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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향 찻집의 향훈
-쌍계사 입구에 있는
국 중 하
광복70주년 기념일이 2015년 8월 15일 토요일에 맞춰졌다 정부는 세월호와 메르스 사건으로 경제가 어려워져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해 8월 14일 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 발표했다.
나는 정부시책에 맞춰 임시공휴일을 적절하게 쓰기로 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공숙자 선생에게 “조미애 선생이 크로에티아에서 돌아오면 상의해서 8월14일 임시공휴일에 우리들 화개장터에 가보자. 섬진강 바람 쐬고 맑은 물에서 건져 올린 제철음식 참게 탕 앞에 놓고 여산춘 마시며 점심을 들자. 연후에 녹향다원에서 자연과 대화하며 오신옥 달인이 우려내는 자생 차에 취해보자.”라고 제안했다. 공 선생, 웃음기 띄며 ‘못 말리겠다.’ 뇌였지만 내심으론 반기는 기색이었다.
나와 차의 달인 오신옥 선생과의 인연은 십삼 년이 넘었다. 2002년 전북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과정 팀의 MT를 쌍계사 입구에다 정하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아침일찌기 교수님 두 분을 모시고 당시 칠불암(칠불사)에 다녀오면서 ‘녹향’다원에 들른 것이 계기였다. 전통차를 좋아하는 나는 차를 마시다가 이런저런 얘기 끝에 오신옥 씨에게 제다실습을 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오신옥 씨는 그의 ‘외인출입금지’인 차밭을 열어 차를 만드는 과정을 일깨워주신 나(우리팀)의 은사인 셈이다. 그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던 말씀, 어제 들은 것 같이 생생하다. 나와 김동우 전북대 교수, 김인영 사장, 김재하 회장 등 4사람에게 500평 차밭이 열렸다. 오신옥 선생의 지도 아래 아홉 번을 덖고(찌고) 아홉 번을 말렸다. 소위 책에서만 익힌 구증구포(九蒸九曝) 실습을 한 것이다. 찻잎을 엄선하여 딴 후, 섭씨 300도가 넘는 덖음가마 속에서 덖은 후 멍석위에 힘껏 비비고, 털고, 다시 덖고 비비고 털고를 4차례나 반복했다. 이러한 제다실습 교습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 소회를 토로하는 오신옥 선생이 참으로 고마웠었다.
그의 조그마한 찻집의 내부는 그야말로 귀하고 고운, 정말로 조그마한 기물들의 전시장이다. 다소곳이 귀 기울이면 저마다 한두 마디씩은 귀한 사연 들려주는 성 싶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까맣게 잊게 한다. 법정스님의 필체에서도 우련히 배어 감도는 차향이 느껴지고 실습 중에 경청한 내용들의 대미인 양 싶은 액자 속 이야기에도 솔깃해 귀 기울여 보았다.
법정 스님 말씀 실습 중에 들은 내용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조미애 선생에게 전화했다. 광복절 임시공휴일에 공숙자 선생님과 상의해서 화개장터 가자고했다. 약간은 부담되는 눈치였지만 모른척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먼 나라 동유럽까지의 장거리여행에서 여독도 안 풀리고 또 개학준비에 바쁠 것을 알면서도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이다. 잠시 후 조미애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공 선생님께 전화했더니 김남곤 회장님이랑 벌써 가시기로 결정 하셨던데요.” 하면서 가겠다고 했다. 참 고마웠다. 허소라 교수님도 OK하고 차 한대에 동승, 조미애 선생이 운전을 하기로 했다.
김남곤 회장은 시인이자 식도락가이다. 전번에 먹었던 참게탕은 별로였다며 별도로 ‘전주분들’임을 강조하고 당부를 해야 할 것이라고 웃음기 어린 발언을 했다. 오신옥 선생에게 전화했다. “전주에서 가시는 분들은 모두가 식도락가입니다. 전주하면 음식이요 그리고 문화예술의 고장 아니겠느냐”라고 지역홍보까지 곁들였다. 전화를 받으며 걱정이 많이 되는 기색이었지만 다 재미로 오가는 대화들이었다.
나는 오신옥 선생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맛있는 여산재 김치 한 통, 정성껏 담가 잘 익은 약주(여산춘餘山春) 한 병, 된장 한 통, 여산재 밭에서 재배한 무공해 오이고추 한 봉투, 여산재 로고가 새겨진 타올 한 점을 고이 포장했다. 그런 후 우리들이 반주로 마실 이강주 두 병을 별도로 가방에 담았다. 시집간 딸네 집 가면서 이것저것 챙기듯이 한보따리 챙겨들고, 얼마나 맛있게 먹으며 좋아할까를 그려보면서 설레는 마음 한 가득으로 출발했다.
화개장터를 지나 쌍계사 입구에 정오에 맞춰 도착했다. 김남곤 회장은 으레 운전석 옆 앞좌석을 지정석으로 앉는다. 운전하는 조미애 시인과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정답게 소곤소곤해대는지, 뒷자리에서 불안할 지경이다. 내가 운전원은 운전에만 전념하라고 몇 번이고 경고장을 날려도 막무가내다. 그럭저럭 장터골목을 들어섰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번 와보세요”라는 조영남의 노래를 떠올렸다. 공숙자 선생은 몇 년 전 친절하게 안내받았던 화개파출소 조영남 소장(조미애 선생 제자)이 떠오르는지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며 소장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했다. 화개장터를 지나 쌍계사 가는 길의 하동십리 벚꽃 길에 들어섰다. 꽃은 지고 없었지만 왼편의 무성한 벚나무들의 행진이 장관이다. 김 시인과 조 시인은 또 시상이 떠오르는지 뭐라고들 또 소곤댔다.
나는 식당에 가기 전에 먼저 ‘녹향’에 들러 김치부터 냉장고에 넣으라며 선물들을 전했다. 다원에는 서울에서 찾아왔다는 귀한 다인들 다섯 분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신옥씨와 점심을 같이 들려고 했지만 손님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우리는 예약된 음식점의, 자연과 더불은 천변의 실외 예약석에 안내되어 앉았다. 새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지고 나무의 숲이 우거진 평상 위에 전라도와 경상도의 식도락가들이 다 모여든 성싶었다. 매미울음소리 고고하고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까마귀들의 대화도 성시였다.
대자연과 사람들이 찰떡궁합으로 어우러진 오찬장에서 이강주 반주에 잘 끓여진 참게탕은 그야말로 별미였다. 참게딱지 속 알을 다 먹었는가 싶으면 이내 나의 앞 접시를 채워놓는 공 선생의 재빠른 솜씨에 나는 두 손으로 잡고 게의 다리를 떼어먹으랴 반주를 받으랴 체면불구하고 걸신들린 사람이 되고 말았다. 옆 좌석의 젊은 패거리들조차 우리들이 먹는 것에 샘이 났는지, 왜 우리에겐 저런 음식이 없느냐고 종업원을 불러 다그치는 소리를 귓등으로 하며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찬을 마치고 나서 손을 닦고 있는데 김남곤 회장이 그럴싸하게 강평을 했다. 이번에는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며 예전 맛하고 크게 다르다고``````.
마시다 남은 이강주 병을 들고 녹향다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손도 씻고 양치도할 겸 화장실에 들렀다가 좀 늦게 들어갔다가 그만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자칭 나의 지정석에 김남곤 회장이 떡하니 앉아서 빙긋 웃어보였다. 오신옥 선생도 웃으면서 그 옆자리를 권했다. 할 수 없이 찻상은 다르지만 선생 옆자리에 앉았다.
김남곤 회장이 보기에는 또 지금의 내 자리가 더 좋게 보일 지도 모른다 싶기도 했다. 오신옥 선생의 눈길이 나에게 더 자주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인끼리는 은연중에 통하는 바가 있다. 김남곤 회장은 오 선생이 특별히 나한테만 좋은 차에 차받침도 특색 있는 나뭇잎으로 해주고 차도 많이 따라준다며 샘을 냈었는데, 오늘은 자리를 빼앗아도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며 그냥 그렇게 많이들 웃겼다. 조미애시인은 연신 사진 찍기 바빠했다. 다양한 다구와 법정스님의 시구들 하며``````.
차의 달인 오신옥 씨 다원에서 다원의 차향을 음미하며
허소라 교수는 오신옥 달인을 두 번째 만난다면서 차를 주는 대로 받아 들고 차에 취해버린 모습이었다. 차를 마셨더니 모든 불순물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라며 좋아했다. 모두가 차에 취했다 싶을 때 오신옥 선생이 기회를 포착했다. “술에 취하면 찻집을 찾아 차로 술을 깨게 하듯이 차에 취하면 술로 깨게도 한다”라며 이강주와 여산춘을 들고 어느 쪽을 드시겠느냐고 물었다. 여산춘을 택했다. 허소라 교수가 장로님인 것을 알면서도 대작을 종용했고 우리는 들든 기분으로 건배를 합창했다. 몇 잔이 돌아가고 차로 인한 취기가 어느 정도 가시자 김남곤 회장 이 모두가 각본에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라며, 즉흥 연출이요 연기들이라고 떠들며 거듭거듭 한 다발씩 웃음꽃을 피워냈다.
법정 스님의 말씀 차에 취한 조미애 선생
돌아오면서 휴게실에서 허소라 교수가 오신옥 달인에게 전화해서 오늘 많이 즐거웠다고 전화하라고 했다. 전주 어름에 와서는 또 잘 돌아 왔다고 전화하라고 재촉했다. 곁에서 공숙자 선생이 “어라! 이 남자들 큰일 났네. 70이 넘어서도 여자라면 혹하기를 불사하다니``````.”라고 칭찬인지 힐책인지를 터뜨렸다. 여하튼 이래저래 ‘그저 웃지요’가 만발한 노정이었다.
정다운 김남곤 회장 내외분 허소라 교수님과 국중하
오길자 보살이 운영하는 콩나물 국밥집(동문원)을 찾아 시래기국으로 저녁을 감식했다. 20년 전부터의 인연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듣기도 했다. 어느새 공숙자 선생이 식비를 계산하고 허소라 교수가 부각을 사서 손마다에 들려주었다.
후회 없는 삶이란? 인생살이의 도중을 보다 다양한 국면에서 ‘눈도 귀도 입도 마음도’ 보다 여럿 친구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공유하고 일한 보람 또한 나누며 함께 누릴 수 있다면 참으로 족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