 있는 나에게 가혹한 형벌을 주는지 용서가 되지 않았다.
촛불처럼 꺼져가는 한 생명, 신은 우릴 외면하지 않았다. 대학병원으로 옮긴 남편의 주치 선생님의 덕분으로 조금씩 회복되었다
명태는 기온이 뚝뚝 떨어진 밤에 꽁꽁 얼었다가 해가 뜨면 녹기를 반복하여 맛 좋은 북어가 되어 밥상에 오른다고 한다. 북어포를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제 할 도리를 해야만 빛이 나고 잘 말린 북어처럼 숙성된다.
북엇국은 30년 동안 우리 집 밥상에 오를 때마다 내 마음을 보고 언짢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저 남편의 해장국으로만 생각하고 한결같이 끓인 북엇국은 그동안 남편 건강을 지켜주는 보약이 된 셈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아파트 골목길로 불어온다. 건강해진 남편이 혼자외출에서 귀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북어가 되기 전에 명태로 살아온 북어의 고단한 삶도 나와 살아가는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닮은 점이 참 많아서 마음이 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