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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 장수 골리기 4.************* …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멸망당할 것이며 … 선도를 모르는 인종은 멸종당할 것이다 보칠산에서 간신히 수명연장을 허락받고 돌아온 신진사네는 또 뜻하지 아니한 근심을 만났으니… 세상살이 잠시라도 근심 끊일 새 있으리오마는 명이 긴 며느리를 찾아 당년으로 맞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렷다. 인간이 제 명도 모르거늘 하물며 남의 명을 어찌 알겠는가? 어디 가서 명긴 색시감을 구해올꼬? 먹는 게 살로 안가 밤에는 잠도 안와 술을 마셔도 췌질안아 서도 누워도 앉아도 편편치 않아. 요렇꼬롬 고민고민하다가 신진사는 불현듯 털큰중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것다. 그리하야 성후에게 당나귀를 준비하라 이르고 여장을 꾸려 구영사(九零寺)가 있다는 물골의 교광산으로 향했다. 남산골을 떠나 한나절을 걸어온 성후는 무거운 입을 떼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님! 어디로 가는 것이옵니까? 물골의 교광산으로 가느니라. 거기는 왜 가옵니까? 털큰중을 만나러 가는 것이니라. 그 분을 왜 찾아가는 것이옵니까? 그 분만이 우리 집안의 우환을 해결할 수가 있느니라. 아버님! 그런데 나귀를 타고 가시지 왜 그냥 걸어가십니까? 음! 그것은 대사님을 모시고 올 소중한 나귀이기 때문이니라. 저녁 나절이 다 되어 신진사와 신도령은 물골의 교광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교광산! 보칠산 달팔산과 더불어 물골의 삼신산 중의 하나. 임진왜란 땐 비운의 장수 홍계남이 의병을 조직하여 왜놈들을 괴롭히던 본거지가 되었던 산. 그 산속 깊은 곳에 구영사는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신진사가 주지승이라는 심현래 대사에게 들은 대답은 저으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잘 몰흐겠는데요..... 조실 스님께선 워낙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싸돌아 당기시니깐요. 언제 돌아오실지도 잘 몰흐겠는데요. 신진사가 거기서 다만 확인한 것은 털큰중이 구영사의 조실이라는 사실 하나였다. 다행히 심현래 주지의 배려로 하룻밤을 객방에서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나귀를 끌고 터덜터덜 한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처량하게 나귀를 끌고 가는 신진사의 꼴이 우스웠던지 샘가에서 빨래하던 아낙네들이 수군거렸다. 배장수 골리기 배장수 골리기 이상한 사람들이네. 나귀를 왜 그냥 끌고 가지? 타라는 나귀를 뭐 폼으로 델고 다니나? 폼으로 델고 다니려면 적토마 같은 것쯤 되야하는 거 아녀? 아이가 몹시 피로해 보이는데 아이라도 태우고 가지. 그 말을 들은 신진사는 옳게 생각되어 성후를 나귀에 태웠다. 그러구러 한참 가는데 경노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꼬부랑 고개를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할아버지가 넘어오다 신도령을 보더니 노발대발하는 것이었다. 아니, 어린 것이 싸가지도 없지. 어른은 걸리고 팔팔한 아이놈은 타고 가다니, 경로효친 사상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이놈아! 꼬부랑 할아버지는 꼬부랑 지팡이를 휘두르며 성후를 나무랐다. 성후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얼른 내렸다. 그리고 아버지를 타라고 하였다. 신진사는 당나귀 등에 올라탔다. 꼬부랑 할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애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학실히 시켜놔야 하능겨. 시살 버릇 여든까지 가능겨. 유야원 앞을 지날 때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마악 소풍에서 돌아오던 젊은 엄마들이 기절초풍을 하면서 신진사를 흉보는 것이었다. 세상에... 먼길을 가는 모양인데, 자기만 타고 어린 아들은 걸리다니 쉰세대 아빠들은 다 저렇다니까... 신진사는 겸연쩍어 신도령도 나귀 등에 함께 타도록 하였다. 신진사 부자를 동시에 태운 당나귀는 휘청거렸다. 마치 망년회 때 사흘 연속 술을 들이킨 사람처럼 갈짓자를 그리는 것이었다. 그때 동물애호협회 의 류두형 회장과 강명구 부회장이 지나다 보고서 신진사를 나무랐다. 여보쇼! 선비께서 지금 하고 있는 짓이 무슨 죄에 해당하는지 아쇼? 그게 바로 동물학대라는 거요. 우리 동물애호협회의 당나귀 보호법에 의하면, 당나귀 앞에서는 절대로 당귀작설차를 마시면 안되며, 그 이유는 당나귀를 작살내는 줄 알고 당나귀가 놀라기 때문이요. 또 당나귀 등에는 2인 이상의 동시 탑승을 절대로 금하며 중량 100근 이상의 하물을 적재하면 과적으로 처벌을 받게 되어있는데 그걸 모르셨슈? 선비는 3일 구류를 살아야 되겠습니다. 아이고! 소생이 잘 모르고 그랬습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습니다. 선처하여 주십시요. 에, 그럼 말이요. 당나귀에게 속죄하는 뜻으로 지금부터 집에까지 당나귀를 업고 가든가 메고 가든가 하시요. 이건 그동안 당나귀를 혹사한 댓가요. 별수없이 신진사와 신도령은 근처의 농가로 들어가 장대를 구하여 당나귀의 네 발을 앞뒤로 묶어 어깨에 들쳐메었다. 벌벌긴다는 과천을 지나 성수대교 입구에 다달았을 때 동네 쪼무래기들이 신기한 모습을 보고 우루루 따라왔다. 그리고 저마다 왁자지껄 요란스럽게 떠들었다. 사람들이 몰리고 요란스럽게 떠드는 통에 당나귀는 놀래서 뻐두둥거렸다. 오랜 시간 당나귀를 메고 오느라 지쳤던 성후가 그만 장대를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 힘의 중심이 쏠리면서 신진사도 장대를 놓치고, 당나귀는 다리 위로 떨어지고 말았는데... 아아 부실공사로 며칠 전에 마침 다리가 끊겨져 나가고 없었던 터라... 그만 당나귀는 강물 속으로 풍덩 소리도 요란히도 빠지고 말았다. 신진사와 신도령의 안타까운 발동동 속에 당나귀는 그만 용궁으로 행차하시고 말았다. 교광산까지 찾아가서 털큰중을 만나지도 못하고 게다가 할부로 뺀 당나귀마저 잃어버리고 돌아온 신진사는 그만 몸져 눕게 되었다. 애고 아들이 가기 전에 애비가 먼저 가게 생겼구나. 그래도 자식 앞세우지 않고 내가 앞서니 다행이구나 하고 신세타령을 하고 있는데 돌연히 아, 글씨 신도령아 우우울지이이이 마아아라~ 터어어얼크으으은주우우웅이이이이 있다아아아~ 하며, 털큰중이 찾아와 뿌린거 아니것서유. 그것도 두달만에.이에 신진사 얼매나 반가버스면..... 나비 꽃 본 듯, 고양이 생선 본 듯, 기러기 물 본 듯, 방자 향단이 본 듯, 견우 직녀 본 듯, 당명황 양귀비 본 듯, 진성여왕 각간 위홍 본 듯, 요석공주 원효대사 본듯, 천추태후 김치양 본 듯, 옹녀 강쇠 만난 듯, 보영이 자원이 접한 듯, 일월녀 보칠산 만난 듯, 보선발로 뛰어 나와 털큰중의 손을 덥석 잡고 목이 메어 버리는 거라… 그때 구성진 가락이 있어 들리는 소리… 목이 메어~ 불러보는 그 사람을 아시나요~ ~ ~ 고승대덕이시여! 정말로 대사님을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저입니다. (어허 몬쇼린감? 잘 끊어 읽어 보랑께.) 어찌 이제사 오시나이까? 어엉, 흑흑 꺼이꺼이 찔찔짤짤… 사람이 너무 반가우면 말이 안나오는기라. 신진사 한참 문밖에서 털큰중의 손을 잡고 울다, 울다 지쳐서 가슴에 빨갛게 멍이 든 뒤에 정신을 차리고 털큰중을 큰방으로 모셔 들였다. 그리고 보칠산 꼭대기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전수 보고하였다. 완죤히 수로우비지오(修勞又非知誤) 틀듯이 몽땅 빠짐없이 전 진짜 처녀를 가리는 법부 말짱 배장수 곯리기 배장수 곯리기 썅 톡톡 털어 이야기 하였다. 추남중이 사자를 보내 잡아들여 징치한다는 대목에서는 털큰중의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그렇거나 말거나… 대사님! 명긴 며느리를 어떻게 하면 맞아 들이리까? 염려 마시오 신진사.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매파를 시켜 우선 중신을 서게 하고 사주를 가져오면 내 궁합을 보아 드리겠소. 성명과 사주를 보면 명이 긴지 짜른지 담박 알 수 있소이다. 또 관상이란 게 하나도 어려울 게 없소이다. 앞을 보면 아플 팔자, 뒤를 보면 뒤질 팔자를 알 수 있는 게 바로 관상의 요체올시다. 음! 어째, 이상하다… 아니, 신진사! 내가 하는 말이 믿기지 아니한단 말이오? 아, 아닙니다. 믿기지 않다니요? 대사님 말씀이라면 콩으로 팥죽을 쑨대도 믿고요,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그러려니 합니다요. 관상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규수의 관상을 보아야 하는 것이니까, 우선 전명궁(戰命宮)과 천정궁(天廷宮)을 살펴서 연분을 알아낸 후 마지막으로 수명궁(壽命宮)과 지력궁(地力宮)을 살펴보면 수명을 알 수배장수 골리기가 있지요… 그리고 신도령이 3대 독자라 했으니, 다남상(多男相)을 갖춘 규수라면 금상첨화가 되겠군요. 하하하… 아이고, 대사님! 무진 감사하옵니다. 이 은공 죽어도 잊지 않것습니다. 올가을에 추수하면 지가요, 구영사에 쌀 백섬을 확실히 시주하겠습니다. 참 그런데, 신진사! 추남중의 머리칼을 자른 게 있지요? 네. 있을 겁니다. 신진사는 신도령을 오라 하여 겨드랑이에 감추었던 추남중의 털을 보여 주었다. 털은 이미 겨드랑이에 박혀 석달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내털마냥 잘 자라고 있었다. 그걸 한참 들여다보던 털큰중은, 신진사, 이 아이는 북두칠성의 공력을 힘입어 앞으로 이 나라 바돌계의 국수(國手)가 될 것이요. 단 한사람 남두칠성의 공력을 입은 자가 아니면 이 아이의 적수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좋은 사부를 맞아들여 이 아이에게 바돌을 가르치도록 하시오. 그리하면 먼후일 한대국의 바돌계를 완죤 통일하오리다. 그리고 주의할 점은 절대로 겨드랑이의 이 털이 뽑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털이 없어지면 기력(棋力)도 같이 없어진다는 걸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론 이 아이를 유고치로라고 부르세요. 하는 것이다. 이말을 들은 신진사 돌연 털큰중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아들 신도령에게도 얼른 무릎을 꿇고 사부의 예를 취하라고 호통이었다. 성후는 얼른 아버지 신진사가 시키는대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털큰중은 당황하여 신진사를 만류하였다. 신진사,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좌정하세요. 아닙니다. 대사님! 누가 제 자식에게 바돌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대사님이 아니시면 이는 진정 불가능한 줄 압니다. 이왕 목숨을 건져 주셨으니, 사람도 만들어 주시옵소서. 우리 집안에 자식이라고는 저 녀석 하나이옵고 집안의 기둥입니다. 염치없는 부탁이온 줄은 아오나 뿌리치지 말아 주옵소서. 사부님! 물에서 건져주셨으면 보따리도 찾아주셔야 하는 것이옵니다. 소제(少悌)를 받아주시옵소서. 신진사 부자의 뚝심은 이미 정평이 나있는 바다. 보칠산 꼭대기에서 두 중에게 빌어 수명 연장을 허락받은 경험이 있다. 신진사의 간곡한 부탁과 신도령의 애원에 털큰중은 가타부타 대답없이 두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털큰중은 몹시도 괴로운 표정이다. 신진사는 털큰중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애가 타고 장이 끓는 가운데 초조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한식경이나 말없이 명상에 잠겨 있던 털큰중은 이윽고 큰 결심을 한듯 눈을 뜨더니, 아아 이것은 운명인가? 숙명인가? 이것이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요. 좋습니다. 그러나 신진사! 과연 신도령이 국수(國手)가 될 자질이 있다면 소승이 가르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포기하겠습니다. 오늘이 며칠입니까? 유월 그믐입니다. 선산이 어디지요? 기경도 안성골입니다. 그곳에 무슨 특별한 거처가 있습니까? 예. 거기 안성골의 상태봉이라 하는 마을에 마이산이 있사온데 그곳이 선영입니다. 소생의 별장도 그 근처에 있사옵니다. 그럼 선산을 먼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내일 이곳 남산골을 출발하여 안성골로 갈 여장을 준비하여 주시옵소서. 칠월 칠석날까지는 도착하여야 합니다. 신도령도 함께 동행하도록 차비를 하여 주십시오. 혼사는 선영을 살펴보고 고제를 지낸 후에 즉각 추진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정 고맙습니다. 대사님! 다음날 하인들도 딸리지 않고 신진사와 신도령 그리고 털큰중 셋만 남산골을 출발하여 기경도 안성골을 향하여 떠났다. 닷새째 되던날 안성읍에 도착하였다. 그날이 마침 안성장이었다. 그래서 가는 날이 장날이다 하는 속담이 이때 생겼다. 안성은 경기와 호남의 갈림길이고 삼남의 화물이 모여 쌓이기 때문에 공장(工匠)과 장사꾼이 모여 들어서 한양 남쪽의 한도회가 되었다. 그러나 읍 밖은 비록 평지라 하여도 땅에 살기가 있어 살만한 곳이 못된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산되는 유기는 천하제일이고 과일의 집산지로도 유명하다. 신진사 일행은 평택에서 일찍 출발하였던 관계로 아직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다. 그들은 장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오죽하면 속언에 소란스럽기는 장바닥 같다고 했을까. 정신이 산란할 정도로 장바닥은 시끄러웠다. 다 떨어진 옷에 찌그러진 깡통을 든 각설이의 타령이 껄찍하게 들려왔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으흐흐 이놈이 이래 봬도 정승판서 자제분으로 팔도감사 마다하고 돈 한푼에 팔려서 각설이로만 나섰네 지리구 지리구 잘이한다 이전 저전 다 버리고 아저씨 전으로 돌아왔소 오늘 장의 재수는 천 냥 만 냥 재수요 억십만 냥 남으시고 우리같은 인생들 돈한푼만 줍시소 지리구 지리구 잘이한다 품바품바 잘이한다 한 일자 들고봐 일월이 성성 해성성 밤중 밤중 오밤중 안성장이 완연하다. 각설이는 각설이타령 말고도 새우젓타령 엿타령 탓타령 등의 각종 타령을 때로는 껄찍하게 때로는 구성지게 불러 제켰다. 그의 깡통에는 지전이 수북하게 쌓였다. 돈 쌓이는 재미 때문인지 각설이는 더욱 신이 나서 타령을 불러댔다. 아주 매두리(枚斗俚)로 부르는 것이었다. 일전 한푼을 주었네 금일돈이 일전이요 이전 두푼을 주었네 이젯돈이 이전이요 삼전 서푼을 주었네 산판돈이 삼전이요 사전 너푼을 주었네 상여돈이 사전이요 오전 닷푼을 주었네 아침돈이 오전이요 육전 엿푼을 주었네 고깃돈이 육전이요 칠전 칠푼을 주었네 감방돈이 칠전이요 팔전 팔푼을 주었네 사고팔고 팔전이요 구정 구푼을 주었네 소갯돈이 구전이라 십전 열푼을 주었네 기생돈이 십전이라 5.******************** 역사 속에 사는 사람은 의연하고 선도 속에 사는 사람은 신선하다 신진사도 털큰중도 걸음을 멈추고 껄껄거리면서 들었다. 각설이는 신명이 나서 장타령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춘천이라 샘밭장 신발젖어 못 보고 구만리라 홍천장 길이멀어 못 보고 이귀저귀 약주장 당귀많아 못 보고 한자두자 삼척장 배가많아 못 보고 명주바꿔 원주장 값이비싸 못 보고 횡설수설 횡성장 에누리에 못 보고 값도많은 강릉장 값이싸서 못 보고 오징어라 속초장 풀묶느라 못 보고 엉성드뭇 고성장 심심해서 못 보고 철떡철떡 철원장 길이질어 못 보고 영넘어라 영월장 담배많아 못 보고 어화저화 김화장 놀기좋아 못 보고 회회충충 회양장 길이험해 못 보고 정들었다 정선장 갈보많아 못 보고 화목많은 화천장 길이막혀 못 보고 양식팔라 양양장 쌀이많아 못 보고 지금왔다 인제장 일바빠서 못 보고 안창곱창 평창장 국술좋아 못 보고 약산이라 영변장 핵사찰에 못 보고 이강저강 평강장 강물없어 못 보고 아바이라 함흥장 냉면맛에 못 보고 기생좋다 평양장 풍류잡혀 못 보고 미인많다 강계장 장가들라 못 보고 박아박아 박천장 뒹구느라 못 보고 안고추는 안악장 어지러워 못 보고 이술잡수 안주장 술취해서 못 보고 정어리라 청진장 쌍고동에 못 보고 껑충뛴다 제천장 신발없어 못 보고 팔경이라 단양장 경치좋아 못 보고 법주사라 보은장 불공하랴 못 보고 바람분다 청풍장 선선해서 못 보고 술맛좋다 청주장 술먹느라 못 보고 양반님네 예산장 예산틀려 못 보고 온천이라 온양장 건달많아 못 보고 능수버들 천안장 늘어져서 못 보고 엄벙중천 충주장 비료주랴 못 보고 곰나루라 공주장 딸많아서 못 보고 삼천궁녀 부여장 달밤이라 못 보고 연무대라 논산장 훈련하랴 못 보고 인삼이라 금산장 통신하랴 못 보고 한밭이라 대전장 엑스포라 못 보고 살아생전 진천장 집짓느라 못 보고 죽어사후 용인장 무덤파랴 못 보고 이천저천 이천장 개천많아 못 보고 일등미라 여주장 밥먹느라 못 보고 안성이라 유기장 잘도맞아 못 보고 성남이라 모란장 너무많아 못 보고 막걸리라 포천장 포탄터져 못 보고 넉살좋은 강화장 연날리랴 못 보고 금슬좋은 양주장 내외하랴 못 보고 경마잡이 과천장 벌벌기랴 못 보고 쑥고개라 송탄장 양놈많아 못 보고 은행나무 용문장 돈없어서 못 보고 주먹세다 목포장 눈물나서 못 보고 고구마라 함평장 푹삶느라 못 보고 제철소라 광양장 철안들면 못 보고 정유공장 여천장 미끄러워 못 보고 요리조리 이리장 수출다해 못 보고 화개장터 구례장 영남이는 못 보고 굴비좋다 영광장 물키느라 못 보고 명견이라 진도장 개짖어서 못 보고 춘향이라 남원장 연애하랴 못 보고 무진장한 무안장 창피해서 못 보고 비빔밥도 전주장 비비느라 못 보고 무등산도 광주장 수박맛에 못 보고 죽세공품 담양장 대가세서 못 보고 울퉁불통 울진장 울화나서 못 보고 의관정제 통영장 갓쓰느라 못 보고 잘달린다 경주장 숨이가빠 못 보고 울울적적 울산장 답답해서 못 보고 초상났다 상주장 시끄러워 못 보고 천리길에 진주장 발이아파 못 보고 날좀보소 문경장 님그리워 못 보고 횃불올려 봉화장 파발띄워 못 보고 아리랑도 밀양장 춤추느라 못 보고 장승포라 고래장 술푸느라 못 보고 달구벌도 대구장 약재많아 못 보고 앉아본다 안강장 고개아파 못 보네 구경꾼들은 저마다 각설이의 이바구에 홀려서 넋을 놓고 있었다. 신진사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대사님! 거 각설이 녀석의 타령이 대단합죠? 예, 제법이군요. 거 앞에 나온 돈타령도 돈타령이지만 마지막 장타령은 가히 일품이었습니다. 유고치로야! 모두 몇개의 장이름이 나왔더냐? 예, 사부님. 제가 손꼽아 세어 보니 여든 개였습니다. 흐음, 정확하게 세었구나. 그 노래가 바로 팔십장터송(Eighty Market Song)이라고 하는 거다. 신진사 일행은 유기전 드팀전 어물전 등을 지나 과일전으로 갔다. 어차피 고제를 지내자면 제수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안성은 역시 교통의 요지라 그런지 각종 실과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대추 밤 감 배 석류 귤 유자 등등. 그들이 제수용 과일을 사 가지고 가려하는데 저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 늙은 걸뱅이 노인이 와서 배장수에게 배가 고프니 배를 하나만 달라 고 구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배장수는 인정머리가 없었던지 걸뱅이 노인을 밀쳐 버리고 들은 척도 하잖는 것이었다. 노인은 다시 와서 몹시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배 하나만 달라고 졸라대는 것이었다. 배장수는 기어코 울화가 치밀었는지 노인의 멱살을 잡더니 달랑 들어다 두세 걸음 걸어가서 땅바닥에 패대기치는 것이었다. 썅놈의 늙은이, 배고프면 밥 처먹으면 될 것 아냐! 개시도 못했는데 재수없게 지랄이야. 땅바닥에 엎어진 노인은 비명을 지르며 죽는다고 고함을 질러댔다. 이누마 늙은이가 허기가 져서 배 하나 달라는데, 네 놈은 애비도 없냐? 배장수가 땅바닥에 침을 캭 뱉으며 대꾸했다. 아버지 돌아갔수다. 털큰중은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신진사에게 엽전 한닢만 달라고 하였다. 신진사가 건네 준 엽전을 가지고 배장수에게 가더니 배를 하나 사는 것이다. 배를 썩썩 깎아서 노인에게 내밀었다. 노인은 체면치레도 없이 배를 받아서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5초도 안 걸리고 뚝딱 소리나게 해치웠다. 노인이 먹는 걸 지켜보던 털큰중은 씨를 도로 받아드는 것이다. 장구경을 나왔던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거 노인을 공경할 줄 아는 기특한 중이구만. 돌중 같지는 않은데 털큰중은 앞에 있는 대장간에서 곡괭이를 빌려오더니 배장수의 수레 옆에 있는 땅을 파는 것이다. 신진사 부자 뿐만 아니라 장에 나온 많은 사람들이 저 중이 왜 저러나 하고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 삽시간에 수십 명이 둘러싸는 것이었다. 구경이라면 밥먹다가도 뛰어나가는 게 울나라 사람들 성미인지라 사람이 모여 있으면 또 우루루 몰리는 거라. 털큰중은 땅에다 배씨를 심더니 흙을 덮었다. 그러고서 누구 물좀 한 주전자 떠오쇼 하니 구경꾼 중에서 한 사람이 번개같이 뛰어가 물을 담아 온다. 사람들이 어쩌나 보는 가운데 털큰중은 주전자의 물을 배씨를 심은 곳에 몽땅 붓는 것이다. 주전자를 건네고 나더니, 배를 먹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다 침을 뱉고 먹기 싫은 사람은 뱉지 마시오 하였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거기다 침 퇘! 퇘! 뱉었다. 그러자 털큰중은 에이, 재수없다 하면서 바랑에서 촛대를 꺼냈다. 촛불을 붙여서 배씨 심은 곳에 올려 놓고 주문을 외우는 것이었다. 원장이차승공덕 회향무상진법계 성상불법급승가 이제융통삼매인 여시무량공덕해 아금개실진회향 소유중생신구의 견혹탄방아법등 여시일체제업장 실게소멸진무여 염념지주어법계 광도중생개불퇴 내지허공세계진 중생급업번뇌진 여시사법광무변 원금회향역여시 나무대행보현보살 마하살 마하살 마하살 그러자 희한하게도 배씨를 심은 곳에 땅이 꿈틀꿈틀 하더니 파란 새싹이 한 장 볼록 솟아나오는 것이다. 바라보던 구경꾼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털큰중은 빙긋 웃더니, 누구 부채 좀 가져와요 하는 것이다. 아까 그 사내가 얼른 뛰어가더니 부채를 가져왔다. 털큰중은 새싹에다 부채를 살살 부치기 시작하였다. 한번 부칠 때마다 싹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구경꾼들은 전부다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어느 새 아름드리 나무가 되었다. 여러분 이 나무가 열매를 잘 열기 위해선 거름이 필요합니다. 누구든 소피가 마려우신 분은 여기다 볼일을 보세요. 한 사내가 호기있게 앞으로 썩 나서더니 양물을 꺼내서 소변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에 용기를 얻은 듯 여러 사내가 낄낄거리며 저마다 발기한 남성을 꺼내서 일을 보기 시작하였다. 아낙네들은 얼굴을 붉히고 야지를 하는 가운데서도 나이든 여자들이 대개 외면을 하고, 처녀들은 가린 손가락 틈으로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었다. 소피를 다 보자, 털큰중은 큰 보자길 빌려 달라는 것이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여인네가 커다란 보자기를 건네 주었다. 보자기를 받은 털큰중은 보자기를 활짝 펼쳐서 배나무를 덮고서 흥얼거리기 시작하였다. 이 보자기가 무슨 보자기냐. 꼬아서 머리 위에 얹으면 똬리가 되고 이마에 두르면 머릿수건 되고 얼굴을 가리면 무릅께가 되고 목에 두르면 목도리 허리에 두르면 띠 등에 두르면 포대기 배에 두르면 앞치마 손에 들면 손수건 땅바닥에 펼치면 돗자리 과부 싸 오면 과부보(寡婦褓) 이별 정표로 생니 뽑아 싸 두면 호치보(皓齒褓) 구경꾼들은 킥킥거리기 시작하였다. 흥얼거리던 털큰중이 어느 순간 나무를 덮었던 보자기를 난봉꾼놈 계집 치마들추듯 훌러덩 걷었다. 그러자 나무에는 배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자기의 눈을 의심하였다. 어떤 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옆에 섰는 처녀의 넓적다리를 꼬집어 보는 놈도 있었다. 여러분 배를 농가드리겠습니다. 공짜요! 거접니다. 줄 스세요. 털큰중은 구경꾼들에게 배를 나눠 주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나무에 열린 배가 동이 났다. 그러자 털큰중은 다시 소리를 쳤다. 누가 가서 톱 좀 가져 오세요. 그러자 한 사내가 대장간에 가서 톱을 가져왔다. 털큰중은 배나무를 베기 시작하였다. 톱질하세 톱질하세 슬근슬근 톱질하세. 가난타고 설워마소. 팔자글러 가난 사주글러 가난 벌지못해 가난 미련하여 가난 산소글러 가난 밑천없어 가난한 걸 한탄 마소. 털큰중은 나무를 이리저리 톱질하여 장작을 만들더니 구경꾼 중에 지게를 진 나뭇꾼에게 건넨다. 공짜요 가져 가시요 살림에 보태세요. 나뭇꾼은 느닷없는 횡재에 감지덕지하여 재배 삼배하며 스님! 부디 성불하십시오. 하고 덕담을 하고 누가 뺏을세라 얼른 메고 달아난다. 자자, 여러분. 구경은 다 끝났으니 돌아들 가세요. 저도 이만 가겠습니다. 털큰중은 신진사와 신도령에게 가자고 한다. 그들은 사람들 틈에 휩쓸려 거기에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곁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던 배장수는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뒤에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자기 수레를 보았다. 그리고 경악하였다. 팔려고 놓아둔 배가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배장수는 무언가 쇠뭉치가 머리를 강타하는 것 같았다. 마치 조지 포먼의 수투래이투(手投來以鬪)에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참 해골이 띵했다. 그런데 정신을 가다듬어 가만히 보니 수레 바퀴까지 뽀개진 것 아닌가. 아아 수레바퀴 밑에서 운 것은 하루만 해써 가 아니라 배장수였다. 엉엉, 바퀴마저 뽀개놨으니 어떻게 끌고 간담. 배장수는 담박 모든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아까 그 중놈의 장난이 틀림없다. 그 털큰중놈의 농간이다. 개같은 놈의 시끼. 이놈들 내가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잡고야 말 테다. 못 잡으면 내가 성을 간다. 아니다. 개 아들이다. 잡기만 해봐라. 졸몽다리를 분질러 놓는다. 이를 뿌드득 갈고 배장수는 털큰중을 잡으러 나섰다. 6.************** 역사를 알아 천명을 순종하며 선도를 알아 천리를 순종하라 하기사 개시도 안한 배를 몽땅 도적 맞고 거기다 수레까지 다 망가졌으니, 그의 분노는 탱천할 만도 하다. 요것들이 어디로 숨었을까? 제놈들이 손바닥만한 안성읍에서 뛰어야 벼룩이요, 날아야 똥파리지 배장수는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면서 주막을 깡그리 뒤졌다. 주막집의 작부년들은 불타는 남의 속도 모르고 추파를 던지며 배장수를 붙들었다. 이잡듯 몽땅 뒤졌으나 그림자도 보이잖았다. 햐... 요것들이 정말 하늘로 솟았나? 땅을 파고 숨었나? 석삼년이 걸려도 내 찾고야 만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너희들 도망은 못간다. 너그들이 나으 성질을 몰라서 그랬겠지만 정말 사람 잘못 건드린 거다. 자는 호랑이 수염을 뽑은 거고 조는 사자의 콧등에 침을 준 격이다. 지옥까지라도 쫓아가서 네놈들을 찾고야 만다. 그러나 배장수가 죽산으로 가는 동구의 마지막 주막을 뒤졌을 때까지도 털큰중의 행방은 묘연했다. 머리카락 하나 보이잖았다. 하기사 털큰중은 머리카락이 큰털 하나 뿐이지만. 그러면 과연 신진사 일행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디 가야 찾을 수 있을까? 부리한 눈, 빛나는 대갈통을. 그들은 배 장수가 눈에 화로를 켜고 찾고 있을 때 칠장사(七長寺) 객방에서 호탕하게 웃으며 낮의 일을 담소하고 있었다. 주막에 묵지 아니하고 절간으로 들왔던 것이다. 사부님! 낮에 배 장수를 골려주던 도술은 환상적인 것이었습니다. 무슨 도술이온지 가르쳐 주시옵소서. 유고치로야! 그런건 일종의 눈속임밖엔 되잖는다. 그런 건 중요하잖다. 진정 중요한 건 마음 공부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이제부터 너에게 울나라의 선도와 역사를 가르쳐 주겠노라. 사부님, 고맙사옵니다. 그러나 몹시도 궁금하오니 낮에 보이셨던 도술이 무엇인지 제목만이라도 가르쳐 주시옵소서. 저는 궁금해 미치겠사옵니다. 저는 궁금한 게 있으면 밤에 잠을 못 자옵니다. 하하 그러냐? 그렇다면 내 간략히 설명하겠노라. 도술에 3만4천가지가 있느니라. 그중에 기문둔갑술(奇門遁甲術)이란게 있니라. 기문이란 일종의 술수니라. 십간(十干) 중 을(乙) 병(丙) 정(丁)을 삼기(三寄)로 하고, 휴(休) 생(生) 상(傷) 두(杜) 경(景) 사 (死) 경(警) 개(開)를 팔문(八門)으로 보는 것이다. 둔갑은 엄격한 의미에서 귀신을 부려 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도라고는 말할 수 없니라. 이를 또 세별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니라. 몸을 숨기는 은신술(隱身術), 남의 손의 것을 빼앗는 파악술(把握術), 몸을 나비처럼 가볍게 하는 경신술(輕身術), 멀리 있는 소리를 듣는 원청술(遠聽術), 입을 다물고 딴데서 말하는 것처럼 속이는 복화술(腹話術), 미행하는 자들을 따돌리는 둔장술(遁裝術), 목소리가 여러 군데서 들리도록 하는 산성술(散聲術), 높은 곳을 날아오르는 비상술(飛上術), 상대를 꼼짝 못하게 묶는 황파술(黃破術), 상대의 마음을 아는 독심술(讀心術), 그리고 상대의 눈을 현혹시키는 환목술(幻目術) 등등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와, 놀랍습니다. 그럼 낮에 보이셨던 도술은 환목술이로군요? 환목술에다 파악술을 혼합한 거라 할 수 있지. 대사님! 정말 놀랍습니다. 정말 기인이십니다. 하하,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 때 마지막 주막까지 뒤지고 털큰중을 찾지 못해 노심초사하던 배장수는 문득 생각이 묘한 곳에 미쳤다. 그렇구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중놈이니까 절간으로 갔겠구나. 옳다 절간을 뒤져보자. 청룡사가 아니면 칠장사겠지. 운이 억세게 없었던지 배 장수는 먼저 청룡사로 갔다. 청룡사 객방을 다 뒤졌으나 보이잖차 칠장사로 달려왔다. 그때는 서산에 해가 꼬박 넘어가고 어스름이 깔릴 무렵이었다. 배장수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숨은 턱에 닿아 있었다. 눈에는 독기까지 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침 성후가 뒷간에 들려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배 장수는 긴장이 풀렸다. 오오, 자비하신 부처님 하나님 야소님 캄샤합니다. 저놈들을 잡게 하시니. 때는 때 대로 가고, 죄는 진대로 가는 거다, 쨔샤들아. 하면서 얼른 쌓아 놓은 장작더미에서 튼실한 놈을 골라 빼들고 객방문을 활딱 열어 젖혔다. 야이, 도둑놈아! 꼼짝마라. 오늘 네놈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 신진사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털큰중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미동도 하잖았다. 배 장수는 비호같이 방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장작으로 털큰중의 빛나는 골통을 힘차게 내리쳤다.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번개같이 취해진 동작이었다. 신진사가 미처 말릴 짬도 없었다. 신진사는 끔찍한 장면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러나 비명도 신음도 전혀 들리잖았다. 가만히 눈을 뜨고 바라보니 털큰중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고 배 장수만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대고 있었다. 아니... 이 도둑놈이 어디로 사라지고 없네. 도둑놈아! 썩 안 나타날꺼야. 도망가잖았네. 여깅네. 어느 새 털큰중은 저만큼 뒤에 앉아 있었다. 배장수는 다시 뒤로 돌아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맞았다 하는 순간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열댓번을 그러고 나니 배장수는 기운도 빠지고 약도 올라 그냥 방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벌떡 일어나 한 손에는 몽둥일 들고 한 손으론 신도령의 뒷덜밀 움켜 쥐었다. 털큰중놈아! 순순히 항복하잖으면 이 아이를 박살내겠다. 빨리 나타나서 무릎을 꿇어라... 순간, 신진사의 안색이 노래졌다. 아니,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분풀이하다니. 그러나 털큰중은 당황하는 법도 없이 허허허 웃더니, 자네 손에 든게 무엇인지 자세히 좀 보게... 하는 것이다. 그말에 배 장수가 손에 든 장작깨빌 보니, 그것은 한마리 살모사였다. 혀를 날름거리면서 대가리를 곧추 세우고 배장수를 쏘 아보고 있는 게 아닌가. 으악! 기겁을 한 배 장수가 후다닥 살모사를 집어 내던질 때 털큰중이 손을 뻗쳐 가볍게 받아쥐니 그것은 다시 장작깨비였다. 배장수는 도저히 털큰중의 적수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배장수는 맥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리고 목놓아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모처럼 안성장에 땡빚을 내어 배를 떼서 가져왔는데... 하나도 못 팔고 다 도적 맞았으니 우짠디야!! 마누라하고 애들이 쌀 팔아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테 꺼이꺼이 꺽꺽 배 장수가 목놓아 우는 것이 너무도 애처로와 보였던지 신진사가 말을 건넸다. 여보슈 배장수. 당신이 맘을 곱게 쓰지 않으니 우리 대사님이 골탕을 먹인게 아니겠소. 배값은 내가 물어 줄테니 대사님께 사과부터 하시오. 배값을 물어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배 장수, 얼른 일어나 털큰중 앞에 무릎을 꿇는다. 도사님을 몰라 뵙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디 사는 누구인고? 어리실에 사는 한서방입니다. 어리실이면 일죽이구만. 예, 그렇습니다. 관향이 어찌되나? 청주 한문(淸州韓門) 양절공파입니다. 양반이구만. 양반이면 양반답게 양반의 긍지를 갖고 살게. 예... 명심하겠습니다. 마음을 잘 써야지. 노인을 공경하고. 자네도 늙으면 다 노인이네.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 개 덜 판다고 망하겠나? 마음을 곱게 써야 복을 받는 거라네. 알겠는가?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하도 궁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맘이 인색해졌습니다. 광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하나도 헛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앞으론 없는 가운데서도 남에게 베풀고 살겠습니다. 아암, 그래야지. 사람이란 없을수록 돕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 우리 전래의 향약에 환난상휼(患難相恤)이라는 덕목이 있잖은가.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고 내가 한술 덜 먹으면 남을 한 사람 더 먹일 수 있는 것 아닌가? 흑흑, 소인이 어리석었습니다. 앞으론 남을 돕고 살겠습니다. 내가 얘기 하나 하겠네. 들어보게나... 서교(西敎)의 이야기다. 하루는 천국의 뜨락을 산책하던 야소가 우물 곁에 시름겨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수제자 페트로를 보았다. 야소를 구세주라고 남보다 먼저 파악했던 사나이. 그리하여 야소로부터 감격어린 칭찬을 받고 천국 열쇠를 위탁받는 수제자. 그런 그가 천국에서 청승을 떨며 근심을 하고 있다니. 이는 천국의 본질을 침해하는 중대한 사안이 아닌가? 야소는 페트로에게 다가가 물었다. 페트로여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나를 믿으니 또한 아버지를 믿으라. 그대는 마음에 무슨 근심이 있는가? 오 나의 주님이시여! 소자는 엄니로 인하여 근심을 떨칠 수가 없나이다. 주님을 믿으면 나와 내 집이 구원을 얻는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저기 유황불 지옥에서 엄니가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매,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궁휼이 한없으신 주님이시여 엄니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야소는 천사장 가브리엘을 불렀다. 가브리엘이여! 성 페트로의 모친의 창고에 무엇이 들었는가? 가브리엘은 아무 것도 없다고 대답하였다. 페트로는 당황했다. 가브리엘님! 다시 한번 엄니의 창고를 수색하여 주십시오. 분명히 뭔가 있을 겁니다. 가브리엘은 아기천사를 불러서 창고를 수색하라 명했다. 그리고 무엇이든 있으면 가져오라고 하였다. 한참만에 아기천사가 가져온 것은 시들은 파 한 줄기였다. 그것은 페트로의 엄니가 생전에 이웃집 과부에게 단 한번 꿔준 물건이었다. 야소는 아기천사에게 명령했다. 아기천사야 지금 당장 지옥으로 가서 유황지옥에서 불심판을 받고 있는 페트로의 모친을 구해 오라. 아기천사는 파를 들고 지옥으로 갔다. 페트로의 엄니는 아기천사가 내민 파줄기를 잡았다. 그 순간 지옥의 수많은 죄인들이 너도나도 매달렸다. 시들은 파줄기는 곧 끊어질 것 같았다. 아기천사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페트로의 엄니는 몸에 달라붙는 죄인들을 마구 뿌리쳤다. 쌍놈의 새끼들아. 이 파는 내꺼란 말이야. 엄니의 몸부림에 매달렸던 사람들이 하나씩 떨어져나갔다. 한 사람이 떨어질 때마다 야소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 갔다. 삼층천에 가까와졌을 때 마지막으로 불구의 아이가 매달려 있었다. 아이는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나를 뿌리치지 말아 주세요. 구해 주세요. 천국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고 싶어요. 그러나 페트로의 엄니는 매몰차게 그를 뿌리쳤다. 아아악! 비명을지르며 떨어져 나가는 순간 간당간당하던 파줄기가 뚜둑 소릴내며 끊어졌다. 페트로의 엄니는 처참한 비명과 함께 지옥으로 다시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아기천사는 하릴없이 끊어진 파줄기를 가지고 야소 앞에 돌아왔다. 야소는 그것을 페트로에게 건네주었다. 페트로는 샘솟듯하는 눈물 줄기를 닦지도 않은 채 야소에게 말했다. 주님! 다시는 엄니를 구원해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구원은 개인의 문제입니다. 대치나 대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불교(佛敎)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극락의 뜨락을 산책하던 부처는 십대제자의 한 사람이며 신통력의 제 1인자라고 하는 목련존자(目蓮尊者)가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걸 보았다. 극락에서 청승을 떨며 수색을 가득히 하고 앉아 있다니... 이는 극락의 본질을 침해하는 중대한 사안이므로 부처는 다가가 물었다. 목련아 무슨 근심이 있느냐? 자비하신 부처님 부모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하였사온데 엄니가 저토록 기름지옥에서 고생하고 있으니 소자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옵니다. 부처는 지장보살을 불렀다. 지장보살! 극락 창고에 목련존자 엄니의 공양물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시오. 잠시 후, 지장보살은 썩은 새끼줄 하나를 가져왔다. 부처님은 금강역사에게 명령하셨다. 금강역사야 너는 당장 저 새끼줄을 가지고 기름지옥으로 가서 목련존자의 엄니를 극락으로 구해 오너라. 금강역사는 썩은 새끼줄을 가지고 지옥으로 갔다. 목련의 엄니가 새끼 줄을 잡는 순간 지옥의 영혼들이 너도나도 매달렸다. 목련의 엄니는 악다구니를 해댔다. 야이 개새끼들아. 이건 내 새끼줄이야 안 놀텨? 하면서 몸부림을 치자 여러 사람이 떨어져나갔다. 빨리 올라가요. 금강역사는 극락으로 날아올랐다. 서너 사람이 그때까지 매달려 있었다. 썩은 새끼줄은 곧 끊어질 듯 위태로와 보였다. 안달이 나서 어머니는 소리소리 질렀다. 안 떨어져! 이 똥파리 같은 자식들아. 다리에 매달린 노인을 발로 질러 버리자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몸부림을 치자 또 한 사람이 떨어져 나갔다. 그때마다 부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제 마지막으로 아줌씨 한 사람이 남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사정했다. 아기를 만나게 극락에 가게 해 줘요. 그러나 어머니는 당신 때문에 나까지 다시 그 지긋지긋한 지옥에 떨어질 순 없어. 빨리 비켜. 하며 그녀의 가슴팍을 내질렀다. 여자는 창자를 끊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위태로와 보였던 새끼줄이 뚜욱하고 끊어졌다. 목련의 엄니는 천지를 째는 듯한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다시 기름지옥 속으로 풍덩 떨어졌다. 목련은 흐느끼며 부처님 앞에 꿇어 엎드렸다. 소자의 어리석음을 꾸짖어 주옵소서. 다신 엄니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겠나이다. 목련아 너무 슬퍼 말아라. 이것도 업이니라. 남 공덕으로 극락에 갈 수는 없느니라. 극락이란 결국 자비심이 아니겠느냐. 배 장수 한서방은 심각한 표정으로 듣는다. 숨도 쉬잖는 것 같다. 대사님! 제 저승 창고에는 겨우 배 한 개가 들어 있겠구만요. 허허허. 아직 이승을 하직한 것이 아니니 꼭 그렇다곤 볼 수 없죠. 앞으로 적선과 이타행을 많이 하면 저승 창고가 그득하게 찰 것입니다. 그런데, 사부님! 두 이야기에 묘한 점이 있습니다. 오! 무엇이냐? 유고치로야. 서교나 불교나 말입니다. 성자의 엄니가 구원을 못 받고 있다는 점이 심각합니다. 엄니란 가장 가까운 육친인데 그 엄니를 구원 못 하고 남을 구원하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허황되기도 하고 모순 같사옵니다. 허허허. 그러길래 과부가 제 혼사 중매 못 서는 것이고 의원이 제 병 못 고치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법이고 훈장이 제 자식 못 가르친다잖느냐? 그게 다 업이니라. 전생의 업이 그것밖에 안되는데 어찌하겠느냐? 대사님! 그건 그렇고... 여기 한서방의 장사를 해결해 주셔야죠. 당장 내일부터 장사 나갈 밑천이 있어야 하겠지요? 하하... 그래야지요. 내가 다 없앴으니 내가 장사 물건을 장만해 주겠습니다. 유고치로야 공양간에 가서 불목하니에게 노끈 한 뭉치만 달래서 가져 오너라. 도대체 털큰중은 노끈을 가지고 어떻게 현서방의 장사 밑천을 장만하겠다는 수작인가? 그는 또 어떤 도술을 부리려 하는 것인가? 7.********************** 역사로서 내 성품의 섬돌을 삼고 선도로서 내 도리의 대문을 삼자 성후가 불목하니에게서 노끈 한 다발을 얻어오자 털큰중은 모두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한서방에게 허공을 향하여 힘차게 던지라고 말했다. 한서방이 즈그매 젖빨던 힘까지 다하여 허공을 향하여 노끈을 휙 던지는 순간 털큰중은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들날그 힘묻에 속공허 들날그 할야어 잊들날 그린버 쳐스기 야이옛 픈슬될 만야어 묻에속 공허도 음마던 했워미 도음마 던했랑 사대그 진어멀 도나무 너엔기 리다기 며우태 슴가아 남움쉬 아도나 무너엔 기하각 생고다 었이꿈 백마스킹으로 들으면 소돼지의 이대아고실(理大兒古室)이나 꿈꾸는 발해처럼 이상한 소리 즉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겠다고 수근거렸다. 모두들 이상한 주문이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자 노끈은 쟈우뚱하면서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윽고 노끈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유고치로야, 이 노끈의 끝을 잡고 올라가거라.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날 것이다. 왼쪽 길로 가거라. 반시각쯤 가면 과수원이 나올 것이다. 천도원(天桃園)이니라. 복숭아는 꼭 세 개만 따고 그 이상은 따지 말아라. 만약 내 말을 어기면 너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라. 따거든 밑으로 던지지 말고 머리 뒤로 던져라. 그리고 처음 자리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오른쪽 길로 가거라. 반시각쯤 가면 되니라. 능금원(菱檎園)이니라. 여기서는 마음대로 따도 되느니라. 역시 딴 사과는 머리 뒤로 던져야 하느니라. 혹시 누구를 만나던 간에 절대로 먼저 말을 해서는 안 되느니라. 과원지기가 누구냐고 묻거든 얼굴 앞에 손날을 세워 보칠산 하고, 손날을 눕혀 김신선 하여라. 그리하면 아무 탈이 없으리라. 성후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노끈을 붙잡자 스르르 허공으로 올라가더니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한서방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늘로부터 복숭아 세 개가 떨어져 내려왔다. 털큰중은 정확하게 부라이보올(浮羅伊保兀)을 잡듯이 실수없이 받는다. 잠시 기다리니 다시 사과가 우루루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한서방과 신진사는 정신없이 줏어 담았다. 그 양이 족히 한 수레는 되었다. 얼마 안 있어 성후는 상기된 표정으로 노끈을 타고 내려왔다. 황홀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 사과는 내일 한서방이 장사하게 놔두고 복숭아만 먹어 봅시다. 세 개니까 한 갤 반씩 갈라서 나눠 먹고 한 개는 남겨 둡시다. 네 사람은 천도복숭아를 반쪽씩 갈라서 먹었다. 혀에서 살살 녹는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인간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막힌 맛이었다. 모두들 군침을 삼키며 하나 남은 복숭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려니 목젖이 빠지는 거 같았다. 한서방! 네, 대사님! 내일 오시경에 과일을 사러 손님이 올걸세. 그는 유건(儒巾)을 머리에 쓰고 학창의(鶴창衣)를 걸치고 태사(太史)신을 신고 죽장을 들었을 것이네. 복숭아를 보면 팔라고 할 것일세. 가격을 묻거든 3000냥만 달라고 하게. 으악! 3000냥을요? 그렇게 줄까요, 복숭아 한 개를? 걱정 말게. 그는 그 이상이라도 살 걸세. 다음 날 아침을 일찍 들고 털큰중 일행은 태봉으로 떠나고 한서방은 시장에 나가 배 장수가 아닌 사과장수가 되어서 사과를 팔았다. 그런데 오시가 다 끝나갈 무렵 털큰중이 말한 복장의 선비가 오더니 수레 귀퉁이에 놓인 복숭아를 보고 눈이 화등잔 만해지는 것이었다. 그는 다짜고짜로 한서방의 손을 잡더니 복숭아를 팔라고 졸랐다. 한서방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는 한서방이 요구한 3000냥을 군말없이 내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사과를 보고 입이 벌어진 채 무조건 다 팔라는 것이었다. 얼마를 쳐주겠느냐고 하니까 만냥을 주겠단다. 한서방은 너무 놀라서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선비는 그럼 2만냥 하는 것이다. 한서방은 더욱 놀라서 안 된다고 했다. 선비는 3만냥 한다. 한서방은 너무 과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젓고 선비는 그때마다 만냥씩을 추가하였다. 드디어... 9만냥이 되었을 때 선비는 한서방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한서방은 숨이 막혀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그그 그래요. 간신히 말을 하자 선비는 자루에다 사과를 담더니 돈을 건네고 부리나케 사라졌다. 과연 이 선비는 누구였을까? 그는 허생이었다. 그는 복숭아와 사과가 상계 천도원과 능금원의 것인 줄 한눈에 알았던 것이다. 천도복숭아는 죽을 사람이라도 살릴 것이며 하늘사과는 죽을 병이라도 고칠 것이다. 그는 과실 투기로 한몫 잡으려고 한대국 최고의 갑부라는 정대인에게 거금 10만냥을 얻어 갖고 왔다가 정말로 운좋게 상계의 실과를 만난 것이다. 그는 그후 그 과일을 뙤나라 천자에게 되팔아서 100만냥을 벌었다 하니, 이 사실을 한서방이 알았다면 기분이 좋았을까? 나빴을까? 털큰중 일행은 저물 무렵 일죽면 송천리 내둔에 닿았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태봉골 못 미쳐 긴바윗골에 있는 신진사의 별장 우청당(雨淸堂) 으로 들었다. 별장지기는 젊고 똑똑해 뵈는 마당쇠라는 부부였다. 석반 후 미색이 돋보이는 마당쇠의 아내가 차린 감로주를 들었다. 감로주이옵니다. 쇤네에게 술 담그는 재주가 있어 오래 전부터 귀하신 분이 오시면 드리려고 이렇게 준비해 두었습니다. 소주에 용안육과 포도 대추 구기자 두충 살구씨 숙지황 따위 등을 넣어 우려낸 진하고 단 향기로운 술이옵니다... 크으~~~ 정말 감칠맛나는 술이군요. 아낙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옵니다. 마당쇠 녀석이 총각 시절 저 아낙에 반하여 상사병이 들어 죽게 된 걸 기계(奇計)를 써서 간신히 장가를 들여주었지요. 하하하. 어떤 기계를 쓰셨는데요? 마님! 부끄럽습니다. 그 얘기는 마옵소서. 하하하. 난향아 무엇이 부끄럽느냐? 사랑은 소설의 영원한 주제이니라. 금년 삼월 삼질이지요. 마당쇠 녀석을 태봉 너머 삼성에 심부름을 보냈지요. 인석이 거기서 난향이를 본 겁니다. 나이는 이팔쯤 되어 보이고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에 띠끌도 일잖고 허리는 가늘어 하늘거리고. 마당쇠 인석은 완죤히 뿅 간겁니다. 급기야 드러눕더니 헛소리까지 하는 겁니다. 하하. 그래 어떤 수를 쓰셨습니까? 착실한 머슴 하나 생으로 죽이게 생겼는데 어찌합니까? 난향이네를 알아 보니 집안이 가난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더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당쇠에게 시켜서 음식을 싸 갖고 매일같이 난향이네 집앞에 가서 여기서 동무를 만나기로 약조를 했다고 말하라고 하고서 개기라 했지요. 동무가 오긴 뭐가 옵니까? 그러고선 아 이거 동무가 안 오네 하고선 음식이나 먹고 가야지 하고 난향이네 가서 식구들과 같이 싸간 음식을 먹는 겁니다. 가난한 난향이네는 은근히 마당쇠가 오기를 기다리게 된 거죠. 그렇게 달포를 하니 젊은 남녀가 그만 눈이 마주치고, 눈이 마주치니 정이 들고, 정이 드니 자연 불도 붙드라 이겁니다. 껄껄껄. 아이구 신진사님! 지혜가 대단하십니다. 저들이 행복하게 사니 그게 보람입니다. 벌써 넉달짼데 아직 좋은 소식이 없나 봅니다. 하이고! 겨우 넉달인데 성미도 급하십니다. 우리 가문이 손이 귀하여 성후가 저리 삼대 독자이니 하인들의 자녀도 다 제 손자 같습니다. 하하하. 신진사님 고운 마음씨야 인근에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복을 받으시는겁니다.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지명이 대죽자를 쓰는데 대나무가 많습니까? 예전엔 많았던 모양인데 지금은 아주 귀한 모양입니다. 감로주도 마셨고, 바람도 시원스레 불어오니 흥취가 절로 납니다. 신진사님, 시나 한 수 지어 보이시지요. 천학비재한 게 무슨 좋은 시를 짓겠습니까? 선영이라 젊을적 지낼 때 썼던 시나 한 수 읊어 보겠습니다. 대 한 그루 없는 京畿道 安城郡 一竹面 松川里 빈 들판에 몰아치는 바람은 깊은 잠을 훔치던 봄내의 안개다 가만가만 빈 살 속으로 숨어 들어 內面을 떨게 하는 어지러움이다 미류나무 그 마른 가지 끝에서 흔들리고 있는 그대 가는 허리는 내 精神이다 밤마다 고름을 흘리면서도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내 질긴 사랑이다... 하, 무슨 사랑의 슬픔 같은 것이 서린 듯 하군요. 어른들은 더 말씀 나누게 유고치로는 그만 들어가 자거라. 예 그럼 아버님 사부님, 소자는 이만 들어가 자겠습니다. 더 노시다 주무십시오. 성후는 방으로 들어가고 신진사와 털큰중만 정자에 남아 이야기를 계속 나눈다. 밤 하늘엔 어느덧 별이 무수히 떠서 반짝이고 있다. 오늘 밤이 칠석이죠? 그렇습니다. 일부러 이 날을 택해 온 것입니다. 내일은 선산에 가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 유고치로도 좋은 배필과 빨리 만나게 해달라고 조상님께 고제를 지내려 하는 것입니다. 대사님! 저도 그리 짐작하였습니다. 어디 견우와 직녀가 정말 만나는 지 하늘의 별이라도 쳐다볼까요? 하늘의 별을 쳐다 보노라니 문득 광섭시선(光燮詩仙)의 <저녁에> 라는 시가 생각나는군요. 소승이 읊어 드릴 터이니 들어보소서.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대사님! 사람이 죽으면 하늘나라에 별로 태어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대사님!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하늘나라의 별에서 온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대사님! 그렇다면 대사님과 소생도 전세에 무슨 기막힌 인연이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인연입니까? 인연이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도 우연히 만나는 것은 없습니다. 정다운 너와 나는 어디선가 무엇이 되어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목숨을 걸고 사랑을 하였다던가 충성을 바쳤다던가 한다면 그런 사람의 인연의 줄은 몇 백 세가 흘러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선영을 살펴본 후 인연이 닿는다면 소승은 정식으로 신도령을 제자로 맞아 울나라의 숨겨진 역사와 잊혀진 선도를 가르칠 것이며, 그 외에도 바돌과 무술을 더불어 가르칠 것입니다. 그리고 신진사께는 며느리를 고를 수 있는 관상법을 갈쳐 드리겠습니다. 대사님! 진정 은혜가 백골난망입니다. 울나라 최초로 부자 제자가 탄생하는 것이로군요. 소생이 이런 은혜를 아무런 댓가없이 받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원하오시는 바를 말씀해 줍소서. 소생이 약간의 재물이나마 있사오니 원하신다면 드리겠습니다. 신진사! 이미 댓가는 받은 바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아니, 소생이 드린 바가 없는데 이미 받으셨다니요? 밤이 늦었습니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이만 주무시도록 하십시오. 내일 일찍 산에 오르시고, 또 한양으로 돌아가셔서 본격적으로 며느리를 구하셔야지요. 8.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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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선(神仙)의 아들 2. 배 장수 골리기 "단체 쪽지 스크렙 합니다 감사 합니다 .
즐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