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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림
2.양자강
3.하바설산 아래 붉은 수수밭
4.위룽쉐샨 빙산
위룽쉐샨의 별꽃
방순미
제3회 설악연맹 원정 산행을 위룽쉐샨(5596m)으로 가게 되었다. 위룽쉐샨은 옥룡설산이라고도 하는데 눈덮힌 산에 안개가 감싸고 있는 것이 구름 속에 옥룡이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해서 옥룡설산이라고 한다.
2009년 9월 16일 저녁 6시에 속초에서 산벗 6명이서 가게 되었다. 내일 7시까지는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아야 하는데 여건이 어려워 하루 먼저 떠나게 되었다. 개통된지 얼마되지 않은 홍천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는 대관령 터널만큼이나 굴이 많다. 김포공항이 가까운 곳에 가서 잠자리를 정하기로 했다. 여러 곳을 물색 해봐도 방이 없다고 한다. 어렵사리 타협한 곳이 혼숙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어리둥절했다. 경비를 아끼려고 한방을 쓰던지 방이 작으면 두 개를 얻어 나눠 자려고 했는데 여자 혼자라서 남녀 둘 또는 혼자라야 된다는 것이다. 남자 둘이상은 혼숙으로 단속대상에 걸린다고 한다. 결국 난 방 하나를 독차지해야 했고 다른 산벗들은 좁게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혼자라서 편안하였지만 미안스러움에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늦게 새벽이 되어서야 잠깐 잠이 든 듯한데 때 아닌 모기가 괴롭힌다. 뜯어 먹고 배부르면 그만 하겠지 했는데 발끝부터 이마까지 얼마나 물렸던지 극적거리느라 밤을 홀딱 새고 말았다. 5시에 벨이 울리는데 덕분에 이미 난 깨어 있었다. 모기와의 혼숙은 아주 불편한 밤이었다.
공항에서 서울 사는 김창덕님을 만났다. 산을 벗 삼아 여러 번 해외 원정을 한 경험이 있는 분인데 이번 여행도 도반이 되어 가게 되었다. 한 동안 인사도 없이 지냈는데 뜻밖이라서 더욱 반가웠다. 9시가 넘어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어젯밤 잠을 못 이룬 탓에 곤한 잠이 쏟아진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곳이라서 잠시 졸았다는 생각인데 벌써 도착했다고 한다.
곤명으로 가는 직항로가 주2회 있다는데 좌석을 얻지 못해 베이징으로 오게 되었다. 3시 넘어서 비행기에 오르다 보니 공항에서 5시간이 넘도록 기다린 셈이다. 베이징 하늘은 황사를 일으킨 듯이 뿌옇게 쌓여 비행기가 날자 곧 도시가 보이지 않았다. 육중한 비행기가 기류가 불균형한지 뒤뚱거리며 날고 있다. 정상궤도에 올라서니 구름능선이 끝없이 펼쳐있다. 간간이 구름 없는 곳을 지날 때는 수천미터급 산들이 밧줄을 있듯 한 획으로 그어 있다. 정상궤도에 올라 비행을 할 때는 15km높이에서 800km의 속도로 달린다고 한다. 산야가 계곡과 어울러져 머릿속 뇌 모양처럼 호두 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산소 없는 무안 허공을 날면서 밀폐 된 창가에 앉아 창에 손가락으로 구멍이라도 뚫어 볼까하는 아찔한 생각을 해보았다. 허공에서 공중 분해되어 바람이나 될 내 몸둥아리를 상상해본다. 처음에 불안하게 떠오르던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마음이 편안하다. 비움이라는 말이 새삼 가슴에 사무친다. 구름이 층층이 쌓여 있다. 구름 위에 또 구름, 강한 태양이 내리쏟는다. 전복껍데기 안의 오색 빛처럼 흐르더니 동그란 무지개가 구름 위에 원형으로 떴다. 너무나 신기해 눈을 의심 했다. 분명 동그란 무지개가 후광처럼 구름 속에 피어있다. 자연의 위대함에 말을 잃고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아 합장을 한다.
가이드 마형이 준비해온 [티벳 대 탐사]를 보면서 3시간이 넘는 비행이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운남성 곤명공항에 도착하니 저녁7시 반이었다. 운남성은 중국의 남서부에 있으며 주변에는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이 있는 국경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정한 숙소로 돌아와 모두 한 방에 좁게 둘러앉아 긴 여정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위로 했다. 내일은 다시 리지앙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한다. 첫 비행기라서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하니 서둘러 잠을 청한다.
피곤하지만 알람 시간에 맞춰 일어나야만 했다. 아침 대신 숙소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공항으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간단하게 마치고 7시 30분발 리지앙 가는 비행기를 탔다. 위룽쉐산 국립공원으로 가는데 다시 차량으로 3시간을 가다보니 속초에서부터 여기까지 오기위해 이틀이나 걸렸다. 지난 시간이 버겁게 다가온다.
호타샤로 가고 있다. 호타샤는 호도협이라고도 하는데 위룽쉐산(5596m)과 하바설산(5396m)의 가파른 절벽 아래 급류가 흐르는 곳이다. 사냥꾼을 피하기 위해 호랑이가 이 계곡을 뛰어 넘었다고 하여 불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파른 산길을 버스로 이동하면서 높게는 3500m까지 올라갔다 내려온다. 벼랑 끝에 떨어진 마을이 아득하게 보인다. 곡예사처럼 위태롭게 운전하다보니 손잡이를 너무 힘주어 잡았는지 팔목이 시리하다. 아득하게 보이던 마을이 대구라는 지명인데 사방이 고산으로 쌓여 분지를 이룬 곳이다. 황폐한 땅에 옥수수를 주로 심어 바람 불면 붉은 수수밭이 일렁인다. 민박집에서 밭에 심은 상추를 뜯어다 고추장에 쌈을 싸먹는 맛은 이국의 낯설기 보다는 이웃과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분위기다.
점심을 마치고 양자강 부두가로 가서 강을 건너야 한다. 황토물이 무섭게 휘돌아 치는 넓은 강, 통통배를 타고 건넌다. 엉성한 배에 몸을 실고 강물을 바라보니 온 몸이 오그라든다. 한 쪽에서는 포크레인의 굉음이 하늘을 찢는다. 아마 멀지 않은 날에 이곳도 다리가 놓일 것이고 통통대던 뱃길도 없어지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뱃사공이 깊게 들이 마시던 담뱃불과 빈 배로 돌아가는 모습을 뒷걸음질 치며 바라본다. 배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한 시간가량 올라서니 빵차라고 하는 영업용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중호도협까지 왔다. 이제부터 하바설산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늘, 바람 한 점 없는 산길을 오르다 보니 몹시 힘겨웠다. 해발 3000m이상 되다보니 숨이 차고 약간 어지럽기도 하다. 고산병이 그렇지 하며 스스로 이해를 구해본다. 구름이 산 중턱에 머문 위룽쉐샨을 옆에 끼고 한 모퉁이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쏴하는 소리에 하늘을 보니 수백미터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다. 산 가운데를 막아선 폭포를 건너 건너편 기슭에서 바라보니 내가 폭포 한 가운데를 뚫고 걸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줄기는 협곡 저 벼랑 끝으로 떨어져 양자강으로 흘러간다.
땀에 흠뻑 젖어 걷고 있는데 소나기가 퍼붓는다. 갈증이 해소되었다고나 할까 그대로 비를 맞았다. 푸석거리던 흙먼지도 사라졌다. 이곳 날씨는 十 里 不 同 天 이라고 한다. 십리 안 하늘이 같지 않다는 뜻인데 오히려 변화무쌍한 날씨가 더위를 이길 수 있었다. 산 중에 깎아지른 협곡를 바라보며 쉬었다가는 주점이 있다. 산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산에서 내려 올 즈음은 저녁이었다. 양치기가 길 가득 메워 선 양떼를 몰고 집으로 가고 있다.
하바설산에서 내려와 저녁식사는 산 밑 산백련식당이라고 하는 곳에서 하게 되었다. 정원에 차려진 식탁은 전기가 없어 촛불을 켜고 밝지 않은 식탁 분위기다. 하루의 산길 여행을 더욱 따뜻한 추억으로 이끌었다. 여기서 숙소로 가는 거리가 버스로 2시간 가야한다고 한다. 사방은 깜깜하고 긴 시간 눈을 감고 오늘을 더듬어 보는 귀한 시간으로 다가왔다. 10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하니 몸이 천근이다.
드디어 위룽쉐샨에 가는 날이다. 산복을 꼼꼼히 챙겨 입산 수속을 밟는다. 모노레일을 타고 4560m까지 가는데 날이 짙게 흐려 숲이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정상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로 발길을 옮긴다. 잠깐 구름 틈 사이로 빙산을 보게 되었다. 눈이 부시게 푸른 히말라야와는 다르게 석회암처럼 뿌옇다. 전망대에서 오랜 동안 정상을 보려고 기다렸으나 끝내 보지 못하고 빗방울이 시작된다. 산속에 있으나 산을 보지 못하고 내려가야 했다.
동파산장(2900m)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산벗 절반이 식사를 하지 못했다. 고산병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몸을 회복시킬 겸 운삼평 산행을 하기로 했다. 산길 밑으로는 위룽쉐샨에서 빙하가 흘러 만들어진 백수하천이 푸르게 흐른다. 석회물이라 물빛이 아예 파랗다. 운삼평의 좁다란 밀림으로 들어섰다. 나무수염들이 고목에 달라붙어 원시림을 이루었다. 야생화 지천으로 피어있고 가을 따사로운 볕이 꽃잎에 내린다. 전망대(4680m)에 고산병으로 힘든데다 다시 3500m를 오르고 있으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잠시 한 발씩 쉴 때마다 별꽃 무리들이 환하게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산행을 마쳤을 때는 저녁 무렵이 되었다. 흑룡담 여강고성으로 갔다. 이곳은 8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목조건물로 된 마을이다. 10년 전에 세계유네스코에 등제 된 곳이다. 사평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옛 것을 사랑하고 지켜가는 소수민족의 긍지를 바라보게 되었다. 노지에서는 밤이 되자 장작더미에 불을 지펴 빙 둘러 모여 원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이는 춤판이 벌어졌다. 서로는 낯선 이국인이지만 손을 잡고 원을 만들며 함께 춤을 추었다. 소낙비가 내린다. 비를 흠뻑 맞으며 골목길을 한참이나 걸었다. 붉은 조명 아래 댄서들이 한 판 흥을 더하고 마을로 흐르는 냇가에 불빛이 어려 먹지도 않은 취기가 돈다. 곤명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리지앙으로 갔다. 밤 11시가 넘어 비행기를 타고 곤명 숙소에 왔을 때는 새벽으로 가고 있었다. 고산병의 후유증과 빡빡한 하루 일정에 지쳐 그대로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운남성에서 최고를 자랑한다는 구향동굴과 석림으로 간다. 먼저 구향동굴 입구에 있는 음취협을 배를 타고 노 저으며 협곡을 돌아 보았다. 이곳은 이족이 사는 곳인데 청춘 남녀가 협곡을 마주보고 서로 사랑하게 되면 나뭇가지를 타고 건너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협곡이 좁아 하늘이 명주실처럼 가늘게 보인다. 구향동굴로 들어갔다. 동굴 안에 쌍폭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가 온통 물안개로 가득하다. 굴 안에는 운동장만한 평지도 있어 원주민들이 민속춤을 추는 공연장까지 갖추어 있다.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 석림을 향해간다.
석림이라고 말해주는 이 없어도 단 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바위로 숲을 이루었다. 히말라야처럼 처음엔 바다이었다가 드러난 바위들인데 단 칼로 자른 듯 흔적이 여러 번 되어 있다. 한 번 융기 될 때마다 생긴 흔적이라고 하는데 천둥이라도 치면 곧 떨어질 것 같은 바위들이 위태롭게 앉아 있다. 높은 곳에서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는 석림의 풍경을 마지막으로 감상하면서 이제 집으로 가야할 배낭을 꾸려야한다. 내일이면 설악산 품으로 돌아간다. 바람처럼 떠돌아 다녔지만 여행이 주는 나만의 만족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 기회가 되면 난 또 다시 배낭을 꾸려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제3차 설악연맹 해외원정 산행에 산벗이 되어 주신 이상식회장님 그리고 박영규회장님, 김창덕님, 장수엽님, 이동근님, 문명운님 마지막으로 멋진 산으로 안내한 마익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천구년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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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희뿌연 설산이라...꿈 꾼 듯 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