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기 강해(26)
보리 떡 한 덩어리
본문 : 삿7:9-14
<숫자를 줄여라>
미디안 연합군의 침략에 맞서
기드온은 군사를 모으는 나팔을 불었습니다.
나팔 소리를 듣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는 사신을 보내
군사를 모았습니다.
감사하게도 3만 2천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다”
(2절)고 하시면서,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을 구원했다’고
자랑하지는 않을까를 염려하셨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전쟁터에 나온 사람치고
두려워 떨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가라는 얘기지요.
그래도 다 가지는 않고
(2만 2천명이 떠남) 만 명은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백성이 아직도 많다’고
말씀하시면서 물가에 인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을 마시는 것을 보시고
남을 자를 택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물을 마시게 한 다음“(무릎을 꿇지 않고)
손에 물을 담아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과...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그룹을 택하실 지는 하나님 마음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고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은
9천 7백 명입니다(6절).
하나님은 의외로 300명을 남기시고
나머지는 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특공대로 쓰일만한 용사들이
남은 것이 아니라
어쩌다 적은 수에 든 사람들이 남은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전쟁의 승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아니라 ..
오직 하나님에게 달려있음을
분명히 알리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도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순종합니다.
이제 기드온과 300명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생각, 사람의 생각>
그 후의 상황을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드온은 얼마나 낙심이 되었을까요?
출애굽할 당시와 마찬가지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여 주시면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할 테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시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셔도 부족할 텐데....
거꾸로 애써 모은 사람들을
말로 안 되는 방법으로 흩으시고
달랑 3백 명만 남겨 놓으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얼마나
원망이 되고 낙심이 되었을까요?
또 남은 300명은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특별히 남겨져서 감사했을까요?
아마 그들도 왜 자신들이 선택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특이한 자세로 물 먹은 죄밖에 없는 것입니다.
미리 돌아가지 못한 것은 후회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보다 더 힘세고
건장해 보이는 사람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왜 자신이 남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의
자살 특공대인 가미가제처럼)
자살 특공대가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회를 봐서 도망치려는
계획을 세운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높고
깊은 계획이라 할지라도
때로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단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높고 깊습니다.
이것을 인정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도,
내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 내 생각(계획)과 다르게 응답하시더라도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진영으로 내려가라>
하나님은 그날 밤에 기드온에게
미디안의 진영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십니다.
9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진영’은 물론 미디안 진영을 가리킵니다.
‘내려가라’는 명령은 미디안 연합군과
싸우러 내려가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또 다시 완료형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리라.”
‘넘겨줄 것이다’가 아닙니다.
열심히 싸우면 ‘넘겨줄지도 모른다’가
아닙니다. 이미 넘겨주었습니다.
이미 이긴 싸움이니
염려하지 말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
아직 그만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징표를
보여주셨기에 여기까지 오기는 왔는데
아직도 불안하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머리와 마음은 다를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불안하고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기드온 역시 이 전쟁이
‘하나님의 속한 전쟁’이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려움과 불안감은 어쩔 수 없습니다.
<네가 두려워하거든>.....
하나님은 기드온의 불안해하는
마음을 아셨습니다.
이런 소심한 사람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인내도 대단하십니다.
벌써 두 번이나 징표를 보여 주셨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찾아 오셔서
“큰 용사”로 부르시며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맡겼을 때,
기드온은 “내게 말씀하시는 이가
주 되시는 징표”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자는
그가 대접하려 가져온
염소 새끼 고기와 무교병에
반석 위에 놓고 국을 부어 적시게 한 다음
불이 올라와 태움으로
말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또 군대를 모은 후
많은 사람들이 모이자,
겁이 난 기드온이..
“정말 제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 하나이까”하고
물으면서 징표를 요구하였습니다.
그 때는 자기가 직접
그 방법까지 제시했습니다.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둘 테니
밤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정말 그대로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슬을 머금었는지
짜니 그릇에 가득 차게 나왔습니다.
그래도 의심이 가시지 않는
기드온은 반대로
“양털만 마르고 주변 땅은
이슬에 젖게 해 달라”는
징표를 구했습니다.
이 징표는 하나님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징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요구대로
그대로 해 주셨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보니 정말 양털은 뽀송뽀송하고
주변 땅은 다 젖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은 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그 징표를 경험한 후
“정말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 하시는구나”를 확신하고,
지금 미디안과 마주 진을 치고
싸울 준비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숫자를 삼백 명으로 확 줄이시자 ...
갑자기 불안감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온 것입니다.
머리로는 동의를 하는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려움과 불안감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마 기드온은 하나님께
또 다른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번에 마지막으로
‘이번만, 이번만’ 하면서
‘양털 뭉치 표징’을 이미 요구했던 터라(삿6:39),
차마 자신의 입으로
그 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먼저 제안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 번째 징표를 통해서
그에게 확신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10-11절>
10절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11절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왜 하필 적진으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표징을
왜 적에게 가서 확인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활동 영역은
제한되지 않는다는 사실.....
곧 모든 열방과 민족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구원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로 인하여 열방(列줄열 邦나라방, 여러나라)을
구원하시기 위합니다.
<출19:5-6>
5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절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제사장 나라의 역할은 하나님과
열방 사이의 중재가가 되어야 함)
그런데 이스라엘이 오히려
선민의식에 젖어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헌신하지 못함으로...
그 촛대를 다른 민족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한민족이 하나님의
선한 선교도구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우리가 영적인 교만에 빠져 안주하거나,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구원사’입니다.
심지어 귀신도 하나님의
넓은 영역 안에서 활동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 우주 안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우주를 다스리고 섭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기드온을 향해
‘적의 진영으로 내려가라’는 명령은 ...
미디안의 연합군이 아무리 강성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적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적진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시며...
적군들의 입과 눈도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계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발락’이라는 모압 왕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미워하여
‘발람’이라는 거짓 선지자를 돈으로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감동시켜
축복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12절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그들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사람은 메뚜기의 수와 같고,
낙타의 수는 해변의 모래와 같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수가 13만 5천명이나 되는 것을
상상한다면 과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굳이
이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으니 겁을 먹으라고
이 표현을 썼을까요?
그렇게 많아 보여도 실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의도입니다.
이 표현은 인간의 강성함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강성함이 결국 하나님의
섭리 안에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복선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많은 군대의 수가 많다하여도
결국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군대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해 보십시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
인간의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저와 성도님들의 영안이 열려...
‘오늘도 내 안에 함께 하여 주시는
성령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두려움 가운데 떨며
살지 말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간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표징은 무엇일까요?
<13-14절>
13절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14절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기드온은 그곳에서 진영의 경계를 지키던
미디안 병사들이 나누는
꿈 이야기를 엿듣게 됩니다.
미디안 병사 한 사람이
자신의 꾼 꿈 이야기를 하는데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을 쳐서 무너뜨렸다”
(13절)는 내용입니다.
그 꿈을 듣고 있던
다른 병사가 놀라운 해석을 합니다.
14절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그 병사가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꿈과 말을
지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기드온의 손에 넘기셨음을
징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란
극히 연약하고 비천한 것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먹는 주식은 밀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보리는
짐승들의 사료로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웬만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리떡은 잘 먹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흉년이 들어 궁핍할 때나,
또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가난한 빈민층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보리떡입니다.
우리로 하면 ‘개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리떡은 그처럼 별로 가치가
없는 물질입니다.
거기다가 보리떡은 힘도 없습니다.
집채만 한 바위가 아니라
보리떡 한 덩어리가 굴러 와서
미디안의 장막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기드온과 그의 용사들은
보리떡 한 덩어리처럼
연약하고 미천하지만 ...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런 놀라운 승리가 가능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는
당시 기드온이 가지고 있는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리떡 한 덩어리’와 같은
약한 자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미디안에게는 ‘칼날’과 같이
두려운 존재로 여겨질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보리떡 한 덩어리’와 같은
‘약한 자를 통한 구원’은....
기독교 복음의 대단히 중요한 원리입니다.
예수님도 약하고 천한 동네(갈릴리)에서
처음 복음을 전하셨고,
가장 작은 자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맺는 말씀>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오늘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사람은
‘보리떡 한 덩어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 ‘약한 자를 통해’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의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숫자를 자랑하는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 쓰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마지막 날 자신의 힘이
얼마나 무력한지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겸손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저와 성도님들 같은
‘보리떡 한 덩어리’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 ‘약한 자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그저 한 덩어리의
보리떡과 같은 존재라는 고백과 함께..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