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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강해(27) 성령을 소멸치 말라
본문 : 살전 5:19-22
사도 바울은 살전5:12-22절에서 ‘신약의 10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 ..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신앙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영적인 사회생활’, ‘영적인 인간관계’라 할 만 합니다.
첫째, ‘교회 지도자(목회자)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이냐?’
(12-13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둘째, ‘성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이냐?’
(14-15절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셋째, 공동체나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성도 한 사람,
곧 개인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가르치고 있습니다(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것은 ‘하라’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도들이 주의 할 것
세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하라’가 아니고 ‘말라’의 신앙입니다.
<살전5:19-22>
19절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절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절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절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령님은 누구신가?>.....
먼저 성령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의 제 삼의 인격체이십니다.
하나님으로서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위로자와 상담사로 오셨습니다 (요14:16, 26; 15:26).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내기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즉 주님 오시는 날까지(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기억해야 할 것은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이란 사실입니다.
지식(생각), 감정, 그리고 의지를 지닌 존재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전2:10절을 보니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라도 통달 하시느니라”하셨습니다.
예,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통달)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 성령님은 감정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롬15:30에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중요한 표현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 이런 말만 하는데
지금 사도바울은 ‘성령님의 사랑으로
너희를 권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도 지금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근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예, 성령님은 감정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우리 안에서 슬퍼하시고
,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고전12:11절에 보면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을
나열한 후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의지를 가지고 은사를 각 사람에게
분배해 주시고,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생각할 때에 성령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격적인 분이시구나 하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에 대한 다양한 비유와 상징>
그런데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십니다.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님에 대해 다양한
비유와 상징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 성령님을 물에 비유하여 표현합니다.
두 가지 의미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이 육체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것처럼...
성령은 사람의 영적 생명에 필수적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사람의 의미와 기쁨에 대한 갈망이 해소됩니다.
<요7:38-39>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찬송가183장 가사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내려 새생명 주옵소서.”
성령님이 비가 아니시지만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 우리가 뭔가를 씻어낼 때는 물로 씻어 내지 않습니까?
성령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는 그런 사역을 하실 때는
성령을 물로써 비유하여 표현하기도 합니다.
2. 성령님을 비둘기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거짓이 없고 순결한 영이심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막1:9-10>
9절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절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찬송가 187장 가사 “비둘기 같이 온유한 은혜의 성령 오셔서.”
3. 때로는 도장으로 표현합니다.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심 강조한 표현입니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4. 때로는 기름에 비유하여 표현합니다.
구약시대에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임직할 때 기름을 부었고...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는 성령의 임하심을
기름 붓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행10:38(베드로의 설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눅4:18, 히1:9, 고후1:21, 요일2:20).
기름의 특성이 모든 기계를 부드럽게 하는 것처럼.....
성령이 역사할 때는 평화와 사랑이 깃들고 화목이 유지됩니다.
5. 때로는 바람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거듭나야 함’을 가르치실 때,
이해하지 못하고 놀라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훗날 성령이 강림하실 때에도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임하심)
바람이 지구상 어느 곳에나 편만하게 존재하듯이
성령도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러나 바람이 부는 것은 알 수가 있지만..
. 바람을 볼 수는 없는 것과 ....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도 분명하지만 그 존재를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바람에 비유하면서 그 역사는 있으되
그 존재는 눈으로 볼 수 없음을 확인하신 말씀입니다.
6. 그런데 성령님의 역사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비유는 ‘불’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한 집에 모여
성령 강림을 기다리며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열흘째 되는 날 홀연히 그들의 앉은 집안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행 2:1~4).
예, 불은 성령님의 뜨거운 역사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즉 불이 일듯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불의하고
부정한 생각이 소멸되어 선하고 의롭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불이 에너지를 공급하듯이 성령 충만하면
우리의 심령 속에 주님에 대한 사랑과 복음 전파와
봉사에 대한 열심의 불길이 타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권능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보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이렇게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예, 안수하여 다시 성령으로 충만케 되고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려는 목적에서였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다시 성령은 불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소멸하다”는 말은
“끄다”를 의미합니다
(새번역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 영어성경 NIV 에서도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
(Do not put out the Spirit's fire)”로 기록).
예, 성령님을 불에 비유하여 표현한 말씀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는 마음속에서
불같이 뜨겁게 일어나는 성령의 감동 감화의 역사를
거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를 뜨겁게 감동하실 때
그 뜻을 고의적으로 무시하지 말고 순종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를 끄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이미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것입니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을 영접하여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한 것 자체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이 오신 이후
성령이 거하시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성령님이 내 몸과 마음에 오셔서 거하시게 됩니다.
<고전 3:16-17>
16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절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
지금은 은혜의 시대입니다.
구약시대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던 시대라면....
신약시대는 성자 예수님 시대였으며
지금은 성령님 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모름지기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거슬리는 행동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씀하셨는데,
성령을 소멸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시합니다. 성령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이 때 마음 안에 계신 성령님은 근심하시며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다음 단계는 고의로 거부합니다.
행7:51(스데반의 설교)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자신의 탐욕과 육신의 영달 앞에서 일부러 성령을
거스리는 단계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결심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적인 계산(탐욕)으로 변질이 됩니다.
행 5장의 아니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 –
초대교회의 공동체 생활 –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원에 의하여(성령의 감동으로) 재산을 팔아 드리려고 함 –
그러나 마음이 변하여 얼마를 감추고 드림. 베드로의 책망.
그 결과 죽음. 물론 아나니와와 삽비라가 죽었다는 기록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속임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지 ...
그것이 재산을 다 팔아 돈 가져다 내고 오늘날에도
그 때와 똑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때 성령님은 근심을 넘어 탄식하십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지막 단계는 성령을 모독(훼방)하는 단계입니다.
마12:24-32(바리새인과의 논쟁)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믿는 자가 개가 토한 것을 먹듯이 같은 죄를 반복하면서
회개할 줄 모르고 죄 가운데 깊이 빠져서 하나님의 성전인
자기 몸을 더럽힐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멸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늘에 은사와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아 욕을 보이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짜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소멸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즉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 수 있을까.?
예, 날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힘써야 성령을
소멸시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 불을 피울 때 – 불이 사라지기 전에 계속 재료를
집어넣어 불을 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불
이 꺼진 다음에 다시 살리기는 어렵습니다.
바울은 엡5: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끊임없이 공급받아야 합니다.
<맺는 말씀>
어느 날 저녁 철도 건널목에서 기차와 자동차가 충돌했습니다.
건널목 간수가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검사는 건널목 간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사고 순간에 그 현장에 있었습니까?
“예, 저는 20여 년이 넘도록 철도 건널목에서 근무하면서
한 번도 기차가 건널목을 통과할 때 현장을 지키곤 했습니다.
그날도 역시 전등을 들고 나가서 차단기를 내리고
전등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건널목 간수의 성실함을 증언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재판장은 그 건널목 간수에게 무죄라고
선언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건널목 간수가 법정에서 풀려
나오면서 혼자 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왜 전등이 꺼진 것을 물어 보지 않을까?
” 예, 그날 그가 들고 있던 전등이 꺼져 있었던 것입니다.
전등을 들고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등은 반드시 불이 켜져 있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밤에 철도 건널목에서 불 꺼진 전등을 흔들고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불 꺼진 전등은 아닌가 말입니다.
성령을 받아서 신앙 고백을 하기는 했지만 불 꺼진
전등의 신세가 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씀을 늘 기억하십시오.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성령을 소멸케 하는 것은 손실 중에
가장 큰 손실이며 비극 중에 가장 큰 비극입니다.
범사에 성령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잠언서 3장 6절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범사에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를 의식하여 행동하고 적극적으로 따르십시오
. 더욱 신령한 은사와 열매를 사모하고 구하십시오.
저와 성도님들이 늘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고...
삶에서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