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와 찬탄, 반탄 (2)
(앞에서 계속)
동종교배(근친결혼)로 인해 파국에 이르렀던 역사의 교훈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유럽을 600년 동안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The Royal House of Habsburg)의 사람들은 주걱턱이 유전되어 건강에 문제가 많았고, 급기야는 왕위를 이를 적자조차 없어서 멸망한 것이다.(중략)
이러한 근친결혼의 부정적 사례는 고금동서 뿐 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 나타나는 형상이다. 생물학적으로 개나리 사례에서 보듯이 난자는 유전자 차이가 큰 정자를 원한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중세에는 왕가와 귀족들은 혈통 보전보다는 권력 유지를 위해 폐쇄적인 족내혼과 근친혼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와 고려 왕족들 간에는 근친혼이 성행했다. 신라 왕실은 '골품제도'라 하여 성골 내의 근친혼이 이어지면서 왕위계승 질서도 문란해지고 국정이 난맥에 빠져 신라는 멸망하였다. 고려를 태조 왕건도 지방 호족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무려 60명이 넘는 부인을 거느렸다. 그러다가 조선 시대에 와서는 성(姓)과 본(本)이 같은 사람들끼리는 철저히 혼인을 금지시켰으며 모계혈족도 6촌까지는 혼인을 못 하게 하였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인해 조선 초기부터 동성동본의 결혼이 금지되었다.
그러한 관습이 법으로도 규정되어 1960년 민법에서 명확하게 동성동본 결혼을 금지하였다. 그 후 동성동본 금혼에 대한 지속적인 논란으로 1997년 7월 16일 헌법재판소는 동성동본 금혼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하여 동성동본 금혼제도는 40년 만에 폐지되고 2005년 민법 규정이 개정되었다. 2021년부터 동성동본 결혼은 가능하다. 그런데 현재 8촌 이내 혈족의 금혼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법이며 아직까지는 부계든 모계든 8촌 이내 혈족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법이야 어떻게 변하든지 지구에서 살려면 중력을 피하지 못한다. 아무리 사랑이 고귀하더라도 유전의 법칙은 인간의 법으로 규제할 수 없는 것이다. 난자(생식세포)는 단순히 정자가 빠르고 힘이 세다고 해서 선택하기보다는 자기 것과 다른 유전자 특성을 보이며 강한 면역 유전자를 갖고 있는 정자를 선택한다고 한다.
자고로 혼처는 먼 곳에서 찾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는 동네 처녀와 총각끼리 결혼하기 보다 산 넘고 강 건너에서 유전자 차이가 큰 배우자를 찾아 건강한 자손을 보고자 하는 본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러한 현상은 국제결혼이란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통계를 보면 20대 젊은이의 30%는 국제결혼을 할 의향이 있다 한다. 유전학으로 보면 국제결혼은 한국인을 더 강하고 건강하게 만들 기회가 되는 것이다. 멀리 있는 유전자 간의 결합으로 건강하고 머리 좋은 자손이 많아지면 한민족의 미래가 밝아질 수 있어 단일민족, 순혈주의이란 집착은 희미해지게 될 것이다.
원시사회나 전근대사회에서는 족내혼이나 근친혼이 일반적이었다. 근친혼의 해악을 경험하고서야 문명사회에서 근친혼은 금기되기 시작했다. 1866년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과학적 우성과 열성 유전자 이론과 잡종강세 이론 등이 세상에 알려졌다. 물론 이전에도 유목 사회에서 나그네에게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었던 것은 강한 후손을 얻고 멸족을 면하고자 하는 풍습이었고, 성(姓)이 있을 수 없는 사회는 근친혼의 흔적으로 남은 것이다.
오늘날 유대인들의 우수성을 이야기할 때는 그들의 방랑 생활에서의 유전적 선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은 수천 년간 정처 없이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 온 민족이다. 유대인은 유랑생활의 정착지에서 현지인과의 이종교배(異種交配)로 혼혈 자식을 낳아서 유대인으로 흡수하였기 때문에 우수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천 년간 전 세계로 유랑해온 유대족은 현지인들과의 이종교배가 일상화되었기에 잡종강세 이론에 따라 유대족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키워 왔다고 한다.
잡종강세, 순종열세론은 비단 생물학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 순혈주의’에 집착한 우생학적 비극을 바탕으로 많은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순혈주의’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종교가 세상의 모든 가치를 지배하던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찬란했던 그리스, 로마 문명이 암흑기에 묻혔을 때, 18세기 이후 시민혁명,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의 사고와 가치, 인간 이성에 눈뜨던 시대에 이질적인 이슬람 문명을 접촉하면서 ‘르네상스’라는 ‘이성혁명(理性革命)’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가치의 이종교배’가 민주주의의 본질이 되었고, 공산주의라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획일적 가치로 대립하는 냉전 시대를 겪게 되었다.
물론 민주주의라는 너울 속에서도 독선과 위선, ‘선택적 정의’도 사상의 순혈주의이고, 사상의 동종교배가 아닐까? 다양성은 말살되고 집단의 자기 교정력(矯正力)은 퇴화하며 각 진영 간의 ‘확증편향(確證偏向)’이라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종교적 편향과 국뽕도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인간사회의 지동설이나 관면혼배(寬免婚配)를 아는지 모르는지 개나리 꽃은 피고 송화가루는 날린다. 우리 사회에 있는 겹사돈 관행이나 욕설인 제ㄱ럴, 제ㅁ럴은 단순한 욕이 아니라 유전학적 저주가 될 수 있는 깊은 뜻이 있을 줄이야.
요즈음 찬탄(탄핵 찬성), 반탄(탄핵 반대)이란 갈라치기 함성이 한참 시끄럽다.
봄을 알리는 개나리가 머뭇거리지만
회초리같은 꽃줄기는 웃으면서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원고 2021.05.30.; 보완 2025.03.03/더보기: ‘개나리에서 주걱턱, 확증편향까지’, 심의섭, 곰곰이 생각하는 수상록 3, 우민화의 떡밥, 노답의 타령, 한국문학방송, 2021.10.5.: 308~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