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공원 남2문,
횡단 보도 옆에서 한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얀 눈은 나란히 서 있는 겨울나무 빈 가지 위에 앉았다가 지금은 땅 위에 흰 옷을 벗어 놓고 사라졌습니다.
첫 눈이 오면 만나자고 한 약속이 있었을까요 ?
지켜보면 그 약속이 깨질 것 같아 보고도 못 본척 자리를 피해 줍니다. ^^^
나무가지가 휘청거릴만큼 큰 눈이 소나무 위에 몸을 풀었습니다.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어 남2문 앞은 사람 그림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 달리는 사람들 >
앞만 보고 달려오다 문득 하늘에 계신 '그 분' 앞에 서게 된 남녀.
벌거벗은 몸을 감싸 주듯 하얀 눈이 머리에도 등에도 팔 위에도 소복소복합니다.
그래도 발가벗은 몸을 다 가려주지 못해 '그 분' 앞에 서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인간의 한계를 우리는 영영 벗어날 수 없나요 ?.
< 사랑 >
미운 정도 들었을 때 사랑은 부족한 반을 다 채우고 온전한 사랑의 모습을 획득합니다.
지금은 토라져서 돌아서 있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미운 마음사라지고 돌아서면 더 뜨거운 입맞춤,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화의 문을 거쳐 미술관 앞으로 오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까맣게 잊어 버렸던 추억 몇 토막을 찾으러 눈밭을 기웃거릴 사람들, 아름답습니다.
텅 빈 공중전화 박스.
내 곁을 떠나간 '그 사람'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버린 공중전화박스는 잊혀져 버린 추억 한 조각입니다.
" 얼큰한 만두 좋아하니까, 묵은 김치 꺼내 송송 썰고, 뻘건 김치국물 그대로 쏟아 부어서 …… "
점점 많아지는 사람들을 지나치는데 얼핏 어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습니다.
둥근 밥상 주위에 밥상처럼 둥글게 모여 '얼큰한 만두' 로 찬 바람에 언 뱃 속 뜨겁게 녹일 그 아주머니의 식구들이 어른거립니다.
조각작품 <빛의 진로> 앞에서 사람들이 가던 길 멈추고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능선 위 토성길에서 작은 깔판 썰매처럼 타고 활강(?) 하던 한 아줌마, 경비한테 "딱" 걸렸습니다.^^^
경비는 화가 나 있지만, 사람들은 그 아줌마 한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틈을 봐서 아줌마는 도망 치는데 , 돌이 없어(?) 눈을 던지는 경비를 보며 사람들의 웃음소리 드높았습니다.
웃음은 전염이 된다고 했나요, '아줌씨'가 있다면 "아저씨'도 있는 법.
빨간 우산 쓴 눈사람 옆에 빨간색 노란색 옷 입은 어린이가 사진을 찍자,
나도 질세라 까만색 입은 "아저씨"가 되어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운명론을 위한 하나의 제안>
오늘은 1월 4일 월요일, 아직도 새해입니다.
하늘이 정해준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운명론,
조각기둥에 새겨진 네 줄은 우리들이 싫어하는 " 죽을 4 ",
그 옆의 아홉 줄은 화투판에서 노름꾼이 좋아하는 큰 수 ' 가보 9 ' 라고 쉽게 풀어 봅니다.
우리네 삶이 슬픈 일 네 가지, 기쁜 일 아홉 가지로 짜여 있다면 9 - 4= 5 , 많이 남는 장사 아닐까요 ?
오늘도 어김없이 왕따나무 앞에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 대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올림픽공원의 명물이 된 왕따나무는 홀로 서 있어도 이제는 외롭지 않은 나무로 제 이름값을 잃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더라도 홀로 살아가야 하는 외로운 왕따나무, 맞지요 ?
<아야쿠쵸를 봄>
아버지가 배낭을 메고 빨간 썰매 두 대에 아들 딸 나란히 태우고 눈길을 걸어갑니다.
어머니만 '희생'의 명사인가요, 세파를 헤쳐가는 것은 어쩌면 아버지가 더 힘들지 않을까요 ?
세월이 갈수록 어깨에 힘이 빠지는 아버지는 그래도 미끄러운 눈길을 자식을 위해 헤쳐가고 있었습니다.
<모비딕-신념을 쥐고 있는 형상>
눈 폭탄, 103년만의 폭설.
그 눈 속에서 외다리 에이허브 선장은 두 주먹 불끈 쥐고 '흰고래" 모비딕을 잡으려고 포경선 뱃머리에 서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 쉬운 일이 아니라서 지금 공원 밖 길 위에서는 눈과의 싸움으로 난장판이 벌어졌겠지만,
한 걸음 비켜서서 이 안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의 따뜻한 얼굴과 말들, 보여주고 싶은 한 나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