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담화와 문장을 한가지로 쓴 경우
앞에서 ‘자기가 쓰는 문장인가, 등장인물이 말하는 담화인가’ 분명히 의식하고 가려 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가려 쓰지 않은 것 같은 표현들이 여기 있다.
이튿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안해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제법 근심스러운 얼굴이다. 나는 감기가 들었다. 여전히 으시시 춥고, 또 골치가 아프고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이 쓸쓸하면서 다리팔이 척 늘어져서 노곤하다.
안해는 내 머리를 쓱 짚어보더니 약을 먹어야지 한다. 안해 손이 이마에 선뜩한 것을 보면 신열이 어지간한 모양인데 약을 먹는다면 해열제를 먹어야지 하고 생각을 하자니까 안해는 따뜻한 물에 하얀 정제약 네 개를 준다. 이것을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널름 받아먹었다.
-이상의 「날개」에서
이 글에서 안해라는 인물의 말로 “약을 먹어야지”와 “이것을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다”가 있는데 딴 줄로 끌어내지도 않았고 어세(語勢)도 지문세(地文勢)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바로 그저껜가두 전화가 왔는데 낮잠을 자다 머리도 쓰다듬지 않고 달려온 옥희는 수화기를 떼어들기가 무섭게 요새는 대체 게서 무슨 재미를 보구 있기에 내게는 발그림자두 안하느냐고 내일이라도 곧 좀 올라오라고, 제일에 돈이 없어 사람이 죽을 지경이라고, 그래 내일 못 오더라도 돈은 전보환으로 부쳐주어야만 된다고, 그럼 꼭 믿고 있겠다고 한바탕 재껄이고 나서 응 그럼 꼭 믿구 있겠수 하고 전화를 끊기에 미쳐서야 생각난 듯이 참 몸이 편찮다더니 요새는 좀 어떻수 하고 그런 말을 하였다고, 그는 그 계집의 음성까지를 교묘하게 흉내 내어 내게 여실히 이야기하였다.
-박태원의 「거리」에서
어떤 여자가 전화로 한 담화, ‘그’라는 사람이 다시 그것을 이야기해준 담화, 모두를 담화대로 묘사하는 대신 작가 자신이 말하는 투로 써 내려가고 “그는 그 계집의 음성까지를 교묘하게 흉내 내어 내게 여실히 이야기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 두 글은 자기가 쓰는 ‘문장’인지, 인물의 ‘담화’인지, 그 취급이나 표현에나 의식 없이 쓴 것은 아니다. 취급엔 물론 표현에서도 의식적으로 계획해서, 담화를 딴 줄로 끌어내다 어감대로 묘사하기를 피한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당연히 문체론이 나와야 한다. 문체에 관해서는 뒤에서 제목을 달리해 말하겠으므로, 여기서는 다만 이런 표현들은 담화를 의식적으로 지문에 섞고, 섞더라도 담화만 두드러지지 않게 지문까지도 담화체로 쓴 것이란 것, 또는 자기의 문체를 담화풍으로 쓰려는데 담화가 지문과 그다지 대립감이 나지 않으니까 의식적으로 한데 섞어 쓴 것이란 것을 밝히는 데 그치려 한다.
-이태준 『문장강화』 중에서
2025.3.15
맹태영 옮겨 적음