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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의 불화
초등학생들에게 동시를 가르치는 교실에서도 문제는 수없이 발견된다. 2학년 1학기 『쓰기』 교과서에는 말의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반복되는 말이나 흉내 내는 말을 써보라고 하는 단원이 있다. 당신 같으면 다음 괄호 안에 어떤 말을 넣을 것인가?
토끼는 ( ) 뛰어간다.
물론 정답은 '깡충깡충'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 중에 과연 토끼가 깡충깡충 산을 뛰어오르는 모습을 본 아이가 몇이나 될까? 아이들은 대부분 동물원이나 토끼장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토끼를 본 게 전부일 것이다. 이런 기계적인 동시교육은 '시냇물은 졸졸졸' '새싹은 파릇파릇' '흰 눈은 소복소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시라는 매우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표현의 경직성은 사고의 경직성으로 옮아간다.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머리를 딱딱하게 만드는 이런 나쁜 동시교육을 이제는 한시바삐 집어치워야 한다.
"미美는 언제나 엉뚱하다"고 한 보들레르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당신이 다다르고자 하는 미적 인식을 위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창작의 신조로 삼으라.¹⁶ 이문재는 문학청년 시절 '문학개론' 첫시간에 노교수가 '문학은 인생이다' 라는 문장을 칠판에 쓰는 걸 보고 강의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고 한다(「내가 만난 류시화」, 『시와시학』, 2004년 봄호).
스무살 봄날, 나에게 문학은 인생 그 이상이어야 했다. 문학은 인
생의 멱살을 휘어잡거나, 인생과 무관한 강렬한 빛이거나 독약 같은
것이어야 했다. 나는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류시화와 어울
리며, 고전음악 감상실을 찾았고, 대학로에 죽쳤다. 캠퍼스와 강의는
고루하고 지루했다. 우리에게는 파격이 필요했다. 고정관념과 선입
견, 관습과 제도를 뛰어넘는 파천황이 절실했다. 우리는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불렀고, 본관 앞에서 막걸리에 도시락을 말아먹
었다. 글씨를 왼손으로 썼고, 담뱃갑을 거꾸로 뜯었다.
이런 행위를 단순히 문학청년의 치기로 볼 수만은 없다. '시적인 것'을 찾으려는 탐색의 정신은 혼돈과 암흑을 깨뜨리는 파천황의 정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당신이 늘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 소소한 것에서부터 삶의 기미를 포착하고 파악하는 습관을 길러라. 사물을 반듯하게 보지 말고 거꾸로 보라. 세상을 걸어 다니면서 보지 말고 때로는 물구나무를 서서 바라보라. 지금부터는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을 의심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던 것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을 선언하라.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한 순간도 미적 인식에 다다를 수 없게 된다.
거창 학동 마을에는
바보 만복이가 사는데요
글쎄 그 동네 시내나 웅덩이에 사는
물고기들은 그 바보한테는
꼼짝도 못해서
그 사람이 물가에 가면 모두
그 앞으로 모여든대요
모여들어서
잡아도 가만 있고
또 잡아도 가만 있고
만복이 하는 대로 그냥
가만히 있다지 뭡니까.
올 가을에는 거기 가서 만복이하고
물가에서 하루종일 놀아볼까 합니다
놀다가 나는 그냥 물고기가 되구요!
정현종의 「바보 만복이」 전문이다." 이 무슨 말인가? 바보가 물고기를 꼼짝 못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말은 만복이가 바보가 아니라는 말이다. 즉 남들이 그를 (어수룩한 외모나 모자라는 지능이나 우스운 이름을 보고) 바보라고 놀리고 업신여기지만 실제로 만복이는 물고기라는 자연과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다. 시인은 만복이하고 놀고 싶다는 말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에게도 은근히 일상적 시각을 바꾸고 고정적 관념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놀다가 물고기가 되겠다고 마지막 행에서 (어처구니없게도) 말한다. 남들은 바보라고 하지만 진실은 바보가 아닌 만복이의 편에서는 것, 이것이 시인의 길이다(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그리하여 시인을 또 바보라고 하겠지).
내 몸의 사방에 플러그가
빠져나와 있다
탯줄 같은 그 플러그들을 매단 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비린 공기가
플러그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몸 밖에 플러그를 덜렁거리며 걸어간다
세계와의 불화가 에너지인 사람들
사이로 공기를 덧입은 돌들이
둥둥 떠다닌다
이원의 「거리에서」 전문이다.¹⁸ 이 시에 등장하는 '사람'을 '시인'으로 바꾸어 읽어보자. 온몸의 플러그로 전류가 흐르기를 기다리는, 어떻게든 안에서 밖으로 나와야 하는, 세계와의 불화를 자신의 에너지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시인이다. 이원의 말처럼 "시적이라는 말을 배반하는 방식을 통해 시적이라는 말을 진화시키는"(「시와 세계』, 2007년 가을호) 사람이 바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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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낯설게 하기'는 쉬클로프스키 등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의해 처음 사용된 용어다. 관습적인 인식을 벗어나 사물을 낯설게 봄으로써 그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자 한다. 기존의 발상이나 언어 표현기법을 뛰어넘어 참신한 충격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에서는 시어와 일상적 인어의 차이를 규명함으로써 발상의 전환을 꾀하는 것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17 정현종, 『정현종시전집 2』, 문학과지성사, 1999, 28쪽.
18 이원,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문학과지성사, 1999, 12쪽.
안도현의 시작법 [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중에서
2024. 10. 12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