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5:1-14
찬송가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1-8)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가기로 결단한 에스더는 금식 사흘째 되던 날 드디어 왕의 어전이 있는 뜰로 나아갑니다. 그 순간 왕의 기분에 따라 에스더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결단한 대로 행동합니다. 에스더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녀의 보증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에스더는 4장에서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4:16A)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에스더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금식하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였기 때문에,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각오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장면으로 연출될지 상상해보면 좋겠습니다. 긴박한 배경음악과 함께 단호한 표정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무겁게 걸음을 옮기는 에스더의 얼굴이 그려집니다.
(1)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제삼일에’ 즉, 금식하기로 하고 사흘째가 되었다는 말로, 아직 약속한 사흘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백성들과 사흘째까지 금식하며 기도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럼 사흘이 지난 다음 날인 나흘째를 결단의 날로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사흘째 되던 날 왕 앞에 나아가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왜 기도가 다 차기를 기다리지 않고, 사흘이 채 지나기도 전에 왕 앞으로 나아갔던 것일지 생각해 보았고, 이런 결론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에 어떤 강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강한 신뢰였습니다. 에스더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달라고 요청만 하고, 그냥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4:16B)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도 자기 시녀와 더불어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또 묻는 가운데 민족을 향한 애끓는 심정을 가지고 살려달라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지 이미 삼십 일이 지났기 때문에 더이상 어떤 소망을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기도하며 왕이 다시 자신을 찾게 해달라고 간구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녀에게 두려움이나 걱정과 근심이 없었겠습니까? 이미 왕의 총애를 잃었기 때문에 왕의 부름 없이 왕 앞에 나아가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명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그녀 안에 있던 두려움을 기도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겠노라는 약속이 그녀에게 보증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거나, 우리를 힘들고 어렵게 하는 환경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안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할 때 성령님께서 보증이 되어 우리 인생 가운데 영원토록 함께해주신다고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창문을 하나님을 향해 열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이 찬양의 가사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무슨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째 기도하던 와중에 하나님을 향한 확신을 가지고 왕 앞으로 나아갑니다. 비록 왕의 부름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당당히 왕후의 예복을 입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왕 앞에 나아갑니다.
(2)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왕은 이렇게 다가오는 에스더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에스더의 결의에 찬 모습이 무색하리만치 태연하고 또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에스더를 맞이하며, 자신에게 나아오는 것을 허락하는 의미로 금 규를 내밉니다. 왕도 당연히 자신의 부름 없이 자신에게 나아오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나아왔다는 것을 본 왕은 분명히 에스더에게 뭔가 소원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랑스러운 왕비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던 왕은 에스더에게 묻습니다.
(3)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것은 왕이 에스더를 얼마나 신뢰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이 실제로 나라의 절반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없겠지만, 설령 그렇게 원한다고 할지라도 그에 상응할 만큼이라도 해주고 싶은 왕의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4)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에스더는 지금 왕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일단 잔치 자리를 마련하였으니, 왕께서 신뢰하시는 최고위 신하 하만과 더불어 잔치를 즐기자는 것입니다. 왕이 이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왕은 즉시 하만을 급하게 부르고 하만과 함께 잔치에 참여합니다.
(6) 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하니
왕은 재차 에스더에게 똑같이 묻습니다. 잔치를 열 수 있다는 것은, 권세를 잡았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힘 있는 사람이 잔치를 베풀 수 있는 것이고, 게다가 그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나라의 왕과 신하 중 최고위 자리에 있는 하만이었으니 주최자의 권세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에스더에게 왕이 또다시 원하는 바를 들어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즉시로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었지만, 다시 한 번 신중한 태도를 취합니다.
(7-8)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하니라
에스더가 드디어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라고 말하자, 왕은 에스더를 또렷이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하는지 주의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은 또 다시 하만과 함께 잔치에 참여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마음의 소원을 왕께 고하겠노라고 합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왕이 이렇게까지 에스더의 소원을 들어 주어야 하는가 싶은 마음도 듭니다. 이만하면 되었다며 말하기 싫으면 말라고, 그냥 자리를 파할 가능성도 충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사건에 개입하셔서 그렇게 이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세우고(9-14)
하만은 굉장히 기뻤습니다. 왕은 뭇 신하들보다 자신을 더욱 높이고, 왕비는 왕과 더불어 잔치 자리에 다른 신하들은 전혀 없이 자기만 초대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11-12) 자기의 큰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지방관이나 신하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또 하만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나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
다만 딱 한 가지 모르드개의 태도가 그의 마음을 언짢게 하였습니다.
(13)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하니
모르드개는 과거에 하만에게 꿇지도 절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하만은 모르드개는 물론 유다 백성을 다 멸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이미 다 멸하기로 계획하였음에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나, 뜻한 바가 있기 때문에 일단은 참았습니다. 하만의 아내와 친구들은 하만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14)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이 이르되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가소서 하니 하만이 그 말을 좋게 여기고 명령하여 나무를 세우니라
이 사건에서 ‘에스더’라는 인물이 유다 백성과 전혀 상관이 없고, 또 모르드개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이었더라면 하만의 뜻대로 일은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를 이루시는 과정에는 사람의 어떤 계획도 온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자신 때문에 유다 백성들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음을 알았음에도, 하만을 찾아가서 무릎 꿇고 빌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당당히 그가 지나감에도 일어나지도 않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확신은 에스더를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설령 에스더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어떤 방법으로든 움직이실 그들의 보증되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서를 계속 묵상하다 보면, 아무리 인간이 계획한다고 할지라도 그 너머에서 일을 진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 앞에 놓인 상황과 환경 때문에 앞이 캄캄할 때도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지만, 비록 그러지 못하였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에스더는 처음에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지만, 모르드개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듣고,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우리라고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겠습니까? 어려운 일 당할 때 우리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 뿐이니, 무슨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하기 소망합니다. 그렇게 날마다 창문을 열고, 우리 삶의 보증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너무 두려워서 할 수 없다고, 하기 싫다고 주님의 뜻을 외면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끌어가시는 주님의 역사를 볼 때마다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다시금 주님 앞에 설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외면했던 에스더의 가슴을 뜨겁게 해주셔서 용기를 주셨던 주님, 저희에게도 이 땅에서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한 힘과 능력과 용기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주님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보다 더욱 더 지혜롭게 살게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멋지게 쓰임받을 수 있는 주님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에스더가 제삼일에 왕 앞에 나아가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에스더는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왕의 물음에, 왜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3. 모르드개는 왜 끝까지 하만을 향하여 꿇지도, 절하지도, 일어나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4.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창문을 여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작성: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