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속에 나를 심으며
정명화 스콜라스티카(필립보 반)
성서 공부를 하면서 읽는 순간순간마다 묵상 거리가 많았지만 통 털어 느낌을 적어 볼까 합니다. 성경을 성서 반에 들기 전에 1년에 한 번씩 2년반에 걸쳐 작심하고 읽긴 했으나, 읽을 땐 좋은 말씀도 많고 때로는 황당한 사건도 많다고 생각하며 지식과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소설 읽듯이 읽어 온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서 100주간을 시작하고 나서는 말씀 하나하나가 나에 대한 묵상, 세상에 대한 묵상, 인생관의 척도와 지표가 됨을 알았습니다. 처음엔 겉만 도는 묵상에서 나에 대한 내면의 묵상으로 들어가 이야기하고 깊은 게 많은데도, 속에 있는 말들이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는 데는 많은 망설임과 주저함이 뒤따랐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깨트리자니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깨져 보자’하고 마음먹고는 나를 던져서 이야기한 날로부터 사흘은 내가 경솔하게 나를 내보였나 싶은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괜히 약이 오르며 속이 상하였습니다. 그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을 즈음 다시 한번 나를 드러내 보았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포장에 대한 훼손이 조금은 덜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뒤로는 자주자주 나를 내 나름대로 드러내며 성서 말씀에 동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말씀은 생활이며 삶이지 모셔 놓은 글, 또한 한 사람의 자서전을 쓰기 위한 글은 더욱 더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글 속에 자신을 녹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남의 불행을 보면 ‘야! 나는 그 일을 안 당해 다행이구나.’ 남의 행복을 보면 ‘쟤는 왜 무엇 때문에 나보다 행복한 거야’ 하기보다 하느님의 의도하심을 찾고 슬픔을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안타까워하고 기쁨을 당한 사람의 마음에서 즐거워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내 생활의 일이 순조롭지 않을 때에도 주님께서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좋으신 하느님! 당신을 알고 살아가는 저희와 또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평화를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