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출애굽기 15장 23절, 출애굽기 15장 26절, 요한복음 14장 6절, 시편 23편 1절
마침내 그들이 마라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다. <출애굽기 15장 23절, 새번역>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출애굽기 15장 26절, 새번역>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요한복음 14장 6절, 새번역>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편 23편 1절, 쉬운성경>
홍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 회중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찬송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미리암은 소고를 치며 날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주님을 찬송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를 걷고, 이틀을 걷고, 삼일째가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서 있는 곳이 '수르 광야'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가도 가도 광야만이 펼쳐져 있었고, 마실 물도 다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인도하여 내어,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사흘 동안 걸어서 광야로 들어갔으나, 물을 찾지 못하였다. <출애굽기 15장 22절, 새번역>
가장 극심하고 예민해지는 고통이 '목마름'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3일 내내 물을 마시지 못했다면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약이라도 올리는 듯 물을 만났지만 그 물은 '마라' 였습니다. 너무도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 이름도 아예 '마라'라고 지어버린 것입니다. 허탈했을 것입니다. 찬송을 하면서 이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 3일 동안 걷다니요? 물이 없다니요? 물이 있는데 써서 마시질 못한다니요? 도대체 신앙여정이 왜 이렇게 처음부터 꼬이는걸까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불평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자신들을 위해 직접적으로 일하신 하나님이 아닌 다시 모세에게 원망합니다. 모세가 자신들을 인도한게 아니고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 것을 금방 까먹어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신단 말입니까?" 하고 불평하였다. <출애굽기 15장 23절, 새번역>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구하면 되는데, 그렇게 직접적으로 일하신 하나님을 체험했으면서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사람을 찾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사람을 찾지 않고 바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놓친 것입니다.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그에게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셨다. 그가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그 물이 단물로 변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하여 주시고, 그들을 시험하신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출애굽기 15장 25절, 새번역>
우리가 신앙의 여정이 시작되고 나서 처음 삐걱거리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마라'라는 어려움을 만날 때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려움은 만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시작되었다고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어려움을, 고난을 감사로 바꿀 수 있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여정이 삐걱거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볼 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자꾸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면 쓰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시작되었다면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면 됩니다. 하지만 자꾸 우리는 사람을 통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필터가 되어버리면 은혜에 대한 변질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고, 신앙 생활이란 단추가 잘 끼워지지가 않은 것입니다. 아직도 성경을 내가 좋아하고 선호하는 목회자의 설교를 통해 배우려고 한다면 이제는 성경을 직접 펴서 읽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바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순간을 날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행히 아직 초보신앙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인자하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마라를 만나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순간입니다. 단물로 변한 마라를 마신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모세의 음성도, 아론의 음성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출애굽기 15장 26절, 새번역>
마라를 만나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개하십니다. 상처와 아픔을 치료하실 것입니다. 40년이란 긴 광야생활동안 치료하시고, 치유하시며 동행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은 바로 '답'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답이 되시는 것입니다. 수많은 질문에 대한, 앞으로 겪게 될 모든 일들에 대한, 고난이 찾아올 때 해결책이 되시고, 앞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이 되어주실, 마치 시험을 보면서 '오픈북'으로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답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답이니 하나님만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여정이 시작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해가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요한복음 14장 6절, 새번역>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답안지입니다. 하나님이 답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알지 못하자, 하나님이 친히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답안지를 아예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말하는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요한복음 14장 9절, 새번역>
치료하시는 하나님! 해결책을 주시는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분이 이스라엘 백성의 답이 되어 주십니다. 길이 되어 주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 의지하면 됩니다. 그 어떤 걱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고 나아가기만 하면 '엘림'을 곧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마라'만 만나게 하지 않으십니다. '마라'를 넘어서면 '엘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함께 가자고 이끄시는 '답'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물론 마라를 만나든, 엘림을 만나든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샘이 열두 곳이나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었다. 그들은 그 곳 물가에 진을 쳤다. <출애굽기 15장 27절, 새번역>
오늘도 출애굽기 맛집에 들러 이렇게 묵상해 봅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리라! 비록 '마라'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사람 바라보지 않고, 세상 바라보지 않고 '답'이신 하나님만 바라보리라!' 이런 마음으로 새삼스레 시편 23편을 나누고 갑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서 쉬게 하십니다. 여호와는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며 나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은 나를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가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겁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든든하게 보호해 줍니다. 주님께서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식탁을 차려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 머리 위에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시며 내 잔이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십니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이 내가 죽는 날까지 나와 함께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나는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시편 23편 1~6절, 쉬운성경>
https://www.youtube.com/watch?v=DzAZ7KWoe9M
https://www.youtube.com/watch?v=-_YhAN_TQwM
https://www.youtube.com/watch?v=mSa2snKHiP8
https://www.youtube.com/watch?v=fI8gNA4o0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