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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화 같은 사랑이... (1화)
백화 문상희 (중편소설)
*이 소설은 어느 한 여인이 살아온 일대기를
문자로 보내와 기본 베이스로 쓴 소설입니다.
1부) 부모 없는 하늘아래
오늘은 동행대학교 사범대학 졸업식이다.
정든 대학을 떠나는 영희였으니 오늘만큼은
해방감에 마음이 들떠있었다.
영희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사업 컨설팅에 가시다가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셨다.
영희는 졸업식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말씀이 생각나서였다.
영희가 중학교 일 학년 입학 때 일이었다.
"우리 영희가 벌써 중학생이 되었네?
우리 영희는 커서 뭐가 되고 싶을까?"
"엄마 아빠, 나는 커서 선생님이 될 거예요!"
"선생님 하려면 우리 딸 열심히 공부해서 사범대학
가야 되는데?"
"아이고 걱정 마세요!
이번 졸업 시험에서도 제가 일등 했잖아요!"
"그래, 장한 우리 딸!
이제부턴 이영희 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네?"
"에이, 놀라지 마세요! 호호호호"
영희는 하늘을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엄마 아빠, 저 사범대학 졸업했어요!"
엄마 아빠가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부모가 없는 영희를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외동 딸 이었던 할머니는 외동딸인 엄마를 낳으셨고
엄마 역시 외동딸인 영희를 낳았다.
삼대가 외가로 이어진 외동딸 집안이었다.
오늘 졸업식장에도 할머니가 축하 꽃다발을 가지고
오셨다.
"아이고 할매!
아직도 2월이라서 날씨가 추운데 어떻게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글쎄!"
"영희야, 내가 안 오면 어떻게 하니?
나라도 축하 꽃다발을 울 손녀에게 안겨줘야지 안 그래?"
"할매요!
후배들에게 꽃다발 많이 받았답니다.
여하튼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추운데 이 목도리라도 하세요!"
영희는 하고 있던 목소리를 풀어서 할머니 목에
매어드렸다.
졸업생들은 졸업 축하구호를 외치며 사진을
찍느라 난리가 아니었다.
할머니와 돌아서가던 등뒤로 누군가가 불렀다.
"어이~, 이영희!
모델 섭외까지 들어온 우리 학번 최고의 미인이
파티에 빠지면 안 되지!"
"아~, 철호형!
나는 할매가 오셔서 집으로 가야 돼 미안해!"
영희를 부른 사람은 같은 과 학생회장
유철호였다.
영희가 대학교 3학년 때 모델 제의가 들어온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영희는 학업을 마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델 제의를 거절했었다.
또한 연예인들의 소문이 좋지 않은 것을 많이
봐왔기에 내키지도 않았다.
영희는 졸업식이 끝나고 졸업파티에 가자는
친구들의 요청을 마다하고 할머니와 집으로 향했다.
"할매요!
할매도 저도 오뎅을 좋아하니까 우리 오뎅하고
떡볶이 순대 먹으러 가요!"
"아이고 영희야!
오늘같이 기쁜 날 너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 먹어야지!
너는 어릴 때 함박스테이크를 무척 좋아했단다.
그래서 네 어미가 간 소고기에 당근과 양파를
듬뿍 넣어서 만들어 너에게 먹였단다.
"아이고 할매요!
오늘 같은 날은 양식집에도 졸업생이 엄청 많아요!
그러니까 그냥 집 앞에 떡볶이 집으로 가요!"
"그래, 그러면 그러자꾸나 영희야!"
영희는 기어이 할머니를 모시고 떡볶이순대와
오뎅을 먹고 집으로 들어갔다.
영희는 집으로 들어가서 커피와 할머니가 좋아하는
쌍화차를 타 가지고 거실 소파로 갔다.
"할매요!
할매 좋아하시는 쌍화차 드세요!
저 졸업 때까지 키워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대학도 졸업했으니 지금부터 편하게 모실게요!"
"아이고 나는 영희네가 안 아프고 무탈하게
커준 것만 해도 고맙구나!
네 에미 애비는 네가 교편 잡는 것을 원했지만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잘 생각해 보거라!"
"예, 알겠습니다 할매요!
엄마 아빠가 말씀하신 것도 생각해 볼게요!"
영희는 어릴적에 들은 엄마 아빠의 말씀과
할머니의 손길로 정성껏 키워주신 고마움을
마음속으로 다시금 되새셨다.
영희는 잠들기 전 하늘에 계신 그리운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며 자신을 향한 편지를 썼다.
엄마를 만나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세상
언제부터였던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엄마가 말했지
이 세상은 잠깐 소풍 온 거라고
다 비워 내며 살아야만
더 좋은 것들을 채울 수 있는 거라고
내가 서른 즈음에 엄마가 그렇게 말했지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
그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지
사랑하는 마음과 희생하는 마음
미움이 없는 마음 그리고 화가 없는 마음
이런 것들로 마음의 집을 지어야 해
그게 바로 영원한 너의 집이야
네가 세상소풍을 끝내고 돌아갈 집인거야
내가 돌아갈 그곳
내 인생 여정 끝내고 가야 할 본향
내게는 저 세상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날 기다리는 반가운 사람들
엄마도 아빠도 만나는 기쁜 날
엄마 덕분에 맘 편히 살다가 왔다고,
엄마는 나의 멋진 스승님이었다고,
엄마 말씀을 새겨들으며 살았노라고 말 할거야
엄마를 만나면 참 잘했어,
그렇게 말씀하시겠지
엄마, 사랑해요
나의 참 좋은 엄마 사랑합니다.
영희는 졸업 후 초등교사를 할지 피아노 학원을 할지
망설이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피아노 학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영희는 교사 임용고시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교편을 잡으면 하루 종일 할머니를 보살펴
드릴 수가 없어 피아노 학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영희는 대학교 1학년때 전국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선한 것이 동기부여가 되었다.
학원 준비 자금은 부모님이 영희의 미래를 위해
은행에 예치해 두었던 돈으로 학원 개설을
준비했다.
영희는 일 년동안 장소와 간판 내부시설 전단지
광고 등 제반사항을 여기저기서 알아봤다.
일년 후 결국 교사보다 학원을 선택하고 집 근처
방배동에 피아노 학원을 오픈했다.
그것은 영희가 좋아하는 피아노를 계속 칠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영희가 피아노 학원을 오픈하고 첫 번째 수강생은
같은 건물에 만화가게 아들과 딸이었다.
"원장님, 피아노 학원 개원을 축하드려요!"
"안녕하세요 만화방 사장님!
아드님과 따님 둘 다 수강생 등록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애들이 피아노 학원을 가겠다고 우겼는데
마침 같은 건물에 피아노 학원이 들어와서 다행입니다."
만화가게는 같은 건물 이층에 마주 보고 있었다.
영희는 가끔씩 만화가게에 들러 순정만화를 빌려왔다.
영희는 사실 만화도 만화지만 첫 번째 수강생으로
보내준 것에 대한 답례로 자주 들린 것이다.
2부) 우연이 필연으로
그리던 어느 날 만화가게 윤정이 엄마가 영희를
불렀다.
"원장님, 우리 건물 지하에 가수가 노래하는 카페가 생겼어요!
제가 주스 한잔 살게요!
우리 여자끼리 내려가서 구경삼아 주스나 한잔하러
갑시다."
영희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만화방 윤정이 엄마가 영희의 옷소매를
잡아끌면서 가자는 눈짓을 했다.
영희는 굳이 거절하기도 뭐해서 따라나섰다.
그곳은 현란한 조명아래서 가수가 나와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고 분위기가 좋았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면서
뭘 시킬까 의논을 할 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만화방 사장님!"
"네~, 천수씨 오셨군요!
누구 일행이 있나요?"
"아니요?
그냥 음악 들으면서 술 한잔 할까 해서 왔답니다."
"네~, 그럼 여기서 같이 한잔 하게 앉으세요!"
"아참, 서로들 인사하세요!
여기는 우리 건물 피아노학원 원장님 이시구요
이쪽은 우리 남편 후배인 유천수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천수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맑은 소리 피아노학원 원장 이영희입니다."
유천수는 훤칠한 키에 얼굴도 시원하게 잘생긴
미남이었다.
다행히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와 세 사람은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오늘 우연히 만났으니 제가 간단하게 맥주 한잔
살게요!"
"아이고 그럼 유천수 씨 덕분에 한잔해볼까요?"
말을 끝낸 유천수는 벨을 누르고 맥주와 과일
안주를 시켰다.
유천수는 일어나서 커다란 키에 허리를 굽히고
정중하게 맥주를 따렀다.
세 사람은 담소를 나누며 맥주를 마셨다.
"원장님!
전 아직도 애인이 없는 총각입니다.
원장님은 제 마음에 쏙 드는 저의 이상형이고 미인이십니다."
"아이고 칭찬이 과하십니다.
제눈에는 선생님이 더 멋지십니다."
"아이고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난 천생연분이니
잘해보세요!"
윤정이 엄마가 나서서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나저나 어린이대공원 식물원이 새 단장을 해서
오픈했다는데 구경이나 하러 갈까요!"
천수가 영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전 피아노 학원을 하느라 시간이 없답니다."
"아이고 일요일에 두 분이 가면 되겠네요 뭐!"
윤정이 엄마가 두 사람을 부추기며 말했다.
"그럼 이번 주 일요일 9시쯤 저기 경문고등학교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릴게요!"
영희는 수줍어서 대답을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세 사람은 주문한 맥주와 과일을 다 먹고 일어섰다.
"원장님, 일요일 9시에 경문고등학교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릴 테니 꼭 나와주세요!"
천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영희에게 말했다.
"네~,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요!"
영희는 말끝을 흐리며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두 분 안녕히 들어가세요."
두 사람은 천수를 보내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원장님, 사실은 천수 씨가 우리 남편 만나러 왔다가
만화가게에서 원장님을 보고 홀딱 반했답니다.
천수 씨는 우리 신랑이 학생회장 할 때 부회장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친해요!
그리고 우리 신랑이 참한 아가씨를 소개했는데
단번에 거절했데요!
자기 눈에 콩깍지가 끼어야 장가를 간답니다.
천수 씨가 원장님을 보고 콩깍지가 끼었나 봐요!
그래서 저에게 주선을 부탁했어요!
대학교 유도부에서 운동을 한 사람이고 또
직장도 대기업 사원이에요!
그리고 천수씨는 정읍군수님 아들이라 명문가
자손입니다.
그런 사연을 알면 아가씨들이 줄을 설 텐데
과묵한 사람이라서 그런 말 절대 안 해요!
그러니까 일요일에 만나서 진솔하게 교제를
해보세요!"
"네~, 저는 갑자기 받은 제의라서 지금도 얼떨떨합니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좋은 남자니까 나가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안녕히 들어가세요!"
영희는 윤정이 엄마에게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왔다.
이튿날 피아노 학원에 부모님 상담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우리 집에 큰딸이 치던 피아노가 있답니다.
큰딸은 지금 프랑스에 유학을 갔고요
늦둥이 막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은데
딸 애가 피아노에 취미가 없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출장비 드릴 테니까 오셔서 우리 아이에게 피아노
시범을 보이시고 학원에 나가도록 얘기 좀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여기 주소와 전화번호 있으니 집 근처에서
전화 주세요!
집은 큰 도로 길 건너편 경문시장 쪽입니다."
"네~, 일요일 아침에 전화드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영희는 처음 개원을 해서 홍보와 수강생 모집에
열중했다.
일요일 아침 수강상담이 들어온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피아노 학원 원장입니다.
언제쯤 찾아뵈면 될까요?"
"아~, 원장선생님!
언제든지 오셔서 벨 눌러주시면 제가 나갈게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영희는 지천수 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은 채
경문시장 쪽으로 향했다.
영희는 대문 앞에서 벨을 누르자 바로 육중한 철문이
철컥하고 열렸다.
안으로 들어선 영희는 깜짝 놀랐다.
100평이 넘을듯한 마당에 잔디와 소나무가 예쁘게
조경이 되어있었고 차고 쪽에는 링컨 컨티넨탈
이라고 쓰여있는 최고급 수입차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원장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거실로 들어가자 커다란 벽난로가 눈에 들어왔고
창문 쪽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여기 앉으세요 원장선생님!
"예~, 고맙습니다."
"춘천댁~!
저번에 예주 아빠가 미국서 가져온 콜롬비아
원두커피 좀 내려서 가져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사모님!"
주방에서 드르륵드르륵 하는 소리가 들리고
한참 후 여자가 커피를 가지고 나왔다."
"커피 드시면 2층에서 예주를 데리고 올게요!"
"네~, 커피 향기가 아주 좋네요!"
"네~, 예주 아빠가 대기업 임원이라서 미국 출장을
가면 이것저것 사가지고 온답니다."
그때 이층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내려왔다.
"예주야?
길 건너 피아노 학원을 하시는 원장선생님께
인사드려라!"
"네, 안녕하세요!
김예주입니다."
"응, 예주는 올해 몇 학년일까?"
"예, 원장선생님, 중학교 2학년입니다."
"언니는 다소곳한데 쟤는 남자애들처럼 축구나
운동을 좋아한답니다.
예주에게 원장선생님 오신다고 얘기를 했으니
커피 드시고 시범을 좀 보여주세요."
"네~, 사모님 알겠습니다."
영희는 피아노에 앉아 건판을 시험한 뒤
베토벤 월광소나타를 아다지오 포르테를
오르내리며 신들린 듯 쳤다.
그 곡은 영희가 콩쿠르에서 입선한 곡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사모님과 주방 아주머니 그리고
예주까지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와~, 원장선생님!
피아노를 그렇게 잘 치실줄은 몰랐습니다.
정말로 감동입니다."
"예~, 고맙습니다. 사모님!
이 곡으로 전국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을 했답니다."
"예주야~, 봤지?
너도 열심히 하면 원장선생님처럼 피아노를
칠 수가 있단다."
"엄마, 나는 피아노보다 축구가 더 좋아요!
엄마가 자꾸 나가라고 하니까 가기는 가볼게요!
"아이고, 예주야 잘 생각했다.
내일부터 학교 끝나면 길 건너 맑은 소리 피아노
학원으로 가거라 알았지?"
"예, 알았어요 엄마."
예지는 그 말을 하고 이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춘천댁~, 아침에 얘기한 스테이크 하고 점심 좀
차려주세요!"
영희와 예지 엄마는 다시 테이블에 앉아서
예지에 대한 얘기를 했다.
"제가 피아노 가정교사도 붙여 봤지만 애가 연습을
안 해요!
그래서 여러 명이 있는 학원에 보내보려고요!
피아노 교습비가 십만 원이라고 하셨지요?"
"예, 그렇습니다 사모님!"
"여기 다섯 달 치 학원비와 오늘 수고비도 넣었으니
가져가세요!"
영희는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봉투를 받아
핸드백에 넣었다.
"사모님, 점심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원장선생님 식탁으로 갑시다."
두 사람은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이거 한잔씩만 할까요?
남편이 프랑스 출장 가서 가져온 최고급 보르도
와인입니다."
"예~, 고맙습니다. 사모님"
영희는 최고급 안심 스테이크에 구경도 하기 힘든
보르도 와인까지 마시며 갈수록 놀랐다.
두 사람은 식사가 끝나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원장선생님, 우리 예지 잘 좀 가르쳐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사모님!"
영희는 대저택이란 말만 들었지 막상 들어가
보고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놀랐다.
영희는 집으로 걸어가며 핸드백에 봉투를
꺼내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봉투에는 수표 딱 한 장이 있었다.
영희도 부모님 계실 때부터 가난하게 산 것은
아니지만 난생처음 본 백만 원짜리 수표를 쳐다보며
숫자를 몇 번이나 세어보았다.
3부) 나에게 영화 같은 사랑이...
영희는 집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들어오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영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영희 선생님~, 여기요 여기!"
경문고등학교 입구 공터에서 천수가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영희는 그때서야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이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피아노 교습생 집에 다녀오느라 시간 약속을 깜빡했네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영희는 어쩔 줄 몰라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이선생님, 괜찮습니다.
지금이라도 만났으면 됐지요 뭐!"
"지금이 3시인데 그럼 지금까지 여기서 절
기다리신 거예요?"
"이선생님이 원체 미인이라 멀리서도 바로
알아봤지요! 하하하하"
천수는 엉뚱한 말로 영희를 배려했다.
"아니, 세상에!
그러면 저 때문에 6시간을 여기서 기다리신 거예요?"
"미인과 데이트를 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하하하하"
천수는 미안해하는 영희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아이고, 이를 어째요 글쎄!
오늘은 이미 늦어서 대공원 구경은 어려우니 제가
그 대신 벌칙으로 저녁 쏘겠습니다."
"아이고 좋지요 좋아요!
그럼 벌주를 내신다니까 기왕이면 명동으로 가서
멋지게 얻어먹겠습니다. 하하하하"
천수는 영희를 데리고 길 건너로 가서 영화배우
흉내를 내며 택시를 잡았다.
"아저씨, 명동으로 가주세요!"
천수는 택시비를 지불하고 명동 입구에서 내렸다.
"자~, 영희씨!
닭 대신 꿩이라고 오늘은 명동에서 놀아봅시다.
구경하면서 사고 싶은 거 얘기하시면 제가
선물하겠습니다."
"뭐, 딱히 살 것도 없어요 천수씨!"
"에이, 그래면 안되지요!
기왕 명동까지 나왔는데요!"
천수는 영희가 오래된 가방과 목도리 한 것을 보고
이것저것 물건을 영희에게 걸쳐보았다.
"아이고 이 핸드백이 영희 씨에게 잘 어울리네요!
영희씨 어때요?"
"이거 브랜드 상표라서 비쌀 텐데요?"
"아이고 미인에게 어울리는 물건이면 제가
무조건 선물하겠습니다.
저 가난뱅이 아닙니다. 하하하하"
"처음 만나서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여하튼 고맙습니다."
"제가 원장님의 그 고지식한 성격에 반했답니다."
천수는 핸드백과 머플러 화장품 세트까지
한 보따리 사서 영희에게 안겼다.
"자~, 명동을 한 바퀴 돌았더니 배가 고프네요!
원장님은 뭐 드시고 싶으세요?"
"아이고 밥은 벌칙으로 제가 산다고 했잖아요!
아참, 그런데 저 기다리면서 점심도 못 드셨잖아요!"
"원장님 기다리면서 빵 하고 우유 사가지고 먹었답니다."
"아이고 그 큰 덩치에 빵 드셔서 되나요?"
"아무거나 먹고 배부르면 된답니다.
옛날에 운동할 때 빵과 우유는 실컷 먹었습니다. "
"제가 예전에 친구들과 명동 나왔을 때 쉘부르
레스토랑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먹었답니다.
가수가 노래와 통기타 연주도하고 참 좋아요!
그러니까 오늘 그기 가서 제가 저녁 살게요!"
"네, 좋습니다. 하하하하"
두 사람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좌석이 만원이라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두 사람은 한 시간이 지나서 차례가 되어 자리에 앉았다.
"천수씨, 뭐 드실래요?
저는 예전에 함박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었어요!"
"그럼 뭐 함박스테이크와 맥주를 마실까요?"
"예, 전 아무거라도 좋습니다."
잠시 후 깔끔한 복장의 웨이터가 주문을 받았다.
천수는 잔에 맥주를 따르고 건배사를 제의했다.
"우리의 청춘을 위하여!"
수줍음을 타는 영희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위하여, 만 외쳤다.
천수는 체격이 커서 먹성이 좋았다.
"천수씨,
벌써 다 드셨네요!
제 것 좀 더 드세요!
"아이고 접시에 애기 손바닥만 한 게 먹을게 뭐 있나요?
포크로 두 번 찍으니까 없네요!
천수는 맥주도 떨어졌으니 맥주와 함박스테이크
한 개를 더 시켰다.
"자~, 음악도 좋고 분위기도 좋네요!
안주도 왔으니 영희 씨도 한잔 더 받으세요!"
"아이고 전 벌써 취기가 오르는데요? 호호호"
"이렇게 좋은데 왔으니 한잔만 더하세요!
취하면 제가 업고 모셔다 드릴게요!"
영희는 천수가 권하고 또 분위기도 좋고 해서
본인의 주량을 넘게 마셔버렸다.
두 사람은 기분 좋게 음식과 술을 마시다 보니
거의 11시가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영업 종료를 알리는 노래가 나왔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가게는 조명이 환하게 켜지고 종료를 하기 위해
계산을 해야 했다.
천수도 통행금지 때문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장님, 자 이제 집으로 갑시다."
"네~, 천수씨!
술이 취해서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요!
오늘 술값은 여기 있으니 대신 계산 좀 해주세요!"
영희는 낮에 받은 돈 봉투를 천수에게 주었다.
"아이고 이게 뭐예요?
십만 원도 안 되는 술값에 백만 원짜리 수표를 주면
안되지요!
이 정도 돈은 내게도 있으니 걱정 마세요!"
천수는 봉투를 영희의 핸드백에 다시 넣어주고
영희를 일으켰다.
그러나 영희는 술이 취해서 비틀거렸다.
천수는 영희를 다시 의자에 앉히고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마치고 돌아왔다.
"원장님, 제 등에 업히세요!
통행금지 때문에 얼른 집으로 가야 해요!"
천수는 영희를 둘러업고 한 손엔 선물꾸러미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길에는 늦은 시간이라서 취객들이 택시를 잡느라 아우성이었다.
"어이 택시, 택시,
방배동 따블이요 따블!"
그러나 휴일에 도심 중앙이라서 택시를 잡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천수는 계속 방배동 더블을 외쳤다.
그때 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노란색 콜택시가
천수 앞에 멈추었다.
"손님, 지금 시간에 방배동 택시 못 잡아요!
삼만 원 주시면 태워다 드릴게요!"
천수는 영희 때문에도 할 수 없이 콜택시를 탔다.
일반 택시비가 오천 원 정도 하니까 거의 여섯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것도 콜택시가 통행금지 때문에 차고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경문고등학교 앞에서 내려줬다.
천수는 다시 영희를 둘러업고 한 손엔 선물
꾸러미를 들었다.
"원장님, 집이 방배동 어디쯤이에요?"
"몰라요~!
너무 어지러워서 몰라요!
그런데 꼭 나 어릴 때 업혔던 할머니 등짝처럼
널찍하고 따뜻해서 좋네요!"
"원장님, 정신 차리고 집을 좀 알려주세요!"
"아이고, 교습생도 아닌데 원장님이 뭐예요?
그냥 영희, 이영희라고 부르세요!"
"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턴 영희 씨라고 부를게요!"
"거 봐요, 그게 듣는 사람도 더 편해요!"
"영희씨,
집을 못 찾으면 학원으로 갈까요?"
"마음대로 하세요!
사무실 소파에서 자도 됩니다 뭐!"
"예~, 영희씨!
그럼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천수는 할 수 없이 피아노 학원으로 향했다.
큰길에선 벌써 12시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밤범들의 호루라기 소리도 들렸다.
"아이고 12시 전에 오기는 왔네요 영희 씨!
열쇠는 어디 있나요!"
천수가 물어도 영희는 대답이 없었고 등짝에서
잠이 들어 쌔근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천수는 할 수 없이 선물 꾸러미를 문 앞에 놓고
영희를 돌려서 품에 안았다.
천수는 잠든 영희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우리 영희씨 잠든 모습이 천사 같아요 천사!"
천수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볼에 살며시 뽀뽀를 했다.
"그때서야 영희는 인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여기가 어디예요?"
"아이고 영희씨!
집이 어디냐고 몇 번이나 물어도 모른다고 해서
피아노 할 수 없이 학원으로 왔어요!"
"그런데 왜 내가 천수씨에게 안겨있나요?"
"에고, 영희씨!
학원 열쇠를 찾느라 잠시 안고 있었지요!
등짝에서 영희씨가 잠들어서 깨워도 안 일어나서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나는 어릴 적 울 할매 등짝으로 착각해서
잠들었나 봐요!
아이고 죄송해서 어떡해요!"
"괜찮습니다.
잠든 영희씨가 너무 예뻐서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지요!"
"아이고 창피해라!
부끄러워 죽겠네요!"
"괜찮습니다 영희씨!
다음에도 졸리면 업어줄게요! 하하하 하하하하"
"아니에요 천수씨!
우리 할매가 안 주무시고 저를 기다릴 거예요!
집으로 가야겠어요!"
"아니, 통행금지 시간인데 어디를 가요!"
"걱정 마세요 천수씨!
길 건너 저기가 바로 우리 집이에요!
그리고 방이 세 개나 있으니 천수씨도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셔도 됩니다."
"허허 참, 저는 집이 사당동이라 지금은 갈 수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신세를 져야겠네요!"
두 사람은 방범이 있는지를 살피며 영희의 아파트로 내달렸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 소파에서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셨다.
그때 할머니는 문소리에 놀라서 일어났다.
"아이고 영희야!
나는 너 들어오도록 기다리다 깜빡 잠이 들었구나!"
"할매요, 죄송해요!"
"그런데 저분은 누구시냐?"
영희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천수가 나서서 말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유천수이고요 영희씨 애인입니다.
저와 결혼할 수 있도록 할머니가 좀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천수는 대뜸 할머니에게 절을 했다.
"아이고 우리 영희가 이제 다 컸나 보구먼!
애인도 사귈 줄 알고말이야!
내가 저녁을 차릴 테니 이리 와서 소파에 앉게나!"
"아닙니다 할머니!
저녁은 먹고 들어왔습니다.
잠든 영희씨 업고 오느라 목이 마르네요!
시원한 물이나 한 컵 주세요!"
"그래그래, 잠깐만 기다려요!"
천수는 할머니가 가져온 냉수를 연속해서 두 컵이나
마셨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할머니!
이제 갈증이 좀 가셨네요!"
"천수씨, 미안해요!
난 어릴 적 우리 할매 등짝으로 착각해서 잠이
들었나 봐요!"
영희는 그때서야 말문을 열었다.
"그래, 유천수라고 그랬나?"
"예, 그렇습니다 할머니!"
"그럼 언제쯤 결혼을 할 건가?"
그때 영희가 다급하게 말했다.
"할매요!
천수씨가 그냥 하는 말이에요!"
"할머니, 주무시고 내일 일어나서 결혼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그래, 우리 손주사위 체격도 좋고 인물도
훤하게 잘 생겼구먼!
우리 영희도 미인이잖아!
잘됐네 잘됐어, 올 가을에 서둘러 결혼식을 하게나!"
"예, 알겠습니다 할머니!
늦었지만 얼른 씻고 영희 방으로 가서 자게나!
나도 졸려서 방에 들어가서 한숨 자야겠어!"
"예~,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할머니는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니, 천수씨!
무작정 그렇게 말을 하시면 어떡해요!"
"아이고 영희씨!
나는 할머니의 허락을 얻은 엄연한 이 집 사위입니다.
하하하 하하하하"
"쉿, 할매가 듣겠어요!"
"나는 할머니의 허락도 얻었고 내일 집으로 가서
아버지에게 말씀드리고 결혼식 준비를 할 겁니다."
영희가 어쩔 줄 몰라 한숨을 내쉬자 천수는
영희를 목욕탕으로 밀어 넣었다.
"빨리 샤워나 하시고 잘 준비나 하세요!"
영희는 하는 수없이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에 영희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왔다.
"야~, 영희씨!
그렇게 나오니까 진짜로 부인처럼 느껴지네요!
하하하 하하하하"
"몰라요 몰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천수씨도 얼른 씻으세요!"
"알겠습니다. 마님!"
천수는 능청을 떨며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그때 할머니가 잠을 못 이루고 거실로 나왔다.
"아이고 영희야!
어디서 저렇게 든든한 손녀사위를 찾았냐 글쎄!"
"할매요!
저도 어벙벙해서 잘 모르겠네요!
정읍 군수님 둘째 아들이라고 그러네요!"
"그래그래, 내가 봐도 귀티가 나더라!
여하튼 신랑감으론 최고다 최고여!"
그때 천수가 거실로 나왔다.
"부친이 정읍 군수시라고?"
"예~, 할머니!
크게 자랑할 것도 아닙니다."
"그래, 알았네!
얼른 들어가서 자고 결혼식 준비나 잘하게!
나는 우리 영희 시집만 보내면 나도 한시름 놓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네!"
"할머니, 저희들 아들 딸 놓고 살 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그래그래, 기특하구먼 우리 손주사위!
얼른 들어가서 자게나!"
할머니는 말도 못 하고 머뭇거리는 영희의
등짝을 밀어 방으로 들여보냈다.
영희는 할머니 때문에도 어쩔 수 없이 천수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손주사위 될 사람이 너무 잘생기고 군수집
아들이라서 영희를 꼭 시집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두 사람을 방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우리 영희 신랑감이 되려면 저 정도는 돼야지
암 그렇고 말고!"
할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영희를 잘생기고 근본이 있는 천수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심을 굳혔다.
천수와 밤을 보낸 영희는 부끄러워 이불속에서
나오지를 못하고 계속 자는 척했다.
천수는 자는 척하는 영희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일어났다.
"영희씨, 나 먼저 씻을 테니 졸리면 좀 더 자고 나와요!"
영희는 천수가 밖으로 나간뒤에서야 살며시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천수가 거실로 나가자 할머니는 벌써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할머니!"
"응, 우리 손주사위 나왔는가?
어제 술 마신 것 같아서 북엇국 끓이고 있다네!
"아이고, 할머니 고맙습니다."
"그래, 영희는 아직도 자는가?"
"예~, 어제 잘 못 마시는 술을 마셔서 그런지
아직 자고 있답니다."
"그래, 그러면 자네부터 먼저 씻게나!"
"예~, 알겠습니다 할머니!"
그때 영희가 민망한듯 기지개를 켜면서 밖으로 나왔다.
"아이고, 우리 영희가 어제 잘 못마시는 술을
마셨다는데 괜찮으냐?"
"예 ~, 할매요!
속이 좀 메스꺼워요!"
"할머니, 제가 뛰어가서 소화제와 술 깨는 약
사가지고 올게요!"
천수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영희는 천수와 연애를 하면서 러브스토리에
나오는 주인공으로 착각을 했다.
그 이유는 천수가 영희를 너무도 아끼고 사랑하며
다정했기에 아버지 같은 부성애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 영희야!
지금 북엇국 끓이고 있으니 좀 앉아있거라!"
"예, 알았어요 할매!"
영희는 머리도 아프고 속도 안 좋았지만 아프다는
핑계로 민망해서 꾀를 부린 것이다.
"띵동 띵동 띵동"
"아이고 너 신랑 왔나 보다 얼른 문 열어주거라!"
"할매는?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무슨 신랑이에요?"
"만리장성을 쌓았으니 신랑이지 이것아!
빨리 문이나 열어줘라!"
문을열자 천수가 약 봉투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아침이라 약국에 문을 안 열어서
동네 한바퀴를 다 돌아서 사왔네요! 휴~
자 이거 술 깨는 약부터 좀 마셔봐요!"
"예, 고마워요 천수씨!"
"이 할미가 보니까 알콩달콩 보기가 좋구나 좋아!
밥먹게 둘 다 얼른 씻고 나오느라!"
그제야 천수는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천수가 대충 씻고 나오자 영희도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저 회사에 전화를 해야 되니까 전화기 좀 쓸게요!"
"응, 그려 그려 저기 티브를 앞에 있다네!"
천수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결혼식 문제로
휴가를 낸다고 말했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식탁에 앉았다.
"영희씨 약 드시고 속은 좀 괜찮으세요?"
"예~, 천수씨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에구, 다행이다.
북엇국을 먹으면 속이 좀 풀릴게다.
유서방도 얼른 북엇국에 오이무침과 얼른
밥을 먹게나!"
"예, 고맙습니다 할머니!
밥 먹고 정읍으로 내려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려
결혼식 준비를 하겠습니다."
"엥?
천수씨 회사는 어떡하고요!"
"응, 영희씨 씻고 있을 때 회사에 전화해서 휴가를
냈답니다."
"천수씨, 그런데 왜 그렇게 서두르세요?"
"뭐, 할머니도 허락하셨고 영희씨도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잖아요!"
"엥?
내가 언제 대답을 했다고 그래요?"
"아이고 어제 제가 업고 오면서 말했잖아요!
"영희씨 우리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하니깐 저도요 하고 대답을 했잖아요!"
"에구요, 전 그런 대답을 한 기억이 없어요!"
영희는 술에 취해서 기억이 없는것같아
발뺌을 했다.
"아이고 영희야!
이미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당연히 결혼을 해야지!
이 할미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 네가 결혼을 해야
내가 마음 편히 갈 수가 있단다."
"저희들이 얼른 결혼해서 할머니를 편하게
해드릴게요!"
"그려 그려 우리 유서방이 최고야 최고!"
"아이고 할매가 천수씨를 그렇게 싸고도니까
천수씨가 기고만장하잖아요!"
"아이고 내가 지금까지 너를 키웠는데 내가
니 속을 모를까?
속으론 좋으면서 안 그래?"
아침을 먹은 천수는 할머니에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 정읍 부모님께 내려가서 말씀을 드리고
결혼식 준비를 마치고 올라오겠습니다."
"그려 그려, 날짜는 영희하고 의논을 하게나!"
"예, 알겠습니다 할머니!
영희씨~, 정읍에 갔다가 토요일에 다시 들릴게요!"
천수는 집으로 가서 자동차를 끌고 바로 정읍
집으로 내달렸다.
나에게 영화 같은 사랑이... (2화)
백화 문상희 (중편소설)
4부) 웨딩마치
천수는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정읍 본가에 도착했다.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둘째 천수 왔습니다."
"아니, 천수야!
연락도 없이 평일에 무슨 일로 왔느냐?"
"예~, 어머니!
저 색시감이 생겨서 결혼식을 하려고 내려왔어요!
아버지는 어디 계셔요?"
"그래, 저번에 얘기한 대로 정년퇴직을 하고
국회의원 공천받는다고 정신이 없단다."
"아이고 아버지는 그 머리 아픈 국회의원은
왜 하신다고 그러실까요?
그리고 제가 알기론 지역공천을 받으려고 유명인사들이
줄을 섰다고 들었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그 황소고집을 누가 말리겠니 안 그래?
그나저나 네 색시감은 누군지 데려와서
얼굴이라도 좀 보여주고 결혼식을 해야지!"
"예, 어머니 아버지에게 말씀드리고 다음 주말에
같이 내려올게요!"
저녁 무렵 천수 아버지가 집으로 오셨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그동안 강령하셌는지요!"
"그래, 천수 왔구나!
회사 일은 할만하더냐?"
"예~, 아버지!
저 결혼을 하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래?
색시감은 뭐 하는 사람이냐?"
"예~, 사범대학 나와서 피아노 학원을 하는
스물다섯 살 여자입니다!"
"그래?
다음에 한번 데리고 와보거라!
근본이 있는지 가정교육은 잘 됐는지 좀 봐야겠다."
"예, 아버지!
다음 주에 데리고 오겠습니다."
천수는 부모님께 결혼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이튿날 바로 방배동으로 향했다.
천수는 피아노 학원에 들렸으나 영희가 없어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벨을 눌렀다.
"띵동 띵동 띵동"
"누구세요"
"저 유천수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응, 우리 손녀사위 왔구먼!
어서 들어오게!"
"예, 안녕하세요 할머니!
영희씨는 어디 갔나요?"
"응, 학원 마치고 지금 씻고 있다네!
자네도 저녁 먹게 식탁으로 가게나!"
마침 그때 영희가 목욕탕에서 나왔다.
"아~, 천수씨 오셨군요!"
"아이고, 영희씨는 화장 안 한 민낯이 훨씬 더
이쁘네요! 하하하 하하하하"
"또 오셨다고 놀리는 거예요?"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사실대로 말한 겁니다.
그나저나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이번 주말에
당장 데리고 오랍니다."
"아이고 천수씨!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예요?"
"우리 이쁜 영희씨를 누가 채어갈까 봐 조바심에
서두른 거지요!"
"천수씨는 여하튼 넉살도 좋으세요!"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원래가 지극히 사무적인 성격인데
유독 영희 씨에게 만 그렇답니다."
"이제 그만하고 얼른 이리 와서 저녁이나 먹게!"
"예~, 알겠습니다 할머니!"
천수는 저녁을 먹으면서 부모님께 말씀드린
경위를 할머니와 영희에게 말했다.
"할머니, 이번 주말에 영희씨를 데리고 간다고 했으니
할머니가 저를 좀 도와주세요!"
"아니, 저한테는 부탁을 안 하고 왜 할머니에게
부탁을 하세요?"
"아이고 할머니가 이 집에 어른이시고 또
저의 지원군 이잖아요! 하하하하"
"그래, 영희야!
언젠가는 결혼을 해야 하니 기왕이면 빨리
결혼식을 올리게 유서방 따라서 내려가도록 해라!"
"이번엔 딴 데 가지 말고 아침에 집에서 꼭 기다리세요!
아셨지요?"
천수는 저녁을 먹고 두 사람에게 다짐을 받고
집으로 들어갔다.
천수는 주중에 근무를 하고 주말 아침 일찍 방배동으로 갔다.
"띵동 띵동 띵동,
할머니 저 왔습니다."
거실로 들어가자 대답을 미루던 영희가 화장에
열중이었다.
천수는 할머니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영희씨가 어쩐 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네요?"
"아이고 이 사람아!
그동안 내가 이해를 시키고 구슬렸지!"
"고맙습니다. 할머니!"
천수는 할머니 덕분에 아침을 먹은 후 영희를
데리고 정읍 집으로 갈 수가 있었다.
천수와 영희는 일찍 출발한 덕분에 점심때쯤
정읍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 둘째 천수 왔습니다."
"아이고, 우리 며느리감도 왔구먼?
아버지도 방에 계시니까 얼른 들어가거라!"
"아버지, 천수 왔습니다."
천수는 방으로 들어가서 영희와 함께 부모님께
큰절을 올렸다.
"아이고 우리 천수가 어찌 저렇게 이쁜 색시감을
데리고 왔디야?"
천수 어머니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어흠, 어흠, 천수에게 얘기는 들었다.
사범대학 나와서 피아노 학원을 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아버님!"
"나는 사주팔자고 궁합이고 그런 것 안 따진다.
우리 천수가 어련히 알아보고 선택을 했겠냐!
요즘 결혼 시즌이라 예식장도 복잡하니
이번에 새로 지은 군민회관에서 결혼식을 하도록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영희는 단번에 천수 부모님께 허락을 받았다.
결혼식은 군민회관에서 한 달 뒤 10월 27일
11시로 예약이 되었다.
그리고 결혼식 행사 준비는 천수 아버지가
잘 아는 행사전문 업체에 맡겼다.
정읍 본가는 본가대로 영희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결혼식 준비에 바빴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영희를 위해 분주하게
시집 예물과 예단을 준비했다.
천수는 할머니가 준비한 예물과 예단을 가지고
매주 주말에 정읍 본가를 오갔다.
드디어 10월 27일 11시에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신부화장을 하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영희는
그야말로 눈부신 천사 같았다.
천수는 예복을 입은 상태로 친구에게 말했다.
"야, 홍범아!
신부 측 자리가 텅 비었잖아!
네가 얘기를 해서 친구들 모두 신부 측 자리에 가서
앉아라!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 천수야!"
천수는 영희가 민망해할까 봐 친구들을 텅 빈
신부 측 자리를 채우도록 배려를 했다.
드디어 웨딩마치가 울리고 신랑 신부가 입장했다.
천수의 친척과 친구들은 결혼식장이 떠나가도록
박수를 쳤다.
"와~, 꼭 연예인들 결혼식 같아!"
"아니야, 신랑도 잘생겼지만 신부가 꼭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아!"
하객들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영희는 너무 긴장이 되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미소도 지을 수가 없었다.
천수와 영희는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고 마지막
폐백도 올렸다.
군민회관 식당에 차려진 연회장에는 백 명이
넘는 하객들로 붐볐다.
천수는 연회가 끝나고 회사에서 지원한 버스에 할머니와
영희의 친구들을 태워 보냈다.
영희는 친구들을 먼저 버스에 태우고 할머니를
불렀다.
"할매요, 저 시집보내시느라 정말로 고생하셨어요!
버스가 사당역에 내려준다니까 거기서 집에까지
꼭 택시 타고 들어가세요!"
"그래그래 영희야!
우리 이쁜 영희가 결혼을 하니까 나는 너무 좋단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천수 씨하고 집으로 갈 테니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그래그래, 영희야!
신혼여행 잘 다녀오너라!"
할머니는 영희의 손을 꼭 잡은 채 눈물을 훔쳤다.
버스를 떠나보낸 두 사람은 전주에 있는 호텔에서
신혼 첫날밤을 보냈다.
5부) 허니문 베이비
신혼여행을 갈 때도 천수의 아내 사랑은
지극정성이었다.
"자~, 퍼스트레이디!
마나님, 앞자리에 앉으세요!"
"아이 천수씨!
그렇게 까지 안 해도 돼요!"
"마나님, 유기사 출발합니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지 제주도를 가기 위해
목포로 차를 몰았다.
천수는 미리 예약을 했기에 차에 탄 채로
카페리호에 탑승했다.
"마나님?
일등석으로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우와~, 천수씨 3층 창가에서 바다를 보니까
바다가 너무너무 아름다워요!"
"넵, 마나님을 위해서 미리 예약을 했지요!
하하하 하하하하"
"고마워요 천수씨!"
잠시 후 바닷가재 요리가 나왔다.
"카페리호 예약을 할 때 메뉴판을 보고 영희씨도
좋아할 것 같아서 바닷가재 요리를 주문했어요!"
"오~, 바다향이 물씬 풍기는 가재가 너무너무
맛있어요!"
"아이고 마나님 입맛에 맞으니 다행이네요!"
"고마워요 천수씨!"
"난 이름이 천수가 아니고 여보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턴 여보라고 부르세요 알았지요!"
영희는 부끄러워 천수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천수는 왜이터를 불러서 지폐 몇 장을 쥐어주고
창가에서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남는 것은 추억과 사진뿐입니다. 마나님!"
영희는 천수의 배려심 깊은 태도에 고마움을 환한
미소로 답했다.
천수는 제주도에 도착한 배에서 내려 파라다이스
호텔로 차를 몰았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호텔 프런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객실로 올라갔다.
"아~, 천수씨, 아니 여보!"
제주도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요!
여기 호텔비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우리 마나님께 점수 따려고 스위트 룸으로
예약을 했지요!
사실은 아버지가 돈을 많이 주셨답니다. 하하하하"
"여하튼 고마워요 여보!"
영희는 너무 기뻐서 천수를 껴안아버렸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허니문 키스를 했다.
영희는 감격에 겨운 마음으로 천수에게 안겨서
포근하게 잠들었다.
천수는 이튿날부터 계획한 대로 여행 코스를 밟았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제주 말 농장이었다.
"여보, 난 말 타는 거 무서워서 못 타요!"
"이것은 조랑말이라 괜찮으니 타 보세요!"
천수는 영희의 엉덩이를 밀어서 말에 태우고
천수도 말에 올라서 한 바퀴를 돌았다.
"어때, 재미있지요?"
"아이고 나는 무서워서 덜덜 떨었어요!
그리고 말을 처음 타서 그런지 종아리와
허벅지까지 아파요!"
"아이고, 우리 마나님이 아프면 안 되지요!
자, 주차장까지 업어줄 테니 여기 업히세요!"
영희는 마지못해 천수에게 업혔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천수씨 널찍한 등이 너무 편해요!"
"우리 마나님이 편하다니까 나도 좋아요!"
두 사람은 남들이 쳐다보든 말든 개의치 않고
콧노래를 부르며 주차장으로 갔다.
영희는 그제야 결혼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제주에서 2박 3일 신혼여행을 마치고
역순으로 목포항구에 내려 정읍으로 향했다.
천수와 영희는 본가에 내려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아이고, 우리 이쁜 며느리가 시부모 선물을
많이도 사 왔구먼!"
"아버지 어머니 선물을 이 사람이 세심하게
골라서 샀답니다.
"그러게 말이다.
여하튼 자손은 다다익선이라 많을수록 좋단다.
그러니까 아들 딸 많이 낳아서 잘 키우거라!"
"예~, 아버님 어머님 알겠습니다."
천수와 영희는 정읍 본가에서 하루를 묵은 뒤
서울로 향했다.
"여보, 자기 집 정리하고 우리 집에서 할머니
모시고 산다는 약속 꼭 지켜야 돼요 알았지요?"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번 토요일 이삿짐센터에 예약을 해 놓았으니
걱정 붙들어 메세요! 하하하 하하하하"
천수와 영희는 이번에도 할머니에게 드릴
선물 보따리를 할머니 앞에 풀어놓았다.
"아이고 이 사람들아!
시집에 드릴 선물이나 살 것이지
내것은 안 사 와도 되는데 말이야!"
"할매에게 드리려고 조개껍질로 만든 브로치와
진주목걸이도 예뻐서 사 왔답니다."
"그래그래, 우리 손녀사위와 손녀가 최고다 최고여!"
할머니도 선물이 마음에 들어 흡족해하셨다.
토요일엔 천수의 이삿짐을 방배동으로 옮겼다.
"아이고 이제 우리 집이 사람 사는 것 같구먼 그래!"
세 사람은 이삿짐 정리가 끝난 다음 식탁에 앉았다.
할머니는 시골 냄새를 풍기는 청국장을 끓였다.
그런데 식탁에서 청국장 냄새를 맡은 영희가
심하게 구역질을 했다.
"아니, 여보! 왜 그런 거야?
갑자기 어디가 안 좋아요?"
"가만, 가만있어봐!
너희들 만리장성을 쌓은 게 아마 8월 초였지?
그래그래, 벌써 석 달이 지났으니 임신을 한 게야!"
"영희씨, 아니 여보!
정말 임신을 한 거요?"
"아이고 경사가 났구먼 경사가 났어!
이제부턴 태아를 생각해서 몸관리 잘하거라
영희야 알았지?"
"예~, 할매요!
제가 봐도 제가 임신을 한 것 같아요!"
"여보, 내일부터 피아노 학원도 강의 시간을 줄이고
일찍 들어와서 쉬도록 해요 알았지요?"
할머니는 청국장을 치우고 영희의 밥상을 따로
차려주었다.
천수는 월요일 아침 회사 상사들에게 줄 선물을
챙겨서 일찍 출근을 했다.
천수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회사에 알리고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한 시간 먼저 퇴근하도록
허락을 받아냈다.
천수의 직장은 여의도였고 회사에서 방배동 까지
30분이면 출퇴근이 가능했다.
천수는 5시 반이면 학원에 도착해서 임신한
영희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마트에 가야 할 때도 영희와 할머니가
얘기한 것을 메모해서 천수가 사다 날랐다.
천수는 주말이면 운동복 차림으로 영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여보, 이제는 아기를 위해서도 좋은 음식, 좋은
생각으로 걷기 운동도 해야 돼요 알았지요?"
"예~, 고마워요 여보!
지금 생각하니까 당신과 결혼한 게 행운인 것 같아요!
나는 결혼생활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천수는 영희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아내에겐 언제나
존칭을 사용했다.
천수의 아내 사랑은 헌신적이고 지극정성이었다.
겨울이 되어 영희의 배가 점점 불러오고
걷기 운동을 못하게 되자 실내용 스탠드 자전거를
사 와서 운동을 하도록 했다.
눈 내리는 날이면 구두를 신은 영희가 다칠까 봐
업고서 시장을 다녀왔다.
"아이고 여보, 창피하니까 내려주세요!"
"남들은 다쳐서 업힌 줄 아니까 걱정 말아요!"
또한 영희가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할 때 그때서야
천수는 씻으러 들어갔다.
음식을 시킬 때도 영희가 오늘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고 시켰다.
초여름인 6월이 되자 영희는 태동이 점점 심해졌다.
"할매요, 아기가 계속 발로 차는 것 같아요!"
"그래, 영희야!
산달이 다 되었으니까 그럴 거야!
그놈 노는 걸 보니 분명히 아들일 게다."
"응, 그래요?
어디 나도 한번 느껴봅시다."
천수는 영희의 배에 귀를 대고 태동을 느껴보았다.
"맞아요 맞아!
이 녀석 분명히 아들입니다 아들! 하하하 하하하하"
천수는 팔불출 마냥 소리치며 좋아했다.
"여보, 당신 다니는 산부인과에 미리 입원 예약을
해야겠어요!"
"그래, 유서방!
자네가 전화를 해서 미리 예약을 해두게!"
"예, 알겠습니다 할머니!"
영희는 6월 말이 되면서 정말로 산통을 느꼈다.
영희는 학원 수업을 못할 것 같아 피아노를 치는
같은 대학교 후배에게 학원을 임시로 맡겼다.
산부인과에 예약한 다음날 아침 영희를 차에 태우고
입원을 시켰다.
천수가 회사에서 업무에 열중일 때 직원이 불렀다.
"부장님, 웬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응, 그래 바꿔줘요!"
"유천수 아버님, 축하드려요!
잘 생긴 아드님이 태어났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수는 회사 앞 꽃집에서 꽃다발을 한 아름 사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여보, 고생했어요!
이게 다 할머니가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어디 우리 아들 얼굴 좀 보자꾸나!"
"그래, 우리 유서방을 꼭 빼어 닮았다네!"
천수는 영희와 할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간호사를 통해서 아들을 품에 안았다.
"아이고, 똘방똘방한 우리 아들!
올해가 호랑이 해라서 준수한 호랑이처럼
잘 자라라고 할부지가 호준이라고 이름을 지었단다."
천수는 퇴원을 할 때까지 조기 퇴근을 하고
병원에 붙어있었다.
천수는 아이가 태어났어도 할머니와 영희
그리고 아들에게 정성을 다했다.
호준이가 돌이 되어갈 때 손자가 없었던 할아버지는
돌잔치를 정읍 본가에서 하기를 원했다.
천수는 토요일 아침 영희와 호준이를 태우고
정읍 본가로 내려갔다.
"둘째야, 그리고 에미야!
첫째가 아직도 손주 소식이 없는데
내가 죽기 전에 손자를 안겨줘서 고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첫 손자를 보고 좋아서 동네방네
자랑을 하셨고 돌잔치도 거창하게 열어주었다.
영희는 부엌에서 손님 상 차리는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그때 시어머니가 돼지고기를 삶던 솥뚜껑을 열자
영희는 심한 구역질을 했다.
"아이고 새아가!
너 둘째 임신을 했나 보구나!"
"예~, 어머님 그런 것 같아요!"
"경사여~, 경사가 났구먼 그래!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좀 쉬도록 해라!"
"예~, 어머님 알겠습니다."
이 사실은 전해 들은 천수와 할아버지는 겹경사가
났다면서 좋아했다.
이듬해 사월 영희는 다시 산부인과에 입원을 했고
영희가 좋아하는 라일락 꽃 향기가 날리는
사월 초 둘째 호영이가 태어났다.
호준이가 세 살, 호영이가 첫돌이 지난여름
손자 둘을 돌봐주시던 할머니가 몸살이 났다.
천수는 할머니를 차에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할머니에겐 기력회복 링거를 놓아드리고
몸살약을 처방받아서 집으로 왔다.
"할머니, 점심 드신 후 잊지 마시고 약 드세요!
저는 좀 늦었지만 출근하겠습니다."
"그래요 할매!
할매가 호준이 호영이 돌보시느라 몸살이 났네요!
몸살 다 낳으면 보약 한재 해드릴게요!"
"아이고 괜찮다.
나이 드니까 기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뭘!"
"오늘은 제가 애들 데리고 학원에 갈 테니까
할매는 약 드시고 푹 쉬고 계세요!"
"그래, 내가 몸살이 났으니 그렇게 해야겠구나!"
천수는 영희와 아이들을 학원에 내려주고
출근을 했다.
영희는 피아노 학원 사무실에 만들어놓은 어린이
놀이방에 아이들이 놀게 하고 강의를 했다.
영희는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편의 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다.
천수가 초인종을 여러 번 눌러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현관 열쇠를 꽂아 문을 연 천수와 영희는 깜짝 놀랐다.
"할매요~, 할매요~,
영희가 불러도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영희는 할머니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할매요, 어디 아프세요?"
영희는 할머니를 흔들었으나 기척이 없었다.
천수는 급히 단골 병원에 전화를 해서 출장진료를
부탁했다.
할머니의 베개 옆에는 편지봉투가 놓여있었다.
"영희야,
사랑하는 손녀 우리 영희야!
에미 애비 없이도 네가 잘 커줘서 고맙구나!
네가 좋은 사람과 결혼도 하고 호준이와
호영이도 낳아서 잘 크고 있으니 다행이구나!
나는 이제 기력도 떨어지고 얼마 못 살 것 같아
이 편지를 미리 써둔다.
그리고 우리 손주사위에게 부탁하건대 지금처럼
가족들을 잘 보살펴 주게나!
우리 영희와 알콩달콩 살면서 호준이 호영이도
자네처럼 멋진 사람이 되도록 키워주게나!
그리고 영희야!
천국에 가서 네 에미 애비를 만나면 우리 영희와
사위, 그리고 호준이 호영이 자랑도 해줄게!
영희야~, 부디 행복하게 살거라!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할미가!"
조금 후 단골 병원 의사가 집으로 와서 진료를
했지만 사망진단을 내리고 돌아갔다.
영희와 천수는 할머니를 붙들고 한없이 울었다.
호준이와 호영이도 엄마 아빠를 따라서 울자
집안은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영희는 외할머니 영전에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서 올렸다.
할매꽃
할매꽃이 피었네
하늘하늘 할매꽃 잎새가 눈이 되어 내리네
할매가 보고 싶어 하늘을 보니
눈이 녹아 흐르는 건가
눈물이 흘러내리는 건가
그리움의 강둑이 터진 건가
우리 할매 나 어릴 적에
동대문시장에서 곱디고운 천을 사다가
이쁜 한복 손수 지어 입히시고
양갈래 머리 땋아 댕기 매고
노리개 달아주시며 세상에서 제일 고운 내손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왔누 ~~
활짝 웃으시며 꼭 안아주시던 할매
학교 다닐 땐 끝날 때쯤이면
교문 앞 저만치 서서 기다리시다
뛰어와 안아주시며
오늘은 뭐 배웠냐며 궁금해하시던 할매
애지중지 키워주신 할매덕에
나 커서 시집갈 때 뒤돌아서 눈물 바람 보이시며
시집가는 걸 서운해하신 할매
첫아이 낳았을 때
금이야 옥이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며 제대로 한숨
눈도 못 부치고
증손자 안고 어르고 나 키울 때처럼
궂은일은 다하시며 행복해하시던 할매
할매를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나나요
할매는 꽃이 되어 날리고
할매가 그리운 손녀는 눈물 바람꽃이 되어
할매 사진을 껴안아 봅니다
할매 하고 부르면
오냐~
할매 여기 있다 할 것 같아
바람소리에도 문 열어 봅니다
할매꽃이 내 인생길 길잡이가 되어
할매가 극진히 아끼던 손녀가
할매가 되어 손자 재롱에 웃고 있네요
할매 보고 있나요?
할매 한테 받았던 사랑을 손자에게 주면서
말 알아들을 때쯤
할매꽃 이야기를 할게요
보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할매,
우리 할매 그립습니다.
천수와 영희는 지인들에게 부고를 보낸 후
장례를 치르고 외할머니를 천국으로 보내드렸다.
할머니가 평시에 농담처럼 하신 말씀대로 유골은
한강에 뿌려드렸다.
영희는 더욱이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에게
업혀서 컸기에 가슴이 더 미어졌다.
영희는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슬픔에 빠졌다.
6부) 남편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영희는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도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러나 남편 천수의 위로와 지극정성인 보살핌으로
제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여보, 가신 분은 가신분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당신이 그러고 있으니 애들도 웃지도 않아요!
제발 마음을 추스르고 기운을 차려요!"
"예~, 알았어요 여보 고마워요!"
영희는 아이들 걱정에 마음을 추스르고 가을이
지나면서 차츰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일로 남편이 일본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일본 판로 개척을 위해 3주간의 남편 출장이었다.
영희는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과 떨어져서 지내게
되었다.
영희는 항상 정겹게 아이들을 돌봐주셨던 할머니도
돌아가셨기에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천수는 일본 출장을 가서도 매일 밤 국제전화를
걸어와 영희를 달래주곤 했다.
"호준아, 호영아!
자 오늘도 학원에서 놀아야 하니 가자꾸나!"
피아노 학원 사무실에 작은 놀이방을 만들었다지만
영희는 수유와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느라
피아노 강의에도 소홀했다.
영희는 어쩔 수 없이 후배인 프리랜서 피아노 강사를
다시 불러서 강의를 맡겨야 했다.
영희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영희 언니예요?"
"응, 보연아!
나 좀 도와줬으면 싶은데 요즘은 뭐 해?"
"예~, 유학준비하느라 아직은 쉬고 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가 아이들 둘 키워가며
학원을 할려니까 너무 힘들어!
유학 갈 때까지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그래요, 언니!
나도 마침 용돈이 궁했는데 좋아요!"
영희는 후배 보연이에게 피아노 학원을 맡기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잠시 창가를 바라보던
영희가 소리쳤다.
"호준아, 호영아!
바깥에 첫눈이 온단다.
자, 우리 호영이도 첫눈이 오는 걸 볼까?"
세 살 베기 호준이는 소파에 기어올라 소리쳤다.
"엄마, 엄마, 저게 눈이야 눈?"
"그래, 저기 하얀 게 바로 눈이란다 눈!"
아이들도 엄마가 좋아라 하니까 덩달아 멋모르고
좋아했다.
그때 전회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얘들아, 아빠에게 전화 왔나 보다!"
"여보, 나야 나!
나 없는 3주간 애들보느라 고생했어요!
일본 출장 마치고 내일 오후에 서울로 갈 거야!"
"아이고 여보!
일식도 안 좋아하는 당신이 나보다 더 고생했지요!
내일 시장 봐서 당신 좋아하는 동탯국 얼큰하게
끓어놓을게요!"
"그래요 여보!
내일 저녁은 집에서 먹도록 할게요!
잠깐 애들 목소리 좀 들려줘요!"
"얘들아, 아빠에게 인사드려야지?"
"아빠, 엄마, 아빠빠!"
"그래, 우리 호준이, 호영이 엄마 말 잘 들어요?"
"응, 아빠빠!"
아이들도 아빠 목소리가 반가워서 전화기에
귀를 대고 소란을 떨었다.
"여보? 조심해서 들어오세요!
사랑해요 여보!"
"응, 나도 당신 사랑해요!
내일 저녁에 봐요~!"
이튿날 영희는 피아노 학원 놀이방에 아이들을
두고 시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
"보연이 후배~!"
"네~, 선배 원장님!
"애들 사무실 놀이방에 두고 시장을 좀 다녀올게!
우리 안으면 그냥 두면 돼요!"
"네~,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영희는 천수가 좋아하는 동태와 두부김치 재료를
사서 학원으로 돌아왔다.
"보연이 후배, 오늘도 고생했어요!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쉬고 월요일에 봐요!"
"네~, 선배 원장님!
그럼, 월요일에 나올게요 수고하세요!"
영희는 쌍둥이 유모차에 호준이와 호영이를
태우고 눈길에 조심조심 집으로 돌아왔다.
어젯밤 눈이 오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영희는
아이들에게도 모자와 목소리를 해줬다.
집으로 돌아온 영희는 남편이 좋아하는 동탯국과
두부김치를 열심히 준비했다.
저녁 겸 반주로 먹을 두부김치 요리도 마친
영희는 남편을 기다렸다.
"분명히 7시쯤 온다고 했는데 왜 아직 안 올까?"
보행기를 타고 놀던 아이들도 아빠, 아빠빠를
부르며 기다렸다.
여덟 시가 조금 지나서 전화벨이 울렸다.
영희는 비행기가 연착해서 이제야 왔나 보다
하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당신이에요?"
"저~, 유천수 씨 부인되시는가요?"
"예~, 제가 집사람입니다."
"예, 여기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입니다.
환자분 지갑에서 명함을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아니, 세브란스병원엔 왜요?"
"네~, 제가 경찰관에게 듣기론 빙판길에 차가
전복되어 구급차로 실려왔다고 들었습니다.
보호자가 빨리 병원으로 오셔서 수술과 입원
절차를 밟아주셔야 합니다."
"네, 여하튼 알겠습니다."
영희는 전화를 끊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남편의 사고소식에 덜덜덜 떨고만 있던 영희는
정신을 가다듬고 정읍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머님, 저 호준이 어미입니다."
"그래그래, 얘들은 잘 크고 있는가?"
"예, 어머님!
그런데 호준이 아빠가 일본 출장에서 돌아오다가
눈길에 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났답니다.
병원에서는 빨리 보호자를 오라고 하는데요!
전 애들을 재운다음에 택시를 타고 가보도록 할게요!
아버님께 말씀을 드리고 올라오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호준이 큰아버지에게도 연락을 해주세요!
호영이가 전화번호 노트를 다 찢어놔서 전화번호가
없답니다."
"그래, 알았다 에미야!
그나저나 얼마나 다쳤다고 그러던가?"
"저도 모르겠어요!
의식이 없다고만 들었어요!
여하튼 아이들 재우고 저부터 택시 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고, 이를 어쩌면 좋으냐!
알았다 알았어 에미야!
내일 첫 기차 타고 올라가도록 할게!"
영희는 안절부절못하고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잠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우유를 다 먹은 호영이부터 잠들었다.
영희는 호준이를 토닥거려서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부리나케 도로로 내달렸다.
"택시, 택시, 여기요!"
그러나 퇴근시간이 되어 택시가 서질 않았다.
순간 영희는 예전에 남편이 택시 잡을 때를
생각하며 더블을 외쳤다.
"택시, 택시, 신촌 더블이요 더블!"
영희는 손으로 브이자를 가리키며 택시를 불렀다.
그제야 택시가 영희 앞에 멈추었다.
"아저씨, 요금은 더블로 드릴 테니까
빨리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주세요!"
"예~, 급하신 모양이네요 손님!"
"예, 남편이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있답니다."
"손님, 안 그래도 눈길 빙판길이라 미끄러워요!
여하튼 최선을 다해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영희는 뒷좌석에 앉아서 좌불안석을 못하고 꼭 쥔
손바닥엔 땀이 솟아났다.
영희는 한 시간이 지나서야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영희는 다급하게 응급실 접수처 문을 두드렸다.
"간호사님, 간호사님!
유천수 씨 어디 있나요?"
"예~, 차트 기록을 살펴보고 말씀드릴게요!"
"예,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차트를 한참 살피던 간호사가 말했다.
"응급처치와 엑스레이 촬영을 마치고 105호
중환자실에 있답니다.
여기 보호자분 성함과 주민등록번호 써주시면
간호사가 안내해 줄 겁니다."
영희는 보호자 기입란에 사인을 하고 간호사를
따라갔다.
수간호사 모자를 쓴 간호사가 물었다.
"어느 분 보호자 되시나요?"
"예, 유천수 씨 보호자입니다."
"네~, 저기 창문 쪽에 있는 환자입니다.
응급처치로 맥박은 뛰는데 의식은 없답니다.
조금 후 열 시쯤 과장님이 회진을 오실 때
자세히 물어보세요!"
천수는 찢어놓은 환자복을 입고 오른쪽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은채 손과 코에는 링거줄을 매달고 있었다.
영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천수의 손목을 잡고
흐느꼈다.
"여보 나 왔어요!
호준이 호영이 아빠, 대답 좀 해보세요!"
영희는 아무런 기척이 없는 남편의 손을 잡고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저는 종교는 없지만 우리 남편 좀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시면 하느님을 믿겠습니다."
영희의 기도에도 남편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영희는 잠시 후 주치의가 들어오는 바람에 눈을 떴다.
주치의는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또 환자의 눈까풀을
뒤집어보고 여러 가지 진료를 이어갔다.
"간호사, 이 환자 심박수와 맥박 그래픽 차트 좀
가져오세요!"
주치의는 환자 상태와 차트를 번갈아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보호자에게 말했다.
"환자 보호자 분!
사고 기록에는 조수석에 탔다가 차가 전복되면서
유리를 뚫고 튕겨져 나왔답니다.
운전자는 현장에서 사망했고요 환자는 응급실에서
회생 응급치료를 받았습니다.
부러진 팔과 다리는 깁스를 하면 된다지만
문제는 심박수와 맥박이 불규칙해요!
인명은 재천이라 했으니 기다려봅시다."
"예, 의사 선생님!
제발, 제발, 우리 아기아빠 좀 살려주세요 예?"
"예~, 저희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아침에 회진 올 때까지 간호사가 체크를 하고 있으니
상태가 호전되도록 기다려봅시다."
주치의는 다른 환자를 봐야 한다며 자리를 이동했다.
영희는 남편을 위해 기도를 하면서도 애들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 세상에 호준이 호영이를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희는 새벽에 어쩔 수 없이 보연이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선배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응, 보연이 후배 새벽에 전화를 해서 미안해!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있어요!
애들은 재워놓고 왔지만 아침이 문제야!
당분간 학원은 못 열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보연이 후배가 당분간 우리 애들 좀
봐줘요!
내가 은혜는 잊지 않고 갚을 테니 부탁해요!"
"아이고, 어쩌다가 그런 사고를 당했데요?"
"응, 김포공항에서 회사 직원과 집으로 오다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차가 전복이 됐다네요!
회사 동료는 사망하고 남편은 지금 의식이
없는 상태야!
그러니까 당분간 학원은 접고 애들을 좀 봐줘요!"
"예, 알았어요 선배님!
어차피 잠을 깼으니까 얼른 준비해서 가볼게요!"
"그래요 보연이 후배!
분유는 식탁에 반찬은 냉장고에 있으니까
애들에게 먹이도록 부탁해요!"
영희는 공중전화를 끊고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가서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남편의 손이 싸늘했다.
"간호사님, 간호사님, 여기 좀 봐주세요!"
새벽이라서 잠시 졸고 있던 간호사가 뛰어왔다.
"간호사님, 아까보다 손이 차가워요!
빨리 좀 봐주세요!"
간호사는 급히 인터폰으로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맥박을 확인하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고 확인을 하더니 다급하게 소리쳤다.
"환자분 밖으로 내보내고 빨리 E GEN (심폐소생술)
준비하세요!"
영희는 간호사에게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대기실 의자에 앉은 영희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며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제발, 제발, 우리 남편 호준이 호영이 아빠를
살려주세요!"
영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영희는 간호사가
어깨를 흔들어서야 눈을 떴다.
"보호자분 중환자실 주치의 방으로 들어가 보세요!"
간호사는 주치의 대기실 문을 열어주었다.
"보호자분!
제 말을 잘 들으세요!
환자는 병원 응급실에 올 때도 의식이 없었습니다.
저희 대학병원에서는 최신 의료장비로 응급처치를
하고 의료진도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조금 전 사망하셨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시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세요!"
영희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간호사가 계속 흐느끼는 영희를 부축해서
입관실로 데리고 갔다.
"보호자분!
슬픈 마음은 알지만 여기 사망진단서에 서명을
하시고 안으로 들어가세요!"
영희의 눈에는 눈물로 얼룩져서 글씨가 보이지도
않았다.
간호사가 손수건을 건네고 눈물을 닦은 후 영희는
억지로 서명을 했다.
영희는 입관실 방으로 들어가서 남편을 붙들고
오열을 했다.
"여보,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라고요!
우리 호준이 호영이는 어떻게 살라고요!
이렇게 허무하게 가셔도 되는 겁니까?
제발, 말 좀 해보세요 여보!
이렇게 가실 거면 왜, 저와 결혼을 했냐고요!
이별 인사라도 하시고 가실 것이지 안 그래요?"
영희는 이미 망자가 된 남편의 가슴에 엎드려
소리치며 한없이 울었다.
복받치는 설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 유천수는 영희와 아들 호준이와 호영이를
남겨둔 채 결혼한 지 만 삼 년 만에 저세상으로 떠났다.
나에게 영화 같은 사랑이... (3화)
백화 문상희 (중편소설)
7부) 죽어서도 가족을 돌본 남편
영희는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서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면서 남편곁을 지켰다.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영희의 건강 때문에
자식을 잃은 슬픔보다 며느리 걱정이 앞섰다.
남편 발인날 영희는 아이들이라도 보고 가시라고
고집을 부려 기어이 남편 영정을 들고 집에 들렀다.
집에는 후배 보연이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띵동 띵동 띵동,,
"호준아 호영아!
엄마 아빠 왔단다."
"아이고 선배님,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요!"
"보연이 후배, 아이들 보느라 고생이 많았지?
호준아 호영아, 여기 아빠도 오셨단다.
마지막 인사드려야지 안 그래?"
영희는 터지는 울음을 꾹 참고 아이들에게 남편의
영정 사진을 들이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사진을 보며
아빠를 불렀다.
"아빠, 아빠, 아빠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손주들을 보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밖에서 기다렸다.
"에미야~, 이제 그만 가도록 하자꾸나!"
"호준아 호영아!
아빠 모셔다 드리고 올게 알았지?
보연이 후배, 오늘까지만 수고 좀 해줘요!"
"네~, 선배님!
아이들 걱정은 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응, 고마워요 보연이 후배!"
영희는 영정사진을 들고 다시 장례버스에 올랐다.
천수는 교통사고로 급작스럽게 사망했기에
유서도 유언도 남기질 못했다.
그래서 시아버지는 정읍 선산에 묻어주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시어머니는 휘청거리는 영희를 부축하여 선산
장지에 도착했다.
"자~, 에미야!
이제 술잔을 따르고 절을 하거라!
그리고 원 없이 울거라!
이 애비보다 먼저 떠난 불효자식 앞에 다시는
오지 말거라 알겠느냐?"
영희는 시아버지 말씀에 설움이 복받쳐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영희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남편의 무덤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장례 버스로 돌아왔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애들 때문에 이 버스를 타고 바로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간 사람은 간 것이니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
호준이 호영이 뒷바라지하려면 힘들 텐데 마음
잘 다독이며 살거라!"
"예, 고맙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이것은 이번에 들어온 부조금이다.
그리고 아이들 양육비로 땅마지기라도 팔아서
보낼 테니 그렇게 알거라!"
시아버지는 장례식에 들어온 부조금 봉투를
영희의 손에 들려주었다.
영희는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호준이와 호영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보가 터졌다.
영희는 양손으로 아이들을 껴안고 달래야 했다.
보연이도 이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영희는 보연이 후배에게 미리 넣어둔 봉투를
핸드백에 넣어주며 인사를 했다.
"보연이 후배, 정말 고마워요!
후배 아니면 어떡할 뻔했어 그래!"
"아이고 선배님!
민망하게 뭐 이런걸 다 챙겨주고 그래요!
여하튼 마음 추스르고 건강이나 잘 챙기세요!"
"보연이 후배도 유학 가면 더 이상 피아노 학원을
운영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저녁 챙겨줄 여유도 없네요!
나중에 식사대접할 테니 늦었지만 조심해서 가요!"
"호준이 호영이 선배님도 안녕!
엄마 말씀 잘 듣고 무럭무럭 자라거라!"
보연이 후배가 청소는 말끔하게 해 놓았지만
영희는 쉴틈도 없이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일요일을 집에서 보낸 영희는 오랜만에 피아노
학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영희는 학원 수강생 부모님께 일일이 전화를 해서
그간 사정을 얘기하고 사과를 드렸다.
남편의 사망 비보와 함께 더 이상 피아노 학원을
운영할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또한 학부모의 계좌번호를 물어 수강생 전부에게
한 달 치 학원비를 돌려주었다.
영희는 가슴 아픈 마음으로 폐업 문구 출력을 해서
문 앞에 붙였다.
피아노 학원을 소개한 부동산에도 전화를 해서
학원을 매물로 내놓았다.
영희는 학원을 폐업하고 그동안 소홀했던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기로 했다.
영희는 남편과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슬픔이
밀려와 당분간은 보지 않으려고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남편이 쓰던 고가의 운동기구도 사회단체에
기부를 했다.
영희는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영희는 남편을 보내고 몇 달간 마음을 잡지 못해
슬픔에 빠졌다.
어느 날 밤 영희는 꿈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영희에게 짐을 안겨줘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며 영희를 꼭 껴안았다.
"여보, 미안해요!
당신과 아이들을 두고 떠나서 정말 미안해요!
하늘에서라도 당신과 아이들이 무탈하도록
항상 기도할게요!"
"정말로 너무하십니다.
어떻게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가실 수가 있나요?"
"여보, 내 명줄이 짧은 걸 어떡해요!
호준이 호영이와 당신이 내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준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몰라요 몰라!
나는 당신이 야속합니다 야속해요!"
"여보, 아이들을 위해서도 피아노 학원을 치우고
어린이집을 하면 어때요?"
남편은 그 말을 끝으로 손을 흔들며 떠나버렸다.
영희는 남편의 말이 현실처럼 들려와 잠에서 깨어났다.
"가만있어봐!
분명히 남편이 다녀갔는데!
피아노 학원을 치우고 어린이집을 하면 어떠냐고
분명히 물었는데 남편 말이 너무나도 생생해!"
영희는 꿈이 아닌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영희가 일어나 살펴보니 베개가 흥건하도록
눈물을 흘렸다.
영희는 남편 생각을 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남편 꿈을 꾸어서인지 아침에 시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버님 안녕하세요!"
"새아가, 우리 천수 때문에 슬픔과 짐을 지워서
정말로 미안하구나!
나도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더냐?
내가 천수몫으로 남겨둔 땅을 팔았단다.
내일 첫째 천우가 돈을 가지고 방배동 집으로
갈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천수가 없더라도 부디
행복하게 살거라!"
"예~, 아버님!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요!
여하튼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님 어머님도 늘 건강하세요!"
"그래, 알았다.
이만 전화 끊으마!"
영희는 아버님의 말씀에 역시나 그 아들에
그 아버지구나 하면서 감격을 했다.
이튿날 시아주버님이 오셔서 위로의 말씀과 함께
아버님이 주신 돈을 놓고 가셨다.
그리고 삼 일 후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마침 피아노 학원을 하겠다는 사람이 왔어요!
그래서 학원 구경을 시켜줬더니 피아노와 비품을
넘겨줄 수 있냐고 했어요!
내일 아침 10시에 우리 가게에 나오실 수 있나요?"
"예~, 그 참 잘됐네요!
그럼 내일 아침에 가게로 가겠습니다."
"그래요 원장님!
그분과 얘기가 잘되면 계약서를 써야 하니 예전에
써드렸던 계약서도 가지고 나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전화를 끊고 나서 영희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아~, 우리 사랑하는 애기아빠가,
남편이 죽어서도 우리를 돌봐주시나 보다."
영희는 속으로 남편을 만나는 꿈을 생각하면서
중얼거렸다.
이튿날 아침 영희는 부동산으로 갔다.
피아노 학원 인수를 원하는 사람은 음대를 나온
오십 대 여자였다.
"제가 아이들 다 키우고 나니까 우울증도 오고
너무 심심해요!
그래서 저의 전공을 살려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할까 합니다.
학원을 보니까 피아노와 비품도 새것 같아서
제가 인수를 했으면 합니다."
"예~, 생각 잘하셨습니다."
"그럼 비품 가격을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예~, 제가 피아노 학원을 차린지 2년밖에
안돼서 남편이 돌아가셨습니다.
아이들 양육문제로 학원을 접었답니다.
남들이 얘기하는 권리금은 필요없구요!
순수 비품과 피아노 가격만 쳐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원장님!"
피아노 학원 매매 가격은 부동산 사장님의 중재로
양쪽 모두에게 흡족한 가격으로 책정되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양쪽 인수인계 계약서를 마무리하고
말을 덧붙였다.
"학원이 비어있으니 잔금만 들어오면 언제든지
키를 받아 가세요!"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피아노 학원을 계약한 여자는 의욕이 넘쳤다.
"제가 피아노 교습생 부모님 전화번호를
드릴 테니까 전화를 하셔서 얘기하면 다시 올 겁니다."
"예, 고맙습니다 원장님!"
"사장님, 그럼 저는 아이들 때문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영희는 아이들 걱정에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아니나 다를까 호영이가 잠에서 깨어나 울고 있었다.
큰애 호준이는 식탁에 올려둔 우유병을 호영이에게
먹이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호준이가 네 살이 되더니 동생도
봐주고 참 착하네요!"
"엄마, 엄마, 나 착해요?"
"그래그래 우리 호준이가 최고다 최고!"
호준이는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일주일 뒤 다시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오늘 오후 2시에 잔금을 가지고 제 가게로 온답니다.
그러니까 학원 열쇠 챙겨서 나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영희는 또 잠든 호영이가 깨서 울까 봐 이번에도
우유를 타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호준아, 호영이가 깨서 울면 우유를 먹여줘라
알았지?"
"응, 알았쪄요 엄마!"
"그래, 우리 호준이는 배고프면 식탁에 있는
초콜릿을 먹어라 알았지요?"
영희는 호준이가 동생 호영이를 조금이라도
봐주니까 그나마 한숨을 돌렸다.
영희는 부동산으로 가서 수표로 잔금을 받고
피아노 학원 열쇠를 넘겨주었다.
피아노 학원을 인수한 여자는 복비를 지불하고
곧장 피아노 학원으로 나갔다.
"사장님, 저는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예~, 원장선생님 말씀하세요!"
"여하튼 학원 인수인계 중개를 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 남편 꿈을 꿨답니다.
남편이 꿈에서 아이들을 위해서도 어린이집을
하면 어떻겠냐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해볼까 합니다."
"아이고 잘 생각하셨네요!
아이들 돌보면서 어린이집을 운영하시면 그야말로
일석이조입니다 원장님!"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고 어린이집을 할 수 있는
조그만 건물을 샀으면 합니다."
"그러세요, 원장선생님은 착하신 분이니까
저도 성심성의껏 찾아봐드릴게요!
그럼, 어느 쪽에 하실 겁니까?"
"예~, 여기서 결혼도하고 아이들 고향도 여기니까
근처에서 하고 싶어요!
1층엔 어린이집 2층엔 살림집으로 마당도 있는 건물로
좀 알아봐 주세요!"
"여기 방배동은 땅값이 너무 비싸요!
저기 길 건너 경문고등학교 근처는 여기보다
훨씬 싸니까 그쪽을 알아보시는 게 어때요?"
"예~, 그럼 그쪽을 좀 알아봐 주세요!"
"그럼, 어느 정도 예산을 하시나요?"
"예, 집하고 피아노 학원 넘긴 것하고 여분의 돈이
좀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알아볼게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영희는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곳을 일일이 찾아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또 남편이 꿈속에 찾아왔다.
"여보 나 왔어요!
경문고등학교 뒤쪽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있고
아파트 밀집지역이라 그쪽이 좋을 거야!
그리고 내가 봤는데 마당이 있는 2층집 대문에
주택 매각이라는 팬말을 봤어요!
그 집도 복비가 비싸니까 직접 매매를 하려나 봐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오른쪽 길로 한번 올라가 봐요!"
"네~, 알았어요 여보!"
영희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이튿날 영희는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꿈속에서 남편이 가르쳐준 길을 따라서 갔다.
"아니, 이럴 수가 있을까?
여보 당신이 얘기한 그대로예요!"
남편이 꿈속에서 가르쳐준 대로 2층집 대문에는
주택 매각이라는 팬말이 붙어있었다.
영희는 바로 초인종을 눌렀다.
조금 후 50대로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어서 오세요 아주머니!
대문에 팬말보시고 오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선생님!
아이들 때문에도 어린이집을 해볼까 해서요!"
"일단 들어오셔서 커피나 한잔 하세요!"
"예,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이고 어째 하느님이 도우셨나 봅니다.
저도 유아교육학을 전공했지요!
그래서 이 집을 설계할 때 제가 어린이집을 하려고
설계를 했답니다.
그런데 화가인 남편이 갤러리로 쓰자고 해서
지금은 남편의 개인 갤러리로 쓰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남편 따라서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내놓았지만 용도에 맞는 사람에게
팔려고 알아보고 있었지요!"
"예, 그러시군요!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영희는 집안 사정과 얼마 전 죽은 남편이 나타나서
이 집에 가보라고 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집주인은 집주인대로 영희는 영희대로 서로가
원하는 집과 매수인을 찾은 것이다.
집주인은 어린이집을 하려는 영희가 마음에 들어
시세보다 싼 가격에 팔기로 했다.
"그럼 우리 남편 후배가 법무사를 하니까 내일 불러서
계약을 하도록 합시다."
"예, 그럼 이 번호로 전화 주시면 바로 오겠습니다."
이튿날 두 사람은 법무사의 주도로 계약을 했다.
착한 영희에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덕뎀이 이어졌다.
"원장선생님!"
"네~, 말씀하세요 사모님!"
"우리 집 거실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는 우리 딸의
손때가 묻어있는 소중한 피아노입니다.
저 피아노를 자라나는 꿈나무 아이들에게
들려줬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원장선생님께 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사모님!
저야 좋지만 사모님은 괜찮으시겠어요?"
"캐나다 까지 가져갈려니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포기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감성을 심어준다면
우리 딸도 좋아할 겁니다."
"예~, 정말 고맙습니다. 사모님!"
영희와 집주인은 대지 80평 1층과 2층 건평 60평의
건물에 대한 계약 했다.
영희는 피아노 학원을 판 돈과 아버님이 준 돈으로 충분히
집값을 지불하고 아파트의 계약금은 여분으로 남았다.
집으로 돌아온 영희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여보, 당신이 꿈속에서 말씀해 주신 그대로 됐어요!
우리 식구 살길을 인도해 주셔서 고마워요!
이제는 야속하다는 말도 서운하다는 말도 안 할게요!"
영희는 아이들 양육과 직업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았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8부) 여장부 이영희
영희는 남편의 첫 번째 기일에 예쁜 엽서에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을 담은 글을 써서
사진에 꽂아놓고 제를 올렸다.
"내가 죽는 날까지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과의 짧은 연애와 또 삼년이라는 결혼생활,
당신은 내 마음까지 읽어내는 또 하나의 나였습니다.
퇴근 후 피곤함도 잊은 채 호준이 호영이를
등짝에 태우고 놀아준 당신,
눈 오는 날이면 내가 다칠세라 안고 업고 다녔고
모든 신경이 나에게로 쏟아져 만지기조차 아깝다는
표정이었지요!
퇴근하실 때면 장미꽃 한 다발을 사 와서 안겨주며
오늘도 고생했다고 다독여주던 당신,
그런 당신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믿을 수 없어요!
짧은 시간에 당신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던
저였기에 저세상에서 또 만나려고 기다려집니다.
호준이 호영이 다 키워놓고 갈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야속한 당신, 보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영희는 제사를 모신 후 아이들을 재우고 제사상
앞에 앉았다.
영희는 남편의 영정 사진을 쳐다보며 눈물로 채운
음복주를 마시고 잠들었다.
영희는 마음을 추스르고 어린이집을 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어린이집 계약을 하고 2개월 후 이민을 떠나기로
해서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우선 교육부와 구청에 들락날락하면서 허가사항을
알아보고 서류를 준비했다.
어린이집 이름은 마당에 조그마한 언덕이 있어서
꿈동산 어린이집으로 등록했다.
계약서와 건물 등기부 등본에서부터 실사를 위한
건물 내외부 사진도 첨부해야 했다.
또한 의자와 테이블 놀이기구 등 모든 것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구입해야 했다.
심지어 대학교 학적부와 재적 여부의 서류까지
들어가는 까다로운 허가였다.
영희는 거의 한 달 동안을 인터넷을 뒤져가며 비품구입
전화 문의 등으로 바빴다.
영희가 외출을 해야 할 때는 챙겨둔 간식을 먹으며
호준이가 동생과 놀아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영희가 서류를 넣은 지 꼬박 한 달이 지나서 어린이집
허가증을 받아 들었다.
영희는 허가증을 첨부해서 유아교육학과 출신
보육교사 모집공고를 구청 구직센터에 올렸다.
영희는 학원을 처분한 돈과 아버님이 주신 돈으로
잔금을 치르고 이사를 들어갔다.
비용은 좀 비쌌지만 포장이사를 선택해서 이사를 했다.
이사를 들어온 집은 십 년이 안된 건물이라서
크게 손볼곳은 없었다.
담장은 150cm 정도의 붉은 벽돌로 되어있었고
철대문도 하얀색 그대로 사용할 수가 있었다.
50평의 마당엔 열 평 정도의 잔디와 작은 언덕엔
소나무가 서있고 집으로 들어가는 보도블록이 깔려있었다.
담장 쪽에 높은 차광막이 쳐진 주차장은 자동차
3대를 세울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있었다.
주차장까지 포함하면 잔디를 빼놓고도 약 40평
정도의 마당엔 행사를 하기에도 좋았다.
30평가량의 1층은 칸막이를 해서 꿈나무 반,
달님 반, 별님 반, 그리고 놀이방으로 나누었다.
영희는 초기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감당할 수 있는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
빌라 매매 잔금이 운영자금으로 쓸 수 있는 여윳돈이
된 것이다.
영희는 이사를 들어가서 한동안 치워두었던
남편과 찍은 사진을 벽에 걸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자~, 호준아 호영아 아빠에게 인사드려야지?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 집이란다."
영희는 꽤나 무거워진 아이들을 양손에 안고
남편에게 인사를 시켰다.
"아빠 아빠 아빠빠"
아이들은 오랜만에 아빠의 사진을 보며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여보, 당신이 가르쳐준 대로 어린이집을 구입해서
이사를 들어왔어요!
이게 전부다 당신과 아버님 덕분입니다.
당신을 닮은 호준이와 호영이도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답니다.
처음엔 당신이 야속하고 미운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는 괜찮아요!
모두가 당신이 저 하늘에서 도움을 주신 덕분입니다.
이제는 당신이 우리를 지켜봐 주세요!
당신의 영혼에 의지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게요!
보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여보!"
며칠 후 주문한 간판이 들어왔다.
꿈동산 어린이집 입간판은 대문에 세로로 세우고
가로로 된 간판은 1층과 2층 사이에 걸었다.
이로써 허가와 구조적인 작업은 끝날수가 있었다.
드디어 보육교사 면접날이었다.
영희는 실력과 성적보다는 성품과 인품을 기준으로
채점을 해서 우선 세명의 보육교사를 뽑았다.
영희는 겨울 동안 시간을 내서 운전면허증을
따고 원생들의 이동을 위한 승합차도 계약했다.
새해 들어 두 달 이상의 준비와 점검을 마치고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드디어 3월 초 개원을 계획했다.
영희는 바쁜 일정 때문에 남편이 없는 설움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바빴다.
남편이 꿈에서 가르쳐준 대로 어린이집 개원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주변에 아파트와 주거 밀집지역이 있어서 원생이
약 45명 정도가 되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영희는 남편이 꿈속에서 얘기한 대로 되었지만
모든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3월 3일 월요일 개원식에는 동장, 구청장을 비롯해서
근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도 오셨다.
대문 안쪽에는 축하 화환으로 채워졌고 새로 구입한
어린이집 승합차에도 예쁜 리본을 둘렀다.
어린이집 마당엔 임대해 온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과일과 다과를 준비했다.
단상 앞에 커다란 칠판에는 축하 개원식 글씨가 쓰여있었다.
"경축, 꿈동산 어린이집 개원,,
마이크를 잡은 원장 이영희는 보육교사 선생님을
차려대로 인사를 시켰다.
"안녕하세요 원생 부모님 여러분!
꿈동산 어린이집 원장 이영희입니다.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와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꿈동산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와 보육교사는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지도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원장 이영희는 보육교사 선생님을 차려대로
불러 인사를 시키고 피아노 축하곡을 연주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이영희 원장의
축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랜드 피아노에서 울려 나오는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는 환상적이었다.
원장 이영희의 연주가 끝나고 인사를 하자
열렬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음으로 구청장과 교장선생님에 이어서 내빈의
축하인사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어린이들의 인사와 산토끼 합창으로
개원식을 마치고 준비한 음식을 먹었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도 소풍 나온 기분으로
분위기를 즐겼다.
"와~, 피아노학원 원장출신이라서 그런지
연주 실력이 대단하네요!"
"맞아요 맞아!
꿈동산 어린이집으로 우리 아이들 맞기 기를
참 잘했네요!"
"아이고 난 여기 마당이 넓어서 참 좋네요!
빌딩에 있는 어린이집 하고는 완전히 달라요!"
여기저기서 학부모 님들의 칭찬이 흘러나왔다.
다행스럽게도 호준이와 호영이는 놀이방 창문으로
개원식을 구경하며 놀고 있었다.
어린이집 개원식이 끝나고 학부모 들은 의자와
탁자를 한쪽으로 몰아넣고 청소까지 해주었다.
개원식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들어간 영희는
녹초가 되었다.
"아이고 우리 호준이 호영이가 잘 놀아줘서
엄마가 무사히 행사를 마쳤어요!"
"엄마, 엄마, 나도 좋아요!"
아이들도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었다.
영희는 그제야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으로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샤워를 했다.
영희는 다시 한번 남편의 사진 앞에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여보, 이제 어린이집 개원식도 무사히 마쳤어요!
이게 모두 다 당신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호준이 호영이도 다른 원생들과 함께 보육할 수가
있어서 너무 좋아요!
이제는 당신에게 매일매일 감사의 인사를 드릴게요!
여보,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튿날 9시부터 영희는 승합차를 몰고 원거리에
사는 아이들을 태우고 왔다.
집이 가까운 원생은 부모님이 데리고 와서
영희는 한번 운행으로 등원을 마쳤다.
영희가 원생들을 태우러 갈 때는 언제나 호준이가
동생 호영이와 놀이방에서 함께 놀아줬다.
꿈나무 반, 달님 반, 별님 반은 보육교사 선생님께
맡기고 영희는 우는 아이들을 놀이방에서 보살폈다.
아이들 저녁을 먹여서 재우고 영희는 컴퓨터에
매달려 날마다 원생들 지도 프로그램을 짰다.
그리고 영희는 컴퓨터에서 우연히 다음 카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희는 원생들 부모님이 참여할 수 있는 카페를 만들었다.
그리고 카페개설 소식을 프린트해서 원생들을
통해서 보냈다.
우선 컴퓨터가 있는 학부모부터 참여하였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다.
원생의 학부모를 위한 카페가 개설된 것을 알게 된
신세대 부모들은 컴퓨터를 구입해서 참여를 했다.
영희는 학부모 알림 프린트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부모 모임도 가지게
되었다.
수업이 없는 주말엔 학부모들과 함께 서울근교로
나들이를 나갔다.
학부모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주말 나들이도
반응에 엄청나게 좋았다.
주말이면 모임의 회장과 총무도 선임되고
15인승 승합차에 회원들로 가득했다.
영희는 바쁘게 살다 보니 세월이 가는 줄도 몰랐다.
영희가 어린이집 운영의 전문가가 되었을 때는
큰애 호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영희는 아빠도 없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호준이를 위해
꽃다발을 사들고 입학식에 참석했다.
사람이 많은 학교 강당에 들어가자 영희의 손을 잡은
여섯 살 호영이도 좋아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영희는 호준이의 입학식이 끝나고 요즘
새로 생긴 롯데리아로 갔다.
호준이와 호영이가 좋아하는 감자튀김과 햄버거를
사주자 만세를 부르며 맛있게 먹었다.
영희는 아이들이 쉽게 먹을 수 있도록 플라스틱 칼로
햄버거를 작게 잘라주었다.
"엄마, 너무 맛있어요!
엄마도 드셔보세요!"
"그래, 우리 호준이가 초등학생이 되더니 이제
철이 들었네? 호호호호"
"엄마, 맛있다.
다음에도 또 사줘요!"
호영이도 처음 먹어본 햄버거가 맛있는지 끼어들었다.
"그래그래 말썽을 안 부리고 공부 열심히 하면
다음에 또 사줄게 알았지?"
"엄마, 알았어요! 히히히"
"그래 우리 집에 가면 아빠에게 호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인사를 드리자 알겠지?"
영희는 호준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자 홀로
아이들을 키운 것에 대한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9부) 꿈속에서 재회한 할매와 남편
호영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바쁘게 살다 보니
영희는 세월이 가는 줄도 몰랐다.
주말 학부모 모임은 학부모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도 카페 동아리 모임으로 이어졌다.
원장인 영희가 운전을 하고 옆자리엔 언제나
회장과 총무가 나란히 않았다.
이번엔 청평호 근처 유명한 카페촌으로 향했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회장이 말을 걸었다.
"아이고 원장님은 어떻게 시외 명소 지리를
그렇게 잘 아세요?"
"예~,
제가 어린 시절에 철도청에 근무하시던 할아버지가
사진작가인 아버지를 태우고 여행을 다녔지요!
여행을 좋아하는 어머니덕에 저도 따라서 주말이면
전국 오지 곳곳을 따라다녔지요!
그 덕분에 전국에 좋은 곳은 거의 꿰고 있답니다."
"아~, 어쩐지 잘 아시더라 했지요!"
"그래서 말인데요 회장님!
제가 동행 여행방 카페를 만들 테니
앞으론 그 카페에서 같이 활동을 하도록 합시다."
"예, 그래요 원장님!
아니 이제는 카페지기라 불러야겠네요! 호호호"
영희는 어린이집 학부모가 아닌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카페를 오픈했다.
또 어느 주말에 여행방 회원들과 교외로 나들이를
가던 중 옆자리에 앉은 총무가 영희에게 말했다.
"원장님 아이들도 초등학교 중학교에 들어갔으니
시간 날 때 제가 나가는 재능기부 단체에 한번 가보실래요?"
"예~?
총무님 그게 무슨 단체인가요?"
"예~, 사랑의 집 짓기인데요!
가난해서 오래된 집을 고치지 못하는 집을
사회법인 단체에서 집을 고쳐주는 겁니다."
"아~, 그 티브이에 나오는 그 사랑의 집 짓기요?"
"예, 맞아요 원장님!
기부금으로 집을 짓는 사회법인단체입니다."
"예~, 저도 그런데 관심이 있으니까 한번
따라가 볼게요!"
영희는 일요일엔 총무를 따라서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따라다녔다.
영희는 묘하게도 사랑의 집 짓기에 취미를 붙였다.
비포어와 애프터 사진을 찍어두고 중요한 것은
메모를 해서 컴퓨터에 저장했다.
주중엔 어린이집 보육으로 토요일엔 동행방
회원들의 여행으로 일요일엔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여하느라 영희는 정신없이 바빴다.
영희는 할머니와 남편이 없다는 것을 잊기 위해
죽어라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보니 호준이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호영이도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영희의 나이도 어느덧 오십 대가
되었다.
영희는 외로울 땐 언제나 남편의 사진을 쳐다보며
대화를 했다.
영희는 그렇게 외로움을 스스로 달래며 살았다.
아이들이 차례대로 대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영희는
조금씩 우울감을 느꼈다.
그때 영희는 어느 사회단체에서 생활에 여유도 있으니
고아를 입양하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영희는 나이 들어가면서 외로움도 달랠 겸
또 사회사업의 일환으로 입양을 결심했다.
영희는 고아원에서 열두 살 여자아이와 아홉 살
연수와 연우 남매를 입양했다.
영희 역시 할머니가 안 계셨다면 부모 없는
고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희는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 생각하고 호준이와
호영이를 키울 때처럼 정성을 다해서 키웠다.
처음엔 영희의 집에서 낯설어하던 아이들도
영희가 친자식 키우듯 정성으로 대하자 아이들도
경계를 풀고 친부모처럼 따랐다.
호준이와 호영이도 입양한 동생들을 친동생처럼
다정하게 대해줬다.
입양한 딸 연서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동생 연우도
중학생이 되었다.
호준이 호영이 또한 연서와 연우를 다정한 오누이
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그것은 영희가 천성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느 날 영희는 다시 남편의 사진을 쳐다보며 살아온
내막을 보고했다.
그때서야 어느 정도 어미로서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을 하고 어린이집을 처분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원생 부모님이 어린이집 매매에 관심을 가지고
상담을 원했다.
구청에서 조사한 어린이집 호감도에서도 꿈동산
어린이집이 1등을 했기에 인기도가 좋았다.
부동산에도 내놓았지만 기왕이면 원생 부모님께
넘기기로 합의를 보았다.
영희가 어린이집을 20년 운영하는 동안 땅값은
수십 배나 올라서 영희는 큰돈을 손에 쥐었다.
영희는 어린이집 운영과 아이들을 키우느라
자신을 고생시킨 보상으로 전원생활을 하기로 했다.
복잡한 도심을 떠나서 한강을 끼고 있는 전원주택을
알아봤으나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남편의 사진을 보며
대화를 했다.
"여보, 어린이집 운영과 아이들 키우고 나니
힘들어서 이제는 한적한 곳에서 좀 쉬고 싶어요!
당신이 꿈속에서 어린이집 부지를 가르쳐주신
덕분에 땅값이 수십 배로 올랐어요!
호준이는 얼마 전 군 입대를 했구요!
내년엔 호영이도 대학교 졸업을 한답니다.
아비없는 자식소리 안 들으려고 제 딴엔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키웠답니다.
당신이 살아계시면 맥주 한잔 하면서 의논을
했으면 좋으련만 너무너무 아쉽답니다."
영희는 남편의 사진과 대화를 하며 맥주를 마셨다.
취기가 오른 영희는 그대로 잠들었다.
영희는 새벽녘 잠결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 뒤척였다.
그때 꿈속에서 또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당신이 수십 년간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다녔으니 이제는 땅을 사서 직접 지어봐요!
노후에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말이에요!"
영희는 꿈속에서 남편을 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이상하다.
내가 남편 사진을 보고 대화를 하면 꼭 꿈에서
나타나 조언을 해주시네요!
여보, 고마워요!
그럼 당신을 믿고 용기를 내서 집을 지어볼게요!"
영희는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었던 경기도
청평에 집을 짓기 위한 땅을 알아봤다.
영희는 텃밭도 함께 가꾸기 위해 농막부지 300평을
매입했다
그러나 집 짓기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여러 가지 허가사항과 전기공사와 소방시설 등
업자선정도 문제였다.
이럴 바엔 차라리 자신이 건축업 허가를 내서
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희는 어린이집 허가를 낼 때처럼 군청과 세무서를
들락거리며 기어이 건축업 허가를 따냈다.
허가증엔 스토리 하우스 대표 이영희라는
문구와 증명사진이 붙어있었다.
영희는 건축설계 업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설계를 의뢰했다.
건축업 허가가 있으니까 업자를 선정하기도 쉬웠고
그들은 영희를 예전처럼 무시하지도 못했다.
초봄에 공사를 시작해서 가을에 완공을 하고
집들이에 지인들을 초대했다.
동행 여행방 회원들도 거의가 집들이에 참석했다.
"우와~, 무늬대리석에 통유리창 새시까지
정말 멋지네요!"
"아이고 난 저 2층으로 올라가는 원목 계단과
샹들리에가 너무 멋져요!"
집들이에 온 지인들은 놀라움에 부러운 탄식을
했다.
"아니, 이 집을 이영희 씨가 직접 지었다고요?"
"예~, 제가 사랑의 집짓기 봉사를 몇십 년 하다 보니
이력이 생겨 아예 건축업 허가를 냈답니다."
"아이고 그러시군요!
아까 보니까 텃밭이 몇백 평은 되겠더만요!
저쪽 공터에 빌라를 지어도 되겠네요!
이영희 사장님이 빌라를 짓는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계약을 하겠습니다."
"예~, 맞아요!
저도 서울 집을 팔고 여기에서 살고 싶네요!"
"그러면 여러분의 의견을 종합해서 텃밭 부지에
전원빌라를 짓도록 추진해 보겠습니다."
영희는 지인들의 말에 용기를 내어 또다시
설계를 해서 공사에 들어갔다.
1층에 45평형 3세대와 2층에 30평형 4세대
3층엔 55평형 프리미엄 2세대를 지었다.
영희는 어린이집을 판 여윳돈이 있었기에
계야금을 받지 않고도 집을 지을 수가 있었다.
영희는 본인이 들어가서 산다는 개념으로
하나에서 열까지 신경이 써서 집을 지었다.
영희는 마무리 공사에 들어갈 때쯤 스토리 하우스
전원빌라 분양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마무리 공사에 들어간다는
문자도 보냈다.
분양주택은 도로 접근성과 탁 트인 전망이 좋아서
매입하려는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영희의 집들이에 들렸던 동행 여행방 지인들과
총무도 와서 보고는 3세대나 계약을 했다.
"와~, 우리 여행방 지기님 집 짓는 실력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오늘 당장 계약을 하겠습니다."
"아이고 이게 다 총무님이 사랑의 집 짓기에
저를 데려가서 덕분에 배운 겁니다."
영희의 집짓기 실력은 사실 그 사랑의 집 짓기에서
부터 배우고 익힌 것이다.
이후 일주일 만에 전 세대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과연 매매가 잘 이루어질까 걱정했던 영희의
고민은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2층의 30평형 한 세대는 성인이 된 입양한 딸과
아들에게 등기를 해주고 독립을 시켰다.
근처에서 살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것이다.
영희는 1차분 분양 완료와 입주한 사람들의
칭찬에 용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영희는 군 전역을 하고 대학원을 갈까 하는
호준이를 설득해서 스토리 하우스 대표로 앉혔다.
영희는 사업을 하면서도 사랑의 집짓기 봉사엔
빠지지 않고 참여를 했다.
잘생긴 총각 호준이가 대표자리에 있는 것을
아는 지인들이 여러 번 호준이의 중매를 섰다.
"호준아!
너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 내가
점찍은 며느리감을 보고 좋으면 결혼을 하려무나!"
"예, 엄마!
아직은 사업에 치중해야 할 때입니다."
"아니다, 호준아!
결혼이라는 것도 다 때가 있는 거야 알겠니?"
영희는 고집을 부려 호준이가 선을 보고 좋다는
여자와 약혼식을 하고 얼마 후 결혼을 시켰다.
며느리가 들어오고부터 영희도 한시름 놓았다.
입양한 연서와 연우는 독립을 하고도 수시로 선물을 사들고
영희를 찾아와서 기쁘게 해 주었다.
호준이 결혼을 시킨 후 입양한 아이들도 독립시키고
자신을 돌아보자 어느새 영희의 나이는 환갑이
훨씬 넘어버렸다.
영희는 어렵고 외로울 땐 언제나 남편의 사진을 쳐다보며
대화를 했다.
사 오십 대에 재혼을 부추기며 중매가 들어왔지만
영희의 눈에는 남편만 한 사람이 없었다.
영희는 사랑하는 또 사랑받았던 남편과 저세상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이날까지 혼자서 살아왔다.
둘째 호영이도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교 4학년에
복학을 했다.
영희는 호준이 처럼 호영이도 스토리 하우스에서 함께 일을
해주기를 원했다.
엄마를 닮은 호영이는 여행 다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 호영이는 관광비즈니스 학과로 선택을
한 것이다.
호영이는 대학교 졸업 후 곧바로 관광회사에
취업을 해서 필리핀 근무지로 떠났다.
호준이가 결혼도하고 며느리가 집안일을 하자
영희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사업하느라 동행 여행방 카페에 소홀했던
영희는 모임도 자주 가졌다.
동행 여행방은 그동안 회원들이 늘어나서 거쳐간
회원들이 천명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썽도 많았다.
소위말하는 꽃뱀이 정체를 숨기고 카페에 들어와서
활동을 했다.
그들은 은근슬쩍 싱글에게 접근해서 생활비를
뜯어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것뿐일까 양다리 걸치는 여자도 있었으니
좋은 의미로 시작한 여행방이었지만 그런 일로
영희는 뚜쟁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영희는 외로운 사람끼리 여행방에서 만나
재혼해서 잘 살고 있는 커플들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필리핀에 있는 호영이가 결혼을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며느리 감은 필리핀에 사는 원주민 여자였다.
"엄마, 저 필리핀 여자 애인이 생겼어요!
결혼을 하고 싶은데 엄마의 허락을 받으려고요!"
"그래, 이제는 글로벌 시대인데 국제결혼이면
어떠냐?
호영이 네가 좋다면 결혼을 하도록 하거라!"
"예~, 엄마 고맙습니다."
영희는 둘째 호영이를 필리핀 여자와 결혼을 시켰다.
남편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세살베기 호준이와
돌이 지난 호영이를 홀로 키워 둘 다 결혼을 시킨
영희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여보, 당신 덕분에 호준이 호영이를 키워서
둘 다 장가를 보낸답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나를 보고 만지기도 아깝다고 했던 당신,
눈길에 구두를 신은 나를 업고 다녔던 당신,
퇴근길엔 꼭 장미를 사 와서 안겨주었던 당신,
당신 닮은 호준이와 호영이를 낳아줘서 고맙다며
귀부인 대접을 해주었던 당신,
보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여보!"
영희는 새삼스럽게 과거를 되새기며 남편과
영혼의 대화를 이어갔다.
얼마 후 필리핀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 저 호영이예요!
드디어 와이프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이고 호영아! 그게 사실이냐?"
"예, 엄마가 이름을 좀 지어주세요!"
"그래 알았다 호영아!
너의 형 호준이와 상의해서 이름 지으면 다시
연락할게!
며느리에게도 수고했다고 전해줘라 알았지?"
"예~, 엄마! 고맙습니다.
나중에 돌잔치는 한국에서 엄마가 해주세요!"
"그래, 알았다.
걱정 말고 아들이나 잘 키우고 있거라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오늘도 영희는 잠자리에 들기 전 습관처럼 백지에
자신과 대화를 하듯 글을 써 내려갔다.
이렇게 살게 해 주세요!
향기로운 삶
고운 꽃향기처럼
향기로운 커피 향같이
아름다운 삶을 노래할 수 있다면
살아간다는 것이
감사하고 즐겁고 행복할 것입니다
욕심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 보면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고
또 바보 같다고 놀려대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마냥 그저 좋은 그런 마음으로
천진한 아이처럼 살고 싶습니다
욕심으로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그런 삶은 싫습니다
마음골짜기에 사랑이 흐르고
항상 예쁜 언어가 만들어져 나오고
행복한 웃음을 나눠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보이는 삶이 조금 빈곤해도
마음은 넉넉하고 여유로운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의 끈을 꼭 잡고 살아가게 해 주세요!
영희는 쓰던 글을 접어두고 침대에 누웠다.
영희는 손자 유준의 돌잔치를 성대하게 치르고
손님 접대로 노래방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영희는 어렴풋이 잠에 들었다.
영희는 사르르 눈을 감으며 자신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
혈육인 손주 놈 돌잔치도 치렀겠다
하루빨리 천국에 가서 꿈에도 그리던 내 사랑
남편을 만나고 싶어!"
영희는 꿈속에서 새하얀 나래를 펼치고
하늘을 날았다.
그때 저만치 안갯속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여보, 나야 나!
호준이, 호영이 아빠라고 여보!"
"그래요, 당신이었군요!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 여보!
그런데 할매는, 우리 할매는 어디 계세요?"
"응, 할머니는 너무 착하고 욕심 없이 사셨다고
천국에서 꽃밭지기를 맞고계서서 못 오셨어!"
"아~, 그렇군요!
우리 할매에게 참 잘 어울리는 일이네요!"
"맞아요 맞아!
당신도 착한 사람이니까 천국에 오면 분명히 꽃밭지기를
하게 될 거예요!"
영희는 남편의 품에 안겨서 한없이, 한없이
해후의 기쁜 눈물을 흘렸다.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