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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은 사람들에게 파란의 마지막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최초로 닭 변이보도를 내보낸 경기방송국의 완곡한 거절로 부랴부랴 미란이 직접 찍어 유튜브 방송에 내보냈다.
“얼마 전까지 경기도 소재 에이플러스 백신연구소 신입연구원으로 있던 연파랑입니다. 연구실에서 멸균복으로 갈아입고 시험실 테이블 위의 음료수를 먹었는데, 이렇게 닭으로 변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닭으로 변이된 연구원들은 닥치고 양계장으로 옮겨져 비참하게 죽었고요. 이 방송을 시청하시는 모든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닭으로 변이되어 사망하는 연구원이 없도록 에이플러스 백신연구소와 닥치고 양계장의 부당거래와 살인혐의를 처벌해주십시오.
저는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서 곧 닭으로 죽습니다. 닭으로 살면서 산란계의 신세와 여성의 위치가 많이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알 낳는 존재로 설계된 산란계는 자본주의의 무한탐욕이 만들어낸 산물이고, 모성을 신성시하고 출생률을 강조하는 가부장제 사회 또한 여성의 가치와 존엄성을 출산과 양육에만 묶어두고 있습니다.”
파란의 목소리가 분노와 슬픔으로 격앙되었다.
“원래 닭의 자연수명은 10년에서 길게는 30년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빨리 길러 많이 먹기 위한 인간의 욕심이 미국 공장식 축산업이라는 기형적인 사육방식을 고안해냈습니다. 뉴욕 의대 도리스 부처 박사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하급수적인 닭 사육을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독감 한 번의 유행에도 미국에서만 5만 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요.
인류와 가장 친밀한 가축 중 하나인 닭이 가축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3500년 전이라고 합니다. 동남아시아에 벼농사를 시작하는 즈음에 닭의 조상이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오면서 가축화가 시작되었고, 이후 동남아에서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진출한 닭은 가축화 이후에도 상당 기간 숭배의 대상으로 식량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사시사철 신선한 재료 구입이 가능합니다. 굳이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범벅에 고름까지 가득한 공장식 축산 닭을 먹을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즉시 육식을 줄이는 현명한 선택을 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당신의 몸과 다른 존재와의 공생을 위해서 말입니다. 인간으로 살다 닭으로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호소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미란이 우려한 대로 닭을 앉혀놓고 인간 목소리를 더빙했다는 의혹이 제일 먼저 제기됐다. 공장식 축산업계 역시 조작된 영상이라며 당장 영상을 내리라는 협박과 더불어 집단소송을 걸었다. 파란의 간절한 호소는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과 공장식 축산업계의 거대자본권력에 떠밀려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제 인간들에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고, 진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